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kt-5TAVG6KQ

아래 내용은 오류가 있습니다. 위 영상 칸트시리즈 대여섯개로 대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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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를 스탠포드 와 위키영어 를 병행해서 설명하자면.

일단, 이 철학 워드들은, 아니, 모든 리터러쳐는 말이야, 그 작가 만의 문법 이 있어. 문법 중에서 특히나, 워드 들이야. 내가 굳이 문법 이라고 표현하는건데, 대부분은 작가마다의 워드이고 그 배열의 개성이거든. 이건 작가들마다 저마다 의 문법 이 있는거야.

주변 사람들 조차, 당신 조차 도 당신만의 문법과 당신만의 단어들이 있어. 이걸 유념해서 당신들의 사람들의 문법을 캐취해봐. 내말이 먼말인지 알거야.

자연과학 이라는 싸이언스 는, 이런 경향이 적어. 여긴 파티큘러한 단어의 쓰임이란 약해. 대부분 유니버썰한 단어를 쓰고 유니버썰한 문법을 써.

그러나, 자연과학 외의 분야는 달라. 비슷한 워드들에서 저마다 선호하는 워드들이 있어. 집단들은 물론이거니와, 개인 각각도 달라 이게. 당연히 문학가 라는 것도 전혀 쓰는 단어들이 달라. 이 조선땅만해도, 일제때서야 글을 쓰기 시작하잖니 자기의 이름을 내세워서. 저 시대의 소설들을 보면, 작가마다 쓰는 단어들이 전혀 달라. 같은 오브젝트 에 대해서 쓰는단어가.

철학쪽 단어도 마찬가지야. 이게, 달라요 작가마다 선호하는 단어가. 그 단어들이란게 대게 자기만의 별도의 개념이 있는듯 하지만, 파고 들어가면, 자기의 애용하는 단어 야. 물론 자기만의 개념이 따로 있고, 이건 그 작가 의 글들을 좀 읽어야 파악이 돼 얘만의 문법이.

어떤 책을 읽을 때도, 한 작가에 익숙하면, 걔 책은 다른 책도 쉬워. 이해 되는게. 왜냐면, 걔만의 문법이 있거든. 그것에 익숙한거야. 처음 대하는 애의 첫 책은, 대게 진도가 나가기 어려워. 삼분의 일까지 잘 이해가 안가기도 해. 왜냐면 걔의 문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야. 그러다가 어느순간 코드가 맞아가는겨

이건, 번역책도 똑같아. 번역하는 각각 조차도, 자기만의 단어와 자기만의 문법이 있거든. 똑같은 원서 에 대해서도 달라 이게.

도톱이 책을 수십명이 각각 번역을 해도, 다른겨 그건. 각각의 번역단어와 문법에 익숙해야 진도가 나가. 그러나 또한 원서 의 작가만의 문법을 단어를, 번역가 가 지울 수는 없어. 그래서 도톱이 책이 하나가 익숙해지면, 상대적으로 다른 번역가의 책들도 쉬워져. 도톱이 책들은 장편 단편 모두가, 그 냄새가 똑같고 일관돼. 그리고, 저 도톱이 의 러시아어 번역은 잘된겨 저게. 대게 러시아어 하는 애들은, 영어 를 기본으로 하거든. 영역을 참조하는거지. 그래서, 의외로, 영어 번역이 너무나 후진게 많아. 얘들은, 영어만 하거든. 옛날 사람들은 일어를 해서 일역과 비교나 하지.

여하튼, 저마다의 문법이 있어. 저마다의 단어가 있고.

이 철학쪽도 마찬가지야. 독일어를 번역하는 영역도 마찬가지고. 칸트 를 설명하는 영어 단어가 다를 수가 있어 번역가마다. 그러나 이건 대게 중요한 단어들은 같은 단어를 쓰는겨 웨스턴 애들은.

이런 철학단어의 보편적 문법과, 작가와 책의 그 특징적 단어와 문법 에 대한 조율이, 극동은 될 수가 없어. 이게 참 끔찍한거야.

