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mas Alva Edison (February 11, 1847 – October 18, 1931)
Nikola Tesla (10 July 1856 – 7 January 1943)
에디슨 은 테슬라 보다 9년 빨라. 1847-1931. 84세. 테슬라 1856-1943. 87세. 테슬라 를 에디슨 에 비교 하는게 아냐.
에디슨 은, 걍 우리식 표현으로, 업짜여, 기술짜 여.
Albert Einstein (14 March 1879 – 18 April 1955) 아인슈타인 은 테슬라 보다 23세 어려. 1955년 76세.
아인슈타인 은 이론물리학자여. 이사람은 이론 이야. 인벤터, 발명가가 아녀. 테슬라 는 발명가 여.
테슬라 는 이미 저때 무선시스템을 머리로 다 생각 한 인간이야. 테슬라 가 꽂힌건, 에너지 를 무선으로 송수신하는겨. 라디오 무선송신이란것도 이미 테슬라 가 특허를 받은거고, 마르코니 는 아일랜드 에서 노바 스코샤 까지의 대서양횡단 하는 무선송수신 을 해. 테슬라 는 에너지 무선송수신 에 미친거고 당시, 저거 내꺼 갖고 라디오 놀이 한다미, 마르코니 가 미국 특허 는 테슬라 때문에 초기엔 못받았어.
엑스선 도 뢴트겐 보다 먼저찍어. 뢴트겐이 발견했다는 기사에 자기가 찍은 사진을 보내. 어드래 찍은겨?
니콜라 테슬라 는 아인슈타인 을 좋아하지 않아.
My Inventions: The Autobiography of Nikola Tesla is a book compiled and edited by Ben Johnston detailing the work of Nikola Tesla. The content was largely drawn from a series of articles that Nikola Tesla had written for Electrical Experimenter magazine in 1919, when he was 63 years old.
나의 발명들: 니콜라 테슬라 의 자서전. 이 서기 1919년 나이 63세 여. 1차대전 끝나고 낸거고, 이미 이때는 테슬라 가 소위 한물 간겨. 나이 50 때에 저 에너지무선송신 이 소위 실패 하면서, 제이피모건 에서 돈 빼고 하면서 전성기가 지나는겨. 그렇다고 저 자서전에서 에디슨 이 어떻고 제이피모건이 저떻고 이따위 말 전혀 없어. 다들 그레이트 한 인간들 이고, 벼라별 소문들 도는데 다 헛소문이요 사이 나쁠거 없오 라고 저 글에서 써.
에디슨 은 테슬라 에게 좀 치사했고. 그러나, 에디슨 은 업짜여 ㅋㅋㅋ 에디슨 은 사업하는 인간이고, 얜 그럴 수 밖에 없는 인간이야 에디슨은.
에디슨 은 비즈니스맨 이고, 테슬라 는 학문을 배운 인간이야.
에디슨 은 학교를 다니지 않았어. 어릴때 십대 부터 기차에서 신문에 물건 팔던 인간이여. 이 인간은 완벽히 비즈니스 맨 이야. 다녔다는 쿠퍼 유니온 이란건, 저때는 샹 지금식 치면 기술학원 이야 저게. 저걸 사립대학교 라고 지금 부르지만. 저기에 에디슨이 등록을 한거지 구체적으로 몇년 언제 졸업하고 머 이런게 없어 . 엄청난 인간이야 이 에디슨도 그래서.
그런데 어쨌거나, 에디슨 은 업짜 여.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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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는 또한 전혀 달라 이게. 이 사람은 아주 완벽하게, 미국에 땡전 한푼 없이 몸 만 온 인간이야 이때가 언제냐 1884년. 28세여. 에디슨 회사의 뉴욕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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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United States history, the Gilded Age was an era that occurred during the late 19th century, from the 1870s to about 1900. The Gilded Age was an era of rapid economic growth, especially in the Northern and Western United States.
저때를, 1870년대에서 1900년 까지를, 미국 길디드 에이지. 황금시대 라고 해. 이 길디드 에이지.의 대명사 는 말이야, 에디슨 이고 테슬라 여 이게. 이게 머여? 전기 여 전기. 전기 인간들 이야.
The war of the currents, sometimes called battle of the currents, was a series of events surrounding the introduction of competing electric power transmission systems in the late 1880s and early 1890s. It grew out of two lighting systems developed in the late 1870s and early 1880s; arc lamp street lighting running on high-voltage alternating current (AC), and large-scale low-voltage direct current (DC) indoor incandescent lighting being marketed by Thomas Edison's company.
미국 길디드 에이지.가 철도 로 대변되지만, 전기 여 전기. 그중에서도, 전류 전쟁 이라는 워오브커런스. 토마스 에디슨 대 조지 웨스팅하우스. 이고 직류 대 교류 의 전쟁이고, 교류 가 이긴겨. 에디슨 의 제너럴 일렉트릭스 지금 지이 가 짜진거고, 웨스팅하우스 의 주자 는 당연히 테슬라 이고.
