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ottish–Norwegian War was a conflict from 1262 to 1266.[3] The conflict arose because of disagreement over the ownership of the Hebrides. The war contained only skirmishes and feuds between the kings. The only major battle was the indecisive Battle of Largs
스콧랜드 노르웨이 전쟁. 헤브리디즈. 섬들 점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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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들 그리스도.는 이전 썰. 잉글랜드가 캔터베리의 아우그스틴.이 캔터베리 온게 서기 600년
In 597, Augustine and his companions landed in Kent
여긴 앵글로 색슨 애들이 공인하고. 나중 에덜스탄은 여기서 대관식 하는거고.
Tradition maintains that in A.D. 432, St. Patrick arrived on the island and, in the years that followed, worked to convert the Irish to Christianity. St Patrick's Confession, in Latin, written by him is the earliest Irish historical document.
아일랜드.는 백년 이상 빨라. 여긴 자잘한 킹덤들이라 페이건 속에서 그리스도가 자리잡으려 하는거고.
Scotland was largely converted to Christianity by Irish-Scots missions associated with figures such as St Columba, from the fifth to the seventh centuries.
스콧랜드.는 아일랜드에서 전해주었대.오육세기. 잉글랜드보다 훨 빠르고.
노르웨이.는 스웨덴 해서리 다 서기 천년.에야 오는거고. 덴마크도 이때야 그리스도는.
핀란드는. 스웨덴이 속주해서리 2백년정도 후에야 그리스도가 돼. 아래 리보니안 보다는 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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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그리스도가 들어갔는가. 이게 제일 중요해. 문명의 시작이야 이게. 지금 문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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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 불교 이슬람.은 제대로된 문명을 만들지 못했어. 제대로된 문명이라함은. 인문주의야. 그것에 의한 계몽주의에 산업혁명이야.
쟤들은 산업혁명을 만들지 못했어. 그냥 이전 고대문명의 반복질 이상은 없어.
지금 문명이 과거 고대문명과 다른건 산업혁명이야. 그리스도는 로마와 섞여서 이 산업혁명을 만든거야. 아 음청난 짐만의 통찰이신거지.
유교.는 이건 조폭들의. 문명도 아니고 야만인 중에서 제일 허섭한거고. 이건 종교도 신앙도 아냐. 아프리카 원주민애들 추장놀이도 못돼.
구한말때 그래 외국인애가. 아니 초가집들이라니. 아프리카 원주민 집들도 이보다 낫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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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라.가 구한말에 쓴 책에. 여긴 종교도 없는 곳이네. 하니 부들부들. 유교의 위대한 조선에 종교가 없다니.
유교 경전 제대로 볼 줄 아는 단 하나 없는 나라.
사마천 사기가 전세계 사가들중에 음청나다고 자뻑질 하는 의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는 나라
사마천 의 사기. 하나 조차 제대로 번역 되지 않은 나라.
그 이전에 중국사 잠깐 언급하다 말았는데 말야. 거 들어가다 보믄. 애들 번역 하나 제대로 된게 없어 . 다 일일이 찾아서 확인하다 보믄. 번역 개판에. 삼국지 이야기도 다 허섭한 전달.
이땅바닥엔 제대로 된 들이. 특히 이 인문학에 말야 단 하나가 없어. 자뻑질 하지.
실재적인 애들이 없어. 망상. 저 시사진행하는 들도 저거 얼마나 멍청한 개무식한 들이냐 저것들. 머 제대로 된 책을 읽은 가 있나. 어떤 는 허섭 신문만 단편적으로 보믄서리 헌법 조무사 질 . 와 저따위 개무시기 말들이 베스트 셀러에 또 공중파 시사를 진행을 한대요.
전문대 나온 그 수준어쩌고 하민서리 학력 차별 이 아니라. 몰라도 너무도 모르는 분들이 이땅바닥의 정의 놀이 민주 놀이의 첨병인게. 슬픈거야 이게. 얼마나 지식인 들이 들이면 저따위 개무시기 구데기 들이 저따위로 설치냔 말이지.
옴진리교 그앤 걍 수십명 죽이고 수천명 부상질하고 끝나지 저따위 들은 말야. 수백만명을 세뇌질 시키면서리 허상만 좇고 어설픈 분노만 불러일으키면서리 진영놀이에 분열만 조장하걸랑 저것들은. 저게 결국 이땅바닥 수천만명을 죽이는겨 결국은.
저따위 들이 이념놀이의 사도님들이셔. 얼마나 개무식한 악마들이냐 저것들이.
