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oston Tea Party was an American political and mercantile protest by the Sons of Liberty in Boston, Massachusetts, on December 16, 1773

 

https://youtu.be/Q1dlqEgU3VA

 



보스톤 티파티 가 1773년 12월 16일. 이게 가장 결정적 사건이야. 이 전해에 개스피 어페어즈 가 있었고 그 2년전에 보스톤 매써커 가 있었지만, 정치경제적 인 정체성 이 별개 로 생기면서 터진거야 이건. 존심의 문제가 되어버렸어

다시 정리하지만, 똑같은 법적용을 하는거고 영국본토는, 북미에만 편협한 법적용을 하는게 아냐, 타운젠드 법들 이란것도. 그러나, 북미 인간들에겐 저런 세금 조항에 세금걷겠다는 본토의 간섭 관리 에 존심이 상하는거고 의외로, 이런건 영국본토에서는 웃긴거야, 쟤들이 마치 남의나라 시민 행세하는거거든. 또한 그만큼 아직 경제적으로 덜 성숙한거야 북미가. 똑같은 세금적용이 부담이 되는겨 여기 경제시스템에는.

보스톤 티파티 는, 북미 사람들입장에선, 이전에 티액트 란건 좋은거야 자기들에겐, 그런데 이게 쌩뚱맞게 정치적으로 선동이 되면서 터져버린거야. 이건 특정 피해입은, 간접무역하는 상인들 을 중심으로 해서, 여기에 선동좋아하는 정치인 룸펜들이 들러붙은 사건 일 뿐이야. 이게 커져버린겨 어찌할수 없이. 그리고 벼라별 과거의 노택스노레프리젠테이션 구호도 끄집어내면서 명분 코즈 를 만드는거고.

정작 티액트 라는, 동인도회사 살리기 위한 영국정부 의 지침 이, 시안한 흐름으로 가버린건데, 그래서 정작 티파티 는 영국본토에서 생각도 못한 사건이고 폭동인겨 저건.

저 티액트 란게 왜 나왔나,

티액트 가 저 당해 1773년 5월 10일 이야.


The British credit crisis of 1772-1773 also known as the crisis of June 1772, or the panic of 1772, was a peacetime financial crisis which originated in London and then spread to Scotland and the Dutch Republic in December.


이 시기가, 영국에 크레딧 위기 야. 1772년 6월에 터진. 이게 연쇄적으로 다음해 까지 이어간거야. 패닉이야 이건. 런던에서 시작해서 스콧이 완전히 파산하고, 이 여파가 네덜란드 까지 불어. 크레딧 이야. 이 크레딧 이란게 이전 국부론 설했지만, 이건 계좌이체 여 가장 근본적 개념이. 여전히 불리온 코인 시대에.

완벽하게, 페이퍼 머니 의 신용이 끝난겨 저때 일시적으로. 페이퍼 머니를 남발했거든, 불리온 코인에 기대지 않고. 그러면서 또한, 불리온 코인 을 직접 이고지고 다니면서 상업거래를 해야만 했어 저당시. 종이돈 을 전혀 못믿게 된 시절이 저때야. 이전에 남해회사 에 존 로 의 프랑스 미시시피 회사 는 저리 가라여 저 사건이. 오십년전에 발생한 버블은 걍 지나가는 거품인거고. 이 1772년 에 종이돈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서 금은 돈을 지니고 다니게 된거야. 그리고 나온게 국부론 이야. 아담스미스 는 이걸 그냥 책으로 이론으로 정리해준것일 뿐이야.

이 금융위기 1772로 인해 만든 법이 티액트 이고, 이 티액트 로 인해 쌩뚱맞게 터진 사건이 보스톤티파티 야. 이건 생각도 못한 폭동이고, 북미시민들은 전혀 반감을 갖을 이유가 없어 일반적으로는. 선동이 성공해서 미국이 독립을 한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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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2년 6월 에 시작된 크레딧 위기 의 시작 발화는, 영국 동인도회사 의 거의 파산지경까지 간 재무구조야. 얘들 주가가 폭락하면서, 투자자가 파산하고, 은행이 들어오는 페이퍼 빌 에 대해 지급정지 하면서 연쇄부도가 발생해 버린거야.

