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mas of Woodstock, 1st Duke of Gloucester (7 January 1355 – 8 or 9 September 1397)[2] was the fifth surviving son and youngest child of King Edward III of England and Philippa of Hainault.

우드스탁 의 토마스. 글로스터 공작. 1355생. 에드워드3세 와 에노의 필리파 가 13명 자식에서, 아들은 5명 이 성인돼. 이중 막내야. 맏형 흑세자 가 25년 위여. 필리파 가 45세 에 낳아.

리차드2세 가 1367년생. 막내삼촌이랑 12살 차이야.

얘가 열살에 오르고, 이때 삼촌들이 셋 이야. 랭카스터 곤트존, 요크 에드먼드, 글로스터 토마스. 이들이 다 배제되고 카운슬 위원회 가 섭정을해. 그리고 바로 전제정치를 해. 곤트 의 존은 스페인에 있고. 동생 에드먼드도 같이 있다가 돌아오고, 로어드즈 어펠런트 1388, 귀족들이 쿠데타로 가둔걸 곤트존 이 와서 수습해. 막내삼촌 글로스터 토마스 가 주도 한 반란이야 저게. 곤트의 아들 볼링브로크(헨리4세) 도 리차드2세를 싫어해 저기 가담자야.

랭카스터 의 곤트존 이 스페인에 아키탄 갔다가 부랴부랴 저걸 수습하는겨. 니들 그래도 그러면 안돼 하는거고 좋게 마무릴 한겨 겉으로는.

곤트 존은, 동생 에드먼드 와 함께, 카스티야 내전 때 미친 피터 편 드는겨 피터 가 1369에 죽고, 트라스타마라 엔리크 의 카스티야 가 선거야. 곤트존 과 에드먼드 는 죽은 피터의 두딸과 결혼을 해. 형 존이 카스티야 킹 주장하고, 에드워드3세와 흑세자 가 스페인 내란에 올인한거야 저때. 이전에 프와티에 1356 이기고, 이 다음은 브르타뉴 후계전쟁 과 이어 카스티야 후계전쟁 으로 백년전쟁이 전개돼. 프랑스는 샤를5세 가 임하는, 이걸 카롤라인 전쟁 이라고해 샤를5세 이름으로. 브르타뉴 이베리아. 블랙프린스 와 에드워드3세는 이 와중 에 죽고 두동생 랭카스터 와 요크는 카스티야 에 올인하다 힘 다 빠진거야. 이전 브루타뉴 도 이겼지만 프랑스 로 돌아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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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동생 글로스터 토마스 가 1397 에 죽어. 곤트존 이 1399에 죽어 병들어서. 리차드2세가 막내삼촌 토마스를 반란죄로 체포해. 감옥에서 죽어. 나중 헨리6세도 저리죽고, 리차드3세도 두 조카 꼬마들 가두고. 몰라 영원히, 그 내막은. 암살시킨듯, 진실은 몰라 영원히.

얘들은 킹덤 차원의 사악한 짓은 비밀이야. 이건 영원히 비밀이야. 근현대도 마찬가지야. 킹 잡고 죽이는건 지들 의 똥 이거든. 자랑할게 없어. 정권 넘겨받은 애도 드러내지 않아. 왜? 자기 킹덤의 그림자거든. 드러내봤자 쪽팔린겨. 민들에게도 외교적으로도 수치야. 킹은 이전킹 을 깜빵보내거나 죽이는게 아냐. 아프리카 땅에서나 현대에 저런짓들 하는거야. 조선 민국 같은 가장 미개한 애들이나 저러는거고.

킹 짱 이 자살 하는건, 이건 인간 역사에 있던 적이 없어. 로마때 서로마 발렌티아누스 2세가 자살했다지만 암살이고, 퇴직한애가 자살하는것도 없어. 진짜 가장 미개하고 퇴화된 종족이야. 조선이란건 이래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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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스터 토마스 가 잡혀 죽을때 42세. 곤트존 은 57세. 당시 킹코트 에 있지만, 묵인 해. 자기 아들 볼링브로크 헨리4세, 때문에. 요크의 에드먼드 도 침묵해. 조카 리차드2세가 30세 넘고 강한거야 얘가 이미 안에서 무서울게 없어.

Thomas de Mowbray, 1st Duke of Norfolk, 1st Earl of Nottingham, 3rd Earl of Norfolk, 6th Baron Mowbray, 7th Baron Segrave, KG, Earl Marshal (22 March 1366 – 22 September 1399)

모브레이 의 토마스 가 리차드2세의 사주로 재판 기다리는 감옥 내 글로스터를 죽인거로 봐. 노퍽 공작. 얘도 반리차드로 귀족들 어펠런트 할때 일원이었다가 킹편으로 돌아선겨. 얘가 글로스터 죽인걸 볼링브로크 에게 뒤집어 씌어. 둘이 결투 니 소란피우고 리차드2세가 쇼하면서 둘다 내쫓고, 그러다 곤트존이 죽고 1399 랭카스터 영지를 몰수해. 열받은 볼링브로크 가 쿠데타 해서 헨리4세가 된건데.

