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lbigensian Crusade or the Cathar Crusade (1209–1229; FrenchCroisade des albigeoisOccitanCrosada dels albigeses) was a 20-year military campaign initiated by Pope Innocent III to eliminate Catharism in Languedoc, in southern France.

 

Cathars being expelled from Carcassonne in 1209

 

알비젠시언 십자군. 알비 십자군 카타르 십자군. 
십자군 원정이 레반트 만 가는게 아니라, 이단으로 규정된 곳을 치거나 그리스도화 안된 북쪽 저지대 가는 것도 다 십자군 원정이야. 리보니안 십자군.이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이듯이.
카타르파.야 이전 썰. 폴리시언. 사도바울.의 원초적 순결을 따르자는겨. 이들을 받은게 카타르파야. 이 폴리시언.이 아르메니아 에서 시작해서리 7세기에. 비잔틴 지나서 유럽에 퍼지는겨. 13세기에. 네덜란드 땅까지 가서리 프랑스 남부 알비.땅에 까지 온겨.
루터 이전에 이들이 먼저 한겨. 
아르메니아.는 이전 봤듯이. 지저스 크라이스트 랑 아르메니아에 있던 왕이랑 편지도 주고받아. 아르메니아.가 로마 보다 먼저 기독교를 공인한 곳이야. 그 역사가 있는겨 여기가. 

해서 이미 독일 저지대.나 저 프랑스 남부.나 루터를 받아들일 토양이 3백년 전에 된겨. 해서 루터와 칼뱅이 자리잡았을 뿐이야. 저들에게 감사해야해.

At least 200,000[1] to at most 1,000,000[2] Catharskilled



2십만에서 1백만을 죽여. 대학살이지. 
저 알비 십자군에서 도미니코 수도회.가 생기는겨. 저들 교화한다고. 도미니코.는 스페인 사제가 프랑스에 처음 만든거고.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먼저 생겼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는 이태리의 부자 상인의 자식이고. 걍 부유하게 살다가 거지 보고 먼가 깨달아서리 그때부터 시작한거고. 즉 아무것도 아닌 레이맨. 평신도야. 도미니코 랑 전혀 달라 그 시작이.
이들은 멘디컨트 수도회. 탁발. 이 수도사들을 프라이어  friar 이전 썰.

The Welsh uprising of 1211 was a rebellion by several Welsh princes, orchestrated by Llywelyn ap Iorwerth with primary support from Gwenwynwyn of Powys, Maelgwn ap Rhys, Madog ap Gruffydd Maelor and Maredudd ap Robert against King John of England.[1] Although technically defeated, this uprising resulted in increased independence from England for the Welsh.

 

웰시 봉기. 웨일즈. 잉글랜드 남서쪽.에서 실지왕 존.때 봉기. 여긴 켈트. 노르만 윌리엄과 이전 앵글로 섹슨애들에 여전히 반기 드는겨. 

 

 

The First Barons' War (1215–1217) was a civil war in the Kingdom of England in which a group of rebellious major landowners (commonly referred to as barons) led by Robert Fitzwalter and supported by a French army under the future Louis VIII of France, waged war against King John of England.

 

1차 배론들의 전쟁. 남작.으로 번역되는 배론. baron. 은 귀족 중에 가장 낮은 계급.이야. 즉 얘들은 머냐면, 기사.들 중에서 좀 힘센 놈이나 실력 갖춘놈이 싸움이나 전쟁에서 공을 세워서 영지를 하사받는겨. 

 

윌리엄이 잉글랜드 먹을때. 여기에 가담한 기사들이 많을거 아냐. 자기 핏줄들이나 공신들에게 얼 earl 이란 공작령을 주고. 대부분은 이 자잘자잘한 배런들이 넘치는겨. 대륙도 비슷한겨 이 배런. 남작의 영향이 중세 중반 지나서리 특히나 강한겨.

 

헨리2세에 반기를 드는 아들헨리 도 여기에 합세하는게 배런 들이야. 소외된 배런 들이 자기들 땅 확보하려고 반란을 자주 하는겨. 얘들은 독고다이야. 얘들이 나중에 점점 힘이 약해져서리 공후백 작의 수하에 드가는겨. 

 

실지왕 존이 대륙 땅 다 뺏기고. 마그나 카르타. 대헌장.을 내미는겨 귀족들이. 부르조아들이. 니 앞으로 우리말 들어라. 저기중에 배런들 25명이 합의하면 왕도 엎을 수 있다는 조항도 넣어.

