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annis Vlachos (Greek: Ιωάννης Βλάχος), better known as Daskalogiannis (Δασκαλογιάννης; 1722/30 – 17 June 1771) was a wealthy shipbuilder and shipowner who led a Cretan revolt against Ottoman rule in the 18th century.

이오니쓰 블라코쓰. 다쓰칼로기안니쓰 로 더 잘알려진. 오를로프 리볼트 때 크레테 섬의 리더 야. 부유한 선박제조업자에 선주 였고.

"Daskalos" (teacher), hence his nickname Daskalogiannis, literally "John the Teacher."

이사람 아빠가 자식을 외국에 유학 시켜. 배웠다고 해서 사람들이 다쓰칼로쓰, 가르치는 이, 이오아니쓰 가 요한 의 그리스어고, 선생 존.

크레테 섬이 8500제곱키로야 무지 커. 수도 가 헤라클리온 이고 북쪽 해변이야. 이사람은 as chairman of the region of Sfakia in 1765, and as the owner of four, three-mast merchant ships 스파키아, 남쪽해변 사람이고 이 지역의 최고 인겨. 마스트 세개인 상선 네 척의 선주.

1770년 초에 러시안 애들에게 컨택 되는거고, 오를로프 가 아주 적극적으로 모레아반도 에 크레테 에 가서 선전을 한거야. 그래서 러시안이 내륙에는 지원을 했는데, 정작 여기 크레테 에는 오지를 않아. 여긴 3월부터 시작을 해. 내륙은 6월부터 고. 러시아가 여기까지는 지원할 병력이 안된거지

The uprising began on 25 March 1770, with the flag raised at the church of Agios Georgios of Anopolis, and for a short time, parts of Crete had the attributes of an independent nation, including its own coins minted in a cave near Hora Sfakion.

교회에 깃발을 세우고, 자기들 동전도 만들어. 집단정체성의 핵심은 동전 도안 이야, 깃발과 함께.

조선민국의 집단정체성은 이씨조선 이고 유교 인거고 현재 여전히.

Without outside support, it was put down brutally by the superior Turkish forces of the island, which easily defeated the 1,300 rebels. Sfakia was for the first time fully dominated by Turkish forces. Daskalogiannis surrendered with 70 men at the castle of Frangokastello near Hora Sfakion.

크레테 섬 전지역으로 확산되지도 않고, 스파키아 지역만 일어난거야. 1300여명. 다스칼로기아니스 는 70명과 함께 항복하다.

he was tortured outside Heraklion's harbor fortress, skinned alive, and executed on 17 June 1771.[6] He is said to have suffered the torture in silence. The Turks forced Daskalogiannis' brother to watch the torturous execution, which allegedly drove him insane

크레테 가 마지막 인겨 오를로프 리볼트 의. 이미 이전에 체쉬메 해전 전투 에 오스만이 대패한거고. 이 패배의 분위기에서 오스만애들이 크레테 에서 복수를 하는거야. 1771년 6월 17일에 사형을 시키는데, 북쪽 해변 헤라클리온 수도 에서, 사람들 많은 자리에 본보기를 보이는거지. 스킨드 얼라이브, 산 채로 가죽을 벗기는겨. 형제 가 보게 하고 이사람은 미쳐버린 거고.

Flaying, also known colloquially as skinning, is a method of slow and painful execution in which skin is removed from the body. Generally, an attempt is made to keep the removed portion of skin intact

플레잉,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이는거야. 이건, 사람 피부 전체를 벗기는겨.

동물 모피 만드는 가죽 제거 를 스키닝 이라고 해. 이걸 인간에게 적용하는게 플레잉 이야. fly 플라이 피부 거죽 만 남기고 날라갔다는 거고, 비꼬는 말로 플레잉 하는거지.

이건, 능지 처참 할때 의 능지 라는 것과는 다른거야.

Already from the times of Ashurnasirpal II (r. 883–859 BC), the practice is displayed and commemorated in both carvings and official royal edicts.