헌데 저따위 들이 통하는게. 이따위 땅바닥이나. 저 베네수엘라 같은 중남미 야 저게.
어찌할 수 없는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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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너무 무식한 나라야 이나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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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ngdom of the Isles about the year 1100
저 스콧랜드 주변의 섬들을. 크게 네개로 나눠.
노로드. 소도르. 노르웨이어야. 북쪽 남쪽. 북쪽엔 셔틀랜드 섬들. 오크니 섬들. 남쪽엔 밖 헤브리디즈. 안 헤브리디즈. 그리고 만 섬. isle of Man
저기가 스콧족 아이리쉬족. 노르족.들이 섞여서 사는겨. 노르족은 게르만. 스콧 아이리쉬는 켈트. 달라 서로.
저기가 서기 천년 전후에는 바이킹 노르족들이 점령한겨.
The Kingdom of the Isles comprised the Hebrides, the islands of the Firth of Clyde and the Isle of Man from the 9th to the 13th centuries AD.
저 지도음 섬들의 왕국.이란건 9세기에서 13세기.인데 주로 노르족 바이킹들이 주인이야. 저 킹덤엔 북쪽의 셔틀랜드 오크니 군도들은 제외야. 이 북쪽은 저때 다른 노르족들의 땅이야.
즉 저땐 다 노르족 바이킹들 세장인겨 저 위도. 만섬(맨섬) 조차도 노르족 땅이야.
저걸 스콧랜드 애들이 뺏는건지 돌려받는건지. 하튼 저긴 바이킹 세상이었어. 저걸 뺏는게 13세기의 스콧 노르웨이 전쟁이야.
스콧이나 노르웨이나 저때 킹덤이야. 9세기에 킹덤 시작한겨 서로. 문명을 시작한겨 그제야.
저걸 스콧이 이기고. 저 스콧랜드 왼쪽의 헤브리디즈 섬들 안쪽 바깥쪽과 만섬까지 다 뺏어. 그리고 저 북쪽의 셔틀랜드 섬들 오크니 섬들.은 노르웨이 것으로 인정하는겨.
Scottish sovereignty over the Hebrides and Isle of Man. Scotland confirms Norwegian sovereignty over Shetland and Orkney.
헌데 지금 저 두 섬군들도 스콧랜드 땅이걸랑.
저 전쟁 후 2백년 후에.
In 1468 Orkney was pledged by Christian I, in his capacity as King of Norway, as security against the payment of the dowry of his daughter Margaret, betrothed to James III of Scotland. However the money was never paid, and Orkney was annexed by the Kingdom of Scotland in 1472.
노르웨이 왕의 딸이 스콧랜드에 시집오는겨. 중세에 딸 시집 보낼때 결혼 지참금을 다우리. dowry. 라해. 영지를 같이 보내. 이게 은근 여자쪽에서 손해보는 듯 해도. 달리보면 여자가 가면서 저 땅이 자기들 핏줄 땅이 또한 되는거걸랑. 딸이 주인이 되는 경우가 또 흔해.
저때 지참금을 후불로 준다고 하는겨 노르웨이 왕이. 담보로다가 저 오크니섬들 셔틀랜드섬들을 잡는겨. 헌데 돈을 안줘. 스콧랜드에서 저땅을 대신 받아. 그 이후 저 노로드 북쪽 섬들이 스콧랜드 땅이 된겨.
저때 노르웨이.는 왕이 노르웨이 왕이자 덴마크 스웨덴 왕이야. 칼마르 유니온 시대야. 덴마크 왕이 주도걸랑. 저 변방의 섬들. 이전 노르웨이가 갖고 있는 저 섬들이 덴마크왕이자 노르웨이왕이 관시미가 없는겨.
스콧랜드 입장에선 고마운겨 그래서.
쉼.
저 다우리. 라는 신부 지참금은. 이때도 계약이 있어. 아키탄의 엘레오노르가 꼬마일때 루이7세한테 시집가는데 얘가 커서 아들을 낳아서리 그 아들에게 주는 거걸랑. 그때까진 엘레오노르 소유야 아키탄은. 딸만 둘 낳아. 이혼했어. 아들 안낳았으니 다시 자기가 갖고 가는겨.
아 이거 언제 다하냐. 괜히 저 목록을 봐서리. 헌데 안할라니 섭하고.
저걸 대충 보믄 쟤덜이 걍 다보여. 헌데 저걸 제대로 본 한글 이야기가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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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cond Barons' War (1264–1267) was a civil war in England between the forces of a number of barons led by Simon de Montfort against the royalist forces of King Henry III, led initially by the king himself and later by his son, the future King Edward I.
