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a Karolina Zofia Felicja Leszczyńska (Polish: [ˈmarja lɛʂˈtʂɨj̃ska]; 23 June 1703 – 24 June 1768), also known as Marie Leczinska

마리아 레스체이스카, 불어로 마리 레장스카. 아빠가 폴란드 킹 잠깐 하고 내려올때 나이 6세에, 남의땅에서 16년 산거야. 그리고 22세에 일곱살 어린 루이15세 가 15세일때 결혼한겨. 말이 킹의딸이지, 정말 별볼일 없거든. 폴란드 라는 나라도 프랑스에서는 걍 원시인이여 ㅋㅋㅋ. 이 프랑스 인간들이, 이런 맛이 있어 진짜. 이 프랜치 들이 사람 품이 진짜 넓어, 얘들이 잉글리쉬 의 현실감각이 절대적으로 부족한거지, 인간적인 매력은 정말 최고야. 이런 품때문에, 지금 프랑스 가 벼라별 떨거지들의 인종 집합소야. 저것들이 저 본래의 프랑스의 멋, 품 을 악용 하는겨 저건. 갈리안 이 카이사르 이후 배운 로마 가 4백년이 앞서 게르만보다. 이탈리아 도 가장 먼저 갖고 오고. 얘들이 정말 최고 여야 해. 프랑스 는 현대 가 중세 를 버리면서 쓰레기가 된겨. 프랑스 1789 라는건 정말 끔찍한거야 이런 면에서.

프랑스 최근의 그레이트 한 인간 투표 에서, 모두 근현대 인간들이거든, 사람들이 전부 모르는겨 프랑스 역사를. 얘들은 대가리 지식인 들 부터 중세를 지운거거든. 빅토르 위고 는 후져. 이런 애들 떠받드는게 지금 프랑스고. 아 레미제라블 정말 너무나 유치해서 몸서리쳐져 저거 ㅋㅋㅋ. 어떻게 저런 유치한 사고 를 가진 애가 여전히 쟤들의 우상이냐고.

아무리 정치적으로 타협하고 후계생산 이란 이유라지만, 정말 프랑스 는 멋진거야, 저런 폴란드 여자를 퀸 으로 만든다는건. 이 여자도 그런 인품 을 또한 키운거고 그 16년 동안 남의 땅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말이야. 타고난 품성이라고 봐야해 이건. 아빠는 맨날 욕처먹은거걸랑 마누라에 늙은엄마한테,  괜히 킹 하고 이게 먼 짓이여 한겨. 이런 아빠를 꼬마 마리 가 항상 말상대 해준겨 ㅋㅋㅋ. 그타고 여자가 이쁜건 아니걸랑. 아 시간여행을 한다면 나는 이런 사람 꼭 좀 가서 보고프거든 ㅋㅋㅋ.

나중에 당연히, 신랑한테 버림 비슷하게 받아, 무시받을건 당연해. 그래도 다 받아들이는거지. 그래도 자식을 열명 낳았어. 십년 은 신랑이 옆에 붙어 있었던겨 그래도. 머 아쉬울거 없어 이 여자는.

Louis, Dauphin of France[1] (Louis Ferdinand; 4 September 1729 – 20 December 1765) was the elder and only surviving son of King Louis XV of France and his wife, Queen Marie Leszczyńska

맏아들이, 도팽 이자 유일하게 생존한 아들. 루이. 대게들 반이상은 자식들은 죽어 어릴때 저당시. 이사람이, 36세 에 죽어 1765년. 첫 결혼이 스페인 필립5세의 딸인데, 첫딸낳고 바로 죽어, 이딸도 죽고. 폴란드 마리 는 이 며느리 를 아꼈거든. 두번째 로 들어오는 여자가,

Maria Josepha Karolina Eleonore Franziska Xaveria of Saxony (4 November 1731 – 13 March 1767) was Dauphine of France through her marriage to Louis, the son and heir of Louis XV. Marie Josèphe was the mother of three kings of France, including Louis XVI, as well as Madame Élisabeth.

