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les V of France
Louis I, Duke of Anjou
John, Duke of Berry
Philip II, Duke of Burgundy, the Bold

장2세 의 아들들이 샤를5세, 앙주의 루이1세, 베리의 장, 부르고뉴의 볼드 용감공 필립.

용감공 필립, 겁없공 장, 현명공 필립, 용감공 샤를.

부르고뉴는 이렇게 4대야. 다음이 마리 가 시집가고.

Charles VI of France
Louis I, Duke of Orléans

샤를 5세의 아들들이 정신병 샤를 6세, 오를레앙의 루이1세.

부르고뉴 겁없공 장 과 퍼스트 커즌 이야. 할아버지가 장2세 야 다들.

겁없공 장 이 퍼스트커즌 오를레앙 루이1세를 암살하면서 피의 앙숙 의 시작이야. 14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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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서,

샤를6세, 샤를7세, 루이11세 가 3대를 이어.

루이11세 가 닉이 프루던트 신중 인데, 더하여 컨닝, 교활 책략이야.

루이11세 가 1423년생 이고, 아빠 샤를7세가 20세에 낳은겨. 1461에 죽어서 루이는 이때 38세에 킹이 돼. 얜 16세부터 아빠에 반란한 애야. 용서빌고. 그러다 재혼을 맘대로 사보이 여자와 해. 33세 때 아빠 샤를7세가 쟤 있는 도피네 로 군대를보내 쳐죽일라고. 루이11세가 도팽 인 33세 때에 부르고뉴 플랑드르 로 도망을 가는겨.

루이11세가 될 도팽을 맞이하는 부르고뉴가 현명공 필립이야. 저 4대들 중 3대여. 1396-1467.

저때가 1456년. 루이11세는 1423-1483. 33세 때 현명공 필립은 나이가 60 이고,

저 족보를 다시 보면

용감공필립, 겁없공 장, 현명공필립, 용감공샤를
샤를5세, 샤를6세, 샤를7세, 루이11세

루이11세는 현명공 필립의 조카뻘이야. 60 된 필립이 쟤를 극진히 모시는겨. 킹의 아들이라고. 샤를7세가 죽이려는걸 벨기에땅 성에 보호해줘. 신하로서. 그리고 5년후에 샤를7세가 죽고, 킹에 올라. 얘와 같은 세대, 즉 커즌 이 용감공샤를 1433-77 이야. 나이는 10년어리지만 커즌이고. 둘이 웬수지간으로 전쟁하다가 부르고뉴 샤를이 죽는겨 루이11세에게. 자기를 보호해준 부르고뉴지만, 킹 되고 다시 가업잇는 전쟁을 이어가

부르고뉴와의 전쟁은 1차로 저 4대째인 루이11세 vs 용감공샤를 로 일단락이 되는거야. 2대때 시작한게.

저게 바로 다음에, 용감공샤를 의 딸 마리 가 합스부르크 에 시집가면서, 이 부르고뉴와의 전쟁이 지긋지긋 이탈리안전쟁 1494-1559 로 이어지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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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공필립, 겁없공 장, 현명공필립, 용감공샤를
샤를5세, 샤를6세, 샤를7세, 루이11세

요걸 일단 외우고

오를레앙 공작 은 발루아시작 필립6세가 동생에게 만들어주면서 시작해. 필립6세 아들이 장2세 고.

그리곤, 끊겼다가, 장2세 다음 샤를5세 다음  샤를6세가 동생에게 다시 만들어 줘 오를레앙 공작을. 오를레앙의 루이1세. 이 자리는 형 샤를6세가 미치기 직전에 만들어준 자리야 자기세력 키우려고.

샤를6세가 1368-1422. 1380에 킹에 올라 12세. 섭정을 부르고뉴 1대 용감공 필립이 하고, 안 주는거야 권력을. 교회법으로 성인이 14세야. 21세에야 권력을 받아 1389년이 돼서야. 용감공필립이 1342-1404 . 섭정 8년여하면서 프랑스 킹덤을 쪽쪽 빨아드신겨 부르고뉴로. 당시 삼촌들이 앙주공작 베리공작 이 더 위인데 섭즹에 관심이 없어 큰삼촌들은. 샤를6세가 21세에 권력받고 동생 루이 를 오를레앙 공작에 앉힌겨. 1392. 네살 아래야. 그런데 이해에 샤를6세가 정신병 이 생긴겨. 용감필립이 권력을 다시갖고가.

