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잉글랜드. 아나키. 다음 부터 보자고. 

 

스웨덴 노브고로드 전쟁. 노브고로드. 지금 벨리키 노브고로드. 이전 러시아 썰. 러시아의 시작이야. 슬라브가 불렀어. 다시 나가라했다가 꺼져 하민서 루쓰 들이 자리 잡아. 서기 862년. 

 

이들이 내려가서 흑해 접하는 우크라이나. 키예프. 드네프르 강가. 까지 가서 슬라브들 다 점령해. 키예프 루쓰. 가 시작이야 러시아의. 다음 저 노브고로드. 도 이 내려간 키예프.에서 저 노브로고드.엔 귀족을 두고 관리를 하는겨. 그들을 보예르. 라고 해. 이들의 귀족층을.

 

boyar was a member of the highest rank of the feudal Bulgarian, Kievan, Moscovian, Wallachianand Moldavian and later, Romanian aristocracies, second only to the ruling princes (in Bulgaria, tsars) from the 10th century to the 17th century.

 

 

키예프 루쓰. 노브고로드 리퍼블릭. 다 러시아야. 

 

Kievan Rus' (Old East Slavic: Рѹ́сь (Rus' ), Рѹ́сьскаѧ землѧ (Rus'skaya zemlya), Latin: Rus(s)ia, Ruscia, Ruzzia, Rut(h)enia,[2][3]) was a loose federation[4] of East Slavic and Finnic tribes in Europe from the late 9th to the mid-13th century,[5] 

 

The Novgorod Republic (Russian: Новгоро́д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tr.

 Novgorodskaya respublika, 

IPA: 

[nəvgɐˈrotskəjə rʲɪsˈpublʲɪkə]; Новгородскаѧ землѧ / Novgorodskaję zemlę) was a medieval East Slavic state from the 12th to 15th centuries,

 

저 노브고로드.는 키예프 위에서 오른쪽 우랄산맥까지 가는 땅이야. 아래는 키예프 위에는 노브고로드. 

 

저러다 다음에 칭기스칸 몽골애들이 오면서. 아래 키예프 루쓰는 쫓겨나서 위로 가고 모스크카 공국.으로 버티다가 몽골 몰아내는겨. 노브고로드도 모스크바 공국으로 합치는거고.

핀란드 와 에스토니아 사이의 만. 이 핀란드 만. 이야. 그 끝이 샹트 베테르부르크.고 나중 러일전쟁 발틱함대가 일본랑 싸울때 출발하는 항구가 저기야. 고 아래 작은 호수가 일멘호. 고 저 바로위에 노브고로드.가 있어. 이들 루씨들이 저 아래 키예프 까지 가서 키예프 루쓰 한겨. 그 위는 노브고로드 리퍼블릭이고. 

 

저 우크라이나에서 벨로루시와 그 위는 키예프 루쓰. 의 루쓰들 땅인겨 서기 9백년 지나면서. 

 

저 벨로루시. Between the 9th and 12th centuries, the Principality of Polotsk (northern Belarus) emerged as the dominant center of power on Belarusian territory, with a lesser role played by the Principality of Turaŭin the south.

 

저기엔 폴라츠크 킹덤이 있었어. 이게 시작이고 벨로루시.의 정체성은 이거야 9세기. 슬라브야. 나중 키예프에 먹히는겨. 

 

폴란드. 는 서기천년 전에 첫왕조 들어서면서. 바로 그리스도 되고. 역사가 시작해. 

 

저기는 그리스도화 되기 전에는 프리히스토리. 선사시대야. 역사는 그리스도화 되고 서기 천년 전후에야. 우리네보다 천년이 늦어. 핀란드도 마찬가지고. 핀란드는 여긴 더 이후에야 핀란드고.

 

그 오른쪽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그리고 벨로루시. 다 똑같아 역사가. 여긴 폴란드 보다 2백년이 늦어. 

