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 47권, 중종 18년 2월 7일 무인 1번째기사 1523년 명 가정(嘉靖) 2년 사헌부가 상소하여 소격서 철폐를 촉구하다

 

세대가 내려와 주(周)나라가 쇠퇴함에 미쳐 주하사(柱下史)로서 서적의 관리를 맡았던 이이(李耳) 가 허무하고 거짓된 설을 세워 이것을 가지고 이단(異端)을 창도(唱導)함으로써 신불해(申不害)·한비(韓非)같은 무리가 여기에 따라서 부화 뇌동하였습니다. 그뒤부터 방사(方士)들은 이들을 시조(始祖)로 삼아 허탄한 신선설(神仙說)을 열었고, 방탕(放蕩)한 자들은 이들을 종주(宗主)로 삼아 청허(淸虛)의 교(敎)를 숭상했습니다. 
중종때 실록 일부인데. 소격서 없애라미 사헌부 상소. 저기서 이이.는 그 이이.가 아니라 노자 도덕경의 그 노자.의 이칭이고. 신불해.는 법가에 형명학에 바탕은 노자.고 한비.는 법가의 대명사고.
얘들은 오직 유교. 유학. 공자맹자야. 
조선때 저 한비자.는 이단이야. 읽으면 죽어. 
세상에 이따위  먼레기 나라가 없어. 정말 조선은 머같은 나라야.  인간들을 생각을 못하게 했어. 구한말이 더 머레기가 된거지. 역사를 모르니 조선을  찬향하민서 


저따위 를 테레비에서 띄워주고 민주여 정의여 애들이 띄워주는데.
해서 지들이 주장하는 말글외엔 난언이야. 예의가 아냐. 막아야해. 고소고발해야해. 
조선의 핏줄이야 저건. 똑같애 애들이. 
미개한 나라야 이나라가.
헌데 쟤덜이  빠는 인간이 있어. 제갈량.
실록에서 제갈량 검색하면 350껀이 나와. 항상 선진사례로 인용하는 인간이 저 제갈량인데. 충.의 대명사걸랑. 충  좋아하는 애들이지.

諸葛亮字孔明,琅邪陽都人也。漢司隷校尉諸葛豐後也。父珪,字君貢,漢末為太山郡丞。亮早孤,從父玄為袁術所署豫章太守,玄將亮及亮弟均之官。會漢朝更選朱皓代玄。玄素與荊州牧劉表有舊,往依之。

 

진수 삼국지.에 촉서.5 가 제갈량전. 한명만 다뤄. 관우 장비는 촉서 6이야. 시작을 보면.낭야.의 양도 사람이야. 낭야.는 지금 临沂市 린이. 산동성 맨 아래. 그 밑이 강소성 서주.야. 한.때 사예교위.직을 한 제갈풍.의 후손이야. 아비 제갈규.는 한말에 태산군. 승. 군의 문관들중 2인자야. 태수 다음에 상.다음에 승. 어릴때 고. 부모가 다죽었어. 종부. 아버지의 형제인 제갈현.이 데리고 산거지. 이 제갈현.이 원술이 임명해서 예장군의 태수.가 돼. 예장군.은 지금 강소성 남창. 여기 예장 바로 위가 구강.이야  자주 나오는. 구강왕 영포.니 수호지 송강 유배지. 송강때 구강은 여강.이고. 
저때 원술이 회수 아래 수춘(합비)아래 하고 장강부근을 먹었던겨 13개 연합군 흩어져 싸우고 손견도 죽고 손책은 어리서 힘없고 할때. 이때 제갈량과 동생 제갈균.을 데리고 간거지. 그러다 원술이 천자놀이 하며 지랄대다가 나중 손씨네로 튀고 제갈현도 죽어. 제갈현이 원래 형주목의 유표와 친했어. 거기에 보낸거야.
제갈균.은 아마 저때 손씨네로 원술이랑 같이 간거겠지. 해서 제갈균은 손씨네의 참모가 되는거고. 
제갈량은 유표네한테 보내져서 유표가 자기땅 형주의 맨 위. 즉 지금 하남성의 중남부.에 살게 하는겨.

玄卒,亮躬耕隴畒,好為梁父吟。漢晉春秋曰:亮家于南陽之鄧縣,在襄陽城西二十里,號曰隆中。身長八尺,每自比於管仲、樂毅,時人莫之許也。惟博陵崔州平、潁川徐庶元直與亮友善,謂為信然

 

삼촌 제갈현이 죽고. 제갈량은 궁. 지가 지몸으로 

隴畒. 농.은 개간안된 땅. 묘.는 개간된 땅. 땅 갈고 살면서 양보음.부르는걸 좋아했어. 

