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직전 글이, 가만 보면, 글 구성이 이상한 듯 보이거든, 맥락이 대체 먼지.
이사람 이 글이 시쩍 poetic 이면서, 내식대로 작명하자면 psychic 싸이키적 이야. 내 번역 없이 보면 먼말인지 몰러 저거. 니덜이 내 번역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인류 생성 이래로 이따위 고급진 해석의 번역을 못느낄 정도로 편안해서 아무 감이 없는건데 니덜이 졸 무시캐서리. 아 짱나 진짜루다가.
이사람은 특히나 아주 리얼한 이야길 하는거고, 맥락이 철저히 있는겨 이게. 아주 중요한 말을 하는거야. 나는 지금까지 이런 말을 본적이 없는데, 아 내가 굳이 이걸 번역한 이유기도 했나봐, 직전 글까지 번역하고 서야, 테슬라 의 이 글이 다시 와닿더라고. 저런 말들을 너무나 쉽게 지나치거든. 아마 테슬라 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나 혼자 일텐데 말이지. 진짜루다가.
이사람은, 사람들에게, 아주 진지한, 새로운 패러다임 의 문장들을 푸는겨.
From childhood I was compelled to concentrate attention upon myself. This caused me much suffering but, to my present view, it was a blessing in disguise for it has taught me to appreciate the inestimable value of introspection in the preservation of life, as well as a means of achievement.
제2화 이야기 하면서 의 문구 가, 인상적인데. 내가 이전 말했듯이, 테슬라 를 만든건, 테슬라 의 상상속 이미지 찾기, 외부에서 갑자기 닥친 이미지 를 쫓아내기 위한 다른 이미지 찾기. 10세 에서 17세 까지 한 이게 테슬라 를 만든거야. 이 말을 테슬라 가 하는겨. 나는 내자신에게 집중할 수 밖에 없었어 너무 무서워서 전쟁의 방식으로 찾은게 내 안으로 들어가는겨. 그런데, 이게 블레씽 이었다는겨, 프레즌트 뷰, 지금 보면.
인에스티머블 벨류 오브 인트로스펙션. 내적탐색 이라는 어마어마한 가치 라고 평가할 만큼, 나의 이미지 찾아내기 과정이 나 자신을 키운거야. 이게, 프리저베이션 오브 라이프, 나를 살렸거니와, 어치브먼트 의 민즈, 내 발명의 업적을 이루는 수단 이 된 거야 이게.
눈앞에 갑자기 등장하는 이미지 를 지우려고, 다른 것을 상상해. 상상하다가 다 소진이 되면, 내 세상의 한계를 넘은 곳으로 excursion 탈출하는 벗어나는 여행 을 했다고 하잖아. 10세 나이에 본게 없어, 한번 써먹고 집중한 이미지 는 소용이 없어, 현실에서 활용한 이미지 는 다 써먹은거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가는거야 마음 속에서.
저게, 우리에겐, 모든 이들에겐, 먼말인지 몰라 , 왜? 전혀 감이 없거든.
우리가 곰곰이 생각할게, 마음 속에서 눈감고 본다는게, 이게 애매한 말이야. 눈감고 보는 이미지 라는게, 말장난이야 이거. 눈감고 먼놈의 이미지 가 보여 시각적인. 그 이미지 를 생각 할 뿐이지 눈감고 시각이미지는 보이지 않아.
어디서 봐? 꿈에서 봐.
꿈에서 느끼는 이미지 와, 그냥 맨정신의 상상 에서의 이미지 는 이 구조가 전혀 전혀 다른겨. 그렇잖아? 나는 그래. 그렇더라고 생각해 보믄. 꿈이랑, 맨정신 눈깜고 떠올리는거랑, 전혀 세상이 느낌이 전혀 달라.
나는 그래. 솔직히 말하자고. 지금 테슬라 는 아주 솔직히 말하는겨.
그러나, 테슬라 는 말이야, 눈감고 그 시각적 이미지 를 진짜 로 보는겨. 이걸 어릴때 한거야. 10세 부터 의도적 으로.
이 사람한테선, 진짜로, 눈 앞에, 이미지 가 보여, 손을 뻗어 만져지나, 만져지지도 않은데, 미치겟는겨 저게. 눈을 감아도 보이는지 구체적으로 말을 안하지만, 걍 보이는겨 실제로다가.
그래서 저기서 벗어나려고, 표현은 배니쉬 지운다고 하지만, 눈감고든 막막 딴거 생각해내는거야 억지로다가. 딴 곳에 집중하다 보면, 사라지는거야 갑자기 등장한 이미지가.
그러다가 말이야, 익스커젼 한다는, 전혀다른 이미지 를 만들어 냇다고 내가 번역을 했지만, 그게 아녀. 아 저게 먼말인지 번역하고 나서야 찐하게 들어오는데, 눈을 감고 말이지,
Then I instinctively commenced to make excursions beyond the limits of the small world of which I had knowledge, and I saw new scenes. These were at first very blurred and indistinct, and would flit away when I tried to concentrate my attention upon them, but by and by I succeeded in fixing them; they gained in strength and distinctness and finally assumed the concreteness of real things. I soon discovered that my best comfort was attained if I simply went on in my vision farther and farther, getting new impressions all the time, and so I began to travel--of course, in my mind.
내가 이 문장 이 참 묘하더라고. 왜냐면, 내가 저걸 예전에 얼핏, 경험해 본겨 저게. 아 그래서 저게 먼말인지 오늘 아주 확연히 느껴지더라만. 정말 중요한 말이야.
본능적으로, 내가 알던 작은 세상의 한계들에서 벗어난 익스커젼들, 밖으로 나가는 여행들 을 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나는 봤어 새로운 화면들을.
내가 만들어낸게, 아니야, 나는 그냥, 볼 뿐이야.
이전과는 다른건, 이전에는, 내가, 현실에서 듣고 본 이야기 들의 것들, 이미지 들을, 내 의식으로 찾아서, 아주 구체적으로 내 머리속에서 구현하는겨, 사진처럼 본 듯이. 이걸 일이년 이든 한거야. 그런데 다 써먹었어. 중복 은 효과가 없었고. 더 이상 아는 이야기 이미지 가 없어. 이건 내 의식 이 하는 짓이였고
이 다음엔 말이지, 의식 이 아닌겨. 의식의 세상에선 써먹을 껀 다 써먹었어. 의식의 작동을 멈추고, 이젠 그냥, 볼 뿐이야, 떠오르는 데로.
다음 문장을 보면, These were at first very blurred and indistinct, and would flit away when I tried to concentrate my attention upon them, but by and by I succeeded in fixing them;
그래서 말이지, 그냥, 아무생각 없이, 눈깜고, 보는거야, 깜깜할거 잖겠어? 처음엔, 아주 희미하고 불분명해. 아무런 포름 form 형상이 없어. 걍 깜깜할 뿐이야. 그런데, 무언가 휙휙 지나가, 뭔지는 몰라.
눈감고, 머리로, 생각하는게 아냐. 눈감고, 까만 스크린 속에서, 보이는겨.
먼말인지 알겄어?
눈감은 상태에서, 보이는거야. 이걸 구분을 제대로 해.
꿈은, 보이는거야. 꿈은, 생각이 아냐. 진짜 보는거야 꿈 세상은. 꿈은 정말 리얼한거야 꿈 꾸는 사람은 알거야 이걸.
꿈이랑, 맨정신에서 눈감고 상상하는거랑, 전혀 전혀 달라. 맞잖아? 요걸 반드시 명심해.
그런데 말이지, 눈감고, 니덜, 먼가를 본 적이 있냐?
상상 말고, 생각한걸 봤다고 하지 말고, 꿈속 화면을 보는 듯이, 눈을 감았는데, 눈 뜬 듯이 먼가 보이는겨.
지금, 테슬라 는 , 이걸 말하는거야. 오케이?
나는 저 경험이 있걸랑 . 그래서 저게 먼 말인지 알아. 아 나도 저 훈련을 했었어야 하는데, 라는 찐한 아쉬움이, 테슬라 의 글을 보고서 느끼는거야. 저런 이야기 는 어떤 종교서적 에도 없어. 칼융 의 내적탐색 인너워크 도 저런 게 아냐. 생각하세요 상상하세요, 유치 한겨 진짜 쟤들.
테슬라 의 저 글이 1919년 이야. 테슬라 의 저런 내적 인 훈련 방법 은, 나이 10세 에 시작한거면 1866년 이고, 17세 까지 했다면 1873년 이야. 프로이트 의 꿈의 해석이 1900년이야. 인너 워크 해대는 칼융과 그 후손들은 훨 그 다음이고,
테슬라 만의 독보적인 심리학이야. 더하여, 여전히, 심리학 정신의학 애들이, 지금 저 테슬라 의 말이 뭔말인지, 몰라,
테슬라 는 리얼한 말을 하는겨. 저건, 천태종 의 지관 수행이든 불교의 선수행 어쩌고 의 그런 이야기도 전혀 아니야. 그리스도 몽크 들의 면벽 수행도 아냐.
종교 집단 에서, 내적 수행을 하는건, 이건, 그 종교집단 수행인 의, 의지 의 활동이야 그 내면의.
불교도 라면, 자기의 무의식에든 무조껀, 부처 를 찾게 되어있어. 그리스도 는 무조껀 지저스 니 원니쓰 를 찾게 되어있어.
저런 인트로스펙션, 내적탐색 은, 테슬라 의, 현실세상에서 듣고본 이미지 구체화 하기, 그 자체야.
자기가 의식에서 만든 아미타불 일 뿐이고, 자기가 책에서 설교에서 듣고 본 지저스 일 뿐이야.
아미타불 그자체, 지저스 그 자체 가 아니야. 저건 의식의 짓들이야. 가짜야 모두. 가짜 이미지야. 가짜 천국이고 가짜 지옥이야. 모두 걍 텍스트 의 이야기 와 그걸 가공한 말들을 듣고 본 걸 내쩍으로 파고 들어가서 또한 거짓으로 가공할 뿐이야.
쟤들 모든 수행 의 전부야 저건. 무의식 자체가, 완벽하게, 자기마다의 거대한 신 이 바닥에 깔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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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는 말이야. 그게 아냐. 자기 의식에서 만들어 볼건 다 만들어봤어 머리속으로. 그다음엔, 전혀 전혀 다른 짓을 시도 한겨. 종교인들 도 전혀 하지 않은. 일단 종교인들은 할 수 가 없어. 왜? 근본적으로, 자기 종교 의 신 을 찾을 수 밖에 없어. 선 수행 이든 모나스트리 몽크 든.
그냥 눈을 감아. 깜애. 그런데, 먼가 지나가. 눈속의 벌레이미지 인지 아닌지 아이 플로터, 마이오드소피아 라는 비문증이든 머든, 하튼 걍 먼가 보여. 그러다가, 내가 다시 집중을 해. 그러면, 눈감은 상태에서, 먼가 가 딱, 고정되어서, 보이는겨.
이전에, 이런 시각화 훈련을 다른 이미지들로 해본겨. 그리고나서 이제는 걍 아무생각 없이, 눈에 보이는 것을, 잡았어 그냥. 눈 감은 상태에서.
they gained in strength and distinctness and finally assumed the concreteness of real things. I soon discovered that my best comfort was attained if I simply went on in my vision farther and farther, getting new impressions all the time, and so I began to travel--of course, in my mind.
그 대상들이, 힘을 얻기 시작하고, 구분이 점점 돼. 그러면서, 리얼한 것들의 구체성을 띄기 시작해. 눈감고, 마치 꿈처럼, 보는거야 이게. 이게 지금 비유 니 은유 니 그딴게 아니야. 아주 리얼한 생생한 그대로 의 이야기야. 계속 그냥, 보기만 하는거야. 의식의 활동을 전혀 안해. 그러다 보면, 테슬라 의 문법 중에 자주 쓰는 단어 가 임프레션 이야. 누르는거야 자기 의식을. 누르는것들 이 있어. 자극하는 것들이야. 새로운 인상들 을 만나게 되는겨. 이 여행을 물론, 마음 속에서 하는겨.
Every night (and sometimes during the day), when alone, I would start on my journeys--see new places, cities and countries--live there, meet people and make friendships and acquaintances and, however unbelievable, it is a fact that they were just as dear to me as those in actual life and not a bit less intense in their manifestations.
메일밤, 때로는 대낮에도, 혼자있을때, 저 여행들을 하는거야. 새로운 장소들 도시들 시골들. 거기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들을 만나.
저건, 내가 의식으로만들어내는게 절대 전혀 아냐. 그냥, 눈 감고, 볼 뿐이야. 리얼하게. 이건, 실화 야. 거짓말이 아냐.
믿을수 없겠지만, 내가 눈감고 만난 인상들 오브젝트들은 현실의 삶속의 것들만큼 귀했고 조금도 강도가 작지 가 않았다.
솔직한 표현이야 저거. 저 걸 걍 내가 앞에서 부연 설명을 안했는데,
저얘길 다시 하는겨 테슬라가, 저게 너무나 엄청난 가치 의 인트로스펙션, 내적탐색 이었다는 걸. 이런 단어는 나중에 키에케고 가 또한 쓰잖니 인트로스펙션 으로 앱스트랙트 오브젝트 를 리얼하게 볼 수 가 있다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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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신앙 종교인들의 선 명상 이런것과 전혀달라. 심리학의 내적작업 내면탐색과 전혀 달라. 이런건 모두 의식의 작업이야. 테슬라의 저건 의식의 작업이 아냐. 완벽히 오브젝트 들을 서브젝트는 피동적으로 경험할 뿐이야.
아, 내 지금 이 말을 이해하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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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는, 내추럴 싸이언스 를 엔지니어링 했을 뿐 아니라, 철학 심리학 의 이야기들을 리얼하게 자기 몸으로 이행 한겨 이게.
저런 테슬라 의 이야기 를 , 아무도 아무도 모르는겨. ㅋㅋㅋ. 저건 머 최면요법 이니, 심리학 의 내면탐색 요즘 유행하는거니, 전혀 전혀 달라 저게.
과거로 돌아가보세용~~ ㅋㅋㅋ. 아 헛소리야 전부. 머가 보여요? 보이긴 머가 보여, 걍 피질에서 생각하는거지 보이긴 머가 보여. 정말 보여? 보이냐구?
눈감고, 보여야 해.
저게, 저 본게, 먼지 몰라. 또한, 모두가 말이지, 저걸, 똑같이, 할 수 있을까 없을까?
The pressure of occupation and the incessant stream of impressions pouring into our consciousness thru all the gateways of knowledge make modern existence hazardous in many ways. Most persons are so absorbed in the contemplation of the outside world that they are wholly oblivious to what is passing on within themselves.
테슬라 가 바로 다음 구문에서, 우리가 요즘 식, 현대인의 스트레스 어쩌고 자기를 잃고 요 내가 사라지써요 아무 의미없으요 타인을 위해서만 존재하는지 마는지, 나를 찾아 가야해용, 걍 판에 박힌, 뻔한 뻔한 말을 하잖니. 아무런 의미 없는 말들 . 저따위 의미없는 말을 해대면 진보적인 인간인줄. 아무 소용 없는 말들이 넘치는거거든.
저마다의 일의 압박과,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는 인상들, 오브젝트들, 내 의식으로 쳐들어와, 지식의 문들을 통해서. 이걸로 존재 라는걸, 위협해. 이게 다시말해서, 사람들이란게, 외부의 세상으로 흡수가 되어버리는거고, 나에게 들어오는게 없는겨, 내 의식에는 오직 외부세상의 것들만 쏟아져 들어와.
정작, 나 스스로 를 위하는, 나를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것들이, what is passing on within themselves. 요게 그런 의미야. 나자신의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들이, 지금 내 앞을 지나가거든. 내 안으로 들어오려고. 나에게 먼가를 알려주든 하려고. 그런데, 이것들에 대해선, 사람들은, 전부다에 대해서 완벽하게, 호울리, 올리비어스, 생각조차 의식조차 안하고 있는거야.
그래서 바로 다음 문장이, The premature death of millions is primarily traceable to this cause. Even among those who exercise care it is a common mistake to avoid imaginary, and ignore the real dangers. 수백만의 사람들이 이런 이유로 죽는다는거야. 이런이유 가 머여? 저거 여 저거. 외부세상의 인상들만 쑤셔들어오면서 외부에 철저히 흡수가 되면서, 나에게 들어오려는 것은 완벽하게 무시하는 사람들 의 삶.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무시해. 그래서 죽어.
테슬라 는,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전부 받아들인겨 어릴때. 저게, 수많은 익스커젼 들 이야. 의식에서 찾아내는 이미지 를 구현 하는게 아냐. 눈깜고 움직이는, 리얼하게 힘을갖고구분이확실이되는 도시들마을들 과 거기서 만나는 그 너무나 리얼한 사람들. 이들이 내 안으로 찾아들어왔어. 나는 그것들 그들이 지나가는걸 패씽 온 위드인 마이셀프, 에 대해 어블리비어스 하지 않았어. 나는 아주 적극적으로 만났어.
저게, 지금 생각해 보니, 자기 테슬라 를 만들은거야.
너무나 어마어마한 인에스티머블, 상상할수 없는 가치 의 내면작업 을 한겨 우연히도, 눈앞에 뜬굼포 나타나는 환영들에서 도망다니려고 하던 짓이었는데.
그러면서, 바로 다음 에 하는 말이, 금주법 이 1920년이야. 직전해에 쓴겨. 저게 위헌소지 논쟁이 있었걸랑. 위헌소지가 아니라면 저게 시행이 되는겨. 그러면서 자기 몸관리 하면서 담배끊고 커피 끊고 한 이야기 를 뜬금없이 하걸랑. 그래서 저게 대체 먼 소리 인가 맥락이 뜬금포여 저게, 자기 내면작업 이야기 하다가.
that they are wholly oblivious to what is passing on within themselves.
이 문장이 핵심이야. 저 2화 시작하는데, 사람들 안으로 다가오려는 것 을 기억하고 이것에 집중 해야 한다는거야.
이거에 집중 안하면, 일찍 죽어. 도태돼. 진화를 못해.
나한테 먼가 다가오려는게 있든 없든, 충동적인 자극제 에 인간을 방치 하면, 도태돼. 일찍 죽어. 일차적 기본적으로 이 이야길 당연히 하는거야. 이건 걍 꼰대들 의 평범한 뻔한 이야기야. 테슬라 는 이 말을 하는 거지만, 이 말을 하려고 이 말을 하는게 아냐. ㅋㅋㅋ.
바로 이제 부터야.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자기가 숱하게 죽을 뻔한 이야길 해. 물에 빠져 죽을 뻔한것만 열번 내외여. 요거 하나만. 전염병 걸려서 세번 죽어야 했어 의사도 포기했어. 동물들에 물려 죽을 뻔한것도 숱해.
그런데 말이지. 저기에서, 자기는, 살아남은거야. 생각해보니, 자기가 살아남은게, 낫 엑시덴털,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겨.
필연적 으로 살아남은거야.
that they are wholly oblivious to what is passing on within themselves.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울리 오블리비어스, 완전히 전부, 무감각해서, 죽어. 도태돼. 자기명에 못살고 다들 죽어.
자기들안으로 오려는 것. 에 완벽히 무감각해서.
테슬라 는 말이야, ㅋㅋㅋ. 자기안으로 들어오려는, 지나가는 것에, 집중했던 인간이야 ㅋㅋㅋ.
