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ZReaCpehcV4

https://youtu.be/8BFwHR2Y7jU

 

 

Nicolaus Copernicus (/koʊˈpɜːrnɪkəs, kə-/;[2][3][4] Polish: Mikołaj Kopernik;[b] German: Niclas Koppernigk, modern: Nikolaus Kopernikus; 19 February 1473 – 24 May 1543) was a Renaissance polymath, active as a mathematician, astronomer, and Catholic canon, who formulated a model of the universe that placed the Sun rather than Earth at its center. In all likelihood, Copernicus developed his model independently of Aristarchus of Samos, an ancient Greek astronomer who had formulated such a model some eighteen centuries earlier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1473-1543. 나이 70에 죽은거고, 태양중심설의 논문은 죽는 해 에 첫 인쇄된겨. 1543년에. 그런데 이 전 버전의 책자를 이미 썼어. 1514년 즈음에. 즉 나이 40에 이미 썼고, 이걸 본 교황의 비서 가 교황과 주교들앞에서 강의도 한거야. 당시 아무 문제도 없던거고, 오히려 로마카톨릭에서 반겼어 저 태양중심설을. 그리고 30년 지나서 죽을때 정식 논문을 발표한거고, 코페르니쿠스 가 직접 쓴 원서 가 전해져 이게.

The Commentariolus (Little Commentary) is Nicolaus Copernicus's brief outline of an early version of his revolutionary heliocentric theory of the universe.[1] After further long development of his theory, Copernicus published the mature version in 1543 in his landmark work,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 (On the Revolutions of the Heavenly Spheres).
Copernicus wrote the Commentariolus in Latin by 1514 and circulated copies to his friends and colleagues

코멘타리올루스, 작은 코멘터리. 이게 1514년에 친구들과 학계 에 돌리던 개략적 태양중심설 글이고, 이걸 30년 동안 보완해서 낸거야. 이 최종 논문의 제목이 , 하늘 천구들의 레볼루션들 에 대하여. 여기서 레볼루션 이란게 혁명 이딴게 아니라, 도는겨 빙빙. 레 볼로 쎄게 도는겨.

From Middle English Nicholas, from Old French Nicholas, from Latin Nīcolāus, from Ancient Greek Νικόλαος (Nikólaos), from νίκη (níkē, “victory”) + λαός (laós, “people”)

니콜라우스, 가 그리스어 니콜라오스, 니케 라오스. 승리의 사람들이고, 라틴어 니콜라우스. 가 영어로 니콜라스 가서, 러시아 로 가서 니콜라이 하는겨.

The surname Kopernik, Copernik, Koppernigk, in various spellings, is recorded in Kraków from c. 1350, apparently given to people from the village of Koperniki (prior to 1845 rendered Kopernik, Copernik, Copirnik, and Koppirnik) in the Duchy of Nysa, 10 km south of Nysa, and now 10 km north of the Polish-Czech border. Nicolaus Copernicus' great-grandfather is recorded as having received citizenship in Kraków in 1386. The toponym Kopernik (modern Koperniki) has been variously tied to the Polish word for "dill" (koper) and the German word for "copper" (Kupfer).[q] The suffix -nik (or plural, -niki) denotes a Slavic and Polish agent noun.

코페르니쿠스, 가 성인데, 스펠링 이란건, 우리식 철자, 워드 의 정확한 레터 이야기고, 워드 자체가 다른겨. 지금 정확하게 Copernicus. 이사람이 라틴어로 말년에 저렇게 표기를 했어. 코페르니키 라는 마을이 있어 여기가 니사 의 왼쪽인데, 지류가 수디티즈 산맥 위의 오데르강 상류이고. 증조할배가 여기가 살다가 크라크푸 로 가서 시민권을 받은겨. 땅을 성으로 짓는게 흔한거고, 코페르니쿠스 의 아빠도 크라크푸 출신이고.

코페르니쿠스 가 카퍼 copper 여. pp 를 썼다가 p 를 하나만 쓴겨 이름에서. 코페르니키 가 수디티즈 산맥 이고 역시나 광산이여. Erzgebirge 에르츠비르거 가 성요하킴 골짜기 있는 광산 탈러 에 달러 나오는거잖니. 이 에르츠비르거 가 수디티즈 가 꺾여 내려가 작센과 경계하는 보헤미아 긴 산맥이고.

