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ttle of Bliska (present day Blizna in the hinterland of Trogir called Zagora, southern Croatia) was fought in 1322 between the army of a coalition of several Croatian noblemen and Dalmatian coastal towns (with the support of the king Charles I Robert of Anjou) and the forces of Mladen II Šubić of BribirBan of Croatia, and his allies. The battle resulted in the defeat of Mladen II, who lost his power.

 

크로아티아 블리스카 전투.

 

고대 로마가 다뉴브를 진출할때. 다뉴브강이 비엔나 위를 지나서 부다페스트 오른쪽에서 꺾여 내려가. 이게 베오그라드 오기전에 오른쪽으로 꺽여서 흑해로 가는데
저 다뉴브강이 꺾여 내려가서리 세르비아까지. 그 다뉴브강 하류지역을 판노니아. pannonia.
그리고 그 아래 아드리아해 접하는 남부를 달마티아. dalmatia. 경계는 산맥이야. 
여기가 이전부터. 일뤼리아 했던거고. 로마는 일뤼리쿰 했었고. 이걸 지우고 둘로 나눈겨. 
그리고 오른쪽 다뉴브 하류의 강너머가 다키아. 지금 루마니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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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가 달마티아에 대부분 들어가는거고. 그 위 헝가리. 부다페스트.가 딱 가운데의 윗쪽이야. 여기 서부터 세르비아의 벵오크라드 있는 북서부까지가 판노니아. 되겄지.

크로아티아.는 더치. 공국령이 7세기야. 빨라. 왜냐믄 옆이 이탈리아고 오스트리아걸랑. 킹덤이 10세기에 돼. Kingdom of Croatia (925–1102). 그리고 핏줄끊기면서 12세기는 헝가리랑 유니온 하는겨. 헝가리왕이 겸임하다가. 해변에는 베네치아것이 되기도 하고. 뒤에 합스부르크로 같이 드갔다가 20세기에 유고 하는건데. 

The Kingdom of Bosnia (Bosnian: Bosansko Kraljevstvo/Босанско краљевство) was a South Slavic medieval Kingdom that evolved from the Banate of Bosnia (1154–1377).

 

아래 보스니아.가 늦어. 킹덤을 12세기에 만들고. 후반엔 헝가리 의 영향에 있는거고. 그러다 오스만에 먹히다가 합스부르카 갔다가 유고 하는거고.
저 위 슬로베니아.는 오스트리아 바로 아래걸랑. 여긴 오스트리아의 영지야. 슬로베니아.라는 말은 20세기에야 나와. 유고에 드갔다가 나오면서. 원래의 정체성은 슬라브애들이 쳐박힌 7세기야. 

The Kingdom of Serbia , was a medieval Serbian state that existed from 1217 to 1346,

 

세르비아.는 보스니아보다 킹덤은 늦어. 이전엔 프린시펠리티. 작은 킹덤. 저러다 뒤 헝가리 영향에서 오스만 들어오는거고. 유고 가는거고. 

 

저들이 킹덤에서 헝가리로 드가고.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로 들어가.

 

합스부르크 군주시대. 1526–1867. 딱히 번역하믄 저리 되겄는데. 저때 보헤미아. 헝가리. 아래 체코 까지 다 합스부르크 영주가 왕인겨. 그 강국 보헤미아에 합스부르크의 자식 페르디난드가 영주가 되면서리 30년 종교전쟁 터지는거고.

 

The Habsburg Monarchy in 1789

 

스페인이랑 분가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1526–1867. 가 해서 저당시 지금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하고 폴란드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가 좀 걸쳐있는겨. 저 아래는 오스만 땅인겨.

 

 

해서 다시 정리하믄. 저 발칸의 윗쪽은 10세기 넘어서리 킹덤 서는데. 헝가리가 형님이고. 그러다 오스트리아가 다 장악한 상태에서. 아래 오스만이 치고 들어오는겨. 

 

 

물론 각 각에선 작게 크로아티아 공화국이니 오스만에서 세르비아독립국 이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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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이 어디까지 쳐들어왔나를 보면. 

