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s Chastellain (c. 1405 or c. 1415 – 20 March 1475), Burgundian chronicler and poet, was a native of Aalst in Flanders.[1] Chastellain's historical works are valuable for the accurate information they contain. As a poet he was famous among his contemporaries. He was the great master of the school of grands rhétoriqueurs, whose principal characteristics were fondness for the most artificial forms and a profusion of Latinisms and graecisms.

조르주 샤쓰틀랭. 1415-75. 샤를7세 1403-61 부르고뉴 현명필립 1396-67, 용감샤를 1433-77 34세에 공작되서 아빠를 이어. 샤쓰틀랭 은 현명필립 이어 용감샤를 10년 에서 2년 먼저 죽어.

조르주 샤쓰틀랭 이 부르고뉴 현명 이 1419부터 공작이고 48년하고 아들이 10년 이을때, 후반부터 2대를 이으면서, 생생한 백년전쟁 에 부르고뉴 이야기를 듣는거야. 조르주 샤쓰틀랭 의 부르고뉴 중앙코트 에서의 기록으로.

부르고뉴 크로니클러. 크로노쓰 가 우라노스 아들에 제우스 아빠인 시간 이야. 시간의 배우자는 아낭케 필연이야. 크로니클 이 연대기 고 기록가 크로니클러

크로니클 과 히스토리 는 다른거야. 아주. 

크로니클러 와 히스토리안 은 전혀 다른겨 이건.

조선 실록 이란게 크로니클 이야. 크로니클 은 당대 에 사건들을 그 시대 사람이 기록한거야. 로데이타 야

이걸 갖고 편집한게 히스토리야. 모든 히스토리란건 히스토리안 의 시선으로만 의 크로니클 요약본 이야.

히스토리안 마다 자기들만의 각각의 요약본을 만들뿐이야. 여기에 자기의 비평을 넣고. 크로니클에도 당연히 비평이 들어가.

김부식 삼국사기도 히스토리야. 자기만의 자료와 중국책들의 크로니클의히스토리 들로 쓴거고, 이건 중국애들 크로니클 의 추림에 자기만의 자료, 전혀 검증 안된, 이 조선 땅역사는 어디에도 검증불가인 지들만의 역사라, 중국애들은 김부식 삼국사기니 모두 정사로 안쳐줘. 그리고, 맞아 중국들의 주장은. 검증 교차 안되는 역사는 픽션 일뿐이야. 중국들 저런얘기엔 민족애들이 입 뻥끗 하면 걘 반민족자야. 걍 한복쇼 사또쇼 국무회의놀이나 하며, 아니유 를 묵묵히 짖는겨, 일본이  역사부정한다며 소리지르고 안질튜 는 해도 중국 주인님들껜 노예짓 해야 하는게 조선 민족 주의야.

단군 기원전2333년 ㅋㅋ. 한심하지 찍 한줄. 저걸 일제때 유럽간 애들이, 조선은 기원전 2333년부터 5천년 된 나라유 자유 의 5천년 땅이 일본 강탈로 먹혔슈. 얼마나 한심한 역사관인지. 야 이 조선 양반 들아, 니덜 몆몇만의 자유지. 니덜몇몇만의 자유를 위해 중국 사신만 오면 성접대에 위안스카이에 귀족여자에 시녀들을 창녀 취급 파는거고 외적만 오면 토끼다가 마지막엔 그냥 주권을 넘겨.

그리곤, 한줄 주작질 아무근거없는 단군쇼 에, 단기 사천몇년 해방놀이.참 한심한 조선 땅.

사랑하지마세유 양놈들 사상이유 사랑하믄 괴로운거유. 걍 첩질에 기생놀이만 하세유 사랑하지마세유 오입질하세유 철저한 조폭계급놀이만 하세유 공자만세유 자유는 죽음이유 양키들에 물들지마유 도포짜락 쳐입어유 일본한테 사과받아유 중국은 위대해유 공산당 일당독재아뉴 민주적이유 시진핑 좋아유 쟤들 인민 대학살 한거 넘어가유 조선 만세유!

