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 Joachim Rheticus could have been Copernicus's successor, but did not rise to the occasion.[69] Erasmus Reinhold could have been his successor, but died prematurely.[69] The first of the great successors was Tycho Brahe[69] (though he did not think the Earth orbited the Sun), followed by Johannes Kepler,[69] who had collaborated with Tycho in Prague and benefited from Tycho's decades' worth of detailed observational data.[116]
코페르니쿠스 를 지지하는 이들이, 유일 제자 레티쿠스 가 석세서 로써 전파할 수 도 있었는데, 이사람은 이 롤에서 빠져. 에라스무스 라인홀트 는 1511-53. 일찍죽어. 코피형 죽고 10년후 죽어. 티코 프라허 1546년생 가 유명한 이들중 첫번째 이고, 그럼에도 그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걸 생각안했다. 다음이 케플러 1571년생 이고. 이전 티코 프라허 에 케플러 썰로 넘어가고. 갈릴레오 가 1564년생 이야.
기본적으로, 코페르니쿠스 지지자들은, 수학 이 철저해. 수학 을 모르면, 저 이야기가 뭔지 몰라. 다들 수학자여 저들이.
자세한 석세서 들을 디다보면. 이들이 모두, 코페르니쿠스 죽기 직전후에 태어난 사람들이고. 코피형 아들뻘로 코피형때 사람들이 그나마, 레티쿠스 와, 에라스무스 라인홀트 여. 이 둘이 스피커 역할을 못해. 레티쿠스 는 상인의 아들을 강간한 범죄자 가 되서 라이프치히 에서 추방되고, 에라스무스 는 일찍 죽고.
그럼에도, 이 다음 세대들이 코피형 글을 보고 지지하는겨. 별로 안돼. 왜? 어려워 이게. 지독한 수학적 지식이 있어야 해. 그래서, 과연 저당시 코피형을 지지한다며 읽은 이들이 제대로 이해한걸까? 이게 요즘의 이슈였어. 결론은? 다들 이해했다 는거야. 이런 깊은 지쩍인 토양이 있어서, 아이삭 뉴튼 이 나오고 이해되고 이사람이 스타가 된겨.
뉴튼 이야기도 결국은 말이야. 수학 이야 수학. 수학 을 모르면 인간이 아녀.
Despite the near universal acceptance later of the heliocentric idea (though not the epicycles or the circular orbits), Copernicus's theory was originally slow to catch on. Scholars hold that sixty years after the publication of The Revolutions there were only around 15 astronomers espousing Copernicanism in all of Europe: "Thomas Digges and Thomas Harriot in England; Giordano Bruno and Galileo Galilei in Italy; Diego Zuniga in Spain; Simon Stevin in the Low Countries; and in Germany, the largest group—Georg Joachim Rheticus, Michael Maestlin, Christoph Rothmann (who may have later recanted),[117] and Johannes Kepler."[117] Additional possibilities are Englishman William Gilbert, along with Achilles Gasser, Georg Vogelin, Valentin Otto, and Tiedemann Giese
태양중심설 사상은 최근에야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고, 물론 에피싸이클 이든, 원형의 서큘러 궤도들은 지금은 인정이 안되지만, 코페르니쿠스 의 이론은 오리지날하게 느렸다 따라잡기가. 학자들은 주장한다, 태양중심설 출판후 60년 동안, 단지 15명의 천문학자 만이 전유럽에서 코페르니칸이즘 을 이해했었다고.
토마스 딕즈. 토마스 해리엇, 잉글랜드. 이탈리아의 조르다노 부르노 와 갈릴레오 갈릴레이, 스페인의 디에소 쑤니가(1536-97). 플랑드르의 씨몬 스테빈. 독일이 가장 큰 규모인데, 레티쿠스, 미하일 매스틀린(1550-1631), 크리스토프 로트만. 그리고 케플러. 더하여 윌리엄 길버트, 아킬레스 가써(1505-77), 게오르크 포겔린. 발렌틴 오토, 그리고 티데만 기제(1480-1550). 이 아마도 저 그룹에 속할 수도.
저기서 케플러 가 가장 막내고.