Thomas Edison was born in 1847 in Milan, Ohio, but grew up in Port Huron, Michigan, after the family moved there in 1854.[7] He was the seventh and last child of Samuel Ogden Edison Jr. (1804–1896, born in Marshalltown, Nova Scotia) and Nancy Matthews Elliott (1810–1871, born in Chenango County, New York).[8][9] His patrilineal family line was Dutch by way of New Jersey;[10] the surname had originally been "Edeson".[11]
Edison was taught reading, writing, and arithmetic by his mother who used to be a school teacher. He attended school for only a few months.
에디슨 은 오하이오 의 마일런 태생. 오대호 인간이야. 이리호 Erie 해변 이고, 자라는곳은 북서쪽 미시간 의 포트휴론 이야. 이리호 위 휴론 호. 엄마가 학교 선생이었고 집에서 가르쳤어. 어릴때 부터 포트휴론 과 아래 디트로이트 다니는 기차에서 사탕 신문 팔이 를 해. 그러다가 기차역에서 역장 의 자식을 구해주고 이 인연으로 통신사 를 하는겨. 전신 주고받는겨 이때부터 에디슨이 시작이 된건데. 그러면서 저 기차역의 자기하던 영업권을 독점해서 장사 에 눈을 뜬거야.
아빠쪽이 네덜란드고, 뉴저지 통해서 노바 스코샤 에서 오하이오 에 미시간 으로 온겨. 에디슨 은 별명이 멘로 파크 Menlo 의 마술사여. 실험실에 사무실을 뉴저지 여기에 세워. 죽은 곳도 뉴저지 여. 뉴저지 는 에디슨 이야.
배운게 없어 이 인간은. 완전히 혼자 자수성가 한겨.
배운게 없어. 골때리 진짜.
이 인간은 그래서 학자 가 아냐. 업짜여 업짜. 발명가 자연 이름 붙은 이 들 중에 거의 독보적이여
He was a prolific inventor, holding 1,093 US patents in his name, as well as patents in other countries.
미국에서의 특허 도 1093개. 테슬라 는 300여개 인데, 테슬라 는 특허에 대해 졸 손해본 인간이고.
Michael Faraday FRS (/ˈfærədeɪ, -di/; 22 September 1791 – 25 August 1867) was an English scientist who contributed to the study of electromagnetism and electrochemistry. His main discoveries include the principles underlying electromagnetic induction, diamagnetism and electrolysis.
마이클 패러데이, 1791-1867. 이전 썰. 아인슈타인 이 자기 서재에 두개의 초상이 뉴턴 과 맥스웰 이라지만, 맥스웰 은 패러데이 의 이야기를 푼 사람이고. 패러데이 를 맥스웰 아래에 둘 순 없지.
But in 1892 the demands became irresistible and I went to London where I delivered a lecture before the Institution of Electrical Engineers. It had been my intention to leave immediately for Paris in compliance with a similar obligation, but Sir James Dewar insisted on my appearing before the Royal Institution. I was a man of firm resolve but succumbed easily to the forceful arguments of the great Scotsman. He pushed me into a chair and poured out half a glass of a wonderful brown fluid which sparkled in all sorts of iridescent colors and tasted like nectar. "Now," said he. "you are sitting in Faraday's chair and you are enjoying whiskey he used to drink." In both aspects it was an enviable experience.
테슬라 가 자기가 솔직히 잘난 인간 줄을 몰랐어. 그러다 건너 에서 자꾸만 와서 강연 요구 해 달라는걸 갈 수 밖에 없어서 짬을 내서 갔어 1892년 36세. 가장 잘 나갈때여 저 때 10여년. 런던에서 제임스 듀어, 진공 플라스크 보온병 만든인간, 이 억지로 앉혔대. 그리곤 환상적인 갈색 음료를 따라줘, 무지개색 빛을 내더래. 넥타르 맛이래. "당신은 지금 패러데이 의 의자에 앉아서 패러데이 가 마시던 위스키 를 즐기고 있어" 이때서야 알았대 ㅋㅋㅋ, 자기가 소위 잘나가고 위대하고 의미있는 인간이란걸.
His family was not well off. His father, James, was a member of the Glassite sect of Christianity. James Faraday moved his wife and two children to London during the winter of 1790 from Outhgill in Westmorland, where he had been an apprentice to the village blacksmith
이 패러데이 가 말이여, 런던 써덕 태생인데, 그지여 그지 ㅋㅋㅋ. 아빠가 마을 블랙스미쓰, 철공소 에 어프렌티스, 도제 로 들어가서 일배운겨, 패러데이 를 낳고서. 이 패러데이 도 그래서 그지 여 그지. 어릴때 부터 돈벌이 했는데, 이 인간은 참 운이 좋게도,
At the age of 14 he became an apprentice to George Riebau, a local bookbinder and bookseller in Blandford Street.[12] During his seven-year apprenticeship Faraday read many books, including Isaac Watts's The Improvement of the Mind, and he enthusiastically implemented the principles and suggestions contained therein
14세 부터, 어프렌티스 로 들어간 곳이, 책 제본에 서점 이야. 여기서 7년 도제를 하면서, 책을 읽은겨. 이게 패더데이 를 만든겨.
In 1812, at the age of 20 and at the end of his apprenticeship, Faraday attended lectures by the eminent English chemist Humphry Davy of the Royal Institution and the Royal Society, and John Tatum, founder of the City Philosophical Society.