조선말로 된, 철학서 는, 모두, 사기야

조선말로 된 칸트 는, 번역한 작가 조차도 못읽어. 콧털에 먼지 세개 건다. 저게 모두 일본단어들이고 일본애들 유전자에 벡인단어들이고 문법이야. 아니면 중국한자들의 단어고. 저게 근본적으로, 조선말쓰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글이야. 조선말로 된 철학책을 보는게 아냐. 영어로 된 걸 봐 차라리. 그게 훨 쉬워. 영어로 된 걸로 혹 다른 불어나 독어나 라틴어 의 원서를 비교해야 이해 가능한거지, 한글로 된 철학책, 서양철학책은 보는게 아냐.

철학은 서양철학을 말하는거지, 동양철학은 철학이 아니고. 동양은, 학문자체가 없어.

쟤들 단어들은, 되도록이면, 쟤들단어를 그대로 소리나는대로 쓰는게 맞아. 저걸 어설프게 극동 한자 의 한글발음기호로 쓰는건 절대적으로 피해야해. 오브젝트 써브젝트 를 객관 주관 객체 주체 하면서, 절대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어. 우리 유전자에 벡인 객관 주관 객체 주체 의 한자 단어들 각각 과 그 조합 이, 쟤들 의 그리스어 라틴어 의 영어 와 절대 전혀 다른겨. 이걸 저 늙은 한자리 하는 철학 교수조차, 저걸 등호로 써서 강제 이입시키고요 무조껀 극동의 한자단어들로 번역을 해야 진짜 우리께 되어요, 정말 말이지, 철학 했다는 늙은 이가 어떻게 저따위 개무식한 소리를 하냔 말이지. 근본적으로, 언어에 대한 이해 가 없고 인간 사유 에 대한 이해, 역사 와 문명 에 대한 이해 가 미세먼지 조차 없는겨. 저런애가 이 조선빠닥에선 위대한 철학 교수라는게 참 슬픈거야. 이 늙은 이들이 동서양 인문학 바닥에서 두다리 딱 버티고 똥싸지르는겨 이 땅은. 이 땅은, 이 조선땅은, 정말 희망이라곤 한톨도 없어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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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나의 칸트 정리는, 이전까지의 써브젝트 오브젝트 이야기, 허무주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관련 주제를 다룬 일이십여개 의 글들을 읽지 않았으면, 이해를 못할거야.

중복설명은 되도록 안할거야 구찮아서.

걍 그런줄 알어. 이 개무시기들아.

스탠포드 의 칸트 설명을 모두 설명할 것이고, 위키영어 칸트 로 보충설명할 것이야,

2. Kant’s project in the Critique of Pure Reason

The main topic of the Critique of Pure Reason is the possibility of metaphysics, understood in a specific way. Kant defines metaphysics in terms of “the cognitions after which reason might strive independently of all experience,” and his goal in the book is to reach a “decision about the possibility or impossibility of a metaphysics in general, and the determination of its sources, as well as its extent and boundaries, all, however, from principles” (Axii. See also Bxiv; and 4:255–257). Thus metaphysics for Kant concerns a priori knowledge, or knowledge whose justification does not depend on experience; and he associates a priori knowledge with reason. The project of the Critique is to examine whether, how, and to what extent human reason is capable of a priori knowledge.

순수이성 비판에서의 칸트 의 주제. 스탠포드.

순수이성비판 의 큰 작업 과제는, 메타피직스 의 가능성이다. 칸트 는 메타피직스 를 "코그니션즈 라고 정의를 하는데, 이 코그니션즈 란건, 이성이, 모든 경험들과는 별개로 독립적으로, 스트라이브 투쟁하듯 열심히 추구하는 것이다" 그 책에서 그의 목표는, "인 제너럴, 일반적인 측면에서, 메타피직스 가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에 대한 판단 에 이르는 것이고, 이 판단을 위해 끝까지 가보는 것이다, 이 끝의 자료들이란 것도 원칙들에 의해 도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렇게 해서 칸트의 메타피직스 는, 아프리오리 앎에 집중이 되는데, 이 아프리오리 앎이란건, 경험에 기대서 져스티파이 정당화 맞다 라고 하지 않게 된다; 그는 아프리오리 앎 을 이성 과 연관시킨다. 순수이성비판의 과제는 검증하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 이란것이 어느정도로 든 어떻게든 하튼간에 아프리오리 앎 을 수용할수 있는가를(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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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건, 순수이성비판 이야. 모든 이성이 아니고, 순수이성이야. 아프리오리 라는건 순수이성 이야기고, 이 순수이성 이란건 말이지, 쎈써블 월드 를 접하는 쎈쓰 의 세상 이야기야 이건. 이건, 싸이언스 라는 과학분야 의 이성 이야기야.