Arthur Koestler, in his popular book The Sleepwalkers, asserted that Copernicus's book had not been widely read on its first publication.[118] This claim was trenchantly criticised by Edward Rosen,[ab] and has been decisively disproved by Owen Gingerich, who examined nearly every surviving copy of the first two editions and found copious marginal notes by their owners throughout many of them. Gingerich published his conclusions in 2004 in The Book Nobody Read.[119]
아서 캐스틀러 가, 그의 유명한 책, 더 스립워커즈, 에서 주장했다, 코페르니쿠스 의 책은 넓게 읽히지 않았다고 첫번째 판은. 이 주장은, 에드워드 로젠 에 의해 제대로 비판받았고, 오웬 진거리치 에 의해 결정적으로 거부되어왔다. 그는 거의 모든 현존하는 처음 두 판들을 모두 조사했고, 발견했다 그 모든 책들을 통해서 그 소유자들이 쓴 무수한 여백의 노트들을. 징거리치 는 2004년에 아무도 안읽었다는 책.에서 자기 결론을 발표했다.
.
코페르니쿠스 의 태양중심설 이 갈릴레오 때 공식 이단이 되는건데.
By 1615, Galileo's writings on heliocentrism had been submitted to the Roman Inquisition by Father Niccolò Lorini, who claimed that Galileo and his followers were attempting to reinterpret the Bible,[d] which was seen as a violation of the Council of Trent and looked dangerously like Protestantism
갈릴레오(1564-1645) 가 로마 이단심문에 고소 접수되는게, 서기 1615년 51세 여. 니꼴로 로리니. 1544년생. 당시 71세고, 도미니칸 수도회 노땅에, 대학에서 교회사 강의하는자고. 갈릴레오 와 아이들이 성서를 재해석한다 는게 죄목 이야. 이건 트렌토 공회의 위반이고, 프로테스탄트 위험이 있다. 카운터 리포메이션 의 완성이 트렌토 공회의 내용이고 이게 헌법이 되는겨.
The Index Librorum Prohibitorum ("List of Prohibited Books") was a list of publications deemed heretical or contrary to morality by the Sacred Congregation of the Index (a former Dicastery of the Roman Curia), and Catholics were forbidden to read them without permission
인덱스 리브로룸 프로히비토룸. 금지된 책들의 목록. 구텐베르크 의 인쇄기가 1440년 즈음부터 돌면서, 출판 퍼블리슁 이 필경사에서 이게 차원이 다른겨 출판 이란게. 금서 를 로칼 에서 군주 나 주교 들이 하는겨.
The refinement of moveable type and the printing press by Johannes Gutenberg circa 1440 changed the nature of book publishing, and the mechanism by which information could be disseminated to the public.[15] Books, once rare and kept carefully in a small number of libraries, could be mass produced and widely disseminated.
정보가 대중에 퍼지는구조가, 과거엔 손으로 쓴 것의 소수가 대학과 코트에 귀족들만 보는거라면, 이제 대량으로 생산되서 넓게 퍼지는겨.
하물며, 이 인터넷 시대. 아 끔찍한거야 정보 확산 속도는. 그래서, 차단 하는 방법도 더 고차원적이고, 오히려 차단하기 좋아. 선동하기가 좋은겨 이게. 예전엔 이 정보의 홍수 문제가 이슈였지만, 이 조선 땅만 보더라도, 어차피 보는 채널은 정해진거고, 접하는 공중파 도 정해진겨. 공중적 채널을 단도리 치고, 이 채널에서 생산되는게 퍼질 뿐이야. 대중이 만들어내는 정보는 질쩍 차원에서 의미가 없어요. 오히려 말이야, 선동하기가 좋아 아이티 사회는. 정보 가 대량으로 열려있다, 의미가 없어 이게. 어차피 지능의 문제고, 이 남조선 땅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어.
애들이, 너무나 미개하거든.
In the 16th century, both the churches and governments in most European countries attempted to regulate and control printing because it allowed for rapid and widespread circulation of ideas and information.
구텐베르크 인쇄기 에서 70년 지나서 루터 대자보여. 바로 프로테스탄트 시대여. 농민전쟁 조차 팜플렛 전쟁이야. 규제가 이때 들어가는겨.
The early versions of the Index began to appear from 1529 to 1571.
The first list of the kind was not published in Rome, but in Catholic Netherlands (1529); Venice (1543) and Paris (1551) under the terms of the Edict of Châteaubriant followed this example.
서기 1529년 부터 네덜란드 에서 금서 가 나와. 카톨릭 네덜란드여 칼뱅에 위그노 들이 네덜란드 가고 여기 카톨릭이 나서는거고. 베네치아 파리, 이어 런던 이 1557년 이야. 그러나, 정작 로마 에선 저런게 없어. 이 로마 라는 카톨릭 본부 가 이게 웃긴겨. 얘들이 가장 개방적이여 ㅋㅋㅋ. 이 카톨릭 진영에서. 얘들이 유대인 피난처 게토 도 먼저 만들어줘 스페인 칙령일때.