그러다 나이 20에, 즉 여전히 서점에서 도제 로 있을때 말년이야, 이때 험프리 데이비 의 강연에 참석한거고, 데이비 의 눈에 띄어서, 실험실 보조 로 들어가며 배우는겨. 13세 많아 데이비 가. 나중에 패러데이 가 훨 잘나가는거고, 데이비 가 오히려 배아픈겨 패러데이 를 표절로 고소 하고, 데이비 는 오십 넘어서 죽걸랑 일찍 죽어. 패러데이 가 실험을 아예 중단해 자기 스승 죽을때까지.
이 험프리 데이비 가 최초 로 아크 램프, 소위 백열등 이라는 아크방전 을 처음 만든 인간이여. 아크 방전 이란게, 전열체 라는, 전기 가 안통하는 물체 전압을 높여서리 전열체 라는 인슐레이터 를 컨덕터 도체 로 둔갑을 시키게 하고 여기에 전기가 흐르면 방전 이라민서리 이게 불빛을 내 뿜는겨. 이게 아크 부채살 모양의 빛 이라 아크 방전 이라 하능겨. 이때 절연체에 플라즈마 라는 까스 가 생기는겨, 이 플라즈마 라는 까스 에 전기가 흐르면 빛이 나는겨. 이게 아크 램프 의 시작이 되고 이게 백열등 이 돼. 요 사이 가 안전램프 라는 데이비 램프 여. 탄광에서 쓰는.
The Argand lamp is a type of oil lamp invented in 1780 by Aimé Argand. Its output is 6 to 10 candelas, brighter than that of earlier lamps. Its more complete combustion of the candle wick and oil than in other lamps required much less frequent trimming of the wick.
아미 아르강 이 만든 아르강 램프 가 서기 1780년에 나온거고, 효율이 좋은겨 이게. 이전 램프들 보다 밝고 오래가고. 바로 나오는게 까스 등이야. 가스 라이팅. 데이비 의 아크 방전 이 나오면서, 이게 서기 1802년 이고, 이게 주욱 가서, 에디슨 의 제너럴 일렉트릭 이 백열등 되는겨 이게.
저기 보믄 나이 20에 패러데이 가 데이비 의 강연을 들으러 가는데, 저게 로얄 인스티튜션 에 로얄 쏘사이어티 의 이름으로 하는거걸랑. 험프리 데이비 도 콘월 태생의 그지여. 아빠가 나무 조각 으로 먹고 살걸랑. 그래도 데이비 는 그램머 스쿨에 보냈어. 패러데이 는 그지 집안이라 학교 안간겨. 데이비 는 그리고, 인스티튜션 엘 들어가. 이 인스티튜션 이란게 당시 브리튼 에 있는 교육 기관 이고 실험 연구 기관 이여 이게. 대학교 는 아니고.
로얄 쏘사이어티. 이것도 영국이 최초 여 최초. 뉴턴 이 여기 쏘사이어티 이고.
The Royal Society, formally The Royal Society of London for Improving Natural Knowledge,[1] is a learned society and the United Kingdom's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Founded on 28 November 1660, it was granted a royal charter by King Charles II as The Royal Society.[1] It is the oldest national scientific institution in the world
로얄 쏘싸이어티. 정식으로는, 내추럴 날리지 향상 을 위한 런던의 로얄 쏘사이어티. 찰스 2세 때 1660년 에 만든겨. 크롬웰 뒈지고, 조지 몽크 가 찰스 2세 데려와서 왕정복귀 하고 바로 만든겨 이게. 아 위대한겨 이 영국. 의 잉글랜드. 프랑스 가 오히려 이걸 보고 나서 만들어 프랑스 가 늦어 이게. 뉴턴 이 역시나 이 쏘싸이어티 에 가입하는거고, 당시 라이프니츠 가 적분 을 발표할때 표절이라며 뉴턴 편이 힘이 실린게 이놈의 쏘사이어티 때문이걸랑. 라이프니츠 는 참 안타까운겨 독고다이에 아무런 배경이 없는겨. 적분 은 라이프니츠 가 표절을 안한것으로 지금 보고, 오히려 뉴턴의 논리 보다 라이프니츠 의 적분 을 더 나은 걸로 지금 평가를 해.
데이비 나 패러데이 나 저런 체계 에서 나온 인간이여, 이 패러데이 는 특히나 정말 학교 도 안 다닌 인간이, 아 위대한겨 이 패러데이. 데이비 는 배 졸라게 아파하고, 이해 해야지 그걸. 자기가 캐스팅했는데 저놈의 패러데이가 너무나 잘나가는겨. 저 쉑 내꺼 그대로 카피 표절한 쉑히가 감히 나한테 백퍼 배운 놈이 나보다 잘나가네 함시롱.
How fortunate for civilization, that Beethoven, Michelangelo, Galileo and Faraday were not required by law to attend schools where their total personalities would have been operated upon to make them learn acceptable ways of participating as members of "the group”.
