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ip II the Bold (French: Philippe II le Hardi; Dutch: Filips de Stoute; 17 January 1342 – 27 April 1404) was Duke of Burgundy and jure uxoris Count of Flanders, Artois and Burgundy. He was the fourth and youngest son of King John II of France and Bonne of Luxembourg

용감필립. 샤를5세의 막내동생. 새엄마의 부르고뉴 공작령을 받고, 결혼으로 플랑드르 아르트와 부르고뉴백작령 을 갖아

유레 욱소리스. 욱소르 가 와이프. 남편은 마르티우스. 유레 는 유스 jus 의 탈격이야. from the wife's law 부인의 권리로부터.

부인 마가렛 이 담피에르 여자야. 샹파뉴 도시인데, 플랑드르 가 십자군때 끊겨서 담피에르 에 가고 에노 와 홀란드 는 아벤 에 가. 플랑드르 에 아르트와 네베르 부르고뉴 백작령 도 외동딸이라 물려받아. 더해서, 이여자는 두번째 결혼이야

첫번째 결혼을 부르고뉴 공작 필립 과 한겨. 다섯살때 아홉살남편인데 6년후 죽어. 여자 11세 남자 15세. 이 부르고뉴 공작령을 이여자가 또한 챙겨서, 두번째 결혼 을 19세에 용감 필립 27세 랑 한겨.

용감 필립 은 새엄마 가 갖고온 부르고뉴 공작을 받은건데, 일부여 이건. 저 마가렛 이 첫 시집간 부느고뉴 와 같은 핏줄이고 남자들로 이어가다가 끊겨서 다 갖고 온거야 공작령을, 마가렛 이.

최고의 결혼인거야 용감필립 에게는. 여자는 재혼이지만 꼬마때라 상관없는거고.

여기에, 아들 겁없공 장 이 14세에 비텔스바흐 의 마가렛 과 결혼해. 이 여자의 아빠가 홀란드 마가렛 의 아들이고, 이 홀란드 마가렛 은 아벤 여자고 에노 와 홀란드 를 받은겨 외동딸로. 후크 코드 전쟁 으로 아들과 싸우고. 홀란드는, 겁없공 장 의 부인 마가렛 의 남동생에 그 딸로 가고, 리에주 주교 였던 다른동생 편들어서 조카딸 재클린 의 홀란드 에노 를 뺏아서, 아들없이 죽고 누나인 이여자가 받는겨. 남편 겁없공 장, 저 전쟁들 참여한거고. 그래서, 벨기에 네덜란드 지역이 모두 2대만에 부르고뉴 것이 된거야. 즉 플랑드르 가문 것이 담피에르 와 아벤 에게 간게 용감필립 과 아들 겁없장 에게 간겨.

The Battle of Crécy took place on 26 August 1346 in northern France between a French army commanded by King Philip VI and an English army led by King Edward III.

The Battle of Poitiers was a major English victory in the Hundred Years' War. It was fought on 19 September 1356 in Nouaillé, near the city of Poitiers

백년전쟁 1337-1453 이 필립4세 때 시작해서. 크레시 전투 1346. 10년후 장2세 때 프와티에 전투 1356. 으로 프랑스가 대패를 해

이때가 유럽에 흑사병이 돌때야 1347-51이 한창이고. 데카메론 나올때고.

프와티에 전투 1356은 장2세가 두아들 앙주루이 17살 용감필립 14살 과 함께 포로가 돼. 흑세자 에게. 앙주루이 는 다커서 얘만 인질로 런던 가고, 막내 필립이랑 장2세는 풀려나 돈 주기로 하고. 그러다 앙주루이 가 탈출하거든. 장2세가 저거 애비얼굴에 먹칠한다고, 겨울에 직접 바다건너 런던으로 가는겨 약속지킨다고 다시 인질로 왔다며.

쟤들이 루이를 감옥살이 시키는게 아냐. 궁궐생활이야. 장2세가 런던에 올때 런던시민들이 환호를 해, 당신 참 멋지다고. 얘들은 이게 만화야 진짜. 극동에선 상상도 못하는겨. 쟤들 이야긴 정말 차원이 달라. 이 장2세가 런던 궁궐에 두세달 있다가 병걸려 죽어 4월에. 시신은 파리 오는거고.

Charles V (21 January 1338 – 16 September 1380), called the Wise (French: le Sage; Latin: Sapiens), was King of France from 1364 to his death in 1380.

