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 docta ignorantia (Latin: On learned ignorance/on scientific ignorance) is a book on philosophy and theology by Nicholas of Cusa (or Nicolaus Cusanus), who finished writing it on 12 February 1440 in his hometown of Kues, Germany.
데 독타 이그노란티아. 쿠사 의 니콜라스. 서기 1440년. 독일 쿠쓰. 모젤강변 죽 오른쪽이 라인만나는 코블란츠고 왼쪽이 트리어 여.
doceo 도케오 가 가르치다 고 닥터가 교사 자격증 이야. 이 닥터자격이 있어야 선생질로 먹고살아.
독타 는 독투스 의 여성이여. 독투스 doctus 는 도케오 의 퍼펙트 패씨브 파티시플. 패씨브 피동 배운거고 퍼펙트 다 배웠고 파티시플 그걸 갖고 있는중 이야. 어드젝티브 여 명사를 수식하는.
이그노란티아 가 이그너런스 고. 이건 무지 에 모르는겨. 여성명사 고, 데 라는 어블레이티브 전치사에 걸려서 티아 여. 여성에 어블레이티브 의 어드젝티브라 독투스 가 독타 가 돼.
이그노런트 오브 하면 뒤를 생무시 경멸하다 라 하지만, 오브 뒤 것을 전혀 모르다 야. 상대를 전혀 모른다는 말은, 아주 무시해서 알고싶지도 않아 서 몰라. 상대를 모른다 는 것 만큼 경멸의 단어도 없어.
그노시스 의 알다 가 know 노우 가 되고 이그노런스, 이건 그노시스 를 부정 인 이야. 알수없는겨. gnostic 노스틱 이 영지주의 로 가서 어그노스틱 이 불가지 알수없다 와 같은게 이그노런스 여
저게, 배워진 모름에 대하여. 라는게, 여기선 두가지 의미로 쓰인겨. 하나는, 모른사이에 자기가 레벨업된걸 후에 알게 된거야. 레벨업 이란게 신에 다가간 정도겄지. 다른 하나가, 인간이 알수 없는 게 있다 는걸 배운거야.
Earlier scholars had discussed the question of "learned ignorance". Augustine of Hippo, for instance, stated "Est ergo in nobis quaedam, ut dicam, docta ignorantia, sed docta spiritu dei, qui adiuvat infirmitatem nostram"[1] - "There is therefore in us a certain learned ignorance, so to speak — an ignorance which we learn from that Spirit of God who helps our infirmities"; here he explains the working of the Holy Spirit among men and women, despite their human insufficiency, as a learned ignorance.
저 문구 자체가 애매한겨.
히포의 오거스틴은 저 문구를, 우리 인간에겐 어느정도의 배워알게된, 누구한테 배웠는지 모르나 아마 신이 심은겨 이건, 그 이그노런스 가 있다. 모른다는걸알고있음. 이야. 즉, 인간의 인퍼머티즈 나약함 열등함을 자각하는겨. 지저스는 이걸알고 인간을 도와줘. 이게 어캄머데이션 이야.
오거스틴은 단지 저 의미여 별게없어. 인간은 스스로 무지함을 안다, 신이 눈높이 교육을 한다. 그래서 계속 송수신하면 알수있다 로 가? 안돼 이게 오거스틴은. 이사람은 최종적으로 자유의지를 죽이고 원죄를 내세웠거든.
The Christian writer Pseudo-Dionysius the Areopagite advises his reader to ἀγνώστως ἀνατάθητι, to "strive upwards unknowingly".[2] Bonaventura of Bagnoregio declared "spiritus noster non-solum efficitur agilis ad ascensum verum etiam quadam ignorantia docta supra se ipsum rapitur in caliginem et excessum"[3] - "we are lifted into divine knowing without directly striving for it".
아테나이에 아레스의 언덕 아레이오스 파고스, 의 디오니소스 란 사람 이 있었고, 이사람 사이비 가 있는데, 쓰길, 아그노쓰토쓰 아나타띠티, 알지못한채 업그레이드 오르기. 바뇨레죠 의 보나벤투라, 우리는 신성으로 올려진다, 그것을 직접 구하려 하지 않음을 알고있음에서. 신성에 오르는 것은 의식의 문제가 아니라는겨. 부지불식간에 의도하지않은채 나도 모르게 닿는겨.
저들은 저러면서도 바닥엔 기본으로 리즌 을 깔아. 리즌 과 페이뜨, 이성 과 믿음 은 대등한 무기여 아퀴나스가 못을 박았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것 하나로도 충분한 성인이여.
