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Talbot, 1st Earl of Shrewsbury, 1st Earl of Waterford, 7th Baron Talbot, KG (c. 1387 – 17 July 1453), known as "Old Talbot", was an English nobleman and a noted military commander during the Hundred Years' War.

존 톨벗, 영국식 발음을 쓰자고. 미국애들은 탈벗. 이 존 톨벗 핏줄이 3백년 후 킹조지2세때 공직서열2위, 총리보다높은, 로어드 챈슬러 인 찰스 톨벗, 이야

존 톨벗 은 톨벗 7대배런이고, 슈르즈버리(슈로우즈버리) 1대 백작 이야. 슈루즈버리 백작. 슈르즈버리 전투 1403 핫스퍼 퍼씨 죽는 곳. 이사람이 1387-1453 인데, 백년전쟁 끝 1453 카스티용 전투 때 둘째아들과 함께 죽으면서, 백년전쟁 이 끝나는겨. 첫째는 요크와 같이 하는거고. 두딸들도 요크 와 네빌. 네빌 과 퍼씨 의 대립에서 네빌 이 초강력이야. 요크는 이 네빌 가문이 만들어 준겨.

존 톨벗 닉이 잉글리쉬 애킬리즈, 일리아스의 아킬레쓰 야, 프랑스의 공포. 그런데 정작 전적은 별로지. 셰익스피어 가 만든 영웅캐릭 일 뿐이야.

Glyndŵr Rising, Siege of Harlech (1409)
Hundred Years' War
Battle of Verneuil (1424)
Siege of Orléans (1428–9)
Battle of Patay (1429) (POW)
Siege of Saint-Denis (1435)
Battle of Castillon (1453) †

21세때 오웬 글린두르 반란 때 포위전 가고, 백년전쟁 가서, 베르네이 1424 는 아쟁크루 1415후 확인사살 하는 전투야 프랑스는 이때 거의 끝난겨. 그러다 오를레앙 1429 막판에 잔다르크 로 포위전 실패하고 잉글랜드군은 흩어져. 존 톨벗 도 도망다녀.

The Loire Campaign was a campaign launched by Joan of Arc during the Hundred Years' War. The Loire was cleared of all English and Burgundian troops.

르와르 캠페인. 오를레앙 좌우로 르와르 강 흐르는 계곡이고 흩어져 도망치는 잉글랜드 와 부르고뉴 를 추격하는겨. 잔다르크 도 참전을 해

The Battle of Jargeau
The Battle of Meung-sur-Loire
The Battle of Beaugency
The Battle of Patay

자르조, 멩쒸르와, 보장씨, 오를레앙 좌우로 르와르 강 도시들이야. 파테, 오를레앙 북쪽, 여기에 톨벗 이 후퇴해 있던거고, 저걸 다 진압하는겨 프랑스가. 잔다르크 도 같이. 저게 모두 6월 에 벌어진 전투야. 존 톨벗은 파테 에서 프리즌오브워, 전쟁포로 가 된겨

1435 생드니 전투. 톨벗 이 프랑스가 점령한 파리북부 를 포위하는겨. 겨우 갖고오지만, 이게 부르고뉴와 손잡은 마지막 전투야. 바로 아라스 조약으로 부르고뉴 가 돌아서고, 부르고뉴 없는 잉글랜드 는 아무것도 아냐. 점렁해봤자 프랑스시민들이 이젠 협력을 안해. 부르고뉴 때문에 같은편 해준거거든. 그리고 카스티용 1453 으로 존 톨벗 슈루즈버리 백작 은 둘째아들과 같이 죽고 백년전쟁은 끝나.

존 톨벗 슈루즈브리베리버리 1대백작. 슈와 발음 이, 으, 가 맞어, 어, 보다는. 걍 혼용하는건데 내가. 이 부자의 카스티용 전투1453 이 백년전쟁 패배로 끝나면서 잉글랜드의 처참한 장미전쟁 이 시작되는건데, 그래서 대체 존 톨벗 이 장미전쟁과 먼 상관이겄냐 며.

톨벗 이 2남2녀 야. 장남이 잇고 요크편 들다가 튜더때도 잘나가. 둘째는 아빠랑 죽은거고, 셋째 딸이 에드워드4세 의 애인 인겨.

Lady Eleanor Talbot (c. 1436 – June 1468), also known by her married name Eleanor Butler (or Boteler),[1] was an English noblewoman. She was a daughter of John Talbot, 1st Earl of Shrewsbury. After the death of Edward IV of England in 1483 it was claimed by his brother Richard, the future Richard III, that she had had a legal precontract of marriage to Edward, which invalidated the king's later marriage to Elizabeth Woodville.