코페르니키 란 마을은 실레시아 여. 수디티즈 에 있는, 여긴 오데르 강이 죽 산줄기 따라 흘러서 주욱 서북에 북 가서 독일과 경계하는거고, 이 실레시아 란 곳은, 보헤미아 땅이여. 보헤미아 였다가, 프리드리히2세 가 최종7년전쟁으로 갖고 와서 프로이센 에 독일땅인겨 이건. 크라크푸 는, 이 오른쪽이야. 여긴 카르파티안 산맥 끝줄기고 여기선 비스와 강이 흘러서 바르샤바 에 단치히 로 가는겨. 이 크라크푸 는 시작부터 폴란드여. 실레시아 오른쪽이지만 여긴 폴란드여. 이게 삼분할 할때 오스트리아 로 간거고.

이사람이 1473-1543 인데. 당시 킹이

Sigismund I the Old (Polish: Zygmunt I Stary, Lithuanian: Žygimantas II Senasis; 1 January 1467 – 1 April 1548) was King of Poland and Grand Duke of Lithuania from 1506 until his death in 1548.

지기스문트 1세. 폴리쉬 지크문트. 폴란드 르네상스 를 15세기말에서 16세기말로 보는데. 이사람이 다지고 자식 지크문트2세 가 르네상스여. 이 지크문트 가 얀 자모이스키 젊을때 스카웃하는거고. 지크문트2세 가 죽고, 여동생들이 안나 와 캐서린 이고, 안나 가 트렌실베니아 스티븐바토리 와 결혼해서 얘가 킹하고, 죽고, 막내 캐서린이 스위든에서 지크문트3세 바싸를 낳고 얘가 폴란드 꿰차면서 끝의 시작을 가는건데.

코페르니쿠스 가, 지크문트1세 와 동시대 인겨. 지크문트 가 1506-48 재임일때, 코페르니쿠스 는 유럽에서 공부를 다 끝내고, 폴란드에서 생활하면서 천동설 아이디어 쓰고, 30년 더 작업하고, 한편으론 정치 자문도 하고 정치도 직접 해.

In the spring of 1541, Duke Albert

코페르니쿠스 를 프러시아 공작 알베르트 가 1541년, 죽기2년전 에 자기 코트 로 오라 하거든. 알베르트 공작이, 튜튼 기사단장 이 된게 1510년 이고, 15년 후인 1525년 에 삼촌 지크문트1세 에게 정식으로 작위를 받으면서 루터 로 바꾸걸랑. 이때가 코페르니쿠스 52세 때여.

The Thirteen Years' War (German: Dreizehnjähriger Krieg; Polish: wojna trzynastoletnia), also called the War of the Cities, was a conflict fought in 1454–1466 between the Prussian Confederation, allied with the Crown of the Kingdom of Poland, and the State of the Teutonic Order.

튜튼기사단 이 레반트 십자군 아코함락 패하고, 이들이 프러시아 쪽으로 오거든, 이전에 리보니아 십자군에 이어 이 아래 프러시안 그리스도 한담시롱. 그러면서 2백년 있으면서 폴란드 랑 싸우는겨. 폴란드 가 야기에워 에 사촌 비타우타스 있는 서기 1400년 지나는 때에 튜튼이 기우는겨. 저 이후도 백년 동안 싸우는겨 다 기운 튜튼이 폴란드랑. 중간에 싸우는게 13년 전쟁이야. 이때 코페르니쿠스 의 아빠가 폴란트 킹 편이야. 코페르니쿠스 집안은 엄마아빠가 졸 부자여. 전쟁자금 대는.


코페르니쿠스 가 18세 에 크라크푸 대학 을 시작으로, 볼로냐 대학, 파도바 대학, 페라라 대학. 이탈리아에서 7년 다니는겨. 학교생활 12년. 크라크푸 대학 이 라인강 동쪽에서 프라하 대학 다음 두번째야. 이 폴란드 참 웃긴 곳이야. 한편으론 라인강 동쪽은 너무나 미개한거고. 정말 이 라인강 동쪽 게르만은 너무너무 늦어. 그래서 너무나 미개해서 한편으론, 이런땅에 칼 마르크스, 에 니체 같은 허섭한 애들이 나온겨. 독일 관념철학은, 후져. 프랑스 끝물 쳐 먹는게 독일일 뿐이고, 철학 마저, 영국에 안되는겨 이게.

