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에르티오스 의 철학자열전에 소크라테스 마지막이

He was sharply criticized, according to Aristotle in his third book On Poetry, by a certain Antilochus of Lemnos, and by Antiphon the soothsayer, just as Pythagoras was by Cylon of Croton, or as Homer was assailed in his lifetime by Syagrus, and after his death by Xenophanes of Colophon. So too Hesiod was criticized in his lifetime by Cercops, and after his death by the aforesaid Xenophanes; Pindar by Amphimenes of Cos; thales by Pherecydes; Bias by Salarus of Priene; Pittacus by Antimenidas and Alcaeus; Anaxagoras by Sosibius; and Simonides by Timocreon.

소크라테스는 심하게 비난받았다, 아리스토틀의 시학 에 의하면, 렘노스 의 어떤 안티로코스 와 한무당 안티폰 에 의해. 둘다 몰라 걍 길가는 거지 수준의 이름들이여. 이 아리스토텔레스 는 디다볼 수록 애가 좀 이상해. 얜 소크라테스가 죽고서 15년 지나 태어난 인간이, 플라톤에게 전부 뽑아먹고 마치 새로운 이론인듯 자기껄 내세우면서 윗세대이야길 정리하거든. 그러면서 은근히 소크라테스를 까대는 듯 얍삽한 문장들을 넣거든 얜. 얘가 전하는 소크라테스 플라톤에 이후 사람들이 취하는거고, 얜 제대로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를 전하지 않아. 피타고라스는 크로톤의 퀼론, 호메로스는 평생 쉬아그로스 에 죽어서는 콜로폰의 크세노파네스 에 당했듯이. 헤시오도스는 케르콥스 에 또한 크세노파네스. 핀다로스는 코스 의 암피메네스, 탈레스는 페레퀴데스. 비아스는 프리에네의 살라로스. 핏타코스 는 안티메니다스 와 알카이오스. 아낙사고락스는 소시비오스. 시모니데스는 티모크레온 에 비난받았듯이.

소크라테스를 비난했다는 두명을 좀 의미있는 애로 넣던가 대체 저게 먼놈의 의미고 문장이야. 얜 이런거조차 웃겨 이게. 아리스토 얜 참 싀안해.


그리고 소크라틱스 라는 제자들 이 나와.

[47] Of those who succeeded him and were called Socratics the chief were Plato, Xenophon, Antisthenes, and of ten names on the traditional list the most distinguished are Aeschines, Phaedo, Euclides, Aristippus. I must first speak of Xenophon; Antisthenes will come afterwards among the Cynics; after Xenophon I shall take the Socratics proper, and so pass on to Plato. With Plato the ten schools begin: he was himself the founder of the First Academy. This then is the order which I shall follow.

주요 세명이 플라톤, 크세노폰, 안티스테네즈. 이 중 플라톤 이 열명의 수장으로 아카데미를 잇는겨.

북2 가 17명 인데 소코라테스가 5번이고 나머지 12명이 소크라틱스 야. 플라톤 과 안티스테네즈 는 따로 따로 빼. 12명 중 스틸포, 메네데모스 는 제자들의 제자고, 소크라테스 의 생전 제자들이 라에르티오스 목록에서 12명이야.

북3 이 플라톤. 북4 가 플라톤의 10명 아카데미 수장이야

Clitomachus or Cleitomachus (Greek: Κλειτόμαχος, Kleitómakhos; 187/6–110/9 BC[1]) was a Carthaginian who came to Athens in 163/2 BC[a] and studied philosophy under Carneades. He became head of the Academy around 127/6 BC.

플라톤 아카데미 10번째가 클레이토마코스. 전127년 에 해서 전110에 죽은겨.

북5가 아리스토틀 과 그 학파여. 북6 이 안티스테네즈 의 견유학파여. 북7 이 키티온의 제논 의 스토아 여.

라에르티오스 철학자열전들이 북2 에서 북7 까지 저게 소크라테스여. 소크라테스 가 고대그리스철학 의 60퍼 이고 양으로보면 80퍼여 저게.

북8 이 피타고라스 학파고 북9 가 헤라클레이토스 와 기타들 이야. 여기에 파르메니데스 가 있어. 데모크리토스와 회의론자 피론 이 여기고. 북10 이 짧은 에피쿠로스 야.