Edward IV (28 April 1442 – 9 April 1483)
에드워드4세 가 1461년 19살에 요크 로 킹이 돼. 십년지나다 6개월 피하고 다시올라 총 22년. 41살 죽음

결혼을 1464 에 하는데, 전에 이미 애인이 있어. 레이디 엘리너 톨벗. 존 톨벗 의 딸이야. 여섯살 연상인데 어릴때 약혼 한 상대가 일찍 죽은듯. 시집이 써들리 영주 버틀러 고 헨리6세의 체임벌린, 왕실 집사에 재무부장관, 완전 실세야. 요크 서고 깨갱 해야해. 그런데 엘리너 버틀러, 가 에드워드4세 갓 스물넘은 킹의 애인 이야. 중요한 건 precontract 프리컨트랙트, 컨트랙트 가 법적 혼인 계약이야. 프리, 정식결혼전에 몰래 한겨. 이것 조차 쟤들 법으론, 결혼 으로 봐.

이여잔 이미 에드워드4세 1483보다 15년 먼저 죽어 병으로 1468.

에드워드 도 죽고 1483 동생 리차드3세 될 애인 글로스터 리차드가, 죽은 저 형 애인 엘리너 와의 프리컨트랙트 를 꺼내면서, 형이 결혼해서 낳은 조카들 은 법적으로 무효 라는겨. bigamy 비거미, 중혼 이란거고

에드워드4세 가 1483년4월9일 에 죽어
12살 아들 에드워드5세는 공식적으로 이날부터 킹 이야. 리차드3세 가 6월26일 부터야. 대관식을 10일 후에 해.

에드워드5세는 대관식을 하지 못하고 사라진거야.

잉글랜드 는 섭정을 로어드 프로텍터 라 부르고 프랑스는 리전트 영어의 레정 을 쓰는겨 라틴어 레고 의.

잉글랜드 는 섭정을 싫어해. 리차드2세는 10세 즉위지만 얜 걍 카운슬이 자문이고 바로 대관식을 해, 헨리6세도 대관식을 8살에 하고 바로 권력행사해 삼촌 험프리 내려오고. 에드워드 5세는 생일 안지난 12세여. 얜 그리 꼬마가 아냐. 같이 사라진 동생이 10살 된거고.

글로스더 리차드는 섭정으로 필요 없는겨 원래. 에드워드4세가 유언으로 동생을 섭정해라 했다지만 문서없어, 관례상 의미없어. 걍 바로 대관식 하고 킹 하면 돼. 중요해 이 대관식 이란 형식은. 형식 의례란건, 유치한듯 보여도 말이지, 인간집단에서 아주 중요해. 저 아무것도 아닌 샤를7세는 대관식 하나로 킹이 되고 이게 프랑스의 내셔널리티를 만든겨. 개인에게도 중요해.
.
.
그냥 차갑게 팩트만 보면

It was at Ludlow that the 12-year-old prince received news, on Monday 14 April 1483, of his father's sudden death five days before.

The new king left Ludlow on 24 April, with Richard leaving York a day earlier, planning to meet at Northampton and travel to London together. However, when Richard reached Northampton, Edward and his party had already travelled onward to Stony Stratford, Buckinghamshire.

4월9일 죽을때, 아들 5세는 러드로우 에 있었어. 여긴 슈랍셔 웨일쓰접경 이야. 웨일쓰의 프린스걸랑 세자는. 5일만에 소식듣고 동남쪽 런던 가야해. 준비하고 어쩌고 24일에 출발해. 글로스터 리차드 는 요크셔 에 있다가 하루먼저 남하 하는겨. 에드워드 가 버킹엄 스토니스트랫포드 에 도착해 더 빨라. 리차드 는 위 노땜프톤 이고. 리차드 가 스토니 스트랫포드 가서 만나는겨. 에드워드네는 기다리고. 두팀이 만나서 함께 가기로 약속되었었어

The Earl Rivers travelled back to Northampton to meet Richard and Buckingham who had now arrived. On the night of 29 April Richard dined with Rivers and Edward's half-brother, Richard Grey, but the following morning Rivers, Grey and the king's chamberlain, Thomas Vaughan, were arrested and sent north.[7] Despite Richard's assurances all three were subsequently executed.

에드워드5세의 수행단이 리버쓰 백작, 리차드 그레이, 집사 토마쓰 본. 꼬마 에드워드의 엄마가 엘리자벳우드빌 인데, 동생이 아빠를 이어 리버쓰 백작이고, 이전에 낳은 아들이 리차드 그레이. 꼬마의 씨다른 형이야. 부탁받아서 2천명 모아 가는거야. 리차드 는 6백명. 이들이 4월29일 날 만나서, 밤에 연회하고, 다음날 셋을 체포해, 리차드가. 저 셋이 자기를 섭정하는걸 반대한다, 반역이다. 술먹다가 그런이야기 당근 했겄지 이전 리차드2세 헨리6세 사례언급하면서. 그런데, 법적으로 꼬투리잡으면 진짜 꼼짝마라여 저런거.