오거스틴 이니 보나벤투라 니 플라톤주의에 다음 아리스토를 더한 이성주의자 에 믿음을 함께하는거고, 그래서 알수없음 이 있어. 이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해.
For Cusanus, docta ignorantia means that since mankind can not grasp the infinity of a deity through rational knowledge, the limits of science need to be passed by means of speculation. This mode of inquiry blurs the borders between science and ignorantia. In other words, both reason and a supra-rational understanding are needed to understand God. This leads to the coincidentia oppositorum, a union of opposites, a doctrine common in mystic beliefs from the Middle Ages. These ideas influenced other Renaissance scholars in Cusanus' day, such as Pico della Mirandola.
쿠쓰 의 니콜라스 가 저 구문을 자세히 풀어. 독타 이그노란티아, 데 가 없어도 주어자리 글자도 같아.
이성으로는 무한함을 포착 못해. 한편으로 스페큘레이션 이 필요해. 스페키오 보는겨 지켜보는거고, 이걸 명상 사색 이라 번역하지만. 참 애매한겨 이게. 메디테이션은 메디토르 생각하는거고.
Most of Nicholas's mathematical ideas can be found in his essays, De Docta Ignorantia (Of Learned Ignorance), De Visione Dei (On the Vision of God) and On Conjectures. He also wrote on squaring the circle in his mathematical treatises.
이사람은 자연과학에 수학자이기도 해. 스퀘어링 더 써클. 고대부터의 숙제여 똑같은 면적의 원 과 사각형 그리기. 소수찾기 이런게 이인간들의 고대부터 수학 기하학 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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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즉착 동념즉괴 언어도단 심행처멸. 로 갖다 쓰거든 이불교가. 이게 선종이고, 조선에 참 잘 어울리는겨 이게. 아 생각하기 시러 마침 잘됐네 여 좋은 말있다 걍 가만히 있으면되겄네.
조선땅에 조계종이 지배하는 이유고, 다음이 정토종이여 워낙 조계종이 드세서 나머진 의미없고. 정토종 이란게 나무아미타불 만 해대면 정토가는겨 염불공덕이 최고라미.
이 조선땅은 이래저래 개 무식 할수 밖에 없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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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불교가 얼마나 유치하고 미개한건지. 소크라테스는 자체가 있다 를 증명하기 위해 그야말로 환타스틱한 플라톤 전집 들을 만들어 내걸랑. 저 논리가 정말 멋져 35개의 대화편과 서신집 죽여준다.
불경은 걍 시바, 있다. 어머시바 있다 란거 얼마나 위대한 문장인가 이문장 불경을 지니고 찬양하면 공덕생겨 정토간다 저 있다에.
얼마나 미개하냐고 불교란게.
소크라테스는 저 있다 저걸 알기위해 수학 기하학 역학 논리학 공부하라우, 불교는 시바 산속처박혀 개구즉착 동념즉괴 언어도단 심행처멸 이여. 걍 멍때리다 보면 간당께 저짝에.
불교 세상이 개미개한 이유고,
저 세상에 간 애 단 하나 없어. 저 있다에 갔으면 그 공덕에 현실도 잘 살겄지. 하나도 안 갔으니 아시아는 똥이 된겨. 힌두애들도 가긴 어딜 가니 다 하치리들이지.
세상에 책을 나무판때기 돌판때기에 파는겨. 기가 막힌겨 이게. 왜? 한짜라는게 그림이거든. 그림 그리고 새기면 멋져보이는겨. 세상에 글씨체 갖고 이름 붙이는 것도 그래서 한짜문명꿘이 유일한겨. 겉모습 만 충실하고 그야말로 허세고 서예란것 만큼 개쓰레기 예능이 없어 저게.
말이되냐고 전쟁이 났는데 이들이 싸울 생각 안하고 섬에 처박혀서 글자나 파고 앉았으니. 저게 말이되냐고 저게. 권력자체가 얼마나 미개하냐고. 저런 미개한 마음이 낳은게 이씨 조선 오백년 , 아 그야말로 쌩 지옥.
Nicholas of Cusa (1401 – 11 August 1464), also referred to as Nicholas of Kues and Nicolaus Cusanus (/kjuːˈseɪnəs/), was a German philosopher, theologian, jurist, mathematician and astronomer. One of the first German proponents of Renaissance humanism, he made spiritual and political contributions in European history
쿠사, 쿠쓰 의 니콜라스, 니콜라우스 큐쎄이너스 는 1401-1464 사람이고. 독일 철학자 신학자 법학자 수학자 천문학자. 르네상스 인본주의 의 독일땅 첫 주자고 영적 정치적 으로 영향력있어. 이름있는 사람이고. 독타 이그노란티아 가 중요해. 믿음 보다 더 들어가 스페키오 안을 디다보는 명상이여. 그럼에도 이성과 병행해. 수학천문학등 다 해야해.