 

존이 이걸 거부를 해. 이때 프랑스 왕 필리프2세가 이 잉글랜드 땅까지 다 처먹으려 작정을해. 노르망디가 먹은건데 저건 원래 이전 앵글로 색슨이 먹은거고. 우리네 프랑크는 색슨이랑 이웃인 게르만이고. 저거 우리가 리차드랑 존.이랑 대륙에서 내쫓은 김에 저 브리튼 섬도 먹자. 하는거걸랑. 

 

프랑스가 잉글랜드의 배런들이랑 제휴하는겨. 니덜 도와주께. 하면서 나중 지들이 처먹을라는거지. 이 원정에 자기 아들을 보내. 얘가 나중에 루이8세. 이고 이 아들이 성루이 9세야.

 

저 전쟁 막바지에 왕 존이 죽어. 배런들이 또한 이거 프랑스애들에게 주는거 아녀? 하민서리 협상을 해. 잉글랜드 포기하슈 하면서 돈을 줘. 필리프2세도 받아들여. 존 아들 헨리3세가 왕이 되고. 꼬마지. 마그나 카르타 잘 따르겠다.라고 해야지. 꼬마니 다루기 쉬울테고.

 

나중 얘가 클 때에 저 배런들 남작들이 다시 대드는겨. 그게 2차.야 

 

헨리3세 다음의 에드워드 애들부터 수습해서리 백년전쟁 으로 프랑스에 복수질 하거 가는거고.

.

 

시선을 돌려서 말야. 

 

 

 

 

지금 프랑스와 독일로 나눠진 베르됭 조약.에서 세아들이 나눠가지면서 나뉘는건데. 첫아들 로타르. 가 져서리 원래있던 이탈리아 북부에서 가운데 좁다란 땅만 갖는건데.

왜. 신성로마제국.과 프랑스.는 엠파이어.와 킹덤.으로 나뉜건가. 
샤를마뉴.가 전체를 통일하고 신성로마제국. 했는데, 그 다음 부터는 프랑스 땅을 빼고 신성로마제국 하걸랑. 즉 프랑스 땅은 독일땅의 엠퍼러.의 관할은 아니게 된겨.

Otto I (23 November 912 – 7 May 973), traditionally known as Otto the Great (German: Otto der Große, Italian: Ottone il Grande), was German king from 936 and Holy Roman Emperor from 962 until his death in 973.[b] He was the oldest son of Henry I the Fowler and Matilda.

 

 

샤를마뉴 의 아들 경건 루이.가 죽고 그 아들들 셋. 장남 로타르.가 가운데. 둘째 게르만루이.가 동쪽. 셋째 대머리샤를.이 왼쪽. 
저때 황제타이틀.은 그래도 전쟁에서 지고 땅 제일 작게 갖은 로타르.가 황제야. 3대황제야.
다음 황제는 이 로타르의 아들. 그리고 끊겨 이 핏줄이. 해서 대머리샤를이 다음황제. 다음은 게르만루이.의 아들이 황제. 해서리 계속 샤를마뉴의 핏줄들이 황제하는겨. 
헌데 저기서 보듯이. 이 황제.라는 타이틀이. 이름뿐인겨 이게. 로타르.가 황제지만 삼형제 전쟁에서 패배한 장남이야. 땅도 작아. 이름만 쥐었을 뿐이야. 
즉 실세는 왼쪽의 서프랑키아.라는 대머리샤를.이고 오른쪽 동프랑키아라는 게르만루이. 집안인겨. 이때까지 신성로마제국은 저 알프스 이북을 다 포함한거야. 헌데 의미가 없는거야 이게.

Hugh Capet[a][b] (c. 939 – 24 October 996) was the elected King of the Franks from 987 to 996. The first king from the House of Capet, he succeeded the last Carolingian king, Louis V. Hugh was a descendant in illegitimate descent of Charlemagne through his paternal grandmother.

 

경건 루이와 삼형제가 여전히 반란 진압하면서 샤를마뉴가 어설피 묶은 땅을 다지는겨. 그리고 셋이 나눠가졌지만. 그래서 또한 저때부터 이 카롤링거 찰스의 아들들의 왕조가 힘이 분산이 돼. 다시 여기저기서 반란을 하는겨.

메로빙거왕조 카롤링거왕조.는 프랑스만의 계보가 아냐. 독일의 역사까지 포함한겨 저게. 
쟤들이 프랑스와 독일 전체의 시작이야. 이걸 다들 애매하게 풀면서 말을 제대로 안하는건데. 
카롤링거의 저 샤를마뉴의 아들인 경건루이.의 핏줄들에서 다시 힘이 분산되면서 동서 양쪽에서 다시 내분이 일어나는겨. 
이걸 오른쪽에서 통일한 인간이 오토1세.이걸 왼쪽에서 통일한 인간이 위그 카페.