리차드 의 동행은 버킹엄 이고, 셋 체포해서 요크셔 Pontefract 폰트프랙트 캐슬 로 보내고, 에드워드 꼬마를 데리고 런던 입성해.

꼬마의 엄마, 죽은4세 의 부인 엘리자벳우드빌 은 다음날 30일 자기 동생 리버쓰백작과, 전남편과의 아들 그레이 의 체포소식을 듣고, 큰아들 씨다른 그레이 와 다섯딸들 과 막내아들 10살 꼬마를 데리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들어가. 여긴 못잡아 가니까.

5월4일 에 런던들어오고, 이날 대관식 하려던걸 연기해 6월22일 로. 엄마 우드빌 은 막내 아들 열살 짜리를 대주교 믿고 보내줘 6월16일, 대관식 참석해야 한다며 독촉해서. 그래서 형 이랑 같이 지내. 런던타워. 형 5세는 5월19일 에 이리오고.

6월11일 전후에 리차드가 편지들을 써, 우드빌 퀸과 가족들이 자기를 죽이려한다고. 13일에 에드워드4세 의 체임벌린 이자 실세 헤이스팅쓰 등등을 고발해 자기를 반대 한다며.

6월22일 쎄인트폴 성당에서 주교가 연설을 해. 에드워드4세는 비거미 중혼이다 우드빌과 결혼 무효고 자식들은 배스타드들 무효다. 사람들이 몰리고 리차드가 킹이라며 외쳐

6월25일에 이날 상하원이 리차드를 킹 선언해 킹자리 받으라고, 이날 리버스 그레이 본 셋 을 사형시켜. 다음날 26일 리차드가 킹 을 받겠다 하고, 7월 6일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을 해

Edward V and Gloucester arrived in London together. Plans continued for Edward's coronation, but the date was postponed from 4 May to 25 June.[2] On 19 May 1483 Edward was lodged in the Tower of London, then the traditional residence of monarchs ...

타워오브런던 이란건, 킹 캐슬 팰리스 야. 가운데 건물이 화이트 타워고, 여기서 지내는겨. 이게 마치 감옥인상 인거고. 머 런던타워 가 탑 꼭대기 가두는 깜빵이 아니라 이 멍충이더라.

니더른 대체 어디까지 멍청한거냐.

프린스들 둘은 저 두 날짜 이상 없어. 여름에 죽은듯, 이게 전부야.
.
.

4월29일 리차드 가 리버쓰, 그레이, 본, 셋을 초대하고 감금 한게 결정적이야. 그리고 에드워드5세를 얘가 데리고 런던에 들어가는겨. 들어가기전부터 목줄 잡힌거야 저게. 이때 리차드 의 동행은 버킹엄 2대공작 공작 헨리 스태포드 야. 즉 버킹엄 스태포드 가 리차드 의 심복이야. 얘랑 둘이서 리버쓰 그레이 본 생포하고, 사형시키고 다음날 킹 수락을 해. 이 버킹엄 이 타워의 두 프린스들 죽음과 연관된겨. 이게 모두 미스테리야 지금. 발견된뼈도 짐승뼈고. 전혀 몰라.

이 버킹엄 이 머랬냐, 곤트존 의 막내아들 글로스터 토마스 때 부활한 백작자리라 했잖니. 리차드2세와 모브레이 에 의해 죽은겨. 이 모브레이 가 헨리4세의 적이고 그래서 모브레이는 요크 고. 버킹엄 스태포드 는 근본이 랭카스터 여야해 저 모브레이 때문에라도. 더하여 할어니는 네빌 이지만 엄마가 보퍼트여. 헨리7세와 사촌이야. 더하여 1대버킹엄공작 이 얘 할아버진데, 요크애들 워릭 킹메이커 전투 노땜프톤1460에서 죽었어. 이 버킹엄 스태포드 는 랭카스터 보퍼트 로 갈 수 밖에 없는겨 이 구조가. 또한 막내 글로스터 토마스 피여. 킹 승계권 도 있어.

이래저래, 에드워드5세 와 동생들 없애면, 자기한테도 혹시, 장자아들 상속이면 요크 의 막내 리차드가 마지막이고, 없어.

이 버킹엄 2대공작 스태포드가, 저 두 프린스들 12살 10살 을 죽인 강력 용의자야.

Henry Stafford, 2nd Duke of Buckingham, KG (4 September 1455[1] – 2 November 1483)

버킹엄 스태포드 가 28세 여. 글로스터 리차드가 형 에드워드4보다 열살어린 저때 31세. 얜 앞으로 2년 킹하고 죽는거고,

Buckingham's rebellion was a failed but significant uprising, or collection of uprisings, of October 1483 in England and parts of Wales against Richard III of England.

