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r of the Euboeote Succession[1] was fought in 1256–1258 between the Prince of AchaeaWilliam II of Villehardouin, and a broad coalition of other rulers from throughout Frankish Greece who felt threatened by William's aspirations. 

 

그리스 에우보니아 후계자 전쟁. 
에우보니아. 섬이야. 크레테 섬 다음크기야. 아테네 있는 앗티카 반도 위의 긴 섬. 
중세의 영지.를 둘러싼 전쟁이 그리스땅에서도 벌어지는건데. 후계자 전쟁.이란건 직계 핏줄이 끊기고 땅나누기 뛰어드는거걸랑. 중세의 전쟁 중의 큰 하나가 이 후계자 전쟁.

그리스.의 역사가 참 비참한겨 이게. 
고대 그리스가 찬란했다지만. 문명의 배꼽 타이틀을 쥐었지만. 수백여개 도시국가들이 합치질 못했걸랑. 침입당할때 동맹 맺는 게 다야. 
헌데 저 수백여개의 도시국가들의 자유로운 경쟁 때문에 고대 그리스가 위대했던거야. 저걸 로마가 학습재료로 공부한거걸랑. 로마는 옆의 그리스가 있었기 때문에 로마가 된거지. 
저 고대 그리스. 다크 에이지.를 지나고. 기원전 8세기부터 아카익 시대에서 클래식 시대.가 아리스토렐레스 나올때이고 이들을 가지고 알렉산드로스가 헬레니즘 동방원정 한거걸랑. 
저 기원전 8백년대 후반에서 기원전 3백년대. 의 오육백년.동안 수백여개 도시국가들이 자유롭게 경쟁하고 다양한 문명을 서로들 겨누면서. 저게 지금 문명의 바탕이 된거야. 저걸 현실적인 인간들인 로마가 갖고 간거걸랑.

저 수백여개 도시국가들 체제가. 그대로 로마가 망하고. 중세 천년동안 다시 반복을 하는거야. 보다 업그레이드가 되서리. 

그리스.는 알렉산드로스 사후에 디아도코이. 부터 끝인거야. 저때부터 비참한거야. 
알렉산드로스.는 헬레니즘 동방가기전에. 그리스를 전체를 확실히 뭉치고 다져야 했었어. 
알렉산드로스.가 죽고. 그리스.는 끝난겨 저게. 그리스역사가 저 이후 2300년이 비참한겨. 인류문명에 자양분으로만 쓰이고 정작 저들은 자기들의 사유를 갖지를 못한거야. 고대 그리스의 클래식 시대.에 자뻑만 하다가 사는겨 지금. 그래서 비참한겨 저기가. 


2천년 이상을 뭉치지 못하고 계속 고대그리스.를 사는겨. 더이상의 온전함을 위한 확장이 없어. 

해서 맨날 노래가 우울에 향수만 듬뿍. 옛날만 생각하고. 

저게 데모크라시. 어설픈 데모크라시.의 아주 찐하게 보여주는 역사의 한 사례야 저게. 
저게 소위 민주야 민주. 다양한 소리들을 다양하게 들어야 함돠.

국가 차원에서 지금 이땅바닥 을 보면. 무슨 정책을 추진을 제대로 안해. 중요한건 공론화 위원회야. 교육 정책. 에너지 정책. 민들의 다양한 소리를 수렴해야한다는겨. 

아무것도 못하는겨 

대체. 그러면 대갈빡에서 정치를 왜 하니. 모든걸 다 다수결로 정해서리 과반수 나오는 것만 걍 하믄 되는거지. 


저게 그리스.가 2천년 이상을 저리 허섭하게 남의 힘에서만 지낸 이유야. 

허상이야 실체가 없어. 듣기는 좋은 소리지. 다수결 좋아. 다양한 소리 좋아. 소수의 의견도 중요해.