—Joel H. Hildebrand's Education for Creativity in the Sciences speech at New York University, 1963
얼마나 다행인가 문명을 위해선, 베토벤 미켈란젤로 갈릴레오 그리고 패러데이 가 법적으로 학교에를 갈 의무가 없었다는게, 학교에서는 그들의 모든 성향들이 작동되었을 텐데 그들이 배우게끔, "그 그룹"의 멤버들로서 참가하는데 받아들여지는 방법들을. 졸 헨리 힐더브랜드. 오히려 학교 안가서 다행이었다는건가 ㅋㅋㅋ.
패러데이 는 전기 와 자기 와 빛 의 관계 에 대한 연관성을 확신하걸랑. 이걸 맥스웰이 증명해. 즉 패러데이 는 자유분방함의 사유 로 전혀 다른 패러다임 에 눈을 뜬겨. 이런건, 바닥의 인간이, 바깥의 인간 이 만드는겨. 이걸 제대로 잡아주는 인간은, 배운 인간이여.
James Clerk Maxwell FRSE FRS (13 June 1831 – 5 November 1879) was a Scottish scientist in the field of mathematical physics.[2]
Michael Faraday FRS (/ˈfærədeɪ, -di/; 22 September 1791 – 25 August 1867)
패러데이 보다 40세 어려. 맥스웰 방정식 이 1865년, 맥스웰 34세 에 나오는겨. 페러데이 가 그리고 2년 후에 죽는겨.
Maxwell would often attend lectures at the Royal Institution, where he came into regular contact with Michael Faraday.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men could not be described as being close, because Faraday was 40 years Maxwell's senior and showed signs of senility. They nevertheless maintained a strong respect for each other's talents
맥스웰 은 종종 로얄 인스티튜션 의 강의들에 참석했다. 거기서 그는 패러데이 와 정기적 접촉을 했다. 그 둘은 친하다고 그려질수 없다 왜냐면 40년 차이다. 패러데이는 노망끼를 보여주다. 그들은 그럼에도 서로 강하게 리스펙트 했다.
His most notable achievement was to formulate the classical theory of electromagnetic radiation, bringing together for the first time electricity, magnetism, and light as different manifestations of the same phenomenon. Maxwell's equations for electromagnetism have been called the "second great unification in physics" [3] where the first one had been realised by Isaac Newton.
맥스웰 의 가장 큰 성과는, 전자기적 레디에이션 의 고전적이론을 포뮬레이트 정형화 방정식 한거다. 처음으로, 전기, 자기, 그리고 빛 을 같은 현상의 다른 표현방식들 이라고 보여주면서. 맥스웰의 등식들은 피직스에서 두번째 위대한 통일 이라고 불린다. 첫번째는 아이삭 뉴턴 이다.
뉴턴 의 유니피케이션 이란건, 지구의 중력현상과, 하늘 천체들의 움직임의 현상을 중력 으로 묶었다는거고,
전기 라는게. 서기 1600년에 윌리엄 길버트 가 지구가 자석덩어리 이고 먼가 흘러요. 이걸 고대그리스어 일렉트론 에서 그같은거 라틴어 일렉투리쿠스 작명하고 뒤에 영어 일렉트리시티 하고 이걸 전기 라 번역하는데 말이야.
With the publication of "A Dynamical Theory of the Electromagnetic Field" in 1865, Maxwell demonstrated that electric and magnetic fields travel through space as waves moving at the speed of light. He proposed that light is an undulation in the same medium that is the cause of electric and magnetic phenomena
맥스웰 은, 전기적 필드와 자기적 필드 는 공간을 통해 움직여 웨이브들 처럼, 빛의 속도로. 그는 말했다, 빛 이란건, 언듈레이션, 파동 인데 전자기적 현상의 원인 인 같은 미디엄 매게체 안에서의 파동 이다.
빛의 속도 라는게, 빛 이라는 알갱이 가 움직이는 매개체 는 전자기적필드 라는겨.
전기자기장 이 파동으로 출렁거리며 트래블 해 움직이고 이동을 해. 이 속도 가 결국 빛의 속도 여. 빛 알갱이 가 전자기장의 파도 를 타면서 움직이는거야. 빛 그 자체가 무슨 발사기로 움직이는게 아니라, 빛이 전자기장의출렁임의속도 로 움직인다는겨 저게. 빛의 매개체 가 전자기장 이란거야.
뭔소린지 알간?
영어 로 보면 너무나 쉽고 이해가 너무 잘돼. 저걸 번역하면 암호가 돼.
웨이브 라는게 게르만 말이고, 언듈레이션 운도 가 라틴어 웨이브 여. 왜 웨이브 겄어? 워터, 물 이 게르만 말이야. 워터의 움직임이 웨이브 야.
저건, 패러데이 가 말한거여 빛의 속도 조차도 전자의 속도 와 같은거 아니까? 아 저걸 맥스웰이 증명해준겨.
맥스웰 은, 잘나가는 스콧 집안이야. 아빠가 애드보케이트. 스콧의 바리스터 단어여. 변호사고 엄마는 스콧 해군재판소 최고짱의 딸이고, 이 집안이 아주 짱짱해. 어릴때부터 걍 천재 로 찍혔어 부모한테서.
All indications suggest that Maxwell had maintained an unquenchable curiosity from an early age.[20] By the age of three, everything that moved, shone, or made a noise drew the question: "what's the go o' that?"[21] In a passage added to a letter from his father to his sister-in-law Jane Cay in 1834, his mother described this innate sense of inquisitiveness:
He is a very happy man, and has improved much since the weather got moderate; he has great work with doors, locks, keys, etc., and "show me how it doos" is never out of his mouth. He also investigates the hidden course of streams and bell-wires, the way the water gets from the pond through the wall...
