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 의 트락타투스 일곱문장 을, 우리말로 설명할 수 있는 인간은 없을 텐데, 물론 나 빼고.
저게, 참 재밌는 문장들이야. 물론 비트형은 마지막문장 에 방쩜을 두는거지만, 솔직히 마지막 문장 이란건, 의미가 없는겨 저건. 의미가 없다는건, 머 다 아는거 확인해주는겨 머여 해대는거거든. 소위 불신론자 들을 위한 문장 일 뿐이야. 말할수없는것에 침묵하라. 표현말라 거든. 어쩌라고? 이미, 신에 대한 불신론은 중세 천년 을 지나서 유럽에 팽배 한거야. 그러나 통계상으론 1차대전 직전까지 90퍼 는 그리스도 의 크리스찬이야. 아무리 신을 부정해도 자기들은 크리스찬 이라고 믿어 유럽 인간들은. 이게 월드워 두개 터지고 나서, 절반으로 떨어진겨 지금. 이후 삼차대전 으로, 신은 확실히 죽는거야, 이 삼차대전 이란건 곧 일어나, 일이백년 안에. 그리고, 이 극동 은 사라지는겨. 중국과 조선 은 이건 악 그자체야 이건. 이슬람과 함께. 이 유교 와 이슬람 그리고 불교 또한, 이건 정말 끔찍한 신학 이야 신학. 너무나 후진.
모든 진영에서, 신성 의 앱스트랙트 를 취한겨. 이게 저마다의 세상에서 의 종교 야 현재.
지저스 싯달타 무함마드 공자 노자 이게 동격의 에이전트 고 핑게 고 매개체 야. 하물며 유대교의 여호와 야웨 란 것도 같은 앱스트랙트오브젝트들 이야.
쟤들중 어떤 앱스트랙트 가 잘했나 옳은가, 이게 중요한게 아냐.
쟤들은 걍, 매개체 야. 쟤들을 통해서, 보이지않은저무엇 이 실현하는 세상 을 이해하는 거거든 2천년을,
쟤들 저 개체 들이 어떤 이 인가는 중요한게 아냐. 쟤들을 통해서, 어떤 신학을 만들었나 가 핵심인겨.
서유럽애들의 그리스도 신학 만이, 생각을 한거고, 보다 깊숙히 넓게 나간겨 이게. 이게 비트겐슈타인 까지 온거야.
그외 다른 이들은, 쟤들을 매개로, 자기들만의 세속권력놀이 를 즐겼을 뿐이고,
신을 인격적으로 믿는게 참 미개한건데, 그런데 말이지, 또한 한편으론, 아니 그렇다고 인격성을 부여하지 않으면 어쩌라는겨? 이게 졸라게 애매한겨. 무릎꿇고 굽신대미 로어드 로어드 지저쓰 피에예수 이 외에 시발 다른 믿음의 방법이 어디있냐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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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경험한 것 만을 말하는데 말이지,
내가 한창 절에 다닐때, 내가 극락전 거 아미타불 있고 명부들 들고 있는, 거기엘 잘 갔는데 난.
웃긴게 말이지, 쥐, 생쥐 가 한마리가 저 구석탱이에서 나오는겨. 나는 오른쪽에 있었거든. 이 쥐가 졸졸졸 오더니, 가운데 아미타불 앞에서, 즉 내 왼쪽 에서, 나는 전혀 관심도 없어 이 쥐 가 ㅋㅋㅋ. 이 쥐 가 말이지, 앞 두발을 번쩍 들고 서서, 두발을 사람이 두손 빌듯이 비비면서 비는겨. 쟨 진짜 기도를 한거야 나는 전혀 신경안쓰고. 쥐가 시바 옆에 내가 있는데, 싸이퍼 취급하고 두발 로 서서 고개 쳐올리고 앞두발로 비는겨 일이분을.
그거보믄 어떤 생각 이 들었으까?
열받는겨 내가. 저 쥐가 사람 짓을 하는 모습에. 그래서 내가 걜 내쫓았어 저 샹노믜 쉌. 걔 모습이 톰과제리 의 그 제리랑 똑같았거든.
그런데, 지나고 보니까, 대체 내가 왜 열받은건지, 미안하잖겄어? 걔도 빈다는데 내가 머라고, 그절도 내꺼도 아니고 나도 객인데.
내가 하는짓 을 저 생쥐가 하는것에, 내가 기분나빴던거지. 내수준이 끼해야 쥐수준인거였지.
인간의 신앙질 이, 쥐 와 다를게 없어.
개도 빌어. 쥐도 빌듯이.
이미지 앞이든, 이미지 없이든, 비는 의 너 는, 쥐 와 동급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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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주님 부처님 하는건,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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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 의 방쩜은, 마지막 문장인데, 이 마지막 문장 을 끌어내는 논리 가, 비트겐슈타인 만의 독보적인 것이고, 그야말로 획기적인 거야 이게. 너무나 신선한 것이고.
비트겐슈타인 이 왜 중요한가는, 비트형 때문에, 문법, 언어 라는 것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겨.
