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 과 오소독시.
이것도 구분하는게 애매하고 모호하게 설명하는데.
Augustine wrote in On True Religion: “Religion is to be sought . . . only among those who are called Catholic or orthodox Christians, that is, guardians of truth and followers of right.” [5] Over time, the Western Church gradually identified with the "Catholic" label, and people of Western Europe gradually associated the "Orthodox" label with the Eastern Church (in some languages the "Catholic" label is not necessarily identified with the Western Church). This was in note of the fact that both Catholic and Orthodox were in use as ecclesiastical adjectives as early as the 2nd and 4th centuries respectively.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가 서기 4백년 지나는 사람이야. 이사람의 글에. 카톨릭 또는 오소독스 라는 그리스도 둘뿐이어야 한다. 하걸랑.
즉 이미 저때 교회가 막막 로마 제국에 서는겨. 교회 이름이 어디는 카톨릭. 어디는 오소독스. 라고 지들 라벨을 붙였던겨 저게.
해서 이전에 종교분리. 썰할때. 1054 그레이트 스키즘. 동서교회 분리 전에.
에페수스 공의회. 431년. 에서 네스토리우스파. 나오고 앗시리아교회 가 분리가 되고
칼케돈 공의회. 451년. 에서 오리엔탈 오소독시. 가 분리되서 나와. 알렉산드리아 콥틱교회. 안티오키아 아르메니아 에티오피아 교회들이 이리 가.
이 오리엔탈 오소독시.는 동양 정교회.로 번역을 해. 또한 삼위일체 논쟁의 이음이야. 헌데 같은 삼위일체.인데 거기에 이견이 있어.
Miaphysitism 미아퓌시티즘. 으로 보는데. 넘어가고.
그리고서리 1054에 동서교회.에서 서쪽은 카톨릭. 동쪽은 오소독스. 란 말을 갖고 가.
오소독스.
Greek orthos ("straight", "correct", "true", "right") and doxa ("common belief", from the ancient verb δοκέω-δοκῶ which is translated "to believe", "to think", "to consider", "to imagine", "to assume").[39]
진짜 잣대. 리얼한 진짜 그리스도의 법을 믿음. 이란 거지.
카톨릭 이란 말 이전 썰 넘어가고.
해서리 신약이 코덱스로 나오고 서기 백년 이후에. 이미 교회들이 설때 라벨링은 카톨릭. 이나 오소독스. 로 막막 하는데. 동쪽이 먼저걸랑 막막 나오는게. 저 단어들을 혼용해서 쓰는데. 서로 막막 자기들이 진짜 그리스도 해댐시 특히나 오소독스.란 말을 많이 쓰겄지.
그러다가. 오소독스.는 동쪽애들이 주로 많이 썼나보지. 해서리 이쪽은 오쏘독스 교회. 오소톡스 카톨릭 해. The Eastern Orthodox Church,[1][2] officially the Orthodox Catholic Church,[3]
오피셜로 오소독스 카톨릭 교회. 이걸 동방 정교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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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4에 갑자기 막 분리 된게 아니라. 이전 썰했듯이. 로마.에서 우기는겨. 자기들이 최고 대빵이라고. 헌데 동쪽 비잔틴이 실세걸랑. first among equals 먼 니덜이 최고냐. 걍 똑같은 모든 교회들 중에 처음. 이란 딱지로 만족해. 걍 다 똑같어 니덜이나 딴 교회나.
저걸 5백년 한겨. 저러다가 분리가 걍 되는거고. 로마주교. 비숍. 에 대한 입장.이 가장 큰겨. 다른 걸 떠나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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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cond) Battle of Bornhöved took place on 22 July 1227 near Bornhöved in Holstein. Count Adolf IV of Schauenburg and Holstein — leading an army consisting of troops from the cities of Lübeck and Hamburg, about 1000 Dithmarsians and combined troops of Holstein next to various Northern German nobles — defeated King Valdemar II of Denmark and the Welf Otto the Child.
보른회페트 전투. 덴마크 반도 아래 모가지.가 홀슈타인. 이야. 바로 위가 슐레스비히. 이고. 여긴 독일땅 관할이야. 덴마크 킹덤이랑 국경 분쟁 하는거지. 홀슈타인이 이겨.