The first Roman Index was printed in 1557 under the direction of Pope Paul IV (1555–1559), but then withdrawn for unclear reasons.[28] In 1559, a new index was finally published, banning the entire works of some 550 authors in addition to the individual proscribed titles:[28][note 1] "The Pauline Index felt that the religious convictions of an author contaminated all his writing."[26] The work of the censors was considered too severe and met with much opposition even in Catholic intellectual circles; after the Council of Trent had authorised a revised list prepared under Pope Pius IV, the so-called Tridentine Index was promulgated in 1564; it remained the basis of all later lists until Pope Leo XIII, in 1897, published his Index Leonianus.
로마 가 가장 늦은겨 금서가, 서기 1557에 등장하다가, 바로 취소돼. 그러다 1559 에 새 목록이 최종적으로 발표돼. 교황 파울루수 4세. 550명의 저자들의 모든 책들이 금지야. 저자가 신앙적으로 유죄 면 그의 모든 책들이 오염된거야. 이게 수천권이고, 이어서 트렌토 공회의 가 1563년에 끝나고, 피우스 4세 교황에 의해 수정보완 목록이 나오고, 이게 1564. 이게 1897년 까지 간겨. 계속 여기에 추가가 되는거고,
코페르니쿠스 에 갈릴레오 도, 1615에 이단심문 받으면서, 금서 가 되는겨. 뒤에 데카르트 도 금서여 카톨릭에선.
Galileo's resulting book, Dialogue Concerning the Two Chief World Systems, was published in 1632, with formal authorization from the Inquisition and papal permission.
1615에 접수 되서, 이때 공개적 논쟁이 된겨 태양중심설이. 이 전에도 논쟁이 있었지만, 개별적 인거고, 중앙 코트 에서 다루는겨. 1543년 이후 72년 만에.
갈릴레오 가 1632년 에 두 주요세계관 에 대한 대화, 라며 이단재판소 와 교황 의 허가하에 자기변론 이라며 책을 낸거야. 갈릴레오 는 성서 를 인간의 모랄 차원에서 보는거지 내추럴싸이언스 로 보는것과 분리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이런말도 해선 안되고, 걍 논란에 휩싸이기 싫다. 당신들이 부정하는것을 나는 지지 안한다 는 입장표명이거든. 그러면서 객관적인 입장인 마냥 두 세계관을 대화 를 시킨겨. 그런데 저게 오히려 문제가 된거야.
Earlier, Pope Urban VIII had personally asked Galileo to give arguments for and against heliocentrism in the book, and to be careful not to advocate heliocentrism. Whether unknowingly or deliberately, Simplicio, the defender of the Aristotelian geocentric view in Dialogue Concerning the Two Chief World Systems, was often caught in his own errors and sometimes came across as a fool. Indeed, although Galileo states in the preface of his book that the character is named after a famous Aristotelian philosopher (Simplicius in Latin, "Simplicio" in Italian), the name "Simplicio" in Italian also has the connotation of "simpleton".[135][136] This portrayal of Simplicio made Dialogue Concerning the Two Chief World Systems appear as an advocacy book: an attack on Aristotelian geocentrism and defence of the Copernican theory
아리스토텔레스 가 부활되서 웃기게도 얘 가 16세기 를 지나면서 신 이 된겨 유럽에선. 얘 도 문제 많은 애거든. 따져 들어가면. 얘가 지구중심설 을 확인도장찍은 애고, 하물며 달도 똥그랗고 완벽해. 갈릴레오 가 저 달은 산과 골짜기라 해. 야 우리 아리형이 달이 완벽하다 했어 너 이단이여. 미친겨 이 문꽈 교회애들 진짜. 아리형이 지구중심인겨 우리 성서랑 맞아 이게. 이 아리애 캐릭을 심플리초 라고 이름지은걸, 가만 글 보믄 얘가 지구중심인데 이 의미 자체가 심플리톤 바보 멍청이 색끼거든. 내용보면, 오히려 지구중심을 까는겨. 갈릴레오 는 악의적 풍자 로 저리 이름짓고 내용쓴거라고 사가들은 평하지 않아. 대중의 반응이 예상 밖인거고, 교황 우르바누스 8세 도 열받은겨 원레 갈릴레오 가 카운터 리포메이션 의 재산으로 쓰인 이 거든. 보호 하는 입장이고 교황쪽은. 항상 잘나가면 반대 하는 애들이 있던거고 당시도. 그런데 저 다이알로그 가 문제가 되는겨 결정적으로. 쌓이고 쌓여서.