10 October – 25 November 1483

그리고, 갑자기, 버킹엄 이 당해 10월에 반란을 해. 6월25일에 리차드3세 킹 선언에 리버쓰 그레이 본, 셋 처형하고, 뜬금없이, 가장 심복이었던 애가, 세달 만에 반란을 한겨. 이게 아주 미스테리야. 내가 저 미스테릴 풀어주는겨. 얘가 두 꼬마들 죽이고 갑자기 쇼크먹고 지 마음고향에 돌아간거야. 저때 헨리 튜더와 손잡아. 튜더는 바다건너 브르타뉴 에 있거든. 버킹엄은 웨일스 쪽이고, 켄트 에서 만나서 런던 치기로 한게, 이게 안맞아. 튜더의 배들이 폭풍만나고, 얜 서둘러서 다 소문나고 리차드가 미리 움직여. 한달 후에 죽는겨 버킹엄 은.

.
Robert Stillington (1420 – May 1491) was Bishop of Bath and Wells (1465–1491) and a courtier under Edward IV of England. He twice served as Edward's Lord Chancellor and in 1483, he was instrumental in the accession of Richard III, leading to later reprisals against him under Henry VII.

중혼 의 출처는, 오직 프랑스인 외교관 의 회고록 에만 언급되는 데, 로버트 스틸링톤 이 바뜨와웰즈 의 주교인데, 저 외교관 가 나쁜주교 라고 써. 에드워드4세 의 로어드챈슬러 재무관 이야. 심복이야. 그런데 1478에 구속이 돼. 이때 동생 클레어런스 가 후계권을 요구해. 얜 이전에도 역모했다가 돌아오고 또 저러다 죽어. 클레어런스 에게 니형 이전에 엘리너 톨벗 과 비밀결혼 했고 그자리에 내가 있었다 며.

라고 저 외교관 이 쓴겨. 저거 이상 없고, 쟤가 중혼이라며 떠들어.

몰라 아무것도. 오직 저 주교 말뿐. 다수설은 거짓으로 봐. 리차드3세 는 저걸 써먹은거고. 얜 에드워드5세 수행단 만나기 전에 모든걸 계획한거야.

이 주교는 헨리7세가 킹되서 또 수감돼. 중혼 제기로. 왜냐면 중혼이면 자기마누라 도 버스타드거든 일단. 쟤말은 거짓이어야 해.

Elizabeth Woodville and Margaret Beaufort agreed that the latter's son should marry the former's eldest daughter, Elizabeth of York, who upon the death of her brothers became the heiress of the House of York. Henry Tudor agreed to this plan and in December 1483 publicly swore an oath to that effect in the cathedral in Rennes, France. A month earlier, an uprising in his favour, led by Buckingham, had been crushed.

에드워드4세의 부인이자 갇힌 두프린스들의 엄마 가 엘리자벳 우드빌. 헨리7세의 엄마가 마가렛 보퍼트, 이 두여자가 딸과 아들 을 결혼시키기 로 하면서, 마무리로 가. 이둘이 요크와 랭카스터 를 대변하고 결혼으로 화해하기로 하고나서, 버킹엄 과 헨리 튜더 가 손잡은거고, 버킹엄은 죽은거야. 이때 모든게 잘 안맞아. 그리고 헨리튜더 가 브르타뉴 의 렌 성당 에서 엄마와 장모의 합의를 맹세해 공개적으로.

이 잉글랜드 의 역사는 보면 볼수록, 그레이트해. 특히 여자들. 여자들이 만든 나라야 잉글랜드는.

Henry Tudor and his army landed in Wales on 7 August 1485 and marched inland. On 22 August, Henry Tudor and Richard III fought the Battle of Bosworth Field. Richard III had the larger army, but was betrayed by one of his most powerful retainers, William Stanley, and died in battle. Henry Tudor took the crown by right of conquest as Henry VII

그리고 나서, 1년 반 지나고 1485년 8월7일에 웨일쓰 착륙해서 22일날 보즈워뜨 전투, 레스터셔의 마켓타운. 리차드3세가 이 전투에서 죽고, 이날 헨리7세 가 되고 두달후 대관식에 다음해1월에 엘리자벳우드빌 과 에드워드4세, 의 딸 요크의 엘리자벳 과 결혼을 해. 엄마닮아 뷰티풀로 소문난.

The Battle of Stoke Field on 16 June 1487 may be considered the last battle of the Wars of the Roses

장미전쟁 은 보즈워뜨 1485로 끝나는게 아냐. 헨리7세가 킹되서 2년후 스토크필드 1487 로 끝나는겨. 노팅엄셔, 링컨셔 왼쪽에 레스터셔 위. 헨리튜더 에 반란하고 킹은 요크 에 가야해.

John de la Pole, 1st Earl of Lincoln (c. 1460 – 16 June 1487)

존 드라폴. 링컨 백작. 엄마가 요크 야.