작센 의 마리아 조세파. 여여자의 자식들이 루이 16세, 18세, 샤를10세 킹들을 하는거야. 루이16세 가 나이 40에 목짤려 죽는거고, 엘리자벳 이 열살아래 여동생이야 유일한. 루이 16세 목짜르고, 부인 앙트와네트 도 일년 다 되서 목짜르고, 그다음 이 여동생 엘리자벳 도 다른 이들과 짜르는겨. 아 이들의 1789 프랑스 대학살 은 정말  드러운겨 이게. 야 저런걸 테레비에서 위대한 혁명 해대면서 ㅋㅋㅋ. 정말 인민 들, 민주 해대며 대학살 즐기는 이들, 참 더러운게 저것들이 지들이 정의 라는겨. 인류 역사상 가장 사악한 들이, 지들이 정의 래 ㅋㅋㅋ. 꾸메 로짱님이 처으므로나와써유 ㅋㅋㅋㅋ. 그래 어여어여 다들 다 대학살을 시켜라. 야  저 정말 머리에 하나도 든게 없는 저런 이가 쟤들에겐 위대한 지식인이야 ㅋㅋㅋ. 기가막힌거야 이 후진 땅 의 지쩍 수준은.

저여자 이름에 xaveria 자베리아 여 독어로, 이 이름 시작은 스페니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야 로욜라의 이그나시오 와 함께 제수이트 예수회 만든. 일본에 가는 그 하비에르. 영어로 자비어 여.

이 여자는 작센 의 딸이고, 그 작센 선제후 에 폴란드 킹, 아우구스투스3세 의 딸이야. 폴란드 마리 가 아빠랑 쫓겨날때의 2세 의 손녀인겨. 폴란드 마리 에겐 웬수의 딸인겨 ㅋㅋㅋ.

Duchy of Saxony, Herzogtum Sachsen, Duché de Saxe. 작센 이란건 독일어여. 영어는 쌕쓰니. 야. 레터 가 전혀 달라 이게. 프랜취 로는 싹쓰 여.

Allemagne, 프랑스인간들은, 독일 을 게르만 저머니 라고 안해. 알레마뉴 라고 해. 엘레마니 족을 따서. 독일은 불어로 또한 알레마뉴 공화국이여.

하튼간에, 폴란드 마리, 가 자기 며느리 오는 작센 딸이 너무나 싫은겨. 그런데 마리 는 아무런 힘이 없어 ㅋㅋㅋ. 아 폴란드 마리 진짜 너무 정 이 가. 레이디 코트에서 항상 만날거거든 둘이. 아주 못되게 구는겨 시어머니가 저 며느리를. 정말 집안의 웬수고  마리 는 16년 을 떠돌이 생활한겨 저 집안 때문에 어린 나날을.

Her dislike of the match was known but ignored, as she had no dynastic connections.[4] Initially, this issue caused some friction between the queen and her new daughter-in-law. However, the friction was soon overcome, reportedly because Marie-Josèphe was an admirer of the Queen's father. In honour of him, several of the queen's grandsons received the name Stanislaus (or Stanislas in French) at their christening.

그런데, 마리-죠셉 이, 그 스타인스와프 를 존경했거든. 마리의 아빠를. 폴란드 마리 는 기분이 좋은거지. 바로 극복이 되었다 그 감정은. 저 며느리는 자기 자식이름으로 스타인스와프 의 불어 이름을 두세명은 받은겨 세례식 때. 이 며느리 는 1767년 36세 에 죽고, 폴란드 마리는 1768년 65세 에 죽어.

Queen Marie eventually did manage to win the respect of the court nobility by her strict adherence to court etiquette, which made her opinion at least formally important. In 1747, Voltaire was banished from the royal court through her influence.

볼테르 가 더 연상인데 마리 가 코트에서 추방. 이 볼테르가 50 넘어서 카드치다가 얘 애인이 돈을잃어 마리 한테. 영어로 애인한테 말해 퀸이 사기질했다고. 연애편지로도 킹의 연애껀을 말해. 마리 에겐 모욕이야. 볼테르도 마리 에겐 별거아냐.