소크라테스 를 직접 잇는 거대학파가 플라톤 아리스토틀 과, 견유학파 안티스테네즈 여. 견유에서 나온게 스토아 여. 즉 세개가 큰 사조로 가. 이들은 신 을 다루지 않아. 참 이게 독특한거야.

소크라테스는 말이지, 신의 신호 대로 움직인 사람이야. 그런데 정작, 신에 대한 떼올로기아 라는 이 신학은 전혀 없다는겨.

the Platonic Academy founded in Athens in the 4th-century BC seems to have included theological themes in its subject matter

플라톤 아카데미 에서 신학적 주제를 포함했었던 것 같다. 이게 실체가 없어

Plato used the Greek word theologia (θεολογία) with the meaning "discourse on god" around 380 BC in Republic, Book ii, Ch. 18.[2] Aristotle (384–322 BC) divided theoretical philosophy into mathematike, physike and theologike, with the last corresponding roughly to metaphysics, which, for Aristotle, included discourse on the nature of the divine.[3]

플라톤은 떼올로기아, 신에대한 이야기, 란 단어를 사용했다 폴리테이아 에서. 아리스토틀은 필로소피를 세개로 나누다, 마테마티카 피지케 떼올로기케, 신학적인 떼올로기케 는 메타피직스에 해당하는데, 신성함의 네이쳐 에 대한 설이었다. 마테마티케 는 배우기 교과목 이고, 아리스토는 몸이 죽으면 영혼도 사라져. 물리적 차원의 네이처의 신비함을 보는건데 신앙의 신을 다루지 않아.

플라톤 전집의 떼올로기아 는, 신은 좋은것들의 총체고 신에게 나쁜속성 부여하면 안되고 신은 인간을 보살피고 신에대한 제사는 공식적 사제에 의해야하고 개인들 무당짓 엄금 이여. 이런것 이상 없어. 자신해? 응 확실해 플라톤 이래 인류역사에서 플라톤 소크라테스를 가장 제대로 이해하는 분은 나 하나 걸랑.

Drawing on Greek Stoic sources, the Latin writer Varro (116–27 BC) distinguished three forms of such discourse: mythical (concerning the myths of the Greek gods), rational (philosophical analysis of the gods and of cosmology) and civil (concerning the rites and duties of public religious observance).

스토아 의 바로 가 신학적인걸 미띠컬 레셔널 시빌 세가지로 나눠보지만, 스토아 는 근본적으로, 신이 없어. 바로 가 특이하게 신 의 문제를 들어간겨. 그 파벌이라고 똑같은 생각일 순 없거든.

소크라테스 인간들은, 어떤 절대적인 신 에 대한 올인 이 전혀 없어. 소크라테스가 신의 신호에 움직이며 산 인간이면서도 정작 신에 대한 접근은 철저하게 이성적인겨. 이게 어찌보면 고대그리스 의 독보적인 힘이야. 얘들만이 문명을 만든겨.

쟤들은 저러면서도, 철저하게, 에띡스 를 고민을 한거야. 로직스 를 바탕으로. 그러면서도 절대 신을 버리지 않아. 신에 대해 경건해야 해. 신이 보살피지 않는다 신이 없다 이런말 하는이들을 설득해야 해.

그러면서도 에띡스 모랄은 신적으로 파들어간겨. 저들 삶 하나하나가 걍 도덕책이자 신학책이야. 대화 전에는 신에게 기도를 해.

소크라테스 는 저 자체의 이데아 로 가기 위해서, 에띠칼 을 꺼낸거야. 아무도 모르는건데, 소크라테스 가 정의 용기 절제 지혜 를 꺼내며 하우투를 얘기하는건 폴리테이아의 폴리스를 위함을 너머, 저런 에띡스 를 추구해야 자체의 세상 신의 세계 에 들어간다는 거야 이 사람은. 이게, 파이드로스 의 신화 이야기야. 에띡스 가 세속의 진보의 절대적 도구 에 더해 에띠칼 인간이 헤진 날개를 수선해서 신의 세상에 돌아간다 는 확신이야.

이게, 차원이 다른겨 다른 후진 애들과.

진언 놀이 로, 저기에 갈 수 없어

이름을 외친다고, 저기에 갈 수 없어.