문제는, 독타 이그노란티아, 이성으로 알수 없는 영역이고, 아퀴나스는 페이뜨 믿음 해야 하고, 니콜라스 는 스페큘레이션 으로 한계를 뚫어야 해.
이게 참 애매한겨. 말이 참선 댠나 삼매니 지관 젠 극동식에 염불지랄에 온니 지저스에 대체 시바 뭘 스페키오 봐야하는건지 이미지를 잡고 상상 관조 해야 하나 똥그래미가 궁극이다 똥그램 그려서 보기만 하까 아님 멍때리다 보면 똥그래미 티나온단다.
저게 정말 황당한 분야야.
차라리, 저따위 지랄 할 시간에 단어 하나 더보고 공식 하나 더 외우던가 대체 저게 구체적 하우투가 없는겨 저게.
가장 할일없는 들이 그래서, 땡중 들이야. 정말 할일없는게 이 땡중놀이여.
저 독타 이그노란티아 를 어쩌란 말인거냐 말이지 이게.
Giovanni Pico della Mirandola (US: /ˈpiːkoʊ ˌdɛlə mɪˈrændələ, -ˈrɑːn-/,[1][2] Italian: [dʒoˈvanni ˈpiːko della miˈrandola]; Latin: Johannes Picus de Mirandula; 24 February 1463 – 17 November 1494) was an Italian Renaissance nobleman and philosopher.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 미란돌라 의 피코. 이탈리아 르네상스 귀족에 철학자. 1463-94. 31세 에 죽은 천잰데. 이사람이 그리스도에 카발라를 전파한 사람이야. 이 인간은 저당시 나이 갓 20넘어서 유럽을 들썩이게 한 인간이고 지력으로, 그러나 이 인간의 관심은, 알수없는게 있어. 독타 이그노란티아 를 인정해. 이걸 극복하고 인간은 천사가 될 수 있어. 이걸 수수께끼처럼 써놓고 디지셨어. 나이 31세에. 죽음이 미스테린데 아마 독살이나 암살당한듯. 저때 피렌체는 암살천국이고, 1494년 10월에 샤를 8세가 밀라노로 들어와. 이탈리아 전쟁 시작이야. 11월 중순에 피렌체로 들어온겨. 17일날 죽었어. 샤를 8세의 프랑스군 들어오는 날 직후여 저때가. 위대한 로렌초가 1492에 죽고 이탈리아는 끝난겨. 저때 아들 피에로는 항복을 해. 그리곤 샤를군 따라 나폴리 가서 패하는거고. 1494 말에 메디치는 항복하고 사보나롤라의 이른바 민주정부 가 서는겨. 4년 가까이. 민주 는 뭐다? 공안에 굶어 죽이기 에 학살이 민주 라는겨 고대 아테나이부터 똑같은 패턴. 3년반 공안에 적폐놀이 에 학살에 열받은 피렌체 시민들이 사보나롤라를 태워죽여.
그리고 등장하는게, 체사레 보르자 야. 이탈리아는 보르자 가 죽고 끝난겨.
Giovanni was born at Mirandola, near Modena, the youngest son of Gianfrancesco I Pico, Lord of Mirandola and Count of Concordia, by his wife Giulia, daughter of Feltrino Boiardo, Count of Scandiano.[7] The family had long dwelt in the Castle of Mirandola (Duchy of Modena), which had become independent in the fourteenth century and had received in 1414 from the Holy Roman Emperor Sigismund the fief of Concordia.
조반니 피코 는, 아빠가 미란돌라 영주 여. 콘코르디아 백작이고 엄마가 갖고와서. 모데나 더치 소속이고, 미란돌라 가 에밀리아 위에, 모데나 가 서남쪽 아래여. 지금 에밀리아로마냐 에레지오니, 주 여. 주 안에 모데나 프로빈치아 이고.
에밀리아 로마냐 에레지오니 의 수도 가 볼로냐 야. 이 볼로냐 가 중북부 에서 정 중앙이여. 볼로냐 여서 가도가 좌상향으로 모데나 레지오 파르마 피아첸차 에 더 가면 밀라노 여. 밀라노는 롬바르디아 에레지오니 의 수도고. 볼로냐 북쪽에 만토바 가 있어. 만토바는 롬바르디아의 오른아래 변경이고, 이 오른쪽이 베네토 고 수도가 베네치아고, 볼로냐 만토바 사이의 오른쪽이 페라라 고 더가면 라벤나 해변이고.