걍 똥 그자체인 생체들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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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샤쓰틀랭 이 독특한건, 중앙코트 에서 크로니클러 의 롤을 받아서 스폰받아 연금받은 이란거거든.

크로니클 을 쓰기 위한 공직 자리는, 없어. 히스토리안 을 위한 공직도 없어.

극동의 사관 이 구석에 앉거나 따라다니며 기록하는건, 이건 말도 안되는 기괴한 짓이야. 세상에 이따위 녹음기짓 하는게 어딨냐고. 실록 이란건 정말 너무나 후진 씨쓰템이야. 우리넨 이런것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게 또한 미개한 지능인거고. 걍 모든걸 너무나 당연히. 그래서 저 사관들 기록 을 꺼리로 고문하고 죽여. 니 이거 왜썼니, 그때 이런 감정표현을 왜했니 이건 니가 적폐라서야. 걔가 자식한테 절대글배우지마라 적폐놀이로 애비처럼죽는단다 니가 걔 유언을 들어서쓴거니. 저게 을사사화 기록갖고 사관 을 고문하거든.

걍 너무나 미개한 애들이야 저게.

크로니클 자체가 오직 권력애들 의 검열로 걸러진것 만이 남는겨. 이걸로 24정사 라는 히스토리를 이후 다이너스티가 만드는겨. 저 히스토리라는 실록같고 뻔한 역사를 마던에 쓰는겨. 시작부터가 걸르고 걸러서, 얘들 히스토리라는게 오직 한곳 구석만 보는겨. 지들만의 역사관을 안따르면 적폐인거고.

유럽사는 저럴수가 없어.

독일만 신성로마 2천개 영주들이야. 크로니클 이란게 상상초월이야. 크로니클러 라는 직업이 없어 코트에. 이건 마던에 생기는 개념이야. 그 스위든 이야기, 가택연금 애한테 너 스위든 역사정리 해라. 조지1세가 라이프니츠 에게 하노버역사 정리좀 해줘. 크로니클 을 따로 쓰면 돈주께, 이런 건 특히나 없어. 히스토리 정리해줘 는 마던때고. 사관이란게 없는겨.

쟤들 크로니클 은 대게 수도사 기록들이 많아. 수도원 이름의 크로니클들이 한부류야. 더하여 당대 귀족들 개인들 기록물들 이고 코트 의 공식 문건들 갖고 나중 히스토리 로 편집하는겨

코트에서, 당신 우리 영지 의 사건들 좀 기록해줘. 연금 줄테니. 이게 부르고뉴 고 조르주 샤쓰틀랭 이야. 이것도 현명공이 48년 공작 재임에 나이 50넘어서 자리잡고 캐스팅 한거야 저사람을.


The grands rhétoriqueurs or simply the "rhétoriqueurs" is the name given to a group of poets from 1460 to 1520 (or from the generation of François Villon (no rhétoriqueur himself) to Clément Marot) working in Northern France, Flanders, and the Duchy of Burgundy

그랑 레토리커, 그레이트한 수사학자들. 프랑스와 비용에서 클렌스몽 마느 까지의 북프랑스 플랑드르 부르고뉴 의 시인들. 샤쓰트랭 이 여기에 속해.

Georges Chastellain derived his surname from the fact that his ancestors were burgraves or châtelains of the town;

샤쓰틀랭 이 샤틀랭 과 같아. 버그레이브. 로마 캐슬 이 프렌치 샤토 에 성지킴이가 샤틀랭 샤쓰틀랭 이야. 이게 원래는 임명된 공직 공무원이야. 영어로 비스카운트 여. 얘는 캐슬을 영주 대신 관할하는겨. 이게 세습의 귀족자리가 돼 중세 후반에. 베일리프 프로보스트 가 대리인 자리로 대신하고. 즉 저땐 집안이 영주 대리인으로 월급쟁이 성 대표야.

since he was an ecolier at Louvain in 1430, his birth may probably be placed nearer 1415 than 1405.