Having settled permanently at Frombork, where he would reside to the end of his life, with interruptions in 1516–19 and 1520–21, Copernicus found himself at the Warmia chapter's economic and administrative center, which was also one of Warmia's two chief centers of political life.

코페르니쿠스 가, 크라크푸대학 4년에 이탈리아 7년 지내고, 다시 돌아와서, 30대 부터 정착하는곳이 프롬보르크. 야. 코페르니쿠스 는 여기서 죽어. 이 프롬보르크 가, 아래가 로얄프러시아 이고, 위가 프러시아 더치. 공작령 이야. 여기가 바르미아 Warmia 라는 주교령에 자치지역이었어. 해변이 프롬보르크 야. 이게 뒤에 더치 로 폴란드 킹에 들어가서 삼분할 될때 프러시아 로 가는겨.

코페르니쿠스 가 이 바르미아 의 프롬보르크 에 있으면서, 프러시아 공작령 에 아래 로얄프러시아 사이에 치이는겨. 알베르트 의 공작령은 1525년부터고, 이사람이 엄마가 소피아 고 소피아 는 지크문트 의 누나여. 루터 로 전향하면서 킹에 하미지를 한겨. 즉 항복을 한겨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낸겨 이건. 13년전쟁도 패했고. 이전의 야기에워 때 아주 잔인하게 패했거든. 야기에워 비타우타스 이후 1백년 만에야 항복을 한겨 튜튼 애들이. 버티는 애들이 카톨릭이름으로 걍 로얄프러시아 로 남은겨 얘들은. 튜튼 기사단 이름을 절대 못버려. 아주 웃긴게 이 로얄프러시아 라는 튜튼 애들이야. 폴란드 킹에 복종하는것도 아니면서 폴란드 땅에 버티는 애들이야. 얘들이 프리드리히2세 가 삼분할할때 서야 편입되는겨 이땐 프러시아 킹덤이고.

그래서, 코페르니쿠스 가 바르미아 의 저기 있을때, 위의 알베르트 가 너 내 코트에 들어오라는겨. 코페르니쿠스 에게는, 아빠가 친 폴란드여. 13년전쟁때 튜튼애들과 전쟁때도 반튜튼이야. 코페르니쿠스 에게는, 아래 의 로얄프러시안 보다는, 위의 듀크 프러시안 이 더 친숙해. 친 폴란드킹 이란 면에서. 그러나, 코페르니쿠스 는 카톨릭이야. 저때 많이들 프로테스탄트로 바꾸거든. 코페르니쿠스 는 안바꿔. 그래서 위도 아래도 안 가는겨.

Toruń (UK: /ˈtɒrʊnjə/,[2] US: /ˈtɔːruːn(jə), ˈtoʊruːn/,[3][4][5] Polish: [ˈtɔruj̃] German: Thorn) is a historical city on the Vistula River in north-central Poland and a UNESCO World Heritage Site.
From 1264 until 1411, Toruń was part of the Hanseatic League

코페르니쿠스 가 태어난곳이, 토루니. 비스와 강 이고 주욱 가면 단치히 여 . 여긴 1264년 부터 한자 리그 지역이었어. 약간 내륙이지만, 열린겨 여긴. 그만큼 자유롭고, 아빠가 크라크푸 에서 이리와서 엄마 가 여기 부잣집이야. 그리고 아빠가 10세일때 죽은겨. 엄마는 청년되서 죽지만, 교육과 후원을 외삼촌 이 전적으로 해.

Lucas Watzenrode the Younger (sometimes Watzelrode and Waisselrod; German: Lucas Watzenrode der Jüngere; Polish: Łukasz Watzenrode; 30 October 1447 – 29 March 1512) was Prince-Bishop of Warmia (Ermeland) and patron to his nephew, astronomer Nicolaus Copernicus.