할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 

외적이 쳐들어와도 서로 뭉치지를 못해. 당하니 동맹체제를 맺어. 그뿐이야. 다시 흩어서리 저마다 지꼴리는 데로 살아. 외적이 처들어오면 외적탓 하는거야. 왜 처들어오니 이 적폐들아. 나쁜 놈. 하면서 노예생활 하는거야. 나중에 선심써서리 쟤들이 나가거나 남의 힘으로 해방하면. 사과해라 사과해라. 이 밖에 할 줄 모르는거야.

아무것도 하는게 없는거야 저게. 지들 안에서 윗 계급 들만 배떼기 티나오면서 사는거야. 더이상 남의 것은 안 디다보는거야. 지들의 역사가 너무나 위대한겨. 남의 것은 너무나 우스운겨. 
2천년을 저리 사는겨.

저들은 그래도 2천년 전의 것들은 어마무시나 했지.


개 야만 미개 한 시절을 위대한 시대인 듯 자뻑질 하면서리. 쟤들 흉내 내는건 전 인류사에서 이땅바닥밖에 없어 이건. 

웃긴거지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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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가 디아도코이에 휩쓸리고 다음에 로마에 먹히고. 그 다음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위기의 삼세기 정리하면서 동서로 나누고. 디아르키. 바로 네개로 나누고. 테트라르키. 해서리 비잔틴 관할이 되다가. 여기도 켈트족. 게르만족. 훈족. 슬라브족. 맨날 위에서 처들어오는겨. 비잔틴은 점점 힘이 없고. 나중엔 투르크가 쳐들어 오는거고. 

그 가운데 지점이. 4차 십자군원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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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rst Crusade (1095–1099) was the first of a number of crusades

 

삽자군 1차. 가 1100년 직전. 프랑스와 이태리 남부. 이태리의 출정한 귀족들도 프랑스 노르만인들이야. 이전에 백년전부터 내려와서리 롱고바르디랑 비잔틴 내몰고 시칠리아에 무슬림이랑 싸우면서 정착한 이들이 1차를 가는겨. 다 프랑스야. 프랑크야. 

 

이때 비잔틴의 황제는.

 

Alexios I Komnenos (GreekἈλέξιος Αʹ Κομνηνός, c. 1048 – 15 August 1118)

 

콤네노스 의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이 왕조야. 

The Seljuk empire was founded by Tughril Beg (1016–1063) in 1037.

 

이때 동쪽은 셀주크 투르크가 들어서는겨. 아랍무슬림인 우마이야 압바스가 페르시아의 사산왕조 없애고 비잔틴 위협하고. 술탄들에 에미르들이 레반트와 시리아에 막막 들어서는겨. 이때 투르크 무슬림들이 여길 비집고 들어가. 셀주크 투르크. 이들이 비잔틴을 위협해 이제. 얘들이 1200년까지 가. 

 

비잔틴의 알렉시오스 1세가. 얘들좀 처리해달라는겨 로마에. 이런 상황에서 우르바누스2세의 클레르몽 연설이 나온겨.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그야말로 공상가들.인 프랑스 프랑크 애들이 오는겨. 아 헌데 말야. 이제 저 프랑크들은 로마를 배우면서 자기들의 문명을 만든지가 갓 6백년인겨. 비잔틴 들어가니까 황홀한겨.
반대로 알렉시오스. 가 보기엔 촌놈들이야. 환관과 지들만의 하렘속에서 로마 천년을 지들만의 황궁에서 맘껏 누린거걸랑. 그 문명은 어마무시한겨. 헌데 얘들은 발전을 더이상 안한거고 그 속에서 딸딸이만 치는거고. 이 환관과 하렘 은 문명을 죽이는겨. 이 들은. 짐만 할수 있는 명언이야. 

비잔틴은 십자군 내내. 파병안해 저 십자가 땅에. 얘들은 이미 끝났어. 걍 저기서 저이후 오백년을 걍 억지로 버틴겨. 천년 로마의 힘을 걍 쓰기만 한겨. 채우지는 않고. 로마가 던져준 힘은 어마무시한거지. 