2차 배론들. 남작들의 전쟁. 이전 썰. 넘어가.
The Battle of Isaszeg was fought between King Béla IV of Hungary and his son, Stephen, who served as Junior King and Duke of Transylvania. Stephen defeated his father's army in the subsequent peace Béla was obliged to cede the government of the Eastern parts of his kingdom again to his son.
이사스제크 전투. 부다페스트 근처야. 헝가리 왕 벨라.와 그 자식 스테펜.의 전쟁.
이때 헝가리는 강국이야. 아래 크로아티아.의 왕을 겸해. 벨라.는 왕 계승할때 자기 아부지랑도 싸워. 아부지가 장남 벨라를 싫어했어. 그래도 계승해. 똑같이 자기 아들 스테펜이 싫어. 오히려 딸이랑 막내를 편애해.
벨라 왕 일때 몽골애들이 쳐들어와. 이때 자그레브. 크로아티아로 피신도 하는겨.
나중 스테펜의 아들일때 몽골이 또 처들어온겨. 이때 숫적 열세인 헝가리가 오히려 몽고군들을 궤멸시켜.
하튼 스테펜이 아빠 이기고 협정 맺고. 그러다 아빠 죽고 왕위 계승하고.
Valdemar (English: Waldemar; Swedish: Valdemar Birgersson; 1239 – 26 December 1302) was King of Sweden from 1250–1275.
Valdemar was deposed by his younger brother, Magnus after the Battle of Hova in Tiveden June 14, 1275.
발데마르 전쟁. 스웨덴의 왕이야. 이전 왕이 아들없이 죽어. 투표해서 딸의 자식이 왕이돼. 꼬마야. 섭정. 나중에 커서 얘 동생 마그누스.가 반기를 드는겨. 한살 어려. 25세.
형 발데마르.를 안죽이고 걍 편안한 감옥에서 시녀랑 여생을 보내게 해.
이때 저 동생 마그누스.가 쿠데타로 왕이 될때. 지원군이 덴마크야. 이때부터 스웨덴은 덴마크 힘에 들어 가는겨. 얘 손자부터 칼마르 유니온 체제.로 들어가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가 합치는겨. 덴마크 가 대빵이야. 이 체제는 한자동맹에 맞서기 위해서 저 세나라가 뭉친거야 명분은.
The 6000-mark war (Swedish: 6000-markskriget, Danish: 6000-marks krigen) was a war between Denmark and Sweden which took place from 1276 to 1278
6천 마르크 전쟁. 저때 마그누스 도와준 덴마크.가 너 왕 되믄 6천마르크 준다는 약속 안지키냐. 마그누스.는 그딴 약속 안했다. 오히려 마그누스 가 덴마크 땅에 처들어가. 합의해. 깎아줘. 4천마르크로.
La Guerra de la Navarrería fue un conflicto que se produjo en el reino de Navarraen 1276, cuando la dinastía Capeta impuso un régimen tutelado desde el reino de Francia sin el respeto a los usos y costumbres del reino que reclamaba la nobleza navarra.
나바라 전쟁. 1276년. 이건 왜 스페니쉬 링크냐. 프랑스 카페왕조가 쳐들어간건데. 나바르 귀족들과 카스티야 지원을 프랑스가 이겨.
저 나바라 왕국. 이게 또 웃긴건데.
Kingdom of Navarre in 1400 (dark green
1400년 지도. 저 나바라. 나바르.는 카스티야.랑 아라곤 에 낑긴 짜그마한 킹덤이야. 저때 아직 그라나다 무슬림들이 있을때고 바로 위가 가스코니.야 아직 잉글랜드가 버티고 있는거지.
저기가. 바스크야. 바스크. 음청난 바스크. 피카소의 게르니카. 가 저기야. 지도상 나바르 바로 왼쪽에 있어.
바스크.는 켈트도 게르만도 아냐. 별도 언어족이야. 전혀 달라.
나중에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도가 스페인으로 통일할때도 저기는 안 끼는겨. 저 작은 나라가 버텨. 여기에 또한 오는게 그 체사레 보르자.야 이탈리아의. 보르자 가 교황아비 랑 같이 병에 걸려서리 아비 죽고. 자긴 꼼짝도 못해서리 바로 감옥생활을 저기서 하는겨. 탈출해서 나바라 왕국이 버틸때 같이 낑겨서 싸우다 죽는 체사레 보르자. 아 참 이 인간들 이야긴 정말 소설 이상인데. 넘어가고.