독어 루카스 밧젠로드 영거, 올더 가 이사람 아빠고. 폴리쉬 우카스 밧젠로드. 이사람이 바르미아 주교 여. 집도 부자고. 크라크푸 대학에 쾰른 에 볼로냐 대학 공부한 인간이고. 코페르니쿠스 는 이 외삼촌 이 만든겨. 이 외삼촌 을 이어서 주교 선거 에도 참여를 하는데, 주교가 되고자 하는게 아니라, 당시 후보가 네명 아니면 선거불가 야, 선거진행을 위해 후보나선거고.

Albert Brudzewski,[1] also Albert Blar (of Brudzewo),[2][3] Albert of Brudzewo or Wojciech Brudzewski (in Latin, Albertus de Brudzewo; c.1445–c.1497) was a Polish astronomer, mathematician, philosopher and diplomat.

알버트 브루제프스키. 브르제보 의 알버트. 보이체흐 브루제프스키.

이사람이 크라크푸 대학교의 교수야. 코페르니쿠스 의 선생이었고. 코페르니쿠스 는 또한 이 사람이 없었으면, 코페르니쿠스 는 없어.

Albert is remembered as a remarkable teacher. At the Kraków Academy he impressed students by his extraordinary knowledge of literature, and taught mathematics and astronomy. When in 1490 he became a bachelor of theology, he also lectured on Aristotle's philosophy. These lectures were attended by Nicolaus Copernicus, who enrolled at the Academy in 1491. A major accomplishment of Albert's was his modernization of the teaching of astronomy by introducing the most up-to-date texts.
Albert was well versed in Georg von Peuerbach's Theory of the Planets and Regiomontanus' Astronomical Tables. He was skeptical of the geocentric system. He was the first to state that the Moon moves in an ellipse and always shows its same side to the Earth.[5]

알버트 는, 문학 에도 상당했고, 수학과 천문학 들 가르치고, 신학 학사 도 따고, 여기선 그리스어에 히브리어 를 해야 줘. 아리스토텔레스 도 강의하고. 알버트 의 주요 성과 는, 코페르니쿠스 가 최신으로 업그레이드 하면서 마더나이제이션 했다.

알버트 는, 게오르크 폰 포이어바흐 의 지구중심설 에 깊이 알아. 포이어바흐 의 지구중심설 이란건 프톨레마이오스 의 것을 저시대 언어로 푼겨 가장 업그레이드로. 이걸 알버트 는 부정해 회의적이야. 달이 일립스 로 움직이는걸 처음 말한 사람이고, 지구 를 향해 항상 같은 면만 보인다 고 말한,

일립스, 니, 데퍼런트 니, 에피사이클 이니, 이게 모두, 프톨레마이오스 의 것 에서 나오는 용어인데.

https://www.youtube.com/watch?v=EpSy0Lkm3zM

ptolemy's model of the universe

아주 환상적인 그림이야 저게. 프톨레마이오스 의 지구중심설 모델 을 영상화 한건데.

the epicycle (from Ancient Greek: ἐπίκυκλος, literally upon the circle, meaning circle moving on another circle[1]) was a geometric model used to explain the variations in speed and direction of the apparent motion of the Moon, Sun, and planets.

the elliptical orbit of the Moon

엘립스 라는게, 닫힌 원 의 궤도 를 도는겨. 타원 이든 원이든, 그 선 위를 그대로 타는게 엘립스 야.

저 영상에서, 프톨레마이오스 는, 두 개가 엘립스 로 돌아. 맨 안쪽 작은 원의 행성이, 달 이야. 그다음 노란 행성 이 태양 이야. 이 둘은 엘립스 로 돌아.

나머지들은, 에피싸이클로 도는겨. 에피 가 들러붙은거고, 퀴클로스 가 원이야. 이 에피사이클 따라서 저렇게 꽈배기 처럼 꼬여서 돌아, 나머지 행성들은.

저렇게 도는 주변 행성들을, 플래닛 이라 고 작명한겨 프톨레마이오스 가.

From Middle English planete, from Old French planete, from Latin planeta, planetes, from Ancient Greek πλανήτης (planḗtēs, wanderer) (ellipsis of πλάνητες ἀστέρες (plánētes astéres, “wandering stars”)), from Ancient Greek πλανάω (planáō, wander about, stray),

떠도는겨. 비비 꽈서 떠도는거 같잖냐.