미란돌라 모데나 볼로냐 가 에밀리아 지역에 이 아래가 피렌체 가 수도인 토스카나 여. 피렌체공화국. 여기서 죽은겨 조반니 피코 가 나이 31세, 이탈리아 전쟁터진 해 에.
이사람은 나이 23세에 당대 유럽 스타여 학계에서.
다빈치가 1452년생이고 다음 미켈란젤로가 1475, 보르자 와 동갑이여. 조반니 피코 가 다빈치보다11년 아래여 1463. 사보나롤라 가 다빈치랑 동갑이고, 하필 피코가 사보나롤라 와 친해. 사보나롤라는 메디치를 배반하고 프랑스 열라만세 하면서 민주독재를 하거든. 이 시작 분위기에 피코가 죽은거로도 봐.
He is famed for the events of 1486, when, at the age of 23, he proposed to defend 900 theses on religion, philosophy, natural philosophy, and magic against all comers, for which he wrote the Oration on the Dignity of Man, which has been called the "Manifesto of the Renaissance",[4] and a key text of Renaissance humanism and of what has been called the "Hermetic Reformation".[5]
1486년, 23세에 이벤트를 벌려. 로마에서. 종교 철학 자연과학 마술 모든 분야 통털어 900개의 명제들을 발췌해서, 대토론을 하자. 내 나이 어리다고 무시말라 어리광부린다며. 나는 이 900개의 문장들이 참이다 라고 주장한다. 나를 이길사람은 근거를 제시하라 나와 문장으로 싸우자. 900개 문장들을 내가 다 막아주마. ㅋㅋ 졸 대단한겨. 나이 23세여. ㅋㅋ. 이 이벤트를 홍보하기위해 쓴 글이, 디 오레이션 온 더 디그니티 오브 맨. 라틴어의 영역이고, 인간의 존엄에 대한 연설. 르네상스 의 헌장으로 불려왔다. 더하여 르네상스 인본주의의 핵심으로, 또 허메틱 리포메이션, 헤르메스 연금술 의 그거여. 헤르메스 허메틱 하면 매직 에 신비주의 영성주의여.
He was the founder of the tradition of Christian Kabbalah, a key tenet of early modern Western esotericism. The 900 Theses was the first printed book to be universally banned by the Church.[6]
그리스도 카발라 전통을 세운자고, 얼리마던 웨스턴의 에소테리시즘 내안에킹덤주의 인 카발라였다. 900개 명제들은 교회에서 일괄적 전부에게 금지된 첫 인쇄물이다.
아 참 짧은 인생 화끈하게 사셨는데.
During a brief trip to Florence, he met Angelo Poliziano, the courtly poet Girolamo Benivieni, and probably the young Dominican friar Girolamo Savonarola. For the rest of his life he remained very close friends with all three.[12] He may also have been a lover of Poliziano.[13] From 1480 to 1482, he continued his studies at the University of Padua, a major center of Aristotelianism in Italy.[11] Already proficient in Latin and Greek, he studied Hebrew and Arabic in Padua with Elia del Medigo, a Jewish Averroist, and read Aramaic manuscripts with him as well.
볼로냐에서 교회법 배우기 관두고,
피렌체가서 언어학 문헌학자 안젤로 폴리치아노,시인이자 음악가 지롤라모 베니베니, 그리고 사보나롤라 를 만나. 모두 열살 위고 친구먹고, 페라라대학 파도바 대학 이 19세고 유대인학자 아베로이스트와 접하고 이사람한테 히브루어에 아랍어 배우고 카발라 배우고 번역하고, 라틴어 그리스어 당근하고 아리스토텔레스도 떼는거고.
Pico also wrote sonnets in Latin and Italian which, because of the influence of Savonarola, he destroyed at the end of his life.
사보나롤라의 영향으로 라틴어 이태리어로 쏘넷을 썼지만 말년에 다 버렸다. 시바그래봤자 31세
In 1485, he travelled to the University of Paris, the most important centre in Europe for scholastic philosophy and theology, and a hotbed of secular Averroism. It was probably in Paris that Giovanni began his 900 Theses and conceived the idea of defending them in public debate.
1485년 22세에 파리대학을 가. 파리대학은 철학 이 최고여. 피에르 아벨라르 의 파리고 이태리에서 철학 배우려고 오는겨 파리로. 피코는 철학이 가장 중요한걸 알아. 똑같어이게 소크라테스때와. 철학은 젊을때 멋으로나 하는거다, 의 세상말들.
