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가우 전투. 
The Battle of Głogów or Defense of Głogów (German: Schlacht bei Glogau, Polish: Obrona Głogowa) was fought on 24 August 1109 at the Silesian town of Głogów, between the Kingdom of Poland and the Holy Roman Empire.
 
폴란드
The establishment of the Polish state can be traced back to A.D. 966
 
폴란드 역사는 천년 직전에 시작해. 그리고 바로 그리스도 되는겨. 위의 노르웨이 스웨덴은 훨빨라. 
 
실레시안. 이전 체코때 나온 단어. 체코의 동북쪽이야. 폴란드 서남부를 실레시아. 해. 대게 얘들은 후계자 싸움이야. 쫓겨난 애가 옆에 제후나 황제에게 나 쫓겨나써유 복수해줘유. 폴란드가 이겨.
 
 
벨페숄츠 전투. 역시 작센애들의 반란의 계속이야. 살리안 핏줄 황제 에 대항하는 오토1세의 작센애들의 봉기. 이땐 작센이 이겨
 
 
디드고리 전투. 이전의 조지아 와 셀주크 전쟁 백년.속에서의 전투. 흑해옆 조지아 음청나. 얘들을 이겨. 이 조지아는 이전 아랍 무슬림. 그이전 비잔틴. 페르시아. 지금 투르크 무슬림에 다음엔 또 몽골애들 들어오고. 저 짜그마한 조지아 역사도 완전 피의 역사야 저게.
 
쿨멕 전투. 보헤미아 공작 대 독일 왕과 옆 모라비아 공작의 연합군과의 전투. 체코는 왼쪽 보헤미아 오른쪽 모라비아. 역시 후계자 전쟁. 보헤미아 가 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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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들 호칭을 보면. 황제 엠퍼러.가 있고. 킹 오브 저머니. 킹 오브 더 로만스. 가 막막 쓰이는데.
 
선제후.들의 투표로. 물론 대게 그 핏줄 다음 애를 뽑는거지.  얘가 게르만의 왕. 이야. 이 게르만의 왕이. 교황에게서 대관식하고 황제 엠퍼러가 돼. 
 
게르만의 왕 타이틀은 로마의 왕 타이틀을 같이 취해. 
 
King of the Romans (Latin: Rex Romanorum; German: König der Römer) was a title used by Syagrius, then by the German king following his election by the princes from the time of Emperor Henry II(1014–1024) onward. The title was predominantly a claim to become Holy Roman Emperor and was dependent upon coronation by the Pope.
 
해서 교황에게 대관식 안받으면 황제라 못한겨. 해서 하인리히 4세가 파문당한다 열받을때 얜 당시 황제가 아냐. 대관식을 못했어. 카놋사 굴욕 당하고. 작센 정리하고. 로마에 그래서 드간겨 대관식 받을라고. 지가 다른 교황 올리고. 이때부터 얜 황제인겨.
 
저 대관식 안하고 황제 한건 나중 카를 5세 이후 부터인거고. 지가 걍 관 쓰면서 황제 하는겨 중세 이후엔.
 
 
하늘인 교황의 권위가 무너진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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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짐께서 니덜 빠가모노 빠나나덜에게 너무 친절하게 말쌈하시는거 같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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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고마와서 미칠지경일텐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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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내전 시기. 110년 동안. 
 
 
King Harald Fairhair is the monarch who is credited by later tradition as having first unified Norway into one kingdom. According to the sagas, he ruled Norway from approximately 872 to 930.
 
노르웨이는. 바이킹 애들. 이전에 킹덤들이 자잘하게 있다가. 서기 9백년 전후에 통일하는겨. 맞은편 폴란드는 다음 백여년 후에 첫 왕조가 서는거고. 해서 이전엔 통일전쟁과정이 있고. 통일 왕조 세우고서리 백년 후에. 다시 110년간 싸우는겨. 자칭 왕이 스무명이 넘었대. 
 
그 오른쪽 스웨덴은
 
About 1000, the first king known to rule over both Svealand and Götaland was Olof Skötkonung
 
이 스웨덴의 역사가 애매한데. 서기 1천년즈음에 통일한걸로 봐. 여긴 이 시대 전후 역사가 자료가 희박해. 그후 일이백년 왕조를 확장하다가. 
 
This dynasty gradually consolidated a pre-Kalmar-Union Sweden to a strong state, and king Magnus IV also ruled over Norway and Scania. Following the Black Death, this union was severely weakened, and Scania was lost to Denmark.
 