 

물론 성질이 좀 달라. 왼쪽 서프랑키아 프랑스.는 대머리샤를.의 핏줄이 끊긴겨. 해서 회의를 하는거야. 공작들 중에 누가 왕할까. 주교가 끼는거고. 여기서 왕이 된 인간이 위그 카페. 인거야. 이사람 아버지가 만든겨. 

 

Hugh the Great (

c.

 898[1] – 16 June 956) was the Duke of the Franks and Count of Paris.

 

위그 대제. 영어 휴. 가 파리 백작이였걸랑. 자기 자식을 밀은거야. 아들 위그 카페가 프랑크 왕이 된게 987년.
오토 1세.가 황제가 된게 962년. 


프랑스땅 왕은 프랑크의 왕. 독일땅 왕은 게르만의 왕. 
저런 호칭을 나중에 사가들이 정리하고 나눈거일 뿐이야 저게. 

신성로마제국.이란건 샤를마뉴. 그리고 아들 경건 루이. 때의 전체 빼곤. 이름뿐인거야.
그래서. 저 오토1세 때부터 진짜 신성로마제국.의 시작이자 진짜 신성로마황제.라고 해야 해.

Traditional historiography assumes a continuity between the Carolingian Empire and the Holy Roman Empire, while a modern convention takes the coronation of Otto I in 962 as the starting point of the Holy Roman Empire (although the term Sacrum Imperium Romanum was not in use before the 13th century).

 

저게 그말이야. 지금 신성로마제국.의 진짜 시작은 오토1세 부터다. 저 신성로마제국.이란 말도 13세기 이전엔 쓰이지 않은 말이야. 

 

.

오토 1세는 작센땅 공작이었어. 얘가 게르만 부락들을 다시 다 진압을 한겨. 

 

위그 카페.의 카페왕조는 단지 핏줄이 끊긴겨. 해서 공작들 핏줄에서 이 카페 가문이 왕을 한거야. 휴 대제의 선조는 샤를마뉴의 할배와 만나. 카롤링거 의 핏줄이 스몄어. 

 

오토1세는 반란들을 다 진압해서리 작센 땅에서 황제가 된거고

위그 카페.는 합의하에 왕이 된거고.

 

오토1세는 저 이후 작센 핏줄에서 황제가 얘포함 네명.하다가 살리안가문에서 이어가고 그러다가 나중 합스부르크까지 가는거고.

 

위그의 카페왕조는 이어서리 직계 끊기고 필리프 6세부터 발루아왕조. 해서리 카페핏줄 직계 여자 핏줄 잉글랜드에 있으니 우리꺼다 해서리 백년전쟁. 하는거고 그러다 부르봉에 이어지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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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진짜 독일의 시작은 작센이야. 프랑스의 시작은 카페 왕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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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1세.가 게르만들을 다 진압하고. 이때 크게는 남쪽 좌우의 스와비아. 바바리아. 그리고 중부의 프랑코니아. 그 위의 작센. 이야

 

로마에 나중 황제관을 쓰는데 다 데려가. 충성서약하는거야. 저긴 전쟁을 한 곳이야. 그러면서 합의체로 가는거야. 다이어트.란 제국회의 나오는거고. 이 게르만이 하나의 힘으로 강력하겐 안되는겨. 선제후 만들어서 형식 갖춰야 하고. 

 

당시 이탈리아 중북부.는 이전 로타르 장남의 핏줄이 끊기고 다른 핏줄이 이어가. 여길 진압하고 오토1세가 다시 이탈리아의 왕. 하는거야. 게르만의 왕. 로마의 왕. 신성로마제국황제. 같이 갖고가는거야. 

 

저 네 개 타이틀을 대개 같이 갖는건데. 간혹 안 그럴때가 있어. 

 

게르만의 왕. 로마의 왕.은 항상 붙어다니는거고.

 

게르만의 왕.이 항상 신성로마제국황제.는 아냐. 

 

이탈리아의 왕.이 황제가 아닌 적도 잇어.

 

.

 

로타르의 가운데 미들프랑키아.는 아래부터 부르기니 알사스 로레인. 인데. 그 로레인이 고지대 저지대로 나뉘어. 저지대 로레인.이 나중 저지대 독립운동하면서 네덜란드 공화국에 지금 네덜란드 벨기에 되는거고. 룩셈부르크도 여서 나오냐. 그리고 고지대 로레인은 프랑스가 갖는겨. 부르기니와 함께.