그리고, 이 글로스터 자리는 헨리5세 의 동생 험프리에게 가. 험프리도 헨리6세 섭정하고, 나중 반역죄로 기소되고 바로죽어. 이 글로스터 가 요크 의 리차드 의 나중 리차드3세 에게 가는겨. 두 조카 꼬마 죽인. 셰익스피어 에게 가장 악당 캐릭

이 글로스터 가 생기고 나서 세명연속 비참한겨. 이걸 지웠다가 마던에 다시 회복해.

지금 글로스터 공작 이 킹조지 5세 의 손자야 현재.

킹조지5세의 아빠가 에드워드7세고 이엄마가 빅토리아퀸이고,

킹조지5세의 두아들이 에드워드7세 에 킹조지6세야. 이 동생이 글로스터공작 프린스고. 이 아들이 그대로 받고 지금. 킹조지6세의 딸이 현재 엘리자벳2세 퀸 이고


글로스터 가 브리스톨Bristol 채널 해협 에 쎄번강Severn 하구여 숙 들어간게. 아래가 에이븐강Avom 브리스톨 이고. 왼쪽이 웨일즈고.

글로스터 헤리포드 우스터, 레스터, 버밍엄 노팅엄. 쏘즈버리

꼭 이렇게 읽어야해. 햄이 아냐. 뭔씨쓰터 도 아냐. 레이스터도 아냐. 워스터도 아냐. 캠브리지가 아냐 케임브리지. 솔즈니 쏠즈버리 가 아냐, 쏘즈버리. 저걸 모두 다크엘소리를 표기하는데 모두 잘못된겨 엘 소리 안나. 쏘즈버리 야. 이리저리불러도 되는게 아냐 꼭 저들발음 이어야해.

지명이름들이 포님을 잃은게 영국 지명이야. 아일랜드에. 스터 는 웨일즈말이고, 저게 노르망 프랜치에 기존 색슨 앵글로 에 프리지아 말들에 데인족에, 원래의 게일들 말이, 걍 뒤섞인겨. 가장 어려운 지명 이 그래서 영국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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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3세의 부인 이 에노 의 필리파 인데. 아벤 Avesnes 가문이여. 오빠가 에노 홀란드 를 물려받고 죽어서 언니 마가렛이 받는겨. 황제 비텔스바흐 루트비히 에 시집간. 그리고 저땅으로 자기 친아들 후크 코드 전쟁할때, 그 여동생 이야.

에노 의 필리파 의 엄마는 발루아 의 잔 이야. 발루아 시작 이자 백년전쟁 시작필립6세 의 여동생이여. 발루아 필립6세와 누이 잔 의 아빠가 발루아 시작 샤를 이야. 형이 필립4세 야. 필립4세의 할배는 성루이9세 고. 레반트 십자군 끝내는 주범이 성루이야. 실력은 전혀 없고 허세만 잔뜩인겨 얜. 손자 필립4세 때 빚만 있어. 교황 보니파키우스8세 할배를 가서 패죽여. 다음교황 독살. 클레멘스5세 가 아비뇽으로 기들어와서 필립4세에 아부하는겨. 빚을 해결해드리께유, 채권자 겸 최고거부 템블기사단 을 이단 에 동성애한다미 해체하고 재산 뺏고 기사단장 화형식. 교황 과 필립4세의 작품이야. 템플기사단의 저주, 자식들 루이10세 필립5세 샤를4세 에 이전에 루이의 아들 장1세, 네명 이 줄줄이 죽고, 필립4세의 동생 발루아샤를 의 아들 필립6세 부터 발루아야. 이때 여동생은 에노 에 시집가서 이딸들이 신성로마황제 와 잉글랜드 킹 부인 들로 간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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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2세가 곤트존 죽은 1399에 내려와. 상속끊긴 헨리가 바로 바다건너와서 엎은거고 귀족들이 그만큼 리차드를 싫어한거고. 항복한 리차드는 다음해 죽어. 33세.

저때도 참 웃긴게, 리차드2세는 당시 초강력이야. 랭카스터 존, 요크 리차드, 대륙에서 전쟁으로 닳고닳은 둘다 60 되가던 할배들이야. 열살부터 20년동안 떠받든 삼촌들이고 막내삼촌은 로어드즈 어펠런트 로 얜 쫓겨났다가 존 삼촌이 살려준겨.