극똥에서 이 비트 말이 대체 먼소린지 모르는건, 저걸 한글로 번역하는 애들도, 단지 구글 번역기 짓 하는겨 저게. 글들은 무진장 한글로 써대서 마치 아는척, 왜냐면, 조선어족 만 따지자고, 언어 에 대한 학습이 전혀 안된 곳이야 우리가.
언어가 지능의 시작이자 끝이야. 언어학 이 가장 중요하고 핵심이야. 언어가 먼지 몰라. 언어의 법 랭귀지 로, 라는 문법 을 전혀 몰라. 오직 옆의 일본어가 만들어준 문법을 몰래 껍데기만 뻬껴 쓰는 그야말로 비참한 지능의 애들이 이 조선어족 애들이야. 얘들이 번역한 단어들은, 모두 일본 한자 단어의 한글 발음기호 여.
한글이란건, 발음기호여 발음기호. 의미라는 미닝 은 누가 갖은겨? 일본애들의 단어가 갖고 있는거야. 그걸 단지 한글발음기호 로 읽는겨. 참 비참한겨 이게. 이런 너무나 비참한 수준 의 상황 을 그대로 전달해서 알려주고 시작을 해야 하는데, 이들이, 너무나 열폭질에 쩔어서, 치장 하고 위선 떨기 바빠서, 할 엄두를 못내는거지.
. 본론만 말하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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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형의 마지막문장 이 나오는 그 근거는 말이야,
세상은 화면이고, 화면은 생각이다.
이 문장 하나여. 비트형은 이 문장 하나 도출하셔서 위대하신겨.
비트형 때문에 생긴게, 쎄만틱스 라는 의미란무엇인가 이고, 필로소피 라는걸 근본적으로 다시 시작하게 되는거야. 신학 이란걸 다시 바라보게 되는겨 이게.
비트겐슈타인 과 칸트 를 연결해서 보는 애들이 없을텐데, 아 왜냐면, 칸트 가 뭐고 비트 가 뭔지, 이들의 진짜 생각을 이해하는 애들이 너무나 드물어, 하물며 쟤들을 어찌 연결해서 볼 수 있겠니,
비트 는 말이지, 칸트 의 문장을, 다른 문장 으로, 재 확인 시킨 인간인겨 이게.
비트 의 논리 가 칸트 의 논리 보다 우월해.
둘은 똑같이, 알수없다 여. 이건 말이지,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로직스에 대한 의지를, 단칼에 부정하고, 죽여버리는거야.
칸트 와 비트 는, 플라톤의소크라테스 를 2천년 만에 아주 확실하게 죽여버린겨. 딱 절반 을 죽인겨. 절반 이란게 머여? 알수없다 여 알수없다. 있다 라는 건 간접적으로 표현해, 그러나 있다 라는 것 자체도 함부로 말을 안해. 그러나, 분명히 말하건데, 알수없어! 알려고하지마! 아무런의미없는시도야! 지금처한 시공간의알수있는세상에나 충실해!
이게 아주 확실하게 칸트 와 비트 가 말하는 선언 이야.
그러나 웃기게도 말이지, 칸트 와 비트 는, 그 누구보다 그 어떤 생체보다 고차원의, 절대적인 신앙인 이야. 말할수없는그무엇, 저 물자체의 세상을, 이 둘 은 말이지, 그야말로, 절대적 으로 믿어. 그러나, 그러면 그렇게 해서 믿는건 어떻게 믿는겨? 그동안의 그리스도 모든 진영의 믿음의 방식 은 잘못된거야 이들의 선언은. 그러나 말이지, 그리스도 신학이란게 그럼에도 다른 신학들 보다 너무나 깊숙하게 비슷하게 파들어 왔던거야. 이들만이 마던의 산업혁명의 문명을 만들고, 이 위 에서 위대한 사유 를 창조 한겨. 물질문명은 저 생각세상 이 만든거야.
지금도 아프리카 의 그림들을 보라고, 전혀, 수천년 이전의 것, 아니 수십만년 이전의 인간세상 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어. 수십만년 전의 인간들에게, 유럽애들의 티셔츠 에 유럽애들의 어설픈 도구 가 더해진 모습이 테레비로 보는 아프리카 애들이여. 매일 학살 하고 강간 하고. 저게 저게, 이씨조선 의 모습이야.
저런 이씨조선 이 위대하다며, 만주에서 역사 포장해대고, 위대한 강간 의 땅 이씨조선 회복합시다래. 이씨조선 의 독립운동이 우리 정체성입니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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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logic and linguistics, a proposition is the meaning of a declarative sentence. In philosophy, "meaning" is understood to be a non-linguistic entity which is shared by all sentences with the same meaning.[1] Equivalently, a proposition is the non-linguistic bearer of truth or falsity which makes any sentence that expresses it either true or false.
프로포지션 의 정의야. 프로포지션 은, 쎈턴스 의 미닝 이여. 분명한 문장을 의미하는것.
명제 라 하면, 참이냐 거짓이냐 를 구분할수 있는 문장, 이라고 형식적으로 말하잖니. 인간의 모든것은 이 명제 에서 시작하는겨. 명제 를 모르면, 쥐여 쥐. 쥐. 개돼지여.
