The feudal system, in which the land was owned by a monarch, who in exchange for homage and military service granted its use to tenants-in-chief, who in their turn granted its use to sub-tenants in return for further services, gave rise to several terms, particular to Britain, for subdivisions of land which are no longer in wide use. These medieval land terms include the following:

  • a burgage, a plot of land rented from a lord or king
  • a hide: the hide, from the Anglo-Saxon word meaning "family", was, in the early medieval period, a land-holding that was considered sufficient to support a family. This was equivalent to 60 to 120 old acres (approximately 30 modern acres (120,000 m2)) depending on the quality of the land. The hide was the basis for the assessment of taxes. The hide was not ubiquitous in Anglo-Saxon England, with, for example, land in Kent being assessed in sulungs (approximately twice the size of the average hide).
  • a Knight's fee: is the amount of land for which the services of a knight (for 40 days) were due to the Crown. It was determined by land value, and the number of hides in a Knight's Fee varied.
  • a hundred: a division of an English shire consisting of 100 hides. The hundreds of Stoke, Desborough and Burnham in Buckinghamshire are known as the Chiltern Hundreds.
  • a franconian Lan used in Poland since the 13th century, consisted of 43.2 morgs = 23 to 28 hectares. The term Lan was also used to indicate a full-sized farm, as opposed to one split up into a number of smaller sections.
  • a wapentake: a subdivision of a county used in Yorkshire and other areas of strong Danish influence. It is similar to hundred or a ward. It was used in Yorkshire, Lincolnshire, Nottinghamshire, Derbyshire, Leicestershire and Rutland.
  • a shire was originally a type of a subdivision of a county; some shires evolved into administrative areas equivalent to a county; a shire was headed by a shire reeve (becoming sheriff, in Saskatchewan the mayor of a rural municipality is a reeve); shires were most commonly subdivided into hundreds, but other types of subdivisions were also made
  • a rape: Sussex was divided into six rapes, which were intermediate divisions between the county and the hundred. A rape was to have its own river, forest and castle.
  • a lathe: Kent was divided into five lathes, from the Old English laeth, meaning district.
  • a riding: was a division of land in Yorkshire equivalent to a third of the shire. The name is derived from the Old Norse thriding, meaning "one-third".
  • a ward: a ward is a subdivision of a shire, equivalent to a wapentake or a hundred. It was used in Northumberland, Cumberland, Westmorland, and Durham.

 

유럽중세.를 퓨덜 시스템. feud. 퓨드. 가 머냐. 

 

A prolonged and bitter quarrel or dispute.

 

Origin

Middle English fede ‘hostility, ill will’, from Old French feide, from Middle Dutch, Middle Low German vēde, of Germanic origin; related to foe.

 

싸우는겨. 오래. 생각 외로 길게. 긴 시간에 상황은 티격태격. 게르만어야. 역시 게르만어 포. foe. 싫어하는 상대. 적. 에서 온겨.

 

안좋은 감정이야. 호스틸리티. hostility.  hostile 호스타일. 싫어. 이건 라틴어에서 가져다 쓴거고. 

 

적. 하는 에니미. enemy 는 inimicus. 친구. 프렌드.는 라틴어 아미쿠스.야 아미쿠스.가 아닌겨 이니미쿠스.야 . 게르만애들은 라틴어 안 쓸때도 포. 페데. 퓨드 한겨. 

 

프렌드. 게르만어야. 영어는 대부분 게르만어야 그 뿌리는. 프리. 한겨. 친구 란 프렌드.는 프리. free 자유로움 통제되지 않은 감정을 공유하는겨. 이게 러브.야. 

 

리버티. 란건 라틴어야. 이게 리베트.야 즐거운겨. 

 

아 저따위 이야기 썰하다간 한도 끝도 없고. 

 

이땅바닥에 민주 정의 이념놀이에 미친분들은 자유.가 너무 싫잖냐. 방종 이하걸랑. 예의 따지 걸랑. 지들 생각의 좁다란 천장 을 벗어나면 민주 가 아니고 정의 가 아니고 적폐 걸랑. 표현의 자유도 민주 정의 만을 위한 표현의 자유고 지들 빠질 넘어서면 무례고 패륜이걸랑. 자유가 나쁜거걸랑.

 

해서. 니덜이 친구. 프렌드.가 없는겨. 프렌드. 는 프리한 러브.를 공유하는겨. 

