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ttle of Göllheim was fought on 2 July 1298 between Albert I of Habsburgand Adolf of Nassau-Weilburg.
다음이 괼하임 전투. 아 이거 언제 다 하냐 닝기리조또.
웃긴게 머냐면. 이전의 그 듣보도 못한 전쟁이야기가 중요한 거걸랑 각각이. 헌데 한글로 된게. 없어 없어. 이게 웃긴겨. 이전의 마르흐펠트 전투. 없어 전혀.
짐이 검색능력이 후지서리 없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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걍 . 위키 영어. 어설프게 번역질 각각이 끊겨서리. 번역질 할라믄 고대로 다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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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유럽사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먼 쟤들의 문학 음악 미술 철학을 논하니. 모든 아트들이 저들 이야기에서 티나오는건데.
아 어제 간밤에. 단테 신곡 이야기 어떤 이가 테레비에서 썰푸는거 보다가 돌렸는데. 저도 민족의 얼 대민서리 사학자 해대지. 돈 버는듯 부럽더만.
이땅바닥엔 저따위 애들이 먹히는겨. 아 한심한 땅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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괼하임. 보름스 옆이야. 보름스 다이어트.에서 보름스 칙령. 루터 이단으로 파문한 그곳.
13세기 지나면서. 제국의 선제후들이 7명이걸랑. 이전 스와비아 바바리아 프랑코니아 작센 네 지역에서 황제 뽑다가. 7명이 돼. 세명은 대주교. 네명은 제후들. 저 대주교의 세곳이. 마인츠 트리어 쾰른. 저기 라인강이 슈바르츠발트 검은숲 경게 지나 꺽여 내려가면서 그 왼쪽 지역이야. 프랑스 접하는. 중지대에서 저지대 가는 길이야. 네명의 제후들은 보해미아 킹. 작센 브란덴부르크 팔라틴 의 영주들이야.
브란덴부르크.는 12세기 되서야 저 작센 너머 끝에 마크. 경계에 후작령을 세우는겨. 베를린.이 이때 생겨. 슬라브들 내쪽고 나중에 세우는거야.
저 세 대주교 땅. 그리고 팔라틴. 여기가 다 라인강 서쪽과 그 부근이야. 여기가 프랑코니아 지역과 그 부근인겨 서북쪽의.
아주 초기에 몇번 본 지도인데. 샤를마뉴가 통일할때 까지야. 엘베강 안넘어갈때.
작센 에 있던 프랑크들이 아이셀강 넘어와서리 프리지아 아래 플래미시 점령하고 처음 세우는게 아우스트라시아. 이게 서기 481년. 클로비스1세야. 프랑크의 살라딘족. 저게 나중에 베르됭 조약 하면서 4백년 후에 갈리는거야. 왼쪽은 로렌.으로 로타르가 갖고 오른쪽 부분이 루이.가 갖아. 저 오른쪽 독일영역을
프랑코니아. franconia 하는겨. 즉 프랑크족이 처음 세운땅이었어. 여기가 살라딘 족들의 중심이야 중세에.
그리고 고 아래가 왼쪽 스와비아. swabia. 오른쪽 아래가 바바리아. 프랑코니아 옆에가 튀링기아 thuringia 그 위가 작센. 나중에 엘베강 넘어서 브란덴부르크. 가 새로 티나오는거고.
저이름을 지금까지 쓰는겨. 계속 나와 저 단어들이.
그럴때. 저기서 보이는 아우스트라시아.의 쾰른. 그 아래가 마인츠. 왼쪽이 트리어.야. 여기가 세 대주교. 그리고 팔라틴백작. 할때 팔라틴 도시들이 라인강이 쾰른 가기전에 이 강 주위로 모여있는 곳이 팔라틴 이야. 스와비아 바로 접하는.
즉 저기가 7명 선제후 중에 네명이야. 저기가 핵심인겨. 나머지 세명이 바바리아가 넘어간 체코 보헤미아 킹. 그 위 작센에 브란덴 부르크. 일뿐이걸랑.
저기가 그 프랑크의 살라딘.애들이 작센의 오토1세들 계속 진압하면서 후에. 여기가 중심이 된 이유가. 작센 이전에 또한 여기가 클로비스의 시작이었걸랑. 해서 핵심중 핵심이 여기야. 저지역이 또한 카이사르.가 와서리 라인군단 만든 군사기지고. 그곳이 쾰른. 이고 본. 이야. 애초에 카이사르가 터를 잘 닦은거지. 흔히 들어본 프랑크푸르트.는 마인츠에서 라인강 건너서 있는 거고.