샤를5세 때 프랑스가 정신 차리는겨. 에드워드3세 에 흑세자도 이때 죽어. 카스티야 내전때 프랑스가 지원한 트라스타마라 엔리케 가 페드로 를 이기는거고. 브르타뉴 후계자전쟁도 잉글랜드 가 지원하는 존 이 이겼지만 이 아들 존4세는 샤를5세 와 손잡아 잉글랜드가 너무 부담되서.

다들 연년생이고 막내 부르고뉴 용감필립 이 네살 아래 막내고. 16년간 회복을 좀 하곤, 아들 샤를6세 에게 간겨. 12세.

샤를5세 가 재임 1364-80
샤를6세 가 재임 1380-1422

리차드2세 1377-99. 헨리4세 1399-1413

흑세자 1376 아빠 에드워드3세 1377에 죽어. 흑세자 아들 리차드2세 가 10살에 올라. 22년재임. 리차드2세 가 어리고 얘들도 전쟁으로 돈이 말라. 인두세로 농민반란에, 얜 커서 전제정치를 해. 귀족들이 들고 일어나 로어드즈 어펠런트. 항의 영주들, 블링브로크 헨리4세 도 동참하고 얘 아빠 이자 리차드의 삼촌 랭카스터 곤트의 존이 카스티야에서 복귀하고 쫓겨난 리차드2세를 다시 앉혀. 곤트의 존이 죽고 이 랭카스터를 블링브로크에 안줘. 얘가 쿠데타해서 리차드를 내몰고 헨리4세가 돼. 이 헨리4세 14년은 반란 진압하고 수습하는데 시간 보내는거야. 리차드2세에 헨리4세 는 백년전쟁 여력이 없는겨.

이때 프랑스는 샤를5세가 회복하고 12살 샤를6세가 올라 1380-1422 . 헨리5세가 1413 에 올라서 2년후 아쟁쿠르 전투야.

1404에 부르고뉴 용감필립이 죽어. 오를레앙 루이 가 부르고뉴 를 증오해. 샤를6세가 21세에서야 권력을 받아 용감필립에게서. 그러다가 3년후 1392 24세에 드크리쏭 암살 보복하러 브르타뉴 원정길에 정신병 들어서 완전히 미친 짓을 해. 이걸 용감필립 이 동행하며 본거야 직접. 권력을 다시 뺏아. 오를레앙 루이가 항의하는거고. 그러다 저 삼촌 죽고1404 오를레앙이 형 샤를6세 대신 챙기는겨. 부르고뉴 겁없장 은 적이야. 겁없장 이 오를레앙 루이 를 사주해서 쳐죽이는겨. 칼로 손을 짜르고 도끼로 머리를 찍어 죽여. 1407.

그러면서 부르고뉴 는 프랑스 킹 코트 와 적이 되는겨 백년전쟁 와중에. 1407 이 분기야.

그리고 헨리5세가 1413. 27세에 올라서, 2년후 쳐들어오는겨. 이게 아쟁쿠르 전투여.

The Battle of Agincourt (/ˈædʒɪnkɔːr(t)/ AJ-in-kor(t);[a] French: Azincourt [azɛ̃kuʁ]) was an English victory in the Hundred Years' War. It took place on 25 October 1415 (Saint Crispin's Day) near Azincourt,

아쟁크루 가 파드칼레. 칼레해협, 도버해협 때문에 지은 이름. 에 있고 바로 아래가 크레시 야. 아쟁쿠르 역시 프랑스가 대패를 해. 결정적 전투여.

크레시 1346 프와티에 1356 아쟁크루 1415


The Revolt of Ghent (1379-1385) was an uprising by the city of Ghent against the count of Flanders and the king of France.

The Battle of Roosebeke (sometimes referred by its contemporary name as Battle of Westrozebeke) took place on 27 November 1382 on the Goudberg between a Flemish army under Philip van Artevelde and a French army under Louis II of Flanders who had called upon the help of the French king Charles VI after he had suffered a defeat during the Battle of Beverhoutsveld

플랑드르 의 헨트 반란 이 1379-85. 플랑드르 는 담피에르 꺼고 외동딸이 용감필립 시집가고 아직 장인이 살아있어. 1384에 죽어. 6년간 반란이 백년전쟁 때고, 장인 혼자 베버하우츠벨트 1382 를 패해. 다음에 부르고뉴 용감 이 지원가. 백년전쟁 시작을 잉글랜드가 플랑드르 상륙하는 해전으로 하는겨. 플랑드르 는 프랑스 를 싫어해. 정복왕 윌리엄의 마누라는 플랑드르 가문여자야. 이 플랑드르 에 홀란드 는 부르고뉴에 합스부르크 에 전쟁들 할때 잉글랜드가 항상 지원하는겨. 네덜란드는 잉글랜드가 만들어준 나라야.