 

해서. 이들은 뒤통수만 치는겨. 어디서 어설픈 유교만 조선건국이래 칠백년째 도배가 되서리 말야. 이탁오 선생님이 그랬잖냐. 나이 오십처먹을때까지 걍 한마리 였다 나는. 앞의 개가 예의요 짖으면 뒤에서 공자 짱 맹자 짱 예의 . 하민서리 산 인생은 한마리 였다. 

 

 

그따위 들을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자빠졌으니. 왜냐. 니덜은 저 자유.를 거부하는 니덜만의 이념놀이에 미친 분들이걸랑. 지폐와 동전으로 니덜의 자유를 억압했던 똥천지 바닥을 창조하신 분들을 여전히 위대한 조상님 개 하민서리 떠받들고 사는거걸랑. 

 

아 얘기 새지 말자.

 

퓨덜리즘. 은. 번역하면. 길게 싸움.이즘 이야. 저걸 봉건. 번역한건 일본고. 천년을 영지들 두고 싸우는겨. 시작은 머야? 로마야 로마. 로마가 나가고 그 나머지 땅 땅따먹기걸랑. 그리고 슬라브가 끼고 투르크가 끼고 우랄도 끼면서 엘베강 너머서 오데르강도 너머서리 리보니안의 라트비아에 에스토니아까지에 아래 리투아니아에 러시아에 로마와 그리스도 가 스미는겨.

 

정식으론. 퓨덜.이 피프.야 영지주고 임대인 임차인하는겨. 

.

천년동안.

.

 

封建制(ほうけんせい)は、君主の下にいる諸侯たちが土地を領有してその土地の人民を統治する社会・政治制度。諸侯たちは、領有統治権のかわりに君主に対して貢納や軍事奉仕などといった臣従が義務づけられ、領有統治権や臣従義務は一般に世襲される。

 

歐洲封建制度又稱為封建等級制封建君主制,指的是歐洲中世紀貴族騎士相对应的法律地位及軍事責任制度。主要圍繞著三個中心:領主封臣領地

 

짱께이들은 저걸 특정지워 아예. 구주봉건제도. 봉건등급제. 봉건군주제. 지들은 고대에 다 하고 앞선 근대를 했다는 자뻑질 하는거지.

 

우리네는 저 번역을 우리 스스로가 한 적이 없어서리. 말글이 허황 망상 속에서 쓰는겨 이걸. 해서 망상속에 여전히 조선건국이래 칠백년을 저따위 선비들의 지배속에서 여전히 사는거걸랑. 망상속의 이념. 소득주도 경제. 세상에 저따위 망상이론은 없걸랑. ㅋㅋㅋ. 실업자 늘어도. 여전히 하겠다는겨. 

 

.

테넌트 인 치프. 치프 대빵이 테넌트 땅을 임차해주는겨. 테넌트. tenant 는 라틴어고. 베쓸 바쌀 vassal 도 라틴어고. 둘다 임차인.이야. 빌려서 땅 갖고 있는 사람.이야. 치프 로드 로 부터. 

 

저 땅을 피프 fief. 하는겨. 

 

저 땅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을 serf. 서프. 하는겨. fief 에 serve 서비스를 주고 받는겨. 이걸 농노. 하는겨. 노예 slave 가 아냐. 원칙적으론. 저 땅에 묶인 농부 들이야. 노예보단 쫌 나아. 

 

Serfdom is the status of many peasants under feudalism, specifically relating to manorialism. It was a condition of bondage, which developed primarily during the High Middle Ages in Europe and lasted in some countries until the mid-19th century.

 

어디는 19세기 중반까지 있었다. 

 

이전에 썰했듯이. 중세 천년을 5세기 15세기 로 보는데. 그 끝이 논쟁이 많다 하셨잖냐 짐께서. 중세 천년이 봉건사회다 라고 말하기가 어려워. 

There is no commonly accepted modern definition of feudalism, at least among scholars.[4][7] The adjective feudal was coined in the 17th century, and the noun feudalism, often used in a political and propaganda context, was not coined until the 19th century,[4] from the French féodalité(feudality), itself an 18th-century creation.

 

저 퓨덜.이라는 영어.가 나타나는건 17세기야. 퓨덜리즘. 이란 말은 저 시대를 나름 해석한거걸랑. 이걸 프랑스에서 처음 해석한겨 19세기에도 잘 안쓴 말이야. 20세기에야 다들 쓰는겨. 이 말은 18세기에 몽테스키외.가 만든말이고.

 

Feudalism itself decayed and effectively disappeared in most of Western Europe by about 1500

 

1500년 즈음에는 서유럽에선 없어졌다고 하지만. 저거에 동의가 안되지 하는겨 누구들은.