Charles's first known episode occurred in 1392 when his friend and advisor, Olivier de Clisson, was the victim of an attempted murder. Although Clisson survived, Charles was determined to punish the would-be assassin, Pierre de Craon, who had taken refuge in Brittany. John V, Duke of Brittany,

샤를의 친구이자 자문 핵심이 아빠뻘의 올리비에 드 크리쏭, 인데 피에르 드 크롱 에 의해 암살을 당해. 브르타뉴공작이 사주한거야. 원래 앙숙이고 이전에도 암살하려다 애들이 지시불이행으로 실패했거든. 저 죽음이 샤를6세에게 쇼크 가 오고, 이때 1392에 정신병이 시작돼. 24세에. 루이1세 20세 오를레앙 공작받은해. 샤를6세가 이후 본격적으로 미치는거야. 부르고뉴 는 계속 뽑아먹다가 용감공필립이 1404에 죽고, 오를레앙의 루이 가 중앙코트를 챙기는겨. 부르고뉴를 멀리하고.

겁없공 장 1371-1419
오를레앙 루이 1372-1407

용감공 죽고 아들이 부르고뉴 무시된다며 동갑내기 사촌을 죽이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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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공 샤를인 제4대때의 루이11세 다음이 아들 샤를8세야. 이탈리안전쟁 시작해.

샤를8세 다음이 루이12세. 이사람은 아빠가 오를레앙의 샤를 이야. 이 샤를의 아빠가 오를레앙 시작 루이1세고.

겁없공 장, 현명공필립, 용감공샤를
샤를6세, 샤를7세, 루이11세
오를레앙 루이1세, 샤를, 루이12세

루이12세는 루이11세와 세컨드 커즌이고, 이전 샤를8세는 조카뻘인겨. 조카가 킹 하고 삼촌이 받은겨. 샤를8세의 누나가 장애가 있거든. 루이12세에겐 조카야. 약혼하고 킹 되고 파혼을 해. 저 여자는 수녀원가서 쎄인트 고.

루이12세 다음이 프랑수아1세야. 이사람은 루이12세의 조카야. 딸 클로드와 결혼시켜 킹이돼

오를레앙의 루이 가, 아들이 셋이고, 셋째가 앙굴렘을 받아. 프랑수아1세는 이 셋째의 손자 야.

이때부터 프랑스는 발루아-앙굴렘 인겨. 아들 앙리2세가 거지 메디치 카테리나 사이에 프랑수아2세 샤를9세 앙리3세를 낳고 종교전쟁으로 앙리4세 부르봉 시작하는거고

할때, 루이12세 는 오를레앙 이고, 다음 프랑수아1세부터 앙굴렘 인데 이 앙굴렘 도 저 오를레앙 루이 의 피야. 발루아 는 오를레앙 이 이어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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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레앙 루이 의 형이 미친샤를6세고, 엄마가 부르봉 이여. 발루아-오를레앙-앙굴렘 의 앙리3세 다음 앙리4세의 부르봉도 오를레앙 부터 이미 섞여

부르봉은 성루이 9세의 아들이고 필립3세의 동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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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 는 장2세가 결혼으로 갖고온겨. 마누라가 첫결혼때 카페부르고뉴 를 갖고 자식없이 온거야. 이걸 막내 용감공필립 에게 준겨. 카페에서 발루아로 넘어온거고. 카페 부르고뉴 란건 카페시작 휘그카페 의 아들 로베르2세,의 동생 로베르 부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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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레앙 시작 루이가

Born 13 March 1372,[1] Louis was the second son of King Charles V of France and Joanna of Bourbon and was the younger brother of Charles VI.

얘들은 개인 연대기 가 조선땅 오백년역사보다 더 얽혀있어서, 어느누구도 쟤들 개인사 조차 제대로 말 못해. 가장 문제가 과학자 철학자 문학가 를 역사속에서 톱아볼 수가 없는겨. 쟤들 역사를 알 지능이 안되거든. 너무나 광범위의 얘기라. 쟤 오를레앙 루이 만 보자고, 내말이 먼말인가를.

부르봉 엄마고 자식들도 그래서 부르봉이고 앙굴렘 애들도 부르봉이야.

In 1374, Louis was betrothed to Catherine, heir presumptive to the throne of Hungary. Louis and Catherine were expected to reign either over Hungary or over Poland, as Catherine's father, Louis I of Hungary, had no sons. Catherine's father also planned to leave them his claim to the Crown of Naples and the County of Provence, which were then held by his ailing and childless cousin Joanna I.