In view of Galileo's rather implausible denial that he had ever held Copernican ideas after 1616 or ever intended to defend them in the Dialogue, his final interrogation, in July 1633, concluded with his being threatened with torture if he did not tell the truth, but he maintained his denial despite the threat.[141][142][143]
The sentence of the Inquisition was delivered on 22 June. It was in three essential parts:
싸우는게, 너 저 다이알로그 가 태양중심설 지지한다는거지? 이걸 부정해 갈릴레오는. 자기는 1615년 에 고소 를 당해서 이단재판에 피의자가 된 이후로는, 서기 1616년 이후로는, 코페르니쿠스 사상을 한번도 가진적 없고, 다이알로그 에서 그 사상들을 변호하려는 시도 도 안했다 고 주장을 해. 임플로저블 디나이얼. 거부 를 하는데 미심쩍은겨. 태양중심설에 대한 확실한반대 가 아닌듯 한겨 진술이. 마지막 심문이 1633년 7월 이야. 다이알로그 다음 해야. 고문 하겠다고 위협을 해, 진실을 말하라고. 그러나 그는 그 위협에도 그의 부정을 유지했다.
저게, 내용을 잘 봐야 해. 너 다이알로그 로 태양중심설 지지한거지? 이게 사실이지?
아니야, 나는 1616년 이후로 코페르니쿠스 생각 안 갖고 있어. 다이알로그 에서도 지지하려고 의도한적 없어.
이전에 이단소 의 판결문 이 6월 22일 이야. 저걸 갖고 최종 고문 협박 한거고. 즉 1633년 7월 이후 부터 죽을때 인 1642년 까지, 9년 가택연금 당하고, 죽은겨.
Galileo was found "vehemently suspect of heresy"
He was sentenced to formal imprisonment at the pleasure of the Inquisition
His offending Dialogue was banned;
인퀴지션 판결문이, 비어먼틀리, 아주 강렬한 이단 혐의. 이단 이면, 사형이여. 이단으로 믿어지나 확실하진 않지만, 강렬한 혐의 ㅋㅋㅋ. 그래서 감금이야. 이 다음날 부터 적용이고. 다이알로그 는 금서야. 이게 판결문이야. 그래서 추가로, 앞으로 연금된 집에서 쓰는 책들도 금서 인겨 저 조항을 연관시켜서.
"And yet it moves" or "Although it does move" (Italian: E pur si muove or Eppur si muove [epˈpur si ˈmwɔːve])
그래도 지구는 돈다. 에 뿌르 씨 무오베. 이게 저 법정 나오면서 하는 말이라고 전하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야. 이런 말 중얼 대었다간, 완벽한 이단 으로 사형이여. 갈릴레오 변호전략은 1616년 부터 코페르니쿠스 관심없어 여. 가면 쓰기 전략으로 그나마 산거야. 그런데 그 상황에서 저 소리를 어드래 하니. 저 소리는, 죽기 전에 한 것으로 봐.
즉, 1615년에 시작해서 1633년 에 마무리가 된겨. 18년 만에.
Christina of Lorraine or Christine de Lorraine (16 August 1565 – 19 December 1637) was a member of the House of Lorraine and was the Grand Duchess of Tuscany by marriage. She served as Regent of Tuscany jointly with her daughter-in-law during the minority of her grandson from 1621 to 1628.
로렌의 크리스티나. 가 토스카나 대공국 에 시집가서, 아들 코지모2세 의 섭정을 하던 시기여. 칼릴레오 가 저 아이를 과외도 했고, 아주 친해. 크리스티나 가 후원자고
Galileo initially named his discovery the Cosmica Sidera ("Cosimo's stars"), 갈릴레오 가 목성의 네 별을, 코스미카 시데라, 코지모 의 별들 이라고 작명해. 크리스티나 의 아들 나중 대공작 코지모 의 이름을 따서. 이 이름들이 안받아들여진겨 학계에선.
Christina and the Medici Court also offered patronage to the philosopher Cosimo Boscaglia. When the court was in Pisa during winter, in December 1613, Galileo's former student Benedetto Castelli was invited to court.