숱하게 죽을 뻔 한 사건들에서, 저 신호들을 제대로 받아서, 해석해서, 살아남았다는거야 저 맥락이 ㅋㅋㅋ.
그럴려면, 일단은, 몸을 망치는 자극제 들 을 멀리 해야 한다는겨. 저런 것들로 인해서, 내안으로오려는것들을포착을못한다는겨. 지금 테슬라 가 근본적 맥락으로 말하려는게. 뻔한 말 하려는게 아녀 저게. 오케이? 이래저래 일단 몸관리는 하세요 적자생존의 법칙으로 도태될 뿐이고요 이건 일단 뻔한 말 아는 말이니 확인하고 넘어갑시다. 하면서, 테슬라 가 하고픈 말은, 위급한 상황일때, 내안에오려는저신호들을받을몸상태를만들어놓아야합니다. 이말을 하려는겨.
But as I recall these incidents to my mind I feel convinced that my preservation was not altogether accidental.
이게 그래서 직전까지 의 문구야. 내가 살아남은 건, 우연이 아니었다 는 확신 이 들었다. 지금부터 하는이야긴, 정말 위험한 상황을, 자기는 외부에서오는신호 를 받아들여서, 살아남은거야, 필연으로. 그 신호를 받을 수 있게끔, 그동안 인트로스펙션, 내적탐색 을 해왔던거야. 그게, 나 외의 세상을 밤이든 낮이든 만난거야. 이건 내가 주작한 영상이 아니야, 꿈처럼, 남이 만들었는지 어쩐지, 여하튼 나는 그 화면속을 거닐면서 리얼하게 만났을 뿐이야. 이런 작업들이 있었으므로, 나는 위급한 상황일때, 먼지 모르지만 저런 신호를 항상 어디서인지 누구인지 가 나에게 보내준건지, 나 스스로 의 바닥에서 진짜 내가 만들어내서 보여준건지, 해서, 나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는거야. 더하여, 남들보다 탁월한 사진기억력 비주얼라이제이션 에 생각세상에서 다 설계 계산하는 능력 역시나 아빠의 훈련은 덤이고, 내가 어릴때 했던 저 이미지 작업들에 내적 여행들 이 만들었다. 너무나 어마어마한 가치 의 짓들을 나는 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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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감고 보는 여행을 해. 이게 테슬라 가 인류에게 주는 엄청난 팁이야.
내가, 당신들에게 주는, 어마어마한 선물이야. 아 난 공덕이 너무 엄청난듯.
어떻게 하느냐고 저걸? 내가 시도 해보면서 알려줄테니까, 따라오도록 해.
아 솔직히 이거 안 알려줄려 했걸랑. 나 혼자 써먹어보려 했걸랑. 아 난 너무 착한듯.
테슬라 의 글은, 문꽈 가 해석을 못해. 번역을 못해. 전기가 머고 교류니 직류니 레저넌스 니 무선이니 이게 먼말인지 몰라. 파동이 머고. 이런게 기본적 근원적 개념이 탑재가 되어야 이해가 되걸랑. 테슬라 이야기 재밌는거야.
테슬라 의 글은, 이꽈 가 해석을 못해, 번역을 못해. 저런 시쩍인 말들이 먼말인지 몰라 이꽈는. 저 눈감고 보는 화면 영상들, 아 정말 내가 본 문장 들 중에 최고 중 하나야. 테슬라 말이 어려워. 저게 리얼한 말이냐 비유냐 이걸 감을 못잡아. 심리학 신학 종교 용어 들을 몰라 이꽈 애들이.
영어 애들이 그래서, 테슬라 의 영어 의 저 글이, 먼지 몰라 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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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부분이 아주 핵심 중 하나야. 테슬라 는 정말 자기 일급 비밀을 알려준겨 저거. 아 더 자세히 풀어 주질 않았어.
프로이트. 도 1856년 생이야. 테슬라 와 동갑이야. 5월 6일 생. 테슬라 7월 10일 생.
테슬라 는 프로이트 의 이론을, 나이 열살 에 경험적으로 찾아내서 자기 몸에 실습을 했어. 어마어마한 인간이야.
저런 테슬라 이야기를 아무도 모르는겨. 모를 수 밖에 없고. 끽해야 외계인 음모론 애들이, 어머 테슬라 외계인 수신기여 저거 ㅋㅋㅋ 먼가 외계인과 접촉한겨 저거. 이런 이야기에만 소모가 되고, 근본적 구조적인 실재 이야기를 했던 테슬라 의 내용 은 완벽히 잊혀진겨. 영화 가 몇번 나왔다지만, 담을 수 가 없어 저런걸.
테슬라 는 절대, 흥미 유발의 킬링타임용이 아녀.
어쩌면, 플라톤 셰익스피어 헤겔 키에케고 보다 더 리얼하고 근본적인 내용을 던졌다고 , 일단은 생각되는데.
저걸 대충 영어로 다 보고, 먼가 걸리는게 몇개 있어서 번역하다 보니 분명 확실하게 윤곽이 잡히는데.
An inventor's endeavor is essentially lifesaving. Whether he harnesses forces, improves devices, or provides new comforts and conveniences, he is adding to the safety of our existence. He is also better qualified than the average individual to protect himself in peril, for he is observant and resourceful. If I had no other evidence that I was, in a measure, possest of such qualities I would find it in these personal experiences. The reader will be able to judge for himself if I mention one or two instances. On one occasion, when about 14 years old, I wanted to scare some friends who were bathing with me. My plan was to dive under a long floating structure and slip out quietly at the other end. Swimming and diving came to me as naturally as to a duck and I was confident that I could perform the feat.
Accordingly I plunged into the water and, when out of view, turned around and proceeded rapidly towards the opposite side. Thinking that I was safely beyond the structure, I rose to the surface but to my dismay struck a beam. Of course, I quickly dived and forged ahead with rapid strokes until my breath was beginning to give out. Rising for the second time, my head came again in contact with a beam. Now I was becoming desperate. However, summoning all my energy, I made a third frantic attempt but the result was the same. The torture of supprest breathing was getting unendurable, my brain was reeling and I felt myself sinking. At that moment, when my situation seemed absolutely hopeless, I experienced one of those flashes of light and the structure above me appeared before my vision. I either discerned or guest that there was a little space between the surface of the water and the boards resting on the beams and, with consciousness nearly gone, I floated up, prest my mouth close to the planks and managed to inhale a little air, unfortunately mingled with a spray of water which nearly choked me. Several times I repeated this procedure as in a dream until my heart, which was racing at a terrible rate, quieted down and I gained composure. After that I made a number of unsuccessful dives, having completely lost the sense of direction, but finally succeeded in getting out of the trap when my friends had already given me up and were fishing for my body.
발명가의 의무에젖은노력 은 근본적으로 생을 살리는 것이다. 그가 힘들을 제어하고 장치들을 개량하든, 새로운 편함들과 편리들을 제공하든, 그는 우리의 존재 의 안전을 보태는 것이다. 그는 또한 위기에서 자기를 보호하는 것도, 평균적인 이보다 더 자질이 있다, 왜냐면 그는 주의깊고 재료가풍부하다. 만약 내가 테스트해봐서 그런 자질들을 소유하지 않고 있다면 나는 나를보호할방법을 다음의 개인적 경험담들에서 찾을 것이다(앞으로도). 독자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내가 언급하는 한 두 사례를 보고. 하나의 경우, 14세 때인데, 나는 몇몇 친구들을 놀래키고 싶었다 나와 같이 물놀이를 하고 있을 때. 나의 계획은 떠있는긴구조물 아래로 잠수를 해서 반대편 끝으로 소리없이 스윽 나오는 것이었다. 수영과 다이빙은 나에게는 오리 처럼 자연스러웠고 나는 확신했다 그리 할수 있을 거란걸.
그렇게 나는 물 속으로 꽂아 들어가서, 앞이 안보이고, 방향을 틀어 빠르게 반대쪽으로 나아갔다. 나는 그 구조물 밖이라 안전하다 생각하면서 물표면으로 올라갔으나 슬프게도 굵은 줄기의 빔에 부딪혔다. 물론, 급히 잠수를 해서 빠른 물장구로 앞으로 더 나아갔다 숨이 차오르기 시작할때까지. 두번째 나가려할때, 나의 머리는 다시 빔에 부딪혔다. 나는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내 모든 에너지를 모아서 세번째 절박한 시도를 했으나 결과는 똑같았다. 가슴을 억누르는 고문은 참을 수 없었고 나의 뇌는 다했고 스스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나의 상황이 거의 완벽하게 희망없어보일 때, 나는 경험했다 그 빛의 번쩍임들의 하나를, 그리고 내 위의 그 구조물이 내 시선 앞에 나타났다. 나는 분간을 했거나 추측을 했다, 물표면과 빔들이놓여있는판들 사이에 작은 공간이 있다는걸. 그리고, 의식이 거의 가버렸을때, 나는 떠 올라서, 내 입을 그 판들 가까이에 눌러 붙여서 적은 공기나마 마셨고, 불행하게도 물이 섞여서 나는 거의 질식했다. 몇번을 이렇게 반복했다 마치 꿈 꾸듯이. 나의 심장은 끔찍한 속도로 뛰었었는데 조용히 가라앉으면서 나는 침착함을 되찾았다. 수많은 시원찮은 잠수들을 시도하곤, 나는 완전히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마침내 성공해서 그 덫에서 나와보니, 내 친구들은 그때 이미 나를 포기하곤 내 시체를 찾으려 낙시질을 하고 있었다.
That bathing season was spoiled for me thru recklessness but I soon forgot the lesson and only two years later I fell into a worse predicament. There was a large flour mill with a dam across the river near the city where I was studying at that time. As a rule the height of the water was only two or three inches above the dam and to swim out to it was a sport not very dangerous in which I often indulged. One day I went alone to the river to enjoy myself as usual. When I was a short distance from the masonry, however, I was horrified to observe that the water had risen and was carrying me along swiftly. I tried to get away but it was too late. Luckily, tho, I saved myself from being swept over by taking hold of the wall with both hands. The pressure against my chest was great and I was barely able to keep my head above the surface. Not a soul was in sight and my voice was lost in the roar of the fall. Slowly and gradually I became exhausted and unable to withstand the strain longer. just as I was about to let go, to be dashed against the rocks below, I saw in a flash of light a familiar diagram illustrating the hydraulic principle that the pressure of a fluid in motion is proportionate to the area exposed, and automatically I turned on my left side. As if by magic the pressure was reduced and I found it comparatively easy in that position to resist the force of the stream. But the danger still confronted me. I knew that sooner or later I would be carried down, as it was not possible for any help to reach me in time, even if I attracted attention. I am ambidextrous now but then I was lefthanded and had comparatively little strength in my right arm. For this reason I did not dare to turn on the other side to rest and nothing remained but to slowly push my body along the dam. I had to get away from the mill towards which my face was turned as the current there was much swifter and deeper. It was a long and painful ordeal and I came near to failing at its very end for I was confronted with a depression in the masonry. I managed to get over with the last ounce of my force and fell in a swoon when I reached the bank, where I was found. I had torn virtually all the skin from my left side and it took several weeks before the fever subsided and I was well. These are only two of many instances but they may be sufficient to show that had it not been for the inventor's instinct I would not have lived to tell this tale.
그 물놀이 씨즌은 나에겐 엉망이었고 내 부주의 때문에. 그러나 나는 곧 그 교훈을 잊고는 겨우 2년 후 16세에 더안좋은 상황에 빠졌다. 큰 제분소 방앗간 이 있었는데 댐 이 같이 강을 가로질러 있었고 그 도시 근처에서 나는 그당시 공부중이었다. 대게 물의 높이는 댐을 넘어 겨우 2내지 3인치 였다. 그래서 거기로 수영하러 가는 것은 그리 위험하지 않았고 나는 종종 맛들였다. 하루는 나 혼자 그 강에 가서 즐겼다 평상시처럼. 그런데, 내가 그 석조의 댐에 가까이 있을 때 나는 놀랬다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나는 급격하게 휩쓸렸고 거기서 벗어나려 애썼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그렇지만 운좋게도, 나는 살아남았다 댐을 넘어 가면서 그 댐 벽을 양 손으로 붙잡으면서. 내 가슴으로 와닿는 물길 압력은 상당했고 나는 거의 머리를 물밖으로 내밀 수 가 없었다. 아무 영혼도 눈에 띄지 않았다, 나의 목소리는 그 폭포같은 댐 물소리에 묻혔다. 천천히 점점 나는 힘이 다했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막 떨어지려 할때, 떨어지면 아래 바위들로 쳐박히는 거였지만, 그순간 나는 빛의 번쩍임 속에서 친숙한 도형을 봤다. 그 도형은 물흐름 유체의 원칙을 설명하는 그림이었고, 유체가 움직일때의 압력은 노출된 면적에 비례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자동적으로 나는 몸을 틀어 내 왼쪽면만을 댐 벽에 대었다. 마치 마법처럼 압력은 감소했고 나는 상대적으로 이전보다 편했다 그 자세로 물흐름의 힘에 맞서는 것이. 그러나 위험은 여전히 나에게 맞서 있었다. 나는 알았다 조만간 휩쓸려 내려갈 거란걸, 제시간에 나에게 구원이 닿는건 가능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아무리 정신집중을 한다해도. 나는 지금 양손잡이다, 그러나 그땐 왼손잡이였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오른손엔 힘이 거의 없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감히 반대편인 오른쪽으로 몸을 틀 지 않았다, 남은 거라곤 천천히 몸을 밀어서 댐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었다. 나는 그 제분소 물레방아 에서 벗어나서 내가 머리를 돌린 방향으로 가야했는데 그쪽은 물이 더 빠르고 깊었다. 그것은 길고 고통스런 시험대였다. 나는 거의 끝지점에 다다라서 떨어졌다 왜냐면 거긴 그 석조의 꺼진 지점이어서. 나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겨우 나왔고 둑에 다다랐을땐 기절했고 거기서 나는 발견되었다. 내 왼쪽 모든 피부는 찢겨나갔고, 이삼주가 지나서야 열은 가라앉았고 나아졌다. 이건 단지 많은 사례들 중 두 가지 사례일 뿐이지만, 이것들로 보여주기엔 충분할게다, 발명가의 본능이 아니었으면 나는 살아서 이 이야기를 할 수 없었을 거란걸.
I experienced one of those flashes of light and the structure above me appeared before my vision.
I saw in a flash of light a familiar diagram illustrating the hydraulic principle that
저게 비유 가 아니라, 번쩍이는 빛 속에서, 본거여 저게.
Interested people have often asked me how and when I began to invent. This I can only answer from my present recollection in the light of which the first attempt I recall was rather ambitious for it involved the invention of an apparatus and a method. In the former I was anticipated but the latter was original. It happened in this way. One of my playmates had come into the possession of a hook and fishing-tackle which created quite an excitement in the village, and the next morning all started out to catch frogs. I was left alone and deserted owing to a quarrel with this boy. I had never seen a real hook and pictured it as something wonderful, endowed with peculiar qualities, and was despairing not to be one of the party. Urged by necessity, I somehow got hold of a piece of soft iron wire, hammered the end to a sharp point between two stones, bent it into shape, and fastened it to a strong string. I then cut a rod, gathered some bait, and went down to the brook where there were frogs in abundance. But I could not catch any and was almost discouraged when it occurred to me to dangle the empty hook in front of a frog sitting on a stump. At first he collapsed but by and by his eyes bulged out and became bloodshot, he swelled to twice his normal size and made a vicious snap at the hook.
관심있는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물어왔다 어떻게 언제 발명을 시작했냐고. 이것은 지금의 회상에서 답을 해야 한다, 내가 회상하는 첫번째 발명은 다소 세속적인 야망심이 있었는데, 그 첫발명은 기구와방식의 발명 을 포함한다. 전자 인 처음은 싹이 좀 보인거라면 후자의 것이 근본적 태생적 발명가임을 보여줬다. 이런 거였는데, 내 친구들중 한명이 낚시 비늘고리와 기구를 갖고 왔는데 그건 그 마을에서 굉장한 흥분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모두는 개구리들을 잡으러 갔다. 나는 혼자 남겨져서 버려졌다 왜냐면 내가 그놈이랑 싸웠거든. 나는 진짜 고리를 본적이 없었고 그게 대단한 능력을 지닌 환상적인 어떤거라고 여겼는데, 그 일행에 끼지 못해서 낙담하고 있었다. 필연에 쫓겨서, 나는 연철선 조각을 쥐고는 끝을 망치로 뚜드려 두 돌들 사이에 끼워서 날카롭게 만들고 그것을 고리모양으로 구부리고 강한 줄로 묶었다. 다음에 작대기를 자르고, 미끼를 모아서 개울로 내려갔는데 거기엔 개구리들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한마리도 잡을 수 없어서 풀죽었는데 그때 이런 일이 벌어졌다. 미끼 없는 빈 낚시 고리를 나무 둥치 에 앉아있는 개구리 정면에 대고 흔들었다. 처음엔 몸을 웅크리더니 점점 두눈이 커지면서 충혈되었고 평소크기보다 두배 커지더니 그 고리를 격하게 무는 것이었다.
Immediately I pulled him up. I tried the same thing again and again and the method proved infallible. When my comrades, who in spite of their fine outfit had caught nothing, came to me they were green with envy. For a long time I kept my secret and enjoyed the monopoly but finally yielded to the spirit of Christmas. Every boy could then do the same and the following summer brought disaster to the frogs.
즉시 나는 그를 들어 낚아 올리곤 같은 짓을 반복해서 시도했고 그 방법은 오류가 없음이 증명되었다. 내 친구들은, 훌륭한 장비임에도 아무것도 잡지 못했었고, 나에게 오더니 그들은 시기심에 젖어 열받은 초록빛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비밀을 지키면서 독점을 즐겼고 그러다 마침내 그리스도 의 정신에게 양보했다. 모든 아이들은 그때서야 같은 방식을 취할 수 있었고 다음 여름은 개구리들에겐 비극을 가져왔다.
In my next attempt I seem to have acted under the first instinctive impulse which later dominated me - to harness the energies of nature to the service of man. I did this thru the medium of May-bugs - or June-bugs as they are called in America - which were a veritable pest in that country and sometimes broke the branches of trees by the sheer weight of their bodies. The bushes were black with them. I would attach as many as four of them to a crosspiece, rotably arranged on a thin spindle, and transmit the motion of the same to a large disc and so derive considerable "power." These creatures were remarkably efficient, for once they were started they had no sense to stop and continued whirling for hours and hours and the hotter it was the harder they worked. All went well until a strange boy came to the place. He was the son of a retired officer in the Austrian Army. That urchin ate May-bugs alive and enjoyed them as tho they were the finest blue-point oysters. That disgusting sight terminated my endeavors in this promising field and I have never since been able to touch a May-bug or any other insect for that matter.