나이 세살, 꼬마가 아주 호기심이 끊이지 않아. 모든 움직이는거 반짝이는거 소리나는건 모두 물어. 저거 머야? 이사 를 가고 아빠가 처제한테 쓰는 편지에, 엄마가 아들 맥스웰의 호기심을 표현한 글.
그는 아주 행복해 그리고 날이 좋아진 이후 아주 좋아졌어. 그는 굉장히 바빠 문들 자물쇠들 열쇠들 등등으로, "보여줘 나한테 그게 어떻게 작동하는지" 라는 말은 입에서 떠나지를 않아. 그는 또한 물줄기들과 벨 줄의 숨긴 곳들을 추적해, 물이 연못에서 나와서 벽을 지나 어디로 가는거며....
걍 맥스웰은 에딘버러 대학에 케임브리지 대학에, 걍 영국이 만든 천재야. 스콧 인간. 스콧 인간이라서 맥스웰이 된겨 이게.
뉴턴 은 요우먼, 가정집 파출부 에 선원 했던 계층의 집안이여. 그지여 그지. 그래도 그램머 스쿨을 집에서 보내. 케임브리지 대학 에서 허드렛일 하면서 세탁일 하면서 장학금 받으면서, 대학 공부한겨. 영국 이 만든겨 이 인간도. 교수 가 캐스팅한겨.
Isaac Barrow (October 1630 – 4 May 1677) was an English Christian theologian and mathematician who is generally given credit for his early role in the development of infinitesimal calculus; in particular, for the discovery of the fundamental theorem of calculus. His work centered on the properties of the tangent; Barrow was the first to calculate the tangents of the kappa curve. He is also notable for being the inaugural holder of the prestigious Lucasian Professorship of Mathematics, a post later held by his student, Isaac Newton.
아이삭 배로. 루카시안 수학교수직. 이게 돈받고 혜택받는 자리걸랑. 뉴턴을 캐스팅하고, 뉴턴이 돈 없어서 자기가 이자릴 뉴턴에게 준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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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땅에선, 상상도 못해 저런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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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던 이란게, 얼리마던 이 근세 로 일본말 번역한 16세기 라지만, 마던 이란건 말이야, 그래서, 총 으로 시작하는겨 얼리마던 이란건, 얼리 마던 에서 얼리 를 떼버리는건, 전기 여 전기. 아 물론 이런 규정도 걍 내가 하는겨. 모든 세계사 는 앞으로 내 말을 다들 따를 거야 그럴 수 밖에 없고. 왜냐면, 아 이 인류역사에 나만큼 인간사 세상사 를 총체적 으로 보는 인간이 없걸랑. 앞으로도 없을건데.
제임스와트 의 증기기관 이 아녀.
전기 여 전기. 윌리엄길버트 로 시작하는 서기 1600년 의 일렉트론. 일렉트리시티.
Heinrich Rudolf Hertz (/hɜːrts/ HURTS; German: [ˈhaɪnʁɪç ˈhɛʁts];[1][2] 22 February 1857 – 1 January 1894) was a German physicist who first conclusively proved the existence of the electromagnetic waves predicted by James Clerk Maxwell's equations of electromagnetism. The unit of frequency, cycle per second, was named the "hertz" in his honor
맥스웰 방정식 이 나오고, 맥스웰이 전자기적 파동 의 존재 를 증명한게 하인리히 헤르츠. 1857-1894. 졸 일찍 죽은겨. 37세. 테슬라 가 1856년생 이야. 요건 외워. 테슬라 보다 한살 아래여. 함부르크 태생인데, 아빠가 함부르크 변호사 에 상원이었어. 뮌헨대학 베를린대학. 파동을 발견하고, 테슬라 가, 무선 에 바로 꽂히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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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테슬라. 10 July 1856 – 7 January 1943
세상에서 위대한 인간들은, 또한, 세상의 틀 을 잡아 주는 인간들은, 가장 바깥 의 인간들이야.
그 내셔널리티 안 의 인간이면, 가장 바닥의 인간이야. 그게 뉴턴 이고 패러데이 야. 잉글랜드 의 근대 가장 위대한 인간 들 은 뉴턴 이고 패러데이 야. 전제 는 머여? 배울 환경 이 되어야 해. 무조껀 말이야 배우게끔 해줘야해 어릴때. 거지 면 안되는겨. 아주 듣보잡 거지 는 걍 거지 로 끝나고 말아. 패러데이 는 정말 다행이게도, 어프렌티스 를 서점 에서 한겨. 이거 아니었으면 패러데이 는 없어. 맥스웰 은 패러데이 없인 생각할 수 없어.
에디슨 은 걍 저런 학술적 인간들의 아이디어를 상업화 하는데 성공했을 뿐이야. 얜 걍 업짜여 업짜. 에디슨 은 길디드 에이지 의 모든게 선생이고 재료야. 이 에디슨은 정말 혼자서 동업자들과 한겨 저거. 여하튼 대단해. 여하튼 그래도 업짜여. 기술짜야 더하여.