Edward IV, King of England
Edmund, Earl of Rutland
Elizabeth, Duchess of Suffolk
Margaret, Duchess of Burgundy
George, Duke of Clarence
Richard III, King of England

요크 3대공작 이 사촌 헨리6세 에게 반기드는게 장미전쟁 시작이고, 자식들이 4남2녀야. 글로스터 리차드가 막내야.

장미전쟁 전투 시작이

.St Albans 쓴트올번즈 1차 1455년 3월
.Northampton 노땜프톤 1460년 7월
.Wakefield 웨이크필드 서뉴욕셔 1460년 12월
.2차 쓴트올번즈 1461년 2월
.Towton 타우톤 뉴욕셔1461년 3월

다섯만 보면 1차 쓴트올번즈 1455 와 노땜프톤 1460년 7월 을 요크가 이기고, 헨리6세가 포로가 돼.

웨이크필드 1460년 12월을 랭카스터가 이기고 이때 요크공작 과 아들 럿랜드, 킹메이커 워익의 아빠 쏘즈버리 가 죽어. 요크가문은 이때 끝난겨 원래.
쓴트 올번즈 2차 전투 1461년 2월 로 워릭의 포로 헨리6세가 풀러나.

한달 후 타우톤 1461년3월 을 다시 아들 워릭 킹메이커 중심 요크가 이겨서 헨리6세를 감금하고 에드워드4세가 킹 이 되는겨.

요크 진영의 실세는 네빌 가문이야. 정작 요크는 조또 아닌겨. 너무 어려들. 네빌 가문의 웨스트머랜드, 워릭, 쏘즈베리 가 실세여. 킹 된 에드워드4세는 19세여 1461년에. 럿랜드는 17세 죽은거고 그아래 클레어런스 는 12세고. 다 애들이야. 네빌 이 만들어준겨.

에드워드4세가 3년 후 1464에 엘리자벳 우드벨 과 결혼을 해.

이게 결정적이야. 아무것도 아닌애가 듣보잡 우드빌 과 사돈이 돼. 네빌 애들 이 완전히 죽쒀서 개준거야. 저 우드빌 가문 시작이 완전 듭보잡 허섭이 우드빌이 미망인 마누라 잘만나서 갓 귀족 된건데. 더하여 성인자식들 주루루. 네빌 애들한텐 끔찍한 한방이야. 에드워드4세는 노린거고. 더하여 엘리자벳 우드빌 이 그만큼 이쁜겨. 5년연상 의 과부애 애둘인데, 잉글랜드 최고 미녀. 이 미모가 딸에가서 헨리7세에 시집가.

Richard Neville, 16th Earl of Warwick KG (22 November 1428 – 14 April 1471), known as Warwick the Kingmaker

클레어런스 의 장인 이자 킹메이커 닉 인 리차드 네빌 워릭 백작.

레이비 캐슬 드레이비 de Raby 의 배론 랄프 네빌 이, 웨스트머랜드 시작에, 기존의 쏘즈버리 와 워릭 을 갖아

William Montagu, 1st Earl of Salisbury (1301–1344)

쏘즈버리 는, 몬테규 여. 쏠즈버리가 아냐. 쏘즈버리.

Earl of Warwick. Lord William de Beauchamp (d.1268)

워릭 은 비첨 이 잇는겨. 존 톨벗 두번째 부인이 비첨 이고 첫부인이 네빌이야

몬테규의 쏘즈버리 와 비첨의 워릭 이 결혼으로 네빌 로 가는겨

Ralph Neville, 1st Earl of Westmorland KG PC Earl Marshal (c. 1364 – 21 October 1425),

랄프 네빌 이 리차드2세 때 웨스트머랜드 백작 시작하고, 아들이 결혼으로 몬테규의 쏘즈베리, 이 아들이 결혼으로 비첨의 워릭 백작이 되고, 워릭 더 킹메이커, 야. 쏘즈버리 백작에 몬테규 남작 도 얘가 다 취하는겨. 아빠가 갖고온 몬테규 에서 따로 마키쓰 후작 시작 하는거고 동생이. 몬테규 란 타이틀은 이 동생에서 시작하고, 원래 몬테규 란 성씨는 워릭의 네빌로 가서 지워지는거야

웨스트머랜드 백작은, 랄프 네빌 의 장남이 따로 이어.

쏘즈버리 와 워릭 은, 랄프 네빌 핏줄이지만, 저 웨스트머랜드 받는 네빌 과는 배가 달라. 얘들은 엄마가 조안 보퍼트, 랭카스터 존 의 막내딸이야. 네빌들의 쏘즈버리 워릭 들은, 엄마가 랭카스터여.

얘들이 요크 의 핵이야. 요크는 이 네빌이 만들어준거고 장미전쟁에서. 워릭의 아빠이자 쏘조버리 는 웨이크필드 1460년 12월에 죽은거고, 이때 요크공작에 아들 럿랜드도 같이 죽고, 이걸 아들 워릭 이 다음해 타우톤 전투 3월 로 이기면서 요크 에드워드4세를 올린거야. 이 아들 워릭 킹메이커는 1455 시작부터 참전한거야 아빠랑.