Andronikos I Komnenos (GreekΑνδρόνικος Αʹ ΚομνηνόςAndrónikos I Komnēnós; c. 1118 – 12 September 1185)

 

콤네노이 왕조 핏줄이 계속 비잔틴황제.를 계승해. 이 핏줄 마지막이 안드로니코스 1세.

 

얜 그 이전황제의 직계가 아냐. 자식이 없었어. 얘가 내란해서리 걸려서리 쫓겨났다가 황제가 돼. 직계는 아니어도 선조에 저 콤네노이 핏줄이야.

 

문제는 얘 다음이야. 얘도 나름 내란시도를 한 애걸랑. 자식들도 있어. 여전히 내란 분위기가 있는겨. 왜냐믄 이미 정세가 뒤숭숭 하걸랑 더군다나. 

 

아래는 투르크. 왼쪽 발칸에는 불가리아.에 왈리시안. 이라는 슬라브. 위에는 루쓰 라는 러시아. 

 

Andronikos Doukas Angelos (GreekἈνδρόνικος Δούκας Ἄγγελος

c.

 1133 – before 1185) was a Byzantine aristocrat related to the ruling Komnenos dynasty.

 

이때 장군이자 귀족인 앙겔로스.가문의 안드로니코스 두카스. 얘가 자식들이랑 연합해서리 쿠데타를 시도하다가 발각이 되서 도망가. 아들 이삭.은 콘스탄티노플에 잔류해. 황제가 용서해줬어. 헌데 수하애들이 얘를 죽이려 해. 

 

그리고 이 황제가 수도를 비워. 저 앙겔로스.의 아들 이삭2세가 자기 잡으러온 애들을 죽이고.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는겨. 

 

When Andronikos returned he found that he had lost popular support, and that Isaac had been proclaimed emperor. Andronikos attempted to flee by boat but was apprehended. Isaac handed him over to the people of the City, and he was killed on 12 September 1185.

 

콤메노스의 마지막황제인 저 안드로니코스1세.가 다시 와보니까. 이미 이삭이 황제다 하민서리 들어앉아있는데 사람들이 관시미가 없는겨. 이가 잔인했걸랑. 민심을 잃어. 비잔틴때는 다 대부분 이래. 이삭.이 이 황제를 민들에게 넘기는겨. 죽여.

Isaac II Angelos or Angelus (GreekἸσαάκιος Β’ ἌγγελοςIsaakios II Angelos; September 1156 – January 1204) was Byzantine Emperor from 1185 to 1195, and again from 1203 to 1204.

 

앙겔로스.핏줄의 이삭2세. 얘가 저 안드로니코스 두카스 앙겔로스.의 아들 중 하나야. 아버지는 쿠데타 음모 걸려서리 도망다니다가 죽고. 얘가 황제를 한겨. 

 

 

이 이삭2세 황제때 십자군 4차.가 뜬굼없이 콘스탄티노플로 오는겨. 레반트를 안가고.

이 이삭2세가 전 황제를 민들에게 넘겨 죽이고. 황제에 오르고. 십자군 3차.가 레반트를 가. 얘가 쫓겨나서 십자군 4차가 비잔틴엘 와. 아주 파란만장한 인간이야.
십자군 2차.는 루이7세랑 엘레오노르.가 갔고. 이때 신성로마황제 붉은수염 프리드리히1세도 가.
십자군 3차.는 저 둘의 자식들 각각인 리차드.랑 필리프2세.에다가. 프리드리히1세도 또 가.
프리드리히1세.는 2차때는 20대 젊은이고. 황제가 아니고. 40년 후 할배되서리 황제로써 간겨.
이 3차때. 저 이삭2세가 이 붉은수염 황제군 가는길을 방해를 해. 이삭은 살라딘이랑 대화로 풀려했걸랑. 그걸 리차드가 살라딘이랑 푸는거고. 
이 3차에서. 붉은수염 황제.는 심장마비로 죽고. 여기 잔여 병력이 레반트 남아서리 튜튼 기사단.이 되는거고. 넘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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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ios III Angelos (GreekΑλέξιος Γ' Άγγελος) (

c.