소크라테스 는 그런 비의 미스테리 의 방법을 거부해. 말도 안돼. 그런다고 갈 수도 없고 간다고 해도 그건 남은 세속 사람들을 방치 외면 하는겨. 세상 남은 이들은 어찌되는 말든  온니 지저스 나무아미타불 해서 혼자 튈껴. 머같은 소리 말거라 하시는겨 소크라테스는.

유일한 겨 이게 전 인류 문명에서 이런 사람들 덩어리의 시대는. 소크라테스 의 고대그리스 란건 이미 최고의 진보 시대여.

플러타이너스 부터의 네오플라톤 은 이 신학에서 갈리는겨. 떼어지 헤노시스 이런게 플러타이너스 부터의 용어여. 얘들부터 신 에 인격성을 부여하면서 어떤 행위의 제식을 하든 주문 놀이를 해야 만이 저 디어더월드 에 컨택해서 슈퍼맨이 되려는겨 이게. 그래서 네오플라톤에 미스틱 이 붙는겨. 얘들은 플라톤 이 아냐 그래서. 신에 대해선.

플라톤 소크라테스는, 떼어지 의 헤노시스, 저 세상과의 컨택을 통한 하나됨의 방법은 번제지랄 해주세요지랄 이 결코 절대 아냐. 너 기도하러 간다고? 제사지내러 간다고? 신전에?, 신이  니가 제물 바치면서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해대면 해주는게 그 따위가 신이겠니? . 기도한다는게 얼마나 위험한 짓인줄 아니 또한? 이게 정확한 소크라테스 워딩이여 플라톤이 전하는.

유일한 하나됨의 방법은 오직 하나, 에띡칼 모랄 이야. 지혜 정의 절제 용기 로 사는 것 만이 신의 세상에 들어갈수 있다! 이게 플라톤 전집 이 전하는 소크라테스의 문장이야.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간은 이 소크라테스야. 어느누구도 이런 문장을 만들지 못한거고 이런 삶을 살지 않은거야. 유일한겨 이 소크라테스가.

공자란 인간역사의 가장 하류는 오직 인간을 짐승 취급하며 모든 행위들에 족쇄질을 하고 저런 공자가 위대하다며 2천년 이상을 떠받들게 한 이 극동 의 인간들은 정말 먼데기 여. 완적 포경언 만이 인간인겨 저놈의 유교 예교는 재앙만 부른다. 루쉰 이 종지부를 찍어 유교는 흘인 사람죽이는 종교다

이 조선 땅만 유일하게 어떤 하치리라도 도포 자락 만 쳐입고 나타나서 공자여 맹자여 조선 이여 해대면 숭배를 해. 저들이 화폐도안으로 대가리들을 영원히 지배해. 이 조선반도는 정말 깨끗이 지워져야 마땅해, 신의 입장 에서.
.

라에르티오스 는 크세노폰 안티스테네스 플라톤 셋을 거론했지만, 역사에선 소크라테스의 직접적 제자 셋은 저게 아냐. 크세노폰 은 20대말에 페르시아로 용병가서 7년만에 돌아와 전401 - 전396. 소크라테스가 전 399 여. 크세노폰 인생도 파란만장이야 그러나 소크라테스 가 펠로폰네전쟁때 목숨도 구해주고 용병떠날때 가요마요 물어도보지만 상대적으로 약한겨. 크세노폰 은 자기 디싸이플을 만들지 못했어. 그러나 이사람의 글은 생생한겨. 재평가 받는 인물이고.

Immediate followers of Socratism were his pupils, Euclid, Aristippus and Antisthenes, who drew differing conclusions among themselves and followed independent trajectories.

직접적 추종자들 셋은 유클리드 애리스티퍼스 앤티스띠니즈, 서로 다른 결말들 생각들을 끌어냈고 독립적인 궤적들을 따라갔다.

테스형 왜 자꾸 따라다녀 형 호모여? 해대는 알키비아데스 가 전450년생 이고 20년 아래여. 유클리드 애리스티퍼스 가 전435년생이고 견유학파 시작 앤티스띠니즈 가 가장 형이여 전446년이여. 플라톤 이 저들보다 열살 더 어린겨. 플라톤은 가장 막내여. 못껴 소크라테스 이야기에. 크세노폰이 전430 이야. 플라톤 의 이야기가 도는게 마음에 안들어서 따로 소크라테스 회상록, 심포지엄, 어팔러지, 오이코노미코스 를 낸겨.