루즈베커 전투 1382. 11월 은 용감필립 이 가서 이기는겨. 잉글렌드 는 반란군 지원해 패하고.

샤를6세 의 섭정 시 엔 부르고뉴가 자기땅 지킬겸 잉글랜드를 상대한거야 플랑드르 에서.

헨트 반란을 진압하고 용감루이 가 자기아들 겁없장 을 오른쪽 홀란드 에 장가 보낸겨. 14살. 이 홀란드를 겁없장 의 아들 현명필립이 후크 코드 전쟁 에서 코드들과 함께 갖고 올때, 여기도 잉글랜드가 재클린 영주편들며 부르고뉴와 싸운겨 아라스 협약 전 이지만. 그리고 홀란드를 부르고뉴가 갖고가.

부르고뉴가 플랑드르 와 홀란드를 갖고 가는 과정이 또한 백년전쟁 속 이야기야. 부르고뉴가 1407에서 아라스 협약 1435 로 잉글랜드 편이지만 이때도 잉글래드는 은근 플랑드르 홀란드 토백이 들을 거들어. 이 잉글랜드는 이런 짓이 마던까지 가.

크레시 1346 프와티에 1356 아쟁크루 1415

아쟁크루 1415 후 5년 지나 1420 에 트롸 조약 Treaty of Troyes 샤를6세 죽으면 프랑스를 헨리5세 가 잇는거야. 아들 도팽 샤를7세 가 1403생 17세야. 헨리5세 와 부르고뉴 가 샤를6세의 부인 대동하고 맺아. 프랑스 킹 코트 가 퀸이 공인한 조약이야. 어찌할수 없게된

1419 에 John the Fearless (French: Jean sans Peur ; Dutch: Jan zonder Vrees; 28 May 1371 – 10 September 1419) 겁없공 장. 이 암살당해. 장 쌍 페흐. 페흐 가 pavor 파보르. 파베오 떠는겨무서워 . 라틴의 불어 공포. 1407 에 사촌 오를레앙 암살시키고, 12년 후 1419에 암살당해 48세.

The Armagnac–Burgundian Civil War was a conflict between two cadet branches of the French royal family — the House of Orléans (Armagnac faction) and the House of Burgundy (Burgundian faction) from 1407 to 1435. It began during a lull in the Hundred Years' War against the English and overlapped with the Western Schism of the papacy.

아르마냑-부르고뉴 내전. 오를레앙 루이 가 호텔앞서 험하게 죽어 1407. 이때부터 1435 까지 내전이야 오를레앙 과 부르고뉴 는. 28년.

1419에 겁없장 이 보복당해. 부르고뉴 는 이때 완벽히 돌아선거야 잉글랜드 에게.

1435에 아라스 조약으로 부르고뉴와 프랑스킹덤 이 화해해. 이때부터 부르고뉴는 잉글랜드 에서 프랑스로 갈아타

1440 에 부르고뉴 와 오를레앙 이 화해해.

오를레앙 루이 의 장남이 샤를 이야. 얘 부인 이 아르마냑

The county of Armagnac (US: /ˌɑːrmənˈjæk, ˌɑːrmɑːnˈjɑːk/,[1][2] French: [aʁmaɲak]; Gascon: Armanhac), situated between the Adour and Garonne

아르마냑 백작령이 아두르 강, 가론 강 사이에 작게 있어. 피레네 산맥 접경 서쪽이야. 여긴 가스코뉴 고 얘들은 잉글랜드 여 저때도. 아키탄 엘레오노르 의 땅을 실지왕 존 때 갖고와도 저때는 여전히 여긴 잉글랜드야. 저당시 가론강 아래 가스코뉴에 루와강 오를레앙 위 북부는 전부 잉글랜드여. 프랑스는 저때 지워지는거야. 오를레앙 전투 를 잉글랜드 가 이겼으면, 프랑스 는 잉글랜드 가 되어버리는거야

오를레앙 의 샤를 이 1399생이고 얘가 아빠를 이어 킹 코트를 대리하는겨. 아빠죽을때 1407 8살이고 결혼을 아르마냑 여자와 해. 이 아르마냑 이 오를레앙을 대리하는겨. 1415 아쟁쿠르 때 얘가 참전해서 패하고 얜 포로가 되서 잉글랜드로 가. 샤를 이 포로생활 25년을 하는겨 1440 까지. 궁궐에서 노는거야 감옥이 아니라. 쟤들은 쉬벌리 기사도 의 애들이야. 헨리5세가 아쟁쿠르 때 사람들 죽였다고 사학자들이 쌍욕하는 땅이야 ㅋㅋ.