 

When the French Constituent Assemblyabolished the "feudal regime" in August 1789 this is what was meant.

 

누구들은 프랑스 혁명때 저게 없어진거다 하고. 

 

하튼 저래. 주류는 5세기에서 15세기. 넘어가고.

 

burgage hide hundred shire
저기 맨 처음에. 저 바쌀. 베쓸. 테넌트.라는 임차권자들에게 주는 땅들이. 더 들어가면 땅 또는 권리야. 상업권 사냥권 등등. 

저 분류는 잉글랜드 중심으로 나눈 영어.야 

 

버기지 burgage. burgher. 버거. 이게 독일어로 부르크. burg.야 캐슬. 성.이야 이게. 게르만어야. burgh 버그.는 스콧어야. 왕. 영주 에게 받은 땅이야. 또는 왕 자치구야. 해서 특히나 더 드글드글대는겨 인간이. 영지 중에서 규모가 있는 땅이야. bourgeoisie. 부르조아.야 여기서 생기는겨. 

 

hide 하이드. 한 씨족. 가족이 먹고 살 땅이야. 이게 백개가 헌드러드.하는겨. 이건 쟤들만의 단위고. 헌드러드가 저기서 유래한 건 아니야. 

 

샤이어. shire . 이것도 카운트 라는 귀족단위가 받는 땅의 단위야. 앵글로색슨애들이 만든 단어야. 

 

저게 다들 지금 쓰는 행정단위들이야. 다 저 중세에서 유래했어. 저기서 이름이 또한 나와 그 지역이름으로 성을 쓰고 해. 버크셔 해서웨이 할때 버크셔. 가 버크 라는 샤이어. 야. 

 

함부르크. 브란덴부르크.가 저 버거.의 독일어고. 중세 영지고.

 

 

지금 우리네가 쓰는 대부분의 말글은. 어휘는. 중세 유럽때 나온겨. 모~~~~~든 학문의 말글이. 저걸 일본가 가타가나와 한문으로 번역하고 그걸 우리네가 한글발음으로 쓰는거지.

 

외래어쓰지말고 한글사랑.

 

 

참 개소리도 저따위 개무시기 도 없는거지.

 

민주. 라는 말이. 한글이냐? ㅋㅋㅋ

 

일본가 번역해준 말을 쓰는겨 . 외래어와 우리말의 경계가 대체 머냐 니덜은?

 

저게 이념놀이에 미친 진보 란 애들의 진보적 수준이야 저게.

 

한글 사랑해라

.

 

아주 적폐 중에 적폐에 저들이. 일본들이 만든 말글에 개 환장하면서리 그 속에서 허우적 대면서리 사는들. 헌데 그 말글 창조자들에게 적폐래 ㅋㅋㅋ. 

 

나이 오십전까지. 나는 한마리 개와 같았다. 이탁오. 

.

 

 

저것들은 대대손손 칠백년 동안 에 더하여 앞으로 몇백년을 더 저을 할까. 어여어여 빨랑 망해야 해 이나라. 

.

 

 

저건. 역시 잉글랜드 중심으로 본 중세의 귀족층이야. 
우리네가 역시 일본가 번역한 공후백자남.을 고대로 인식해서 쓰는데. 그게 딱 맞는게 아냐.
얼. earl. 이 딱히 대륙에 카운트.야 count  백작 이라하는. 하고 저리 분류를 또 했는데. 또 딱히 그렇지는 않아.

초기에 저긴 바이킹 세상이잖아. 자기들 단어가 얼. 이야. earl. 이걸 쓰다가 중세 중반 지나면서리. 이 얼.은 명예직 위주로 가고. 듀크. duke 나 카운트. 로 쓰게돼. 공후백자남 하는건 저 잉글랜드의 분류를 따른 번역이야.

 

 


저게 유럽의 귀족층을 다 담은 분류야. 듀크. 카운트. 이전 썰. 다 라틴어야. 듀크가 쎄. 둑스. 리더. 카운트는 공무원이야 파견공무원. 약해 지위가 상대적으로. 코메스. 코미트. 직위를 갖고 저리 간겨 저 땅 관리하라고. 

 

후작. 하는 영어 마퀴스. 불어 마퀴. 불어 마그레이브. 이건 경계야. mark. march. 마크. 딱 찍어 경계를. 여기 지키는겨. 해서 대게 외곽이 많아 그 영지에. 시작은 짝아 그래서. 얘들이 커서 카운트가 되고 듀크가 되는 경우가 많아. 