가운데가 지구여. 안움직여.

다음 엘립스 원 도는게 달

다음 꽈배기 다섯 도는 수성. 다음 두 꽈배기 금성. 그다음 엘립스 원 노랑 태양.

그래서, 달과 태양 은 플래닛 이 아냐 저기선. 플래닛은 비비 꽈며 떠도는 듯 보이는 나머지들이야


저 천구도 의 정가운데 가 지구가 아냐. 지구는 중심에서 떨어진겨. 저기서 중심을 eccentric 엑센트릭 이라해, ec 낫. 센터가 아닌겨. 왜? 센터 는 지구 니까. 말을 억지로 만든겨 이게 지구 중심설 이라서. 천동설 은 잘못된 작명이야. 일본말이야 이건.

데퍼런트 deferent 란건, 에피싸이클 이라는 저 원이 도는 가운데 궤도 여. 데퍼런트는 엑센트릭이 중심인 원이야. 에퀀트 equant 는 투씨싸이클 이란 아랍애가 보완한 프톨레마이오스 의 개념이고 엑센트릭을 가운데 둔 지구 맞은편 대척점 이고. 프톨레마이오스 모델은 저 데퍼런트, 에피싸이클, 에퀀트 가 중심인거고

여하튼 저 영상이 프톨레마이오스 의 지구중심설을 제대로 보여주는데

저걸 뒤집은게, 코페르니쿠스 의 수학 이야.

Philolaus (/ˌfɪləˈleɪəs/; Ancient Greek: Φιλόλαος, Philólaos; c.  470 – c.  385 BC)

Heraclides Ponticus (Greek: Ἡρακλείδης ὁ Ποντικός Herakleides; c. 390 BC – c. 310 BC)

Aristarchus of Samos (/ˌærəˈstɑːrkəs/; Greek: Ἀρίσταρχος ὁ Σάμιος, Aristarkhos ho Samios; c. 310 – c. 230 BC)

필롤라오스, 헤라클리데스 폰티코스, 사모스 의 아리스타르코스. 지구가 움직인다는 주장이고, 필롤라오스 는 중심에 불 이 있지만 그 불이 태양은 아냐. 태양도 지구처럼 중심의불 주위를 돌아. 수학적으로 지구의 움직임을 설명한 이는 사모스 의 아리스타르코스 로 보는데 이 원고는 사라지고 레퍼런스만 남았어. 이사람은 피타고라스파로 보고 이 피타고라스는 지구가 도는겨

플라톤 티마이오스도 지구중심이고 아리스토텔레스 가 도장찍으면서 지구가 안 움직이고 지구중심이야. 아리스토틀에겐 검증 가능해야해. 수학적 이론 은 관념일 뿐이야.

아리스토텔레스 와 수학 의 관계가 이게 졸 애매한겨. 시대마다 이 두 관계를 보는게 달라. 요즘와서는 아리스토가 수학을 수학철학 관점에서 수학을 바라보다 정도여. 스콜라 때 부활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의 수학은 유명론 입장의 관념론 수준이여. 리얼한 앱스트랙트로 안봐 수학을. 그래서 하물며 코페르니쿠스 때도 수학은 유명론 차원의 허구적 개념놀이여. 검증불가한 경험적 도구로 수학을 바라보지 않아. 이당시 수학이란게 단지 지식인들의 놀이야 이건. 돈 걸고 공식 푸는겨. 넘어가고 길어지니까.

지구자전 의 문제 도 같은겨 이건.

지구중심인 채 자전은 따로 하겄니? 천만에.

그래서 태양중심 이론이 자리잡으면서, 지구자전도 같이 허가 를 받는거야.