아인슈타인 도 유대인 이야. 바깥 인간이 하는겨.
인간 문명의 핵심 코아는 웨스턴의 게르만 켈트 여. 저 안의 바닥인간들 에 더하여, 밖의 인간들이 만든거야 저 웨스턴 문명이란게. 바닥의 인간 과 밖의 인간이 저 코아들을 배운게 마던 이란거야. 바닥의 인간과 밖의 인간이 저 코아 외에 자기들 껄 재료로 만드는게 절대 절대 아냐. 바닥의 인간 과 밖의 인간 은, 없어 전혀 아무것도. 만들어놓은게. 오직 게르만 켈트 만이 중세천년동안 수메르 그리스 로마 에 이슬람과 칭기스캉의것들 을 다 갖고와서 버무린겨.
조선은 똥이야 똥. 중국과
외부 에선 스스로 자기들것으로 무얼 할 수 가 없어. 그러나, 외부인이 밖에서 저 게르만켈트 가 만든 코어를 더 잘 배우는겨.
그게 바로 니콜라 테슬라 야. 유대인 들에 더하여.
세르비안 들은 테슬라 를 지폐로 갖고 다니지만, 이 세르비안 들은 그야말로 . 테슬라 를 몰라 이들은. 이 내셔널리즘 에 미친 들은, 항상 정치하는 들을 롤모델로 앞에다가 모시지, 절대 보편적 문명을 만든 이들을 정치꾼 앞에 둘 안목이 없어. 스콧 의 그레이트 한 인간들 봐봐, 모두 대부분 이꽈 인간들이거든. 세르비안 들 보면 그레이트 어쩌고 모두 지들 내셔널리즘 내세우는 들, 내셔널리즘 내세우는 들 치고 쓰레기 아닌 들이 없는데. 이것 역시나 테슬라 의 말이야. 아, 테슬라 의 자서전 저기에 이런 말이 있더라고, 내셔널 에고이즘 프라이드 를 내세우는 들로 전쟁이 나는거요. 야 내가 내 혼자만의 단독적인 센턴스를 테슬라 가 저 자서전에서 말하더라고. 테슬라 가 나를 좀 쫓아왔더라마잉.
아인슈타인 은 아슈케나지 유대인이고, 이 아슈케나지 들이 라인강변에서 십자군 시작할때 저 프랑스 인간들이 여기 지나가면서 유대인 학살을 해. 유대인이라고 잘사는게 아녀 이 아슈케나지 거지들 많어 지금. 여하튼간에 아빠는 엔지니어고 엄마쪽은 콘 상인이고 잘살았어. 편하게 큰겨. 대학을 스위스 에 가는데. 여기서 만난게 첫 마누라야.
Mileva Marić (Serbian Cyrillic: Милева Марић; December 19, 1875 – August 4, 1948), sometimes called Mileva Marić-Einstein or Mileva Marić-Ajnštajn (Serbian Cyrillic: Милева Марић-Ајнштајн), was a Serbian physicist and mathematician and the first wife of Albert Einstein from 1903 to 1919.
밀레바 마리치. 1875년생. 아인슈타인 1879년생. 네살 연상. 세르비아 여자여.
On December 19, 1875, Mileva Marić was born into a wealthy family in Titel in the Austro-Hungarian Monarchy (today Serbia) as the eldest of three children of Miloš Marić (1846–1922) and Marija Ružić-Marić (1847–1935).[2] Shortly after her birth, her father ended his military career and took a job at the court in Ruma and later in Zagreb.
She began her secondary education in 1886 at a high school for girls in Novi Sad, but changed the following year to a high school in Sremska Mitrovica.[3] Beginning in 1890, Marić attended the Royal Serbian Grammar School in Šabac. In 1891 her father obtained special permission to enroll Marić as a private student at the all-male Royal Classical High School in Zagreb
테슬라 는 태어날때 내셔널리티가 오스트리아 제국 이야. 그리고 헝가리 기세워준다고 자치권주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 돼. 그리고 태어난게 마리치 야. 티텔, 베오그라드 의 북쪽이야. 베오그라드 포함 아래와 일부가 세르비아 가 레볼루션 하고 크냐즈 로 자치하다가 킹덤을 한다 했잖니. 베오그라드 의 윗쪽 은 오스트리아-헝가리 땅이야. 여길 세르비아보이보디나 라고 해. 여기 중심도시가 노비싸드. 야. 마리치 의 부모 도 잘 사는 상인집안이야. 고등학교 까지 보내고, 똑똑한겨. 자그레브 의 고등학교 를 보내. 그리고 병들어서 몇년 꿇은겨.
In 1896, Marić passed her Matura-Exam, and started studying medicine at the University of Zurich for one semester.
In the fall of 1896, Marić switched to the Zurich Polytechnic (later Eidgenössische Technische Hochschule, ETH),
19세 에 취리히 대학에서 의학 을 해. 그리고, 의학에서 공학 으로 전향을 하고, 그해에 취리히 폴리테크 로 옮겨.
요길 아인슈타인 이 햇수로 16세 인 1897년 에 들어가. 이 전해에 입학시험에서 떨어지고 하숙치면서 공부하다가 하숙집 여자한테도 빠지고 그러다 다시 붙은겨.