 

남작. 하는 배론. 은 게르만어야. 걍 남자. 전사. 바론이야. 낮아 귀족층에서. 

 

젠틀맨.이 제일 낮은 애들이야 소위 귀족층에서. 그 위가 에스콰이아. 하는거고. 

 

듀크. 가 더 세가 커지면. 그랜드. grand 를 부치는겨. 그랜드. 아치. arch. 같은 말이야. 

 

누구네들이 그랜드 듀크. 아치듀크 하면. 아니다 우리넨 그랜드 프린스 하겄다 하는겨. 

 

저기서 프린스.와 듀크.를 따로 구분하지만. 저게 다 존심 이야. 저 듀크 보다 우리가 더 높아. 프린스 할래. 저게 그랜드 듀크 하내. 우린 그럼 그랜드 프린스 할껴. 

 

킹은 차마 못하고. 그렇다고 듀크 하기엔 존심 상하고 해서 프린스. 더 킹에 황제에 정통이다 하는거지. 

 

저기서 듀크.가 카운트 보다 높다 하지만. 선제후들 보면 대주교에 대응하는 선제후는 브란덴부르크의 마그레이브.라는 후작이고. 팔라틴 카운트야. 

 

 

.

저건 영어식이고 

.

 

독일애들은 또 달라. 지들이 따로 세부 구분하면

 

Graf (male) or Gräfin (female) is a historical title of the German nobility, usually translated as "count". Considered to be intermediate among noble ranks, the title is often treated as equivalent to the British title of "earl" (whose female version is "countess").

 

얘들 그라프.를 백작 번역 한겨 카운트. 이게 잉글랜드의 얼.이란 거지.

German English Comment/ etymology
Markgraf Margrave (only continental) 
or Marquess
Mark = march (border province) + Graf. Exercised authority over territory on the border of the Empire.
Landgraf Landgrave Land (country) + Graf. Exercised authority over an entire province.
Reichsgraf Imperial Count Reich, i.e., (the Holy Roman) Empire + Graf. Imperial count, whose title was granted or recognised by the Emperor.
Gefürsteter Graf Princely Count German verb for "made into a Reichsfürst" + Graf.
Pfalzgraf Count Palatine 
or Palsgrave (the latter is archaic in English)
Pfalz (palatial estate, Palatinate) + Graf. Originally ruled "with the authority of the Imperial Palace"; later, ruler of the "Palace-land", i.e., the Palatinate.
Rheingraf Rhinegrave Rhein (river Rhine) + Graf. Ruled territory bordering the Rhine River.
Burggraf Burgrave Burg (castle, burgh) + Graf. Ruled territory surrounding or dominated by a fortified castle.
Altgraf Altgrave Alt (old) + Graf. A count whose title pre-dated Imperial grants of the comital title. Unique to the Salm family.
Freigraf Free Count Frei = free (allodial?) + Graf. Both a feudal title of comital rank and a more technical office.
Wildgraf Wildgrave Wild (game or wilderness) + Graf. Ruled territory centered on a wilderness.
Raugraf Raugrave Rau (raw, uninhabited, wilderness) + Graf. Ruled territory centered on an undeveloped area of land.
Vizegraf Viscount Vize = vice- (substitute) + Graf.

저 독일땅의 마퀴스. 마그레이브.를 저리 세부로 또 나눠. 저 마그레이브.가 쟤들은 후작에 백작이야. 마퀴스고 카운트야. 자작도 있고. 해서 저 공후백자남 딱 다섯개 분류의 잉글랜드.가 대륙에선 복잡하게 쓰여.

 

.

하튼 저따위것이 있어.

 

sir. 옛설. 해대는 썰썰 . 님님 개 해대는 말은 다 저따위 계급구분에서 시작한 말이야

 

 

 

싸이어. sire. 왕. 킹에게 쓰던 존칭이야. 싸이어 싸이어 하다가 썰 썰 한겨. 저건 senior 씨니어. 세니오르. 라는 라틴어가. 알프스 넘어가면서 사이어. 로 변형되는겨. 불가르 라틴. 했잖냐. 

 

저 들 층에 따라서리 저런 스타일. style 경의하는 격.들마다의 호칭이 쓰여진겨. 

 

 

저걸 우리네는 여전히 21세기에도 님 님 님 대고 앉아있고. 

 

형님! 하민서리 조폭들이 쓰는거고

 

지금 이땅바닥이 조폭들 땅바닥이야. 예의 유교 대민서리. 