 

1299 오스만. 해서 1302 어제 그 바페우스 전투를 시작으로 쳐 올라오기 시작하걸랑 이 투르크 . 저게 제일 정점을 찍는게 4백년 가까이 되는 1683년이야. 

 

저 지도를 가만히 보면. 비엔나. 는 못먹었어. 

 

The Battle of Vienna  took place at Kahlenberg Mountain near Vienna on 12 September 1683

 

비엔타 전투 1683에서 오스만이 패배를 해. 

Historians suggest the battle marked the turning point in the Ottoman–Habsburg wars, a 300-year struggle between the Holy Roman and Ottoman Empires. During the 16 years following the battle, the Austrian Habsburgsgradually recovered and dominated southern Hungary and Transylvania, which had been largely cleared of Ottoman forces. The battle is noted for including the largest known cavalry charge in history.

 

이게 아주 결정적인 전투야. 이때부터 서서히 합스부르크는 회복하고. 점점점 오스만은 아래로 밀려내려가는겨. 

 

저 지도를 보면 부다페스트 도 오스만에 먹혔어. 헝가리 대부분이 먹혀. 크로아티아 북부지방 이상은 못간겨. 슬로메니아 땅은 못갔어. 

 

위엔 폴란드에 막혔어. 폴란드가 오스만이랑 전쟁하면서 걍 몰도바 주기로 하고 끝나고. 못 쳐 올라가 오스만이. 흑해 위로는 러시아에 막혔어. 저기 코사르 애들을 못이겨. 

 

오스만이 쎈듯 보이는데. 끽해야 슬라브 애들 먹은겨. 헝가리 마자르족 먹은거고. 헝가리도 다 먹히진 않았어. 위에 쫌 남았어. 폴란드 슬라브애들에게 접전 해서 밀리고. 루쓰 코사크애들 러시아슬라브애들에겐 밀렸어.

 

 

즉. 오스만이 꾼 꿈은. 그 지 배꼽에서 나온 나무의 그림자 세상은 끽해야 슬라브 애들에 아랍 무슬림 애들일 뿐이야. 

 

 

 

후진겨 오스만 투르크  들. 지들이 위대한 양. 저 하다가 또 위대한 투르크. 젊은 진보 세력. 그게 젊은 투르크 혁명 이걸랑 ㅋㅋㅋ. 그게 일차대전이고. 그래서 150만 인종 학살 하고.

 

 

쟤들은 지금도 후지게 사니까 저따위 개에 대해 걍 아무소리도 안하는겨. 

저따위 들이 말야. 지들과는 형제래 . 형제의 나라 터키 개.
일본 들한테는 제국주의 개개끼. 저따위 6백년 개 한 들한테는 형제의 나라. ㅋㅋㅋ.

애들이 말야. 이땅바닥 조선 들 이념놀이 미친 들은. 보편성이 없어 .

얼마나 개무식하면 말이지..

모든게 음모여 이 들은. 수학여행 경주 옛날 간건 경상도 키우기래. ㅋㅋㅋ. 경부선 깐건 지역 주의 음모래 ㅋㅋㅋ. 아 저따위 개소리들이 어찌 테레비에서 작가 해댐시롱 짖어대고. 윤심덕이가 일본 음모로 전축 팔라고 죽였고.

저따위 들이. 이땅바닥의 소위 진보 소위 정의 소위 민주야.


쟤들이 형제 형제 하는게 저따위 슬라브 들에게만 뻣댄 투르크 터키 들. 은 제국주의 아니고 일본들 양키들한텐 맨날 제국주의 개개끼. 터키는 친구. 영원한 친구 . .

저 터키 들이 지금도 지들 수준 전혀 파악안되고 양키들한테 개하는거 보믄.