저런 삼촌들을, 막내삼촌을 반역몰고 죽이고, 두 삼촌들은 저때 런던에 있어. 아무소리도 못해. 얜 초강력한 전제군주야. 의회도 꼼짝못해. 얜 사병집단을 근위대로 키웠어. 결혼을 미친샤를6세의 첫째딸과 해 여섯살이야. 프랑스와 평화라며 아키탄 땅에 대해 하미지 하기로 해. 의회를 거부 무시해. 얜 지 맛대로 해. 잉글랜드 역사에서 의회를 무시하고 킹이 이렇게 독재한건 얘가 처음이야. 헨리3세때 배론들이 전쟁해서 의회장악한 이후로.

이런 상황에서, 볼링브로크 가 맨몸으로 권력잡은건 황당한거야. 말도 안되는겨 저게.

1397 에 리차드2세가 막내삼촌 죽인걸 모브레이 앞세워서 자기한테 누명 씌우고, 쫓겨나서 프랑스로 가. 포로 생활한겨. 그러다 2년후 아빠 곤트존 이 죽어. 1399에 프랑스는 샤를6세가 미친지 7년되가고 이때 동생 오를레앙루이가 코트를 장악해. 프랑스와 화해 rapprochement 라푸슈몽 이라며 볼링브로크 를 풀어줘. 이때 바다건너 잉글랜드 간겨

잉글랜드 북부 의 동쪽이, 스콧접경 노떰벌랜드, 아래가 더름 Duhram, 아래가 요크셔 야. 이 요크셔 가 동서남북 네개야. 볼링브로크 가 동 요크셔 해변에 도착한겨. 6월 말에.

With a small group of followers, Bolingbroke landed at Ravenspur in Yorkshire towards the end of June 1399.[91] Men from all over the country soon rallied around him. Meeting with Henry Percy, 1st Earl of Northumberland, who had his own misgivings about the king, Bolingbroke insisted that his only object was to regain his own patrimony.

여기 귀족 이 노떰벌랜드 백작 퍼씨 가문 이야. 북잉글랜드 두 가문 나머지 하나 가 네빌 이고.

퍼씨 와 볼링브로크 가 만나. 볼링브로크 는 뺏긴 랭카스터 재산 갖고오면 된다며. 말이 애매한거야. 킹에게 가서 재산다시주세요 해달라는거야? 중재해달라는겨? 같이 손잡고 리차드를 내쫓자는 말은 못하는거지. 퍼씨 가 자긴 빠지겠다고해. 이것 조차도 퍼씨는 헨리손 잡은겨. 상관않겠다, 런던가던말던.

The king had taken most of his household knights and the loyal members of his nobility with him to Ireland, so Bolingbroke experienced little resistance as he moved south.

이때 리차드2세는 아일랜드 원정을 간겨. 5년전에도 아이리쉬들이 잉글리쉬 지역을 들어와서 원정가고
지금 또간겨. 볼링브로크 가 런던가는데 무혈입성 해. 귀족들이 등돌린겨 리차드 에게.

Meanwhile, Richard was delayed in his return from Ireland and did not land in Wales until 24 July.[94] He made his way to Conwy, where on 12 August he met with the Earl of Northumberland for negotiations.[95] On 19 August, Richard surrendered to Henry Bolingbroke at Flint Castle, promising to abdicate if his life were spared.[96] Both men then returned to London, the indignant king riding all the way behind Henry. On arrival, he was imprisoned in the Tower of London on 1 September

리차드2세가 바로 돌아와야하는데, 얘가 늦어. 7월24일 에 웨일즈 로 온겨. 북쪽해변 왼쪽 코니 에서 8월12일 에 퍼씨 백작을 만나. 그리고, 오른쪽 플린트성 에서 항복해. 살려주는걸 조건으로.

허무하게 꿇은거야. 말도 안되게. 웨일즈 쪽 애들이 자기편 인줄 알았는데 다 돌아선겨. 아일랜드 원정병력으로 전투생각을 못해. 이미 모든 귀족들이 다 돌아선거야.

저때 여전히 남은 삼촌 요크 에드먼드 도 있어. 이사람도 볼링브로크 편이 돼. 헨리4세 로 오르는겨.

그런데, 리차드2세 가 킹에서 내려가는게, 헨리4세가 오르는건 별개야.

대체, 왜, 헨리4세가 킹을 받아야해? 얜 자기 아빠 재산 받는것으로 만족해야 하는거거든.

장미전쟁 헨리6세 후반 의 시작 의 근본 뿌리는, 헨리4세 가 킹 이 되는순간부터 문제가 드러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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