이걸 분명히 구분해야해. 대게 이걸 구분을 설명을 안할텐데,

메타피직스 라는건 말이지, 이걸 형이상학 지랄하는건 매우 잘못된 주입이고, 이전 너무나 장황하게 썰. 저걸 형이상학 이라고 생각조차 하면 안돼. 피직스 의 다음 이라며, 타 메타 타 퓌시카 비블리아, 라고 로도스 의 안드로니코스 가 작명한거라지만, 피직스 라는 퓌시스 책들 다음 책 으로 서지작업을 했다지만, 아리스토는 자기만의 특허품 피직스 를 논하기 전에 먼저 봐야할 첫번째 필로소피 라고 한거거든. 이건, 지금 식, 싸이언스 를 하기 전에, 먼저 보는겨 필수 과정으로. 메타피직스 라는건, 인문학 이 아냐, 이건, 자연과학 이고, 이건 과학 하는 애들이 봐야하는겨.

메타피직스 란건, 피직스 입문서 여. 칸트 는, 메타피직스 를 자연과학 의 입장에서 이걸 서술하는겨 지금. 이 메타피직스 에 모랄의 지분이 어느정도냐, 뒤의 이야기를 보면 풀리지만, 일단은 말이지, 칸트 는 순수이성비판 에서, 자연과학 의 이성을 썰하는거야.

바로 다음을 보면,

2.1 The crisis of the Enlightenment

To understand the project of the Critique better, let us consider the historical and intellectual context in which it was written.[5] Kant wrote the Critique toward the end of the Enlightenment, which was then in a state of crisis. Hindsight enables us to see that the 1780’s was a transitional decade in which the cultural balance shifted decisively away from the Enlightenment toward Romanticism, but Kant did not have the benefit of such hindsight.
The Enlightenment was a reaction to the rise and successes of modern science in the sixteenth and seventeenth centuries. The spectacular achievements of Newton in particular engendered widespread confidence and optimism about the power of human reason to control nature and to improve human life. One effect of this new confidence in reason was that traditional authorities were increasingly questioned. Why should we need political or religious authorities to tell us how to live or what to believe, if each of us has the capacity to figure these things out for ourselves? Kant expresses this Enlightenment commitment to the sovereignty of reason in the Critique:

인라이트먼트, 불빛밝힘의 시대 가 베이컨 데카르트 에서 시작해서, 뉴튼 이 확실히 드러내 주는거야. 베이컨 데카르트 는 떼오리, 이론을 제시한겨. 테슬라 를 아인슈타인에 비교할 수 없어. 테슬라는 엔지니어고 아인슈타인은 엔지니어 가 노는 마당을 제공한 사람이야. 데카르트 는 중세천년의 미신덩어리 알레고리 의 자양분을 듬뿍처먹고, 그 미신 천년의 종지부를 찍는 사람이야. 아인슈타인 이상의 마당을 제공하고, 뉴튼이 탄생을 한겨 이건. 뉴튼 은 보다 리얼한 방정식 을 만들어 낸거고, 인라이트먼트 의 점화 는 싸이언스 의 뉴튼 이고, 이 뉴튼 뒤에 전 세대인 윌리엄 길버트 의 일렉트론 전기인간과 그 후예들도 뉴튼의 점화에 힘을 실어준겨. 코페르니쿠스 에 라이프니츠 도 거드는거고. 수학과 과학이, 그야말로 리얼하게 빛을 밝히는거야. 이게 산업혁명 이라는 현실세상을 만들어. 이건, 천년중세 의 인문학 이 무의식으로 쌓여서 이뤄낸, 거대한, 눈에 보이는, 비져블, 쎈써블, 이 쎈써블 한 세상에 불밝힌게 인라이트먼트 여.