이 메디치 코트 에 갈릴레오 학생이었던 베네데토 카스텔리 가 초대되고, 여기에 역시나 코지모 보스칼리아 라는 문꽈애가 초대되는데 여기서 태양중심설 논쟁이 붙은겨. 얜 문꽈라서 쪽 다 깐거고. 이게 앙심이 되서 고발을 하는겨 이단 재판소에. 얘가 1호 고발자야. 크리스티나 도 아는체 하는거 좋아해서, 이꽈적 생각은 없으니 성서에 반하면 싫은거고, 성서와 의 충돌에 대해 의견을 달라는겨. 이걸 갈릴레오 가 장문의 편지를 쓰는거야. 성서 는 인간 모랄 의 입장을 위한 글이어야지 자연과학 을 성서 로 배우면 안된다.
Lodovico delle Colombe (1565(?) – after 1623) was an Italian Aristotelian scholar, famous for his battles with Galileo Galilei in a series of controversies in physics and astronomy
로도비코 델레 콜롬베. 갈릴레오와 거의 동갑이고 아리스토 빠고 얘가 갈릴레오 의 내용들에 시시껀껀 시비 거는 문꽈애야. 피직스 에 천문학을 이런애는 신앙적으로 공부하는거거든.
케플러의 초신성이 1604고 이것부터 콜롬베 가 저별은 원래있던별이고 특이한 현상이 아니다 를 갈릴레오 가 반박하면서 가명으로 좀 갖고 노는겨 갈릴레오가 얘의 무식을. 이때부터 어긋나서, 지구의 자전, 얼음이 뜨는 이유. 달의 크레이터. 등으로 둘이 싸우고 항상 콜롬베가 밀리는거지 구경꾼이 보기엔.
쟤들은 중세천년에 근현대 5백년이 토론 이고, 조선들은 토론을 해본적없으니 말막히연 적폐라고 똥 뿌리는애들이고 저걸 보곤 또 위대한 조선 도포자락 똥뿌려서 후련해 ㅋㅋ 참 미개한 하류들 세상이지
While delle Colombe was almost alone in arguing publicly against Galileo, there was a group of scholars and churchmen who supported his Aristotelian views. After Galileo referred disparagingly to delle Colombe as 'pippione' ('pigeon'), his close friend the painter Lodovico Cigoli coined the nickname 'Lega del Pippione' ('The Pigeon League') for delle Colombe's group.[29] (As well as being a play on delle Colombe's name, 'pippione' carried the connotation of 'bird-brained' or 'easily duped').[30] Among the Pigeon League's members was Delle Colombe's brother Rafaello, a leading Dominican, close to archbishop Marzi Medici, who frequently sermonised against Copernican ideas in general and Galileo in particular.[31] Two others were also Dominicans, Tommaso Caccini and Niccolò Lorini
콜롬베 가 거의 고립된거지. 말빨에 안되는겨 대갈빡에 든게없고 생각이란걸 안해봐서. 지구 자전 을 성서 텍스트로 증명하자고 하니 미친 문꽈인거지. 그러나 아리스토빠들이 열받거든. 이성 논리에 안되면 선동의 힘으로 권력을 동원하는거야. 쟤들 명예가 훼손됐응께롱. 죽여야만 하는겨 정치분위기를 만들어서.
바스칼리아 가 메디치 코트에서 카스텔리한테 당한게 1613년 12월이고 콜롬베가 저리 고립이 되서 아리스토들이 기분나쁠때여. 콜롬베를 갈릴레오가 피삐오네, 피젼 비둘기라며 새대가리 식 으로 별명붙이고 화가가 이걸 받아서 쟤 친구들을 레가 델 피삐오네, 비둘기 리그 라 짓고, 여기에 메디치 대주교 에 저 심문관 할배 니꼴로 로리니 가 있는겨
이들이 작정하고, 뭉친겨 갈릴레오를 죽일려고. 태양중심설 재판은 걍 저 떨거지 미개한 지능 가진 문꽈들이 만든 감정싸움 복수질 일 뿐이야.
태양 중심설 이란게 이슈가 될 게 없어. 역사적으로도 그래서 70년 동안 아무일 없던거고. 정치적 보복 을 위해 미개 열등한 들이 억지로 시세에 틈타 선동질해서 터뜨린 사건일 뿐이야.
카톨릭은 저 당시 저런 이벤트 가 필요했을 뿐이고.
먼저 당한게 조르다노 브루노 여
Giordano Bruno (/dʒɔːrˈdɑːnoʊ ˈbruːnoʊ/; Italian: [dʒorˈdaːno ˈbruːno]; Latin: Iordanus Brunus Nolanus; born Filippo Bruno, January or February 1548 – 17 February 1600)
조르다노 부르노. 이사람이 1600년에 화형을 당할때 죄목 중 하나가 역시나 태양중심설 인듯 보이나 이 태양중심설이란건, 거의 관심 대상이 아녀 이땐. 로마 교황청도 입장이 정리가 안된겨. 이게 1615년에 이단재판소 에 접수가 되면서 갈릴레오 연금 판결하면서 입장정리를 한겨 얘들도. 부르노는 걍 철저한 반그리스도 라며 사형당한겨 프로테스탄트에 본보기 보인다미.