망상 이걸랑. 저따위 민족 개 하는 조또 아무것도 없는 
저들이. 인류를 죽여온겨. 
저들은 저리 개하민서리 위대한 투르크 대기라도 하지
이땅바닥 들은 조또 걍 깨갱 하민서리 지들 나라 사람들 주구장창 개돼지로 취급하미 오백년을 상대 적폐요 소인배요 찢어죽인 질만 한 개 구데기 들을. 
위대한 조선 위대한 조선. 오잉 그 조선을 이은 위대한 조선인민민주주의 정은이 . 오잉 우리가 좋아하는 인민 민주. 조선. 세글짜를 다 가졌네 부러 ..개 미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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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스카 전투는. 그래서. 저때 크로아티아에서 나름 귀족들이 땅따먹기 하는거고. 거기서 헝가리 왕이 맘에드는 쓰다듬어주는거고..


얘들이 저 이후 150년 후인 1830년. 저때도. 크로아티아.는 다 벗어났지만. 아래 보스니아 부터 세르비아의 반. 불가리아와 몰도바 까지는 그래도 얘들 땅이야. 
아래 해변접한 아테네와 필로폰네소스 반도는 벗어나고. 그래도 오래 간겨 얘들이.

 

얘들은 오른쪽 이란애들한테는 안된겨. 페르시아 쎈거지. 저때 1500년 들어서면서리 오른쪽엔 천년만에 페르시아 애들이 사파비 왕조 세운거걸랑. 

 

힘없는 슬라브 애들에게만 힘자랑 한겨 저게. 저게 이전 몽골 들이 깜짝 잔인한척. 하민서리 것도 힘없는 민간인들한테 잔인 하민서리 아랍애들 조진 것 이상 없어. 

 

 

지나고 보믄 대단한 일 한 듯 하지만. 지나고 다시 보믄. 힘없는 이들한테 개 떨다가 저리 야만인 들이 된겨. 

 

게르만 들은 인정해서 바닥부터 바닥바닥 로마의 사유와 그리스도를 미끼로 사유를 넓히고 문명화 할때

 

저 들은 하렘과 유너크에서 지들끼리만 딸딸이치고 힘없는 슬라브 아랍 무슬림 에스엠 놀이만 하다가 저 된거걸랑.

 

1912년. 저때 발칸반도 애들이 발칸전쟁하는겨. 그 직전이야 저 지도가. 발칸애들이 동맹맺어서. 발칸반도에서 오스만 애들을 다 내쫓아. 저 다음해엔 발칸에 오스만이 없어. 거의.

 

그래도 쟤들이 말야. 저 시리아 핵심은 다 갖고 있었걸랑. 메소포타미아랑 아라비아의 메카 메디나 줄기를. 이때 오스만 왕이. 그나마 깨달아서리. 컨스티튜션. 국회 구성해서리 잘 할라고 했걸랑. 이걸 뒤집은게 . 민족 해대는 혁명당 나오는 젊은 진보자연하는 들이걸랑. 1차대전 하는겨. 해서 그나마 있던 땅 다 뺏기고 지금 터키땅에서 저따위로 사는겨 . 술탄 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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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asant revolt in Flanders 1323–1328 was a popular revolt in late medieval Europe. Beginning as a series of scattered rural riots in late 1323, peasant insurrection escalated into a full-scale rebellion that dominated public affairs in Flanders for nearly five years until 1328

 

플랑드르 농민봉기. 플랑드르.는 에스꼬 강 위야 시작은. 여긴 대머리샤를 서프랑키아 프랑스 땅이었어. 얘들 쎄. 클로비스애들이 통일할때도 맨 마지막에 통일한 곳이 여기야. 쎄.
이전 프랑스와 전쟁에서 도시 세개 주고. 이때부터 이 접경도시는 지금도 프랑스야. 그리고 프랑스 친위정권이 서는 거지. 세금 걷는겨. 농민들이 반란해. 이때 민란 하지만. 조선과 다른건. 조선은 그야말로 허섭 민들만 민란 하잖냐. 얘들 민란은 부르조아 와 귀족이 껴. 
조선은 모든 면이 개 쓰레긴데. 저따위 민란 이 또 촛불의 바닥 대는거 보믄. 참 세계사 모르는 정도가 정신병자 수준인데.