앗시리아 앗수르-나르시-팔 2세. 가 도시들 재정복하고 그 리더들을 가죽을 벗겨서 세워둔 기둥에 옷입혀 걸어놓는겨. 이집트와의 전쟁도 있어.

The Rassam cylinder is a cuneiform cylinder, forming a prism with ten faces, written by Neo-Assyrian king Ashurbanipal in the 7th century BCE, in 643 BCE. The cylinder was discovered in the North Palace of Nineveh by Hormuzd Rassam in 1854, hence its name. It is located in the British Museum.

랏삼 실린더, 기원전 643년, 앗수르바니팔 킹에 의해 쓰인 큐니어폼 실린더. 여기에 2백년전의 저 킹 이야기가 쓰여있는겨. 서기 1854년 호르무즈 랏삼 이 발견해서 랏삼 실린더 이고, 이사람이 유명한 앗시리아 학자고, 길가메쉬 의 점토판 도 이사람이 발견한거야.

실린더 라는게, 그리스어 이고, 구르다 에서 나온, 원통 으로 가는단어야. 여기서 이어진게 칼렌타 calendar 야. 달력. calender 칼렌더 라는, 옷감에 종이 만드는 기계와 레터 가 달라. 이 기계역시나 둥근 원통으로 압축하는기계고.


DimensionsDiameter: Diameter: 20.32 centimetresHeight: Height: 48.89 centimetresWidth: Width: 6.35 centimetres (average column) (average column)

  • Inscription type: inscription
  • Inscription position: sides
  • Inscription script: cuneiform
  • Inscription note: Inscribed in 1304 lines with the 1st-9th campaigns of Ashurbanipal, and the construction of buildings in Nineveh.


저 실린더 가 지금 영국박물관 에 있는데, 박물관 사이트 의 내용 이야 위키에 없어서. 싸이드 가 팔면 이야. 여기에 글자가 새겨진겨 인스크립션. 자기의 원정기 아홉게 배틀 이야길 쓴거고, 나머지는 니네베 를 건축하는 이야기 야.

니네베 를 이때 만든게 아니고, 앗수르바니팔 이 수도를 이리 옮기면서 확장한 거고. 앗시리아 는 이 킹 이 죽고 20년 지나서 Nabopolassar 나보폴랏사르 에 의해 망해. 그리고 서는게 칼데아 라는 뉴바빌로니아 야. 원래 여기는 앗시리아 의 지배였고 반기를 들고 앗시리아 지우고 바빌로니아 를 새로 세운거야.

저게, 직경이 20센티 고, 높이가 50센치 되는거고, 글써진 팔면이 각각 6.35센치 야. 걍 좀 큰 장난감 같은 느낌이고, 저 실린더 돌판이 일종의 책 인거야 저 당시에. 저 돌판 이란건, 가장 오래 가는 책이야. 또한 팔면으로 깎아서 만든 , 중앙 코트 의 귀한 책이여 저런 실린더는.

저 고대 수메르, 저기가 가장 재밌는겨 저게.


Ashurnasirpal II. (r. 883–859 BC), 플레잉 을 했다는 앗수르나시르팔 2세.

시리아, 라는 지금의 단어는, 앗수르 에서 시작한거야. Ashur, Ashshur, also spelled Ašur, Aššur 아수르 앗수르 가 기원전 2000년의 시작 올드 앗시리아 의 도시 야. 바빌로니아 는 이 다음에 아래에 세워진거야. 앗시리아 가 먼저고, 뒤의 뉴 붙는것도 앗시리아 가 지배자고, 이걸 엎은 나보폴라사르 가 바빌로니아 를 세우면서, 이게 아카이메네스 로 들어가는겨.

올드 앗시리아에 다음 바빌로니아 이전이, 길가메쉬 서사시 의 길가메시 여. 그러나 길가메쉬 란 이름은 목록에서 초기 왕조시대인 청동기 시작하고 그 직후에도 등장을 해. 아카드 가 등장하고 이 아카드 를 세운게 사라곤 이야. 사라곤의 아카드어족 이 초강력한거고, 아카드 가 지고 나서 길가메쉬 가 나오고, 그다음이 올드 앗시리아 에 바빌로니아 야.