이걸 이겨서리. 신성로마 땅이 아이더 강을 넘어가서리 슐레스비히.까지 가는겨.
The territory has been divided between the two countries since 1920, with Northern Schleswig in Denmark and Southern Schleswig in Germany. The region is also called Sleswick in English.
저 홀슈타인 위.와 덴마크 아래. 에 슐레스비히.는 1920년에 나뉘서리 이때부터 북은 덴마크땅 남은 독일땅이 된겨. 분단국가야 . 슐레스비히.
The Friso-Drentic war was an assault by a Frisian army under the command of the Wilbrand van Oldenburg, Bishop of Utrecht, on the province of Drenthe which lasted from 1230 until 1233. It was part of a series of wars between the Drenthe province and the bishopric of Utrecht.
프리소 드렌틱 전쟁. 프리지안. 네덜란드 북부. 우트레히트땅 주교. 랑 드렌테땅 영주랑 전투.
The Bishopric of Utrecht (1024–1528). 우트레히트. 프리지아땅에 있는 지역인데. 비숍릭. 비숍이 영주이자 주교야. 이걸 비숍릭. 즉 이땅의 법은 교회법이 우선이야. Prince-Bishopric of Utrecht 프린스 비숍릭. 이야.
저건. 왕핏줄 쎈에가 사제가 되서 받는 경우. 또는 사제 중에 기여도 오래되고 음청난 사제가 하사받은 땅을 황제나 왕이 주는 겨. 여긴 지금 대주교 대관구야 네덜란드의.
초기엔 저리 옆에 영주랑 쌈질 하는겨. 비숍 주교가 전투에서 죽어. 복수전. 영주를 초대해서 암살을 해. 또 싸워. 나중에 드렌테 영주가 수녀원.을 세워줘. 화해하는거지.
A principality (or princedom) can either be a monarchical feudatory or a sovereign state, ruled or reigned over by a monarch with the title of prince or by a monarch with another title within the generic use of the term prince.
프린시팰리티. 란 것도 자주 보여. 이건 왕핏줄중에서 쎈애가 킹덤의 왕은 못하고 따로 받아서 지가 다스리는 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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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ol conquests of Kingdom of Georgia, which at that time consisted of Georgia proper, Armenia, and much of the Caucasus, involved multiple invasions and large-scale raids throughout the 13th century.
또 조지아. 아 조지아 눈물나. 흑해 옆에 그 조지아. 몽골애들한테 다 처먹혔어. 이때 아사신. 마약피우면서 암살하는 애들. 어새신의 조상들.이 다 궤멸되었대. 칭기스칸은 이 아사신이랑 친했다는둥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둥 했는데.
The Teltow and Magdeburg Wars were fought between 1239 and 1245 over possession of Barnim and Teltow in the present-day federal German state of Brandenburg. They took place in the 13th century during the course of the Eastern German Expansion.
텔토브 와 마그데부르크 전쟁. 브란덴부르크. 작센 넘어서리 계속 발틱해 쪽으로 확장하는겨. 엘베강 넘어 오데르강 까지. 여긴
Margraviate 마그레비에이트. 국경을 지키는 애들.을 임명해. 카운트.가 아냐. 후작이라 해. 얘들끼리 서로 싸우는겨. 이기는 후작놈이 더 많은 땅 갖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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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aintonge War was a feudal dynastic encounter that occurred in 1242 and 1243 between forces of Louis IX of France, Alphonse of Poitersand those of Henry III of England, Hugh X of Lusignan, and Raymond VII of Toulouse. Saintonge is the region around Saintes in the centre-west of France in which most of the war occurred.
생통주 전쟁. 아키탄땅이야. 잉글랜드에서 뺏은. 생통주 사람들이 프랑스에 반기를 드는거지. 잉글랜드 가 지원해주고. 성루이는 십자군 가고싶어서리 대충 하고 가. 백년전쟁 전에 아래 가스코니 땅으로 한번 더 붙어 잉글랜드 프랑스는.
나중에 하자.
Christ Pantocrator from Saint Catherine's Monastery in Sin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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