 

이들은 시간지나면서. 왼쪽 서프랑키아와 오른쪽 게르만 사이에서 눈치 보다가 저리 나눠갖으면서 찢어지는거야. 

.

 

쉼.

 

저렇게 학실히 구분하는 건 처음 들어볼껴. 위키영어도 저리 정리하진 않아. 

 

알어 감탄하는거.

 

 

파리.는 메로빙거때인 클로비스애들부터 수도였어. 저기가 1500년 이상 지금도 수도인겨. 해서리 앙리 4세가 파리를 버릴 수 없었던겨. 

 

저게 다시 말하면. 한 도시가 천오백년 수도란건. 저 도시가 상하수도가 저때부터 시작한겨.

 

중국 왕조나. 우리네가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긴건. 풍수가 어쩌고 저쩌고 는 개소리고. 상하수도가 안되서리. 똥오줌으로 물을 못써. 그래서 옮긴겨.

 

.이어가보자. 

The War of the Succession of Champagne was a war from 1216 to 1222 between the nobles of the Champagne region of France, occurring within that region and also spilling over into neighboring duchies. The war lasted two years and de facto ended in 1218, but did not officially end until Theobald IV reached the age of majority in 1222, at which point his rivals abandoned their claims.

 

프랑스 북동부 샴폐인땅 후계자 전쟁. 당시 샴페인의 백작. 카운트가 앙리2세인데. 저기서 1세 2세.는 어디 황제 어디 왕 어디 공작백작 할때만 한정하는겨 헷갈리지 말고. 
이인간이 삼촌 필리프2세 왕이 리차드랑 십자군원정 3차가는길에 동행을 해. 그리고 샴페인땅은 자기 동생 티보(띠오볼드) theobald 집안에게 주면서 가. 당시 동생은 죽었고 그 자식이 꼬마걸랑. 그 백작령의 남작들 배런 baron 에게 충성서약을 받아. 내가 십자군 가서 죽어도 저 동생집안에게 충성하라고. 
저것도 결국 배런들의 반란이야. 이 배런들이 영국땅이나 프랑스 독일땅이나 똑같아. 
저 배런들이 저 공작령 백작령에 작은 땅들을 받고 사는겨. 얘들이 서로 싸우는겨. 위에서는 영 이 안서는거고 잘. 해서 쿠데타.의 핵심세력이야 이 배런들이. 
다 진압되고. 깨갱하는거지.

The Age of the Sturlungs or the Sturlung Era (IcelandicSturlungaöld) was a 42–44 year period of internal strife in mid-13th century Iceland. It may have been the bloodiest and most violent period in Icelandic history. It is documented in the Sturlunga saga.

 

스투를룽 시대. 13세기 중반 40여년. 아이슬란드.는 서기 천년 전후에 그리스도.가 돼. 노르웨이를 통해서. 그러다가 노르웨이.의 속주가 된겨. 아이슬란드.의 부락 중에서 스투를룽 가문이 주도해서 반란을 일으키고 저때 독립운동 하는겨. 다 깨갱해. 아이슬란드는 서기 1800년까지는 노르웨이에 다음 덴마크의 속주였어. 쟤들도 지들 역사는 2백년 갓 넘은겨 지금.

The Mongol invasion of Europe in the 13th century was the conquest of Europe by the Mongol Empire, by way of the destruction of East Slavic principalities,

 

몽골의 유럽침입. 이전 몽골썰. 칭기스칸이 화리즘 샤. 가 몽골 사신들 다 죽이고 공물 다 뺏아서리 복수하러 그야말로 제국을 시작할때 화리즘 샤 정벌하고. 돌아갈때 수부타이.랑 제베.랑 따로 흑해 위로 가서 스텝 국들 밟고 빠꾸하걸랑. 

 

칭기스칸이 죽고. 그 아들 조치와 오구데이.의 아들들이 중심이 되서리 다시 처들어가는겨.

 

Date a) 1236–1240
b) late 1240–1241
c) 1241
d) 1241–1242 
e) 1241
f) 1242
g) 1242
h) 1291
Location Eastern and Central Europe
a) Modern Russia, Ukraine and Belarus
b) Parts of Southern and Eastern Poland
c) Czech lands
d) Medieval Hungary
e) Kingdom of Croatia
f) Southern Austria
g) Bulgaria
h) Serbia

 

 

키예프공국의 키예프에서부터 옆의 폴란드땅 아래 체코땅 아래 헝가리땅 더 아래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 다음 돌아서 불가리아 세르비아. 에서 다시 동쪽으로 빠꾸하는데.