볼테르는  후진애거든. 아 우리 폴란드 언니는 아신거지

She met the castrato Farinelli in 1737, and the young Mozart in 1764, whom she found very charming. During his visit to Versailles, she acted as an interpreter for her spouse and family who did not understand German. Her major contribution to life at Versailles was the weekly Polish choral concerts.

마리는 파르넬리도 만나. 모차르트 여덟살일때 야 만나고 좋아했다. 모차르트 왔을때 독어 통역해주다 루이가족이 독어를 몰라. 매주마다 폴란드 합창단 콘서트를 한겨. 타고난 폴리시 는 못버리는거지.

이여자는 프랑스 퀸들중 인기 좋아 평도 좋고. 박애 어쩌고 자선 저쩌고. 폴란드 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남긴겨


프랑스 가 이전에도 슬라브 여자가 퀸 으로 온적이 있어.

Anne of Kiev or Anna Yaroslavna[a] (c. 1030 – 1075) was a Rus' princess who became queen of France in 1051 upon marrying King Henry I. She ruled the kingdom as regent during the minority of their son Philip I from Henry's death in 1060 until her controversial marriage to Count Ralph IV of Valois. Anne founded the Abbey of St. Vincent at Senlis.

키예프 의 안. 안나 야로슬라브나. 야로슬라프 의 딸이고, 블라디미르 대제 의 손녀 여. 류릭 의 루쓰, 러시아 에서 온겨. 앙리1세 의 두번째 부인 으로. 앙리1세 가 위그카페 의 손자 고 아빠는 로베르2세 고. 정복왕 윌리엄이 조카고, 윌리엄이 어릴때부터 쫓길때 지원했다가 커서 플랑드르 와 결혼하고 승기잡으면서 척이 지는 사이가 되는. 이전 썰. 이 카페 시작이고 그래서 프랑스 의 절반은 러시아 핏줄이야 ㅋㅋㅋ. 이 여자 싸인이 지금 남아있고, 이 다음에 7백년 만에 슬라브 여자가 온겨 프랑스 에.


Statue d'Anne de Kiev érigée en 2005 à Senlis. Vue d'artiste par les sculpteurs ukrainiens Myhkolay et Valentyn Znoba. 와즈 Oise 의 쌍리스. 2005년에 세워진 키예프 의 안. 동상. 우크라이나 조각가들

이 안 Anne 관련된 신화가 많고 , 프랑스 에 증기 싸우나 를 갖고 온게 안 이라는 썰도 있고. 알수 없는거고. 


Marie Countess Walewska (née Łączyńska; Polish: Maria Walewska; 7 December 1786 – 11 December 1817) was a Polish noblewoman and a mistress of Emperor Napoleon I. In her later years she married count Philippe Antoine d'Ornano, an influential Napoleonic officer.

폴란드 과 프랑스 는 이 사이가 참 웃긴겨. 폴란드 에게 프랑스 는 너무나 가까운 나라여 마음으로. 폴란드는 나폴레옹을 좋아해. 아주.

마리아 발레프스카. 나폴레옹 이 1769년 생이고, 나폴레옹 이 황제 즉위 하고, 아우스터리츠 전투 승리하고, 1806년 에 신성로마제국을 해체하고, 라인동맹 을 만들어주셔 ㅋㅋㅋ. 그리고 폴란드 에 이해 말에 입성을 해서, 폴란드를 독립시켜주는겨. 이게 다음해부터의 바르샤바 공국 이야. 저게 모두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하면서 무효되는거고.

폴란드 에 들어올때, 만났던 여자가, 마리 발레프스카 여. 1806년. 이여자 20세 여. 이 전해에 결혼을 햇어. 부자 귀족 집안이었고, 나폴레옹 이 와야 하는데, 폴란드 인간들이 로비를 해야 하는겨.

In 1805 she married Athenasius count Colonna-Walewski, starosta of Warka district and a once-chamberlain to the last Polish king, Stanisław August Poniatowski. Walewski was a wealthy landowner, but was four times older than his young bride. Maria and Athenasius had one son, Antoni Rudolf Bazyli Colonna-Walewski, although it is believed by some historians that he was an illegitimate child, conceived shortly before Maria's marriage

마리아 가 나이 19세 에 결혼을 햇는데, 발레프스키 백작 인데, 이전 킹 집안에 집사 도 한 사람이고, 부유한 지주 야. 그런데 마리아 보다 네배 낳아  80 인겨 나이가? 이 마리아 집안도 부유한 귀족집안이었는데, 폴란드 분할 되면서 이 땅이 러시아로 넘어가고, 거지가 되서 저 집에 간듯한데.