역사 서술 마인드 가 이게 전혀 달라. 당시 의 사람 들 자체도 달라 이게. 니덜은 이런걸 모를텐데. 기사도 에 그리스도 가 먼  책에 만 있는 이야긴줄. 천만에. 장2세 자진해서 런던으로 가 아들때문에 미안타고. 전쟁 와중에. 적의 시민들이 렬렬히 환영해. 저런건 다른 곳에서 상상도 못하는 장면이야.

오를레앙 의 대리를 아르마냑 이 하는겨. 루이 죽을땐 샤를이 어리고, 막 커서 16세엔  포로되서 25년을 잉글랜드에서 지내.

그래서, 1407-35를 아르마냑-부르고뉴 전쟁 이라고 하는거야. 정작 오를레앙 주인 샤를 은 1440에 와. 부르고뉴 오를레앙 은 이때서야 화해하는겨. 1419 겁없장 의 보복을 안하기로 하고. 부르고뉴현명필립 은 이전 1435에 프랑스 킹 코트랑 화해하는거고.

오를레앙 이란 이름을 아르마냑으로 그래서 대신 하지만, 그만큼 아르마냑 이 강했던거야 싸이키가 힘이. 여긴 피레네 접경 짝은 카운티야. 가스코뉴 더치의 일부야. 전혀 대단할게 없어. 그러나, 강력한겨 1435년까지 28년 에 샤를 복귀 까지 5년 해서 33년.

이 가스코뉴 지역이 프랑스 외딴 남서 끝 구석탱이거든. 여기의 아르마냑. 이 가스코뉴 가 웃긴지역이야. 달타냥 이 여기고 삼총사 가 원래여기야. 씨라노 드 베르주라크 의 베르주라크 가 가론강 아래 가스코뉴여. 씨라노 는 프랑스 의 자부심 그 자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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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쟁쿠르 1415 에 헨리5세가 대스타가 되는건데. 그래서 이건 아르마냑 이 16세 오를레앙 샤를을 지원하는거고, 아르마냑 이 중심이고, 부르고뉴 는 개입을 안하는겨. 샤를6세 는 1422 에서야 죽는거고. 얜 완벽히 미친놈이라 정무를 못해.

부르고뉴는 시작 용감필립 이 플랑드르 를 갖으면서, 여긴 잉글랜드 울 양털을 원료로 실뽑고 원단 만드는 곳이야 1차로. 방적 방직. 이게 프랑스 땅으로 들어가고. 잉글랜드는 이 단순한 양모피 수출로는 미래가 없는겨. 실뽑고 원단가공하는 제조를 갖고 오기 위해서 백년전쟁을 또한 한거야. 백년전쟁 이후로 이 원단가공 을 갖고와 이게 통계로 드러나.

용감필립 과 아들 겁없장 은 그래서 백년전쟁 의 프랑스 지역 전쟁은, 꺼리는거야. 잉글랜드 의 양모피 없으면 플랑드르가 죽어. 겁없장 이 암살사주로 멀어지기도 했지만, 잉글랜드 와 부닥칠 수 없는겨. 아쟁쿠르 1415를 대패하고, 아빠는 미쳤고 도팽 샤를7세 가, 1419 에 부르고뉴 의 암살을 잊기로 하고 화해하자는겨 잉글랜드 를 막자며. Montereau 몽트로 다리 회담. 잉글랜드가 Poissy 프와시, 파리 서쪽 근교를 먹어. 코트를 동쪽 트롸 Troyes 로 옮기고, 겁없장 을 파리 아래 트롸 서쪽 몽트로 에서 만나 조약 맺기로 해. 센느강 다리여.