앗수르 는 도시 이름이고, 아슈르 는 여기서 깨진 단어야. 저들의 신 이야. 이 소리를 그리스어로 가서 지금의 시리아 가 된거고. 앗수르 의 아래가 니네베 여. 원래 있던 도시고, 저때킹이 수도를 니네베 로 옮겼다는거고. 모두 티그리스강변 상류에 중류 여.

네오 앗시리아에 사라곤 다이너스티 는 아카드 의 사라곤 을 딴거야.

쟤들은 저때, 피부를 전체를 그대로 벗겨서 말뚝에 걸어놓고 전시를 한거야 겁박하려고. 내용을 보면 칼질 시작을 아래에서 하다, 아마 발아래 나 허벅지 에서 로 보이는거고.

Searing or cutting the flesh from the body was sometimes used as part of the public execution of traitors in medieval Europe. A similar mode of execution was used as late as the early 18th century in France; one such episode is graphically recounted in the opening chapter of Michel Foucault's Discipline and Punish (1979).

이걸, 미셸푸코 가, 유럽중세 에 했다면서, 18세기 까지 어쩌고, 그래서 유럽나뽀, 이 프랜치 애들이 참 미개한건데, 저건 플레잉 이 아냐. 반역자들 대상으로 걍 칼질하고 드러내서 내면을 보이게 할 뿐이야 이건. 얘들은 정확히 그 목록 이 있어. 예전에 내가 일이백여명 본거 같은데. 저건 대륙엔 거의 없어 상대적으로. 저건 개무식했던 잉글랜드 게르만 애들에서 벌어진 목록 이야.

In 1303, the treasury of Westminster Abbey was robbed while holding a large sum of money belonging to King Edward I. After the arrest and interrogation of 48 monks, three of them, including the subprior and sacrist, were found guilty of the robbery and flayed. Their skin was attached to three doors as a warning against robbers of church and state

플레잉 자체로 거의 손에꼽을 기록으론, 서기 1303년에 에드워드1세 의 돈이 웨스트민스터 금고에서 강탈당한거고, 이때 48명의 몽크들을 수사하고, 책임자 인 서브프라이어, 는 원장 이랑 그 밑에 부원장 인거고, 새크리스트 는 물품관리인 이야. 이 셋을 가죽 벗겨서 문에 붙이다.

이게 거의 유일한 거야 이게. 나머지는 플레잉 이라고 볼 수 가 없어. 걍 가죽 들춰낸거야.

소위 유럽 진보 자연 하는 애들이 중세유럽 부정하면서 저런 걸 증거로 내밀거든

얘들은, 스텝애들의 잔인함 을 전혀 몰라. 특히나 이 극동의.

이전의 한고조 마누라 여치 이야기의 인간돼지 하며, 이런건 유럽역사에 없어. 이런 인간잔인함의 짓들은. 이런게 첩질 을 당연시 하고, 첩질은 복지유 해대는 인간의 말을 21세기에도 깔깔대며 듣는 여자들의 이 나라, 참 끔찍한 무지 미개 인데 이게. 이 첩질 로 인한 여자들의 잔혹사, 정부인의 잔혹한 짓들은 유럽에 없어. 이게 심양전서 이야기고 노예로 청나라 끌려간 조선여자들의 참혹사 이고. 중국몽을 꾸는 조선민국 민족 애들은 너무나 자랑스러워 하는 거라 중국님들 대사관 앞에 가서는 사과하라는 말은 절대 해선 안되는거고, 만만한게 양키 가 배후인 일본애들인거고. 그리곤 그런 돈 걷어 또 조선인학교 라는 조선 을 지원하는거고, 아 위대해라 조선.

In Chinese history, Sun Hao, Fu Sheng and Gao Heng were known for removing skin from people's faces.[6] The Hongwu Emperor flayed many servants, officials and rebels.[7][8] In 1396 he ordered the flaying of 5000 women.[9] Hai Rui suggested that his emperor flay corrupt officials. The Zhengde Emperor flayed six rebels,[10] and Zhang Xianzhong also flayed many people.[11] Lu Xun said the Ming dynasty was begun and ended by flaying.