웃긴건, 참이냐 거짓이냐 야. 대체 참이냐 거짓이냐 는 머냐는거야 이게.
미닝 이란게, 의미 라는 일본한자단어 가 대체 머냐는겨 이게.
의미한다, 뜻한다, 이게 먼말이여.
비트형은, 이걸 묻는거야. 야 니덜 대체 의미한다 뜻한다 면서 니덜이 참이다 라며 소크라테스 부터 시작해서 로직스 라는 소크라테스 논법의 참을찾는문장들주고받음 으로 진짜찾기 를 해온게 인간의 역사였고, 그런 소크라테스 의 문장 을 근본적으로 해부해서 그램머 를 만드신 아리스토텔레스 를 레퍼런스로 삼아서 우리가 필로소피 를 탐구해온건데,
그 문장들이, 의미한다 뜻한다, 참이다 라는걸 품는다는 거거든 그 모든 문장들이. 대체 그게 무슨 말이니?
참이다 거짓이다 라고 니덜이 대전제를 깔아버리고 필로소피 를 펼쳐나가고 수많은 책들의 문장들을 주입시키는데 니덜이, 그 문장들이 참인 그 근거가 대체 머냐 그거.
인간은 모든걸 말로 표현을 하는 것이나, 정작, 그 말들이란건, 의미 가 아냐.
의미라는건, 미닝이란건, 그 말, 그 단어가 그 문장이 취하는 뜻, 이란건 말이야, Non-linguistic, 비언어적 인 것이야.
비언어적 인 것을, 언어로 표현하는겨 인간은, 인간의 문명이란건 그래서 비언어적인걸 언어로 표현해서 만든 게 지금 문명 인거야.
"meaning" is understood to be a non-linguistic entity
Equivalently, a proposition is the non-linguistic bearer of truth or falsity which makes any sentence that expresses it either true or false.
미닝 이란건, 비언어적인 개체 여. 명제 라는건 참이니거짓이니 라는, 비언어적인의미 를 지닌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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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장들은, 비트겐슈타인 에서 시작하는겨 이게. 이런 질문들과 답변들의 학문은.
In semantics, philosophy of language, metaphysics, and metasemantics, meaning "is a relationship between two sorts of things: signs and the kinds of things they intend, express, or signify".[1]
미닝 이란것에 대한 탐구 가, 그래서 비트형 부터 시작하는겨. 쎄만틱스, 이 분야도 비트형의 저 문장들 때문에 생긴 분야야. 더가서 말이지, 언어학, 메타피직스 라는 일본말형이상학, 이게 비트형 때문에, 다시 시작하는겨.
가장, 근본적인 질문인거거든 저게.
미닝, 의미, 뜻, 이란건, 비언어적 인거야.
비언어적인 엔티티, 기본단위 야.
이 엔티티 란 단어를 넣은 저 문장 의 저작자 는, 특별한 철학적 입장에 있는 관점 이야. 저런게 제너럴 하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게 아냐.
저 두문장 은 다른 문장이야. 저런 정의들 이 재밌는 문장들인데 말이지.
미닝 은 관계 야, 누구와 누구? 싸인 과, 인텐드 익스프레스 시그니파이 된 것 과의 관계 야.
인텐드 익스프레스 시그니파이 는, 같은 의도 같은 의미 같은 개념 의 단어들 이야.
인텐드 익스프레스 시그니파이 로 드러낸 것이 머야? 언어고 언어로 구성된 프로포지션 이야.
프로포지션 의 대상 은 머여? 싸인 이고 세상 이야.
미닝 이란 머여? 프로포지션 이 세상 이자 싸인 을 지니는거야. 베어 베어러.
제대로 지녔으면 참. 잘못지녔으면 거짓.
언어 라는 건 말이지, 세상을 익스프레스, 표현 할 뿐이야. 그런데, 중요한건, 존나게 중요하면서도 간과되는게, 표현이란건, 인텐드, 인간이 내면에서 의도한 것이야. 인간의 감정과 이성이 쏠린 거야.
인텐션, 인텐드, 인텐셔널, 인간의 쏠린 기울어 방향지워진 의지 의도 가 들어가 있는겨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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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걸 굳이 참이니 거짓이니 를 품는 문장 이라 며, 마치 참 거짓 어쩌고 로 가르는게 명제니 어쩌고 하는데,
그런게 아녀 그게. 참이고 거짓이고, 이런걸 잣대로 해서 아 분간되니 명제네 아니네, 그따위가 아녀. 아주 근본적으로, 필로소피 가 왜 나왔고, 문법이란것 로직스란것 이런게 대체 머고 왜 시작이 되었는지, 전혀 모르는 거야 저런건.
참 거짓 을 지니는것도 , 결국 말이지, 이건, 인간의 내면 의 문제야. 참이냐 거짓이냐 는 누가 판단하는겨? 인간이 저마다 판단하는겨 저거.
결국 더가서, 저건, 인텐셔널 의 문제인거고, 이게 더가서, 결국, 의식 자의식 생각 믿음 머 시발 이런 것과 다를 게 없어.