 

Terra Mariana (Medieval Latin for "Land of Mary") was the official name[1] for Medieval Livonia[2] or Old Livonia [3] (German: Alt-Livland, Estonian: Vana-Liivimaa, Latvian: Livonija), which was formed in the aftermath of the Livonian Crusade in the territories comprising present day Estonia and Latvia. It was established on 2 February 1207,[4] as a principality of the Holy Roman Empire[5] but lost this status in 1215 when proclaimed by Pope Innocent IIIas directly subject to the Holy See.[6]

 

테라 마리아나. 성녀 마리아의 땅. 이름이야. Riga. 리가. 저 위성지도에서 라트비아.의 쑥 들어간 만 리가만이야. 저 맨위가 핀란드 만.이고 위 지도와 비교가 될껴. 즉 저 마리아의 땅.은 지금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야. 저게 1207년도에 선이 그어진겨. 

 

얘들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해. 

 

 

저게 나중에. 교황의 승인하에 에스토니아 공국. 리가 대주교령. 쿨랜드 주교령. 도르파트 주교령. 등으로 나뉘다가 나중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하는건데.

 

저기 사람들을 리보니안. 들이라 해.

 

The Livonians, or Livs. 우랄족이야. 위 핀란드애들과 같아. 이들이 또한 쎄. 얘들을 그리스도화 하러 가는 애들이 리보니안 수도회.인겨. 저 그림에서. 

 

리투아니아. 가 공국.으로 교황과 황제에 의해 그리스도화 되면서 역사가 시작하는건

 

Duchy of Lithuania (LatinDucatus LithuaniaeLithuanianLietuvos kunigaikštystė) was a state-territorial formation of ethnic Lithuanians, that existed from the 13th century[1] until 1413. 

 

저 마리아의 땅.의 시기와 비슷해. 얘들도 이때에 공국이 돼. 더치. 공국령이 되었다는건. 교황에 의해서 그리스도화 되었다는겨. 황제의 관할이란거고. 

 

리타아니안. 라트비안. 은 발틱 슬라브야. 발틱 언어족인데. 즉 인도유러피안의 별도 언어족이야. 헌데 나중 다 슬라브화 된겨 이들이. 러시아에 나중 들어가면서. 

 

리보니안.이란 우랄족은 나중 더 위로 가서리 에스토니아 에 몰려있는겨 지금.
리투아니아.는 원래 커 땅이. 아래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까지 걸쳐잇었어. 루씨들은 모스크바쪽으로 가고. 이 리투아니아가 러시아가 힘 생기면서 오른쪽에서 밀고 들어올때. 폴란드 랑 연방을 하는겨.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formally the Crown of the Kingdom of Poland and the Grand Duchy of Lithuania, after 1791 the Commonwealth of Poland, was a dualistic state, a bi-confederation of Poland and Lithuania ruled by a common monarch, who was both the King of Poland and the Grand Duke of Lithuania.

 

1569–1795
저 폴란드 리투아니아 캄먼웰쓰가 끝엔 합스부르크. 프러시아. 러시아.가 나눠갖는거고. 저걸 나눌때 우린 단지 폴란드.를 나눠갖다. 라고 알고 있는데.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야
러시아.가 루쓰가 시작해서리 키예프 루쓰일때는 아래 비잔틴이랑 무지 싸우걸랑. 그러다 블라디미르.가 할매 올가 영향으로 그리스도 화 되고서리. 비잔틴이랑 안 싸워. 물론 한두번 오해?로 싸웟지만 그러다 말아. 비잔틴 망하고 동쪽 카톨릭은 러시아가 갖고 가는거고. 얘드른 왼쪽애들이랑 투르크랑 싸우는겨 이제. 
저 마리아의 땅.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는 중심이 리보니안.이야. 이들이 드세. 저 교황령 그리스도를 벗어나려는 전쟁을 자주해. 
저 마리아의땅. 그리고 아래 폴란드. 리투아니아. 이들은 처음엔 로마 카톨릭인겨. 벨로루시.도 처음 그리스도.는 로마 카톨릭이야.