 

 

a) Decisive Mongol victory resulting in principalities of Kievan State becoming vassals of the Mongol Golden Horde. 
b) Decisive Mongol victory, Poland heavily raided.
c) Czech victory, Mongol raided parts of Moravia and Silesia but was repulsed in Bohemia.
d) Decisive Mongol victory, Hungary devastated; parts integrated into the Mongol Empire.
e) Croatian victory, Mongols pillage much of Croatia but fail to subjugate it due to stiff resistance.
f) Austrian victory, Mongol raids repulsed.
g) Mongol victory, Bulgaria becomes vassal of the Golden Horde.
h) Serbian victory, Serbia acknowledged supremacy of the Mongol Golden Horde.

 

키예프 루쓰.들은 처음 보는 평평한 애들이야. 놀랬어. 지고 골든 호르드. 킵차크 칸국. 금장한국.의 속국이 돼. 여기 루쓰들은 모스크바로 올라가. 

폴란드로 서진해서 또 이겨.

체코의 오른쪽 모라비아 실레시아 쳐들어갔다가 더 가다가 보헤미안들에겐 지고 돌아가. 즉 슬라브는 이겼는데 게르만에겐 졌어.

내려가서 헝가리로 가. 여긴 마자르족이야. 약탈해. 헌데 요새와 성곽 지역은 못건드렸어. 

크로아티아.에선 그냥 돌아갔어. 못이겨.

오스트리아.의 게르만들에게 쫓겨났어.

불가리아.의 슬라브들도 속주로 만들어.

 

그리곤 말야. 저게 다음 세르비아.해서 50년 뒤에 찔끔 하나만 적은건데. 즉 오십년 후에 다시 돌아와서리 저 코스를 이들이 다시 밟는거야.

 

 

The Golden Horde raids in the 1280s (those in Bulgaria, Hungary, and Poland), were much greater in scale than anything since the 1241–1242 invasion, due to the lack of civil war in the Mongol Empire at the time. They have sometimes been collectively referred to as "the second Mongol invasion of Europe", "the second Tatar-Mongol invasion of central and south-eastern Europe",[88] or "the second Mongol invasion of central Europe."[89]

 

불가리아까지 돌아서리. 게르만한테는 깨갱하고. 슬라브나 마자르는 짓밟아 와서리. 사십년 후에 다시 쳐들어오는겨. 

 

폴란드와 헝가리는 병력상 압도적으로 열세였어. 몽골들은 이미 자기들 속주의 사람들을 용병으로 데려오는겨. 모든 전쟁의 공식이야. 그 식민지 인간들은 다 전쟁에 끌려가는겨. 

 

몽골들의 요구사항도 그거야. 니덜 우리에게 항복하고 우리따라서리 저기 서유럽 다 처먹으러 같이 가자 하는거걸랑.

 

이미 폴란드 헝가리.는 그리스도화 된겨. 한 번 당해봤어. 얘들이 다시왔어. 기병과 보병이 훨씬 더 많아. 

 

얘들을 다 조져. 아주 박살을 내. 

 

불가리아 세르비아. 만 그냥 말빨로 니덜 계속 복종 잘해라 하고 돌아간겨.

 

 

 

 

조또 아닌겨 저 몽골 들. 문명화 덜 된 슬라브애들한테 힘 쎈척 된거고. 원래 듣보잡에 야만들에겐 처음엔 당하는겨. 훈족에 게르만이 첨엔 걍 당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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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재정비한 헝가리와 폴란드는 물리쳤어.

 

몽골과 타타르의 러시아 침입. 키예프 점령하고 위로 올라간 루쓰들이랑 이어서리 2백년 전쟁하는겨. 결국 지들이 쫓겨나는거지.

 

The Siege of La Rochelle of 1224 was the decisive engagement in the campaign between the Capetians and the Plantagenets for control of Poitou.

 

라 로셸 함락. 1224. 잉글랜드가 아키탄땅 다 뺏기고. 해변에 남은 곳이야. 항구야. 여기까지 뺏긴겨 프랑스에게 결국. 저거뺏기고 남은 땅은 저 아래 가스코니. 피레네 접한 곳. 이 유일한 잉글랜드 땅. 여기도 백년 전쟁 에서 지고. 15세기에 다 프랑스로 넘어가. 잉글랜드는 진짜 섬나라가 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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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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