웃기게도 장미전쟁의 초강력 요크의네빌 은 엄마가 랭카스터야. 저 네빌도 랭카스터로 가 일부는. 에드워드4세에 두번째시집가는 우드빌은 전신랑이 랭카스트 편에서 죽었어 2차 쓴트올버니, 타우톤 한달전에. 그래서 쟤들이, 조선극동 애들처럼 블러드 퓨드 가 절대적 테마가 될수 없어. 조금만 가면 엄마 아빠야.
.

중요한건 자식들을 줄줄이 성인들로 만든가문이 세력이 되는거야. 이게 보퍼트, 네빌, 우두빌, 이여.
.

그중 핵이 킹 메이커 워릭 이고. 12세였던 클레어런스 도 9년지나 21세야. 워릭의 사위되어서 장인말 꺼뻑죽어. 자기형 에드워드4세에 등돌려. 자기가 장인과 손잡고 킹하자

에드워드4세 재임이 1461년 3월4일-83년 4월9일

이중 6개월인,
1470년 10월3일 에서 다음해 4월11일 은 헨리6세

Elizabeth Woodville (also spelled Wydville, Wydeville, or Widvile[nb 1]) (c. 1437[1] – 8 June 1492) was Queen of England as the wife of King Edward IV from 1464 until his death in 1483.

엘리자벳 우드빌. 엄마가 뤽쌍부르 가문이야. 지기스문트 황제 의 가문인데 족보로 육칠대 올라가면 만나. 이여자는, 헨리5세의 동생이자 프랑스 섭정인 베드포드공작의, 부인이었다가 25년 나이 차여. 공작이 아라스 조약 1435때죽어서 나이20에 과부가 된건데, 우드빌 의 아빠가 베드포드 의 집사 고 대를 이은겨. 걍 땅좀있는 지주고 걍 일반인 이야. 우드빌이 아빠이어 집사 하다가 주인마님 과 이미 눈이 맞은겨. 열살 차이거든. 이여자는 부자고, 킹 헨리6세의 숙모여 어쨌거나. 이 결혼, 재혼이 승인 된거야. 중요한건, 이 사이에 자식들을 14명 이상 생산하는데 열명 이상이 성인으로 커. 이중 첫째가 엘리자벳이고 이여잔 시집을 썰 도 안되는 애한테 가. 당연해 아빠 우드빌은 상류층 이 아냐. 그레이 네는 엄마가 배론이라 이 타이틀도 자식으로가고 랭카스터 딱깔이하다가 저 장미전쟁 2차 쓴트올버니 1461년2월 죽은겨. 아들 둘 남기고. 이 아들 하나가 나중 에드워드5세 수행하는 그레이 고, 리버쓰 가 동생이여. 리버쓰 백작을 아빠가 나중에 받는겨 퀸오르고.

이런 우드빌 의 엘리자벳 한테, 에드워드4세가 꽃힌겨. 다섯살 연상의 애둘딸린 과부인데, 잉글랜드에서 가장 뷰티풀 했대

문제는, 저 형제자매들 이 성인되서 줄줄줄. 열명이 넘어 성인된 엘리자벳 형제누이들이. 이게 없는집안에선 골치아픈건데, 킹 과 결혼한다, 엄청난 권력집단 이 되어버리는거야 저 집안이. 킹이 활용을 잘하면, 결혼 이라는 걸로. 실제로 세력없는 에드워드가 이걸 또한 노린거야.

워릭 킹메이커는 1455 시작부터 아빠 쏘즈버리와 함께해왔어. 아빠도 전쟁 중에 죽고. 6년만에 이기고 19살 짜리 킹올린거거든. 그런데 시바 이걸 결국 완전 듣보잡 우드빌 들 에게 뺏기게 된거야.

1464년, 킹되고 3년 후 결혼한겨. 우드빌 애들은 줄줄이 결혼 엮어주고 작위주고 자기편 만들어

워릭 이 돌아서는거고, 워릭의 사위가 글로스터 , 킹 동생이야.

The Battle of Edgcote (also known as the Battle of Banbury or the Battle of Danes Moor) took place on 24 July 1469

1469년 7월 엣지코트 전투. 노땜프톤셔. 이 반란을 지원하고, 엘리자 우드빌 의 아빠 리버스 백작과 동생이 저들 반란군에 의해 처형당해

In March 1470, Warwick and Clarence exploited a private feud to initiate a full-scale revolt; when it was defeated, the two fled to France in May 1470.[37] Seeing an opportunity, Louis XI persuaded Warwick to negotiate with his long-time enemy, Margaret of Anjou; she eventually agreed, first making him kneel before her in silence for fifteen minutes.[38] With French support, Warwick landed in England on 9 September 1470 and announced his intention to restore Henry.[39] By now, the Yorkist regime was deeply unpopular and the Lancastrians rapidly assembled an army of over 30,000; when John Neville switched sides, Edward was forced into exile in Bruges