두살때 약혼을 헝가리 캐서린 과 해. 캐서린 은 카페앙주 헝가리 루이 의 장녀야. 이 루이는 헝가리에 폴란드를 받고 나폴리도 받아야 해. 곧 오를레앙이 저걸 다 차지할뻔 한겨. 그런데 캐서린이 8세에 죽어 1378. 일장춘몽

헝가리 루이 가, 아빠 앙주 샤를 을 잇는데, 앙주샤를 은 할배가 나폴리앙주 샤를2세에 할머니가 헝가리 아르파드 마리 야. 나폴리카페앙주 샤를의 아들인 샤를2세. 헝가리앙주 샤를은 아빠가 나폴리앙주 샤를2세의 장남인데 일찍죽고, 저 할머니 피로 끊긴 헝가리 킹을 하는겨. 카페앙주가 나폴리에 헝가리를.

아들 앙주루이 는 엄마가 폴란드여. 여기도 끊겨서 갖고와.

나폴리 도 샤를2세의 차남으로 가서 이게 바로 손녀 조안나 로 가는겨. 이여자가 아비뇽 교황 스폰이고 로마주교들이 증오한. 이 조안나 에 장가간게 사촌 앤드류. 헝가리 루이 의 동생이야.

나폴리는 헝가리 앙주입장에선 자기들이 종손이야. 장가간 루이동생 앤드류가 죽어. 독살당한듯. 아빠샤를이 나폴리 먹으려 했거든 그래서. 조안나 가 죽으면 헝가리 앙주에게 줘야해. 저게 나중 방계로 가서 조안나2세 에 다음 아라곤 으로 넘어가고 이탈리아전쟁 발화점이 돼

조안나1세 가 헝가리루이 사이에서 불러들이는게 발루아앙주 루이 야. 샤를5세 동생들인 앙주루이 베리의장 부르고뉴용감필립. 앙주루이는 카페앙주나폴리 먹으려고 샤를6세 섭정에 프랑스킹코트는 관심이 없는겨. 앙주루이는 나폴리에 대한 미련이 앙주루이2세에 앙주르네 까지 3대를 가는겨 조안나2세 와 맞물리면서.

저 발루아 앙주 의 3대가 나폴리를 못차지하고 이전 카페앙주 나폴리를 아라곤 이 갖고 가면서, 백년전쟁 후 샤를8세가 이탈리아 원정을 시작하는겨 나폴리 갖는다는 명분으로

Catherine's father also planned to leave them his claim to the Crown of Naples and the County of Provence, which were then held by his ailing and childless cousin Joanna I.[3] However, Catherine's death in 1378 ended the marriage negotiations. In 1384, Elizabeth of Bosnia started negotiating with Louis' father about the possibility of Louis marrying her daughter Mary, notwithstanding Mary's engagement to Sigismund of Luxembourg.

헝가리 루이 의 캐서린이 1378에 8세로 죽어. 오를레앙루이 6살. 헝가리 앙주루이가 두딸 남은겨 마리, 헤드위그. 마리가 헝가리 갖고 지기스문트, 헤드위그 가 폴란드갖고 야기웨어 에 가는겨.

헝가리 앙주루이는 헝가리를 발루아앙주 에게 이으려했거든. 이게 오를레앙 루이 였는데, 마리는 이미 지기즈문트 와 약혼한거야. 저때는 웨스턴 스키즘 이야. 서기 1300년 들어오면서 1백년 은 70년이 아비뇽, 이후 40년은 스키즘. 이40년의 아비뇽은 불법이고, 프랑스는 아비뇽 신성로마는 로마 야. 헝가리가 본토애들은 로마, 카페앙주 왕가는 아비뇽 이거든. 마리 를 파혼시키고 오를레앙 과 결혼하려는게, 아비뇽 과 로마 의 싸움이 되고, 로마에 헝가리귀족들이 이긴거고 마리는 지기스문트 에게 가는겨.

오를레앙의 꿈이 사라진거야. 그리고 밀라노의 비스콘티 여자와 결혼해. 이 비스콘티가 끊기고 스포르차 가 서는겨. 루이12세는 정확히 이 오를레앙 루이의 손자거든. 할머니땅 밀라노 야. 스포르차 는 불법임차인이야. 스포르차가 프랑스편들다가 합스부르크로 돌아서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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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레앙 공작 시작인 루이 가 헝가리꿈에 나폴리도 날라가고, 오히려 본토 킹덤 에 매진 하는겨. 1392 나이 20에 오를레앙 공작령을 다시 만들고 받아. 네살위 형 샤를6세는 21세에 부르고뉴 삼촌 그늘 벗아나서, 평이 좋아. 그러다 당해 에 자기편 아빠뻘 올리비에 드 크리쏭 이 피에르 드 크롱 에게 암살당하고나서, 정신병 이 들면서, 오를레앙 이 형대신 챙기는겨 킹 코트를. 천적은 사촌 부르고뉴 여. 저때 1392 용감공필립은 나이 50이고 12년후 1404 죽는거고 아들 겁없공 장. 이 대행하는겨. 둘이 한살차이고, 여전히 킹 코트를 빨아처먹는겨 오를레앙 이 보기엔. 그러다 1404에 막내삼촌 용감공필립 죽고서, 부르고뉴를 완벽히 차단하고, 부르고뉴의 영지들을 경매로 사던지 압력넣으며 갖고 오는거고, 부르고뉴 입장에선, 자기들이 유지해온 코트 에서 팽당한겨. 저색들 우리 부르고뉴 없었으면 애초에 잉글랜드에 치이고 관리도 안되고 사라질걸 챙겨줬더니 배신하네, 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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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레앙 이,