취리히 대학 은 취리히 캔톤 이 설립자 고, 취리히 폴리텍 은 스위스 연방 이 설립한겨. 이 폴리텍 이 지금 세계최고의 공대야.
둘이 1897년, 16세 20세 때에 만난겨 취리히 폴리텍 에서.
첫딸 리절 Lieserl 이 1902년 생. 바로 죽었다느니, 입양시켰다느니, 죽은게 다수설이야. 둘째가 한스 1904년생. 셋째 에드워드 1910년생.
결혼을 리절 낳고 해 1903년. 이혼이 1919년. 이미 5년전인 1914년에 별거 를 해.
기적의 해.라는 네임을 주는 논문이 1905년 이야. 일반상대성 이 1915년 이야. 이게 마리치 와 공동저자 라느니 어쩌고 야사가 졸 많은거고. 아들 한스 는 별거 전 10년을 산거고, 아빠엄마가 책상에 머리 맞대어 이야기 하는 회상을 해.
특히나 1905년 논문 에 대해 공동저자 냐, 왜냐면 1915는 별거 하고 나온거니까, 그래도 아이디어는 모르지.
마리치 가 자기 세르비안 친구 에게 우리가엄청난작업을끝냈다 저해의 우리 라는 주어 어쩌고, 걍 민담 으로 봐.
둘째 한스 는 아빠랑 계속 연락하고 미국 으로 가서 하이드롤릭 유체역학이냐 이거 교수하고. 에드워드 는 정신분열증 으로 요양원에서 죽어. 스키조프레니아, 지금 조현병으로 포장한. 전기충격요법으로 뇌를 손상한거로 봐 한스.가. 노벨상 돈을 아인슈타인이 마리치 에게 모두 주고, 마리치 는 이걸 원금을 빼서 스위스에서 집들을 사서 임대로 먹고 살아. 에드워드 의 병때문에 집까지 팔아.
아인슈타인 이 베를린 으로 가서 재혼을 하는데, 별거 할때부터 저 재혼할 사촌여자 가 꼬리친거 같고 보니까, 엄마쪽 아빠쪽이 사촌에 세컨드커즌이고, 이혼하고 딸둘데리고 와서 아인슈타인과 재혼을 한겨. 아인슈타인은 이 사이에서 자식을 낳지 않아.
할때, 니콜라 테슬라 가 아인슈타인을 싫어하는건, 첫마누라 같은세르비안 인, 마리치 와 이혼 과는 상관이 있을탁이 이껀ㅇ니
그럼 니콜라 테슬라 의 자서전 을 중심으로 이야길 펼치자면.
다음으로 넘기자 아 서두가 졸 길어서리.
Thereafter I devoted myself chiefly to physics, mechanics and mathematical studies, spending the hours of leisure in the libraries. I had a veritable rnania for finishing whatever I began, which often got me into difficulties. On one occasion I started to read the works of Voltaire when I learned, to my dismay, that there were close on one hundred large volumes in small print which that monster had written while drinking seventy-two cups of black coffee per diem. It had to be done, but when I laid aside the last book I was very glad, and said, "Never more!"
테슬라 가 미국으로 건너가 에디슨 을 만나거든 28세일거야. 이미 에디슨 은 어릴때부터 산전수전 다 겪은겨. 저때 이미 거대한 회사 사장이야 에디슨이 9세 많으니 37세. 아 음청나 어쨌거나 이 에디슨.
에디슨을 보면서 테슬라 가 한탄하는겨. 야, 나는 수많은 책들에 대학까지 나왔는데, 헛공부를 했어. 이게 먼말이냐면 에디슨 을 보고 하는 말이거든. 에디슨은 학교도 전혀 다니지 않으면서 일류 스타가 된거걸랑 저때.
바로 그 뒤 이어서, 그게 아닌겨 자기는 나름 최선을 다한겨. 테슬라 가 학교 안다니고 책을 안읽었으면 절대 테슬라 라는 인간은 없어. 이 인간은 모든 책을 다 읽고, 다 암기하는 인간이야.
볼테르 가 이천권인가 책을 쓰고 수많은 글을 쓴 인간이야. 테슬라 가 학교에서, 물리학 기계학 수학 에 올인하다가, 도서관 가서 여가 시간 보내면서 자기를 종종 어려운 지경을 내몰아. 일 례로, 볼테르 전집을 읽기 시작해, 시작하면 무조껀 끝까지 다 봐야 해. 볼테르 책들이 도서관에 전집으로, 스몰 프린트, 작은 자잘한 글씨크기로 1백권 인겨. 볼테르가 하루에 72잔의 블랙커피 를 마셔가면서 썼다는, 며칠걸렸는지 하튼 볼테르 전집 일백권 을 다 본겨. 마지막 권을 내던지면서 아주 기쁘게, 그리곤 말했다, "더이상 안해 샹"
Without such freedom there would have been no Shakespeare, no Goethe, no Newton, no Faraday, no Pasteur and no Lister.
—Albert Einstein's speech on intellectual freedom at the Royal Albert Hall, London having fled Nazi Germany, 3 October 1933
자유 없이는, 셰익스피어도, 괴테도 뉴턴도 패러데이도 파스퇴르도 리스터도 없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 이 나치 독일을 떠나면서 런던 에서의 연설.