Maria met Napoleon for the first time in 1806 in Błonie, or in Jabłonna.[3] According to Maria's own memoirs, she spoke briefly with the French emperor, but the meeting was inconclusive. However, Napoleon remembered her for her extraordinary beauty and requested to see her in Warsaw, intending to start an affair with her.

나폴레옹을 바르샤바 가는길인 브오니에, 또는 야브온나. 에서 처음 만났다. 마리아 자신의 회고에 의하면, 그녀는 프랑스 황제와 짧게 말했고, 나폴레옹이 그녀의 특이한 뷰티 를 기억해서, 바르샤바에서 보자고 했다.

They met again at a ball hosted by count Stanislaw Potocki in his Warsaw residence. Although Maria was initially reluctant to become Napoleon's mistress, she was convinced to do so by the Emperor's aide, General Géraud Duroc (Grand Marshal of the Palace) and a number of Polish aristocrats, who hoped that she could influence the emperor to support Poland in its struggle to regain independence from Prussia, the Habsburg Empire and the Russian Empire. In her memoirs, Maria maintained that she forced herself to get involved with Napoleon for purely patriotic reasons:

그들은 바르샤바의 스타인스와프 포토츠키 백작 주재의 무도회 에서 다시 만났다. 마리아 는 나폴레옹의 애인이 되는게 싫었으나, 황제의 참모, 황실 근위대장 지로드 뒤록, 그리고 많은 폴란드 고급귀족들에 의해 애인으로 확신되었다, 폴란드 귀족들은 그녀가 황제에게 영향을 주어서 폴란드 를 지원해서 프러시아 합스부르크 러시아 로부터 독립하도록 하게 해달라고. 그녀의 회상에서, 마리아는 주장했다 나폴레옹과 엮이는건, 순전히 애국적인 이유라고.

"The sacrifice was complete. It was all about harvesting fruit now, achieving this one single equivalence [convincing Napoleon to support Polish independence movement], which could excuse my debased position. This was the thought that possessed me. Ruling over my will it did not allow me to fall under the weight of my bad consciousness and sadness."

그 희생은 완벽했다. 모든것은 지금 열매를 거두고 있는 것에 관한건데, 이것 단 하나의 가치를 얻기, 나폴레옹이 폴란드의 독립운동을 지지하도록 하는것이었다.  그것이 나의 가치하락된 위치를 변명해줄수 있을게다. 이것은 나를 차지해버린 생각 이었다. 내 의지를 지배하면서, 그 생각은 내가 나의 나쁜의식이나슬픔의 무게에 짓눌리는걸 허락하지 않았다.

but her previous relationship with Napoleon ended. The Emperor planned to divorce Josephine and instead marry Marie Louise, daughter of the Austrian Emperor, and maintaining an affair with another woman seemed inappropriate. Her and her son's future were nevertheless assured by the grant of large land estates in the Kingdom of Naples.

나폴레옹이 조세핀과 이혼해야만 했고, 조세핀도 이미 마음 떠났고 애인이 있든 말든,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 의 딸 마리 루이즈 와 재혼하는게 1810년 이고, 이때까진 폴란드 여인과 지낸겨. 파리로 데려가고 집도 주고, 자식도 낳아. 이 자식은 역시나 뒤에 폴란드 독립 운동 하다가 러시아 군대 가기싫어서 프랑스로 도망가고 얜 여기서 공무원 외교관이여. 파리 에서 죽어. 이 여자는 In 1816 Maria married her longtime admirer and lover, Philippe Antoine d'Ornano, count d'Ornano. 1816년, 30세 에 재혼해. 이전 80된 신랑과는 이혼하고, 필립 앙트완, 이사람도 아작시오 태생이고 나폴레옹 과 세컨드 커즌이고, 마샬 이야. 폴란드 마리 가 아마 나폴레옹 만나다가 이사람에 빠진듯. 나폴레옹은 끝까지 폴란드 마리아 를 챙겼고 집에 돈에. 이 나폴레옹은 고전을 다 본 인간이거든. 카이사르와 알렉산더 를 하는거지 앤.