순 하고, 푸셩, 가오 헝, 삼국지 위촉오 의 오나라 손호, 오호십육국 전진의 부생, 북제의 후주고위의 아들 고항 은 얼굴가죽 벗기기로 유명하다. 홍우 홍무제 주원장은 5천명의 여인들을 플레잉 하라고 지시했다. 하이 뤼, 해서 가 나중 쓰길 주원장은 부패 공무원들을 플레이 했다. 쩡더 정덕제 는 여섯 반란자들을, 명말기 서나라 세운 짱씨안쫑 장헌충 도 많은 사람들을 했다. 인의도덕 네글자 로 사람죽이던 극동의 유교 라던 루쉰 이 말하길, 명나라는 플레잉 으로 시작했고 마무리도 플레잉 이었다.

조선 민국에서 하나님으로 여전히 중국과 유교 의 명나라를 떠받드는 실체 가 저거다.

剝皮(skinning) 박피 라는 걸로 인간 플레잉 을 설명하는데, 扒皮 플레잉 은 중국어로 빠피 야. 배피.

相傳在中國古代,將受刑人身體埋入沙中(只留下頭部),防止掙扎,並在其頭上開個小洞,再將水銀貫入洞裡,水銀的重量會將其皮肉分離,進而取得受刑人的皮

중국 고대에, 저게 먼말이냐면, 죄수 의 몸을 모래속에 묻어, 머리만 나오게 하고, 쟁찰 이 쩡짜, 발버둥 치는걸 못하는거고. 그리고 머리정수리를 작은 구멍이 나게 짤라. 여기에 수은 을 부어. 수은이 가죽과 살덩어리를 분리시킨다는거고, 이렇게 해서 사람의 가죽 을 얻다.

在中古時的歐洲,有在公眾面前把背叛者的皮膚或血肉割下的刑罰,這種刑罰一直到了17世紀仍然有在法國執行。

유럽애들도 이런걸 했다 라고 저기에 쓰지만, 반역자 들 대상으로 칼 거서 걍 드러낸겨. 프랑스 보다는 이건 잉글랜드고. 목록이 있어 얘들은. 이건 플레잉 이 아냐.

在明初,朱元璋立下重典,官員貪污60兩銀子,一律押往府州縣衙門左邊的土地廟,設有「剝皮亭」,處剝皮實草之刑,也就是說 被剝皮者的皮膚還會被填入草料,吊掛在官府,用以警告其他的官員。剝皮時如果讓被剝皮者早死了,又規定:「有即斃者,行刑之人坐死。」(葉子奇草木子餘錄》)

주원장 이 법으로, 60량 은자 를 탐오 횡령 한 관원 은 부주 현아문 좌측의 토지묘 인 박피정 으로 데려와서, 박피 에 초지형 이야. 벗겨낸 피부 를 재활용해서 여기에 초료, 여물을 담아서 가축 먹이로 줘. 만약 박피 하는데 죄인이 일찍 죽으면 그 형 집행자 도 같이 죽어. 고통을 오래 가게 한 상태로 벗겨야 해.

저건, 박피 에 플레잉 이야.

우리가 아는 능지 는 저게 아냐. 얘들은 박피 도 하고 따로 능지 도 하는겨 이게. 이 능지 를 조선 에서 또한 해온거고, 사람 목짜르는게 흔한 조선오백년 이고. 이런걸 이 조선사가들은 전혀 입뻥긋 안하고 위대한 조선 해대는데

凌遲,或稱陵遲[1]寸斬磔刑,俗称千刀万剐碎尸万段寸鱗之死,是中国古代刑罚,也是人類歷史上頗殘酷的死刑之一,具體執行為由劊子手以利刀將受刑者身上的皮肉逐塊切走,由數百至數千切不等。受刑者往往要忍受數小時的痛楚才會失血而亡。此種死刑亦有一定讲究性,如果受刑者過早死亡,行刑會被視為失敗,劊子手亦有可能因此而遭處分。一直到1866年,在英國駐華使館參贊威妥瑪的建议下,清政府同意不对洋人交出的中国人犯实施凌迟,而对中国人抓捕的人犯实施凌迟酷刑一直延续到1905年。

능지 라는건, 언덕능 에서 와. 언덕 올라가는길 천천히 가는거고. 촌참, 책형, 이건 회 뜨듯이, 조각조각 떼는거야. 천도만과, 천번 칼질과 만개의 도려냄질. 쇄시만단, 갈아버려 시체를 만 단락으로. 비늘 린, 이야, 마디마디 비늘 뜨듯이 해서 죽여.