마그누스 4세가 왼쪽 노르웨이와 함께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다 지배해. 노르웨이는 이전에 저 110년간 내전으로 힘이 많이 소모된 상태고. 이 후에는 칼마르 유니온.해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가 연방제 하는겨. from 1397 to 1523. 스웨덴이 나름 노르웨이보다 더 쎄. 헌데 덴마크.가 너무 월권 아니냐. 하고 스웨덴이 빠져. 노르웨이 덴마크 연합. 그러다 다시 노르웨이 스웨덴 연합.
 
Norway continued to remain a part of the realm of Denmark–Norway under the Oldenburg dynasty for nearly three centuries until its dissolution in 1814. The Union between Sweden and Norway lasted until 1905, 
 
저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는 같은 바이킹이야. 저들끼리 거의 연합으로 19세기까지 온겨. 
 
그리스도화는 노르웨이 스웨덴 같이 서기 1천년 직후에 된걸로 봐.
 
스웨덴 오른쪽의 핀란드는. 걍 우랄족 페이건이야. 여긴 역사가 없어. 스웨덴이 핀란드를 그리스도화 하면서리 얘들 역사는 13세기에 시작해서리 스웨덴 밑에서 그 뒤 오육백년간 있다가 19세기에야 핀란드 하는겨.
 
저따위 핀란드.가 지금 최고. 인 이유는? 
 
조선 들아 좀 배워라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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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디 아너키. 잉글랜드 후계자 전쟁 내전. 아 이 전쟁부터 잉글랜드 역사가 재미지는건데. 
 
The Anarchy was a civil war in England and Normandy between 1135 and 1153, which resulted in a widespread breakdown in law and order. 
 
쉼.
 
아 아래 제목 멋지지 않냐? 어드래 저따위 제목이 나온다냐 그래. 
 
이 개그지색덜이 여서 주구장창 보는건 저따위 천부경 해석한거. 하기사 한문해석도 이땅바닥은 한무당 번역질이니 저따위 심오한 번역에 눈이 똥그래지는거지. 
 
아 이노믜 땅바닥은 정말 모든게 개차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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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나키. 라 작명한 잉글랜드와 노르망디 전쟁은. 좀 자세히 볼필요가 있어. 재밌걸랑. 이게. 리차드 가 티나와. 아 내는 리차드가 좋아.
 
 
The Anarchy was a civil war in England and Normandy between 1135 and 1153, which resulted in a widespread breakdown in law and order.
 
 
잉글랜드.는 카이사르.가 와서부터 문명이 시작해. 처칠이 그런겨. 짐이 먼저 말한줄 알았는데 이미 처칠 리가 말한겨. 
 
아 카이사르. 카이사르 로 글을 싸제껴도 짐이 이삼십권은 싸제낄틴데. 아 짐이 말야 여기 얘기들 각론으로 싸제끼면 천권을 싸제낄틴데 전무후무한. 
 
구찮게 그따위 짓을 왜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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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가. 이전에 영국사 복기하믄. 아 똑같은 말 해야하는게 구찮은데. 니덜이 다 까먹었을거 아이가 안봐도 비됸데. 아 이 빠가모노 빠나나할배할매들 닝기리.
 
로마가 망하는 전후부터. 잉글랜드에 위와 옆에서 스콧들 픽트들. 쳐내려오고. 얘들은 다 켈트야. 잉글랜드의 켈트.는 게일 이라 해. 프랑스의 켈트는 갈리아dls. 스페인의 켈트는 셀티베리안. 
 
그리곤 앵글로 섹슨애들 쳐들어오고. 노르웨이 스웨덴 바이킹들. 덴마크 주트애들. 다 게르만이잖냐.
 
앵글로 섹슨 애들이 7왕국 체제. Heptarch 헵트 아르키에서. 나중에 웨섹스 알프레드가 통일하고 에덜스탄 부터 잉글랜드 킹 하고. 바이킹들 또 쳐들어오고. 크누트가 있기도 하다가 노르망디의 윌리엄이 먹걸랑. 
 
앵글로 섹슨 애들이 잉글랜드 묶으면서. 저때 쫓겨난 애들이 자리잡는 곳이 프랑스의 노르망디야. 한편으론 데인로.에 정착하면서도 다른 바이킹들은 프랑스 해변으로 간겨. 
 
그 노르망디의 윌리엄이 다시 잉글랜드로 간거걸랑. 즉 바이킹이 결국 이긴겨. 잉글랜드는 바이킹의 나라인겨 결국은. 
 
잉글랜드 왕들중에 영어 못했던 이들도 여럿이야. 어떤앤 브리튼에 안살고 대륙에서 살민서리 잉글랜드 왕 해. 헌데 오히려 저때 잉글랜드가 훨 발전하는거지.
 