5년 전쟁. 결국 프랑스가 들어와서리 진압하는거지. 그리고 바로 백년전쟁이 터져. 플랑드르가 프랑스 편을 드는겨. 저 반란 일으켰던 주범. 이땅의 조병갑. 다시 반란 해. 똑같은 저 백작이 쫓겨나 플랑드르에서. 플랑드르는 잉글랜드가 무역 상대야. 쫓겨난 저 플랑드르 백작 루이.는 접경 너머에서 프랑스편에서 백년전쟁 하다가 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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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r of Saint-Sardos was a short war fought between the Kingdom of England and the Kingdom of France in 1324. The war was a clear defeat for the English, and led indirectly to the overthrowing of Edward II of England. The war can also be seen as one of the precursors of the Hundred Years' War.

 

생사도스 전투. 프랑스 아키탄 땅. 남부. 십삼년후 백년전쟁. 잉글리 킹과 프랑크 킹의 싸움. 
에드워드2세. 병딱인데. 중간에 낀. 그 이전 휴 데스펜서 부자.의 에드워드야. 
.저 아키탄은. 엘레오노르부터 문제걸랑. 동생 존이 뺏기고 그거 회복하다가 리차드 죽고. 존 왕되고 그래도 뺏기고. 해서 저걸 이후로도 계속 찾으려 하는겨 잉글랜드에서.
바로 아래 가스코니. 가스코뉴.는 아직 잉글랜드 땅이야. 저 생사도스. 바로 아래가 가스코뉴.
저 아키탄의 사람들은 그래서 정체성이 우린 잉글랜드여. 해서 계속 이전 썰한 프와티에. 상통주 전투. 라 로셸 전투. 저기서 반란하고 존의 아들인 헨리3세가 가담하는거걸랑. 결국 프랑스가 이기지만. 
저 생사도스.도 아키탄의 마을이야. 저기 수도원의 원장이. 세금이나 의무를 프랑스에게 안 하겠다는 거걸랑. 여전히 아키탄에 잉글랜드세력이 쎈겨. 프랑스가 자기들 영지라지만 쉽게 못다루는겨. 잉글랜드가 . 프랑스 처들어오고. 결국 프랑스 이기고. 
저때 잉글랜드병력의 리더가 휴데스펜서 아부지야. 얘가 무능력해서리 졌다고 생각해. 협상을 이사벨라 여왕이 가는겨 자기 아들. 나중 에드워드 3세 데리고. 이때 프랑스 왕은 다 단명하고 한살 많은 오빠 샤를 4세걸랑. 얘기가 잘 되겄지. 
그래서 저때. 데스펜서 전쟁.이란 이름으로 로저 모티머.가 에드워드2세에게 반기들다가 잡혀서리 탈출해서리 프랑스에 가 있을때 이사벨라 모녀가 간거걸랑. 여기도 먼가 있어 보믄. 해서리 같이 바다 건너서 에드워드2세 자기 신랑 몰아낸겨. 저 데스펜서 부자 죽이고. .
하튼 저 아키탄 땅이. 백년 전쟁의 또다른 이유야 저게. 계속되온.

Isabella of France (1295 – 22 August 1358), sometimes described as the She-Wolf of France

 

이사벨라.를 암늑대.라고 하는게. 나중 프랑스 적이 되어서리 저리 칭하기도 하지만. 지 애인 있는 프랑스 갈라고 간겨. 저 전쟁 협정이 목적이 아니라. 모티머랑 같이 잉글랜드 쳐들어가는 거 원군 받으러 간겨..

Polish–Teutonic War (1326–1332)[1] was the war between the Kingdom of Poland and the State of the Teutonic Order over Pomerelia, fought from 1326 to 1332.

 

폴란드와 튜튼기사단 전쟁. 이 튜튼 기사단. 웃긴데. 