버틀란드 럿셀, 이 논리학 에 기여를 했지만, 얘가 비트겐슈타인의 논리학 선생이야. 그런데, 이 럿셀 이, 결정적으로 갈라지는건, 아니, 럿셀 이 이해를 못하는건, 이 지점 이야.
이 럿셀 이란 인간은, 정말 미개한 인간이야 잉글랜드 가 낳은.
결국, 믿음 이란것도 똑같은겨.
대체, 믿다 판단한다 거부한다 이런 개 대체 머냐는거지 이게.
그리스도 신학의 절정은 여기까지 온겨 지금.
그리고, 여기서, 단 한걸음도 못나가는겨. 이런 모든건, 지금 전혀, 번역 도 안되고 해석 도 안되는겨 쟤들 글들이. 몇몇 만 공유 되는겨 서로들.
In logic, the formal properties of verbs like assert, believe, command, consider, deny, doubt, imagine, judge, know, want, wish, and a host of others that involve attitudes or intentions toward propositions are notorious for their recalcitrance to analysis. (Quine 1956).
콰인 의 문장인데, 논리학에서, 이런 버브들의 포멀한 속성들, 확실히선언해, 믿어, 명령해, 고려해. 부정해. 의심해, 상상해. 판단해. 알아. 원해. 바래. 이따위 버브 들의 포멀한 속성들 은, 애티튜드 를 갖고 있는거야. 애티튜드 다시 말해서, 프로포지션 에 대한 인텐션 이야.
프로포지션 이란것 자체 는 말이야. 문장을 쎈턴스 라고 하잖니. 쎈턴스 란건 쎈쓰 의 쎈티노 야. 쎈스 로 겪은거고 겪은걸 문장질 한게 쎈턴스야. 문장질 이란건, 씬택스 야. 어떤 규칙으로 워드들을 나열을 한겨. 이런게 말 이야.
글은, 말모이 일 뿐이야. 글이 중요한게 아냐. 말모이 라고 그야말로 멋지게 만들었으면 이 x버x지x끼들아, 한글 위대해 그따위 짓은 버려 모이들을 이거저거 다 써먹을 줄 알어ㄹㅏ
저런 단어들의, 포멀한 속성들, 포멀 이란건, 이건, 철학 업계에선, 내추럴 이고, 신쩍인겨 이건. 초강력한 말이 포름 포멀 이야. 내재가 된거고, 어떤 무엇이 원천적으로 스민게 포름 포멀 이야. 저 단어들 에 무언가 어떤 속성들이 있어서, 이게 무엇을 분석하는데, 리칼시트런스 로 악명을 떨치는겨. 칼크스 가 힐 뒤꿈치 야. 개 가 뒷발로 뻗대 앞으로 안가려고. 분석하는데 방해 하는 버브 들이야. 저게 내적 상태 들 인거고.
A propositional attitude is a mental state held by an agent toward a proposition.
이게 프로포지셔널 애티튜드 야. 애티튜드 란건 앱트 apt 에서 어그러진겨. 딱맞음에서 안맞게 된거야. 쏠린겨 이건.
프로포지션 이란 문장에는, 기본적으로 말이야, 인간의 내적인 애티튜드 가 들어가 있는거야.
참이다 거짓이다 라는것을 판단하는 쪄찌 조차, 절대적인 잣대 가 아냐, 인간의 부정확한듯한 쏠림의 애티튜드 일 뿐이야.
What sort of name shall we give to verbs like 'believe' and 'wish' and so forth? I should be inclined to call them 'propositional verbs'. This is merely a suggested name for convenience, because they are verbs which have the form of relating an object to a proposition. As I have been explaining, that is not what they really do, but it is convenient to call them propositional verbs. Of course you might call them 'attitudes', but I should not like that because it is a psychological term, and although all the instances in our experience are psychological, there is no reason to suppose that all the verbs I am talking of are psychological. There is never any reason to suppose that sort of thing. (Russell 1918, 227).
이걸, 럿셀 은, 심리적 인 요소 가 아니란겨. 이런걸 배제하고, 로직 을 구현 할 수 있다는거야. 엄밀하고 제대로 된.
지금 우리가 접하는 문명은, 이 럿셀 의 생각대로 구현된 문명이야. 유럽애들이 만든. 여기서는, 철저하게, 신 이라느니, 물자체 는 존나게 의미가 없는겨.
그래서 말이지, 이 럿셀 이란 이는, 막시스트 야 이앤. 사람들이 너무나 모르는데 이 럿셀 이란 애가 얼마나 하등의 동물인가를. 얜 레닌 을 찬양하고 스탈린 을 떠받드는 애야. 그러나! 천국 의 쏘련 인줄 알았는데, 얘가 직접 가서 보거든, 쏘련의 모습을. 비참한겨 이게 ㅋㅋㅋ. 아니! 내가 생각한 코뮤니즘 의 천국이 어떻게 이런 모습인건가! ㅋㅋㅋㅋ.
완벽한 살육의 현장 인거야.