러시아.가 몽골내쫓고. 비잔틴 망하고. 하면서 왼쪽 여기를 들어오는겨. 해서리 로마 카톨릭이 오쏘독시. 정교회가 되는겨.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가 나뉜건. 지금. 저 마리아의 땅.해서리 에스토니아 공국. 해서 저때 얘들 이름 갖고 가면서 있는거고. 그 떨거지들 아래 라트비안 슬라브 모아서 라트비아 하는거고.

저긴 발트해 건너 스웨덴. 그리고 아래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와 전쟁 하겄지. 
핀란드는 스웨덴 속주인거고 근대까지. 
해서리 저 라트비아 에스토니아.는 스웨덴 속주 였다가. 폴란드 리투아니아 캄먼웰쓰 합한 곳의 속주였다가. 다시 스웨덴 속주였다가. 러시아 속주 하다가. 걍 소비에드 드가다가 나온겨.
.벨로루시. 도 마찬가지야. 키예프 루씨 한데 먹히기 전에 로마 카톨릭 그리스도화 되었다가. 먹혔다가. 리투아니아 공국에 먹혀서리. 다음 폴란드와 연방에 속했다가 러시아 에 먹힌거고.
아래 우크라이나. 도 크게는. 슬라브땅이 키예프 루쓰 애들께 되었다가. 벨로루시 랑 같이 리투아니아에 폴란드 연방 드갔다가. 여긴 흑해 위 스텝지역이잖아. 쿠만. 킵차크. 코사크. 등등 여러 스텝 유목이 더 드나드는겨. 러시아 에 편입되거나 분할되면서. 여 우크라이나도 비참해.

이럴때의. 저 

3백년간 싸운겨. 스웨덴이랑 노브고로드. 러시아.는. 굳이 저리 이름을 붙인거지 지금에야. 

 

저건 상업 전쟁에 종교전쟁이야. 한자동맹의 상인들 루트.가 영국 런던에서 북해 지나서 덴마크 지나서 발트해 지나서 저 끝 리가만. 더 오른쪽까지 핀란드 만.해서 샹트 페테르부르크까지야. 

 

저기서. 한자동맹지역의 스웨덴 상인들이랑. 루쓰들이 주축인 바랑기안 상인들. 바랑기안이 저 스웨덴쪽에서 비잔틴 까지 무역거래 하는이들 이라 했잖냐. 이 둘간의 전쟁이야. 

 

더하여. 저 스웨덴은 로마 카톨릭이야. 노브고로드 바랑기안들은 비잔틴 정교회야. 이 종교간의 거부감도 한몫 한겨. 

 

 

아 하나 했는데 힘드러.

 

쉼.

 

 

부셍크 전투. 프로방스. 프랑스 남부.를 두고서리. 스페인 바르셀로나 가문.과 여기 보 baux 가문 과의 전쟁. 


괼프와 기벨리니 전쟁. 이전 썰. 넘어가.

 

베르헨 전투. 작센족이랑 오른쪽 덴마크 데인족 주트족이 오른쪽 슬라브 애들 몰아내는겨. 오데르강 오른쪽으로. 

 

서기 1천년 지나면서. 게르만들이 이제 경작을 하다 하다가. 맛이 들린겨. 땅이 풍요로와져. 더 개간하는겨. 엘베강을 넘어가는겨. 이전 로마때는 라인강 넘으면 야만인 상대했걸랑. 라인 넘어 엘베강 넘어서리 오데르강 까지 개간하면서리 사람들이 여기까지 정착을 하는겨. 왔던 슬라브들 내쫓고. 

 

 

노르만들의 아일랜드 침입. 저기서 노르만.은 대륙이 아니라 잉글랜드 남서부 웨일즈에 거주하던 노르만이야. 얘들이 아일랜드 가는겨.

 

1173-74년의 반란. 아 헨리2세.의 다음 이야기야. 헨리2세.의 자식들이 아빠한테 대든겨. 

 

헨리2세.가 사법개혁 의 대명사 라 했는데 이전썰. 이 인간이 종교재판과 시민재판의 경계를 나눴다는건 다시말해서 종교재판을 많이 없앤겨. 미친 짓 그만 하란거지. 저게 12세기야 얘들은. 순회재판을 해. 배심원들 둬서 재판하는겨 한두명에 안맡기고. 점점 로마로 돌아가는겨. 