루이15세 와 결혼하는 폴란드 도 마리아 고 . 이여자도 마리아 고. 참 폴란드 와 프랑스 는 재밌어.

몸로비를 저리 해서, 독립을 하면, 머하누, 다시 러시아로 들어갈 애들. 폴리쉬 민족이여 뭉치자우 하면 머하누, 대체 폴리쉬 들이 한게 있어야지 그동안. 얘들은 저때 폴란드 분할 하는거 보면, 이전부터도 그렇고, 아주 완벽하게, 자기들 나라를 해체 하려고 작정 한거야 저게. 백년 스킴으로 ㅋㅋㅋ. 지들이 스스로 자기들 나라를 없애기 위해 작정 햇으면서, 뜬금없이 폴리쉬여 독립하자우! 대체 저게 먼 개소리여 저게.

그게, 볼레스와프 프루스 의 소설 인형 이야. 민족은 얼어죽을 폴란드 민족. 야 저걸, 저사람이 고문받아서 머리 다치고 공황장애 생기면서 썼대 ㅋㅋㅋ. 애들 참 이 민족 에 대해 환멸 느끼고 그 반대 얘기하면 정신병으로 몰아 ㅋㅋㅋ.

걍 폴란드 마리아 발레프스카 는, 나폴레옹 이랑 놀아본게 최고의 인생인겨 ㅋㅋㅋ. 몸로비 를 했든 안했든.

남자들이란게 아주 착각하는게 머냐면, 예전에 그 박정희 그때그사람들 그 영화 있잖냐. 박정희 여자 공급하는 남산 애들 이야기. 거기서 웃긴게 머냐면, 여자 들은 박정희가 늙었던  왜소하던 간에, 간택 되는게 최고여 여자 입장에선.

남자들이 저걸 모르는데, 여자 입장에선, 최고여 최고의 권력자와 있어봤다는게. 이런 동양 극똥 빠닥에선 특히나 그런 정서여. 그. 이 조선 여자들 봐봐. 자기 딸래미 까지 그 죽음의 장례식장에 델꼬가서, 딸아 디당님 사랑해요 라고 써라. 야 저 사진 참 끔찍하던데 말야. 딸아, 조선의 딸아, 조선 애가 너를 강간 한다면 강간을 당하거라 .. 냐? ㅋㅋㅋ. 이 조선 여자 들이란게 이 조선 민국 여자들 이란건, 정말 야 기가막힌거야 조선 여자들이 조선 민족  해대는건.

Barbara Palmer, 1st Duchess of Cleveland, Countess of Castlemaine (née Barbara Villiers, 27 November [O.S. 17 November] 1640[1] – 9 October 1709), was an English royal mistress of the Villiers family and perhaps the most notorious of the many mistresses of King Charles II of England, by whom she had five children, all of them acknowledged and subsequently ennobled. Barbara was the subject of many portraits, in particular by court painter Sir Peter Lely. In the Golden Age, it was stylish to adorn an estate with her likeness.

바바라 팔머. 네이, 네트르 태어날때 처녀 이름 바바라 빌러즈. 찰스2세 의 애인 중 가장 악명 ㅋㅋ이 높다. 빌러즈 집안이, 조지빌러즈 부터 제임스 의 완전 측근이야. 조지 빌러즈 가 제임스 와 둘이 호모관계란 설이 있걸랑. 그러거든 말든, 제임스 가, 지저스 에겐 요한이 있다면 나에겐 빌러즈 가 있다고 할 정도여. 요한복음에서만 나오는, 지저스가 사랑하는 사도 요한.

이 빌러즈 가 찰스1세 에 2체 까지 오는겨. 찰스1세가 모가지 짤릴때 2세 가 19세야. 얘가 충격에 낙담 할거잖아. 빌러즈 들이 얘를 어둠과 흐릿한 지하로 데려간데. 여자를 붙이고. 찰스2세 가 이 빌러즈 의 도움?으로 저 충격에서 나와서 러블리찰스 가 되지만, 그만큼 또한 여자들이 많을 수 밖에 없는거고.