다음 시도는 내가 보기엔 맨앞의 본능적인 힘에 의해 행동했던것 같다, 그 본능은 후에 나를 지배해서 네이쳐 의 에너지들을 인간의 서비스 의 굴레 로 쓰게 했다. 나는 이걸 오월-벌레들 또는 유월 벌레들을 매개체로 했다. 미국에선 이렇게 불린 벌레들인데 그 지역에선 증명된 페스트 숙주 였고 때로는 그들의 무게만으로도 나뭇가지들을 부러뜨렸다. 관목들은 그것들이 있으면 까맸다. 나는 그 곤충들을 십자가 모양 조각의 네 가지에 네개씩 각각을 가능한 많이 붙였다. 가운데 가는 축으로 고정하고 회전하게 하도록 하면, 같은 움직임이 큰 원판으로 실려서 쓸만한 "파워" 를 만들어낸다. 이 곤충들은 쓸만해서 한번 시작하면 멈출줄을 모르고 몇시간이고 계속 돈다. 그것이 열받을 수록 곤충들은 더 열심히 움직였다. 모든 것은 괜찮았다 이상한 아이가 거기 등장 할 때까진. 그는 오스트리아 군대에서 은퇴한 군인의 아들이었다. 그 괴상한 애가 오월-벌레들을 산 채로 먹었고 마치 그 벌레들이 최상급 굴 요리인양 그것들을 즐겼다. 그 역겨운 광경은 이 전망있는 분야에서의 내 열정을 죽여버리고 나는 그후 결코 그 곤충이나 그런 다른 벌레 를 만질 수도 없었다.
After that, I believe, I undertook to take apart and assemble the clocks of my grandfather. In the former operation I was always successful but often failed in the latter. So it came that he brought my work to a sudden halt in a manner not too delicate and it took thirty years before I tackled another clockwork again. Shortly there after I went into the manufacture of a kind of pop-gun which comprised a hollow tube, a piston, and two plugs of hemp. When firing the gun, the piston was prest against the stomach and the tube was pushed back quickly with both hands. The air between the plugs was comprest and raised to high temperature and one of them was expelled with a loud report. The art consisted in selecting a tube of the proper taper from the hollow stalks. I did very well with that gun but my activities interfered with the window panes in our house and met with painful discouragement. If I remember rightly, I then took to carving swords from pieces of furniture which I could conveniently obtain. At that time I was under the sway of the Serbian national poetry and full of admiration for the feats of the heroes. I used to spend hours in mowing down my enemies in the form of corn-stalks which ruined the crops and netted me several spankings from my mother. Moreover these were not of the formal kind but the genuine article.
그 이후, 그리 생각되는데, 나는 시작했다 분리하고 조합 하는 걸 내 할아버지의 시계들을. 앞부분 분리 작업은 언제나 성공적이었는데 종종 뒷부분 인 조합은 실패했다. 그래서 그는(할배) 내 작업을 일순간에 그만두게 했다 그리 섬세하지 않은 식으로. 그리고 시계구조류의 작업을 다시 하기까지 30년이 걸렸다. 그직후 바로 나는 일종의 팝건 제조를 했는데, 그 총은 빈 튜브, 피스톤, 그리고 헴프로 된 두 플러그들 로 된거다. 총을 쏠때 피스톤은 눌려졌다 배에 대고, 튜브는 두손으로 뒤로 잽싸게 밀렸고. 그 플러그들 사이의 공기가 수축되고 온도는 높아지고 한 플러그 가 발사되었다 큰 소리를 내고. 기 기술은 빈 줄기들에서 최적의 줄기로 된 튜브 를 고르는데 있었다. 나는 그 총을 매우 잘 사용했다 그러나 내 행위들은 우리집 창문들에 방해받았고 고통스런 낙담에 마주했다. 내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면, 아마 그리곤 나는 가구들 중에서 새겨진 칼들 있는 데로 갔는데 편히 얻을 수 있었다 그걸. 그당시 나는 세르비안 민족 시풍 에 젖었었고, 영웅들의 업적에 대해 찬양으로 넘쳤었다. 나는 시간들을 보내곤 했다, 내 적들을 베면서, 그 적들은 옥수수 줄기 형상 이었고, 그짓은 농작물을 망쳤고, 나는 몇번 엄마한테서 뚜드리 맞았다. 더하여, 이런 짓들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진짜의 것 이었다(장난이 아니라 진짜 내눈엔 적 그 자체였다 옥수수줄기형상은)
I had all this and more behind me before I was six years old and had past thru one year of elementary school in the village of Smiljan where I was born. At this juncture we moved to the little city of Gospic nearby. This change of residence was like a calamity to me. It almost broke my heart to part from our pigeons, chickens and sheep, and our magnificent flock of geese which used to rise to the clouds in the morning and return from the feeding grounds at sundown in battle formation, so perfect that it would have put a squadron of the best aviators of the present day to shame. In our new house I was but a prisoner, watching the strange people I saw thru the window blinds. My bashfulness was such that I would rather have faced a roaring lion than one of the city dudes who strolled about. But my hardest trial came on Sunday when I had to dress up and attend the service. There I meet with an accident, the mere thought of which made my blood curdle like sour milk for years afterwards. It was my second adventure in a church. Not long before I was entombed for a night in an old chapel on an inaccessible mountain which was visited only once a year. It was an awful experience, but this one was worse. There was a wealthy lady in town, a good but pompous woman, who used to come to the church gorgeously painted up and attired with an enormous train and attendants. One Sunday I had just finished ringing the bell in the belfry and rushed downstairs when this grand dame was sweeping out and I jumped on her train. It tore off with a ripping noise which sounded like a salvo of musketry fired by raw recruits. My father was livid with rage. He gave me a gentle slap on the cheek, the only corporal punishment he ever administered to me but I almost feel it now. The embarrassment and confusion that followed are indescribable. I was practically ostracised until something else happened which redeemed me in the estimation of the community.
나는 이 모든것과 말안한 그 이상의 것들이 내 뒤에서 나를 버티게 한거지 6세 되기 전에. 그리고 내가 태어난 스밀랸 마을에서 초등학교 1학년을 보내고, 끝날때 우리는 근처 고스피치 라는 작은 도시로 이사했다. 이 거주지의 변화 는 나에겐 재난과 같았다. 그건 거의 내 하트를 부셨다, 우리의 비둘기들, 닭들 양들, 그리고 우리의 굉장한 거위 무리들 과 이별해야 했으니. 그 거위들은 아침에 구름들로 날아오르고는 해가 질때는 먹이 모이 터로 날아 돌아왔는데 전투 대형으로 아주 완벽해서 아마 오늘날의 최고 비행편대들 조차 부끄럽게 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새 집에서, 나는 단지 죄수였다, 낯선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들을 창문 블라인드를 통해 봤다. 나의 수줍음 은 엄청나서, 그 도시에 돌아다니는 사람들 중 하나를 마주치느니, 차라리 험한 사자를 마주하는게 나았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힘든 시험대인 일요일이 닥쳤다, 그날 나는 차려입고 그 서비스, 교회예배에 가야했으니까. 거기서 나에게 사건이 터졌는데, 그일만 생각하면 내 피는 쓴 우유처럼 굳어버렸다 그후 몇년동안. 두번째 교회 출정 이었다. 오래지 않아 나는 험한 산의 어느 낡은 채플에서 하룻밤 관 속에 있었는데, 거긴 일년에 한번 가는 곳이었지만 (인적없는). 그건 굉장한 경험이었지만, 지금 이건 더 최악이었다. 부유한 여자가 그 도시에 있었는데 선하지만 자기 과시적인 여자였고, 교회에 올때 화려하게 치장한 채 화려한 치마자락과 장식물들로 된 옷을 입었다. 어느 일요일, 나는 종탑에서 종을 막 치고 계단 아래로 뛰었는데, 그때 이 위엄에 찬 부인이 나가고 있었고 나는 그녀의 옷자락으로 뛰어들었다. 그것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뜯어졌는데, 그소리는 미숙한 신병들이 발사한 총소리 처럼 들렸다. 나의 아빠는 굉장히 분노했다. 그는 내 볼을 살짝 따귀날렸는데, 그건 그가 나에게 유일하게 가했던 체벌이었고,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 따귀를 느낀다. 뒤따르는 당황과 혼란은 형용할수 없다. 나는 실재로 추방되었다 다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진, 그 다른일이란 나를 그 도시에서의 평가에서 명예회복을 해준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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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유월곤충 을 십자가 모양에 올리면, 얘들이 풍뎅이 같은 곤충이고 지들끼리 날개짓 하면서 이게 바람개비처럼 막 돌고, 가운데 축을 꽂고 이 축에 이어진 원반이 도는겨. 걍 장난친거고 이걸로 에너지 를 만드는 눈을 뜬거고, 팝건 은, 배에 대고 피스톤을 눌러, 양손으로 튜브 실린더 를 잡아서 땡겨. 피스톤이 나가면서, 총알 용 꽂은 헴프로 만든 플러그 사이에 압력이 생기고 바깥쪽 것이 펑 소리 내며 날라가는거고. 팝건 이란게 19세기 미국의 공기총 장난감 이야. 구멍 끝에 줄을 메달고 플러그를 꽂아 막아서 밀면 플러그가 날라가. 대여섯때 자기가 이런걸 만들었다는거고.
아빠가 사제야. 오소독시 는 결혼한 상태에서 사제를 할 수 있어. 그러나 사제 신분에서 결혼은 안돼. 로마 카톨릭이 유부남이 사제한다는건, 카톨릭이 아니었던 사람이 카톨릭 으로 전향해서 사제의 길을 간 특수한 경우야. 카톨릭은 기본으로 성직을 한다는건 사제를 하는거고 시작부터 결혼 은 생각 조차 안하는겨. 오소독시 와 이건 전혀 달라.
아빠가 사제야. 자식이 종을 치는겨 그래서. 그 자식이 망친거고 귀한 손님을. 아빠가 살짝 뺨을 걍 때린거고 무심결에. 자기는 신체적으로 단 한번도 아빠에게서 맞은 적이 없어. 엄마한테는 뚜드려 맞았어도. 단한번의 형벌이 늙어서도 느끼는거고.
이 조선 들 드라마 나 영화 보면, 먼 뺨 때리는걸 기본으로 까는데. 애들도 뺨을 때리고. 걍 이 조선 이란건, 바바리안 이고. 이 유교 의 문화란건 이건
정말 애 한테 말이야. 뺨때리는거 아녀. 학교 선생 들 이라도.
이땅엔 정말 선생 이 없고, 책이 없어.
헴프 라는걸 플러그 총알 로 쓴거고, 이 헴프 hemp 가 이전 썰한 대마 아마 썰할때, 극동에서 대마 삼베 에 대응되는게 얘들의 헴프 야. 스피시즈 가 전혀 달라 이게. 저런걸 번역을 헴프 는 마 이다 이따위로 하면 절대 안돼. 얘들은 이 헴프 를 주로 캔버스, 쎄일 돛단배 의 돛 헝겊에 쓰는겨 굵고 단단하니까. 극동 땅에서나 옷으로 쓰는기고. 이 극똥은 쟤들 에 비하면 정말 모~~든 면에서 이건 바바리안 이야. 그중에 가장 바바리안 미개는 조선 이고. 이 헴프 가, 19세기 지나면서, 돛단배 가 사라지면서 수요가 확 죽은겨 이게. 그러다 요즘 신재생 어쩌구라미 다시 뜨는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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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enterprising young merchant had organized a fire department. A new fire engine was purchased, uniforms provided and the men drilled for service and parade. The engine was, in reality, a pump to be worked by sixteen men and was beautifully painted red and black. One afternoon the official trial was prepared for and the machine was transported to the river. The entire population turned out to witness the great spectacle. When all the speeches and ceremonies were concluded, the command was given to pump, but not a drop of water came from the nozzle. The professors and experts tried in vain to locate the trouble. The fizzle was complete when I arrived at the scene. My knowledge of the mechanism was nil and I knew next to nothing of air pressure, but instinctively I felt for the suction hose in the water and found that it had collapsed. When I waded in the river and opened it up the water rushed forth and not a few Sunday clothes were spoiled. Archimedes running naked thru the streets of Syracuse and shouting Eureka at the top of his voice did not make a greater impression than myself. I was carried on the shoulders and was the hero of the day.
의욕있는 젊은 상인이 소방부문을 조직했다. 새로운 화기 엔진이 구입되었고, 유니폼들도 제공되고, 사람들도 소방일과 사열에 훈련받았다. 엔진이란게, 들여다 보면, 걍 펌프 였고 16명의 장정이 작동시키는 빨강과 검정으로 그려진 거였다. 어느오후 공식 시동식이 준비되었고 그 기계는 강으로 운반되었다. 모든 시민들이 나왔다 그 굉장한 광경을 구경하려고. 모든 연설들과 기념식들이 끝나고, 명령이 떨어졌다 물 펌프질 하라고, 그런데 한방울도 그 호쓰 끝 노즐 에서 나오지 않았다. 교수들과 전문가들이 노력했으나 어디가 문제인지 찾는데 실패했다. 내가 거기 갔을땐 완전히 파장 분위기 였다. 기계구조에 대한 나의 지식은 전무했고, 공기 압력에 대해 역시나 개무식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강물 속 빨아들이는 호스 에 감이 왔고, 그게 잘못되었다는걸 발견했다. 내가 그 강물로 걸어가서 그것을 열어 올리자 물이 치솟아 나아갔고 적지 않은 일요일 옷들이 망가졌다(많은 사람들 옷이 젖었다). 발가벗은채 시라쿠자 거리를 뛰어다니면서 온힘을 다해 유레카를 외쳤다는 아르키메데스 도 나보다 시선을 받지는 못했을게다. 나는 어깨들에 실려서 그날의 영웅이 되었다.
Archimedes of Syracuse (/ˌɑːrkɪˈmiːdiːz/;[2] Ancient Greek: Ἀρχιμήδης; Doric Greek: [ar.kʰi.mɛː.dɛ̂ːs]; c. 287 – c. 212 BC) was a Greek mathematician, physicist, engineer, inventor, and astronomer.[3] Although few details of his life are known, he is regarded as one of the leading scientists in classical antiquity
영어 시라큐즈 의 아르키미디즈. 아르키메데스. 시칠리아 섬의 남동부의 폴리스 여. 마그나 그라이키아 그리스도시국가들 중 하나고, 쉬라쿠사이 코사이, 쉬라코, 들로 불려. 지금 이탤리어 시라쿠자. 아 언제 이 고대그리스 역사에 로마역사 좀 해야 하는데. 쉬라쿠사이 는 플라톤 에 디온 이야기로 뗄 수 없는, 이 플라톤 이야기 를 리얼하게 실현하다 실패하는 이야기가 일곱개 편지 로 남은거걸랑. 리얼해 이게. 참 재밌는데 저런게. 정말 플라톤 전집 을 최고야. 플라톤 의 일부 유치한 한계 는 한계 이지만. 다들 저마다, 지금 보면 당연히 단점 들이 있어. 플루타르코스 도 플라톤 도, 그래도 쟤들 글들은 정말 찐하게 스미는 것들이 많아. 셰익스피어 전집 을 번역을 하고 픈데. 쟤들 단점 생각해보니, 정말 남는건 이 셰익스피어 전집 이더라고. 아 이거 정말 최고야. 내가 햄릿 욕질할땐 햄릿 등 몇개 만 안볼때였는데, 야 저거 전집들을 더 더 해서 다 보다가, 내가 정말 뿅 간겨 저 셰익스피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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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cond Punic War (218–201 BC) 한니발 이 기원전 218년 에 알프스를 넘어들어오고, 떠나는게 전204년 이야. 14년 을 누빈겨, 스키피오 가 먼저 카르타고 본진 북아프리카로 들어가고 이해에, 그래서 카르타고가 한니발 을 부르는겨 너 들어오라고. 한니발 이 크로토네 Crotone 에서 전204년에야 이탈리아를 떠나는거야.
Sicily remained firmly in Roman hands, blocking the ready seaborne reinforcement and resupply of Hannibal from Carthage. Hiero II, the old tyrant of Syracuse of forty-five-years standing and a staunch Roman ally, died in 215 BC and his successor Hieronymus was discontented with his situation. Hannibal negotiated a treaty whereby Syracuse came over to Carthage, at the price of making the whole of Sicily a Syracusan possession. The Syracusan army proved no match for the Romans, and by spring 213 BC Syracuse was besieged.[122][123] Both Polybius' and Livy's accounts of the siege focus on Archimedes' invention of war machines to counteract Roman siege warfare, made more difficult by the strong defenses of the city.
퓌로스 전쟁 다음에 포에니전쟁이고, 1차 포에니전쟁으로 한니발아빠 가 지는거고 시칠리아 는 로마 로 들어왔고, 한니발 넘어와서 누벼도 시칠리아섬 전체 는 로마 에 예속된거고, 헤론 2세. 이사람이 피로스 가 떠나고 시칠리아 킹 하다가, 포에니1차 때 카르타고 편에서 로마랑 싸우다가 조약맺고 로마편이 된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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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키메데스 가 전 287-212년 인데, 2차 포에니 전쟁 때 죽어. 나온김에 생각나서 쓰는건데, 머가 생각나냐면, 역시나 플라톤 생각이나서. 저걸 예전에, 내가 플루타르코스 의 영웅전을 정말 재밌게 보다가, 얜데모크라시 에 미친 애고 역사 평가 하는게 지금보면 후지지만, 볼만하거든 그래도, 그러다 아르키메데스 이야기에서 플라톤 인용하며 개소리 하던게 기억이 나서 말야.
플라톤 에 소크라테스 를 정말 말이지, 제대로 이해하는 들이, 이게 없어요 ㅋㅋㅋ. 웨스턴 애들 조차도. 이전 썰했지만. 아 당연히 이 조선 빠닥엔 있겠니? 이 조선 바닥엔, 철학 자 가 어딨냐고. ㅋㅋㅋ. 저 들이 철학자연 해대미
후진애가 연일 테레비 책들로, 사람들을 강간 살인하는겨 집단으로. 학자 들이.
저 거는 정말 저 것들 저 학자들 자연해대는, 쟨 쟤들은, 연쇄 살인범 보다 천만배 사악한 애들이야. 특히나 조선 사가 애들은 정말 이건, 가장 사악한겨 저건. 애들 인간들 완벽하게 정신병자 에 집단 범죄자로 만드는거지. 사람들을 편협하게 편가르게 하고 감정을 짓누르고, 분노 치밀게 하다가 사람들 쳐 죽이는거거든. 그 원흉은 쟤들이야.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 아르키메데스 이야긴, 마르켈루스 에서 나와. 테바이 의 펠로피다스 대비. 펠로피다스 는 에파미논다스 가 친구고.
아르키메데스 의 역사적 서술이 너무 가볍게 다뤄지는건데. 일단은.
이사람이 시라쿠사이 를 방어하는 기술을 만들어놨지만, 정작 저당시 시라쿠사이 리더들은, 개판에 개판이야 이게. 당연히 그 리더를 둔 시민들 역시나 너무나 개판 인거고. 이런 상황을 이미 150년 전에, 디온 과 플라톤 이 겪은거야.
Dion (/ˈdaɪɒn, ən/; Greek: Δίων ὁ Συρακόσιος; 408–354 BC), tyrant of Syracuse in Sicily, was the son of Hipparinus, and brother-in-law of Dionysius I of Syracuse. A disciple of Plato, he became Dionysius I's most trusted minister and adviser. However, his great wealth, his belief in Platonism and his ambition aroused the suspicions of Dionysius I's son and successor, Dionysius II.
디온. 전 408-354. 플라톤 보다 20여년 어린거로 보고. 이사람이 전제정치 를 내리고 플라톤 의 필로소포스 를 담은 폴리테이아 를 만들고자 했걸랑. 여기 완전 실세 였다가, 디오니시우스 2세 를 잘 가르쳐서 플라톤을 심게하려했다가 역풍 맞아서 쫓겨나고 재산 뺏기고 마누라도 뺏긴 상태서 쳐들어가서리 권력을 쥔 거지만. 그리고 디온은 죽어. 데모크라시 애들 때문에. 데모크라시! ㅋㅋㅋ. 데모크라시 는 인간들을 쳐죽여.