 1153 – 1211) was Byzantine Emperor from March 1195 to July 17/18, 1203.[1]

 

저 이삭2세.의 형이 알렉시오스3세. 세살 많아 이 형이. 아버지랑 같이 쿠테타 하려다가 발각되서 도망다닌 형인데. 아버지는 도망다니다 죽고. 동생이 황제가 된겨. 얜 살라딘쪽에 피해있었어.

 

 

이 형이 보기엔 저 황제가 된 동생이 티까운겨. 저앤 이전황제에 막 빌면서리 살아남은거고 쿠데타 생각도 없었던 놈이고. 아버지랑 자기는 도망다녀서리 고생한건데. 저게 어드래 재수좋게 황제가 되었네 하는거지. 그래도 동생황제가 형한테 좋은 자리는 주는거지. 그게 티까운거고.
저 이삭2세가 황제에 있을때 투르크 애들전쟁에 자기 결혼식 한다고 세금 열라 걷은겨. 이때 발칸 불가리안들이 반란해서리 일어난게 이전의 그 아센과 피터의 봉기.이고 여기서 2차 불가리안제국 나오는거고. 

 In March 1195 while Isaac II was away hunting in Thrace, Alexios was acclaimed as emperor by the troops with the covert support of Alexios' wife Euphrosyne Doukaina Kamatera. Alexios captured Isaac at Stagira in Macedoniaput out his eyes, and thenceforth kept him a close prisoner, despite having previously been redeemed by Alexios from captivity at Antioch and showered with honours.[2]

 

이삭2세가 십년째 황제할때에. 얘가 황제오를때 처럼 똑같이 이가 자리를 비우는겨. 사냥하러 간답시고. 이 빈자리에 저 형. 알렉시오스 3세가 치고 들어오면서 내가 황제요 하는거지. 

 

동생을 바로 체포해서리. 두 눈깔을 뽑아. 그리고 감옥에 처박는겨. 얘가 이게 맘에 걸려서리, 돈을 푸는겨 이때. 애들 반감 줄일라고. 돈받은 군인애들이. 군대 때려치우고 나가 사는겨. 돈 많이 받았는데 이따위 군인 .

 

Alexios IV Angelos or Alexius IV Angelus (GreekΑλέξιος Δ' Άγγελος) (c. 1182 – 8 February 1204) was Byzantine Emperor from August 1203 to January 1204.

 

저 감옥에 처박힌 이삭2세의 아들이 알렉시오스 4세.야. 즉 알렉시오스3세.는 큰아부지야 얘한테.

 

 

얘가 십자군들이 오는 발길을 콘스탄티노플.로 돌리는겨.

 

 

십자군 4차 원정단이. 베네치아에 미리 배들 만들어놓으라했걸랑. 돈 모아서 주겠다고. 만들어놓으니. 막상 돈을 입금을 안해. 해서리 자다르 전투. 크로아티아 땅 헝가리 속주 이미 그리스도화된 아드리아해 요새.를 치러가자는겨. 저땅 치러 가는데 협력하면 입금 좀 미뤄도 돼. 

 

저길 칠때 얘가 오는겨. 우리 아빠 지금 감옥에 쳐박혀있다고. 아무것도 못보고. 큰아부지 때려줘유. 교황에겐 동서분리 된 교회 권력 다시 로마에 주겠다. 십자군이 빚진 선박료 수송료 내가 내겠다 저 큰아부지 황제 엎어주면.

 

 

 

고뤠? 하민서 간겨. 헌데 막상 쫓아내고 보니까. 금고에 돈이 하나도 없는겨. 저때 쟤가 이미 다 뿌린겨 자기 귀족들 군바리들에게. 인심얻을라고.

베네치아.는 돈. 이걸랑. 망상놀이 공상놀이 말고. 돈이야 돈. 돈없으면 땅내놔. 

The Latin Empire with its vassals (in yellow) and the Greek successor states of the Byzantine Empire (in red) after the Treaty of Nymphaeum in 1214.