슈투트가르트.는 스와비아. 왼쪽 아래. 뮌헨은 바바리아. 오른쪽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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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때 말야. 저 괼하임 전투.는 합수부르크의 알베르트1세.와 나싸우의 아돌프. 가 붙는거걸랑.
이건 짧게 위키영어로 있지만. 이게 중요한 사건....이야 .
이게 참 재밌는건데.
저게 1298년. 이십년 전에 합스부르크의 루돌프.랑 보헤미아킹.이랑 마르흐펠트 전투.가 있었다 했잖아. 여서 듣보잡 합스부르크.가 역사에 등장하는겨.
다 1250년. 프리드리히2세 황제 죽고 나서의 자리 싸움이걸랑. 황제 경쟁자들이야.
거지 합스부르크.가 저기서 오스트리아 땅을 갖게돼. 알베르트.는 얘 자식이야.
아버지를 이어서리. 얘가 게르만의 왕. 로마의 왕. 타이틀인겨. 웬만하믄 그 집안에서 황제가 선출돼. 선제후들의 동의로. 개차반아니면.
헌데 알베르트1세가 전투중에 눈깔 하나를 잃어. 아이소켓. 어째 그로테스크 한겨. 성질도 드럽게 인상지워지는겨. 선제후들이 다시 다이어트 회의를 해서 얘를 짤라. 그리고 게르만의 왕으로 선출된 인간이 나싸우 백작 아돌프. 둘이 동갑이야.
나싸우 백작.
The House of Nassau is a diversified aristocratic dynasty in Europe. It is named after the lordship associated with Nassau Castle, located in present-day Nassau, Rhineland-Palatinate,
나싸우 가문. 나싸우. 지금 라인란트 팔라틴. 저 중세 팔라틴 이름 딴겨. 저지대인 본 쾰른 지나기 전의 라인강 부근의 지역. 여기에 나싸우 가 독일의 서쪽. 라인강의 동쪽에 있어.
얘들이 이때 오른쪽 튀링기아 땅을 넘보는겨.
선제후들이 저 나싸우의 아돌프.를 황제 후보 로 뽑았는데. 점점 이 나싸우 가문이 영향력이 쎄지는게 보여. 아래 독일 저지대도 갖고 가고. 오른쪽 튀링기아 까지.
다시 모여서리. 게르만 왕 타이틀을 박탈해.
이전에 짤린 애꾸눈 알베르트1세. 먼저 박탈당했잖아? 이때는 꾹 참았어. 사람좋은 인상 해가면서. 이때 웬수는 당근 저 아돌프.인겨 나싸우의. 그러다 얘도 박탈당했네. 이때 그 분노가 터져서리 바로 다음달에 처들어가는겨. 아주 마주보면서 일대일로 싸워. 칼로 푹푹 찔렀나봐 전장에서. 그게 저 괼하임 전투.인데.
그리고 그래서. 선제후들이 무셔무셔 하민서리 다시 이 합스부르크의 애꾸눈 알베르트1세를 게르만의 왕으로 재추대를 하는겨.
헌데 알베르트1세가 인상과 달리 민들에게 인기가 좋았어. 유대인들도 다 보호해줘. 교황에게도 잘해. 교황도 인정하고 대관식을 약속했어. 그러면서 자기 집안 세력을 넓혀. 자기 아들을 핏줄끊긴 보헤미아 왕자리도 넣어. 막막 영지마다 결혼에 해서 합스부르크가 이때 확 서는 순간 이었걸랑.
헌데. 저때 땅 못받은 핏줄이 당근 나오걸랑. 바로 동생이야. 그 동생의 아들. 즉 조카.
John Parricida (German: Johann Parricida) or John the Parricide (see: Parricide), also called John of Swabia (Johann von Schwaben), (ca. 1290 – 13 December 1312/13) was the son of the Habsburg duke Rudolf II of Austria.
파리시다 존. 존속살해범 존. 얘가 저 병딱이 사촌은 보헤미아 왕도 하는데. 우리네는 이거 있던 땅도 못받게 생겼네. 강가에서 암살을 하는겨.