.
브루노 나 갈릴레오 는 로마카톨릭의 카운터 리포메이션 과정의 희생양이고, 갈릴레오는 저런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기 싫은거고 그래서 최대한 완곡하게 표현하면서 피해나가려던거고, 굳이 세상과 싸울 필요가 없어. 고차원의 인간 의 공통이야. 데카르트가 그렇고. 세상바꿀래 는 미개한 초딩아이의 칼질일 뿐이고 간혹 칼 쥔 초딩이 진짜권력 잡으면 대학살로 가는게 역사거든. 그게 북조선 이고 곧 남조선의 길일테고. 부르노 는 너무나 혈기왕성 의분 만 찬거고. 갈릴레오는 가택연금 당할정도로만 좀 비굴해보인거고.
성서와 부딪히는 문제야 이게.
이단 이란게 과학으로 확장이 된겨.
이단 이란게 헤러시 heresy 그리스도 이단 이야기 썰 중복 피하고, 얘들이 힘없을때 삼위일체 서신 욕질의 신학논쟁에서 로마권력과 하나되서 그리스어 갖고온 라틴어로 초이스, 찍어 고르는겨 자기들 생각과 다른 애들을. 헤러시 는 그리스도 가 권력의 기생충이 되고 부터 나온 단어고 개념이고 그래서 행동되는겨.
이 헤러시 가 동쪽 천년에서 13세기에 서쪽으로 가고 이 절정이 16세기 종교전쟁에 30년 전쟁으로 일차마무리고 세계대전 으로, 종교전쟁은 유럽에선 끝난겨.
이단의 전쟁이란게, 동쪽교회 천년 서쪽와서 천년 하고 끝난거야 이게 마던 이라는 현대야.
잣대는 그리스도이고, 이후 종교전쟁 이란건 슬람이 들이 저 다 죽어서 의미없는 유럽에 열폭질로 종교를 핑게로 테러하는 것일 뿐이야
세상에서 가장 큰 악질 쓰레기 똥 이 두개야 이슬람과 유교. 이 두벌레의 공통, 하렘질. 유교는 가장 악질 똥. 인간을 신격화 하는겨 이 것들이. 신을 죽이고 인간의 기대고픈 욕망을 인간의 신격화로 만들어 모시는거야
이게 북조선 김씨들 죽으면 신이 사라진듯 울부짖는거고 남조선 에 저런 기괴함이 자살한 애를 통해 나타나는거고, 죽음 자체가 신 격 화되는겨. 골때리는게 특히 이 남조선 땅의 신앙이야. 북조선은 인간을 절대자로 올려놓고 저 김씨조선에 제사지내거든 남조선은 이것조차 없는겨. 거대한 죽음 자체가 신상이 된거야
인간들이 죽음 그 자체야. 제사정치 가 먹히는겨
제사정치를 쟤들이 그래서 선동의 도구로 활용할 뿐이야. 어디 시체없는가 하민서 거기에 자기 문장 광고해야 시선을 받는 세상에서 가장 미개한 땅이야 여기가
웨스턴 애들은 그리스도를 도구로 저걸 2천년을 해본거야. 했어야만 하는 과정이야. 그리곤 그 생각의 벽에서 탈출을 한거거든, 그 벽을 허물고
조선 애들은 저걸 해본적이 없는겨. 아시아 애들은 저걸 못했어. 명나라 의 중국부터 철저한 공안에 조선 오백년은 그야말로 고립된 죽음의 땅이야. 이 최고두목들이 조선민국에선 여전히 존경의 대상이고 지폐로 모시는건데. 여긴 전혀 희망이 없는 개쓰레기 땅인데.
고대 아테나이 에도 신성모독죄가 있어. 그러나 대게들 재판전에 망명을 가는겨. 알아서 또 눈감고 보내줘.
유일하게 죽은게 소크라테스야.
유일한겨. 자기들과 생각이 다르다고 죽인건. 이걸 제대로 말하는 웨스턴 애들이 단 하나 없는데.
소크라테스는 정치범이 절대 아냐. 신성모독으로 세속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판단해서 죽인겨.