영국동인도회사 에 문제가 발생한거야 시작은.

The Bengal Famine of 1770 (Bengali: Chiẏāttôrer mônnôntôr, lit. The Famine of 76) was a famine that struck the Bengal region between 1769 and 1770 (1176 to 1177 in the Bengali calendar) and affected some 30 million people.[2] I

1770 의 뱅갈기근. 이게 이전해 1769부터 심각하게 발생한거고, 2년동안 저 지역에서 죽은 주민이, 누구는 삼분의 일, 누구는 절반, 누구는 그거 너무 과장이다 십퍼, 여하튼간 무지하게 죽은겨 기근으로. 3천만명에 영향주다 가 저 숫자가 죽은건 아닌거지만.

즉 1768년 부터, 크랍 페일러, 수확이 확 줄은거야. 이 여파가 삼년 걸친거고.

It occurred during a period of dual governance in Bengal. This existed after the East India Company had been granted the diwani, or the right to collect revenue in Bengal by the Mughal emperor in Delhi,[3][4] but before it had wrested the nizamat, or control of civil administration, which continued to lie with the Mughal governor, the Nawab of Bengal

저때가 마침, 뱅갈지역의 주권 이 둘이 공존할 때야. 델리 의 무굴 에 하미지 하는 나왑 이 저지역 내셔널리티 이고, 여기에 동인도회사 가 끼인거고, 얘들이 무굴 의 허가 하에 디와니 를 받아, 국세청 이야. 나왑은 이때부터 거의 네이션 단위 인거고 무굴에 협력하는. 무굴에도 어느정도 세금을 주는거지만 페르시아 와 전쟁때 지원도 하지만 거의 독립국가야, 무굴은 저게 싫은거고, 동인도야 니가 갖어 라는 의미없는 허가고. 이미 이 벵갈만 지역은 나왑 의 나라인겨. 이 방글라데시 라는 나라 의 지역이 피곤한 자리야 이게. 워낙 좋아서. 그래서 영국동인도가 여기서 자리잡고 캘커타 가 이쪽이고 여기서 인도 전부를 먹고 관리를 하는거야.

The Bengal Subah (Bengali: সুবাহ বাংলা; Persian: صوبه بنگاله), also referred to as Mughal Bengal (Bengali: মোগল বাংলা), was the largest subdivision of the Mughal Empire (and later an independent state under the Nawabs of Bengal) encompassing much of the Bengal region, which includes modern Bangladesh and the Indian state of West Bengal, between the 16th and 18th centuries.

벵갈 수바, 무굴이 통일하고, 수바 라는 단위로 프라빈스 러즌 주 야. 벵갈 주 이고, 여기 거버너 가 Subahdar 수바다르 야. 국세청 세금자리가 디와니. 수바다르 는 월급쟁이 일 뿐이고, 디와니 가 세금걷어서 무굴에 바치는겨.

Murshid Quli Khan (Persian: مرشد قلی خان, Bengali: মুর্শিদকুলি খান; c. 1660 – 30 June 1727), also known as Mohammad Hadi and born as Surya Narayan Mishra, was the first Nawab of Bengal, serving from 1717 to 1727.

무르시드 쿨리 칸. 이사람이 무굴에서 임명받은, 벵갈 수바 의 디와니, 이고, 이사람이 나중에 수바다르 도 받아서, 정치경제권력을 다 쥐는거야 무굴 황제 의 총애 로. 그래서 수바다르 와 디와니 를 겸해서 자칭 나왑 이라고 한거야. 이때부터 벵갈 의 나왑 이야. 그러나 여전히 무굴 의 공무원 일 뿐이야. 그런데 이 자리가 세습이 되고 그리고 전쟁해서 군주 쟁탈 하는거고.


The Battle of Giria were two battles that took place in Giria, an insignificant census town in Bengal, although not well known, were very significant in the history of Bengal and like the Battle of Plassey, had far reaching consequences. Murshidabad

3대 때에, 다이너스티 에 반격하는게 기리아 전투 야. 이걸로 새로운 피 가 나왑 이 돼. 여기가 무르시다바드 이고, 시작 나왑 이 무굴 에서 받은 자기이름 작명의 도시야. 지금 방글레데시 수도 는 다카 Dhaka, Dacca 이고 무르시다바드 가 옮긴겨 서벵갈 무르시다바드 로. 여긴 지금 인도 땅이야.