명나라 때 능지 는 너무나 흔한 일상인거고
.

이 중국사 는 아주 너무나 흔한 이야기가 육장 의 장조림 이야. 사람 고기로 다지기. 고대사 부터 너무나 너무나 흔해.

Lingchi (simplified Chinese: 凌迟; traditional Chinese: 凌遲), translated variously as the slow process, the lingering death, or slow slicing, and also known as death by a thousand cuts, was a form of torture and execution used in China from roughly 900 CE up until the practice ended around the early 1900s.
웨스턴 애들이, 극동와서 보고 놀랜게 저거야. 링치 라고 중국소리를 그대로 써. 몰라 이런걸. 선교사 들을 이렇게 해서 죽이는겨 이게.

An 1858 illustration from the French newspaper Le Monde illustré, of the lingchi execution of a French missionary, Auguste Chapdelaine, in China

저 장면을 보고 신문에 그린 그림 이 있어.

저건 너무나 흔한 이야기라 내가 설명을 생략 을 해.

이 중국 몽 을 꿈꾸자면서, 그것도 한나라의 권력자 가. 야 진짜 저건 자기 국민 전체에 대한 모독이야. 자기나라를 철저하게 비하하고 남의 나라를 주인님 떠받드는, 세상 역사에 어떻게 저런 리더가 있었냐, 조선 의 피 기에 가능한거야 저게.

조선 민족주의 란게 참 싄기한거야. 특히나 여자들.

하멜표류기, 자살하는 조선, 남편 죽였다는 죄의 여자를 목만 나오게 하고 파묻고 지나가면서 톱질을 해야해 죽을때까지. 어머 그거 일본이야기예요, 위대한 조선에 그런 거 없어요 조선 실록에 없는 역사는 거짓역사예요 남이본 이야긴 거짓말이예요 고립 된 위대한 킹덤 의 우리 말만 듣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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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열렬히 조선 위대해 들 하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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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가죽 벗기는 플레잉 을 칭기스칸 애들이 또한 해. 이 스텝 애들이 너무나 잔인해.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너무나 약하고 비굴한 애들.

바그다드 점령할때 사람들 가죽을 벗겨서 지푸라기로 채우고 공을 차고 허수아비 놀이를 해.

저런 걸 처음 접한 레반트 사람들이, 공포 에 떠는거야. 정말 이들에겐, 사탄 에 악마 여. 저런 이야기로 이들이 초기에 사기가 사라지면서 당한거야. 이게 역시나 아틸라 이야기야. 저렇게 잔인한 애들은 처음 접해봐. 얘들은 민간인들을 아주 악랄하게 죽여.

그런데, 막상 몇번 싸워보니까, 별것도 아닌 애들이, 잔인하기만 한겨 ㅋㅋㅋ. 칭기스칸 애들은 끽해야 동유럽 슬라브 에 아래 슬라브 투르크 들만 찝쩍 댄거야 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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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짓을, 오를로프 리볼트 의 저 크레테 섬에서도 , 저런 짓을 하는겨. 이 오스만 투르크 라는 스텝 인간들이.

저런 인간들에게, 형제의 나라여 어쩌고 해대고, 정작 니가 여기고 싶은 형제는 니들보다는 일본애들 좋아한대 ㅋㅋㅋ.

약자에겐 잔인한 애들이, 자기들 은 위대한거고, 잔인하게 당한 피 들이, 잔인한 것들을 떠받드는거고 위대하다며.

불쌍하지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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