이건 유일무이한겨. 신성모독으로 죽은건 고대 아테나이에서 유일이고, 신성모독으로 교회가 아닌 세속이 죽인건 중세와근대포함 유일이야. 마녀사냥 이란건 교회가 죽이는거고 지저스도 유대인 교회가 죽인거고. 보르도 조차 교황이 죽이는거고.
공산당애들 인민재판 죽이는건 자기들 정치범 죽이는거고. 조선 땅은 있조선부터 적폐놀이 유전자고. 이념 의 시대엔 신성모독 이란게 없고 슬람이들 이나 하는짓이고 교회가 하나된 세속이.
곧 조선 사회도 자기들 생각과 다르면 적폐고 지들만 선이고 강간 과 하렘놀이가 곧 정당화 될꺼야 이씨조선 이 위대해서. 몇몇만의 조선이 그리운거고 우리가 조구깅께 해대는거고. 참 열등한 세상인데.
헤러시 면에서 보면 정말 인간의 수준 이란게 고대와 비교하면 너무나 타락하고 저급화 된거지
그러나 유일하게 웨스턴 애들 만이 그리스도 이단 의 지옥의 바다를 동쪽교회진영 천년 이어 서쪽 천년 하면서, 타락과 저급의 사유의바다 에서 헤엄쳐 나오면서 고대보다 전혀 다른 자원의 인간 이 된거야. 웨스턴은 더 그리스도 2천년 이단의 역사가 없인 절대 지금 웨스턴에 현대문명이 설 수 없어.
쟤들은 달라 인간 자체가. 니덜은 모를텐데.
현수막에 범이내려오미 일본을 쳐부술테요 하는 애들과, 이런 극악한 상황에서 이런 대회 꾸려나가는것에 감사하다 는 애들과, 저건 인간 레베루 자체가 다른겨.
Asebeia (Ancient Greek: ἀσέβεια) was a criminal charge in ancient Greece for the "desecration and mockery of divine objects", for "irreverence towards the state gods" and disrespect towards parents and dead ancestors.[1] It translates into English as impiety or godlessness. Most evidence for it comes from Athens.
소크라테스 때 언급한, 아세베이아. 이게 신성모독이야. 임파이어티, 임파이어스 영역하는. 블라스퍼미 blasphemy 라는건 포님 워드가 나쁜겨. 신의 징조가 안좋은겨 원래. 이게 악담 에 임파이어티 로 역시 가지만 뒤에 생긴 개념이고.
The antonym of asebeia is eusebeia (εὐσέβεια), which can be translated as "piety
에우세베이아, 에우 세바스. 세바스 가 경건에 더잘 에우. 파이어티 파이어스 야.
Aeschylus (acquitted)[4]
Anaxagoras (acquitted or exiled)[5]
Aspasia (most likely acquitted)[6]
Hermocopidae: vandalizers of the Athenian hermae in 415 BCE. 22 individuals were sentenced to death.[7]
Alcibiades (sentenced to death, but fled)
Andocides was acquitted in 399 or 400 BCE.
Socrates: tried, found guilty and sentenced to death in 399 BCE.
Diagoras of Melos (fled death)[8]
Aristotle (fled before trial)
Theophrastus
Phryne (acquitted)
Protagoras (sentenced to death or exile)[9]
Diopeithes
Ninos
Demades (fined)
신성모독 아세베이아 로 고소당한 자들 목록이야. 어큇티드 무죄고. 이건 유죄면 사형이여 대부분. 다들 도망가. 도망 보내는거고. 아낙사고라스 는 소크라테스의 자연과학 스승이여. 자연과학자가 신성 모독 이라고 고소당한겨. 이사람은 이때 정치적으로 몰린 페리클레스 친구 란 정치적이유고. 소크라테스 변론에 나오는 당대 신선한 사고방식이라며 젊은애들 흔히 읽는거고 내 생각이 아낙사고라스 이야기라며 고소당할 이유 없담시.
로마 때 위기의 삼세기 부터 로마신 모욕이라며 그리스도 탄압이 시작되는거고. 그리스도가 권력 잡으면서는 이단사냥을 하는겨. 아세베이아 는 사라지고 헤러시 라는 이름으로. 초기엔 귀여운겨. 아리우스 가 삼위일체 부정한다고 콘스대제가 유배보내곤 다시 불러들여. 아리우스는 무죄로 죽은겨 돌아와서. 콘스탄틴대제가 이다음해에 죽어. 쟤들의 대원수 아리안이즘 의 아리우스들이 그래서 다시 권력을 잡기도 하거든. 죽이진 않어 저땐. 저게 시간이 지나면서 민란과 엮이면서 험해지고, 이게 서쪽으로 와서 카타르에 발도 로 오면 수십만 죽이는게 예사가 되어버린겨.