아리스토틀 이후로 지구중심이 확실히 잡히고 이어 서기 2세기에 프톨레마이오스 가 에퀀트 에피싸이클 데퍼런트 로 지구중심모형을 완벽한듯 만들고 이걸 부정하는 이론을 못만든겨. 저게 보기엔 완벽한듯 멋져보이잖냐

Beginning in the 10th century, a tradition criticizing Ptolemy developed within Islamic astronomy, which climaxed with Ibn al-Haytham of Basra's Al-Shukūk 'alā Baṭalamiyūs ("Doubts Concerning Ptolemy")

이슬람이 황금시대로 고대그리스 부활하면서, 10세기에 프톨레마이오스를 의심하기 시작해. 바스라의 이븐 알 하이삼. 일명, 앨 해즌. 지구가 움직인다 에 태양이 중심인듯 은 이슬람에서 우수수수 나온겨

Nur ad-Din al-Bitruji (also spelled Nur al-Din Ibn Ishaq al-Betrugi and Abu Ishâk ibn al-Bitrogi) (known in the West by the Latinized name of Alpetragius) (died c. 1204) was an Iberian-Arab[2] astronomer and a Qadi in al-Andalus

누르 앗딘 알비트루지. 이슬람 최초 반프톨레마이오스 로 봐. 12세기 사람 이야. 웨스턴은 이슬람의 힘으로 고대그리스가 12세기에 번역되는거고 동시에 웨스턴에 이슬람 학자들 생각도 같이 번역이 되어서 들어와.

즉, 이미 15세기되면, 지구중심설 이란건 의심 대상 인겨. 태양중심 의견이 이게 특별하거나 놀라운게 아냐. 이슬람 학자들 을 통해 유럽에 흔한겨 이 생각은. 그러나 이걸 독자적으로 설명해주는 띠오리가 안 나왔을 뿐이야

Mathematical techniques developed in the 13th to 14th centuries by Mo'ayyeduddin al-Urdi, Nasir al-Din al-Tusi, and Ibn al-Shatir for geocentric models of planetary motions closely resemble some of those used later by Copernicus in his heliocentric models

13세기에서 14세기 에 수학적 기술 들이 발전했다, 알우르디, 알투씨, 알샤티르 에 의해. 이들은 프톨레마이오스 를 비판하는 쪽의, 지구중심으로 한 행성 운동 을 주장. 이중 일부는 코페르니쿠스와 유사.

However, no likely candidate for this conjectured work has yet come to light, and other scholars have argued that Copernicus could well have developed these ideas independently of the late Islamic tradition.[108] Nevertheless, Copernicus cited some of the Islamic astronomers whose theories and observations he used in De Revolutionibus, namely al-Battani, Thabit ibn Qurra, al-Zarqali, Averroes, and al-Bitruji

코페르니쿠스 는 이슬람전통 없이 독자적으로도 이론을 잘 전개했었을수도. 그러나 이사람은 다 밝혀 자기논문에서, 알바타니, 타빗이븐쿠라, 이 둘은 9세기, 알자칼리 10세기 지나는 이. 아베로이즈 그 유메이한 에 저 알빚드루지. 들을 다 인용을 하고  활용하면서  자기만의 이론을 만들었다

여하튼 흔한겨. 웨스턴에서, 카톨릭 중심으로 이슬람에서 저런 이야기들 나오니까 우리도 저거 드니내봐야한다, 한겨. 코페르니쿠스 가 최종논문을 바치는 헌정사가  교황 파울루스 3세여. 카를 5세한테 로마약탈 당하고 프로테스탄트 루터 등장하고 카톨릭 정신차려 카운터 리포메이션 시작하는 교황이여. 제수이트 맹근 교황이구. 이 사람 이, 기존 지구중심설 무식함 태양중심설 임 하는 논문 후원자여 ㅋㅋ. 이미 코멘터리로 돈 소책자를 교황과 주교들이 강의도 들어 비서한테. 너무 흥미롭다며 교황님이 좋아한다 편지도 받아.

가장 저 주장을 증오 혐오 하는게 누구여? 마르틴 루터 에 장 칼뱅 이여. 정말  세상에서 가장 개무식하고 머가튼 두놈. 아  이 두놈에 저 장로교 존녹스 이 세 놈만 생가하면 욕 치밀어오르는데 난.

저게 일단 먼 이야긴지도 몰라. 당시 관심도 없어. 1543년 이고. 30년전인 1514년에 돌때. 1517 루터 등장에 농민전쟁에 이탈리안전쟁 중후반전에 로마약탈에. 바빠요 유럽이 ㅋㅋ

저게, 나중에야 문제가 되는겨.

https://youtu.be/0jHsq36_NTU


태양계는 이쁘게 움직이지 않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