 

우리네 조선의 재판.을 생각해봐라. 저기에 뭔 이성이 있나. 사또가 다 듣고 걍 저거 유죄. 

 

조정에선 걍 저 소인배유. 고문하믄 다 나와유. 오메 오메 아파유 내가 했슈. 저게 다야 조선은.

 

저건 야만이야 야만. 

 

 

로마.에선 상상도 못해. 2천년 전에 벌써 배심원들을 민들까지 삼분의 일 넣어서리. 재판을 한단다.  그걸 헨리2세 때에야 로마 망하고 육백년 지나서 다시 시작하는겨. 상고심도 둬. 

 

우리네는 저걸. 20세기 들어와서 지금에야 하는겨. 

 

해서리 인민재판.의 나라야 이나라가. 여긴 이성이 없어. 여론재판이 제일이야 ㅋㅋㅋ. 정의가 죽었슈. 여론재판 하면 되는데 왠 적폐들 중심의 사법재판이람유. 여론재판 해유 이제부텅.

 

 

한심한거지. 헌데 저게 역사의 힘이야. 이전 보스턴 이야기. 그런걸 여기선 상상을 못해 아직은. 하니 저따위 여론몰이 선동몰이에 그리 분노할 것도 없어. 걍 당연한겨. 인간들이 후지걸랑. 어르래 하면 여론 선동할까나. 이따위 밖에 정치하는 들은 대갈빡에 든게 없어. 

 

Henry II (5 March 1133 – 6 July 1189)

 

Eleanor of Aquitaine (French: Aliénor d'Aquitaine, Éléonore, Latin: Alienora; 1124  – 1 April 1204)

 

Louis VII (called the Younger or the Young; French: Louis le Jeune; 1120 – 18 September 1180) 

 

Henry the Young King (28 February 1155 – 11 June 1183)

Richard I (8 September 1157 – 6 April 1199) 

John (24 December 1166 – 19 October 1216)

 

.

헨리2세. 가 저때는 나이 40세. 첫아들은 죽고. 저때 세아들이 헨리 더영. 리차드(사자심왕). 존(실지왕)
저때 아들헨리 는 18세야. 리차드는 16세. 막내 존은 어린 7세야. 

아키탄의 엘레오노르. 참 재밌는 여자인데. 이때 이여자나이는 49세. 남편보다 아홉살 많아. 
헨리2세랑 결혼할때 가 내란. 저 아나키. 일때걸랑. 1152년. 이때 헨리2세는 19세야. 초혼이야 당근. 한번 다녀온 엘레오노르.는 28세야. 땅부자걸랑. 
헨리2세의 엄마 마틸다.랑 비슷한가. 나이 열살 갓넘어서리 열살 연상인 독일 황제에 시집가서리 남편죽고. 열살 연하 제프리랑 결혼한 엄마 마틸다.
엘레오노르.는 아키탄.의 땅주인이걸랑. 프랑스 왕이랑 결혼했다가. 1137. 이때 13세야. 루이는 17세. 15년 살고 헤어진겨. 엘레오노르.가 남자 자식없단 핑게로 여자가 찬거걸랑. 딸만 둘 낳았어. 그리고 몸만 온겨.

엘레오노르.는 이뻤나봐. 헌데 아키탄 태생이야. 아키탄과 옥시탄. 다 문화가 비슷해. 프랑스 남부야. 특히 옥시탄.이라는 프로방스 지역은 로마 이전엔 그리스 상업도시야. 제일 활기있는 도시야. 이게 저 파리가면 안맞는겨. 이전에 여 프로방스에 시집온 왕후

Constance of Arles (c. 986 – 28 July 1032), also known as Constance of Provence, was a queen consort of France as the third spouse of King Robert II of France.