크세노폰 은 죽음의 재판을 보지도 않았고 향연 심포지움도 안갔어. 그런데 자기가 본듯이 간듯이 쓴겨. 직접 보지도 가지도 않았지만, 정황과 이야기들 로 자기의 해석을 할 수 있는겨. 그러면서 지혜 소피아로 더 깊게 파들어가는거야.

Euclid of Megara (/ˈjuːklɪd/; also Euclides, Eucleides; Greek: Εὐκλείδης ὁ Μεγαρεύς; c. 435 – c. 365 BC)[a] was a Greek Socratic philosopher who founded the Megarian school of philosophy.

메가라 의 유클리드. 에우클레이데스. 메가라 스쿨의 시작이야. 기하학의 유클리드 는 전300년의 알렉산드리아 이고.

소크라테스 의 독보적인 건, 로직스 여. 궁극의 자체들을 찾아내고 파들어가는 노에시스 의 유일한 도구여 이 로직스. 참이 되는 문장들을 주고 받으며 궁극적 참을 찾아내는거야. 이걸 그대로 이어받은 사람이 에우클레이데스 인거고, 이 로직스 를 이어받은 이들이 스토아 여. 스토아의 시작 제논 이 소크라테스 의 두명을 이은겨 이게. 이 두명 의 두개 가 스토아 고 웨스턴이 신학으로 가기전에 이성의 철학을 소크라테스 이후로 한번 더 다진거야. 그 한명이 안티스테네스 이고 이들 견유학파 라는건 에띡스 모랄의 끝판왕들이야. 스토아는 에띡스 와 로직스 여. 이 둘의.

스토아 가 필로소피를 내추럴필로스피 에띡스 로직스 로 나누고. 앞의 둘을 살과 영혼, 노란자 흰자, 토양과 과일 이면 로직스 는 뼈, 껍질, 울타리 라 했거든. 스토아 이야기중 모두들 말안하고 넘어가는게 이 로직스야. 특히 조선글들, 얘들은 이 로직스 를 전혀몰라. 반가까이 가 로직스 이야기야 스토아는. 이걸 에우클레이데스 에서 받은겨. 이사람이 어찌보면 소크라테스를 가장 충실히 이은거야.

이 메가라 가 독보적인건, 로직스 에 더하여, 더원 과 더굿 의 결합이야.

Euclid's philosophy was a synthesis of Eleatic and Socratic ideas. Socrates claimed that the greatest knowledge was understanding the good.

엘레아 스쿨과 소크라테스의 합. 엘레아 학파 의 시작이 파르메니데스 또는 크세노파네스 로 봐. 호메로스 와 헤시오도스 를 비판했다는 크세노파네스. 이사람도 존재론 이고, 진짜 리앨리티 가 있다는 사람인데, 그 진짜를 인간은 알수없어.

파르메니데스 라는 플라톤의 대화편이 있어. 몰라 이사람 생년을. 소크라테스 청년이 할배 파르메니데스 를 만나는 거로 시작하거든. 전집들 중에 그야말로 독특한 책이 저 존재론 관련 한, 메논 소피스트 파르메니데스 필레보스 이 네권이야. 정말 기묘한 책들이여저게.

우리가 책을 본다는건 배움을 위함인데, 대게 뭔책이든 머 걍 그러려니 하거든. 그러나 말이지, 정말 플라톤 전집은, 배운다는 느낌이 쎄게 들어와. 정말 달라이게. 그래서, 순교자 져스틴 이 플라톤 을 접하니까 무척 지혜로와졌다는 기분이 들더라 했거든. 정말 듣보도 못한 새로운걸 접하게 돼. 그 중에서도 저 네권은 야 정말 묘해. 뤼시스 의 에로스 이야기에 머 다른건 따로더라도. 야 난 대체 저 너무나 재밌는 플라톤을 제대로 말하는 애 단 하나 이 조선빠닥에 없다는데 머 당연하지만. 정말 이 나라는 너무나 무식해 진짜.

난 인문학계에서 선생이니 교수니 지랄대면서 근엄 떠는 저 들에 가래침도 아까운데 진짜.

