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 삼국지.에서 유비 썰할때 好交結豪俠. 호협. 과 사귀길 좋아하다. 에서 저 호협.
호걸. 이란 말과 협객.이란 말 보면. 호. 협.
호걸. 이란 말이 수호지.를 보면 나와. 다 호걸이야. 남자는 호걸이어야 해.
헌데 이게 웃긴게. 사마천 사기.에서는 그리 자주 안나와. 더 웃긴건 진수의 삼국지에서 진수.의 글에도 서너번 밖에 안나와. 헌데 모종강. 청나라때쓴 삼국연의에 이말이 나오기 시작해. 시작부터 宴桃園豪傑三結義. 챕터 제목부터 연도원호걸삼결의. 복숭아밭에서 술처먹으미 호걸 세명이 의.를 결 하는겨.
그러다 수호지.에는 심심하믄 호걸이야. 즉 호걸이란 말은 뒤의 시대에야 막막 쓰는겨.
사마천의 사기.에서도 저 호걸.이 쓰인 곳은 특히 진섭세가에 더 써. 진승 오광이 처음 일어날때. 다 무짜 깡패들이걸랑. 남월열전에도 한번 보이고 오랑캐땅 이야기에.
왜냐믄 저 호.라는 말은
。豪,篆文
(高,即“毫”,尖锐长毛)
(豕,猪),表示搏斗时会竖起尖锐长毛的野猪。
저 지도가 황하. 회수. 장강. 나오는 보기 좋은 지도야. 저것과 처음의 지금 성 구분 지도를 겹쳐서 볼 수 있어야 해. 저 업.은 하남성과 하북성의 경계지역이야. 저기가 또한 조조부터 중국 수도 역할을 자주해. 당나라때 다시 장안으로 천도하지만. 중국의 역사는 저 장안.이라는 주의 호경에서 저 끝의 북경으로 천도하는 역사였어. 다른 줄기는 저 장강 끝의 상해.가 역시 문명의 중심이 되는 역사였고. 즉 중국은 저 왼쪽 구석탱이에서 오른쪽 밖으로 나오는 과정.이 중국 정사 3천년의 역사야. 저걸 가능케 한건 미친 수양제의 운하사업이었고.
쉼.
삼국지.는 장각 삼형제의 황건적의 난 184년 부터 오나라 망하는 280년까지 백년동안의 이야기야.
이를 또 개략 나누면. 황건적 대충 진압하고 영제 죽고 189년 5월. 동탁이 권력 잡고. 13개 연합군이 대치하다가 동탁이 장안들어가면서 장안 외의 중국 전역에 전국시대가 오며 조조 원소 원술 손견 손책 공손찬 유표 중심으로 서로 땅따먹기 본격적으로 하고.
동탁이 부하 여포한테 죽어. 192년. 4월.음력. 동탁 부하인 이각 곽사.를 왕윤이 사면 안해줘. 얘들이 장안을 접수해. 같은해 8월. 여포는 이때부터 튀어서리 원소네 유비네에 낑기다가 조조한테 죽어 나중에.
이각 곽사 장제 무리가 장안 접수하고. 헌제가 장안에서 도망가서 낙양으로 튀어. 쟤덜이 쫓아가. 이때 이 낙양으로 들어와서 쟤덜을 쫓고 헌제를 접수한 이가 조조야.
195年,汉献帝迁出长安,进驻安邑。
建安元年(196年),曹操听从谋士荀彧建议,迎接皇帝
헌제는 조조에게 가고. 장안에 뻘쭘히 남았어 장제는 196년 곽사는 197년 이곽은 198년에 죽어.
조조세상이 된거야. 황제가 조조한테 있걸랑. 낙양은 190년에 동탁이 장안 가기전에 태웠걸랑. 있을 곳이 못돼. 저기 낙양 동남부 허도. 허창. 으로 천도를 해. 본격적인 조조세상이 시작되는겨. 漢室於八月庚午日(10月7日)遷都至許昌,曹操於十一月丙戌日(197年1月1日)任司空. 196년 헌제 영접하고 그 해에 허창.허도 로 천도하고 조조는 다음해 사공.이 돼. 한나라는 이때 실질적으로 망한겨.
조조는 낙양 오기전에 떨거지였걸랑. 13개 연합군이 흩어질때. 동탁 장안가는거 혼자 쫓다가 병력 다 잃고. 근데 청주 밑에 연주목이 황건적 잔당에게 패해. 이 연주에서 조조를 초빙을 한겨. 조조가 이 연주에서 청주의 무리를 진압하고 이 청주병들을 접수해. 이 청주병들이 진시황이 마지막 접수할때 그 제나라 핏줄이야. 항우가 유일하게 못이긴 애들이 이 제나라 애들이야. 이 청주병들이 조조의 힘이되는거지.
이 힘으로 낙양 가서 헌제 품에 안고. 동쪽 서주. 먹는겨. 여포가 돌고 돌다 유비가 도겸이 준 서주를 먹었걸랑. 유비는 조조에 투항하고 조조는 여포를 죽여. 建安三年十二月廿四日癸酉 198년 12월 음력.
조조 랑 같이 허도.허창 에 있다가 여서 헌제랑 족보놀이 하면서 황숙 닉네임 얻고. 헌제 사돈 동승.이랑 반조조 놀이 하고. 유비는 바보행세하고 조조가 안심하고 유비는 원술 치겠다 병력달라 하니 조조가 안심해서 주고. 조조 아차 하고. 유비는 동쪽의 서주 접수하고 하비.에 가족 남기고 관우보고 지키라 하고. 그러다 조조 와서리 유비는 북쪽 원소한테 가고 관우랑 유비가족은 조조가 델꼬가서리 조조의 관우에 대한 애정질 시작하는거고
서주 밑의 원술. 수춘. 은 지금 합비. 허페이.하는. 회수 아래. 얘는 혼자 천자놀이 하다가 장강 아래 손씨네에 의지하다 바로 죽고. 建安4年(199年)
동쪽이 서주 수춘 중심으로 접수가 되었어. 이제 북쪽이야.