워릭 과, 킹 동생 클레어런스 가 링컨셔 반란을 주도해. 다음해 3월부터. 아무리 워릭이라도, 저기에 안 들어가. 자기들이 세운 킹을 엎는게 말이 안돼. 패하고 프랑스로 도망을 가 5월에. 여기 앙주 의 마가렛 이 있거든. 랭카스터 의 중심은 이여자야. 헨리6세의 부인. 남편이 신에만 의지하는 애야. 저 워릭 이 요크의 최고였고. 얘가 온겨 도와달라, 헨리6세 킹 올려주겠다. 무릎꿇고 14분을 조용히 있었다. 프랑스 킹덤 지원으로 9월에 다시 잉글래드 오고, 헨리를 다시올리겠다 알리고, 3만명 이 모이고, 에드워드4세는 도망가는겨. 플랑드르 브루즈, 브뤼거 로

당시 프랑스는 샤를7세의 아들 루이11세고, 얜 아빠 피해 도망다니다 부르고뉴 현명공이 보살핐거든. 그러다 킹되서 늙은 현명에 아들 용감 의 부르고뉴 를 다시 적으로, 퍼블릭윌 내전에 몽레리 전투 하거든 초반에. 그리고 용감샤를이 올라서 얜 부르고뉴 킹덤을 만들려해. 당시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코트 는 이 용감공 샤를 의 부르고뉴야. 얜 프랑스랑 싸우고 자기지역 내전진압 에 경계 싸움에 바빠. 오른지 3년 되고 에드워드가 온겨. 얘 여동생이 샤를용감의 세번째부인 이야. 마리 는 이전 부르봉이 엄마고. 용감 샤를은 나중 로렌과의 낭시전투로 죽어. 로렌땅문제로. 이 로렌 의 엄마가 앙주 마가렛의 언니고 앙주 르네의 딸들이야. 발루아 앙주는 프랑스킹 코트 루이11세와 친해. 잉글랜드 의 내전이 그대로 편갈려 대륙에서. 용감 샤를이 요크를 지원해.

10월3일 이 에드워드가 코트 비운겨. 이날 헨리6세가 다시 시작한다는거고.

문제는, 워릭 에 클레어런스 , 그중 클레어런스 는 1449년생 글로스터 리차드3세 막내는 1552여. 애들이야 장미전쟁 중반 1461까지 절정은

저 워릭은 랭카스터 애들에게 극악 이야.

Edmund Beaufort, 4th Duke of Somerset, held Warwick responsible for his father's death in 1455, while he had executed his elder brother in 1464; Warwick and Clarence quickly found themselves isolated by the new regime

써머씻 4대공작 보퍼트 가, 워릭 너 우리아빠 2대공작 죽인거 책임져라.

랭카스터는, 보퍼트 들이 자식들이 많아서 주류야. 헨리5세동생 베드포드 가 죽고, 프랑스는 배스타드들인 헨리4세의배다른동생들인 보퍼트 의 써머씻 이 맡아. 보퍼트 는 써머씻 이야. 쟤는 보퍼트 장남 존 보퍼트 의 막내 의 아들이야. 장미시작 1차 쓴트올버니1455에서 죽은겨. 여기 워릭이 아빠랑 참전한거고.

존보퍼트 의 첫째가 죽고 둘째가 써머씻을 받아, 백작에서 공작으로 승격. 이사람 외동딸이 헨리7세의 엄마야. 써머씻 공작자리는 동생집안에게 가고. 공작 받은 애가 워릭보고 내 죽은 아빠 책임져라, 어쩌자는겨

워릭 과 클레어런스 가 랭카스터에 섞일 수가 없어. 저 원한 이란게 쉬운게 아냐 저게.

On 14 March 1471 Edward landed at Ravenspurn in Yorkshire, with the acquiescence of the Earl of Northumberland

에드워드가 용감샤를 지원으로 다시 와, 요크셔 해변 레이븐스펀, 헨리4세 볼링브로크도 이쪽에 내린거고. 여기 노떰벌랜드 백작 자리를 퍼씨 집안에 다시 줬었어 에드워드가. 핫스퍼 반란으로 헨리4세 에 죽었던. 참 웃긴거야 이것도. 이게 3월14일. 10월2일 날 떠나서 5개월만에. 그리고, 런던에 무혈 입성해. 막는 애들 이 없어. 헨리6세는 도망도 안갔어. 감금해

Edward entered London unopposed and took Henry prisoner; Warwick was defeated and killed at the Battle of Barnet on 14 April, while a second Lancastrian army was destroyed at the Battle of Tewkesbury on 4 May.