클로비스 가 통일하고 511에 죽어. 이때 수도는 파리야. 네아들이 나눠

클로도머Chlodomer
칠드버트Childebert (실드베르)
클로따르Chlothar

떼우데릭 Theuderic

떼우데릭 은 장남인데 엄마가 달라. 나머지 셋은 클로틸드 가 엄마고. 떼우데릭 이 장남이라 제일 커. 오스트레이지아(아우스트리아), 메쓰 에 랭쓰 를 받아. 이 두도시가 수도여.

떼우데릭 이 절반을 받고, 클로틸드 의 세자식이 나머지 반을 나눠갖아

클로도머 가 오를레앙 을 받아
칠드버트 가 파리 를 받아
클로따르 가 스와송(뉴스트리아) 을 받아

클로따르 의 두형이 먼저 죽어. 클로도머의 아들을 죽여. 칠드버트는 아들이 없어. 클로따르 가 오를레앙 파리 를 갖아. 그리고 떼우데릭의 오스트레이지아 도 자식 병들어죽고, 클로따르 가 생전에 다 갖아

막내 클로따르 가 아빠 클로비스 다음에 다시 통일을 한겨. 그리고 다시 나눈거야.

군터 의 부르고뉴 킹덤은 클로비스 의 자식들때 갖고온겨. 떼우데릭 결혼에 다시반란해서 진압해.

클로따르 도 아들이 넷 이야. 첫째가 파리. 둘째가 오를레앙에 부르고뉴킹덤. 셋째가 오스트레이지아 넷째가 뉴스트리아.

니벨룽 반지의 지크브리트, 브륀힐데 가 클로따르 의 셋째야.

할때, 오를레앙 은 부르고뉴 와 함께 둘째 군트람 이 쥐었던겨.

지크브리트 와 부인 브륀힐데 는 부르고뉴 킹덤과 상관이 없어. 지크브리트 죽고 부인의 자식은 군트람 우산 으로 가서 무자식의 군트람을 이어.

아키탄 도 클로비스가 갖고온겨 비지고뜨 에서. 여기도 클로비스 프랑크들이 잇는거고.

발루아 때 오를레앙은 형제고 부르고뉴는 사촌이야. 오를레앙 이 킹 대행하다 킹을 하는거고. 부르고뉴는 남 이야. 이 부르고뉴 가 합스부르크로 가면서 가운데 로타링기아 의 연장전을 하는겨. 프랑스 와 독일은 마던까지 천년을 싸운거야. 얘들은 이렇게 싸우면서 오히려 진이 다 빠진거야.

부르고뉴 는 프랑크 시작할 때부터 클로비스 의 아들들에 겨우 들어간거지만, 마던까지 애매하게 처신을 해.

오를레앙 은, 파리 다음의 도시야 지역이고. 클로비스 애들의 족보 를 보면.

고대로마때 여긴 카이사르 의 드루이드 이야기가 나오는데, 드루이드 라는게 갈리안족의 사제 무당들 이야. 얘들이 리더층 이고 당연히. 이들이 인신공양 하는걸 카이사르가 기록해 원정기에서, 대게 범죄자 를 쓰는거고, 사람 형상의 거대한 모형을 만들어 거기에 사람들을 집어넣고 태우는겨. 이곳이 오를레앙 이야. 카이사르가 이도시를 없애. 그러다 아우렐리우스 때 다시 세운겨.

아틸라 가 451년 서로마 와 카탈로니아 전투 패할때 목표 지점이 이 오를레앙 이야. 여기 가는길에 만나서 대회전을 한겨.

이 오를레앙 은 프랑크 메로빈지언 도 그렇고 킹 중앙코트 와 제일 가까운 곳이야.

발루아 의 후반은 오를레앙 의 루이12세 부터 앙굴렘 의 이 오를레앙으로 발루아를 마무리하고

부르봉 의 마지막도, 루이13세 동생 필립 의 오를레앙 이 1830 7월부터 1848 2월 까지 로 부르봉 을 마무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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