관도지전. 저 북쪽의 원소.가 조조를 치러 오는거걸랑. 원소는 이전에 자기보다 윗쪽인 유주 요서의 지배자 공손찬을 죽여 북쪽 접수하고. 이때 공손찬 수하의 조자룡은 유비한테 가는거고. 이제 중원 접수할라하는거고. 조조가 동탁인거지 쟤덜에겐. 관도가 황하 건너서야. 관도 지나면 바로 허도.야.
관도지전. 서기 200년. 여기서 수차례 싸우면서 원소가 밀리는겨. 숫적으론 원소가 유리해. 헌데 자뻑이 쎈애야. 출생이 너무 좋아. 지 잘난 맛에 결국 죽어. 202년. 이후 원담 삼형제 원담 원희 원상. 얘들을 끝까지 쫓아가서 죽여야 해. 장남 원담 205년 죽어. 원희 원상이 북으로 쫓기고 돌고 돌아 맨 끝 요서까지 가. 요서의 공손강.이 얘들을 죽이고 조조에게 바쳐. 207년.
저때 저들을 끝까지 가서 죽이자며 같이 간 이가 곽가.야 곽가.는 170년 생이야. 제일 팔팔해. 조조는 155야. 조조 옆의 두뇌는 정욱. 순욱 순유 야. 정욱은 조조보다 열살 넘어 연상이야. 순유는 또래고 순욱은 좀 더 어려. 즉 셋 다 고리타분해. 헌데 곽가.는 신세대걸랑. 머 황제자리 조조엉아가 하면 어때 하던 인간이걸랑. 황제자리 하지 마유 하는 소리에 조조가 빈도시락 주고 죽어라 한게 순욱이야. 순유도 반대했다니 마니 하고. 헌데 곽가는 그따위 정통성이 머라고 하걸랑. 헌데 이 곽가가 저때 원희 원상을 추격할때 풍토병으로 죽었어.
저 관도지전.에서 원소가 죽고 삼형제가 기주의 업성을 버리고 각각 그 주위 청주 유주로 튀어. 저 업성에 남아있던 여자가 둘째 원희.의 마누라 견부인이야.
建安九年(204年),冀州鄴城被曹操攻破,甄氏因有姿色,被曹丕所纳。
견부인이 그리 이뻤대. 조조 아들 조비가 내꺼하자 해. 조비가 위 황제되고 다음 황제가 이들 자식 조예.야.
조비의 동생 조식.이 견부인의 아름다움에 격해서리 지은 시가 낙신부.야
三国时代文学名家曹植的浪漫主义名篇《洛神赋》。《洛神赋》原名《感鄄赋》,一般认为是因曹植被封鄄城所作;亦作《感甄赋》,甄通鄄,但也有人认为其写作牵涉到曹植与魏文帝曹丕元配甄氏(即曹植之嫂)之间的一段错综复杂的感情。
낙신부.를 감견부. 라 해 또한. 견부인에 감해서 지은 노래. 형수걸랑. 헌데 말도 안된다 하지만. 견부인 빗댄거 같어. 보지도 않은 낙신을 저리 미화할 리가 없걸랑.
저 북쪽의 원소와 그 삼형제를 죽이고 북쪽땅 점령하고 지은게 업성의 동작대.
銅雀台,建於东汉建安十五年(210年)冬,位於鄴城(今中國河北省邯鄲市臨漳縣三台村),至今仍然保留有遺跡。
이게 다음 오나라 조조 전쟁때 제갈량이 동작대 빗대서리 주유 속을 긁어 조조랑 싸우게 하는거고 연의.에서
관도지전에서 원소에 의지하던 유비. 원소 별로걸랑. 유표한테 가는겨 아래 형주.에. 저기서 신야현. 지금 하남성 아래. 그 촌동네 자리를 주는겨 유표가.
201年(41岁),於官渡之戰大敗袁绍的曹操南攻汝南,劉備敗走棄城,並派麋竺、孫乾與劉表會面,劉表親自到郊外迎接劉備,待以上賓之禮,准他屯於新野。劉表表面雖禮待劉備,但内心對其有所顧忌
201년이야. 유표는 겉으론 극진했지만 속으론 꺼렸다는거지. 신야 현에 자리잡게 해줬다.
207년까지 조조는 원소랑 그 삼형제 잡으러 가는거고.
이때 유비는 삼고초려.하고 스무살 어린 제갈량을 모시는겨. 저당시 제갈량은 남양군.에 있었어. 당시 남양군이 저기 완.이라 쓰여진 곳이야 신야현에서 가까왔던거지. 东汉时,南阳郡仍属荆州部,南阳郡辖县和西汉大体相同,治所在宛县(今河南南阳宛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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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원소네 접수하고 이제 조조는 승상을 해. 建安十三年六月癸巳日(208年7月9日),被任命為丞相(原任司空. 사공 은 삼공 중 하나고. 삼공 위에 승상. 이야.
그리고 아래를 접수하러 가는겨. 영입된 제갈량의 본격적인 활약이야 적벽지전. 연의에서만의. 다 썰이지. 제갈량은 손씨네 부추겨서 조조 치라 하는거고.
장판지전과 적벽지전
长坂坡之战发生于中国东汉末年,曹操軍在荆州当阳附近的长坂坡追擊劉備軍。赤壁之戰之前哨戰。208年10月
장판교 전투는 적벽전투의 전초전.
적벽지전
208年七月—208年十一月나중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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