그중에 하나가 바바라 팔머 여. 바바라, 라는게, 바르바로스, 고대그리스 의 야만 이걸랑. 야 이걸 얘들은 또 이름으로 써. 참 재밌어 얘들.

Tall, voluptuous, with masses of brunette hair, slanting, heavy-lidded violet eyes, alabaster skin, and a sensuous, sulky mouth,[5] Barbara Villiers was considered to be one of the most beautiful of the Royalist women, but her lack of fortune left her with reduced marriage prospects.

크고, 볼륩추어스. 볼룹타스 가 프쉬케와 쿠피도 의 딸 이잖아. 얼마나 섹시 하겠어. 쿵쾅이들 페미들의 최고 혐오대상. 볼룹츄어스 하면 섹슈얼리 끝판왕이고, 육체적으론 굴곡이 확실한겨 드러갈데 드러가고 나갈데 나간. 브루넷, 찐한 헤어가 풍성하고, 눈꺼풀 뚜껑이 무거워 감는듯 한 바이올렛 눈동자, 알라바스터, 대리석 처럼 희고 부드러운 피부, 쎈슈어스 썰키 마우쓰, 막 대고 싶은 느낌의 티나온 입. 걔 누구냐 여배우. 바바라 빌러즈 는 왕족 여자들 중에서 가장 뷰티풀 한 여자들중 하나로 여겨졌는데, 돈이 없어 집안이. 그래서 결혼 시장에서 매력이 없는겨.

저런 느낌으로 그린 그림이, 위키 에 있어 옆으로 기대고 눈감긴 표정의. 피터 랠리, 가 이여자 그림을 많이 그린 그림중 하나.

이여자가 19세에 로저 팔머 와 결혼해서 팔머 가 되고, 중앙 코트 로 들어가서 열살 많은 찰스2세 의 애인 이 되는겨. 자식들이 대여섯인데, 대부분 찰스2세 의 아이들이고, 다들 백작에 공작자리 받고 잘 살아.

이여잔, 레이디 캐슬메인, 으로 대게 불리고.

바바라 팔머 와 동갑내기 가 대륙에서 몽테스팡 마담 이야. 둘이 친한듯 편지도 교환해 서로.

Françoise-Athénaïs de Rochechouart de Mortemart, Marquise of Montespan (5 October 1640 – 27 May 1707), better known as Madame de Montespan (French: [madam də mɔ̃tɛspɑ̃]), was the most celebrated maîtresse-en-titre of King Louis XIV of France, by whom she had seven children

마담 드 몽테스팡. 바바라 팔머 와 동갑이야. 루이14세 의 최고 메트레스 앙 티트르. 타이틀에서 미스트리스. 얘들은 킹의 애인도 공식 명함이 있어 ㅋㅋㅋ.

She is an ancestress of several royal houses in Europe, including those of Spain, Italy, Bulgaria, Portugal, Belgium, and Luxembourg

자식들이 7명인데 모두 루이의 자식들이고, 모두들 작위들 받고, 스페인 이태리 불가리아 포르투갈 벨기에 룩셈부르크 포함 왕가 를 이룬 조상여자 다. 이 딸중에 부르봉 그랑콩데 손자에게 시집간 루이즈-프랑스와 가 진짜 이뻐 그림으로 봐도, 이여자한테 콩티 가 빠진거고.

몽테스팡 마담 은, 모르트마르 공작 의 딸이야, 로셰슈아르트 드 모르트마르 의 프랑스와-아테나이. 로셰슈아르트 가문 이 아주 오래된 귀족가문 이고. 23세 1663년 에 결혼해 몽테스팡 마키 랑. 결혼식 전에 임신한거고 무릎 꿇어야 하는데 애때문에 안꿇는거고, 애 둘 낳고 코트 로 들어가서 루이 애인자리를 꿰찮거야. 결혼한 신랑이, 돈이 없어. 아마 처음에 돈벌러 들어간듯. 그러다가 몽테스팡 마담이 된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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