파르메니데스 하면, 더원 이야. 이사람은 존재론자고 법체실유 여. 12처유는 허상이고 거짓이고 임퍼머넌트 일시적인겨. 배후에 리앨리티 가 법체실유가 있는데, 이건 더원, 이란겨. 거대한 하나 라는겨. 이건 정쩍인겨. 크세노파네스 나 이사람이나 리앨리티 란걸 알레떼이아 란 단어로 쓰는거고. 그노시스 마테마타 독사 라는 날리지 의견 은 인식의 배우고 아는거야 알레떼이아 를. 트루뜨 라는건, 배운 날리지 가 알레떼이아 와 맞으면 트루 인거고. 문법들이 서로 다들 다르지만 내말을 정통 주류로 봐.

Only one thing exists, which is timeless, uniform, and unchanging

온니원 더원 은 존재해, 무한하게 한모양으로 변함없이. 아주 정적이야. 이게 법체실유 의 속성이란겨 이사람은.

Heraclitus of Ephesus (/ˌhɛrəˈklaɪtəs/;[1] Greek: Ἡράκλειτος ὁ Ἐφέσιος, translit. Hērákleitos ho Ephésios, pronounced [hɛː.rá.kleː.tos ho e.pʰé.si.os]; "Glory of Hera" c. 535 – c. 475 BC,[2] fl. 500 BC)

저생각에 절대반대가 에페소스 의 헤라클레이토스. 헤러클라이터스.

"No man ever steps in the same river twice", and panta rhei ("everything flows").

같은 강물에 두번 들어가는 이는 없다. 판타 레이, 모든것은 흐른다. 이건 파르메니데스 의 언체인징 유니폼 을 듣고 반박하는 말이야. 흐르는 모든 것이란 것에 강물은 모두 리앨리티 의 속성을 말하는겨 현상의 12처유의 것을 말하는게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에도스 이데아 아우토 라는 자체 가 포름으로 번역하는거지만, 이 포름과 저 더원이 속성이 비슷한겨. 그래서 대화를 시키는겨 플라톤이. 그러나 소크라테스 의 포름 이란건, 더원 이 아냐. 유니버설이 더원의 유니버설이 아냐. 포름 들은 12처유 마다 제각각인겨. 빨강 파랑 이 각각의 포름이야. 얘들이 각각 원 오버 매니 여. 파르메니데스가 반박하는게, 너의 포름이란게 그게 원오버매니 의 원이 아니야. 매니오버매니여. 한곳에서 쬐는게 아니라 걔옆에서 각각 쬐어줘야 하는거잖니. 테스형이 아니여 걔들 각각이 태양처럼 하나로 빛을 쏘는겨.

파르메니데스 는 그야말로 더원 유일신 이야. 신앙 의 신 대하는게 아냐 이게. 여긴 컬트가 없어. 그리스 철학자들 리스트에 컬트는 오직 피타고라스애들여.

저걸 에우클레이데스 가 합친겨. 테스형의 거대한 하나가 있어. 더굿. 아가토스. 모든 포름들의 공통된 속성은 아가토스 아레테 여. 저 아가토스 가 결국 엘레아 들의 더원 과 다를게 없는겨. 여기서도 역시나 미스틱 미스테리 비의 따위는 없어.

크세노파네스 는 저게 있지만 인간은 알수 없어. 하물며 갈수도 없는겨.

그러나, 테스형은, 로직스 로 저건 알수 있다여. 저 알레떼이아 의 각각들을. 이 테스형에 플라톤 만큼 강렬한 인간들은 정말 없어요 이게. 알수 있으며 더하여 갈수 있어. 어떻게 알수 있어? 로직스로. 어떻게 갈수있어? 에띡스로.


He identified the Eleatic idea of "The One" with the Socratic "Form of the Good," which he called "Reason," "God," "Mind," "Wisdom," etc.[11] This was the true essence of being, and was eternal and unchangeable.

"Form of the Good", or more literally "the idea of the good" (ἡ τοῦ ἀγαθοῦ ἰδέα)
.

Aristippus of Cyrene (/ˌærəˈstɪpəs/; Ancient Greek: Ἀρίστιππος ὁ Κυρηναῖος; c. 435 – c. 356 BCE) was a hedonistic Greek philosopher[1][2] and the founder of the Cyrenaic school of philosophy.