 

유교.란 조폭들의 이념놀이야. 주원장이 개무시기 거지가 조폭이 되서리 명나라 에서 저 유교로 인간들 개돼지 만든기고. 

 

저걸 여전히. 21세기에 여전히 님님 높임말 하민서리 쓰는기고.

 

개무식한 땅바닥인데 여기가.

 

.

 

쉼. 

 

니덜한테 무리데쓰인데 저따위로 깊게 들어가는건. 더 들어가다간 끝도없겠고. 저따위게 기본적으로 장착이 되어야 좀 이해가 될락 말락하걸랑. 니덜 수준에.

 

 

The Rebellion of mayor Albert (Polishbunt wójta Alberta) was an uprising by the burghers of the Polish city of Kraków against the duke Władysław I the Elbow-high in the years 1311–12.[1] The mutiny was led by Albert, the vogt (LatinadvocatusPolishwójt) who was effectively a mayor of the town under Magdeburg Law.[2] It ended with the duke (later king) Władysław's victory.

 

이어서 가보자. 알베르트의 반란. 알베르트.라는 메이어. 저 영어를 잘 보면. 듀크.의 땅이 버거. burgher인겨. 이 버거.에 크라크푸. 라는 도시가 있어. 메이어.가 여기 짱인겨. 즉 듀크.가 임명한 관리야. 이게 시장 하는겨. 메이어.는 메이저 major 라는 라틴어에서 온거고. 

 

크라크푸.는 폴란드 남부야. 바로 아래가 체코 보헤미아야. 이 경계를 실레시아 silesia . 해. 여기를 레써 폴란드 lesser poland. 작은 폴란드.라 칭해. 이 중심이 크라크푸야. 바르샤바 다음의 도시야. 

 

폴란드 와 아래 체코. 그 아래 헝가리.는 역시 저때 결혼으로 얽히면서 이른바 유니온. 한 왕이 저 두세개를 막막 같이 하면서 합하기도 해. 

 

이전에 몽골애들이 세번 들어오걸랑. 몽골애들이 쳐들어올때도 경로가 이 레써 폴란드.라는 폴란드 서남부야. 삼차 침공엔 두배병력인 몽골을 이겨 얘들이. 

 

그리고 보헤미아 킹덤에 들어갔다가 다시 폴란드 킹덤으로 간겨. 저 알베르트.는 보헤미아 핏줄이걸랑. 실레시아 땅에 보헤미안 도 많이 있겄지. 이들이 보헤미아 로 가겄소 반란하는겨. 뮤티니. mutiny 는 뮤트 mute 말 안하는겨. 반란인데 명령 거부.가 방점이야. 

 

폴란드.는 슬라브애들이 들어와서 그리스도 받으면서 사는거걸랑. 저 보헤미아에서 넘어온 슬라브들이 반기를 자주 드는거지. 보헤미안은 바바리아에서 넘어온 슬라브고.

 

The Battle of Rozgony[1] or Battle of Rozhanovce[2] was fought between KingCharles I of Hungary and the family of Palatine Amade Aba[1] on 15 June 1312,[3] on the Rozgony (today Rozhanovce) field. Chronicon Pictum described it as the "most cruel battle since the Mongol invasion of Europe"

 

로츠고니 전투. 헝가리 샤를 1세. 아마데 아바 팔라틴 전투. 팔라틴. 높은 백작. 
헝가리.가 서기 1천년에 킹덤 하면서 그리스도 받고. 삼백년 왕조하다가 대가 끊겨. 서로 싸우고. 이때 이자릴 들어오는 애들이 또한 프랑스의 앙주.
The Angevins' monarchy of Hungary (1323–1382). 

 

앙주.의 핏줄들이 14세기에 헝가리의 왕을 해. 

 

앙주. 잉글랜드 헨리2세의 엄마 마틸다와 결혼하는 아빠 제프리.가 앙주의 카운트. 였걸랑. 그 앙주 가문이야. 그 앙주의 아들이 헨리2세.고 얘부터 앙주 제프리가 노란 꽃까지 플랜태저넷 달아서리 앙주가 잉글랜드의 플랜테져넷이 된겨. 이때 앙주제국 네이밍 붙고

 

그 앙주가 프랑스에서 쫓겨났잖오 이제. 프랑스땅이 된겨. 이때의 앙주.는 카페가문이 갖은겨.
해서 2차 앙주. 하는겨 이게 카페 앙주야 그래서. 
이들의 시작 앙주의 샤를 1세.가 성루이 9세의 동생이야. 얘가 이탈리아 남부로 가는겨. 프리드리히 2세가 죽고. 1250. 이태리 괼프 기벨리니 싸울때. 그 아들이 만프레트.가 어린 동생 황제 섭정하면서리 교황에 맞설때. 교황이 부르는겨 니덜이 먹은 저 이태리 남부 어여 갖고가. 이때 가는 이가 저 앙주의 샤를1세야. 얘가 프리드리히의 자식들 내쫓고 죽이고. 나폴리 킹덤 시칠리아킹덤 하는겨. 그리고 시칠리아.는 만종. 하민서리 아르곤 이 가져가고. 