지금 조선 애들은, 남조선 애들은, 럿셀 을 제대로 아는 애도 없겠지만, 똑같이 저런 사회 를 꿈꾸는 애들인게 참 웃긴거야. 저 사회 가 얼마나 비참한 사회인줄을, 뻔히 보여주고, 역사가 증명을 철저하게 해주거든. 그런데 너무나 슬픈건, 보이는 것 조차 부정을 하는겨. 아니라는겨. 북조선 은 요 천국 이어요. 중국 은 위대해요. 니덜이 듣보는 것은, 잘못 보여진 세상이어요.
라면서 선동하면서 돈벌이 표벌이 하는게 통하는건, 그만큼 미개한 땅이라서 야 이게. 당연히, 쟤들이 권력을 잡고서, 당연히 너희들은, 쳐 죽임을 당해야 해. 신의 의지여 . 니덜은 말이야, 지워져야 마땅해. 맬서스 의 인구론 이야긴 항진명제여. 인구가 너무 많아. 쓰잘덱 없는 애들은 지워야 해. 그래서, 이런 땅의 생체들을 살려주고 키워주고 냅두는겨. 어서어서 더쎈 피라미드 가 다 지우라고.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3rd Earl Russell OM FRS[65] (18 May 1872 – 2 February 1970)
버트란드 러쎌, 이 97세 에 죽는데, 웨일쓰 에서 태어나서 웨일쓰 에서 죽어. 터가 안좋은가 이게. 얜 잉글랜드 의 역사 를 증오 하는 애야. 자기 잘난 거 까니까, 진보 라미 세상 떨거지들이 떠받드는 애들이 얘야.
얘 할배가 존러쎌 이고, 빅토리아 때 수상을 몇번했냐 , 존 러쎌 이 휘그 이고 이 사람을 이은게 글래드스톤 이야. 상대 는 유대인 디즈레일리 이고. 아 얘들 인물사 는 시발 어마어마해 이게.
최고의 가문집안이고, 휘그 집안이고 존나 래디칼 이 손자 한테 스민겨. 저 윗대 는 휘그니 토리니 하지만 다 제정신들이거든.
In 1914 he wrote to Lady Ottoline Morrell saying "It is clear the Socialists are the hope of the world".[10] Russell expressed support for guild socialism.[11] He was also an admirer of Franklin Delano Roosevelt and Eduard Bernstein.[12]
럿셀 이 쓴 편지, 세상의 희망은 소셜리스트들인건 분명하다. 길드 쏘셜리즘. 회사 산업 의 소유권은 스테이트 가 갖는겨 중앙권력이. 세상 입장에서 스테이트 단위별로 특정 길드들을 육성해서 관리해 가운데서 조율 하고. 얘가 인정한 번슈타인은 막시스트 이고.
Russell expressed great hope in "the Communist experiment." However, when he visited the Soviet Union and met Vladimir Lenin in 1920, he was unimpressed with the system in place. On his return he wrote a critical tract, The Practice and Theory of Bolshevism. He was "infinitely unhappy in this atmosphere—stifled by its utilitarianism, its indifference to love and beauty and the life of impulse." Although critical of its implementation in Soviet Russia, he still believed "that Communism is necessary to the world." He believed Lenin to be similar to a religious zealot, cold and possessing "no love of liberty."[13][14]
공산주의 실험 에 굉장한 기대를 드러냈다. 그러나, 쏘련을 방문하고 레닌을 만나고는 그곳 시스템에 회의감 들다. 돌아와서는 비판적 글을 쓰다. 그곳 분위기 는 철저하게 불행하다. 유틸리테어리언이즘, 최대다수를 위한 행복 주의 로 질식되다, 러브 와 뷰티 와 생의약동 에는 무관심하고.
니가 주장한 사회주의 라는게, 저런 식의 구도 로 가는건, 뻔한 거 아니니? 그걸 니 눈알로 봐서 아니 ?
북조선 과 중국 이 저런 모습인걸, 물론 이 남한 애들은, 봐도 아닌겨 ㅋㅋㅋ. 야 저 조선족 애들이 댓글 알바로 완벽하게 지배하는걸 보면 참 기가 막히던데. 관심도 없지만.
그러면서도, 코뮤니즘은 필요하다 고 믿었다. 레닌 이 젤롯, 카나이, 유대교열성당원 과 비슷하다며, 이들은 자유에 대한 러브 는 없지.
자유 를 부정 하는게, 코뮤니즘 이야. 유교 랑 딱 맞는겨 이게. 유교사회주의. 자유 는 죽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여러분! ㅋㅋㅋ.
너무나 비참한 나라야 이 남조선 이란건. 그야말로 헬조선. 야 헬조선 이란게 케이머시기 로 바뀐게 참 신기 하더만. 진짜 헬조선 이란건, 저것도 완벽하게 공작 으로 이루어진 세뇌질 인거였지 저게. 중국애들 참 대단해.
He was strongly critical of Joseph Stalin's regime, and referred to Marxism as a "system of dogma."[15] Between 1945 and 1947, together with A. J. Ayer and George Orwell, he contributed a series of articles to Polemic, a short-lived British "Magazine of Philosophy, Psychology, and Aesthetics" edited by the ex-Communist Humphrey Slater.