인라이트먼트 의 시대 에 대한 반발이 로만티시즘 이야. 인라이트먼트 라는건, 리즌, 이성이 갓이 된겨 이건. 여기서 이성 은 머여? 자연과학 의 이성이야. 이걸 명심하라우. 그냥 이성이 아냐. 저런 쎈써블한 세상에 발휘된 이성이야. 과학의 이성이야 이건. 칸트 가 1804 에 죽어. 제임스와트 의 스팀엔진 관련 첫특허 가 1769년 나폴레옹 태어나는해여. 동력의 기계가 이때 전후로 등장하는겨 이미. 칸트 말년에 증기 기관차 가 등장해. 화학의 아버지 라우바지에 가 프랑스대학살 1789 때 죽는겨.

Scientific progress during the Enlightenment included the discovery of carbon dioxide (fixed air) by the chemist Joseph Black, the argument for deep time by the geologist James Hutton and the invention of the condensing steam engine by James Watt.[24] The experiments of Lavoisier were used to create the first modern chemical plants in Paris and the experiments of the Montgolfier Brothers enabled them to launch the first manned flight in a hot-air balloon on 21 November 1783 from the Château de la Muette, near the Bois de Boulogne.

인라이트먼트 는 과학 이야. 조셉 블랙이 이산화탄소 에 잠열 비열 에 제임스 허튼의 지질학에 라부아지에 화학에, 이게 모두 18세기여. 몽골피에 형제 는 열기구 만들어서 저때 하늘을 날어. 열역학 시작 카르노 의 아빠가 나폴레옹사람이야.

이건, 과학 이여 과학. 지금 피직스 의 메타 이야기 하는겨. 메타 라는건 피직스 를 위한 메타 여 이건 근본적 개념이. 메타피직스 는 과학이지  이게 형이상학의 철학의 인문학애들 놀이터가 전혀 아니야. 저 개념 만든 아리스토텔레스 조차, 얜 오직 퓌시스 라는 피직스 에 올인한겨. 소크라테스 플라톤 의 모랄의 에띡스 는 얜 일톨도 관심없어. 퓌시스 의 피직스 가 오직 라틴어 네이쳐 로 번역된, 내추럴 필로소피 인 자연과학 하는게 아리스토야. 얘의 카테고리아 와 명제론이니해석편이니하는 문법 논리학 조차, 자연과학 을 위함이야. 야,  이런 말 조차, 몰라 이 조선 땅은.

저건 명백한 사실이야.

저 과학의이성 에 반발하는게 로만티시즘 이야. 여긴 필링, 감정의 시대여. 이게 18세기말에 등장해서 at its peak in the approximate period from 1800 to 1850, 때에 피크야. 여긴 필링이야 필링. 이성이 너무나 싫은겨 이게. 칸트 는 로만티시즘이 시작하는 시기의 사람인데, 이 영향은 없다는겨. 칸트 는 인라이트먼트 의 정점 속에 살은거야. 프랑스 대학살 소식도 알아. 1789 프랑스 는 학살 의 시대야. 물론, 인민 공산 당 놀이하는 애들은 눈물 흘리며 감동하는 시대지만. 그래서, 조선땅은 1789 대학살을 여전히 혁명의 위대함으로 가르치거든. 정말 무식한겨 이 조선땅은. 저 살육 의 이야기 피바다 의 프랑스와 파리 를 전혀 몰라. 알아도 얘길 안해 ㅋㅋㅋ. 적폐는 인간이 아냐 ㅋㅋㅋ. 죽을놈 죽은거지. 그리곤 자기들이 정의라며 사자성어걸로 헤쳐먹는거지.

네이쳐 를 통제하고, 인간의 삶을 향상시킬수 있어, 무엇으로? 이성 으로. 이 이성에 대한 확신 의 시대야. 그러면서, 이게 정치 와 종교 로 가는겨. 기존정치 기존종교 의 권위 가, 과학의이성 에 도전을 받는거야. 이게 프랑스 1789 로 갔다는거지, 이건 프랑스 대학살 을 포장하는 해석이야. 어쨌거나,

Our age is the age of criticism, to which everything must submit. Religion through its holiness and legislation through its majesty commonly seek to exempt themselves from it. But in this way they excite a just suspicion against themselves, and cannot lay claim to that unfeigned respect that reason grants only to that which has been able to withstand its free and public examination. (Axi)

칸트 가 , 저 시대의 이성의 싸버린, 이놈의 이성이란 절대권력 에 대해 저당시 분위기를 말하는겨.