저 나바라 왕국 바로 남쪽이 누만티아.야 고대 로마가 성을 완전히 허무는게 세개야. 아테네는 변절해서 허물고. 카르타고도 그래서 허물고 아주 불바다로 폐허를 만들어. 그리고 그 누만티아야. 바스크 인듯 아닌듯 한 누만티아인. 여긴 다음에 고딕애들이 로마 망하면서 들어올때도 제일 늦게 고딕 애들이 점령한 곳이야. 그만큼 쎄. 이 바스크. 나바라.
.저 나바라 왕국.의 3백년 왕조 핏줄이 끊긴겨. 아들이 없어.
Sancho VII (Basque: Antso VII.a;
c.
1157 - 7 April 1234)[1] called the Strong (Basque: Azkarra, Spanish: el Fuerte) was King of Navarre from 1194 until his death in 1234.
산초 7세. 오른발에 하지정맥류. 궤양 울서 란 건 세포가 썩는겨. 염증. 바세린 발라야 했을낀데. 해서리 아퍼서 시집간 여동생이 돌아와. 이 여자가 샴페인 백작부인이야. 루이7세랑 엘레오노르가 십자군 가게 되는 그 샴페인. 나중 배런들이 반란하는 또 그 샴페인.
산초가 죽어. 이 샴페인땅에 시집갔던 여동생의 아들이 여길 계승하는겨. 프랑스가 이때 여길 개입하기 시작해.
Theobald I (French: Thibaut, Spanish: Teobaldo; 30 May 1201 – 8 July 1253), also called the Troubadour and the Posthumous, was Count of Champagne (as Theobald IV) from birth and King of Navarre from 1234. He initiated the Barons' Crusade, was famous as a trouvère, and was the first Frenchman to rule Navarre.
얘가 나바라의 티보(띠오볼드) 1세.야 . 샴페인 백작이었어. 샴페인에선 티보 4세인겨. 얘 아버지 3세는 엘레오노르가 루이에게서 낳은 딸이랑 결혼한거고. 그 위의 위 티보 2세가 이전 나온 엘레오노르.가 자기 여동생을 백작부인 시킬라고. 이전 백작부인 이혼시켜서리. 샴페인전쟁을 해서리. 마을 사람들 천여명을 교회에서 타 죽어서리. 십자군 간다 했을때. 그 이혼당한 백작부인이 이 티보 2세의 여동생이걸랑. 해서 루이랑 전쟁한거걸랑. 그 손자가 루이 딸이랑 결혼하고.
루이7세가 회개를 이유로 십자군 갈때 저 샴페인백작 아들이 승계하고 같이가.
저 샴페인 백작이 어쨋거나 프랑스 왕가.랑 사이가 좋을 수가 없어. 엘레오노르.가 불붙이고 잉글랜드로 간건데.
해서 저 티보 4세 백작이 루이아들 8세에게 또 대들어. 유대인 이자 문제로. 얘가 프랑스 왕권을 위협할 정도야. 아 헌데 얘가. 나바라 왕국을 먹은겨. 엄마 때메. 1234년.
이때부터 프랑스 혁명까지. 6백년이 프랑스 땅이야 이게. 간혹 카스티야 영향에 들어가지만. 천년의 왕국이 뒤 6백년이 프랑스야.
저 나바르의 티보의 다음 자식이. 성루이9세의 딸과 결혼을 해. 사위가 되어서리, 장인 성루이랑 같이 십자군 가. 성루가 7차 가서 무슬림 노예들에게 인질. 템플에 돈빌려서 나오고. 복수한답시고 8차.에 이번엔 튀니지로 가서 죽어. 이때 나바라의 저 사위 디티보는 시칠리아섬에서 죽어.
동생이 나바라 왕 되고 죽고 딸이 받고. 여자들끼리 버틸수 가 없는겨. 여왕이랑 엄마가 프랑스 왕에게 구원을 청해. 그 프랑스에서 병력을 끌고 쳐들어가는겨 저 나바르 전쟁. 이라는게.
그리고 프랑스 왕 필리프 4세랑 나바르의 여왕이랑 결혼하면서. 프랑스 왕가 속으로 드가는겨 이 나바라 왕국은.
Coat of Arms(1589–1790) of France
프랑스의 군대 문장. 앙리4세부터인 부르봉왕가지만. 카페.의 방계걸랑. 저 카페의 문장이 플레르 들 뤼 라는 백합문양.이 프랑스야. 여기에 저 빨간게 나바라 왕국의 헤럴드리야. 저걸 같이 든거지.
.언제다하냐이거.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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