그리고, 즉 얘가 킹 다시 된겨 1471년 4월11일. 3일 후 바넷 전투. 런던 근교 북쪽 도시야. 5월4일 튝스버리, 글로스터셔. 로 랭카스터가 대패해. 이 튝스버리 1471에서, 헨리6세 와 앙주마가렛의 외아들 에드워드 가 18살 로 죽어. 내아빠살려내 라던 써머씻 4대공작 보퍼트도 죽어.

그리고 헨리6세를 21일에 암살 시킨겨.
.

한달전 바넷전투 에선 킹메이커 워릭 이 죽는겨. 클레어런스 는 미리 형한테 편지써서 용서해줘형 해서 가고. 얘들은 형제를 안죽여. 조선 들이랑 스텦들이나 형제 살해하지. 이 클레어런스 는 1478에 죽어 다시 반란해 후계권 달라며. 저 중혼 소문낸 바쓰웰즈 주교가 얘를 부추긴거로봐. 그리고 이 주교는 에드워드4세 죽고 막내동생 이자 섭정될 리차드3세에 중혼 떠들고 프린스들 사라지고 킹 되는거야.
.
.
버킹엄 이 리차드3세 오르고 아마 두 프린스들 죽고, 그리고 얘가 등돌린거로 봐. 얘가 가장 미스테리야. 이 버킹엄 2대공작. 헨리7세가 사촌이고 손잡고, 날씨 에 거리에 잘 안맞아 서로. 대륙과 섬에서. 버킹엄은 죽고, 엘리자벳 우드빌 과 튜더엄마보퍼트 가 서로 결혼 시키기로 하고, 헨리튜더는 공개적으로 약속 하고, 보즈워뜨 전투 1485년 8월22일 에 리차드3세 죽고 헨리7세 가 올라.

The Battle of Stoke Field on 16 June 1487 may be considered the last battle of the Wars of the Roses,

장미전쟁 의 마지막이 스토크필드 전투 1487. 튜더오르고 2년후. 요크 애들의 반격. 노팅엄셔.

John de la Pole, 1st Earl of Lincoln (c. 1460 – 16 June 1487)

요크 의 리더가 써퍽 공작 아들 드라폴. 엄마가 요크 여. 부르고뉴 용감샤를 시집간 마가렛의 언니, 에드워드4세의 여동생. 얘들이 내세우는 킹 이

Edward Plantagenet, 17th Earl of Warwick (25 February 1475 – 28 November 1499)

워릭 백작 에드워드. 워릭 킹메이커가 죽고 이 자리가 사위 배반한놈 클레어런스 한테 가. 리차드3세의 세살형. 얘가 1478에 반역또해서 죽어. 이 아들 이야. 이때 12세야. 이 꼬마가 등장하지 않아

Lambert Simnel (c. 1477 – after 1534) was a pretender to the throne of England.

램버트 씸널. 저때 열살 정도. 사제 리차드 씨몬즈 라는 사람이 저 꼬마가, 사라진 열살 프린스, 에드워드5세, 와 닮았다고 여기고 데려다가 키운겨. 사라진 동생프린스보다 네살어린데, 얘를 데리고 주교 가 사람 모으는겨 진짜킹 이라며. 이걸 드라폴 은 저꼬마가 워릭 에드워드 라며 반란해

스토크필드 가 저걸로 끝나. 드라폴 은 죽고. 램버트 씸널 은 튜더가 왕실의 하인으로 쓰는겨 꼬마가 뭔죄냐며. 57세 이후에 죽은듯. 산지기 기록이 남아.

진짜 워릭 에드워드, 즉 클레어런스 의 아들은 1499년 22세 에 죽어. 킹 요구하면서 반란으로.

John de la Pole, 1st Earl of Lincoln
Edmund de la Pole, 3rd Duke of Suffolk 1513
William de la Pole (1478–1539)
Richard de la Pole 1525

드라폴 이 동생이 셋이야. 써퍽 공작에. 얘들이 역시나 모두들 반란하며 킹은 우리 요크 라며, 둘째 써퍽 은 잡혀서 처형 1513. 다음 윌리엄은 37년을 수감하다 죽어 1539. 막내 리차드 는 프랑스 도움으로 킹 하려고 프랑수아1세 따라 이탈리아 전투 에 참전해. 1525 파비아 전투, 프랑수아1세가 카를5세에 포로 당하는전투야. 여기서 막내 드라폴 이 죽어. 요크 가 얘 의 죽음으로 끝난겨. 지긋지긋 장미전쟁은 파비아 에서 끝난거지.


'세계史'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럽사397. 조르주 샤쓰트랭. 장미의 로망  (1) 2021.10.15
유럽사396. 리차드3세  (2) 2021.10.15
유럽사394. 장미전쟁 2  (2) 2021.10.10
유럽사393. 퓨드5. 장미전쟁1  (0) 2021.10.09
유럽사392. 퓨드4. 잔다르크  (2) 2021.10.0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