The Nawabs profited from the revenue generated by the worldwide demand of muslin trade in Bengal, which was centered in Dhaka and Sonargaon. Murshidabad was a major center of silk production.[17] Shipbuilding in Chittagong enjoyed Ottoman and European demand. Patna was a center of metalworks and the military-industrial complex. The Bengal-Bihar region was a major exporter of gunpowder and saltpetre.[18][19] The Nawabs presided over an era of growing organization in banking, handicrafts, and other trades.

나왑 의 벵갈 지역이, 당시 웨스턴이 오고, 경제적으로 최고의 도시야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들어가는 물건의 거의 절반 이 여기서 나간거로 봐. 모슬린 씰크 의 직조 원단. 서벵갈 의 치타공 은 선박제조. 군수복합체 제조. 화약 제조. 은행, 수공업, 기타 무역의 중심.

벵갈 만 이 델타 지역이고, 지금 똥물 최악의 강이고. 산업혁명 을 먼저 시작한 곳이야 저기가. 웨스턴에 의해.

The Battle of Plassey was a decisive victory of the British East India Company over the Nawab of Bengal and his French[1] allies on 23 June 1757, under the leadership of Robert Clive,

플래시 전투. 1757년. 나왑 벵갈 과 영국의 전투. 7년전쟁 1756-63 에 이 기간에 같이 벌어진게 벵갈 전쟁 이야. 이 벵갈전쟁 과 같이 끝나는게 이전에 시작했던 카나틱 전쟁 이야. Carnatic Wars 1746-63. 카나틱 지역은 인도 동남지역 해변이고, 영국과 프랑스 의 동인도회사들의 전쟁이야. 이게 모두 7년전쟁 의 영국 프랑스 에서 영국 승리로 끝나면서, 영국이 북미를 갖고 오고, 인도 땅이 영국 땅이 되는거야. 프랑스는 완벽하게 주저앉는거고. 이 7년전쟁 은 영국의 시대를 굳히는 전쟁이고 이 패배로 프랑스는 1789 대학살로 가는거야 이 여파가 지금 여전한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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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아 플래시 모두 서벵갈 이고 지금 인도땅이고, 여기가 핵심인겨.

Fort William is a fort in Hastings, Calcutta (Kolkata). It was built during the early years of the Bengal Presidency of British India.

포트 윌리엄 , 윌리엄 요새, 지금은 콜카타 이고, 영어 캘커타. 서벵갈 이야. 오렌지 윌리엄 이름을 딴거고. 이게 1696년 이야. 잉글랜드 동인도회사가 1612년 에 들어오고나서, 84년만에 자기들 요새 를 짓는겨. 이때까지는 모두 유럽애들은 팩토리 라는 무역공간 을 해변에 받아서 수출입한거고, 아마 여기에 거주지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요새를 지은거지.

이때부터 여기가, 영국의 인도 지배의 수도 가 되는겨 20세기 영국의 인도 끝날때 까지인 1947년.

The Bengal Presidency, officially the Presidency of Fort William and later Bengal Province, was a subdivision of the British Empire in India. At the height of its territorial jurisdiction, it covered large parts of what is now South Asia and Southeast Asia. Bengal proper covered the ethno-linguistic region of Bengal (present-day Bangladesh and the Indian state of West Bengal). Calcutta, the city which grew around Fort William, was the capital of the Bengal Presidency. For many years, the Governor of Bengal was concurrently the Viceroy of India and Calcutta was the de facto capital of India until 1911.

공식이름이 포트윌리엄에서의 프레지던시, 편하게 벵갈 프레지던시, 후에 벵갈 프라빈스. 인도의 영국제국의 하부단위 라지만, 즉 영국의 인도구역을 여럿 나눌때 그중 하나가 벵갈 주, 라는거야. 각 지역별로 영국이 또한 거버너 들을 두는거야. 그러나, 벵갈 의 거버너 가 대게 영국의 인도 전체 의 거버너 를 겸임을 해.

Sir Charles Eyre (died 1729) was an administrator of the British East India Company and founder of Fort William, Calcutta. He was a President of Fort William.[1][self-published source?]