저당시 플라톤 의 편지들을 보면, 저게 진짜들 가짜든, 참 리얼해. 난 진짜로 보는데. 왜냐면 플라톤 전집을 나만큼 찐하게 본 애들은 웨스턴에도 별로 없으니.
플라톤 이나, 니콜라 테슬라 나, 모든 대부분의 사가들이나 웨스턴 나름 지식인들이 모르는게 말이지,
제도 를 만들고, 테슬라 의 경우 자동로봇 에 무선에너지송신체계로 공짜 에너지 를 쓰게 하면, 전쟁이 없을거라는, 정말 너무나 초딩적 인 생각이야 이게.
플라톤 도 마찬가지야. 디온이 피살당했어. 시라쿠사이 에 여러 당파들이 갈려. 적폐놀이 하지 말고, 다들 품어서, 적폐들도 니들 편으로 만들어서, 법을 만들어서 법에 의한 국가를 만들어라. 그래서 그 법을 집행할 최강 권력을 만들어서 법집행을 하게 하고, 거기서 중요한건 너희들 자체도 법을 지키는 걸 보여주라. 그러면 적폐들도 공포로 떨며 너희들을 법들을 따를것이다.
저게 , 안돼. 모랄 이 후져서. 당시 고대 인 들 에게. 시라쿠사이 시민 들에겐.
이 조선 땅을 보면, 지금. 저 권력쥔 조선 애들은, 자기들에게 법적용 법집행 하는 걸, 거부 하거든. 자기들을 수사 하고 기소 하는건 적폐검찰이야. 찢어놓고 말잘듣는애 앉혀놓고. 사법부 저 대법원장 이란 애 , 야 저 모랄 수준. 그런데 저들 빠들에겐, 저게 정의야. 자기들은 법 의 처벌 대상 이 되어선 안돼. 자기들에게 적용되는 증거는 카메라로 찍은 영상 이어야 해. 니들 우리 시장님이 빤스 내리는거 봤어? 증거있어? 킁킁대는거 영상 있어? 본사람있어? 자기들에게 적용되는 증거는 엄격해야 하고, 적폐들은 다 죄인이고 법적용 대상이야.
저런건, 리더들도 허섭한거거니와, 바닥의 민들 자체도, 허섭한겨 저 모랄이. 왜냐면, 저런 사법 체계 를 겪은 적이 없어 이 조선땅은 수천년 간.
또한 그게 저당시 시카루사이 인거고. 플라톤 은 이런 역사적 무게 를 몰라 이걸. 그냥 그런 사람들에 기구가 있으면 그리고 자기의 아이디어의 제도 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아. 안되요 그게.
저 과정이 웨스턴 애들이, 중세 천년 동안 저걸 습한겨. 그 재료는 그리스 로마 가 제공해주고. 엄청난 학습의 역사여 저게.
조선 땅은, 그리스 로마 를 전혀 몰라. 이거 제대로 번역이 된거도 없고. 더하여 쟤들 중세를 전혀 모르고. 배울 생각을 전혀 안해. 지들 민족이 위대한겨 ㅋㅋㅋ. 조선 이 위대해. 얘들은 가망이 없어 이게.
저 상태에서 그대로 북조선과 손잡고 중국에 들어가는게, 어찌할 수 없는 역사적 필연이야 그래서.
시라쿠사이 가 저상태에서, 내전하고, 다시 바실레우스 킹 들어서고, 얘들은 스파르타 의 권력분산된 킹덤이 아냐. 플라톤의 스파르타의 체제의 킹덤을 세우라고 하거든 저기에.
저게 해결이 안된 상태에서 150년 이 흐르고서, 아르키메데스 가, 허접한 시민들과 리더들 의 세상에서, 죽은거야. 아르키메데스 의 죽음 장면은 그래서 역사적으로 나 개인적으로 참 저게 안타까운겨.
죽어도 좀 멋진 의미 있는 바닥에서 죽으면 모를까, 그냥 쓰레기 똥밭에서 문명 만들다 죽은거고, 그러나 이사람은, 그런 내셔널리티 는 관심이 없는거야. 자기의 보편적인 수학 기하학 이 자기 내셔널리티야. 이 장면에서 아르키메데스 가 위대한거고.
헤론 2세 가 45년 지내다가 전215년 에 죽어. 로마의 수모인 칸나에 전투가 직전해인 전 216년 이야.
Hieronymus (Greek: Ἱερώνυμος; 231–214 BC). 헤론2세 의 다음이, 손자 헤로뉘모스. 16세 에 오른겨. 한니발 이 얘를 꼬셔, 너 우리편 하면, 시칠리아 섬 전체 너한테 주마. 얘가 카르타고편으로 돌아서는겨. 한니발 넘어와서 3년동안 한니발이 갖고 노는걸 본거고. 그리고, 성안 길바닥에서, 피살 당하는겨. 13개월 만에.
Adranodoros (or Andranodorus) was the son-in-law of the Greek Sicilian king Hiero II of Syracuse
안드라노도로스. 내분 상황에서 권력을 잡아. 헤론2세 의 사위 에 죽은 헤노뉘모스 의 삼촌 뻘이야. 얘가 자문해서 로마 벗어나서 카르타고 한니발과 손잡은거거든. 이사람도 암살 당해. 이 사라쿠사이 가 디온 때부터 이게 150년 걸린겨 내부적인 분열이. 헤론2세 도 내분 에서 권력을 잡았을 뿐이야.
Hippocrates, Epicydes
히포크라테스, 에피퀴데스, 형제여. 카르타고인들이고 한니발 부대 소속으로 전쟁하는 상황이고, 이 둘이 헤로뉘모스 와 한니발 의 컨택포인트야. 헤로뉘모스 에 안드라노도로스 도 죽어. 이 둘이 사이에서 협상 하다가 둘이 여기 사령관 으로 눌러앉고, 권력을 잡은 겨. 그리고서, 로마가 쳐들어오는겨. 마르켈루스 가. 여전히 한니발 은 이탈리아반도 에 있는겨.
The Syracusan army proved no match for the Romans, and by spring 213 BC Syracuse was besieged.[122][123] Both Polybius' and Livy's accounts of the siege focus on Archimedes' invention of war machines to counteract Roman siege warfare, made more difficult by the strong defenses of the city
시카쿠자 병력은 로마에 상대가 안됐다. 전213년 봄에 포위당했다. 폴리비우스 와 리비우스 의 아르키메데스 전쟁은 이때 로마 병력 에 맞선것이고, 도시의 강력한 방어로 로마에겐 힘든 상태였걸랑.
In the spring of 212 BC the Romans stormed Syracuse in a surprise night assault and captured several districts of the city. Meanwhile, the Carthaginian army was crippled by plague. After the Carthaginians failed to resupply the city, Syracuse fell in the autumn of 212 BC; Archimedes was killed by a Roman soldier.
1년 이 지나고, 전 212년 봄에, 로마가 밤에 습격해서 도시 몇몇구역을 점령하고, 카르타고부대는 역병에 휩쓸렸었고, 도시지원도 힘들었었고, 이해 가을에 들어왔다. 아르키메데스 는 로마 병사에 의해 죽었다.
Archimedes died c. 212 BC during the Second Punic War, when Roman forces under General Marcus Claudius Marcellus captured the city of Syracuse after a two-year-long siege. According to the popular account given by Plutarch, Archimedes was contemplating a mathematical diagram when the city was captured. A Roman soldier commanded him to come and meet General Marcellus but he declined, saying that he had to finish working on the problem. The soldier was enraged by this, and killed Archimedes with his sword. Plutarch also gives a lesser-known account of the death of Archimedes which suggests that he may have been killed while attempting to surrender to a Roman soldier. According to this story, Archimedes was carrying mathematical instruments, and was killed because the soldier thought that they were valuable items. General Marcellus was reportedly angered by the death of Archimedes, as he considered him a valuable scientific asset and had ordered that he must not be harmed.[25] Marcellus called Archimedes "a geometrical Briareus."
아르키메데스 가 75세 로 보고, 전212년 에 죽다 2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 사령 마르켈루스 가 2년 에 걸친후 시라큐즈 를 장악해. 플루타르코스 에 의하면, 아르키메데스 는 수학 도형을 고민하고 있었다 도시가 장악되었을때. 로마 병사가 그에게 명령했다 나와서 마르켈루스 를 만나러. 그러나 그는 거절했다, 문제풀이를 끝내야 한다면서. 병사는 이말에 화가 나서 아르키메데스를 칼로 죽였다. 풀르타르코스 는 또한 안알려진 이야기를 보탠다 죽음에 대해, 그는 로마병사에게 항복하려고 했다가 죽었을지 모른다고. 이 이야기에 따르면, 아르키메데스는 수학 도구들을 실어날랐고 피살되었다, 병사가 보기에 그것들이 값나가는 건줄 알곤. 마르켈루스 는 그 죽음에 분노했다고 알려진다, 그는 그를 가치있는 과학적 재산 으로 여겼고 명령했었다 절대 그에게 해를 입히지 말라고. 마르켈루스 는 아르키메데스 를 기하학의 브리아레우스 라고 불렀다.
In Greek mythology, the Hecatoncheires (Greek: Ἑκατόγχειρες, translit. Hekatónkheires, lit. "Hundred-Handed Ones"), or Hundred-Handers, also called the Centimanes,[1] (/ˈsɛntɪmeɪnz/; Latin: Centimani), named Cottus, Briareus (or Aegaeon) and Gyges (or Gyes), were three monstrous giants,
헤카톤케이레스. 헤카톤. 일백. 케이르. 핸드 손. 손 백개. 센티메인즈. 세명 이야. 콧투스, 브리아레우스. 기게스.
The last words attributed to Archimedes are "Do not disturb my circles", a reference to the circles in the mathematical drawing that he was supposedly studying when disturbed by the Roman soldier. This quote is often given in Latin as "Noli turbare circulos meos," but there is no reliable evidence that Archimedes uttered these words and they do not appear in the account given by Plutarch. Valerius Maximus, writing in Memorable Doings and Sayings in the 1st century AD, gives the phrase as "…sed protecto manibus puluere 'noli' inquit, 'obsecro, istum disturbare'" ("…but protecting the dust with his hands, said 'I beg of you, do not disturb this'"). The phrase is also given in Katharevousa Greek as "μὴ μου τοὺς κύκλους τάραττε!" (Mē mou tous kuklous taratte!)
아르키메데스 의 마지막 말들, 나의 원들을 망치지 말라. 원들이란 도형 그리면서 수학풀이 한다는거고. 라틴어로 놀리 투르바레 키르쿨로스 메오스. 라고 인용되나, 증거는 없다 이말했다는. 플루타르코스 에도 없도. 1세기 라틴 사람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의 글에서는 이런 말을 전한다. 손으로 그려진 땅구역을 막으면서, "당신에게 빈다, 이걸 망치지 말라" 이 문구는 카따레부사 그리스어(코이니 그리스어 시대 진짜 그리스어라며) 로 도 전해진다.
5 For the art of mechanics, now so celebrated and admired, was first originated by Eudoxus and Archytas, who embellished geometry with its subtleties, and gave to problems incapable of proof by word and diagram, a support derived from mechanical illustrations that were patent to the senses. For instance, in solving the problem of finding two mean proportional lines, a necessary requisite for many geometrical figures, both mathematicians had recourse to mechanical arrangements, adapting to their purposes certain intermediate portions of curved lines and sections. 6 But Plato was incensed at this, and inveighed against them as corrupters and destroyers of the pure excellence of geometry, p473 which thus turned her back upon the incorporeal things of abstract thought and descended to the things of sense, making use, moreover, of objects which required much mean and manual labour. For this reason mechanics was made entirely distinct from geometry, and being for a long time ignored by philosophers, came to be regarded as one of the military arts.
플루타르코스 의 열전에서, 마르켈루스 편에, 아르키메데스 가 수학 기하학 을 이용해서 전쟁 도구를 만드는걸, 비판 하걸랑 이사람이. 걍 플루타르코스 는 착해. 걍 착하기만 해 얘 글을 보면. 걍 깊은 생각은 없어. 전쟁은 나빠, 저 무기 고도화 한 애도 나빠. 아르키메데스 나쁜 놈, 이짓 하는거야. 그런데, 이 개인적인 생각에 무게를 더하기 위해, 플라톤 을 끌어들이는거야. 야 얘 이래저래 웃긴데 ㅋㅋㅋ.
미케닉스, 기계구조학 의 학문이, 지금은 환영받고 찬탄되는데, 에우독소스 와 아르퀴타스 에서 시작되었다.
Archytas (/ˈɑːrkɪtəs/; Greek: Ἀρχύτας; 435/410–360/350 BC[2]) was an Ancient Greek philosopher, mathematician, astronomer, statesman, and strategist. He was a scientist of the Pythagorean school and famous for being the reputed founder of mathematical mechanics, as well as a good friend of Plato
Eudoxus of Cnidus (/ˈjuːdəksəs/; Ancient Greek: Εὔδοξος ὁ Κνίδιος, Eúdoxos ho Knídios; c. 408 – c. 355 BC[1][2]) was an ancient Greek astronomer, mathematician, scholar, and student of Archytas and Plato.
아르퀴타스 는 피타고라스 학파고, 플라톤 과 친구에 동년배 인듯 하고, 크니도스 의 에우독소스. 얜 플라톤의 아들뻘에 학생이었고.
저 둘이, 기하학에 미묘함을 더했다는겨. 말과 도형으로 증명불가한 문제에 대해, 감각에 해당하는 기계적구조적 설명들에서 먼가를 갖고 와 보탰다는겨. 이러면서 기하학과 수학이 현실의 지금식 엔지니어링 에 쓰이게 되었다는겨.
플라톤이, 저런거에 인쎈쓰트 인베이드, 화내고, 비난 했다는거야. 수학 기하학은 순수한거지. 왜 저걸 현실에 써먹느냐며. 즉 수학 기하학으로 지금 전쟁 무기들을 만드는게 얘들 부턴데, 이걸 이어서 아르키메데스 가 그 절정을 보여준거고, 플라톤 은 이걸 혐오했고 등돌렸어요.
얜, 플라톤 을 공부했다는 애가. 완벽히 거짓말 을 하는겨 이게. 제대로 안 본건지 일부러 사기짓하는건지.
폴리테이아 에 정확하게 나오는 말이야. 수호자 계급 을 교육 시키는 항목에서, 수학 기하학 을 배워야 해. 교육과목이야. 선분의 비유 E 의 에이콘 D 야. 더하여 아주 분명하게, 저런거 배우면 전쟁에서 써먹기 좋아. 전쟁 에서 이기는게 국가의 의무고, 현실에서도 써먹고, 진짜 찾기 에도 도움이 되고.
분명히 말하는겨 저 부분에서.
당연히 무기 만들면 더 해피한거고.
아르키메데스 가 문제풀어야돼 하며 죽는건 폴리비우스 와 리비우스 전언이고, 이 인간은 그게 아니란겨. 살려주세유 목숨구걸 하다가 병사가 비싸보이는 도구들 뺏을라고 죽였다는겨. 정말 드러운 역사학자야 이 플루타르코스 진짜. 개인적인 감정으로 플라톤 끌여든여 사기 거짓말에 죽음 도 추하게 만들고.
고대부터 이 데모크라시 빠는 애들 공통이
무식 에 거짓말사기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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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웨스턴에도 거짓말 하는 들 많어 가만보믄. 저거 볼때 저게 의심스러웠걸랑. 플라톤이 정말 저 말을 했으까. 나중 보니 개소리더만 저게.
Among Tesla’s quirks was his fondness for pigeons. When living in New York, he spent hours each week feeding pigeons in the park and routinely took home any that were injured so he could nurse them back to health. He often kept the windows open in the hotel suite in which he lived so pigeons could visit when they wished, resulting in a horrible mess. He once even asked a hotel chef to prepare a special mix of seeds for his feathered friends. Tesla’s acquaintances found his passion for pigeons puzzling because the inventor was a well-known germophobe.
테슬라 가 태어난 곳 스밀랸 에서 초딩1년까지 보내고, 바로 옆 도시 고스피치 로 이사갈때, 가장 슬픈게 동물들과의 이별이거든, 비둘기 양 닭 거위. 가장 먼저 비둘기 가 나와. 테슬라 하면, 이 비둘기 여.
브리태니카 에 나오는 걸 보면. 테슬라 의 유별난 행동들 중에, 비둘기에 대한 애착. 뉴욕에서 이사람은 호텔생활을 한거고, 공원에서 비둘기 먹이 주면서 매주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중 상처입은 비둘기는 데려와서 건강할때 까지 간호를 해줬다. 종종 호텔의 창문들을 열고는 들어오는 비둘기들이랑 같이 지냈고 이건 끔찍한 난장판을 만들기도 했다 (비둘기 똥 음청난거지). 그는 호텔 셰프한테 특별 음식을 비둘기친구들 용으로 준비해달라 요구도 했다. 테슬라를 아는 이들은 그의 비둘기에 대한 애착에 당황해한다, 왜냐면, 그 발명가는 알다시피 극도의 세균 결벽증 수준이었으니.
테슬라 가 전염병에서 몇번 살아남고, 위생에 아주 민감해. 결벽증 수준이야 이게. 무지에 대한 분노. 이런 사람이 저 바이러스 투성이 비둘기들에 환장한게 이상하단거지 ㅋㅋㅋ. 아름다와 보이겠지만, 비둘기들이 창문에 몰려들면 그 지역 건물은 새똥 천지여 저게. 저머포비아, 점 이란게, 씨앗이고 작은것에 더가서 세균 바이러스 이고 포비아 공포 고, 청결 깨끗 에 먼지 에 졸 민감하걸랑. 이게 강박증 수준이면 주변 사람은 열라게 피곤해 이게. 청소 하는게 자기 생의 일이고 목적인 사람도 잇어. 청소 만 하는겨 집에서 ㅋㅋㅋ. 청소 가 유일한 낙이야.
그런데, 저런 테슬라 가 유독 저 지저분한 비둘기 들에 대해선 그런 포비아 가 전혀 없는겨. 병든 새들은 항상 데려와서 치료하고 보내고., 음식도 챙겨줘. 테슬라 호텔방 창문에 비둘기들 천진겨 저게.
Tesla never married, but he admitted to falling in love with a very special white pigeon that visited him regularly. He reportedly said, “I loved that pigeon as a man loves a woman, and she loved me. As long as I had her, there was a purpose to my life.” Tesla’s bachelor lifestyle likely stemmed from his belief that intimacy would interfere with his scientific research. “I do not think you can name many great inventions that have been made by married men,” he once observed.
테슬라 는 결혼을 안했지만, 아주 특별한 하양 비둘기 에 사랑을 빠졌다고 인정했다. 그 비둘기는 그를 정기적으로 찾아왔다. 그는 언론에 말하길, "나는 그 비둘기를 러브했다, 마치 남자가 여자를 러브하듯이, 그리고 그녀는 나를 러브했다. 내가 그녀와 있었을때, 나의 삶엔 어떤 목적이란게 생겼다" 테슬라의 총각이라는 순결유지의 생활은 아마 다음과 같은 믿음에서 비롯된 듯 했다, 그런 남녀관계의 친밀함은 그의 과학적 탐구를 방해할 거라는. "결혼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많은 발명들을 말해보라, 없을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 라는 말을 한번 했다.