할때 말야. 저 앙주 가문의 딸이 헝가리 킹덤에 시집가서 여왕이 되다가. 이집 자식이 저 공백의 시기에 왕이 돼. 그때부터 60년간을 헝가리의 앙주 시대 하는겨.
이때 헝가리가 아래 왈라키아 몰도비아. 즉 루마니아 와 몰도바를 속지로 만들어. 땅이 제일 클때야. 
이전 왕조가 삼백년 끊기고. 그 빈자리를 프랑스 앙주 애들이 치고 들어온거걸랑 결혼으로 이어저서리. 딸먼저 들어오고 이어 앙주 남자가 결혼으로 들어오고 또. 해서리. 이전 삼백년 전부터의 공신들이 일어난겨 원래 마자르의 원조들. 이 집안이 아마드 아바 가문인겨. 저기가 지금 슬로바키아 동쪽. 당시 슬로바키아.는 모라비아 에서 시작해서리 왼쪽 보헤미아가 먹고 아래 헝가리가 먹고 해서리 슬로바키아 란 이름은 19세기 말에야 나오는겨. 
앙주가 이겨. 
헝가리는 저러다. 앙주 나가고. 폴란드랑 잠시 유니온 하고. 뒤에 합스부르크가 4백년을 하는겨. 세계대전 전까지. 그동안 오스만이랑 전쟁하고.
헝가리 졸불..
하나만 더 하자. 이건 좀 재밌걸랑. 잉글랜드. 

The Despenser War (1321–22) was a baronial revolt against Edward II of England led by the Marcher Lords Roger Mortimer and Humphrey de Bohun. The rebellion was fuelled by opposition to Hugh Despenser the Younger, the royal favourite.[nb 1] After the rebels' summer campaign of 1321, Edward was able to take advantage of a temporary peace to rally more support and a successful winter campaign in southern Wales, culminating in royal victory at the battle of Boroughbridge in the north of England in March 1322. Edward's response to victory was his increasingly harsh rule until his fall from power in 1326.

 

데스펜서 전쟁. 에드워드2세 에게 마처. 마크. 경계 지키는 영주들이 대든겨. 웨일즈 경계야. 아직 요때는 웨일즈는 잉글랜드께 아냐. 헌데 왜 데스펜서 라 이름붙이냐. 

 

에드워드2세 옆의 데스펜서.가 싫었걸랑 저 영주들이. 데스펜서 가 에드워드야 재들 눈깔엔. 버러브리지 전투.에서 왕쪽이 이겨. 버러 borough 저 처음의 버기. 버러. 부르조아. 같은 말이야. 

 

휴 데스펜서. 더 영거. 있으믄 올드 가 있걸랑. 아빠와 아들. 저건 삼대가 걸쳐

 

Hugh le Despencer, 1st Baron le Despencer (1223 – 4 August 1265) was an important ally of Simon de Montfort during the reign of Henry III. He served briefly as Justiciar of England in 1260 and as Constable of the Tower of London.

 

첫째 할아버지.할배 휴 데스팬서. 배론이야. 데스펜서 가문의 첫째 배론이야. 막 신흥세력인겨. 제일 낮은 계급의. 

 

헌데 저당시 잉글랜드는 배런들 남작들의 시대야. 이전의 실지왕 존 때 마그나카르타 거부하고 1차 배런들 전쟁이 터지고. 이 와중에 존.이 병으로 죽어. 배런들이 좋아하긴 커녕 이거 이러다 프랑스애들에게 먹히겄다 해서리 그만하고 어린 아들 헨리3세가 왕위에 오르걸랑. 

 

이때 실세들은 배런인겨. 저 휴 데스펜서 남작.이 져스티시아르. 수상이야. 총리. 런던탑 관리대장이야. 콘스타블. 런던탑 관리짱이 권력의 상징이야 또한. 

 

이제 잉글랜드는 왕이 힘이없어. 존때메. 아들 헨리3세가 점점 크면서. 권력을 갖고 오려는겨. 여기에 다시 배런들이 반기를 드는거야. 그게 2차 배런전쟁이야. 