대갈들은 없을 수록 좋아. 이 개들이 꼭 이념에 쳐맞아서리 멀 할라구 하걸랑. 해서 이 땅이 지금 이게 어찌 돌아갈지 모르는데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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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저따위 개 들이 리더들 이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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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튼 모든건 대부분 말야. 후계자전쟁은. 남자 자식이 끊기고 딸만 남을때야. 
 
저 법과 질서가 무너져서리 아나키. 라 작명한 저 전쟁역시. 헨리1세의 자식이 걍 배타다가 난파당해서리 죽고서리 딸만 남은거걸랑. 적법하게 승계받을 자식은 이 딸밖엔 없는겨. 자식들이 많아도.
 
이딸이 마틸다. 
 
Empress Matilda (c. 7 February 1102 – 10 September 1167), 
 
In January 1114 Matilda was ready to be married to Henry, and their wedding was held at the city of Worms amid extravagant celebrations.[21] Matilda now entered public life in Germany, complete with her own household.[22]
 
마틸다.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에 오른 하인리히 5세. 카놋사 굴욕 4세의 아들.과 결혼을 해 독일땅 가서. 나이 12세. Henry V (GermanHeinrich V.; 11 August 1081/86[1] – 23 May 1125) 하인리히는 저때 33세 또는 28세. 로리냐 이거. 
 
헌데 결혼하고 황제가 뒈져. 십년 후에. 마틸다 23세. 둘 사이 자식이 없어. 
 
살리안족이 끊긴겨 황제가. 그리고 그 반란 대들던 작센 에서 황제가 돼. 헌데 얘도 바로 죽어. 작센도 못이어가. 그다음이 바바로사 붉은 수염 프리드리히 1세고. 손자가 프리드리히 2세 그 살라딘 조카 만나는 황제인데. 
 
 
 
하튼 그래서 재혼을 하게 돼. 삼년 후. 1128
 
Geoffrey V (24 August 1113 – 7 September 1151) — called the Handsome or the Fair (French: le Bel) and Plantagenet — was the Count of Anjou, Touraine, and Maine by inheritance from 1129 and then Duke of Normandy by conquest from 1144
 
마틸다 보다 11살 어려. 오쨈봉. 제프리 15세. 마틸다 2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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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가 장녀인데. 한살아래 동생이 배타다가 죽었어. 
 
William Ætheling (Old English: [ˈwiɫiɑm ˈæθeliŋg]; 5 August 1103 – 25 November 1120),
 
17살에 죽은거지. 이때 누나 마틸다는 18세. 시집가서 황제랑 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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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 I (c. 1068 – 1 December 1135)
 
아빠 헨리1세가 15년 후에 죽어. 마틸다 나이 33세. 제프리 2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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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반기를 드는 애가 스테펜.
 
Stephen (French: Étienne; c. 1092/6 – 25 October 1154)
 
마틸다의 외사촌이야. 이 스테펜은 엄마가 정복왕 윌리엄의 딸이야. 
 
얘가 왕자리를 올라가려는거지. 마틸다가 쫓겨나고. 이 전쟁을 18년을 하는겨. 이때 왕이 스테펜이냐 마틸다냐 딱히 정할 수도 없어. 해서 아나키. 하는데.
 
하튼 마틸다 가 이겨. 
 
문제는 마틸다가 재혼한 저 제프리 5세야. 이 인간이 타이틀이 앙주의 카운트. 백작이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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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 II (5 March 1133 – 6 July 1189), also known as Henry Curtmantle (French: Court-manteau), Henry FitzEmpress or Henry Plantagenet,
 
 
이 마틸다와 제프리 사이에서 나온애가 헨리 2세. 결혼하고 5년 만에 나온 자식이야. 아빠 20세 엄마 31세에. 헨리1세 죽기전에 나은 자식인데. 내전 속에서 아이가 큰거지.
 
He inherited Anjou in 1151 and shortly afterwards married Eleanor of Aquitaine, whose marriage to Louis VII of France had recently been annulled. Stephen agreed to a peace treaty after Henry's military expedition to England in 1153, and Henry inherited the kingdom on Stephen's death a year later.
 
내전 기간에 아빠 제프리 죽고. 얘가 앙주.를 승계하는거야. 아빠가 갖고 있던 앙주옆 투렌. 만. 그리고 노르망디.도 받고. 얘가 아빠때문에 프랑스땅을 받는겨. 그리고 아키탄의 엘레어노르.와 결혼해. 엘레노르 이야긴 따로 하던 하고. 아 재밌어 쟤들.
 