 

이전에 병원기사단과 템플기사단 언급때 저걸 빼먹었지만. 딱히 나올 현장이 없어서리. 아 저 기사단 이야기는 눙물나 저거. 특히 저 병원기사단 이야기는 엄청난겨 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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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rder of Brothers of the German House of Saint Mary in Jerusalem[2](official names: Latin: Ordo domus Sanctæ Mariæ Theutonicorum Hierosolymitanorum, German: Orden der Brüder vom Deutschen Haus der Heiligen Maria in Jerusalem), commonly the Teutonic Order (Deutscher Orden, Deutschherrenorden or Deutschritterorden), is a Catholic religious orderfounded as a military order c. 1190 in Acre, Kingdom of Jerusalem.

 

공식명칭이. 예루살렘에 성모 마리아의 게르만집.에 거주하는 형제들의 기사단. 줄여서 튜튼.
중세엔. 독일을. 튜튼 했어. 

The Teutons (Latin: Teutones, Teutoni, Greek: "Τεύτονες") were an ancient tribe mentioned by Roman authors. They are generally classified as a Germanic tribe. The Teutons are best known for their participation in the Cimbrian War with the Roman Republic in the late 2nd century BC.

 

튜튼족.이라고 또한 있는겨. 게르만이야. 수에비안. 롱고바르디. 프랑크 살리안. 할때 또한 저 고트랜트 부근에 튜튼족이라고 있었던겨. 이들이 기원전에 또한 내려오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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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achieving decisive victories over the Romans at Noreia and Arausio in 105 BC, the Cimbri and Teutones divided their forces. Gaius Marius then defeated them separately in 102 BC and 101 BC respectively, ending the Cimbrian War. The defeat of the Teutones occurred at the Battle of Aquae Sextiae (near present-day Aix-en-Provence).

 

이들이 계속 내려오다가. 알프스 부근에서 만나는 로마군들 이기다가. 지금 프로방스 지역에서 카이사르의 고모부 가이우스 마리우스.에게 대패하는겨. 킴브리안 전쟁. 이라해. 킴브리족도 튜튼족과 같이 간 게르만. 

 

저때 잡힌 사람들이. 나중에 글라디에이터 나오는 노예반란 하고 이때 크라수스. 카이사르의 채권자이자 후견인.이 지 힘으로 안되서리 폼페이우스 부르고 했다 했잖냐. 기억이 날리가읎지. 

 

According to the writings of Valerius Maximus and Florus, the king of the Teutones, Teutobod, was taken in irons after the Teutones were defeated by the Romans. Under the conditions of the surrender, three hundred married women were to be handed over to the victorious Romans as concubines and slaves. When the matrons of the Teutones heard of this stipulation, they begged the consul that they might instead be allowed to minister in the temples of Ceresand Venus. When their request was denied, the Teutonic women slew their own children. The next morning, all the women were found dead in each other's arms, having strangled each other during the night. Their joint martyrdom passed into Roman legends of Teutonic fury.

 

발레리우스 막시무스와 플로루스.가 기록을 남겼어. 저때 말야. 죽은 게르만이 9만명에 포로가 2만명이걸랑. 마지막 튜튼족들이 패배한 아쿠아이 섹스티아이 전투. 항복하고. 삼백병의 튜튼족 유부녀들이 로마인들에게 넘겨져. 첩이나 노예로. 튜튼족 여인네들이 그 얘길 듣고. 그러지 말고 우리들을 신전의 시녀로 일하게 해달라고 해. 거절당해. 이 얘기하러간 여자들이 자기 자식들을 죽여. 다음날 아침에 가보니 모든 여자들이 죽은체 발견이 되었는데, 그 모습이 서로 목졸르면서 죽은겨. 

 

 

이 튜튼 쎄걸랑. 

 

게르만 여자들. 이전 타키투스가 묘사한거도 보믄 음청나. 그리고 저들의 부부간의 정조관념은. 이 조같은 유교놀이 하민서리 예의 충효절 하는 이빨만 살은 들과는 차원이 달라. 정말 이 조선반도 개 들의 위선질은 끝이 안보이는데. 역겹고 토가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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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추악하고 구데기 들이 정의요 민주요 하더라. 예의요 절개요 하더라. ..
저 튜튼이 역사에 저기서 처음 저리 등장하는겨. 카이사르 고모부와 함께. 
이들이 튜튼기사단. 저기 보믄 써카. 1190년 하걸랑. 
위키영어도 걍 대충보이 자세히 안보이는데. 저때가 십자군 3차야. 붉은 수염 바바로싸 프리드리히1세 황제가. 젊을때 걍 한번 오고. 나이들어서 제대로 출정한거걸랑. 독일지역 기사들 데리고.
헌데 이 할배가. 심장마비로 죽어. 여름에. 철갑옷에. 할배에. 걍 갑자기 물 들어가다가 죽은거 같은데. 해서리 이 할배가 데려온 독일땅 기사단들이 흐지부지된겨 이게.