In 1922 Tesla reported that the white pigeon had flown into his room to tell him that she was dying. Before the bird passed, he said, a white light shone from her eyes, brighter than anything he had ever generated with his electrical machinery. Tesla was heartbroken at her death and told friends that at that moment, he felt his life’s work was finished.
Pigeons were just one of Tesla’s many idiosyncrasies. He was obsessed with the number 3 and engaged in a number of compulsive behaviors around it. For example, he commonly washed his hands three times in a row and would walk around a building three times before entering. Tesla also hated pearls and refused to talk to women who wore them. The reasoning behind these behaviors remains a mystery, though some believe they are signs of obsessive-compulsive disorder.
www.britannica.com/story/nikola-teslas-weird-obsession-with-pigeons
1922년 66세. 테슬라 는 보도되었다, 그 하양 비둘기가 그의 방으로 날아들어와서 그에게 말했다 그녀는 죽고 있다고. 그 새가 죽기전에, 그는 말했다, 흰 빛이 그녀 두눈에서 반짝였다고, 그가 자기 전기 기계에서 만든 어떤 것보다도 밝게. 테슬라는 그녀의 죽음에 심장이갈라지고서, 친구들에게 말했다, 그 순간에, 그는 느꼈다고, 자기의 생의 작업은 끝났음을.
비둘기들은 테슬라의 많은 이디오 싱 크라시, 혼자만이갖고있는기질 중 하나 였다. 그는 숫자 3 에 몰입했고 많은 강박적 행동들이 그 숫자와 연관되었다. 예로 그는 대게 손 씻기도 연속 세번, 건물 들어가기전에 그 주위를 세번 걷곤 했다. 테슬라는 진주들을 싫어했고 그것들을 한 여자들과 말하길 거부했다. 이런 행동의 이유는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몇몇은 그것들이 강박증 의 징후라로 믿는다지만.
테슬라 는 숫자 3 이 우주를 만든 근본 숫자 라고 여겼다고 해. 그런데 이건, 대단한 문장이 아녀, 3이 우주의 기본이다. 플라톤 의 티마이오스,의 우주론 시작이, 삼각형 이야. 면적을 만드는건 삼 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는겨 기하학으로. 이 삼의 삼각형이 모인 정사면체 가 부피 의 시작이고. 우주를 만든 신 데미우르고스 의 최초의 면적과 입체 는 그래서 3 이야.
Upon settling in the city I began a four-years' course in the so-called Normal School preparatory to my studies at the College or Real Gymnasium. During this period my boyish efforts and exploits, as well as troubles, continued. Among other things I attained the unique distinction of champion crow catcher in the country. My method of procedure was extremely simple. I would go in the forest, hide in the bushes, and imitate the call of the bird. Usually I would get several answers and in a short while a crow would flutter down into the shrubbery near me. After that all I needed to do was to throw a piece of cardboard to distract its attention, jump up and grab it before it could extricate itself from the undergrowth. In this way I would capture as many as I desired. But on one occasion something occurred which made me respect them. I had caught a fine pair of birds and was returning home with a friend. When we left the forest, thousands of crows had gathered making a frightful racket. In a few minutes they rose in pursuit and soon enveloped us. The fun lasted until all of a sudden I received a blow on the back of my head which knocked me down. Then they attacked me viciously. I was compelled to release the two birds and was glad to join my friend who had taken refuge in a cave.
그 도시에 정착하자 마자, 나는 4년의 교육과정을 시작했는데, 그건 소위 보통학교 였고, 내가 칼리지 나 레알김나지움 으로 가기 위한 준비과정 이었다. 이 기간동안도 나의 남자아이 짓거리들 과 영웅놀이들은, 문제들을 만들면서, 계속 되었다. 다른 것들 중에서, 나는 독보적인 챔피언이었다 그 지역에선, 까마귀 잡기 에서. 내 사냥법은 아주 간단했다. 나는 숲으로 들어가서 관목들 안에 숨는다, 그리고 흉내낸다 그 새의 소리를. 그러면 두세번의 응답을 새가 해주고, 바로 까마귀 한마리가 내 근처 관목으로 날아 내려온다. 그러면 내가 할 거라곤 종이판자를 던져서 걔 시선을 흩으리고, 바로 뛰어 올라 그걸 잡는다, 그 까마귀가 그 땅에서 벗어날 수 있기 전에. 이런식으로 나는 내가 잡고 싶은 대로 많은 까마귀를 잡았다. 그런데, 한번 어떤 일이 생기고 나서, 나는 그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나는 괜찮은 쌍의 새 두마리를 잡았다 그리곤 친구와 함께 귀가하고 있었다. 우리가 숲을 떠날때, 수천마리 까마귀들이 무서운 라켓모양으로 모였다. 몇분 후에 그들은 날아올라 추격하더니 우리를 에워쌌다. 그 광경은 계속 되었고, 갑자기 나는 내 뒤통수 를 한방 맞고 쓰러졌다. 그리곤 그들은 나을 악랄하게 공격했다. 나는 그 두마리 새들을 놓아줄 수 밖에 없었고, 다행스럽게 친구와 합류했다, 그 친구는 도망가서 동굴속에 피난해있었다.
In the schoolroom there were a few mechanical models which interested me and turned my attention to water turbines. I constructed many of these and found great pleasure in operating them. How extraordinary was my life an incident may illustrate. My uncle had no use for this kind of pastime and more than once rebuked me. I was fascinated by a description of Niagara Falls I had perused, and pictured in my imagination a big wheel run by the Falls. I told my uncle that I would go to America and carry out this scheme. Thirty years later I saw my ideas carried out at Niagara and marveled at the unfathomable mystery of the mind.
교실에는 몇몇 기계적 모형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내 시선을 끌었고 수력 터빈들을 생각나게 했다. 나는 이런 많은 것들을 만들어냈고 그것들을 작동하면서 굉장한 기쁨을 찾았다. 내 삶이 아주 별달랐다는 건 하나의 사례가 보여줄 수 있겠다. 나의 삼촌은 이런 식의 여가를 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나를 두세번 심하게 꾸짖기도 했다. 나는 내가 친숙했던 나이아가라 폭포 의 모습에 홀렸고, 나의 상상속에서 거대한 바퀴가 폭포에 의해 움직이는 걸 그렸다. 나는 나의 삼촌에게 말했다, 미국에가서 그 계획을 실현할거라고. 30년 후에, 나는 나의 아이디어가 나이아가라 에서 실현되는 것을 보았고, 생각세상의 상상못할 미스테리 에 놀랬다.
저때가 열살 이전 이고. 나이아가라 폭포 발전소 가 30년 후에, 테슬라 의 교류 전기 시스템 으로 세워지는 거거든. 이 그림이, 30년 전에, 자기 마음속에 역시나, 찰칵 사진 한장 으로, 찍힌겨. 이 생각세상의 미스테리 라는게 너무 신비 롭다 는겨. 이사람은 이 수신되는 이미지 속에서 산 인간이야.
Adams Power Plant Transformer House in Niagara Falls, New York is a National Historic Landmarked building constructed in 1895. It is the only remaining structure that was part of the historic Edward Dean Adams Power Plant, the first large-scale, alternating current electric generating plant in the world, built in 1895. The building's eponym was Edward Dean Adams, a businessman and entrepreneur in the electrical field.
아담스 발전소 트랜스포머 하우스. 뉴욕 주 나이아가라 폭포 에 현재 있는 건물이고. 에드워드 딘 아담스 발전소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고. 가동은 안되고 지금, 걍 박물관 으로 남아있는 거고.
이게 서기 1895년 에 건립 된거야. 테슬라 가 30년 전에 생각한 이미지 대로.
Niagara Falls Hydraulic Power & Manufacturing Company was an American company, based in Niagara Falls, New York that was the first company to generate hydroelectric power from Niagara Falls in 1882.
모회사 가 나이아가라 수력 발전소 와 제조 컴퍼니. 가 서기 1882년 에 설립한거고, 여기서 발전소 만드는 회사 를 따로 세우고 여기 사장이 에드워드 딘 아담스. 이름 따서 저 건물이고, 모회사 에서 여기 발전소 지으면서, 운하 도 짓고, 다리도 짓고 다른 발전소들도 계속 짓는겨. 그중 지금 유일하게 역사기념관으로 남아있는 최초 의 건물이 아담스 트랜스포머 하우스 이고.
저게, 교류 전기 를 만들어내는세계 최초 의 대규모 발전소 였던거야. 서기 1895년 에.
The war of the currents, sometimes called battle of the currents, was a series of events surrounding the introduction of competing electric power transmission systems in the late 1880s and early 1890s
전류 전쟁. 의 종지부 를 찍는게, 저 나이아가라 폭포 의 교류 발전소 인겨. 이게 기획안이 서기 1892년 에 채택이 되서, 3년 후 완공한거야. 즉, 교류전쟁 은 서기 1892년 에, 웨스팅하우스 의 테슬라 의 승리 로 끝난거고, 이게 나이아가라 폭포 의 아담스 발전소 야.
그래서, 테슬라가, 지금 자기의 생각세상의 미스테리 이야기 할때, 저걸 예로 처음 꺼낸 이유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역사적 흐름의, 가장 상징적인 사건 이 저 나이아가라 폭포 에 바퀴 가 도는거야 저게. 그냥 하는 말이 절대 아냐. 저걸로 에디슨 이 자기가 만든 지금 제너럴 일렉트릭, 지이 에서 물러 난거야.
Even with the Westinghouse propaganda losses, the war of currents itself was winding down with direct current on the losing side. This was due in part to Thomas Edison himself leaving the electric power business.[102] Edison was becoming marginalized in his own company having lost majority control in the 1889 merger that formed Edison General Electric.[103] In 1890 he told president Henry Villard he thought it was time to retire from the lighting business and moved on to an iron ore refining project that preoccupied his time.[3] Edison's dogmatic anti-AC values were no longer controlling the company. By 1889 Edison's Electric's own subsidiaries were lobbying to add AC power transmission to their systems and in October 1890 Edison Machine Works began developing AC-based equipment.
에디슨 이 웨스팅하우스 와의 전류전쟁에서, 교류 에게 밀리는 가장 큰 결정적 한방은 나이아가라 폭포 입찰에서 진거고 교류 승리의 확인 도장이야.
에디슨은 발전소 사업에서 떠나야하는 이유였다 이미 이전에 세력이 기울면서. 에디슨은 1889년에 최대지분을 이미 잃었고 전기 사업에서 물러날 시간이라고 언급했고 철광제련으로 관심을 돌렸었다. 에디슨의 반 교류 관련 정신병적 집착은 더이상 그 회사를 장악할 수 없었다. 이후에 에디슨 전기 자회사 들도, 교류 로 가는거고, 에디슨 머신 웍스 도 1890년 에 교류 장비 를 시작 하는거고.
에디슨 머신 웍스 라는게, 테슬라 가 대학 졸업하고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음 파리 에 취직 했을때 입사한 회사야. 직류전기 장비들 만드는 회사걸랑 이게. 유럽 대륙에 에디슨의 저 지사가 유럽에 있는거고 여기 파리에 테슬라 가 취직했다가, 능력있어서 소개받아서 직접 에디슨의 본사 인 미국에 간겨. 그리곤, 에디슨 의 최대 적 이 된거지 모양새는. 에디슨의 전기 회사 구조 자체 도 바꾸게 한 게 또한 저놈의 나이아가라 여. 테슬라 의 이름을 미국 에 세계 에 알린 획기적 사건이야 저건.
저걸 30년 전에, 사진 한장 으로 먼저 본거야. 그걸 실현한거고. 얼마나 신비롭겄냐고 저 사람 개인에겐. 저때가 1892년 테슬라 36세. 완전히 최고 의 전성기 고, 제이피 모건 이 에디슨 에서 발을 빼고, 테슬라 에게 오는겨.
In May 1892 Westinghouse Electric managed to underbid General Electric on the contract to electrify the World's Columbian Exposition in Chicago and, although they made no profit, their demonstration of a safe and effective highly flexible universal alternating current system powering all of the disparate electrical systems at the Exposition led to them winning the bid at the end of that year to build an AC power station at Niagara Falls. General Electric was awarded contracts to build AC transmission lines and transformers in that project and further bids at Niagara were split with GE who were quickly catching up in the AC field[2] due partly to Charles Proteus Steinmetz, a Prussian mathematician who was the first person to fully understand AC power from a solid mathematical standpoint. General Electric hired many talented new engineers to improve its design of transformers, generators, motors and other apparatus.
서기 1892년 이 나이아가라 폭포 교류 발전소 결정 에, 더하여, 시카고 세계 박람회 가 콜럼버스 신대륙 도착 400주년 으로, 서기 1893년 에 열리는데, 여기 입찰을 웨스팅하우스 의 교류 가 따낸겨. 저가 입찰로 따내서, 이익은 없지만, 교류전기로 박람회의 불을 찬란하게 밝힌겨, 안전성 입증 하고. 발전소 건립되고. 에디슨 의 지이 도, 낑겨서 교류 발전소 건립에 들어가고, 교류가 이긴겨 저게.
그 상징적 사건이 나이아가라 고 그걸 어릴때 아홉살 정도에, 역시나, 마음속 그림으로 보거나 그린겨. 너무나 신비로와 미스테리야. 대체 이게 머냐는겨. 테슬라 에게는 이게 진짜 리얼한 의문이야. 신비로운걸 자기가 직접 겪고 느낀거야.
저게 자기가 만든거냐 걍 누가 준거 내가 받은거냐 저거. 대체 머냐 진짜, 그런데 이사람이, 오컬트 에 빠지지 않은거지.
A transformer is a passive component that transfers electrical energy from one electrical circuit to another, or multiple circuits.
아담스 발전소 다음에 트랜스포머 하우스. 걸랑. 트랜스포머 를 일본이 변압기 에 도란스 하는거여. 일렉트릭 폼 을 트랜스퍼 전달하는겨. 저기서의 폼 은 올터레이팅 커런트 라는 교류 이고. 서킷 이라는게 송수신 하는 노드, 단위 여. 교류를 쏘아보내 높은 압력으로. 저걸 받아서 가정에 보낼때는 압력을 낮춰. 이 주고 받는 쟤들을 트랜스포머 라고 해. 나중에 썰하고 이런건.
저걸, 일본애들 한자 로 전기 이야기 를 보면, 이해가 안돼 저게. 전기 뿐 아니라, 이꽈 모든 이야긴, 번역된 한자 의 한글 로 보면, 이해가 안돼 저게. 영어 그자체로 봐야 이해가 돼. 이게 참 어찌할 수 없는겨. 한글로 중고딩애들한테 과학 조차 가르치면 안돼. 어차피 대학가면, 제대로 보려면 영어로 봐야 할 수 밖에 없걸랑. 어설피 억지 한글로 저걸 배우는건 정말 끔찍한거야. 하물며 인문학. 아 정말 너무 한겨 이게. 이 말 이란 것에 대한, 어찌할 수 없는 역사적 구조적 이 문제. 한글 로는 절대 말이야, 생각이 확장 될 수 가 없어.
언어로 표현 안되면, 그만큼 생각 할 수 가 없어.
그게 비트겐슈타인 이 처음 세상에 내놓은 논리철학 논고 어쩌고 의 핵심이고, 말이란 것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여. 크라튈로스 이후 2300년만에 나온. 저걸 크라튈로스 와 비교 안하는게 싕기한건데. 천재 크립키 가 저걸 주장하는게고. 넘어가고.
영어 해야 해. 한글로 아무리 먼짓해도. 근본적으로 쟤들 을 이해 할 수가 없고, 쟤들을 이해 할 수 없다는건, 문명이 없는겨. 그래서 조선 빠닥 인간들이 개 무지랭이 지능인거고.
I made all kinds of other contrivances and contraptions but among these the arbalists I produced were the best. My arrows, when shot, disappeared from sight and at close range traversed a plank of pine one inch thick. Thru the continuous tightening of the bows I developed skin on my stomach very much like that of a crocodile and I am often wondering whether it is due to this exercise that I am able even now to digest cobble-stones! Nor can I pass in silence my performances with the sling which would have enabled me to give a stunning exhibit at the Hippodrome. And now I will tell of one of my feats with this antique implement of war which will strain to the utmost the credulity of the reader. I was practicing while walking with my uncle along the river. The sun was setting, the trout were playful and from time to time one would shoot up into the air, its glistening body sharply defined against a projecting rock beyond. Of course any boy might have hit a fish under these propitious conditions but I undertook a much more difficult task and I foretold to my uncle, to the minutest detail, what I intended doing. I was to hurl a stone to meet the fish, press its body against the rock, and cut it in two. It was no sooner said than done. My uncle looked at me almost scared out of his wits and exclaimed "Vade retro Satanas!" and it was a few days before he spoke to me again. Other records, how ever great, will be eclipsed but I feel that I could peacefully rest on my laurels for a thousand years.
나는 모든 종류의 기안들과 장비들을 만들었는데 그중에서 내가 만든 아발리스트, 활 은 최고였다. 내 화살들은, 발사되면, 시야에서 사라지곤, 짧은 거리 과녁의 1인치 두께의 소나무판을 뚫었다. 활을 계속 조이면서 나는 내 복부의 피부를 악어의 그것처럼 잘 발달시켰고 그래서 지금 종종 생각하곤 한다, 내가 지금은 조약돌들 조차 소화할 수 있는 건 이때 이런 짓들 때문일거라고. 아, 돌던지던 신기 도 말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그 던지기 기술은 경기장 에서 보여줬다면 환상적이었을텐데. 지금 내가 이 고대의 전쟁 기술과 관련된 위업 중 하나를 말하려 하는데, 이거까지 들으면 독자들은 나의 렬렬한 맹목적 신도 가 될텐데 어쩌냐 이거. 나는 강을 따라서 내 삼촌이랑 걸으면서 연습하고 있었다. 해는 저물고 송어는 팔팔했고 때로 그 한마리가 공중으로 샤프하게 날아오르면 배경의 바위들에 대비되어 윤곽이 뚜렷했다. 물론 어떤 아이나 이런 좋은 여건에선 물고기 하나를 맞출 수 있을게다. 그러나 나는 보다 어려운 임무 를 시도 했고, 나의 삼촌에게 미리 예언을 했다, 아주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을. 내가 돌을 던져서 물고기를 맞추면, 그것의 몸을 바위에 눌러 부딪히게 될것이고, 두 동강이 날것이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로 이루어졌다. 나의 삼촌은 나를 거의 공포속에서 바라보고는 외쳐댔다. "바데 레트로 사타나스!" 사탄이여 뒤로 물러나라! 며칠이 지나서야 그는 다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다른 기록들은, 아무리 대단해도, 묻힐것이지만, 나는 느낀다, 천년동안 영관 을 쓰고 편하게 쉴 수 있었을텐데.(고대에 태어났다면)
III. My Later Endeavors
The Discovery of the Rotating Magnetic Field
At the age of ten I entered the Real Gymnasium which was a new and fairly well equipt institution. In the department of physics were various models of classical scientific apparatus, electrical and mechanical. The demonstrations and experiments performed from time to time by the instructors fascinated me and were undoubtedly a powerful incentive to invention. I was also passionately fond of mathematical studies and often won the professor's praise for rapid calculation. This was due to my acquired facility of visualizing the figures and performing the operations, not in the usual intuitive manner, but as in actual life. Up to a certain degree of complexity it was absolutely the same to me whether I wrote the symbols on the board or conjured them before my mental vision. But freehand drawing, to which many hours of the course were devoted, was an annoyance I could not endure. This was rather remarkable as most of the members of the family excelled in it. Perhaps my aversion was simply due to the predilection I found in undisturbed thought. Had it not been for a few exceptionally stupid boys, who could not do anything at all, my record would have been the worst. It was a serious handicap as under the then existing educational regime, drawing being obligatory, this deficiency threatened to spoil my whole career and my father had considerable trouble in railroading me from one class to another.