다리 양쪽에 각각 문 을 만들어. 각각 열명씩만 수행하고 다리 가운데서 만나는겨. John looked for support by putting his hand on the hilt of his sword. "You put your hand on your épée in the presence of His Highness the Dauphin?" 겁없장 이, 칼집에 손 올리고, 도팽에게도 칼에 손올려 맹세하자고 해. 이걸 도팽 샤를7세가 거부하고, 아르마냑의 Tanneguy du Chastel 탕느기 뒤 샤텔, 이 찌르고, 문이 열린채 우르르 들어와서 죽이는겨.

샤를7세 가 도팽 이 1403년생 이고, 저때 16세야. 얘가 모든걸 주도한것으로 봐.

현명필립 이 1396생 이고 25세여 저때.

완벽하게 잉글랜드 의 동맹군이 돼. 방관자 에서. 그리고 다음해 1420 에 트롸조약, 샤를6세 죽으면 헨리5세가 킹. 퀸이 서명해. 도팽샤를 은 권리 박탈. 소문을, 도팽은 아빠가 오를레앙 루이 라는겨.

저때, 루아르 강 북쪽에 브르타뉴 에 아키탄의 위, 가론강 아래 가스코뉴 는 잉글랜드 꺼야.

Joan of Arc (French: Jeanne d’Arc[4][5] pronounced [ʒan daʁk]; c. 1412 – 30 May 1431),[6] nicknamed "The Maid of Orléans" (French: La Pucelle d'Orléans)

오를레앙 의 처녀 잔다르크 가 이때 등장하는겨.

The siege of Orléans (12 October 1428 – 8 May 1429) was the watershed of the Hundred Years' War between France and England.

잔다르크 는, 오를레앙 이야. 바공작령 돔레미 여자야. 이 여자가 등장하는게 오를레앙 포위 1428년 10월-1429년 5월.

잔다르크 가 1412년생 이고, 나중 재판때 니 몇살이니 할때 19세요 해서. 등장이 1429년 1월 즘이야. 잔다르크 는 딱 만 2년 등장 한거야. 16세.

잔다르크 이야긴 정말 이건 골때리.

파티마 이야기 못지않게 골때리는건 잔다르크야.

오를레앙 은 샤를 이 포로상태고, 저긴 잉글랜드가 갈 생각을 안했어. 영주 가 포로인 땅을 재침공안하는게 당시 기사도야. 그런데 솔즈베리 애들이 지원오면서 이걸 무시하고 간겨. 헨리5세의 동생 랭카스터 가 저기 사령인데, 솔즈베리들이 우겨서 먹기로 한겨.

오를레앙 위 와 왼쪽은 루아르 강 위로 다 먹은겨. 오를레앙 이 화룡정점 인겨. 도팽 샤를7세는 아래 시농 Chinon 에 있어. 1428년 10월. 이미 1422에 샤를6세는 죽고 이해 헨리5세도 죽어, 트롸 조약대로 헨리6세가 프랑스킹 이야. 근데 얜 1살 이야.
.

이 다음 이야긴, 넘기고 다음으로.

그래서, 부르고뉴 는 프랑스 에선,  아주 불편한 이름이야.

이 부르고뉴 는, 네덜란드 에서 띄우는겨. 그게 요한 하위징아 의 중세의 가을 이야.

부르고뉴 4대가 성년들이 받으면서 건강하게 잇거든.

프랑스 킹 코트 는 미친 샤를6세에 아들 샤를7세는 아빠죽고 10년 떠돌이여 땅 다 뺏기고.

프랑스 땅 의 문명 이, 부르고뉴 코트로 가는거야. 인물들이 모두 부르고뉴 코트의 스폰을 받는거야.

저당시 부르고뉴 코트로 가는 문명 이 중세 천년이 쌓인 총체 엑기스 가, 부르고뉴에 심어지는거야.

이게, 북부 르네상스 를 만든겨. 이건 프랑스 보다 어마무시하게 찬란한거야. 저당시 그림들, 하물여 민들의 결혼식 에 길거리 풍경들 조차.

저게 네덜란드 를 만든거야. 벨기에에. 지금 북유럽은 저때의 부르고뉴가 만든겨.

이런 설명 전혀없이, 하위징아 가 중세의 가을 을 낸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저건 부르고뉴얘기거든.

중세 의 열매는 대체 왜 부르고뉴냐.  중세가 부르고뉴만인겨?  사람들이 너무나 황당한겨 저걸보면.

물론, 조선애들은 저책이 뭔책인지조차 모르거, 읽어봐도.

하위징아 가 고마와할거야 하고픈말을 내가 헤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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