 

저 할배 휴 데스펜서.가 여기에 끼는겨. 물론 귀족들 편이지. 왕에 대항하는. 

The Second Barons' War (1264–1267) was a civil war in England between the forces of a number of barons led by Simon de Montfort against the royalist forces of King Henry III, led initially by the king himself and later by his son, the future King Edward I. The war featured a series of massacres of Jews by Montfort's supporters including his sons Henry and Simon, in attacks aimed at seizing and destroying evidence of Baronial debts. After a rule of just over a year, Montfort was killed by forces loyal to the King in the Battle of Evesham.[1]

 

몬트포르트의 시몬. 시몽 드 몽포르. 가 주도 한거걸랑. 휴데스펜서 남작은 이 사람이 얼.인데. 키워준거고. 헨리3세랑 아들 에드워드1세 부자가 구금돼. 

 

The Battle of Lewes was one of two main battles of the conflict known as the Second Barons' War. It took place at Lewes in Sussex, on 14 May 1264

 

이게 루이스 전투. 여기서 아들 에드워드가 탈출하고. 다시 소집해서 전세 역전해서리 왕쪽이 이겨. 헨리3세는 잔인한 복수를 하다가 교황이 말려서리 그만두고. 

 

저 전쟁때 유대인들 학살 당하고. 넘어가고.

 

저때 할배 휴데스펜서 남작이 전쟁 중에 죽어. 

 

Roger Mortimer, 1st Baron Mortimer (1231 – 27 October 1282), of Wigmore Castle in Herefordshire, was a marcher lord who was a loyal ally of King Henry III of England

 

이때 이 휴 데스펜서 남작을 죽이는 사람이 왕쪽의 로저 모티머. 배런이야. 로더 중에 특히 저 마처로드 라는 경계 지키는 애들이 쎈겨. 얘도 남작 배런을 처음 단겨. 이 배런들 .

 

아버지를 죽인 웬수. 가문의 웬수.

 

이사람의 아들이. 아빠 휴 데스펜서

 

Hugh le Despenser, 1st Earl of Winchester

 (1 March 1261 – 27 October 1326), sometimes referred to as "the Elder Despenser", was for a time the chief adviser to King Edward II of England

 

이사람의 아들이. 영거 휴 데스펜서. 

 

Hugh le Despenser, 1st Lord Despenser (c. 1286[1] – 24 November 1326), also referred to as "the younger Despenser"

.

/

 

Edward II (25 April 1284 – 21 September 1327), also called Edward of Carnarvon, was King of England from 1307 until he was deposed in January 1327. 

 

Piers Gaveston, 1st Earl of Cornwall (c. 1284 – 19 June 1312)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이름이 다 같은 휴 데스펜서. 반란군이었어도 여자쪽 핏줄이 왕가집안이야. 집안 재산 몰수 안당하고 걍 유지해. 헨리도 화 풀렸고. 그리고 충성하는겨 아들 에드워드1세에게. 팔리어먼트에도 들어가. 
헨리3세 다음 에드워드1세에서. 웨일즈 점령하고. 스콧랜드 왕 자리빌때 중재 하다가 쟤들이 프랑스랑 싸바싸바에 맘상하고 처들어가걸랑. 그 와중에 에드1세는 죽고. 에드워드2세가 왕이 된겨. 그리고서리 프랑스의 이사벨라 랑 결혼하고. 나중 백년전쟁 단초가 되고. 
문제는 이놈의 에드워드2세 인데. 어릴때 부터 얘 집사가 피에르 가베스통. 피어스 개버스톤.이야. 얘가 동갑이야 에드워드2세랑. 아버지 왕 1세한테 인상이 디게 좋게 박혀서리 왕자 집안 살림을 얘한테 맡긴겨. 이게 둘이 죽이 잘맞은겨 어릴때부터. 그걸 본 아버지 1세가 이상해서리 가베스통을 추방을해. 그러다 다시 와. 아들이 징징거렸나봐.
1세 죽고 2세가 왕이 되는데 이 가베스통이 실센겨. 바로 콘월 백작. 얼.을 하사해. 귀족들이 쟤 추방해라 막막 해. 추방해. 다시 들어와. 추방해라. 추방해. 다시 불러. 그때 귀족들이 죽여. 가베스통이 암살당하는겨. 여전히 귀족들의 팔리어먼트 세상이야. 왕은 힘 없어.
저 개버스톤 추방하자 할때 거의 유일하게 에드워드2세 편 들은 사람이 휴 데스펜서 아빠야. 
해서 이때부터 개버스톤은 추방당하고 오고 당하고 할때 최측근이 데스펜서 부자 가 되는겨. 
이사람 아들 영거 휴 데스펜서. 가 에드워드보다 두살 어려. 얘가 집사를 하는겨 왕실에. 

chamberlain (Medieval Latin: cambellanus or cambrerius, with charge of treasury camerarius) is a senior royal official in charge of managing a royal household. 