우리의 시대는 비판의 시대고, 모든것은 절대권력이성님의비판에 수그려야 한다. 성스러움에서의 신앙, 권위에서의 왕권 은, 그것 즉 이성님의비판 에서 면제를 받으려 한다. 그러나 그들, 신앙 과 절대군주 의 이런 식의 면제의도는 오히려 의심만 불어넣었고, 진짜 리스펙트 를 챙길 수는 없다, 이성 만이 이걸 준다, 치장안된 진짜존경받을자격 을, 이런 자격이 그것의 자유로운 공공의 심사 를 버텨왔었다.

Enlightenment is about thinking for oneself rather than letting others think for you, according to What is Enlightenment? (8:35). In this essay, Kant also expresses the Enlightenment faith in the inevitability of progress. A few independent thinkers will gradually inspire a broader cultural movement, which ultimately will lead to greater freedom of action and governmental reform. A culture of enlightenment is “almost inevitable” if only there is “freedom to make public use of one’s reason in all matters” (8:36).

인라이트먼트 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 과 관련된거다, 남들이 너를 위해 대신 생각해주는게 아니라, 라고 칸트는 쓴다. 이 에쎄이 에서, 칸트는 또한 피할수없는진전 에 대한 인라이먼트적 믿음을 드러낸다. 소수의 독립적 사상사들은 점차로 폭럽은 문화적 운동을 불러일으킬것이고 이건 궁극으로 더큰 행동의 자유와 정부개혁으로 갈것이다. 인라이트먼트의 문화는 "거의 피할수없음"이다 "모든 것들에 대해 이성을 퍼블릭으로 활용하는 자유"가 있다는 한에서.

The problem is that to some it seemed unclear whether progress would in fact ensue if reason enjoyed full sovereignty over traditional authorities; or whether unaided reasoning would instead lead straight to materialism, fatalism, atheism, skepticism (Bxxxiv), or even libertinism and authoritarianism (8:146). The Enlightenment commitment to the sovereignty of reason was tied to the expectation that it would not lead to any of these consequences but instead would support certain key beliefs that tradition had always sanctioned. Crucially, these included belief in God, the soul, freedom, and the compatibility of science with morality and religion. Although a few intellectuals rejected some or all of these beliefs, the general spirit of the Enlightenment was not so radical. The Enlightenment was about replacing traditional authorities with the authority of individual human reason, but it was not about overturning traditional moral and religious beliefs.

문제는, 진보가 실제로 이뤄질것인가 가 불분명하다는거다, 이성이 기존 권위들에 대해 압도적으로 지배한다면; 독단적 이성작용 은 진보 대신에 곧바로 유물론, 숙명론, 무신론, 회의론 으로, 더하여 사적인방탕 과 권위주의 에 이를 것이다. 이성의 권력 에 대한 인라이트먼트의 믿음은, 그래도 이성의 지배가 저런 결과로는 이르지 않을것이고, 반대로 전통이 항상 지켜왔던 어떤 중요한 믿음들을 보장해줄 것이란 믿음 과도 엮여있었다. 치명적일만큼, 이런 믿음들이 포함하는 것 중에, 신 영혼 자유 에 대한 믿음이 있고, 모랄과신앙 에 호환되는 과학 에 대한 믿음이 있다. 소수의 지식인들은 이들 몇몇 또는 모두를 거부할 지라도, 인라이트먼트 의 일반적 정서는 그렇게 과격하지 않았다. 인라이트먼트는 기존의 권위들을 대체해서, 개인적인 인간 이성의 권위 로 갈아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기존의 모랄과 신앙의 믿음들을 갈아엎는 것은 아니었다.

Yet the original inspiration for the Enlightenment was the new physics, which was mechanistic. If nature is entirely governed by mechanistic, causal laws, then it may seem that there is no room for freedom, a soul, or anything but matter in motion. This threatened the traditional view that morality requires freedom. We must be free in order to choose what is right over what is wrong, because otherwise we cannot be held responsible. It also threatened the traditional religious belief in a soul that can survive death or be resurrected in an afterlife. So modern science, the pride of the Enlightenment, the source of its optimism about the powers of human reason, threatened to undermine traditional moral and religious beliefs that free rational thought was expected to support. This was the main intellectual crisis of the Enlightenment.