얘때메 합스부르크.가 2백년 동안 걍 깨갱하다가. 카를 5세까지 간겨.
.문제는 저 나싸우.의 아돌프. 괼하임 전투에서 애꾸눈 알베르트에게 죽은 백작.
쉼.
이 나싸우가 나중에 어드래 복수를 하냐면 말야. 복수 하면 좀 쎈거고. 삼백년 후에 복수를 하는겨. 네덜란드 라는 이름으로.
William I, Prince of Orange (24 April 1533 – 10 July 1584), also known as William the Silent or William the Taciturn (translated from Dutch: Willem de Zwijger),[1][2] or more commonly known as William of Orange(Dutch: Willem van Oranje), was the main leader of the Dutch Revoltagainst the Spanish Habsburgs that set off the Eighty Years' War (1568–1648) and resulted in the formal independence of the United Provinces in 1581.
윌리엄 1세. 오렌지 군주. 오라네 공. 이사람이 저 나싸우 가문 핏줄이걸랑.
나싸우 가문이 삼백년 후에 말야. 부르고뉴 이전 썰한 그 저지대. 부르고뉴의 용감공부터 겁없공 현명공 해서 다시 용감공 샤를까지 오면서 일명 부르고뉴네덜란드. 하게 되걸랑.
나싸우 가문이. 저 부르고뉴 네덜란드에서 부르고뉴 가문의 행정을 얘들이 맡는겨. 그러면서 저 지역의 실세가 돼. 딸 마리가 합스부르크 가면서 합스부르크 네덜란드.가 될때의 실세는 나싸우 가문인겨. 얘들이 합스부르크의 수발을 드는겨 저기서.
그러다가 저 윌리엄 1세의 윗대 에서. 나싸우의 백작이 결혼을 하는데. 프랑스 남부의 오렌지. 오라네 영지.를 받는 딸이랑 결혼을 해. 아들이 없어서리 곧 이땅도 나싸우 백작것이 되는데. 이 사람이 또한 자식이 없는겨. 후계자를 저 윌리엄1세 를 지정하고 죽어.
이 윌리엄 1세.가 일명 80년 전쟁. 네덜란드 독립전쟁을 하는 리더야. 합스부르크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네덜란드를 세우는 시작.이 이 나싸우 의 윌리엄. 조용공 침묵공 이야.
합스부르크.가 저 윌리엄의 목에 현상금을 걸어. 오직 돈 때문에 접근을 하는겨 귀족이. 같은 편인양. 총으로 암살돼. 총으로 암살된 인간의 시작....은 아냐 이전에도 있었어 한명이. 거의 시작인데. 해서 그 암살범은 바로 잡혀서리 조오오온나게 끔찍하게 죽여 네덜란드 사람들이. 윌리엄 죽고 몇년 지나서 잠시 휴전하는거고.
저 윌리엄이 네덜란드의 아부지야.
나중에 썰해. 아 저때까지 언제가냐 이거.
하튼 애꾸 알베르트에 죽은 나싸우의 아돌프의 복수는 저렇게 삼백년 후에 거창하게 해줘..
야 이따위 얘긴 짐이 첨으로다가 썰하는겨 세상첨으로다가. 아 이젠 유럽사도 쟤들에게 썰해줘야 하는데..
하튼 괼하임 전투.가 그런 전투여 거창하게 보믄..
아 13세기 끝났다.
The Battle of the Golden Spurs (Dutch: Guldensporenslag; French: Bataille des éperons d'or), also known as the Battle of Courtrai, was fought between the Kingdom of France and the County of Flanders at Kortrijk (Courtrai in French) in modern-day Belgium on 11 July 1302.
골든 스퍼 전투. 스퍼. 가 박차. 저땐 대부분 기사들의 전투가 많걸랑. 기사가 발 뒷굽에 박차.를 양신발에 달아. 그 박차들이 금으로 되었나부지. 이걸 나중에 회수해보니 500 쌍이었대.
이전에 썰했던 프랑스 필리프4세와 플랑드르 의 전투. 에서 한 챕터야. 끝은 프랑스가 이겼는데. 끝나기 전에 한번 플랑드르가 이긴겨. 마무리는 프랑스가 이긴거지만.
플랑드르에서. 즉 벨기에 애들이 뿌듯해한다는거지 지금도. 독립운동 의 시작이 저거란겨. 저때는 프랑스를 이긴겨. 해서리 저 날을 기념한대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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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4–1310 The Swedish brother's fe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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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훼덴 형제들 전쟁. 이건 왜 없냐.