세명중 한명이, 키레네 의 아리스토포스. 애러스티퍼스 오브 싸이린. 리비아땅 키레네고 씨라노 의 키레네. 퀴레나이코이, 씨레네익스, 키레네 학파의 시작. 헤도니스트. 플레져 여 생의 본질은. 소크라테스 의 삼인방 중 한명은 이렇게 가. 그만큼 소크라테스 가 독특한겨 이게. 한 인간은 극한의 금욕 견유학파로 가고 한 인간은 플레져 로가. 돈 좋고 여자 좋은겨. 그러나 타락으로 가지 않아. 어찌보면 소크라테스 이후 에서 이사람이 가장 독특하며 그래서 중요할 수도 있어. 유일하게 강의로 돈벌어서 테스형한테 송금한 인간이야. 테스형이 돌려줘 내안의 신이 받지 말래.

He is said to have ordered a partridge to be bought at a cost of fifty drachmae, and, when someone censured him, he inquired, "Would not you have given an obol for it?" and, being answered in the affirmative, rejoined, "Fifty drachmae are no more to me." [67] And when Dionysius gave him his choice of three courtesans, he carried off all three, saying, "Paris paid dearly for giving the preference to one out of three." And when he had brought them as far as the porch, he let them go.

파트리지, 꿩 의 일종, 을 주문하는데 50드라크마 를 썼다. 누가 머라한겨. 거기에, 너 나한테 1오볼로스 라도 준적있냐? 50드라크마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냐 디오니소스 시칠리아킹이 세명의 창녀들 중 하나 선택권을 줬는데 셋 모두를 데려가다. 그들을 실어오면서 말하다, 파리스 는 셋 중 하나를 선호하면서 큰 값을 치뤘다지 일리아스 전쟁으로. 그 이유로 세 창녀를 다 달라했다지. 그리곤 그 현관에서 먼 곳에서 그녀들을 놓아주다.

1드라크마가 십만원. 50이면 5백만원이여 새한마리가. 드라크마 는 원래 한줌 이란 의미고 고대에 청동조각 젓가락 이 돈이야. 이 한 조각을 1오볼로스 라한겨. 여섯 작대기가 1 드라크마야. 100드라크마 가 1므나. 소크라테스 가 30므나 걷어서 나오려한거고.

When some one brought his son as a pupil, he asked a fee of 500 drachmae. The father objected, "For that sum I can buy a slave." "Then do so," was the reply, "and you will have two." He said that he did not take money from his friends for his own use, but to teach them upon what objects their money should be spent.

누가 자식을 학생으로 데려왔는데 아리스토포스 는 500드라크마 의 수업료를 요구했다. 5천만원이여. 그 아빠가 거절했다 그돈이면 노예를 살수있다며. 그럼 그러던지. 두명은 사겠지. 그는 말했다, 자긴 친구들에게 돈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친구들을 가르친다면 그것에 대해 돈은 지불되어야 한다.

74] To one who accused him of living with a courtesan, he put the question, "Why, is there any difference between taking a house in which many people have lived before and taking one in which nobody has ever lived?" The answer being "No," he continued, "Or again, between sailing in a ship in which ten thousand persons have sailed before and in one in which nobody has ever sailed?" "There is no difference." "Then it makes no difference," said he, "whether the woman you live with has lived with many or with nobody."

창녀랑 살고 있다고 누가 비난을 했어.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집과, 아무도 산 적없는 집과, 무슨 차이가 있나?" 없어. "그러면 다시, 만명이 전에 항해했던 선박 과 아무도 항해한적 없는 선박 과는?" 차이없어. 그러면 다를게 없지, 니가 같이 사는 여자가 많은 이와 살았든 아무하고도 안살았든.

Aristippus imparted his doctrine to his daughter Arete who, in turn, imparted it to her son, Aristippus the Younger, who is said to have reduced it to a system. Although his dubious reputation has survived into modern times, his philosophy of ethical hedonism, as its name implies, was not entirely amoral. He admonished his students to never harm others, and cautioned that the pursuit of pleasure ought to be moderated by moral self-restraint

아리스토포스 는 딸 아레테에게 자기 철학을 남기고 딸은 자기아들에게. 이 아들은 이걸 이론으로 만들어서 방법론화 해. 에띠칼 헤도니즘. 즐거움인데 에띠칼을 지켜. 남들에게 해를 입히지말라. 즐거움의 추구는 모랄 에띠칼의 자기 통제에 의해 절제되어 져야 한다.