그러나, 인라이트먼트 를 향한 원래의 불길 은, 새로운 피직스 였다, 즉 자연과학 분야였고 이것은 미케니스틱, 구조적 유기적 기계적 인 세상이었다. 네이처 는 철저히 다스려진다 구조적 인과적 법들로, 그래서, 여긴, 자유, 영혼, 즉 움직이는 것 외의 어떤것 에 대한 여지는 공간은 없어 보인다. 이것은, 모랄리티라는인간의삶 은 자유를 필요로한다 라는 기존의 관점을 위협했다. 우리는 자유로와야 한다, 나쁜 것 에 대해 옳은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왜냐면, 자유롭지 않으면 책임지울수도 원인규정 할 수도없기 때문이다. 또한, 영혼에 대한 신앙적 믿음 도 위협했다, 이 기존의 믿음으로 죽음을 극복할수 있고 다음생에 부활할수 있다. 그렇게, 현대의 과학, 인라이트먼트 의 자긍, 인간 이성의 힘들에 대한 긍정의 이유 는 기존의 모랄적이고 신앙적인 믿음들을 허물만큼 위협적이었다, 자유로운 합리적 사상은 기존믿음들을 지원할거라 기대되었지만. 이것이 인라이트먼트 의 중요한 눈에띄는 위기였다.

The Critique of Pure Reason is Kant’s response to this crisis. Its main topic is metaphysics because, for Kant, metaphysics is the domain of reason – it is “the inventory of all we possess through pure reason, ordered systematically” (Axx) – and the authority of reason was in question. Kant’s main goal is to show that a critique of reason by reason itself, unaided and unrestrained by traditional authorities, establishes a secure and consistent basis for both Newtonian science and traditional morality and religion. In other words, free rational inquiry adequately supports all of these essential human interests and shows them to be mutually consistent. So reason deserves the sovereignty attributed to it by the Enlightenment.

순수이성비판 은, 이런 위기 에 대한 칸트 의 대답이다. 그 주요 주제는 메타피직스 이다, 왜냐면 칸트에게는, 메타피직스 는 이성의 영역이기 때문에 - 메타피직스 는 "순수이성을 통해서, 우리가 소유하는 모든것이, 유기적으로 진열된, 창고" 이다. - 그리고 이성의 권위는 의심스러운 것 이었다. 칸트의 주요 목표지점은, 이성을 이성 그자체로, 즉 기존의 다른 권위적 단어들의 도움도 제한도 없이, 이성을 비판 검증해서, 뉴튼 과학과 기존의모랄리티와신앙 이 두개의 것에 안전과 공존의 터를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자유로운 합리적 탐구는 충분히 지원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인간의 관심사항들을, 그리고 보여준다 그것들이 상호 공존하도록. 그래서 이성은 그 권력을 누릴만 하고, 그 권력은 인라이트먼트에 의해 이성에 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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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문명을 만든 이성 이, 기존의 믿음의 영역까지 침해하는거거든. 이게 가장 큰 문제가, 모랄리티 와 신 이여. 인간의영혼, 신, 자유, 이 세개 는 다른 듯 하지만, 하나여 이건.

과학의 이성이, 미케니스틱 캐주얼 구조적 인과적 법칙들을 드러내고 있어 방정식으로. 이게 결국 더 가서, 인간의 모랄도 방정식 으로 나올거라는겨 이게. 이게 또한 도스토예프스키 의 주제고 싸움이야. 그런 이성은 없다는겨 도톱이는. 니덜의 방정식의 이성, 과학의 이성이 신 을 지워버리는데, 천만에

이 도톱이 를 내가 하나하나 다뤄줘야 하는데, 아마, 내가, 인류 역사 이래, 유일무이 한, 도톱이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일거야.


칸트 의 우려 가 맞아. 지금 완벽히 저런 세상으로 가는거야. 조선 같은 미개한 나라가 아주 적극적으로 저렇게 가는거고. 물론 얘들은 어느 하나 제대로 아는 것없고, 원래부터 신학도 없었고 철학 도 없어서 저런 말 저런 의문이 뭔지 조차 몰라. 이 조선땅은 참 비참한게, 신앙인 이 없었다는겨. 아, 정말, 신학 이 없고 신앙 이 없는, 이런 땅은 참 비참한거야. 이성이란게 없어 여긴.