찰스 에어, 가 여기 첫 거버너 야. 포트윌리엄을 세웠고, 포트윌리엄의 프레지던트 이고, 이 자리는 공직 이야. 여기서, 동인도회사 를 영국정부에서 관리하는겨. 그러다 벵갈 프레지던트 니 거버너 가 되는겨 이 자리가.

저당시 까지는, 영국정부에서는 다른 유럽과 마찬가지로, 걍 팩토리 야. 무역할 안전한 거주지 만 있으면 돼. 그러다가 여기서 당연히 유럽애들끼리 다툼이 되고, 대륙본토에서 전쟁하면 바깥에서도 전쟁이 되는거고, 바닥에서 상권으로 서로 부딛힐 수 밖에 없는거고, 그게 카나틱 전쟁 이었고.

7년전쟁이 벵갈전쟁으로 벌어지고, 인도 권력도 저 전쟁을 기회로 외세를 몰아내려는겨 저게. 전혀다른 인간들이 섞이다 보면 불만이 생기는거고. 이전에 포르투갈이 여기있다가 쫓겨났거든 무굴애들에게. 얘들은 노예장사를 했어.

플래시 전투 가 결정적이고, 영국이 나왑 의 벵갈 을 그냥 갖고 오는겨 직접. 이게 영국이 인도에서 영토확장으로 가는 분기점이야. 여기가 아주 알짜배기 지역인거거든 어쨌거나. 벵갈만 에, 서벵갈 이라는 인도 겐지스강 하류야.

이때부터, 관리체계가 필요한거야. 영토가 생기고, 거버넌스 를 해야 해. 이전과는 이게 전혀 다른거야 개념이.

Company rule in India (sometimes, Company Raj,[6] from Hindi: rāj, lit.'rule'[7]) refers to the rule or dominion of the British East India Company on the Indian subcontinent. This is variously taken to have commenced in 1757,

이게, 인도에서의 컴퍼니 지배 야. 동인도 회사 가 7년전쟁 중 벵갈 전쟁에서 나왑의 벵갈을 이기고 거버넌스 를 해야 해. 이게 1757년 이야. 플래시 전투 승리하고 나서야 이게. 그러면서 7년전쟁에 벵갈전쟁이 끝나는거고.

백여년 이상 그냥 팩토리 로 있다가, 지배 개념으로 확장이 된거야 이게. 이때 당연히, 포트윌리엄의 프레지던트 가 이 지역 벵갈 의 거버너 로서, 정부에서, 동인도회사 를 관리하는겨 간접적으로.

그러다가, 점점 벵갈 지역에서 계속 부딛히면서 확장 이 되는거야 영토가, 갠지스강 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행정구역을 나눠야 하고, 거버너들이 더 등장하고, 각 지역별로 동인도회사를 정부에서 관리하는 공무원들이 생기는거고, 이게 커지는겨.

The Governor-General of India (1773–1950, from 1858 to 1947 the Viceroy and Governor-General of India, commonly shortened to Viceroy of India) was the representative of the Monarch of the United Kingdom and after Indian independence in 1947, the representative of the Indian head of state. The office was created in 1773, with the title of Governor-General of the Presidency of Fort William.

저와중에 생긴 체제가, 거버너 제너럴 이야. 인도 담당 영국 거버너들의 대장 거버너 야. 이게 1773년 이야. 이건 동인도회사 를 관리하는 공무원 개념이야. 이사람은 당연히, 포트윌리엄의 거버너 를 겸하는거고 일차로 벵갈 담당자야 그래서.

The British Raj (/rɑːdʒ/; from Hindi rāj: kingdom, realm, state, or empire[2][a]) was the rule of the British Crown on the Indian subcontinent from 1858 to 1947.[4][5][6][7] The rule is also called Crown rule in India,[8] or direct rule in India.[9]

그리고나서, 1858년 부터는, 영국정부에서 직접 다스리는겨. 이걸 브리티시 라지, 라고 해. 크라운 이 직접 지배해. 이때부터는 저 거버너제너럴 이, 벵갈 주지사 이면서 인도 전체 영국정부 대리인 이야. 회사하는거만 관리하다가 바로 직접 지배하는겨. 그리고 이때부터는 영국본토 에서, 인도장관 이 따로 내각에 등장을 하는거고. 이게 1947년까지 가는거야.