이 에띠칼 헤도니즘이 에피쿠로스 로 가는겨. 에피쿠로스 는 대신 포름의 이데아 이론은 받지 않아.

소크라테스 가 에띡스 로직스 에 플라톤이 에띡스 의 시작이라며 에띡스 만 보이는듯 해도, 모두들 기본은 내추럴 필로소피여. 소크라테스의 기본 한줄기는 무조건 내추럴필로소피를 깔고 가. 로직스 가 당연히 여기도 적용이돼. 테스형 언급할때 에띡스 라며 내추럴 필로소피는 간과하는게 아냐. 너무나 과학적인 인간이 또한 테스형이야.

Antisthenes (/ænˈtɪsθɪniːz/;[2] Greek: Ἀντισθένης; c. 446 – c. 366 BC)[1] was a Greek philosopher and a pupil of Socrates. Antisthenes first learned rhetoric under Gorgias before becoming an ardent disciple of Socrates. He adopted and developed the ethical side of Socrates' teachings, advocating an ascetic life lived in accordance with virtue. Later writers regarded him as the founder of Cynic philosophy.

나머지 한명이 소위 견유학파의 안티스테네스 여. 가장 형님이고. 어쎄틱 금욕을 하며 에띠칼을 강조하면서 버츄 아레테를 추구하는겨. 씨닉 필로소피의 시작.

The term cynic derives from Ancient Greek κυνικός (kynikos) 'dog-like', and κύων (kyôn) 'dog' (genitive: kynos).[4] One explanation offered in ancient times for why the Cynics were called "dogs" was because the first Cynic, Antisthenes, taught in the Cynosarges gymnasium at Athens.[5] The word cynosarges means the "place of the white dog".

견유 라는게 개선비 여. 선비질을 개같이 하는건데. 번역을 개같이 한거고. 시닉 의 키니코스 가 개같음 이고 개들인겨. 걍 개들학파 여. 안티스테네스 가 시작할때 김나지움 이름이 키노스 아르고스, 하양개 백구 체육관 에서 시작한거야. 퀴온 이 도그 고 소유격이 퀴노스.

after his name, as the Dominican order, Dominicanus in Latin and a play on words interpreted as Domini canis: "Dog of the Lord."


산토 도밍고 성도미니크 가 도미니칸수도사 도미니카누스 일때 도미니 카니스. 카니스 가 주격 소유격 같아. 개 야. 도미니크 가 엄마 태몽이 자궁에서 개가 횃불물고 나가서 세상 불태우는거고 주의 개 가 도미니크 도미니칸 이고.

체육관 이름 에서 시작한게, 금욕한다미 거지처럼 살걸랑. 사는 모습 자체도 개여. 이래저래 개같은 학파여.

Crates (Greek: Κράτης ὁ Θηβαῖος; c. 365 – c. 285 BC[1]) of Thebes was a Greek Cynic philosopher,[2] the principal pupil of Diogenes of Sinope[2] and the husband of Hipparchia of Maroneia who lived in the same manner as him.

스토아 의 시작 제논 이, 난파되서 살아남아 아테나이 서점가서 소크라테스 같은 이 없소 할때 서점 주인이 찍어준 이가 지나가는 테바이의 크라테스 여. 제논이 바로 따라가서 제자가 돼. 이 크라테스 는 시노프 의 디오게네스 의 학생이었어. 이 디오게네스 가, 알렉산드로스 보고 야이색햐 그늘지잖아 비켜 해댄 인간이여. 코린토스 에서의 일이고 알렉산더가 원정가기전이고 내가 다음 생애는 디오게네스로 태어날껴 답을할때 디오는 담에도 디오로 태어날껴.

제논이 부자거든. 난파되서 죽다 살아남아서 우울증 걸린겨. 피티에스디여. 그런데 도저히 개거지 생활을 못하겄는거야 크라테스 따라서는. 너무나 창피해서 도망을 나온겨 이사람이. 그리고 스토아 를 차린겨.