나중에 스탈린 과 막시즘을 비판을 해. 조지오웰 은 애초에 알았고. 이 조지오웰이 피터팬 욕질 하는거 보믄 가서 줘패고 싶더만.
기본적으로 말이야, 정치 이야기 하는 애들은, 유치 한거야 이건.
럿셀아, 니 생각 은, 레닌 에 스탈린 에 모택동 을 만들 뿐이야. 니 생각은 유치한 초딩 이여. 니는 인간을 너무 몰라. 왜냐면, 니는, 역사 를 철학 을 개판으로 공부 했거든. 니 글을 보면 알아. 니 글은 모든 게 너무나 유치해. 왜 유치한가를 내가 조목 조목 왜 쓰니 그 짓을 하미 내 시간을 보내니 왜 내가. 너따위 애한테.
.얘가 비트겐슈타인 을 이 다음부터는 이해를 못하는겨.
이 지점이 말이지, 저 애티튜드 라는 거여 이게. 이게 곧 더가서, 신 이야기 야.
럿셀 은 철저하게, 신을 부정하는 애야. 내추럴리즘 피지컬리즘, 유치한 이야기야 그런게.
Intentionality is the power of minds to be about something: to represent or to stand for things, properties and states of affairs.[1] Intentionality is primarily ascribed to mental states, like perceptions, beliefs or desires, which is why it has been regarded as the characteristic mark of the mental by many philosophers. A central issue for theories of intentionality has been the problem of intentional inexistence: to determine the ontological status of the entities which are the objects of intentional states.
이게, 이야기 되는 영역이, 인텐셔널리티 여. 이게 결국 더가면, 오브젝트 이야기고, 더가서 말이지, 결국 플라톤 이데아 여 ㅋㅋㅋ. 아 돌고 돌아서 이놈의 플라톤 샹. 이걸 확인 도장 찍는게 비트겐슈타인 이야.
저런 버브들 , 애티튜드 의 상태를 드러내는 단어들. 미닝 이란게, 대상 과, 인텐드 시그니파이 익스프레스 의 관계 라고 했을때, 인텐드 가 먼저여, 익스프레스 는, 인텐드 가 시그니파이 한 것을 드러내는 게 익스프레스 야.
모든건, 인텐드 에서 결정이 되는겨. 이걸 인텐셔널리티 라고 해.
인간의 마음 이란걸, 파들어가는겨 저런 단어 의 작업들이. 아 얘들은 이런게 참 경이로와. 쟤들 글을 보면 말이지, 경이롭다는 단어가 지금 문득 떠오르는데. 아 정말 쟤들은 존경스러워 진짜. 아 시바 인정해야 해 쟤들이 나은걸.
멘털 스테이트 에 귀속되는겨. 멘탈 마인드 멘쓰 라는건, 감성 과 이성 의 총체 마당 이야. 언더스탠딩 에 쎈쓰 등 모든걸 다 좀 보고싶은겨 대체 어떻게 작동이 되는지. 그러려면, 최대한, 표현 을 해야 해. 이게 익스프레스 야.
익스프레스 해야만 해 무엇이든. 나는 내가 지금까지 익스프레스 한건 나에게 너무나 찐하게 새겨져있어 내 내면에. 그래서 저 드라큘라 이야기니 피터팬에 잭셰퍼드 니 저런 이야긴, 인류에서, 저런식으로 풀어주는 사람은 나외엔 없는겨. 있을 수가 없어. 캬 , 나 이상의 지성이 대체 존재했던 적이 있등가 말이지 이거
The earliest theory of intentionality is associated with Anselm of Canterbury's ontological argument for the existence of God, and with his tenets distinguishing between objects that exist in the understanding and objects that exist in reality.[2] The idea fell out of discussion with the end of the medieval scholastic period, but in recent times was resurrected by empirical psychologist Franz Brentano and later adopted by contemporary phenomenological philosopher Edmund Husserl. Today, intentionality is a live concern among philosophers of mind and language.[3] A common dispute is between naturalism about intentionality, the view that intentional properties are reducible to natural properties as studied by the natural sciences, and the phenomenal intentionality theory, the view that intentionality is grounded in consciousness.
이게, 이전 신학 이야기 대속 주제의 안셀름 이 처음 언급한건데 중세에, 존재론. 그리곤 사라지다가 프란츠 브렌타노, 에서 부활돼. 이전 썰한 인간, 교황 무오류설에 반박한 전직 사제. 이 브렌타노 는 위대한 인간이야. 브렌타노 는 칸트 와 비트형 수준으로 대접받아야 해. 당신들이야 처음 듣보는 인물이겠지만.
In logic, the formal properties of verbs like assert, believe, command, consider, deny, doubt, imagine, judge, know, want, wish, and a host of others that involve attitudes or intentions toward propositions
아까 의 것을 다시 갖고 오면, 저런 단어들의 것들이 말이야, 저게 시안한겨 저게, 저것들이, 인간의 내면에, 멘탈 에, 존재 하는겨. 여기서 나오는 단어가, 인텐셔널 인이그지스턴스, 야.