 

步出齊東門,遙望蕩陰里。
里中有三墳,累累正相似。
問是誰家墓,田疆古冶子。
力能排南山,文能絕地紀。
一朝被讒言,二桃殺三士
誰能為此謀,相國晏子

 

걸어서 나가 제나라의 동문밖을. 멀리 보이네 탕음리.가

리.안에 세무덤, 각각 쌓인듯이 똑같은 게 나란히 

묻네 이건 누구의 무덤인가, 전강 고야자. 무덤이지

힘은 남산을 밀치고 사유생각은 땅의 무수한 이야기들을 제대로 구분해 볼줄 알지

하루아침에 거짓누명을 받아 복숭아 두개로 세명의 사士를 죽었네누가 이런 계획을 짤 수 있었나, 상국.인 제나라 안자.라네
관련 고사는 빠나나덜이 찾아보고. 저기서 저 문능절지기. 구문은 

上決浮雲下絕地紀

 

장자 설검.에 나오는 말이야. 이 검은 위로는 뜬 구름을 가르고 아래로는 지기.를 가른다. 뿌옇고 애매한 것들을 확연히 보게 해주고 가름질 해서 정리해주는겨 저게. 다들 해석을 개떡같이 하는데. 앞으로 짐의 해석을 본으로 삼도록 하라고 전해라. 무시기덜에게.

 

주.에 한진춘추. 漢晉春秋》,由東晉史學家習鑿齒所撰著. 《漢晉春秋》記載自東漢光武帝西晉晉愍帝合共281年的歷史。

 

동진.에 사학가 습착치.가 모은 책이래. 習鑿齒(?-383年)

 

제갈량의 저때 집은 남양.의 등현.에 있었대. 양양성 서쪽으로 이십리. 8키로. 양양성 번성이 하남성의 아래걸랑. 저기에 신야현. 유비가 거처한 곳이 있고. 등현.이 

邓州市 지금 등주시. 

每自比於管仲、樂毅,時人莫之許也 . 매번 자기를 관중. 악의.에 비유했다. 당시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ㅋㅋㅋ. 

 

관중.은 공자보다 백년도 훨 이전 사람이야. 

 

악의.는 연나라 장수. 악의.는 망한 중산국.의 중산. 사람이야. 유비의 탁군 부근이야 하북성 중간에 있어. 여기를 조나라 무령왕이 먹어. 악의는 이 무령왕.에게서 배웠어 힘을. 

 

조 무령왕. 기억나는 빠나나 인냐 
오국상왕. 주나라가 힘없어. 호경(시안)에서 낙읍(낙양)으로 옮기고. 동주.되고 그러다 전300년 지나기 전에 위혜왕.이 제위왕.에게 왕 칭호해주고 서로 왕왕하고. 
진나라는  나한텐 왕. 왜 안불러줘. 자칭 왕. 하고.
조 무령왕.은 저것덜 먼지랄이니. 왕이던 말던 힘이나 길러. 해대던게 조 무령왕 이걸랑. 
저 다음에 소진. 장의. 가 나오는겨. 
힘없는 애들끼리 왕왕 해주는거고. 진나라는 힘이 쎄걸랑. 자기가 왕.해. 
그래서. 소진.이 합종책.을 제안하는겨 진나라 뺀 나머지 애들에게. 진나라가 이후로 함곡관을 잘 못넘어가
이걸 깬 게. 장의.의 연횡책이야. 
이 다음 의 이야기가. 저 악의. 야. 합종과 연횡으로 서로들 다시 분열하는겨. 악의 지나면서 진나라 영제가 통일하는겨 결국. 
악의.가 조나라 무령왕 시절에 무령왕의 힘을 배워. 헌데 무령왕이 자식들땜에 죽어. 조나라는 무령왕 죽고 끝난겨. 이후 나중 장평전투에서 조나라 병력 40만이 진나라에 생매장 당하는거지. 
악의.가 가기 직전의 연나라.는 난장판이었어

燕王噲五年(前316年),禪讓君位於子之,進行改革,國內大亂,燕王噲七年(前314年),太子平將軍市被反叛,數月,死者數萬

 

연왕 쾌.가 자지.

子之. 라는 상방. 상국의 선진시대용어. 에게 왕자리를 주겠다고 한겨. 자지.가 디게 정치를 잘해. 연왕 쾌.가 근대적인 인간인거지. 핏줄이 중요하냐. 
난리가 난겨. 2년후에 태자 평이 반란을 일으켜. 수개월. 수만이 죽었어. 