 


그리스땅은 텟살로니카. 아카이아. 아테네. 아키펠라고.로 나눠서리. 영지로 받는겨. 대부분 프랑스애들이야. 이탈리아 귀족애들역시 프랑크고. 
그리고 저 초록색 섬들.을 베네치아.가 먹는겨 선박료 수송료 값으로. 저 섬들이 해상무역 루트걸랑. 하튼 베네치아 음청 난 애들인데. 
비잔틴 귀족들이 니케아로 넘어가서리 그래도 비잔틴을 이어가는겨. 
저때 잠시 그리스는 동방교회에서 로마 카톨릭으로 바뀌는거지만.

The Frankokratia (GreekΦραγκοκρατίαFrankokratíaanglicized as Francocracy

lit.

'rule of the Franks'), also known as Latinokratia (GreekΛατινοκρατίαLatinokratía, 'rule of the Latins') and, for the Venetian domains, Venetocracy (GreekΒενετοκρατίαVenetokratía or Ενετοκρατία, Enetokratia), was the period in Greek history after the Fourth Crusade (1204), when a number of primarily French and Italian Crusader states were established on the territory of the dissolved Byzantine Empire (see Partitio terrarum imperii Romaniae).

 

저때를 프랑코크라티아. 라고 해. 프랑스와 이태리 십자군 도시국가들이 비잔틴 제국에서 자리잡은 시기. 

 

오십년 후에. 다시 비잔틴의 귀족핏줄이 콘스탄티노플을 되찾아. 

 

저 그리스 본토는 비잔틴과 프랑크 사이에서 중세를 지나는거고. 오스만애들이 나중에 쳐들어오는거고. 베네치아의 섬들도 오스만애들에게 점점 다 뺏기믄서리 원래로 돌아가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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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때. 십자군이 그리스땅 영지로 쓸때의 에우보니아 후계자 전쟁.이야 저게. 처음의. 

 

아래 아카이아의 윌리엄.과 에테네 영주 중심으로. 제노바랑 베네치아랑 싸우는겨. 둘은 끝날때까지 웬수야. 제노바 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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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개 한거냐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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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enetian–Genoese Wars were a series of struggles between the Republic of Genoa and the Republic of Venice, at times allied with other powers, for dominance in the Mediterranean Seabetween 1256 and 1381.

 

베네치아 와 제노바 전쟁들. 130년간의 전쟁. 웬수야 웬수. 같은 해양 도시국가. 해양 상업으로 먹고 사는 반도 양끝의 애들. 엄청난 인간들. 

 

The main trade routes of late medieval Europe. BlackHansablueVenetianredGenoesepurple: Venetian and Genoese, stippled: overland and river routes.

 

 

저때부터 지중해 오른쪽은 베네치아가 주도하는겨. 제노바는 지중해 왼쪽 빨강. 그 외는 둘이 같이 쓰고. 맨 위는 한자동맹 루트. 이 한자동맹의 중심은 대륙이지 잉글랜드가 아냐. 잉글랜드가 이 해상루트 독점한 한자동맹이랑 또 싸워. 그리고 저 대륙을 가르는 강들.

 

 

 

유럽의 역사는 저들이 만든거야. 베네치아 와 제노바. 가 유럽역사 와 인류 문명에 음청 기여를한겨 이게. 문명은 상인이 만든거야. 이걸 이땅바닥 조선 핏줄을 이은 분들은 이해를 전혀 못해. 시장이 악이야. 시장위에 권력이 놀려고 해. 들이야 진짜.

 

 

노무현은 띨빵하게도 나중에야 알은겨. 통에 올라서리. 그래도 어디냐 그나마 깨달은게. 

 

헌데 노무현만 깨달은겨.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슴둥. 그 인류사에 수천년동안 당연한걸 그제서야 깨달았어 쟨. 그게 어디냐 그래도.

 

헌데 지금. 쟤를 떠받들어 잇는 다는 분들은 저것조차 부정을 해. 시장은 악이야. 기업하는 들은 악마야. 지들이 위에서 지들 이념대로 갖고 놀려해. 