이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남은겨. 튜튼기사단의 이름으로. 해서 병원기사단. 템플기사단.과 함께 삼대 기사단이야. 
나중에 아코함락 1291년. 이게 중요하면서 눙물나는 현장인데. 저때 저 기사단 셋이서 생애 처음으로 연합한거걸랑. 서로 그 깡다구가 쎈겨. 서로 각각이 자기들 일 한겨 연합따위 없어. 그러다 저 할배의 손자 2세 황제가 살라딘 조카랑 잘 다져놓은 예루살렘땅에. 성루이 가 깽판치면서리. 결국 맘룩애들에게 쫓겨나는 현장이걸랑.
저때 템플기사단은. 돈 빌려준거 빌미로. 저 성루이 의 손자 필리프 4세 한테서. 그 기사단장 할배 산체로 화형해서리 죽이고 기사단 해체하고. 저 화형당한 할배도 아코에서 끝까지 있었걸랑. 
병원기사단은 로도스섬 에서 오스만 들이랑 싸우다가 쫓겨나서리. 저 쬐그만 섬 몰타섬 또 받아서리 거기서 있으면서 슬람이들이랑 전쟁 하고.

저 튜튼은. 저때. 대륙으로 가는겨. 저 오데르강 너머 폴란드애들이 킹덤 세웠지만. 그 폴란드 너머 이전 썰한 리보니안. 그 땅들에 십자가 박아야 하걸랑. 황제가 불렀는지 교황이 가라고 했는지. 해서리 저때 리보니안 십자군 생겨서리 지금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땅에 가는거고. 저 아래가 바로 프러시아야. 칼라닌그라드. 라고 지금 덩그래 남아있는 러시아 땅. 

저기가서리. 폴란드 애들이랑 싸우는겨. 여기가 폴란드의 발트해 접하는 북쪽 이걸랑. 아직 리투아니아도 막 공국령이 된듯 한 시기고 바로 위 리보니안 십자가땅이고. 여길 비집고 들어간겨.
저 해변이 포메라니아. 독일과 플란드에 걸쳐있어. 저 바로 옆. 오른쪽이 프러시아.야. 그 위 해변이 리투아니아.고 바로 위가 리가만 라트비아 리보니안이야. 
저게 1300년대 초야. 
2백년 후에 프러시아 공작령.으로 저길 자리잡아. 알베르트 공작. 캬 이 장면 골때리. 이때 루터가 티나왔을때야. 루터가 훨 나이가 많아. 야이 리샊햐.  황제랑 교황 딱갈이짓 그만하고. 은제까지 이리 떠돌아댕길껴. 카톨릭에서 빠지고 프로테스탄트해. 글고 폴란드왕한테 깨갱하고 좀 쉬어. 
신의 한수여 저게. 해서 나온게 프러시아 킹덤이야. 저 프러시아.가 독일을 통일하는겨. 
지금 칼라닌그라드.가 달랑 러시아 땅이걸랑.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서.
저기가. 러시아 루쓰들 시작 핏줄 류릭이 7백년 하고 로마노프 왕조가 러시아 2월혁명으로 망할때. 저 로마노프왕조의 시작이 또한 저 프러시아야. 그리고 저기가 칸트의 칼라닌그라드.야
프랑스가 나폴레옹때메 고향 아작시오가 있는 그 섬. 을 이탈리아에 못줬듯이.
러시아도 저길 줄 수가 없는겨 폴란드든 리투애들애든.

하는 걍 그런줄 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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