齊宣王發兵,攻破燕國,噲被殺,子之逃亡,被齊人抓住砍成肉醬(醢其身)

 

요때 제나라에서 쳐들어간겨. 제선왕이 연왕 쾌를 죽여. 자지.는 도망가다가 제나라 사람에게 잡혀서리 

肉醬 육장. 

醢其身. 해기신. 칼로 자잘하게 썰어서리 장조림을 만든겨.

 

태자평도 죽었어. 동생이 왕이 돼. 이사람이 연소왕.이야

 

赵武靈王(前340年-前295年) 조무령왕이 죽은게 전295. 조나라가 내란이야 자식들로. 

 

연소왕. 

《史記·六國年表》及《燕世家》並作為前311年至前279年,在位33年。

 

연소왕.이 전311에 왕자리에 올라. 

 

연소왕이 연나라 수습하면서 제나라에 복수를 해야해. 어쨌거나 자기 아버지랑 자기들 재상들을 쟤덜이 죽였걸랑. 인재를 끌어모으는겨. 제나라는 제선왕 죽고 제민왕이고
이때 악의가 중산에서 저 위의 연나라로 가는겨. 

戰國策》裡也記載他千金市馬的故事,一時燕國成為“人才高地”

 

저때 나오는 고사야. 

千金市马骨. 천금시마골. 저기서 시.는 가격. 천금 가치의 말뼈. 

臣闻古之君人,有以千金求千里马者,三年不能得。涓人言于君曰:“请求之。”君遣之,三月得千里马。马已死,买其首五百金,反以报君。君大怒曰:“所求者生马,安事死马。而捐五百金!”涓人对曰:“死马且市之五百金,况生马乎?天下必以王为能市马。马今至矣!”于是,不能期年,千里之马至者三。

 

 

곽외.가 하는 말. 옛 군주가 천금으로 천리마를 구하려 했는데 삼년동안 못 찾았다. 연인. 国君的近侍,即宦官. 즉 환관이 지가 구해보겠다 해서리 보냈는데 얘가 삼개월만에 구해 왔는데 말이 죽었어. 사오다가 죽었겠지. 오백금을 줬대. 군주가 열받았어. 산 말 사오랬지 죽은 말 사오랬냐 . 오백금을 버맀잖오!!!. 하니 연인. 환관이 죽은말을 오백금 주고 샀다고 하면 산말은 얼마게쓰요? 분명 이게 소문이 나서리 천리마 팔러 사람들이 몰릴껌둥. 그해가 다 가기전에 천리마 를 세마리나 구했다.

 

하고 곽외.가 자기 써라 하고 소문나고 그거 듣고 악의.가 가는거지 연나라로. 연나라에 인재들이 모이는겨.

 

燕昭王三十年(前284年)燕國聯合五國攻齊,上將軍樂毅攻破齊國,佔領齊國七十多城(齊國疆土只剰即墨二城)

 

그리고 전284년. 왕자리 오르고 27년 준비해서 제나라를 치는겨. 음청난 인간인거지. 그리고 거성. 즉묵성. 두개빼고 제나라 칠십여성을 다 점령했어. 

 

헌데 역시나. 소왕이 죽고. 허섭한 태자가 왕되고. 이간계로 악의는 도망을 가. 제나라가 성 두개만 남았지만 쉽지 않은 나라걸랑 제나라가. 

 

이간계라는건 제일 무서운겨 저게. 이간계 던져서리 안 걸리는 애들은 없어. 인간사는 이 이간질의 역사야. 

 

연나라는 저 소왕다음인 연혜왕.부터 망하는거지. 

 

“善作者不必善成,善始者不必善終” 사마천 악의열전.에 나오는 말이야. 일을 잘 계획했다고 반드시 잘 이루어지는것도 아니고, 시작이 좋았다고 끝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나중 저 연혜왕이 다시 불러. 이때 쓴 글 

《報遺燕惠王書》 「君子交絕,不出惡聲;忠臣去國,不潔其名。
보유연혜왕서. 에서 군자란 관계를 끊어도 싫은 소리를 내지 않지만, 충신은 나라를 떠나도 그 이름을 애써 깨끗하게 하려 하지 않아야 한다. 
저기서 군자.는 임금이걸랑. 왕이시여. 머  그리 내욕질 하지 마라. 하는거지. 누구탓 하지 말라 하는거고.
충신.인 나는 내이름을 애써 깨끗하게 하지 않는다는 거지. 변명 않는다는겨 구차하게. 
아 저말 쎈 말이야. 걍 굽신굽신 왕한테 하는 소리가 아녀 저게. 
저 보유연혜왕서.가 나중 제갈량 출사표의 자료가 되는데.

.아 오늘은 이만하자.
중국사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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