3. 나의 후반 노력들.
회전 자기장의 발견
At the age of ten I entered the Real Gymnasium which was a new and fairly well equipt institution. In the department of physics were various models of classical scientific apparatus, electrical and mechanical. The demonstrations and experiments performed from time to time by the instructors fascinated me and were undoubtedly a powerful incentive to invention. I was also passionately fond of mathematical studies and often won the professor's praise for rapid calculation. This was due to my acquired facility of visualizing the figures and performing the operations, not in the usual intuitive manner, but as in actual life. Up to a certain degree of complexity it was absolutely the same to me whether I wrote the symbols on the board or conjured them before my mental vision. But freehand drawing, to which many hours of the course were devoted, was an annoyance I could not endure. This was rather remarkable as most of the members of the family excelled in it. Perhaps my aversion was simply due to the predilection I found in undisturbed thought. Had it not been for a few exceptionally stupid boys, who could not do anything at all, my record would have been the worst. It was a serious handicap as under the then existing educational regime, drawing being obligatory, this deficiency threatened to spoil my whole career and my father had considerable trouble in railroading me from one class to another.
회전 자기장, 이 인류 문명의 발견 품목 중에 최고의 열개 를 뽑아라 하면, 빠지면 섭한거고, 이걸 현실로 활용한게 이탈리아 갈릴레오 페라리스 와 테슬라 여. 테슬라 가 빠르고, 서로 독자적이고, 페라리스 는 일찍 죽었고, 테슬라 는 이후 길디드 에이지 라는 미국 문명 한복판에 있던거고. 테슬라 가 유명한건 이 회전자기장 의 교류 의 테슬라 모터 라는 유도전동기 야.
10세에 나는 레알김나지움 에 들어갔다 거기는 신설이고 잘 갖춰진 기관 이었다. 물리학 분야에선 다양한 모델의 고급진 과학 장비 가 전기적 이고 기계적인 것들이 있었다. 데모 와 실험은 때때로 강사들에 의해 시연되었는데 나를 홀렸고, 두말할것없이 발명에 대한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나는 또한 열정적으로 수학적인 과목들을 좋아했고 종종 교수의 칭찬을 받았다 계산 빨리한다고. 이것은 내가 후천천으로 획득한 능력에 기인한건데, 그건, 모습들을 시각화 하는것, 그리고 작동들을 시행하는 능력 이다, 보통의 직관적인 방식이 아닌, 실제 생활 속에서 행해지는 리얼한 것처럼 하는. (먼말이냐면) 복잡한 수준 인것도, 그것은 나에게 절대적으로 똑같다, 내가 그 상징들을 보드판에 쓰든, 그것들을 내 생각속 시야 에서 그려서 보든. 그러나 손으로 그려 표현하는 것은, 많은 시간의 과정동안 노력했지만, 참아낼 수 없을 정도로 불편했다. 이것은 눈에 띌만큼 두드러져서, 이 면은 가족 식구들 중에서 가장 앞섰다. 아마도 나의 반감은, 단지 훼방없는 생각세상이 더 편하고 좋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일게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예외적으로 멍청한 아이들이 (그 학년에) 없었다면 나의 성적은 아마 최악의 꼴찌 였을 게다. 그것은 (쓰고 그리면서 표현하는것) 심각한 핸디캡이었다 당시 존재했던 교육 체계의 시대에선, 그리는 것이 의무적이라니, 이것에 대한 부족함은 나의 모든 과정을 망칠만큼 심각해서 나의 아빠는 나를 한 수업과정에서 다른 과정으로 옮기는데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되었다.
레알 김나지움. 비트겐슈타인 이 레알슐레 를 갔잖아 린츠의. 중학교 이고, 고딩 이 김나지움 이고, 레알 김나지움 은 둘의 합 이야. 중고등학교 전체 로 보면 되고. 4년제의 노말 스크울 이 초딩이었고.
테슬라 의 능력이, 슈퍼내추럴한 능력이 말이야, 생각속에서 시각화 하는거야. 생각 세상에서 판을 펼쳐서 초스피드로 쓰면서 푸는겨 그리는거고. 단지 일반인들의 직관 적 구조의 생각이 아냐. 아주 리얼하게 머리속에서 시각 작업을 하는거야. 이게 전혀 감이 안잡히는거야 우리가 듣보는게. 이전에 내가 말했듯이, 테슬라 만의 초능력 이여 이게. 이걸, 인트로스펙트, 자기가 익스커젼, 먼가 눈감고 보이는 것을 고정시켜서 좇아가면서 따라가는 훈련 을 하면서, 얻어낸 능력 이야.
테슬라 가 자기의 능력 취득법 을 노골적 으로 드러낸겨 저게. 저거 너무나 귀한 문장이야. 이걸 부디 눈치 채도록 해. 나는, 이런 문장 을 어디서 듣본 적이 없어. 이건, 아무도 지금 몰라요 이걸. 아 당췌 니덜 앉혀놓고 먼말을 해대는건지.
저건, 하면 돼. 아 저거정말 내가 더 일찍 알았으면. 아 나는 저거 먼말인지 알겄더라고.
그런데, 테슬라 는, 일반인들처럼, 공책 에 쓰면서 그리면서 이해하는 걸, 이걸 못하는겨 ㅋㅋㅋ.
우리가 당연히 생각하는 너무나 평범한 교육방법, 당연히 쓰고 그리면서 계속 손 과 눈 과 소리 내고 듣고 를 반복 하는게 공부고 공부는 반복 이다 해대는거잖니 테슬라 때고, 지금도 여전히.
테슬라 는 그게 먼 말인지 모르는겨. ㅋㅋㅋ. 이 작동 체계가 지금 전혀 달라서, 같은 언어를 쓰더라도, 테슬라 와 안테슬라들은, 먼말인지 몰라 서로. 저게 자기만의 문법 이란거야. 각각의 문법 을 이해하는 버릇을 들여. 내가 세상 모든 이들의 문법을 전부 다 심오하게 이해하는 경지 잖니. 아 니덜은 스승님 위대하신 석학 곱하기 천만의 제곱의 무량수를 보는 안목이 전혀 없어서 나가린데 이거.
우습게도, 테슬라 가, 공책에 쓰면서 공부하는게 이게 안돼. 머리속으로 그림그리고, 수학문제 푸는건 바로 되는데, 공책에 그리면서 답을 내라. 뭔말인지 모르는겨, 아예 표현이 안돼. 머리속의 풀이과정은 양자역학의 세상인데, 현실로 공책에 풀어 내라는건 고전물리학인겨 이게. 지진아 취급을 받는겨 초기에. 그러다가, 이해가 되면서, 머리속 에 있는걸 표현 하는 법을, 훈련하면서 할 수 있게 된거야 이게. ㅋㅋㅋ. 남들 수준에 맞추게 된겨 이런걸.
저걸 돌아다니는 자서전 번역한걸 보믄, 그림 그리는 실력 이 없어서, 머 미술 점수 를 꽝 맞은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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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second year at that institution I became obsessed with the idea of producing continuous motion thru steady air pressure. The pump incident, of which I have told, had set afire my youthful imagination and imprest me with the boundless abilities of a vacuum. I grew frantic in my desire to harness this inexhaustible energy but for a long time I was groping in the dark. Finally, however, my endeavors crystallized in an invention which was to enable me to achieve what no other mortal ever attempted.
거기 레알김나지움 2학년때 나는 일정한공기압력하에서 지속되는 움직임을 일으키는 생각 에만 꽂혔다. 내가 언급했던 펌프사건은 내 어린 환상에 불을 질렀고 나를 진공의 무한한 능력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나는 이(진공이라는) 꺼지지않는 에너지를 코꿰어 사용하고픈 욕망에 미칠지경이었지만, 오래도록 나는 어둠속에서 헛손질 했었다. 그러나 마침내, 나의 노력은 발명으로 성과를 이뤘다. 그 발명은 어떤 생체인간도 시도해 본적이 없는 성과물 이었다.
Imagine a cylinder freely rotatable on two bearings and partly surrounded by a rectangular trough which fits it perfectly. The open side of the trough is closed by a partition so that the cylindrical segment within the enclosure divides the latter into two compartments entirely separated from each other by air-tight sliding joints. One of these compartments being sealed and once for all exhausted, the other remaining open, a perpetual rotation of the cylinder would result, at least, I thought so. A wooden model was constructed and fitted with infinite care and when I applied the pump on one side and actually observed that there was a tendency to turning, I was delirious with joy. Mechanical flight was the one thing I wanted to accomplish altho still under the discouraging recollection of a bad fall I sustained by jumping with an umbrella from the top of a building. Every day I used to transport myself thru the air to distant regions but could not understand just how I managed to do it. Now I had something concrete--a flying machine with nothing more than a rotating shaft, flapping wings, and--a vacuum of unlimited power! From that time on I made my daily aerial excursions in a vehicle of comfort and luxury as might have befitted King Solomon. It took years before I understood that the atmospheric pressure acted at right angles to the surface of the cylinder and that the slight rotary effort I observed was due to a leak. Tho this knowledge came gradually it gave me a painful shock.
상상해봐라, 한 실린더가 자유롭게 회전을 해 두개의 베어링들 을 접하고, 그리고 부분적으론 긴 직사각형의 트러프, 구유 모양에 둘러쌓였는데 아주 정확히 들어가 있어. 그 말구유 모양의 트러프 의 열린 면은 칸막이 고 닫혀있고 실린더의 닫힌 부분은 뒷부분을 두 부품으로 나누는데 서로는 완전히 분리되는거야 공기로 조이는 접합부에 의해. 이 구성부품들의 하나가 다 쓰여지면, 다른 남아 있는 열린 부품이 계속 실린더의 회전을 하게 되는거지 그 결과로, 적어도 나는 그리 생각했어. 나무로 된 모형은 만들어지고 무한한 관심도로 조립되서 내가 그 펌프를 한쪽에서 작동하고 실재로 관찰하는 거지 회전하는 걸. 그러면 나는 기뻐서 몽롱할 지경인거고. 기계적인 비행은 내가 이루어내고 픈 하나 였지만 아 이건 여전히 생각만 해도 비참하다, 나는 건물 꼭대기에서 우산을 들고 뛰어내려서 추락했던 기억에. 매일 나는 나 자신을 공기를 가르며 먼 지역들로 수송을 해버릇 했지만 그걸 제대로 하는 방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이야 구체적인 먼가를 알았다 - 비행하는 기계, 단지 회전하는 샤프트 와 퍼덕거리는 날개들 - 진공의 무한한 힘! 때로 나는 매일 항공 비행을 했다 솔로몬 왕에게 적합할 듯한 편하고 사치스런 기구를 타고. 공기 압력이 실린더의 표면에 직각으로 작용하는 것, 내가 관찰했던 사소한 회전력은 빈 틈 때문인 것 들을 이해하는 것은 몇년이 지나서였다. 이런 지식은 천천히 알게되었지만, 그건 나에겐 고통스런 충격이었다.
테슬라 모토 라는 유도전동기 의 첫 모델 이, 레알 김나지움 2학년 11세때 한 상상 에서 만든겨 이게. 이 모델 시작을 말하는거고.
걍 넘어가. 설명하기 졸 구찮으니까.
근데 중요한건, 저런걸, 테슬라 가 실제 만들고 그리고 하는게 아냐. 걍 생각 에서 다 끝나는겨. 나무로 된 조립은 해봤을거고. 솔로몬 킹 처럼 수레에 타고 돌아다니는 것도, 모두 완벽한 상상 놀이야. 그런데, 이 인간은, 그 상상을 리얼 하게 했다는겨 저게. 우산을 들고 떨어졌다는 건 진짜일라나. 여하튼 이 인간은 상상 을 현실처럼 리얼하게 한 거야.
충격 느끼는것도, 지식 을 쌓으면서 상상 속에서 수정을 하는겨. 상상 속에서 오류를 수정하고 개량하고 충격 먹었다는거고.
가볍게 보면, 걍 미친 놈 의 정신병 걸린 이야기 로 취급 되는거고.
그런데 저런 미친 짓이 완벽히 현실로 구현이 된거고, 우리는 저 테슬라 의 어릴때 떠올린 이미지 로 지금 문명을 사는겨 이게 ㅋㅋㅋ.
I had hardly completed my course at the Real Gymnasium when I was prostrated with a dangerous illness or rather, a score of them, and my condition became so desperate that I was given up by physicians. During this period I was permitted to read constantly, obtaining books from the Public Library which had been neglected and entrusted to me for classification of the works and preparation of the catalogues. One day I was handed a few volumes of new literature unlike anything I had ever read before and so captivating as to make me utterly forget my hopeless state. They were the earlier works of Mark Twain and to them might have been due the miraculous recovery which followed. Twenty-five years later, when I met Mr. Clemens and we formed a friendship between us, I told him of the experience and was amazed to see that great man of laughter burst into tears.
나는 레알 김나지움 에서 내 교육과정을 아주 겨우 마칠까 말까, 그때 보면 나는 위험한 질병 이 하나인지 여러개로 섞여선지 하튼 내 컨디션은 아주 절망적이어서 의사가 포기했지. 이 시기에 나는 읽는 건 허락이 되어서, 공공 도서관에서 책을 얻었는데, 그 도서관은 방치되었었고 그래서 나에게 책들 분류 와 목록 작업을 맡겼다. 어느날 나는 새 문학책 몇권을 받았는데, 이전에 내가 읽어본적이 없던 것이었고, 나는 아주 홀딱 빠져서, 나의 희망없는 비참한 상태를 완전히 잊을 지경이었다. 그 책들은 마크 트웨인 의 초기 작품들이었고, 그 책들 이 아마도 뒤이어 기적같은 회복을 하게 된 이유일 지도 모른다. 그후 25년 이 지나서, 나는 미스터 클레멘스 를 만났고, 우리는 우리 둘 사이에 우정을 형성했고, 그때 나는 그에게 그 경험을 말했는데 놀랬다 나는, 그 위대한 인간이 웃다가 눈물을 터뜨려 우는 것을 보면서.
Samuel Langhorne Clemens (November 30, 1835 – April 21, 1910),[1] known by his pen name Mark Twain,
마크 트웨인 은 필명이고, 이름은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 걸랑. 테슬라 가 1856년 이니까 21세 많은 아빠뻘이야. 톰소여 가 1876년 이야 다음이 허크 고. 톰소여 나오기 전이고, 초기 작품들을 다 죽을 지경에서 본겨. 책보면서 힘을 얻어 살아남았다는거고
문장을 보면, 웃다가, 눈물이 펑펑 터진겨 저게. 웃긴게 아니라 너무나 슬픈거지 트웨인이 듣다보니. 트웨인 도 슬픈사람 이거든.
My studies were continued at the higher Real Gymnasium in Carlstadt, Croatia, where one of my aunts resided. She was a distinguished lady, the wife of a Colonel who was an old war-horse having participated in many battles. I never can forget the three years I past at their home. No fortress in time of war was under a more rigid discipline. I was fed like a canary bird. All the meals were of the highest quality and deliciously prepared but short in quantity by a thousand percent. The slices of ham cut by my aunt were like tissue paper. When the Colonel would put something substantial on my plate she would snatch it away and say excitedly to him: "Be careful, Niko is very delicate." I had a voracious appetite and suffered like Tantalus. But I lived in an atmosphere of refinement and artistic taste quite unusual for those times and conditions. The land was low and marshy and malaria fever never left me while there despite of the enormous amounts of quinin I consumed. Occasionally the river would rise and drive an army of rats into the buildings, devouring everything even to the bundles of the fierce paprika. These pests were to me a welcome diversion. I thinned their ranks by all sorts of means, which won me the unenviable distinction of rat-catcher in the community. At last, however, my course was completed, the misery ended, and I obtained the certificate of maturity which brought me to the cross-roads.
나의 학업들은 계속 되었다 고등 레알김나지움 에서, 크로아티아 의 칼슈타트 였는데, 거긴 나의 숙모들 중 한명이 거주했다. 그녀는 독특한 여인이었다, 많은 전투에 참전했었던 늙은 기마병이었던 영관급 의 부인이었다. 나는 그들의 집에서 보냈던 3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전시의 요새는 그리 엄격한 규율하에 있지는 않았다. 나는 카나리아 새처럼 음식을 먹었다. 모든 음식들은 최고의 품질이었고 맛있게 차려졌지만 양은 적었다 천퍼센트. 햄 조각들은 내 숙모가 잘랐는데 티슈 종이 같았다. 그 장교가 좀 많이 내 접시에 놓으려 하면 그녀는 잽싸게 쳐내고는 흥분한 채 그에게 말했다: "조심하셔, 니코 는 지금 아주 예민해." 나는 굉장한 식욕을 가졌었고 그래서 탄탈루스 처럼 괴로웠다. 그러나 나는 정제된 분위기 와 예술적 취향속에 살았는데 그당시 그런 환경들에서 보면 아주 별다른 거였다. 땅은 저지대였고 습지여서 말라리아 열병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았고, 퀴닌 약은 엄청나게 먹어댔다. 때로 강물이 차오르면 쥐 부대들이 건물들로 몰려와서 모든 것을 먹어치웠다 하물며 지독한 파프리카 더미들 조차. 이 페스트(숙주)들은 나에게 반가운 취미꺼리 였다. 나는 모든 종류의 수단을 다해 그들의 세력을 줄였고, 그 지역에서 나는 쥐잘잡는 인간 이란 낙인을 얻었다. 여하튼 결국 나의 교육과정은 마쳤고 비극은 끝났고, 성숙함의 자격증을 얻었고 그것은 나를 십자로 갈림길로 인도했다.
칼슈타트, Karlovac 지금 칼로와츠, 수도 자그레브 의 바로 왼쪽 도시고, 여기서 3년 고등학교과정을 다녔고, 집은 숙모 집이었고, 몸은 약해서 먹는걸 조심했다는 거인듯 하고. 쥐 잡아도 시큰둥 한겨. 전염병에 대한 인식이 없어 저때도.
During all those years my parents never wavered in their resolve to make me embrace the clergy, the mere thought of which filled me with dread. I had become intensely interested in electricity under the stimulating influence of my Professor of Physics, who was an ingenious man and often demonstrated the principles by apparatus of his own invention. Among these I recall a device in the shape of a freely rotatable bulb, with tinfoil coatings, which was made to spin rapidly when connected to a static machine. It is impossible for me to convey an adequate idea of the intensity of feeling I experienced in witnessing his exhibitions of these mysterious phenomena. Every impression produced a thousand echoes in my mind. I wanted to know more of this wonderful force; I longed for experiment and investigation and resigned myself to the inevitable with aching heart.