칸트 가 결국 맞은건데 짧게는.

자 이제부터 말이야, 칸트 의 이야긴, 순수이성 이라고 하지만, 얘도 말을 제대로 분명히 안하고, 설명하는 애들 조차, 너무나 뿌옇게 말해서 문젠데, 아주 확실히 말해줘야 해. 아주 분명히 확실히 말이야, 칸트 의 코페르니쿠스적인 문장이란건, 어디까지나, 순수이성 이고, 이건, 자연과학분야의 이성 이야. 칸트 의 코페르니쿠스 는 자연과학이성 이지, 이 외의 다른 이성 이 아냐. 이성 이라는 전체 집합중에 내추럴싸이언스 를 하는 이성 이야길 하는겨 칸트는.

칸트 의 와꾸 는 일단 저거 두개에서 시작을 해. 이 인간의 단어 와 문법을 집중해서 봐야해. 이걸 집중해야 칸트가 제대로 보여.


싸이언스 와 모랄리티릴리전. 이 두 세상의 공존 이 칸트 의 목표 여. 얜 이것만 보여주면 되는겨. 요걸 항상 명심해 칸트 이야기에서.

따라서 당연히, 저 두 세상의 이성들이 다른거야. 저 전혀 다른 두 세상의 이야길, 이 업계 애들이 구분없어 말하는겨 이게.

2.2 Kant’s Copernican revolution in philosophy

To see how Kant attempts to achieve this goal in the Critique, it helps to reflect on his grounds for rejecting the Platonism of the Inaugural Dissertation. The Inaugural Dissertation also tries to reconcile Newtonian science with traditional morality and religion in a way, but its strategy is different from that of the Critique. According to the Inaugural Dissertation, Newtonian science is true of the sensible world, to which sensibility gives us access; and the understanding grasps principles of divine and moral perfection in a distinct intelligible world, which are paradigms for measuring everything in the sensible world. So on this view our knowledge of the intelligible world is a priori because it does not depend on sensibility, and this a priori knowledge furnishes principles for judging the sensible world because in some way the sensible world itself conforms to or imitates the intelligible world.

칸트가 순수비판에서 이 목표를 이루기 우한 시도들을 보면, 칸트의 인오규럴 디써테이션, 박사논문 인 플라톤주의 를 거부하는 이유를 아는데 도움이 된다.
(September 1755) A New Elucidation of the First Principles of Metaphysical Cognition (Principiorum primorum cognitionis metaphysicae nova dilucidatio (doctoral thesis))

칸트 의 박사논문 이 메타피지칼 인식의 첫번째 원칙들에 대한 새로운 설명. 1755년 31세 때 글인데, 순수이성비판 1781. 57세. 26년 지나서의 글이야. 자기의 박사논문 을 부정 하는겨.

박사논문에서는, 뉴튼과학은 쎈써블월드 에서는 참이고, 이걸바탕으로한 언더스탠딩 으로 모랄과 릴리젼의 인텔리저블 월드에서의 원칙들을 파악한다 고 봤다는거고, 쎈써블세상에서 측정하듯이 모랄 릴리전의 세상도 그 틀을 그대로 쓰는걸로 봤다는겨. 그래서, 이관점으로 추론한게, 인텔리저블 세상의 앎은 센서블세상을 접하는 것과 독립적이라 아프리오리 인거고, 이런 인텔리저블 세상의 아프리오리 는 쎈써블 세상을 판단하는 원칙들을 제공한다는겨 왜냐면 쎈써블 세상이 인텔너저블 세상과 콘포름 행동양식을 같이 하거든.

이게 박사논문이었는데 26년지나고서 이걸 부정해.

먼말이냐고?

야 이 한글문장으로 이리 친절하게 분명하게 말해주는데도 못알아들어머그믄 어쩌라는겨

라고 말하믄 내가 당근 미안하겄지. 그러나 여하튼 저런 단어 와 문장 은 분명히 인지를 하고서, 저런말들이 있구만, 하고, 다음 이 시간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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