Birger[1] (Swedish: Birger Magnusson; 1280 – 31 May 1321) was King of Sweden from 1290 to 1318.
Eric Magnusson (1282–1318) was a Swedish prince, Duke of Svealand, Södermanland, Dalsland, Västergötland, Värmland and North Halland and heir to the throne of Sweden. He was the father of King Magnus who became king of both Norway and Sweden.[1]
Valdemar Magnusson (c.after 1282 – 1318) was a Swedish prince, heir to the throne of Sweden, and Duke of Finland.
Northern countries during the 13th and early 14th centuries Norway Sweden 1330s–1350s Denmark Conquered by Denmark in 1219 Livonia before 1343
13세기 에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당시 덴마크는 스웨덴 땅 주변까지 땅이고. 지금은 아니고.
이전 아웃로 전쟁. 무법자들의 전쟁.은 덴마크에서 왕 죽이고 간 암살자들이 노르웨이에 가고. 얘들이 덴마크랑 싸우는거고. 여기서 덴마크가 지고 할란드. 할랜드 땅. 스웨덴의 서남 주변.을 노르웨이에 주는거고. 이게 스웨덴에 나중 넘어오고 결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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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스웨덴. 비르게르 에릭 발데마르. 삼형제. 첫째 비르게르. 가 스웨덴 왕이야. 헌데 좀 띨빵하고 욕심만 많아. 둘째 에릭이 머리 좋고 사회성도 좋아. 셋째도 에릭 편이야.
왕이 두 형제가 두려운겨. 서약서도 쓰게하고 멀리하는겨. 두 형제가 합쳐서 형을 몰아내. 왕이 맞은편 덴마크왕이랑 처남매부간이야. 덴마크 왕이 중재를 서. 옆 노르웨이 왕은 두 형제편이야.
왕과 형제 싸움에 덴마크 노르웨이가 낀겨.
형은 명목상 왕인거고 실세는 둘째 에릭. 에릭은 노르웨이 공주랑 결혼해.
형이 두 형제를 초대해. 화해하자 하겄지.
세상에서 가장 쓰잘덱 없는게. 화해. 사랑. 이따위 말에 쏘그믄 안돼.
형이 화해하자니까 간거지 두 아우들이. 그 이후 행적을 모르는겨. 부인들 두명이 모여. 주교도 불러. 사람들을 모으는거지.
죽은걸 확인하고. 형인 왕 비르게르.를 쫓아내. 덴마크로 도망가. 남은 왕자는 처형당해.
그리고 왕자리에 오르는게 에릭의 아들. 마그누스 4세야.
엄마가 노르웨이 공주인데. 여기도 아들이 끊겼어. 스웨덴 왕이 노르웨이 왕이 같이 되는겨.
Magnus IV (April or May 1316 – 1 December 1374; Swedish Magnus Eriksson) was King of Sweden from 1319 to 1364, King of Norway as Magnus VII (including Iceland and Greenland) from 1319 to 1343,
이때부터. 노르웨이.가 스웨덴이랑 유니온이 돼.
유니온. 이란건. 합치는건데. 대빵만 같거나 같이 하는거고. 법체제는 각 나라 법대로 하는거고.
저때부터 다음은 칼마르 유니온.에서리 덴마크까지 끼는거고. 이게 2백년 가고. 이후 스웨덴은 빠져서리 잠시 폴란드 리투아니아랑 유니온 하고. 또 갈라서고.
핀란드는 1800년까지 스웨덴 속주고. 역사 없던 곳이고 핀란드는.
폴란드 리투아니아.는 아까비인게 말야. 나중에 힘없어서리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에 분할 되지만. 저때 스웨덴이랑 같이 오래 유니온 했으믄 저리 쉽게 안당했을텐데말야. 넘어가고.
The Battle of Lucka occurred on 31 May 1307 near the village of Lucka. The settlement was first mentioned in 1320, but had already existed for around 700 years before that. Lucka is located in the Altenburger Land district of Thuringia.
루카전투. 아돌프 이긴 알베르트1세가. 튀링기아땅 영주. 베틴가문과의 전쟁. 베틴이 이기고 합스부르크의 알베르트 짜지고. 2년후 조카한테 암살당하고.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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