그 모든 기간동안 나의 부모들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결심이, 내가 성직을 품도록 하려는. 성직자가 된다는 단순한 생각 은 나를 두려움으로 가득 채웠다. 나는 전기에 강렬한 흥미를 갖게 되었었다 나의 물리학교수의 자극적인 영향으로. 그는 타고난 사람이었고 종종 자기가 발명한 기구로 그 원칙들을 보여줬다. 이들 기구중에 내가 기억하는 하나는 자유롭게 회전하는 구체 모양에, 주석으로 코팅 된 거였는데 고정된 기계에 연결되었을때 빨리 회전을 했다. 이런 미스테리한 현상들을 만드는 그의 실험을 내가 봤을때의 그 강렬한 느낌에 딱맞는 표현을 내가 한다는게 지금 불가능하다. 그때의 모든 인상들은 내 마음 속에 천가지의 메아리를 울렸다. 나는 더 알고 싶었다 (전기라는) 이 원더풀한 힘에 대해서; 나는 실험과 탐구를 갈망했고, (그러나) 아픈 심정으로 어찌할 수 없이 물러나야 했다.
Just as I was making ready for the long journey home I received word that my father wished me to go on a shooting expedition. It was a strange request as he had been always strenuously opposed to this kind of sport. But a few days later I learned that the cholera was raging in that district and, taking advantage of an opportunity, I returned to Gospic in disregard of my parents' wishes. It is incredible how absolutely ignorant people were as to the causes of this scourge which visited the country in intervals of from fifteen to twenty years. They thought that the deadly agents were transmitted thru the air and filled it with pungent odors and smoke. In the meantime they drank the infected water and died in heaps. I contracted the awful disease on the very day of my arrival and altho surviving the crisis, I was confined to bed for nine months with scarcely any ability to move. My energy was completely exhausted and for the second time I found myself at death's door. In one of the sinking spells which was thought to be the last, my father rushed into the room. I still see his pallid face as he tried to cheer me in tones belying his assurance. "Perhaps," I said, "I may get well if you will let me study engineering." "You will go to the best technical institution in the world," he solemnly replied, and I knew that he meant it. A heavy weight was lifted from my mind but the relief would have come too late had it not been for a marvelous cure brought about thru a bitter decoction of a peculiar bean. I came to life like another Lazarus to the utter amazement of everybody.
내가 집으로 돌아갈 긴 여행을 준비하자마자, 나의 아빠는 내가 사냥하러 가길 원한다는 전언을 나는 받았다. 그건 이상한 요구였다 왜냐면 그는 언제나 그런 활동에 강력히 반대해왔었으니까. 그런데 며칠후에 나는 알았다 콜레라 가 그지역에 퍼졌다는걸. 그래도 (가는 이동편의) 기회를 잡아서 고스피치 로 돌아갔다 내 부모의 바램을 무시하고. 믿을수 가 없다 얼마나 그야말로 무지한 사람들이었던가 당시. 15년 에서 20년 을 간격으로 그 지역에 지독하게 벌어진 것의 이유에 대한 무지. 그들은 그 끔찍한 매개체들이 공기를 통해서 전달되는 거라 생각했고, (쫓아내려고) 공기를 지독한 냄새로 채웠고 연기를 피웠다. 그런 와중에 그들은 오염된 물을 마셨고 죽어서 산더미를 이뤘다. 나는 도착한 그 당일에 그 끔찍한 병에 걸렸고, 그 위기에서 살아남았지만, 9개월동안 침대에만 있었고 움직일 힘도 없었다. 나의 에너지는 완벽하게 사라졌고, 나는 두번째 죽음의 문에 있는 나자신을 보았다. 마지막 시간(죽음) 이라 생각되는 어느 순간에, 나의 아빠가 그 방으로 달려왔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의 창백한 얼굴을 본다, 그가 나를 복돋우려고 확신에 찬 톤으로 말할때의. "아마도" 나는 말했다, "나는 나아질거 같아 당신(아빠)이 나를 엔지니어링 공부하게 해준다면" "당신(아들)은 세상에서 최고의 기술학교를 갈거야" 그는 엄숙히 답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그가 진심인걸. 어떤 무거움이 내 마음에서 올려져서 사라졌다. 그러나, 어떤 특이한 콩을 응축한 쓴 액체의 마법같은 치료가 없었다면 구원은 너무 늦게서야 왔을게다. 나는 또다른 라자루스 처럼, 모두를 완전히 놀래키면서, 삶으로 돌아왔다.
you 아 이놈의 유. 2인칭 이 조선반도엔 없는건데. 이게 근본적으로 아 조선 땅이 미개한 조폭 사회가 된거고 이 2인칭 화법의 없음 이. 아주 심각한겨. 이 조선 땅 애들이 가장 모랄이 없고 가장 야만의 마음인 이유이자 결과가 이 2인칭 어법이지. 쟤들은 다우, 튀, 라는 반말 의 2인칭은 사라지고, 존칭의 유, 부, you vous 가 영어 로 남은겨 불어는 너 가 있는거고. 영어는 이게 사라졌어. 즉, 유 는 존칭 이여. 아래 나 위 나, 당신 그대, 존칭 이여 저건. 저 문법의 바닥은. 어른 이나 애 나 유 유 해대는건, 당신, 그대, 하는거야. 똑같은 단어를 님, 너, 당신, 이렇게 나누는건 거짓번역이고 거짓말이야. 쟤들은 당신 그대 하는겨 조선식으로. 번역이란건 쟤들 문화 풍습 그대로 해야 해. 저걸 조선인간 으로 둔갑시켜서 존대 와 하대 로 나눠서 번역하면 당연히 안되는거야. 이 조선 들 번역이 이런 문제의식이 전혀 없어. 그래서 쟤들의 리터러쳐 를 전혀 읽을 수 가 없는겨.
My father insisted that I spend a year in healthful physical outdoor exercises to which I reluctantly consented. For most of this term I roamed in the mountains, loaded with a hunter's outfit and a bundle of books, and this contact with nature made me stronger in body as well as in mind. I thought and planned, and conceived many ideas almost as a rule delusive. The vision was clear enough but the knowledge of principles was very limited. In one of my inventions I proposed to convey letters and packages across the seas, thru a submarine tube, in spherical containers of sufficient strength to resist the hydraulic pressure. The pumping plant, intended to force the water thru the tube, was accurately figured and designed and all other particulars carefully worked out. Only one trifling detail, of no consequence, was lightly dismist. I assumed an arbitrary velocity of the water and, what is more, took pleasure in making it high, thus arriving at a stupendous performance supported by faultless calculations. Subsequent reflections, however, on the resistance of pipes to fluid flow determined me to make this invention public property.
나의 아빠는 나보고 일년을 건강한 육체적 바깥 활동을 하면서 보내라고 강제했고 나는 싫었지만 동의했다. 이 기간의 대부분 나는 산들을 돌아다녔다, 사냥꾼 복장을 하고, 그리고 책들 꾸러미와. 네이쳐 와의 이런 접촉은 내 몸과 마음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나는 생각했고 계획했다 기록, 많은 아이디어를 품었지만 거의 잘못된 법칙이었다. 그 비전은 분명했지만 법칙들에 대한 지식은 아주 제한적이었다. 나의 발명들 중 하나에서, 나는 제안했다 글자들과 문장들을 바다를지나 전달하는 걸, 해저의 튜브를 통하는데, 그 튜브는 수압을 견딜만큼 충분한 힘의 구체로된용기들에 둔다. 에너지를 만드는 공장은, 물이 튜브를 통해 지나가도록 하는건데, 정확하게 모양짓고 설계되었고 다른 모든 특정부분들도 제대로 작동되었다. 단지 하나의 해결안된 부분이, 결과 없이 가볍게 잊혀졌다. 나는 물의 임의의 속도를 감당했고, 그럴수록, 즐거웠다, 그걸 더 고차원으로 만드는게, 그러면서 굉장히 인상적인 의미있는 성과에 다다르고, 계산은 오류가 없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반사적 움직임이 파이프들의 저항을 지나면서 흘러들어와서는, 내가 결심하도록 만들었다, 이번 발명은 공적 자산으로 하자고.
모두 자기가 상상 놀이 하는거고, 상상속에서 다 계산하고 설계 하는거고, 만든건 공공의 자산으로 돌려줘서 자기 욕심 안부리겠다며 흐뭇해 하는거고 혼자. 그런데 이 사람은, 이 공쩍 부분은 어느정도 이때 생각으로 행동해 나중에.
Another one of my projects was to construct a ring around the equator which would, of course, float freely and could be arrested in its spinning motion by reactionary forces, thus enabling travel at a rate of about one thousand miles an hour, impracticable by rail. The reader will smile. The plan was difficult of execution, I will admit, but not nearly so bad as that of a well-known New York professor, who wanted to pump the air from the torrid to the temperate zones, entirely forgetful of the fact that the Lord had provided a gigantic machine for this very purpose.
내 프로젝트들 중 또다른 것은, 적도 주위로 (지구 크기의 거대한) 링 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허공에서 떠 있어야 하고, 회전운동 속에서 반사적 힘들로 그 위치에 자리잡아있어야 한다, 그래서 시속 1천마일의 속도록 여행이 가능할 수 있고 이건 레일 (의 기차)로는 이속도는 불가능하다. 독자는 웃을 것이다. 그 계획은 시행하기 어려웠다. 나는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잘알려진 뉴욕 교수의 것만큼은 나쁘진 않다, 그는 대기를 열대에서 온대 지역으로 펌프질 하고 싶어했는데, 완벽히 잊고 있는 게다 그건, 로어드 가 이미 바로 이목적을 위해서 거대한 기계를 제공해놓았었다는 사실을.
Still another scheme, far more important and attractive, was to derive power from the rotational energy of terrestrial bodies. I had discovered that objects on the earth's surface, owing to the diurnal rotation of the globe, are carried by the same alternately in and against the direction of translatory movement. From this results a great change in momentum which could be utilized in the simplest imaginable manner to furnish motive effort in any habitable region of the world. I cannot find words to describe my disappointment when later I realized that I was in the predicament of Archimedes, who vainly sought for a fixt point in the universe.
또다른 계획은, 더 중요하고 매력적인데, 지구 몸체의 회전하는 에너지에서 힘을 도출하는 것이었다. 나는 발견했었다, 지구 표면의 물체들이 자전 때문에 움직이는 방향 에서 그방향으로 움직이면서도 반대로 맞서는 운동량도 있다는걸. 여기서 나오는 운동량의 거대한 변화를 아주간단하게상상할수 있는 방식으로 세계 어느 거주지에서든 이 에너지를 써먹을 수 있게끔. 나중에 나는 깨달았다, 내가 아르키메데스 의 문장속에 있었다는걸, 그는 허무하게도 우주의 고정점을 찾고 있었다.
At the termination of my vacation I was sent to the Polytechnic School in Gratz, Styria, which my father had chosen as one of the oldest and best reputed institutions. That was the moment I had eagerly awaited and I began my studies under good auspices and firmly resolved to succeed. My previous training was above the average, due to my father's teaching and opportunities afforded. I had acquired the knowledge of a number of languages and waded thru the books of several libraries, picking up information more or less useful. Then again, for the first time, I could choose my subjects as I liked, and free-hand drawing was to bother me no more.
나의 방학이 끝나고, 스튀리아의 그라츠 에 폴리텍 학교에 보내졌다. 거긴 나의 아빠가 찾아낸 가장 오래되고 최고 유명한 기관들 중 하나였다. 그것은 내가 렬렬히 기다린 순간이었고, 나는 내 학업들을 훌륭한 지원하게 시작했다, 그래서 굳게 결심했다 성공하리라고. 나의 이전 학습은 그냥 평균 이상 이었다, 아빠의 가르침과 주어진 기회들 덕택에. 나는 많은 언어들의 지식을 습득했고, 몇몇 도서관들의 책들을 읽으면서 다소 유용한 정보들을 취했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내가 좋아하는 나의 주제들을 고를수가 있었다. 그리고, 손으로 그리며 표현하는것은, 이제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I had made up my mind to give my parents a surprise, and during the whole first year I regularly started my work at three o'clock in the morning and continued until eleven at night, no Sundays or holidays excepted. As most of my fellow-students took thinks easily, naturally enough I eclipsed all records. In the course of that year I past thru nine exams and the professors thought I deserved more than the highest qualifications. Armed with their flattering certificates, I went home for a short rest, expecting a triumph, and was mortified when my father made light of these hard won honors. That almost killed my ambition; but later, after he had died, I was pained to find a package of letters which the professors had written him to the effect that unless he took me away from the Institution I would be killed thru overwork.
나는 결심했다 내 부모에게 놀라움을 주리라고, 그래서 1학년 일년 내내, 나는 규칙적으로 내 일을 오전 3시에 시작했고, 밤 11시까지 계속 했다, 일요일도 공유일도 예외는 없었다. 대부분의 내 동료학생들은 생각들을 쉽게 취했고, 당연히 나는 모든 기록들을 갈아엎었다. 그해 과정에서, 나는 9개의 시험을 치뤘는데, 교수들은 생각했다 내가 가장최고점수보다 그 이상의 점수를 받아도 된다고. 그들이 칭찬하는 성적표를 갖고, 나는 잠깐 쉬러 집에 갔다, 개선식을 기대하면서. 그런데 참담했다 나의 아빠는 이 어렵게 성취한 명예들을 하찮게 취급하더라. 그건 거의 내 야망을 죽여버렸다; 그러나 나중, 그가 죽었을때, 교수들이 그에게 써 보냈던 편지들 뭉치를 보고 나는 아팠다, 그가(아빠) 나를 학교에서 데려가지 않으면 아마 나는 과로로 죽게 될거라는.
Thereafter I devoted myself chiefly to physics, mechanics and mathematical studies, spending the hours of leisure in the libraries. I had a veritable rnania for finishing whatever I began, which often got me into difficulties. On one occasion I started to read the works of Voltaire when I learned, to my dismay, that there were close on one hundred large volumes in small print which that monster had written while drinking seventy-two cups of black coffee per diem. It had to be done, but when I laid aside the last book I was very glad, and said, "Never more!"
그이후 나는 주로 물리학 기계학 그리고 수학적 학업들에 몰입했다, 한가한 시간들은 도서관에서 보내면서. 나는 무엇을 시작하든 끝내야만 하는 분명한 기질을 갖고 있었고, 이 성질은 종종 나를 어렵게 몰아넣곤 한다. 한번은 볼테르의 작품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때서야 알게되었다, 슬프게도, 거의 1백권이라는 걸, 자잘한 글씨로, 그건 괴물(볼테르)이 썼던 것이다 하루에 블랙커피를 72잔씩 먹으면서. 다 읽었을때, 나는 마지막 책을 치우면서 매우 기뻤지만, 말했었다 "더이상은 안해"
My first year's showing had won me the appreciation and friendship of several professors. Among these were Prof. Rogner, who was teaching arithmetical subjects and geometry; Prof. Poeschl, who held the chair of theoretical and experimental physics, and Dr. Alle, who taught integral calculus and specialized in differential equations. This scientist was the most brilliant lecturer to whom I ever listened. He took a special interest in my progress and would frequently remain for an hour or two in the lecture room, giving me problems to solve, in which I delighted. To him I explained a flying machine I had conceived, not an illusionary invention, but one based on sound, scientific principles, which has become realizable thru my turbine and will soon be given to the world. Both Professors Rogner and Poeschl were curious men. The former had peculiar ways of expressing himself and whenever he did so there was a riot, followed by a long and embarrassing pause. Prof. Poeschl was a methodical and thoroly grounded German. He had enormous feet and hands like the paws of a bear, but all of his experiments were skillfully performed with lock-like precision and without a miss.
내 첫 연도의 출현은 나에게 몇몇 교수들의 시선과 우정을 얻게 해주었다. 이들중 로그너 교수는 수학적 주제들과 기하학을 가르쳤었고, 푀슐 교수 는 이론 과 실험 물리학에서 수장 자리였고, 닥터 알레 는 적분을 가르쳤고 미분방정식에 전문이었다. 이 과학자는 아주 뛰어난 강사였다 내가 들어본 중에서. 그는 내 진전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는 강의실에 한두시간 빈번히 남아서 나에게 풀 문제를 주었고 그게 나는 좋았다. 그에게 나는 내가 품었던 비행 기계를 설명했다, 몽상적인 발명이 아니라 정석의 과학적인 원칙을 기반으로 둔 것이었고, 나의 터빈을 통해 실현되었고 앞으로 세상에 드러날 것이다. 로그너 와 푀슐 교수는 호기심있는 사람들이었다. 전자 는 자기를 표현하는데 특이한 방식들이 있었고, 그가 그럴때마다 싸움이 났고 이어 긴 당황스런 침묵이 따랐다. 푀슐 교슈 는 방법론적이었고 완전히 철저한 독일인이었다. 그는 엄청난 발과 손을 지녔는데, 곰 발바닥 같았다, 그러나 그의 모든 실험들은 시계처럼 정밀하게 오차없이 시연되었다.
It was in the second year of my studies that we received a Gramme dynamo from Paris, having the horseshoe form of a laminated field magnet, and a wire-wound armature with a commutator. It was connected up and various effects of the currents were shown. While Prof. Poeschl was making demonstrations, running the machine as a motor, the brushes gave trouble, sparking badly, and I observed that it might be possible to operate a motor without these appliances. But he declared that it could not be done and did me the honor of delivering a lecture on the subject, at the conclusion of which he remarked: "Mr. Tesla may accomplish great things, but he certainly never will do this. It would be equivalent to converting a steadily pulling force, like that of gravity, into a rotary effort. It is a perpetual motion scheme, an impossible idea." But instinct is something which transcends knowledge. We have, undoubtedly, certain finer fibers that enable us to perceive truths when logical deduction, or any other willful effort of the brain, is futile. For a time I wavered, imprest by the professor's authority, but soon became convinced I was right and undertook the task with all the fire and boundless confidence of youth.
2학년 때 우리는 그람 다이나모 를 파리에서 받았다, 그건 말 편자 모양에 얇은층으로 된 자석, 그리고 구리선이 감긴 아마쳐 에 커뮤테이터 였다. 그것이 연결되고, 전류의 다양한 효력들이 보여졌다. 푀슐 교수는 시연을 했었고, 기계를 모터로 사용해보다가 브러시 가 문제가 되서는 안좋게 스파크를 내었다. 내가 보기엔 이런 부품들 없이 모터를 작동하는게 가능할 듯 보였다. 그러나 그가 단언하길 불가능 할텐데 라며, 그러면서 나에게 그 주제에 대해 강연할 영광을 주었고, 말미에 그는 재확언했다 "미스터 테슬라는 아마 굉장한 것들을 이룰거야, 그러나 그래도 이건 못할거야 결코. 그건 지속적으로 당기는 힘을, 중력의 그것처럼, 회전력으로 바꾼다는 건데, 그건 어떤 영구적인 운동 스킴이고 불가능한 아이디어야." 그러나 본능은 지식을 초월하는 어떤 것이다. 우리는, 확실히, 어떤 더 좋은 섬유들을 갖고 있어서, 그것들이 우리가 진짜들 진리들을 인식하게 해준다, 로지칼한 연역, 또는 뇌의 의지에 찬 노력 이 소용없어져 버릴때도. 교수의 권위에 압도되어서 한동안 나는 흔들렸지만, 곧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옳았음을, 그리고 시도했다 그 작업을, 젊음이라는 불같은 온갖 열정과 무한한 자신감을 지니고.
I started by first picturing in my mind a direct-current machine, running it and following the changing flow of the currents in the armature. Then I would imagine an alternator and investigate the processes taking place in a similar manner. Next I would visualize systems comprising motors and generators and operate them in various ways. The images I saw were to me perfectly real and tangible. All my remaining term in Gratz was passed in intense but fruitless efforts of this kind, and I almost came to the conclusion that the problem was insolvable.