1430. 15세에 레번, 플랑드르의 에콜리어 학생이야. 백년전쟁 시대고, 1434 에 현명공에서 선물받아 전투를 한겨. 19세. 다음해 아라스 조약으로 프랑스 동맹 하고 외교 로 옮겨.

The next ten years were spent in France, where he was connected with Georges de la Trémoille, and afterwards entered the household of Pierre de Brézé, at that time seneschal of Poitou, by whom he was employed on missions to the duke of Burgundy, in an attempt to establish better relations between Charles VII and the duke.

이후 십년, 30세 까지는, 프랑스 코트 에서 일해. 조르주 드라 트레므와, 샤를7세의 집사장 이야. 다음 피에르 드 브레지, 샤를7세 의 프와투 대표야. 이들의 사신으로 부르고뉴 와 가교역할. 1445 정도 까지야.

그리고 부르고뉴 로 들어간겨. 웃긴건

He was at first pantler, then carver, titles which are misleading as to the actual nature of his services, which were those of a diplomatist; and in 1457 he became a member of the ducal council

팬틀러 에 카버 로 일해 부르고뉴 가서. 팬틀러 가 빵 납품 관리인 이고, 카버 가 고기 자르는사람, 고기 수급 담당이야. 코트에 인간들 득실 대거든. 이 부르고뉴에 모든 인물들이 다 모여. 저게 아마 스폰받아 공짜밥 돈 받기 뭐하니 형식적 자리 받은거지. 결재도장 찍는

샤를7세 1403-61
부르고뉴 현명필립 1396-67

이 둘이 저당시는 산전수전 다겪은 50대 전후야. 1453이 카스티용 으로 백년전쟁 끝나고, 부르고뉴 현명공은 샤를 에 다음 루이11세랑 내전 하거든. 그러면서 자기땅 굳히는겨. 프랑스킹덤 못지않은게 부르고뉴야.

and in 1457 he became a member of the ducal council. He was continually employed on diplomatic errands until 1455, when, owing apparently to ill-health, he received apartments in the palace of the counts of Hainaut at Salle-le-Comte, Valenciennes, with a considerable pension, on condition that the recipient should put in writing choses nouvelles et morales, and a chronicle of notable events.

1445에 돌아와서, 팬틀러 에 카버 에서 다시 외교일을 해 1455 까지. 백년전쟁 끝나고. 그리고 1457부터, 42세, 건강 안좋고, 이때부터 아파트 제공받고 굉장한 연금 받으며, 코트 기록물을 쓰는겨. 쇼즈 노벨레 모랄르, 띵즈 오브 노블티 앤 모랄즈. 새롭고 도덕적인 것들. 그리고 주목할 사건들의 크로니클.

현명공이 61세 되고, 공작 재임 40년 다돼가. 부르고뉴 가 킹덤급이 된겨. 뭔가 제대로된 기록물을 남기고 싶은거야. 이걸 코트 가 적극적으로 하는겨. 이사람은 부르고뉴 에 대한 자부심에 꿈이 남다른겨 이건. 거대한 코트가 자기 영지의 크로니클 작업을 하는건 흔치 않은겨.

그러면서 당연히, 크로니클 작업하면서, 이전 이야기들에 대해선, 히스토리 작업을 하는거야. 당대 자기 시대 이야기만 하는게 크로니클 이 아냐. 당연히 이전의 크로니클들을 자기만의 히스토리 로 먼저 쓰는겨.

이걸 현명필립이 이후 십년에 죽어. 1467. 딱 십년전부터 시작해. 아들 용감 샤를 이 계속 후원해. 최고의 연금 후원을 한겨. 아마 이런 후원의 연대기작업은 부르고뉴가 처음일거야. 샤쓰트랭이 처음이고. 칠팔년을 더이어서 해. 1475에 죽어. 용감샤를은 십년 재임 1477에 죽어.