이미 1800년 지나면 인도 지역 대부분이 영국의 땅으로 들어와. 당연히 해변의 팩토리에는 프랑스 네덜란드 포르투갈 덴마크 의 팩토리들은 있는거고.

Historians have offered numerous explanations for the rapid collapse of the Mughal Empire between 1707 and 1720, after a century of growth and prosperity.

무굴제국은 이미 서기 1720년에는 쇠퇴야. 즉 이때 등장한게 벵갈의 나왑 이야. 무굴이 시작하고 2백년도 안되서 저무는거고 쇠락기를 1백년 지나서 지워진거야 영국에 의해.

The Maratha Empire or Maratha Confederacy was a confederacy that came to dominate a large portion of early modern India in the 18th century. Mahratta rule formally began in 1674[note 1] with the coronation of Shivaji as the Chhatrapati (Mahratti; "Keeper of the Umbrella"). Maratha rule officially ended in 1818 with the defeat of last Peshva named Bajirao II at the hands of the English East India Company.

무굴제국 서고 150년지나 1674년에 등장한게 마라타 제국 이야. 데칸고원 서쪽 해변 인도 중부이고. 얘들이 강력해. 무굴이 내륙에서 힘없는 서기 1700년 지날때 얘들 세상이고 이들이 동쪽으로 나왑의 벵갈 까지 수차례 침입해서, 나왑이 얘들한테 조공 바치는 거야. 얘들이 1818년에 지워지고, 무굴은 1857년 이야.

마라타 는 동인도회사 체제에서 지워지는거고, 무굴도 마찬가지고, 무굴이 지워지고, 바로 다음해 에 영국크라운이 직접 지배하는 체제로 가는겨 이 흐름이.

The Bengal Famine of 1770 (Bengali: Chiẏāttôrer mônnôntôr, lit. The Famine of 76) was a famine that struck the Bengal region between 1769 and 1770 (1176 to 1177 in the Bengali calendar) and affected some 30 million people

자 그럴때 다시 1770년의 벵갈 기근으로 돌아가자고. 이때 동인도회사 가 디와니 , 국세청 자리를 무굴에서 받았다는건 이미 무굴은 쇠하는 애들이고, 수바다르 라는 수바 주 의 다스림 자리, 니잠 이라고도 해. 나왑 은 디와니 더하기 수바다르 인거고. 이미 1757년 플래시 전투 에서 패하고 벵갈전쟁 에 상대는 이 나왑 이야. 얘들이 영국에 패하고 퍼핏 이 된거야 말 잘듣는. 그런데 이 영국애들이, 디와니 를 하겠다는건, 세금징수권 을 자기들이 챙긴다는겨 이건. 수바다르 인 정치만 나왑이 해라, 니들 나라 의 땅의 세금은 우리가 챙기겠고, 이건, 동인도회사 가 니덜 예산에 월급 도 주겠다는거고, 정말 웃긴 말이야 ㅋㅋㅋ. 정치는 니덜이 해라 세금은 우리가 챙기겠다.

당연히 본토 나왑 애들은 자기들의 세금징수권을 포기못하는거고, 이게 지역민들에겐 이중 과세 가 되는겨. 흉년이 될 수 밖에 없어. 누가 일을 하겠냐고 저런 조건에서.

이와중에 터진게 벵갈 기근 이야. 그리곤, 나왑 권력 애들은 완벽하게, 동인도회사 가 주는 월급 으로만 생존 하는겨 이게.

이 벵갈 기근으로 인해서, 동인도회사 창고 에 물건이 안들어오는거고, 팔 물건이 없으면서 손실 이 나고 당연히, 이게 주가가 폭락을 하는거야.

이 전에, 주가는 대폭등이 된 상태야. 7년전쟁으로 온 세상이 영국땅이 되면서, 동인도회사 주가는 하늘을 찌르는겨. 이게 바로 곤두박질을 쳐 저 벵갈대기근 1770 으로.

저 주가가 폭락하면서, 파산이 시작되고, 은행 들 지급정지 가 연속이 되고, 페이퍼머니 로 주고받던 상거래가 마비가 되고, 다시 사람들은 불리온 코인을 짊어지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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