나는 처음으로 내 생각 속에서 직류 기계를 그리고 그것을 작동해보고 아마쳐 속의 전류의 변하는 흐름을 따라가봤다. 그리곤 올테네이터 를 상상해보고 그 과정들이 유사한 방식으로 일어나는걸 좇아가봤다. 다음 나는 시각화 했다 모터들과 제너레이터들로 구성된 시스템들을, 그리곤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해보곤 했다. 내가 본 (상상의) 이미지들은 완벽하게 리얼했고 만져졌다. 그라츠 에서의 남은 기간은 찐하게 보내졌지만, 이것에선 성과가 없었고, 그 문제는 해결 될 수 없다는 결론에 거의 다다랐다.
In 1880 I went to Prague, Bohemia, carrying out my father's wish to complete my education at the University there. It was in that city that I made a decided advance, which consisted in detaching the commutator from the machine and studying the phenomena in this new aspect, but still without result. In the year following there was a sudden change in my views of life. I realized that my parents had been making too great sacrifices on my account and resolved to relieve them of the burden. The wave of the American telephone had just reached the European continent and the system was to be installed in Budapest, Hungary. It appeared an ideal opportunity, all the more as a friend of our family was at the head of the enterprise. It was here that I suffered the complete breakdown of the nerves to which I have referred.
서기 1880년, 24세 에 나는 보헤미아 의 프라하 에 갔다, 그 대학에서 나의 학업을 끝내라는 아빠의 바램을 이행하러. 내가 결정적인 진전을 본 것은 그 도시 에서였다. 그 진전이란건, 코뮤테이터를 그 기계에서 떼어내 버리고 그 새 국면에서 그 현상을 연구하는데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결론은 없었다. 다음 해에 내 인생관에 갑작스런 변화가 왔다. 나는 깨달았다 내 부모가 나로 인해 굉장한 희생을 하고 있었다는걸, 그래서 결심했다 그들에게서 짐을 덜고자. 미국 전화 의 물결은 막 유럽 대륙에 닿았고 그 시스템은 헝가리 부다페스트 에 설치 되었다. 그건 아주 좋은 기회로 보였고, 무엇보다 우리 가족 의 한 친구가 그 회사의 경영진에 있었다. 그게 여기였다, 내가 앞에서 언급했던, 신경계가 완벽히 무너진걸 겪은 때가.
What I experienced during the period of that illness surpasses all belief. My sight and hearing were always extraordinary. I could clearly discern objects in the distance when others saw no trace of them. Several times in my boyhood I saved the houses of our neighbors from fire by hearing the faint crackling sounds which did not disturb their sleep, and calling for help.
내가 그 아픈시기동안 겪었던것은 모든 믿음을 초월한다. 나의 시각과 청각은 언제나 유별났다. 나는 떨어져 있는 물체들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었는데, 남들은 그리 볼 수 없었다. 내 어린시절 두세번 나는 우리 이웃의 집들을 화재에서 구했는데, 그들의 잠을 방해않는 희미한 타는 소리들을 내가 듣고서 헬프 를 부르짖었었다.
In 1899, when I was past forty and carrying on my experiments in Colorado, I could hear very distinctly thunderclaps at a distance of 550 miles. The limit of audition for my young assistants was scarcely more than 150 miles. My ear was thus over thirteen times more sensitive. Yet at that time I was, so to speak, stone deaf in comparison with the acuteness of my hearing while under the nervous strain. In Budapest I could hear the ticking of a watch with three rooms between me and the time-piece. A fly alighting on a table in the room would cause a dull thud in my ear. A carriage passing at a distance of a few miles fairly shook my whole body. The whistle of a locomotive twenty or thirty miles away made the bench or chair on which I sat vibrate so strongly that the pain was unbearable. The ground under my feet trembled continuously. I had to support my bed on rubber cushions to get any rest at all. The roaring noises from near and far often produced the effect of spoken words which would have frightened me had I not been able to resolve them into their accidental components. The sun's rays, when periodically intercepted, would cause blows of such force on my brain that they would stun me. I had to summon all my will power to pass under a bridge or other structure as I experienced a crushing pressure on the skull. In the dark I had the sense of a bat and could detect the presence of an object at a distance of twelve feet by a peculiar creepy sensation on the forehead. My pulse varied from a few to two hundred and sixty beats and all the tissues of the body quivered with twitchings and tremors which was perhaps the hardest to bear. A renowned physician who gave me daily large doses of Bromide of Potassium pronounced my malady unique and incurable.
서기 1899년, 43세, 나는 40세가 지났고 콜로라도 에서 내 실험을 수행할때, 나는 550마일 떨어진 곳의 번개 소리를 매우 분명하게 들을수 있었다. 나의 젊은 조수들의 청력의 한계는 끽해야 150마일 이었다. 나의 귀는 13배 더 민감했다. 그러나 그때조차도 신경불안일때 내 청력이 민감할때와 비교하면, 그 귀는 돌처럼 귀머거리였다. 부다페스트 에서 나는 내 방옆의 연이은 세 개의 방들의 시계 틱틱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파리 하나가 그방의 테이블에 닿는 소리도 내 귀에 둔탁 소리를 내었다. 몇마일 떨어진 거리의 지나가는 바퀴소리 도 내 온 몸을 흔들었다. 이삼십 마일 떨어진 기차 휘슬 소리는 내가 앉은 벤치 나 의자 를 아주 강하게 진동하게 했고, 그 고통은 참을 수 없었다. 내 발 아래의 땅은 계속 흔들렸다. 나는 내 침대밑에 고무 쿠션들을 대어서 조금의 충격이라도 막아야만 했다. 가깝고 먼 곳에서의 울리는 소리들은 종종 사람 말소리의 단어들 처럼 들렸고, 내가 이 단어들을 분해해서의미없게만들어버리지않았다면 나는 공포스러웠을게다. (나한테만 나타나는) 해의 광선들은 주기적으로 등장했는데, 내 뇌 에 강력한 타격을 주어서 나를 아주 괴롭게 했다. 나는 온 힘을 동원해서 다리 아래나 다른 구조물을 지나가야했다, 내가 해골에 끔찍한 압력을 경험했을 때. 밤에 나는 박쥐 의 감각을 지녀서 12피트 삼사미터 거리의 물체를 찾아낼 수 있었다 내 이마의 특이한 감각으로. 내 맥박은 수번에서 260번으로 뛰었고 몸의 모든 조직은 떨렸고 참을 수 없었다. 어느 유명한 의사가 나에게 매일의 과다한 브롬화물의 포타시움 을 주었는데, 말하길 나의 병은 유일하고 치료불가 라고 했다.
It is my eternal regret that I was not under the observation of experts in physiology and psychology at that time. I clung desperately to life, but never expected to recover. Can anyone believe that so hopeless a physical wreck could ever be transformed into a man of astonishing strength and tenacity, able to work thirty-eight years almost without a day's interruption, and find himself still strong and fresh in body and mind? Such is my case. A powerful desire to live and to continue the work, and the assistance of a devoted friend and athlete accomplished the wonder. My health returned and with it the vigor of mind. In attacking the problem again I almost regretted that the struggle was soon to end. I had so much energy to spare. When I undertook the task it was not with a resolve such as men often make. With me it was a sacred vow, a question of life and death. I knew that I would perish if I failed. Now I felt that the battle was won. Back in the deep recesses of the brain was the solution, but I could not yet give it outward expression. One afternoon, which is ever present in my recollection, I was enjoying a walk with my friend in the City Park and reciting poetry. At that age I knew entire books by heart, word for word. One of these was Goethe's "Faust." The sun was just setting and reminded me of the glorious passage:
그때 생리학과 심리학의 전문가들에게 가보지 않은것이 나의 오랜 후회다. 나는 필사적으로 생에 들러붙었다, 그러나 결코 회복한다고 기대하지 않았다. 누가 믿을 수 있겠나, 그렇게 절망적인 육체적 파산자가 놀라운 힘과 끈기의 남자로 변모해서 38년을 하루도 쉼없이 일할수 있게 되고, 몸과 마음이 여전히 강한 자신을 발견하는걸? 나의 경우가 이러한 것이다. 살아서 계속 일하려는 강력한 소망, 그리고 헌신적인 친구의 지원과 운동 은 놀라움을 이루었다. 나의 건강은 돌아왔고 그것과 함께 마음의 활력도 돌아왔다. 그 문제를 다시 공격하면서, 나는 섭섭했다 그 싸움이 곧 끝나는 것에 대해. 나는 여전히 남은 에너지가 많았다. 나는 일을 착수할때, 그것은 단지 사람들이 종종 지니는 결심과는 달랐다. 나에겐, 그것은, 성스러운 맹세였고, 삶과 죽음의 문제였다. 나는 알았다 내가 실패하면 나는 사라지는걸. 지금 나는 느꼈다 전투에서 승리한걸. 뇌의깊은뒷부분의뒤 에 해결책 이었다. (먼말이냐고? 글쎄) 나는 그걸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어느 오후, 지금도 내 기억에서 생생한데, 나는 내 친구와 시티 파크 에서 걸음을 즐기고 있었고 시 를 읊었었다. 그 나이에 나는 진짜 워드 그대로 걍 책들 전체를 진짜로 알았다. 이것들 중에 하나가 괴테 의 파우스트 였다. 태양은 막 저물었고 그건 나에게 찬란한 문구를 되새겼다
"Sie ruckt und weicht, der Tag ist uberlebt,
Dort eilt sie hin und fordert neues Leben.
Oh, dass kein Flugel mich vom Boden hebt
Ihr nach und immer nach zu streben!
Ein schoner Traum indessen sie entweicht,
Ach, zu des Geistes Flugeln wird so leicht
Kein korperlicher Flugel sich gesellen!"
[The glow retreats, done is the day of toil;
It yonder hastes, new fields of life exploring;
Ah, that no wing can lift me from the soil
Upon its track to follow, follow soaring!
A glorious dream! though now the glories fade.
Alas! the wings that lift the mind no aid
Of wings to lift the body can bequeath me.]
태양은 물러나고 낮은 힘을 다하네
그것이 저기로 서두르고, 새로운 삶이 드러나네
아, 날개는 나를 땅에서 들어 올려서
그 길을 따라 따라 올라갈 수 없어!
찬란한 꿈이여! 지금 그 영광들은 졌지만.
아! 마음을 날아올리는 것은 쉬운데
그만큼 몸을 날게 할 날개는 없다니
As I uttered these inspiring words the idea came like a flash of lightning and in an instant the truth was revealed. I drew with a stick on the sand the diagrams shown six years later in my address before the American Institute of Electrical Engineers, and my companion understood them perfectly. The images I saw were wonderfully sharp and clear and had the solidity of metal and stone, so much so that I told him: "See my motor here; watch me reverse it." I cannot begin to describe my emotions. Pygmalion seeing his statue come to life could not have been more deeply moved. A thousand secrets of nature which I might have stumbled upon accidentally I would have given for that one which I had wrested from her against all odds and at the peril of my existence.
내가 이 영적인 워드들을 뱉었을때, 그 아이디어 가 번개 치듯 떠올랐고, 한순간에 진리 는 드러났다. 나는 작대기로 모래밭에 그 도형들을 그렸고, 그것은 6년 후에 내 이름으로 미국 전기엔지니어 협회 앞으로 실렸고, 나의 동료는 그것들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내가 보았던 그 이미지들은 환상적으로 샤프 했고 분명했고 금속과 암석의 견고함을 지녔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여기 내 모터를 봐; 내가 그걸 반대로 돌리는 걸 봐" 작동했다. 내가 우연히 접했을 네이쳐의 천가지 비밀들을, 나는 그것 하나를 위해 주었을 것이다, 그것은 네이쳐 그녀로부터 온갖것으로, 내 존재를 걸고 씨름해왔던 것이었다.
마지막 에서, 테슬라 가 괴테 의 문장들을 읊고 떠오르며 그리는게, 회전 자기장 에 테슬라 모터 여.
저때가 서기 1882년, 36세 여. 공원 에서 저게 떠오르는게. 저긴, 헝가리 부다페스트 여. 미국 가기 전에 이미 떠오른거야.
A rotating magnetic field is the resultant magnetic field produced by a system of coils symmetrically placed and supplied with polyphase currents.[1] A rotating magnetic field can be produced by a poly-phase (two or more phases) current or by a single phase current provided that, in the latter case, two field windings are supplied and are so designed that the two resulting magnetic fields generated thereby are out of phase.[2]
Rotating magnetic fields are often utilized for electromechanical applications, such as induction motors, electric generators and induction regulators.
Tesla claimed in his autobiography that the idea came to him in 1882 when he was walking in a park, drawing it in the sand to illustrate how it worked to a friend.[10] Ferraris wrote about researching the concept and built a working model in 1885.[11] In 1888, Ferraris published his research in a paper to the Royal Academy of Sciences in Turin and Tesla obtained a United States patent (U.S. Patent 0,381,968) for his design
테슬라 는 1882년에 생각났다고 자서전에서 썼다. 이탈리아 페라리스 가 콘셉 찾고 모델 만든게 서기 1885년. 페이퍼 에 실은게 1888년, 테슬라 의 미국 논문이 1887년 이야. 역사에선 페라리스 가 먼저 보인거고, 방식이 서로 다른거고. 웨스팅하우스 는 페라리스 의 특허권도 같이 쓰는거고, 테슬라 것에 더하여.
The battery made by Volta is credited as one of the first electrochemical cells. It consists of two electrodes: one made of zinc, the other of copper. The electrolyte is either sulfuric acid mixed with water or a form of saltwater brine.
알렛산드로 볼타. 가 서기 1800년에 전기를 만들고 인위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발표해. 이사람 이름 따서 전압 이라는 볼트 가 뒤에 생긴겨. 이전엔, 전기라는건, 생명체 에서나 발생하는 거로 생각 했걸랑. 그리고 나서 화학전지 를 만들어내. 아연 과 구리 를 쌓는겨. 전해질은 물섞인 황산이나 소금물.
그러다가, 패러데이 를 통해서, 자석 에서 전기 를 유도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돼. 전기장 과 자기장 의 합 전자기장 이 나오는거고. 필드 라는 장, 부터 이 장 이 머고, 이게 모두 영어로 이해가 되어야 해. 전기장 과 자기장 은 같은 말의 다른표현이 전혀 아니고, 전기장 없는 자기장 은 가능? 자기장 없는 전기장 은 가능? 이런 문장 하나하나 구분해야 해. 같은 전자기장 이라도 서로 애들 영역이 다른겨 이게.
여하튼 자석을 통해서 전기 가 만들어지는겨.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하는겨 이게.
페러데이 디스크 라는게,
www.youtube.com/watch?v=yMA6WwAzLZk
저 영상 보믄, 말굽 자석 사이에 원판을, 손잡이 잡고 막 돌리는겨. 아잉 전류가 흐르넹. 이게 1831년 이야.
Hippolyte Pixii (1808–1835) was an instrument maker from Paris, France. In 1832 he built an early form of alternating current electrical generator, based on the principle of electromagnetic induction discovered by Michael Faraday
히폴리트 픽시. 바로 다음해 1832년, 패러데이 말 듣고, 자기도 나름 전기 를 만들어 보는겨.
www.youtube.com/watch?v=3Z0DzGEBOsU
이사람은 걍 해본겨 심심해서. 저것도, 그냥 자석 사이에 구리선 두면 머 걍 막 도는 그런게 아녀. 손잡이 잡고 저 자석을 막 돌리는겨 이사람은. 여기서 자석의 극이 바뀌면서 당연히 전류가 반대로 흘러. 지속적으로 한방향 반대방향 왔다갔다 하는겨. 요걸, 번역해서 교류 라고 해. 올터레이팅 은 교 가 아녀, 반대 에 반대 여 계속 반대 반대 왔다 갔다 하는거야.
교류 라는걸 이때 알게 된겨. 전기 시작하자 마자 이 픽시 가 교류 라는걸 보게 되는데, 왔다 갔다 이게 머여 통제 가 안되는겨. 이걸 직류 로 바꾸려고 이사람이 만든게 commutator 코뮤테이터 라는 정류기 로 번역되는겨.
www.youtube.com/watch?v=LAtPHANEfQo
직류 모터. 인데. 이 영상이 저 코뮤테이터 라는 정류기 를 제일 잘 보여줘. 저 영상을 잘 봐야 해. 전선 연결된 저 정류기 가 색깔이 바뀌어, 물론 설명을 위해서. 얘가 안바뀌면 발전기에선 교류가 되거나 모터에선 회전이 일방향으로 안돼. 얘를 잡고 있는게 브러쉬 라는겨. 이 브러쉬 bursh 라는거 사이에서 코뮤테이터 가 계속 도는거걸랑. 당연히 닳아. 이게 잘 닳아서 브러쉬 라고 표현한겨. 빗 처럼 빗질하면서 닳걸랑. 별 시안한 한자 번역을 했지만. 저게 아주 제일 잘 설명한 거고.
www.youtube.com/watch?v=CWulQ1ZSE3c
요게 정류기 설명이 그림이 별로라서, 한데 얘가 더 기초적 설명일텐데, 얜 한글번역이 없을낀데.
A dynamo is an electrical generator that creates direct current using a commutator.
다이나모, 라는게, 픽시 가 만든 것 부터, 코뮤테이터 사용하는 정류기 라며, 다이나모 하는겨. 그리스어 뒤나미스, 힘 이여.
A Gramme machine, Gramme ring, Gramme magneto, or Gramme dynamo is an electrical generator that produces direct current, named for its Belgian inventor, Zénobe Gramme, and was built as either a dynamo or a magneto.
그람 다이나모, 지노베 그람 벨기에사람. 저기에 언급되는. 하튼 막 벼라별 전기 만드는 제너레이터 전기 발전기 를 막막 난드는겨 저때. 저런걸 테슬라 가 고딩때 봐서 신기해하고 그라츠 의 폴리텍 가서도 하는겨. 너무나 신기해서,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었다 하는거고. 미쳐 버린겨 . 저 알수없는 힘을 알아야 겠다며. 콜레라 로 다 죽어가는데, 아빠는 사제 시키려 했걸랑 기본 공부 마치면. 나 공대 보내줘유, 보내주께 라는 말에 힘 생기서 산겨. 저 전기 의 마력 때문에.
코뮤테이터 란게, 뮤턴트 무브 움직이는거고 강력히 변환시키는겨 전기 흐름을, 양쪽 브러쉬가 밀착해서 잡고 있어, 회전하면서 브러쉬에 부딪히면서, 스파크 터지는걸 보는겨. 테슬라 는 저런 부품 없어도 되는거 아닐까 해대는거고. 그러다가, 직류 보다 교류 가 더 효율적인걸 눈치깐거고, 여기서 나온게 회전자기장 을 이용해서 만든 교류 모터. 야. 저 둘이 저걸 따로 같이 만들어. 동시대에발견 한거고. 그러다 테슬라 모터 라는 닉이 붙은거고.
www.youtube.com/watch?v=AQqyGNOP_3o
걍 저런게 있어.
In 1928, Nikola Tesla registered a controversial patent. The patent claimed itself to be the “World’s First Flying Saucer”.
저기 나오는, 테슬라 의 비행 체. 이걸 서기 1928년에 특허내. 비행접시체. 세계 최초의 나는 접시. 라며. 스스로. 이 인간은 학실히, 연구가 덜 되었고. 특출한 인간들 중에서도 더 특출나고, 저 비행체 도 분명 비젼 으로 본겨 저거. 외계인 비행접시 저리 가라걸랑.
콜로라도 니 여하튼 다른 이야긴 다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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