He was assisted, from about 1463 onwards, by his disciple and continuator, Jean Molinet,

샤쓰트랭 이 1463부터 어씨쓰트 가 붙어. 장 몰리네, 당시 28세. 이사람이 샤쓰트랭이 죽고 잇는겨. 비록 2년후엔 용감샤를 죽고 마리 만 남지만 부르고뉴 코트는 있는거니까

Jean Molinet (1435 – 23 August 1507) was a French poet, chronicler, and composer. He is best remembered for his prose translation of Roman de la rose.

장 몰리네. 가 시인이자 크로니클러 야. 이사람의 책중에 번역서인, 로망 드라로즈

Le Roman de la Rose (The Romance of the Rose) is a medieval poem written in Old French and presented as an allegorical dream vision.

이건 올드프렌치 로 써있는겨. 이걸 미들 프렌치 로 번역했다는거고

Guillaume de Lorris (c. 1200 – c. 1240)
Jean de Meun (or de Meung,(c. 1240 – c. 1305))

기욤 드 로리쓰. 장드묑. 서기1200-1305의 두사람

The Romance of the Rose was written in two stages by two authors. In the first stage of composition, circa 1230, Guillaume de Lorris wrote 4,058 verses describing a courtier's attempts at wooing his beloved woman. The first part of the poem's story is set in a walled garden, an example of a locus amoenus, a traditional literary topos in epic poetry and chivalric romance. Forty-five years later, circa 1275, in the second stage of composition, Jean de Meun or Jehan Clopinel wrote 17,724 additional lines

기욤 드로리쓰 가 서기1230년 30세에 4058 줄의 시를 쓰고, 이어 54년후 인 1284년에 장드묑 이 추가로 17724 줄을 추가해. 그래서 총 21781줄의 거대한 장편 시 야.

중세 유럽 천년 에서, 최고의 책 세개를 뽑아라,

장미의로망 빠지면 섭해. 가장 많이 읽은 코트 연애시야. 그야말로 알레고리 의 절정 이, 이 장미의 로망 이야.

기독교 가 오리진의 알레고리 로 신학을 자리잡는겨.

이 알레고리 에서, 무수한 상징들이 티나오는겨.

이 상징 이란건, 글자 외의 또다른 언어야. 이건 또다른차원의 거대한 외국어야. 전혀 다른 차원의 세상 이야

저런게 극동은 전혀 없던겨. 극동들이 수학 과학을 못 만든이유는 이 알레고리에 대한 무지에서야.

얘들 문학은 여기서 시작해. 신학과 신학의 알레고리에서.

이 알레고리가 러브 의 장미로 둔갑해서, 신학 외의 신학을 더한 인간과 세상의 알레고리로 전환을 해.

여기서 트인 지성 감성 에서 바로 피에르 아벨라르 부터의 철학이 등장해. 게르만의 중세 익힘 후 독자적 생산물은 이 아벨라르 부터야. 이건 장미의 로망 과 함께 등장 하는거야.

그래서, 에코 할배 의 중세이야기 시작 책 제목 도 장미의 이름 이야. 장미의 로맨스 라는 책이 유럽 천년 중세 의 상징 이야.

薔薇物語(見目誠訳、未知谷、1995年)
薔薇物語(篠田勝英訳、平凡社、1996年/ちくま文庫(上下)、2007年)
中世英語版 薔薇物語(瀬谷幸男訳、南雲堂フェニックス、2001年)。ジェフリー・チョーサー英訳版より。

일본도 1995년 에서야 첫번역해서 세개본. 저건 중국도 없고, 당연히 조선말번역은 없지. 저건 번역을 못하지 실력이 안되니. 아니지, 저런게 있는지조차 모르지. 장미이야기 로 소개되는데 일본말이고, 장미의 로맨스야

저걸 읽도록해. 저런걸 읽어야해. 그래야 안목이 트이고 쟤들좀 따라가는겨.

저건 최고의 책이야. 그런데 유럽애들이 중세를 악마 취급하면서 저책의 의미를 모르는겨 ㅋㅋ.

읽어라 저런건. 아키브 에 다 있어. 돈주고 책을 왜사보니 공짜로 다 있는데 쟤들이 다 보여주는걸 공짜로. 영어해 야만들 노는데 끼지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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