Brentano coined the expression "intentional inexistence" to indicate the peculiar ontological status of the contents of mental phenomena. According to some interpreters the "in-" of "in-existence" is to be read as locative, i.e. as indicating that "an intended object ... exists in or has in-existence, existing not externally but in the psychological state" (Jacquette 2004, p. 102), while others are more cautious, stating: "It is not clear whether in 1874 this ... was intended to carry any ontological commitment" (Chrudzimski and Smith 2004, p. 205).
브렌타노 가 만든 단어야. 인텐셔널 인이그지스턴스. 인텐셔널 인텐드 라는건, 텐도 테노 뻗는겨 어디로향하는거고, 어텐션, 인텐션 내면에서쎄게 뻗는거야. 쏠리는거야. 저런 단어들은 모두, 인텐셔널 한 거야.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겨 저 모든 단어들의 포멀한 속성은.
인이그지스턴스 란건, 존재안함, 이 아냐. 인-이그지스턴스 로 해석한 자케트 의 해석이 아주 정확해. 마인드 안에,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겨. 인텐셔널 하게. 인텐셔널 이그지스턴스.
저런 단어들이, 인간 내면에, 있는겨 ㅋㅋㅋㅋ.
참 재밌는건데 저런게.
저런 단어들이, 내면에 새기면서 계속 제대로 자라는게, 진화의 근본 속성이여 저게.
후진 나라에선, 저런단어들이, 애들 내면에, 후진 거고.
저게, 저런게, 앱스트랙트 오브젝트 라는겨 저게. 아 이놈의 앱스트랙트 오브젝트, 콰인 그라츠 학파 애들을 내가 가르쳐야 하는데 말이지. 저런 걸, 이해하는 애들은 극동에 단 하나 없어. 내가 니덜 몇몇한테 아주 친절히 소개해주는거야.
미닝 이란건, 저런 인텐셔널 인이그지스턴스 중에서, 쪄찌 라는게 작동을 하는겨. 쪄찌 라는 앱스트랙트 가 작동을 해서, 세상과 표현의 관계 를 판단하는게, 의미 라는겨. 이게 참 거짓 을 판단하는거고, 이런 판단 이란건 계단을 밟아서 차근히 설명하고자 하는 수단일 뿐이고,
의미 라는건 그래서, 의미 있다 라고 하잖니, 미닝풀. 민즈. meaningful, it means,
표현된 문장이, 그 표현하고자하는대상 즉 싸인 을, 세상 을, 제대로 표현했으면 참 이란거고, 그 문장, 그 단어 가 품은 세상 이, 의미, 라는 오브젝트 야.
이 의미 라는건, 그래서, 생각속의 화면 인거야.
세상은 화면 이야. 화면은 세상을 담은거야. 화면은 생각 이야. 그걸 표현하는게 언어, 말 이야.
While “the logical picture of the facts is the thought” (3), in the move to language Wittgenstein continues to investigate the possibilities of significance for propositions (4). Logical analysis, in the spirit of Frege and Russell, guides the work, with Wittgenstein using logical calculus to carry out the construction of his system. Explaining that “Only the proposition has sense; only in the context of a proposition has a name meaning” (TLP 3.3), he provides the reader with the two conditions for sensical language. First, the structure of the proposition must conform to the constraints of logical form, and second, the elements of the proposition must have reference (Bedeutung). These conditions have far-reaching implications. The analysis must culminate with a name being a primitive symbol for a (simple) object. Moreover, logic itself gives us the structure and limits of what can be said at all.
세상은 케이쓰 다, 케이쓰 는 팩트들로 이루어진 것이다.
세상은 문장 이다, 문장이란 것은, 단어들로 이루어진 것이다.
문장 이란건, 쎈쓰 를 갖을 뿐이야. 논쎈쓰 한 것은, 문장일 수 없어. 쎈쓰 논쎈쓰 는, 칸트 의, 시공간이 스민 써브젝트 여.
프로포지션 이니 로지칼 이니 씨그니피컨트 니 하는건, 인간만의 진화된 작동체계 를 강조하고자 할 뿐이야. 일반짐승들도 다 하는거지만, 짐승들 에겐 근본적으로 한계가 명확한거야. 저런 단어들의 앱스트랙트오브젝트 가, 내재는 되어있지만, 시원치않아. 후져. 그래서, 저런 것들과 구분하고자 하는 비트형의 의지 야.
저 두번째 전제조건이 멋진겨. 문장의 단어들 이란건, 더가서, 단어 에 프레이즈 구문에 센턴스 문장 도 해당이 돼. 저런 건 말이야, 반드시, 베도이퉁 을 갖아야 해. 베도이퉁 이란걸, 레퍼런스 로 번역했지만, 베도이퉁 이란건, 미닝 이여, 뜻 의미 의 정확한 게르만 어야.
뜻 , 의미, 라는건 말이야, 레퍼런스 라는겨. 저건 제대로 번역한거야.
단어 라는건, 레퍼런스 를 갖아야 해.
단어 라는건, 의미 를 갖아야 해.
단어 라는건, 기댈곳 이 반드시 있어야만해.