아무리 금욕의 버츄 아레테 라지만  너무한겨. 이들은 즐거움은 악이야. 즐거움 헤도네 는 감각적 러스트에 인위적 욕망을 만족시킨 결과일 뿐 이야. 진짜 즐거움은 영혼에서 우러나와야 해. 수프림 굿, 아레테, 라틴어의 버츄 일때 유데모니아 해피니스 여. 이건 자족적인겨. 남의 평판 이니 그래서 고통 스러운건 축복이여 이들에겐. 남의 잣대가 중요한게 아냐. 이게 어찌보면 오만한거야. 내안에 진리가 있다며 정말 그야말로 주관적인 에러의 위험이 매우 높은겨이건. It is closely connected with reason, but to enable it to develop itself in action, and to be sufficient for happiness, it requires the aid of Socratic strength (Greek: Σωκρατικὴ ἱσχύς). 이성이 중시되나, 말아닌 행위가 중요한겨.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는 소크라테스적인 힘이 필요하대. 이게 뭔지는 몰겄어 라에르티오스의 말이야.

이들은 금욕의 에띡스로 저세상 가자, 이런게 아냐. 금욕의 더굿 만이 옳은 잣대의 네이처에 따르는 자족의 행복의 현재를 누릴수 있다는겨. 아무런 미스테리 비의가 없어.

스토아 의 제논도 똑같아 삶의 길은. 버추 아레테가 최고 가치야. 세속의 현실을 최대한 네이쳐에 따라 사는것이 행복이고 그러기 위한 에띠칼의 삶이야. 스토아는 개파의 금욕은 너무 과한겨. 적당해야해.

금욕이 에띠칼을 더 깊고 넓게 하는가?

플라톤도 여기여. 시민들에게 욕망을 부르는 코즈 자체억 접근을 차단시키자거든. 못하게 하는 체제를 만들어라. 금욕하게 하라. 아리스티포스 에겐 저건 개소리야.

천년 중세 유럽애들이 오히려 할거 다한 애들이야. 세상도 끝까지 가고 사유도 끝까지 한겨. 금기시 한 슬람이에 붓다들에 유학자들의 세상은 오히려 철저히 고립된채 물리적 정신적으로 개미세상에 살면서 권력자 집단 몇몇만 그야말로 발정의 오입질 하듯이 산거지 적폐놀이 하면서.
.

스토아에도 신 이 없어요. 어찌 보면 참 신기한겨 이게.

우리는 절대적 신이나 한무당적 수호신들을 기대하고 기대면서 살아. 지저스 탄생이후로. 이스턴은 더하여 저런 배후의 신이 없던 적이 없어. 환생속에서 산 이들이 극동이야. 거대한 주재자의 시스템속에 살았어 극동은

고대그리스는 말야. 소크라테스 전후에, 그런게 없는겨 이게. 오직 에띠칼 오직 로직스 에 오직 내추럴 필로소피 여. 신들은 그냥 축제용 이야. 기도도 하지만, 신에 올인 하지 않아. 이게 그대로 그리스도로 가서 믿음 반 이성 반 이 된거야. 웨스턴은 이 구조가 이어져서 전혀다른 인간의 종 으로 거듭난거야 마던에.

웨스턴의 인간과 아시아의 인간은 전혀 다른 인간이야.

조선 인간은 그야말로 모든 인간들 중 가장 후진 인간이고. 이 근본이유는 조선과 유교와 높임말이야

 사악한게 삼위일체로 뭉쳐서 조선반도 인간들을 최하류의 족속으로 거듭나게 한거지.

에띠칼과 로직스, 소크라테스 가 주신 거대한 자산이야. 로직스 라는건 보편이고 이 로직스 가 내추럴 필로스피와 에띡스 에 힘을 준겨. 그야말로 울타리 껍질 뼈와근육 으로서, 토양에 열매를 영혼과 살을 흰자와 노른자 를 제공을 한거야

이스턴은 로직스 가 없었고, 그래서 에띡스 가 전혀 없는 하류 인간들만 생산한것이고, 내추럴 필로소피 라는 자연과학이 나올 수가 없었던거지.

그래서, 할줄사는건, 도둑질, 훔치고 카피하고, 자기들은 위대하다며 국뽕질을 하는거지.

얘들은 전혀 답이 없는, 그야말로 하치리.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