 

체임벌린. 체임버.가 왕실 프라이빗.이고 그 짱이야. 환관 내시가 아냐. 귀족이야. 높은.

개버스톤.이 왕자 일때부터 있던 자리를 얘가 꿰찮겨. 이 부자가 또한 에드워드2세의 최측근이자 실세가 돼. 에드워드2세가 스스로 멀 할 줄을 모르는거지.

 

개버스톤이 죽을때. 귀족들이 저 데스펜서 부자도 추방시키란거지. 추방을 시켜. 헌데 바로 다음해 다시 불러. 이사벨라가 화를 열라가 내. 오히려 데스펜서 아빠에게 윈체스터 백작을 하사해. 성질 싸움인겨.

 

귀족들이 고발하는겨 돈 먹었다 쟤들 어쩌고 저쩌고. 에드워드2세는 꿈쩍도 않고.

 

그러다 등쌀에 못이겨 두 부자를 추방하고. 다시  복직시키고. 

 

Roger Mortimer, 3rd Baron Mortimer, 1st Earl of March (25 April 1287 – 29 November 1330)

 

로저 모티머. 얘가 저 2차 배런전쟁 에서 데스펜서 할배를 죽인 모티머의 손자야. 같은 이름의. 

 

He also supposedly vowed to be revenged on Roger Mortimer because Mortimer's grandfather had killed Hugh's grandfather, and once stated (though probably in jest) that he regretted he could not control the wind.

 

손자 영거 데스펜서.가 할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맹세를 했대는겨. 자기도 어쩔수 없었대. 괴롭혔는지 어쩐지. 해서 얘가 반기를 든겨 로저 모티머.

 

얘가 이사벨라 여왕.이랑 사귄다는 설이 있어. 사귀었나봐. 에드워드2세는 개버스톤 도 그렇고 저 어린 데스펜서 도 그렇고 게이 라는 설이 디게 찐해. 양성애자 인거지. 바이. bi.

 

해서 이 로저 모티머.가 들고 일어난게. 데스펜서 전쟁.이야. 작명을 참 시안하게 한건데. 추방당한 데스펜서들이 다시 복직되는거 보고 얘가 들고 일어나. 
얘가 져. 런던탑에 갇혀. 다음해 탈출해서리. 

 

 Edward's response to victory was his increasingly harsh rule until his fall from power in 1326.

애드워드2세의 복수극은 몇년 하는거고. 이때 얜 대륙으로 넘어가. 

 

The scandal of Isabella's relations with Mortimer compelled them both to withdraw from the French court to Flanders, where they obtained assistance for an invasion of England from Count William of Hainaut, although Isabella did not arrive from Ponthieu until the fleet was due to sail. Landing in the River Orwell on 24 September 1326, they were accompanied by Prince Edward and Henry, Earl of Lancaster. London rose in support of the queen, and Edward took flight to the west, pursued by Mortimer and Isabella. After wandering helplessly for some weeks in Wales, the king was taken prisoner on 16 November, and was compelled to abdicate in favour of his son

 

이사벨라 여왕이 스폰하고. 3년 후에 잉글랜드로 들어오는겨. 런던은 여왕과 왕자 에드워드3세 지지야. 왕은 민심을 잃었어. 웨일즈로 튀었는데. 잡혀. 왕위를 아들 에드워드3세에게 넘기고 죽어. 
이때 죽이는겨 데스펜서 부자를

The elder Despenser was hung immediately in his armor at Bristol on 27 October 1326. He was then beheaded and his body cut into pieces for the dogs. His head was sent for display to Winchester, which had supported the king

 

다음달 10월에. 아빠 데스펜서는 목메달리고. 머리짤리고. 개들이 몸을 뜯었대. 시체는 전시를 하고. 저때 한 짓을 우리네는 구한말까지도 여전히 했던거고.

 

아들 영거 데스펜서는 다음달에 사형하고.

 

 

The execution of Hugh le Despenser the younger, from a manuscript of Jean Froissart.

.

 

나중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