의미 야. 의미 는 레퍼런스 고, 레퍼런스 리퍼 라는건, 쎄게 지니는거야. 무엇에 대해서 자기는 지니고 있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야. 뭔가를 갖고 있고 내뱉어야 해 리퍼 레퍼런스.
의미 란건, 화면 이야, 내면에 그려진 화면 이야.
화면 이란건, 눈밖의 세상 을 담은 거야.
화면 이란건, 그래서, 생각 그 자체야.
오디오 는 비디오 에서 나오는겨.
태초 엔 소리 가 있는게 아냐. 태초엔 빛 이 있는겨. 소리는 빛 에서 나오는거고, 말이란건 빛 에서 나오는거고, 소리 와 말 이란건, 화면 에서 나오는거야. 왜? 소리 말 이란건, 화면을 설명하기 위해서, 표현하기 위해서 나오는거야, 화면에서. 소리의 출처는, 화면인겨.
이런 화면들이, 멘탈 스테이트 로, 역시나, 오브젝트 로, 인간 내면 에 있는겨 이게.
더하여, 저런 화면 에 대한 애티튜드를 담은 오브젝트 들, assert, believe, command, consider, deny, doubt, imagine, judge, know, want, wish
이런게, 역시나, 오브젝트들로, 존재 하는겨, 내면에, 인이그지스턴스.
저 화면들 이 베도이퉁 이고, 이 베도이퉁 을 표현 드러낸게 랭귀지 말 이고 씬택스 로 문장으로 드러내는게 인간이야. 이 드러내는 것이 문법 이고, 쎄만틱스 란게 저런 의미 체계 를 분석해 보는거야. 그런면에서, 이 세만틱스 측면에서 정말 웨스턴언어들이, 그리스 로마 워드들의 세만틱스 가 너무나 탁월한거야.
탁월하다는 이유? 세상 을 제대로 담아낸 거야 그 단어들이. 크라튈로스 는 정말 명작이야 플라톤의. 이 영역은 반드시 선행학습 되어야 해. 아 이런 거 하나 제대로 아는 인간 없다는게 참 슬픈건데 한글쓰면서 난.
이 단어들이, 표의문자 의 한자 와, 너무나 수준 차이가 나는겨. 세만틱스 와 신텍스 측면에서.
이미 기원전 2천년 부터, 표의문자 세상과 표음문자 세상은, 운명지워진거야. 중국의 한자문명 은 후진문명이다, 라는건, 이미 5천년전에 결판이 난거야 이건.
문장 이란건, 화면을 갖아야 하고, 이 화면 이란것도 역시나 레퍼런스 베도이퉁 을 갖아야만해. 그게 머여? 눈깔밖의 세상이야. 쎈쓰 의 세상 이고.
그래서, 쎈쓰 가 안되는 논쎈쓰 의 세상은, 표현 자체 가 불가 한거야. 왜? 시발 화면 자체가 생길 수 없잖니. 세상 이란 레퍼런스 가 없는데 뭔놈의 생각화면 이 있을 수 가 있니.
내면에 인이그지스턴스 하는 인탠셔낼리티 도 없어 그 없는화면의 오브젝트 엔.
그러면서, 저 한계선을 넘어서, 아는것이 무엇이고 알수잇는것이 무엇인가 를 확인 하면서, 저 금밖에서 금 을 더 넓혀가는겨 인간의 진화 란.
그래서, 언젠가는, 저 내면의 화면을 말이지, 눈밖으로 끄집어 내서 보는겨 진화가 확 되어서.
저런 앱스트랙트 오브젝트 들은, 너무나 신쩍인 거야. 디바인 디비너티 가 넘친거야.
저게 신이야 신. 브렌타노 는 아주 독실한 크리스찬 로마카톨릭 이야 사제 직을 한.
비트 는 저기에 걍 숟가락 만 얹은겨. 화면 끄집어 내면서.
.
그래서, 세상은 화면 이고 생각 이고, 이건
익스프레스, 표현 을 해야만 하는겨 인간의 말로. 문장으로. 참이란건 당연히 지녀지는겨 세상을 화면을 제대로 드러냄으로써
언어 가 단어 에 문법 이 그래서 중요한거야.
한자 로는 표현 이 안돼 근본적으로. 문법도 없어.
쟤들만이 저걸 한거고. 할수 있던거야. 반드시 영어를 라틴어와 함께 해야해. 오ㅐ? 변방애들에겐 유전자로 보편문법으로 스미지 않았거든.
다양성 애들이 혐오 하는게 촘스키의 보편문법 이야.
촘스키는 옳아.
문장으로 드러내면서 화면을 세상을 구체화 하는겨. 그러면서 다른 문장들을 찾아내고 다른 화면 다른 세상 을 볼 수 있어
이게, 한계선 밖에서 금을 더 넓히는 거야
이런 문장들 이 써지면, 다른 문장들이 티어나오는거야.
말할수 없는 것에 침묵하라는건 그래서, 반어야.
말하고 말하고 말하라, 그러면 말할수 는것 으로 드러날지니.
캬 시바 졸 멋진 나의 문장
비트가 좋아하는거보ㅏ라 저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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