저런 이단 규정짓은 없던겨 고대에. 기원전엔. 기원전 사람들은 한편으론 마음품이 초울트라넉넉이여 저것만 보면.
이단 규정해서 죽이는 짓들이 인간사의 필요조건 인듯 해.
이씨조선은 오직 상대 이단 규정 찢어죽이기 오백년 역사였고. 이론도 없고 토론도 없고 별 킹 뒤진걸 어떤 의례로 제정체를 머로 규정해서 상복을 몇년 입니 마니 로 적폐이단 놀이 하는거고. 여긴 오백년간 적폐놀이하면서도 전혀 생각확장도 없고 오히려 더 잔인해져. 구한말 헨리 랜더가 보는 광경. 어떻게 대낮광장 찢어죽이는 곳에 구경하는 사람들 표정이 업다 애들도 본다 아무런 감정이 없나 이들은.
이 조선 인간들이란게 정말 괴기해진겨
그래서 고대소설이든 신소설이든, 소위 사악캐릭들에게 전혀 감정이입이 안돼 지금보면. 정말 사람죽이는게 아무런 감정이 없어. 조선 사악캐릭들은 모두 싸이코패스여 저게
난. 그래서 저 민족애들의 저 미개한 지성에 감정 수준이 이해가 돼. 조구기여 해대며 차 딲아 주잖니. 우리가 조구기여 해주잖니 거리에서. 돈 주고 책사보고. 인간성 자체가 말살되었다기 보단 저게 이씨 조선 에서 전혀 진화가 안된거지 인간 영혼이. 그타고 불쌍히 여길건 없겄지. 곧 쟤들의 구심력으로 어찌할수없이 북조선과 하나되서 중국몽과 하나되는 쟤들만의 이상향, 상대 죽이는 대학살 의 시대가 오고 완벽하게 이곳은 몰살되고 신인류의 시대가 올테지만.
아낙사고라스 의 아세베이아 가 1900년 만에 재현되는게 코페르니쿠스 의 태양중심설 이단 이야기야. 보르도는 자연과학 이단으로 죽은게 아냐.
아낙사고라스 의 재현은 갈릴레오 야
아낙사고라스는 망명을 간거지만, 갈릴레오는 가택연금 당한겨. 죄명도 이단이 너무나 의심됨 이지 이단은 아녀. 이단이면 사형이야.
아낙사고라스는 딱히 아세베이아 라고 찍히기가 애매해. 걍 그따위 그리스신들 없어 인간사 개입하는 의인화된 신없어 가서 비는짓 니들이나해.
코페르니쿠스 에 갈릴레오 는 저런 이단 이 아냐. 이들은 아주 독실한 로마카톨릭이야. 이들은 너무나 진지하게 신을 믿는 사람들이야. 자연과학자 만이 신을 제대로 그나마 믿는겨. 문꽈애들과의 믿음이 달러 이꽈와는. 어설픈 앎 의 생체만이 나이얼리즘 이니 에이띠스트 니 해대는거거든.
코페르니쿠스는 성서와 자기이야기가 언뜻 부딪히는 게 불편한겨 이걸로 논쟁하는게 싫은거고.
성서를 자연과학시선으로 봐선 안된다 가 칼뱅의 주장이야 당시. 이걸 그대로 주장하는게 갈릴레오 야. 갈릴레오는 이 입장으로 메디치의 크리스티나 부인에게 편지를 쓴겨. 그러나 이건 칼뱅 논조고 어 저쉑 프로테스탄트여? 하면서 갈릴레오는 이 주장도 해선 안되는겨. 그래서 고소당한 연도 이후인 1616년부터 코페르니쿠스는 내 대갈에 없다 가 이사람 변론문장인겨.
성서와의 부딪히는 부분. 성서를 어드래 해석해서 볼것인가 가 어캄머데이션 이란건데 장 칼뱅이 퍼뜨린
일단 접자
'세계史' 카테고리의 다른 글
429. 독타 이그노란티아 ·조반니 피코 (2) | 2021.07.28 |
---|---|
428. 어캄머데이션 Accommodation (4) | 2021.07.26 |
426. 코페르니쿠스 3. 오브젝티브 수학의 시작 (2) | 2021.07.24 |
425. 코페르니쿠스 2. "free minds and free souls" (0) | 2021.07.24 |
424.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3) | 2021.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