내전상대였던 스테펜 죽고. 마틸다의 아들인 헨리2세.가 21세에 왕이 되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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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잉글랜드에서 아주 역사적인 선을 긋는건데.
 
헨리2세 하면 사법개혁.인데. 
 
Henry's reign saw significant legal changes, particularly in England and Normandy.[172][nb 22] By the middle of the 12th century, England had many different ecclesiastical and civil law courts, with overlapping jurisdictions resulting from the interaction of diverse legal traditions. Henry greatly expanded the role of royal justice in England, producing a more coherent legal system, summarised at the end of his reign in the treatise of Glanvill, an early legal handbook.[174]
 
잉글랜드와 노르망디에. 12세가 중반까지. 시민법정과 교회법정이 서로 엉켜서리 관할도 중첩되고 구분도 잘 안된다는거지. 여기를 왕실에서 직접 개입을 했다는건데. 
 
 
Henry was prepared to take action to improve the existing procedures, intervening in cases which he felt had been mishandled, and creating legislation to improve both ecclesiastical and civil court processes.[182] 
 
법의 절차.도 손을 보고. 교회법과 시민법의 법절차도 잘못된거 고치고 나름 입법화 하고.
 
He also operated an exchequer court at Caen that heard cases relating to royal revenues and maintained a number of king's justices who travelled across the duchy.
 
왕실과 관련된건. 왕이 추천한 배심원들을 꾸려서리 순회하면서 법정을 열기도 해. 하튼 사법 개혁 하면 이 인간인데.
 
 
이 말 할라는게 아니라.
 
헨리2세. 위의 헨리 1세. 위의 윌리엄 몇세. 위의 윌리엄. 은 남자 윌리엄 정복왕 핏줄인데.
 
옌 엄마 마틸다 가 윌리엄이지 아빠 핏줄은 제프리걸랑. 앙주백작의.
 
 
 
헨리2세 부터 아빠 피가 갈리는겨. 해서 얘부터 플랜테져넷. 왕조 하걸랑.
 
저 아빠인 제프리.가 애칭 별명이 플랜테져넷. 이었어. 
 
Geoffrey received his nickname from the yellow sprig of broom blossom (genêt is the French name for the planta genista, or broom shrub) he wore in his hat
 
저게 노란 꽃이야. 저 노란 꽃들 가지를 이사람이 머리에 꽂고 다닌겨. 해서 그 꽃이름 플랜테져넷. 했걸랑. 
 
해서 헨리2세. 의 왕조부터 플렌테져넷 하는겨. 
 
 

 

Armorial of Plantagenet

 

이 플렌테져넷. 가문의 헤럴드리. 문양.이야.

 

 

 

The Royal coats of arms of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as used by Queen Elizabeth II (reign 1953–present) in Scotland (right) and elsewhere (left). PINCES, J.H & R.V., The Royal Heraldry of England, 1974, Heraldry Today.

 

지금 영국 왕실의 헤럴드리. 문양이야. 저 방패모양의 것에서 잉글랜드의 상징.은 플랜테져넷.가문이야. 하프.는 아일랜드. 한마리 사자.는 스콧랜드.
잉글랜드. 는 윌리엄이 아니라 저 헨리2세의 플랜테져넷. 이야.

나중에 백년전쟁하고 지고. 브리튼에서 내전할때. 두 가문이 랭캐스터 가문 요크 가문 하지만. 다 저기서 나온 핏줄인거야. 그 다음의 튜더 왕조.도 잉글랜드의 상징이 못된겨. 

저 헨리2세의 아들이 리차드.야 사자심왕 리차드..

The term "Angevin Empire" (/ˈænɪvɪn/; French: L'Empire Plantagenêt) is a collective exonymreferring to the possessions of the Angevin kings of England, who also held lands in France, during the 12th and 13th centuries. Its rulers were Henry II (ruled 1154–1189), Richard I (r. 1189–1199), and John (r. 1199–1216).

 

그리고 헨리2세.가 내전 후유증 다시 정리하고. 엘레어노르.랑 결혼하면서 아키탄까지 먹어서리. 잉글랜드 크기의 프랑스 서부땅을 갖아. 저때를 앙주 제국. 앙지빈 엠파이어 하는데. 

 

헨리2세.의 첫 타이틀은 아빠 제프리.의 앙주 백작의 앙주.야. 해서 앙주.란 말을 써.

 

저 땅을 프랑스에 뺏기면서 백년전쟁의 빌미가 되는거고. 

 

나중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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