여기서 900개의 주제들을 공개적 토론으로 방어해보자 라는 이벤트를 생각해 낸거야. 자기 생각에 대한 검증 의 시도 겄지. 자신감에 더하여. 돈 이 많고 재산분할 끝났고 여유가 되는겨 생활이.
1486에 돌아와서 이벤트 시작하고 오레이션을 써. 로마로 오라는겨. 이게 출판금지가 돼. 교회에서 책을 다 태워. 프랑스로 도망을 가. 사보이에 잡혀 교황이 수배때려서. 메디치 의 로렌초 가 1492에 죽는데 죽을 때까지 피코를 돌봐줘. 군주들에 잡히면 로렌초 가 연줄놔서 풀어주는겨.
사보나롤라 가 꼴통 도미니칸 이야. 이 사보나롤라를 메디치 코트 에 들인게 피코 야. 로렌초 한테 부탁해서 자기 친구이자 형님 좀 스폰해달라고. 피코 가장 큰 패착이 사보나롤라 야.
그러다 로렌초 사촌의 부인에게 찝쩍대다가 잡혀두드려맞고 도망다니고. 참 재밌게들살어
Pico spent several months in Perugia and nearby Fratta, recovering from his injuries. It was there, as he wrote to Ficino, that "divine Providence ... caused certain books to fall into my hands. They are Chaldean books ... of Esdras, of Zoroaster and of Melchior, oracles of the magi, which contain a brief and dry interpretation of Chaldean philosophy, but full of mystery."[15]
도망다니다가 페루자 프라타 에서 상처 치료하고 피치노 할배 사제여. 로렌초도 14세위 삼촌뻘에, 얜 모두 삼촌 아빠 할배 뻘이 친구여. 편지를 써 친구 할배 피치노에게. 신의 섭리가 내 손에 어떤 책들을 떨궜어. 칼데안의 책들이야. 에스드라스, 조로아스터, 멜키오르 라는 메이자이 동방박사 페르시아인, 이것들은 칼데아 철학을 짧게 건조하게 번역한건데 미스터리로 가득해.
에스드라스 는 유대경전 에즈다서 의 사제고, 저걸모두 칼데안, 칼데아 가 바빌로니아 말기 때의 사제 무당들이 지배할때야. 칼데안 하면 점술 매직 이고, 칼데안 하면 저땐 네스토리우스 학파여.
It was also in Perugia that Pico was introduced to the mystical Hebrew Kabbalah, which fascinated him, as did the late classical Hermetic writers, such as Hermes Trismegistus.
또한 같이 빠진게 저때 카발라 야. 이건 900개에 들어가 있고. 이게 900개문장이 정리가 저땐 안되어있을때야. 더 빠져들었다는거고 저당시 최고의 랍비에게서 배웠다는겨
Pico's approach to different philosophies was one of extreme syncretism, placing them in parallel, it has been claimed, rather than attempting to describe a developmental history
씬크러티즘. 혼합주의 여러 신앙들을 병렬적으로 펼쳐서 섞어. 이거저거 솎아내거나 비슷하게 해석하거나 어 똑같네 할수도. 선후관계 정렬하는 발전적 모형으로는 다루지 않았어.
좋은게 아냐 저게. 내가 신크러티즘 전문가 인데. 후진건 걍 후질 뿐이야.
불교 유교 힌두교. 똥 개똥이지 저게. 유교는 걍 똥처먹고 똥 바르며삽시다 일 뿐이고.
피코 가, 저때 특히나, 독타 이그노란티아 를 끄집어내서, 카발라 를 하는겨. 우리가 카발라 에 대해 들어보는 이유는, 저때 조반니 피코 가 웨스턴에 알려서야.
피코는 카발라의 우주관 생명관 생명수 를 믿어.
그래서 카발라 수련을 하면 천사 가 될 수 있음을 믿어. 그런데 자세한건 쓰지 않아, 모두가 알 필요가 없다며.
저기부터가 내 관심 사항인데 말이지.
넘어가고.
Pico had only three works printed in his lifetime: the Conclusions, the Apology and the Heptaplus.
피코는 생전에 세개의 인쇄본을 내. 컨클루젼, 어팔러지, 헵타플러스. 피코는 뉴턴에 칸트 에 그 이후들 모두의 연구대상 이었고 인용대상이었는데
정작 오레이션 이란건, 이걸 사람들이 대단하다며 평하지만, 이건 피코의 조카 가 출판한겨. 삼촌 유고들 모아서. 피코의 역사 일대기는 이 조카 가 정리한게 큰 지분이고. 오레이션 인간존엄 이야긴 피코가 젊은사춘기 호기부린거라며 정작 별로였다 는 당사자말을 조카가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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