 

쟤들이 이땅을 망칠껴 분명해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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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First War", 1256-1270; 
- "Second war", 1294-1299; 
- Byzantine–Venetian War, 1296–1302; 
- "Third war", 1350-1355; 
- "Fourth war", 1377-1381
Location Mediterranean Sea
Result Inconclusive

 

하튼 저 지중해에서 저리 싸우는데. 결국 저러다 오스만 애들에게 다 끝나는겨. 그 끝의 시작이 콘스탄티노플 함락이야. 

 

이때 콘스탄티노플.을 지키는 인간들은 베네치아야. 자기들 해상무역 중심이야. 제노바 애들이 콘스탄티노플 바로 위에 자치상업지구가 있걸랑. 얘들이 안절부절하면서 중립을 지켜. 

 

나중에 베네치아가 그러는겨. 다 쫓기고 다 죽고.

 

니덜이 아무리 우리랑 서로 웬수지만. 그래도 어찌 그럴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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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바가 먼저 망하고 베네치아도 쇠락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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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riso-Hollandic Wars, also called Frisian-Hollandic Wars (Dutch: Fries-Hollandse Oorlogen, West Frisian: Frysk-Hollânske oarloggen), were a series of short medieval wars (ranging from single battles to entire campaigns) consisting of the attempts made by the counts of Holland to conquer the free Frisian territories, which lay to the north and east of their domain. These wars were waged off and on from 1256 to 1289, 1296 to 1299, and from 1345 to 1422, although it could be argued that a state of war continued to exist between the County of Holland and the Frisian territories till well after the year 1500.

 

프리지아 홀란드 전쟁들. 

 

이 프리지아. frisia. 독일 저지대 끝. 북해 접하는. 여긴 중세 전반에는 관시미가 없던곳이야. 멀리 떨어진거걸랑. 바이킹들이 그리스도화 되는게 서기 천년이야. 여기도 먼 곳이야 그렇게.

 

해서리 그 샤를마뉴 손자 셋이서 땅나누기 할때도. 저지대 하면서 로타르에게 줬지만 지도도 없는거고 걍 관심이 없어 이 끝은. 

 

Friese freedom or freedom of the Frisians (West Frisian Fryske frijheid, Dutch: Friese Vrijheid) was the absence of feudalism and serfdom in Frisia, the area that was originally inhabited by the Frisians.

 

해서 프리지안들의 자유. 하는겨. 이 자유가 중세말까지로 봐. 

 

 

The Vetkopers and Schieringers were two opposing Frisian factional parties from the medieval period. They were responsible for a bloody civil war that lasted for over a century (1350–1498) and which eventually led to the end of the highly praised "Frisian freedom".

 

15세기 까지로 보는데. 이때까지 계속 전쟁하면서 중세 봉건의 틀에서 다소 자유로운겨. 

 

Frisia in Northwestern Europe

 

프리지아.는 지금 저리 네덜란드 저 암스테르담에서 열도들 점들이 뻗고. 고 사이가 아이셀호. 아이셀강이 흐르는거고. 건너서리 덴마크점하는 곳을 프리지아 하는데. 해서 지금은 네덜란드가 대부분에 독일.에 덴마크 슬쩍 걸쳤는데.

 

저 바로 아래가 작센.하는 섹슨족이고. 앵글족이 오른쪽 프리지아 애들이랑 붙어사는거고 원래. 

 

자유의 프리지아 였걸랑. 헌데 아래에는 영지를 받은 애들이 있을거 아녀?

 

 

The County of Holland around 1350.

 

홀랜드 백작령. 이야. 얘들은 8백년대에 게르만루이 자식들에서 받걸랑 저땅을. 이들이 점점 오른쪽 프리지아 를 먹으려 하는거고. 프리지아 아래 작센애들도 잠식하러 오는거고.
해서 지금은 프리슬란트. friesland.란 이름으로 홀란드백작령 오른쪽에 네덜란드에 속해서리 남아있어.
얘들이랑 저 왼쪽의 홀란드랑 수시로 2백여년 전쟁하는게 프리지아 홀랜드 전쟁.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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