 

아를의 콩스탕스. 이여자가 옥시탄의 프로방스 출생이걸랑. 로베르 왕한테 시집갔는데. 안맞는겨 저쪽 고리타분 왕가랑. 문화가 달라 기질이 다르고. 해서 싫어하는거지 이여자를. 자유분방하겄지. 그러다 한가 이 콩스탕스를 고소해서리 재판을 해. 왕은 방안에 있고. 여자가 방문 지키면서 밖의 소요사태를 감히 여자가 막으려 했다고. 이단이란거지. 

 

콩스탕스 이 여자가 재판 후에 저 진술한 눈깔을 짝대기로 찍은겨. 

 

나중에 남편한테 쫄라서리 장남한테 왕권을 나눠줬어. 헌데 이가 오히려 아빠보고 내려와라 지가 왕 할거라 하는겨. 이걸 머라하는거지 맨날. 장남이 깨갱하고 주늑들어서리 죽어.

 

남은 두 아들 중에. 여자는 세째를 좋아했어. 헌데 왕위는 둘째한테 간겨. 셋째를 부추겨서리 반란을 일으켜. 실패했지만. 하튼 대단한 여잔데 이 콩스탕스.

 

 

엘레오노르.가 올때. 비록 어린애지만 말야. 프랑스 왕가는 엘레오노르.에서 저 콩스탕스.를 봤다는거지. 살아온 기질이 문화가 달라. 남부랑 북부랑. 

 

The Second Crusade (1147–1149). 2차 십자군 원정때 엘레오노르.도 가는겨. 이때 23세. 음청난겨 여자가. 헌데 이뻐서리 루이는 무지 좋아했대 엘레오노르.를.

 

이 십자군 원정을 가는것도 웃겨. 1차원정에 프랑스 왕은 안갔어. 2차때 처음으로 왕이 직접 출정하는겨. 이것도 참 웃픈게 말야. 왜 가냐는거지.

 

엘레오노르.를 왕가나 교회에서 다 싫어하는겨. 예전 콩스탕스 생각이 나서리. 해서 맨날 욕했걸랑. 헌데 루이.는 너무 좋은겨 엘레오노르가.
샴페인 땅의 백작이 자기 부인이랑 이혼하고 엘레오노르 누이랑 재혼하려는 것을. 엘레오노르가 독촉해서리 왕이 허락하걸랑. 그럼 저 백작부인의 오빠가 열받는거지. 해서 샴페인 전쟁.을 2년 하는데.
이때 저 샴페인 땅. 프랑스 동북쪽. 에 한 마을 사람들 천여명이 마을 교회에 대피하다가 불타서리 다 죽어. 루이 7세 왕군의 공격으로.
얘가 여서 충격을 먹은겨. 무서운겨. 더군다나 교회가 불탔어. 
회개하는그야. 십자군 가야겄다. 예루살렘 가야긌다. 
중세 이야긴 참 거시기 하걸랑. 하튼 사람들이 좋은 말로 순하고 재밌고 나쁜말로는 어벙한건지.
해서 엘레오노르 랑 십자군 가는겨 부부가. 나중에 성루이도 부부가 가. 저 루이.라는 이름이 대체 머시긴지. 
헌데 얘들은 가다가 투르크 애들한테 기습당해서리 죽겄랑. 여기에 엘레오노르 탓 어쩌고 하고. 안티오키아의 삼촌이 엘레오노르랑 근친이란 소문도 나고. 사가들은 그리 안보고. 
하튼 흐지부지. 예루살렘에서 파리 돌아가는 길에 바다에서 폭풍도 겪고. 부부는 흩어지고. 나중에 남들얘기론 다들 죽은줄 알았다 하고. 시칠리아에 묶였다가. 삼촌이 목잘려 죽었단 소식듣고 부부가 로마로 가. 그리고 엘레오노르는 교황에게 . 이혼시켜달라고. 엘레오노르.는 아들이 노무노무노무 갖고 싶었어. 딸 하나만 달랑. 이때 교황이 동침을 시켜. 은총으로 아들을 줄꺼라고. 이때 임신을 했어. 딸이야.
이혼을 하고 당해 재혼한 인간이 저 아홉살 어린 헨리 2세야. 28세 엘레오노르. 19세 헨리. 
.나중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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