파스퇴르 도 집안이 무두질 태닝, 가죽 만드는 그지 집안이야. 파스퇴르 가 없었으면 역시나 마던 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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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이 조선 땅이,
자유 가 사라지는겨.
난, 확신해. 요즘 꼬라지를 보면. 이미 이전에 확신했지만. 아마 북조선과 하나되서 중국의 자치구 가 되서, 수천만이 학살 이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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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테슬라, 가장 극동인간인 세상에서 롤모델 이야. 증명가능한.
내셔널리즘 이 전쟁을 부르고, 내셔널리티 에 자부심 느끼는 인간이 가장 후지다. 이건 내가 역사 정리하면서 내 스스로 꺼낸 문장이고. 그런데 이런 생각은 생각있는 이들은 많이 이미 하고 있었는데,
위대한 인간, 세상을 앞서는 인간은, 바닥에서, 바깥에서 나온다. 이건 나만의 독보적인 이론, 포뮬레이션 이퀘이션, 아닐까? 어드래 생각하니.
최고의 천재 다섯 어쩌고, 둘 어쩌고, 그야말로 의미없는 문장이야.
그레이트 맨, 이 천재 와 같은 워드 일 수는 없고. 천재 는 그냥 천재 일 뿐이고, 천재이면서 그레이트맨 도 있을테고.
모두, 웨스턴 애들한테나 적용되는 단어들이고, 이 극똥 빠닥에는, 워스트 맨, 미개한 밭일 뿐이고. 특히나 이 땅 조선.
Tesla was asocial and prone to seclude himself with his work.[137][241][242][243] However when he did engage in social life, many people spoke very positively and admiringly of Tesla. Robert Underwood Johnson described him as attaining a "distinguished sweetness, sincerity, modesty, refinement, generosity, and force".[34] His secretary, Dorothy Skerrit, wrote: "his genial smile and nobility of bearing always denoted the gentlemanly characteristics that were so ingrained in his soul".[237] Tesla's friend, Julian Hawthorne, wrote, "seldom did one meet a scientist or engineer who was also a poet, a philosopher, an appreciator of fine music, a linguist, and a connoisseur of food and drink"
테슬라 는 비사교적이었고 자기를 일로 격리하려 했다. 그러나 그가 사교적 삶에 관여할때, 많은 사람들은 아주 긍정적으로 찬탄하면서 테슬라에 대해 말했다. 로버트 언더우드 존슨, 6세 연상인 외교관이자 작가 는 그를 묘사했다 다다른 인간이라고 "특출난 스윗함, 진실됨, 겸손함, 세련됨, 원만한품, 그리고 활력" 에. 그의 비서 인 도로띠 스케릿 은 썼다: "그의 지니얼한 타고난 미소와 고급진 품은 언제나 신사적인 특징을 지녔는데 그런건 그의 영혼에 새겨진 듯 했다" 테슬라 의 친구 줄리안 호똔, 주홍글씨 작가 나따니엘 호똔 의 아들 은 썼다, "좀처럼 만날 수 없다 과학자든 엔지니어든, 시인 이면서, 철학자, 좋은 음악을 아는자, 언어학자, 이자 음식과 음료에 코네써, 깊이아는자 는"
걍 세르비아의 거지 가 뉴욕가서 최고의 인간이 된건데. 이사람 의 자서전 이 이게 쉬운 글이 아녀. 글이 어려워 이게. 번역된게 도는거 보니, 저건 삼십퍼도 못담았어. 우리네는 쟤들 글을, 정말 제대로 번역할 능력이 지능이 안돼 이게. 지능의 문제여 진짜 이건. 볼테르 스몰프린트 백권 볼륨즈 조차 저게 백페이지래 ㅋㅋㅋ. 작은 글자 의 백권 책을 상상도 못하는거지 ㅋㅋㅋ. 글이 무겁고 찐해. 저런 오역은 유치한거고, 내용 자체를 아예 이해를 못한거더만 돌아다니는 번역을 보믄. 하기사 저것만 그런게 아니라 번역 이야긴 넘어가고. 욕 밖에 안나오지만, 어찌할 수 없어 이게 그래서 욕하면 안되지.
글이 고급지고, 어려워. 과학내용이 어렵다는게 아니라, 저 인간의 자기 인생 푼 글과 느낌을 문장으로 쓴게 저게 아주 묘해. 내가 타이핑을 하게 할 마력을 불어넣은건데 저 인간의 글이.
글이 졸라 좋고, 신선한게 있더라고, 신 이야기에, 텔오토매톤 텔오토메틱스 라는 생체기계 즉 로봇 이야기 하면서 자기가 느낀 저 너머의 것. 자기에게 닥치던 강박적인 이미지. 세상의 진보 에 대한 생각, 전쟁의 이유와 전쟁을 없애기 위한 방법 등등. 내 생각의 확인과 함께, 다른 실마리를 줬다고 해야 하나.
이 인간은, 어릴때 부터 이미지 와 소리 에 쫓기던 인간이야. 조선식으로는 신뼝 들린겨 이게 ㅋㅋㅋ. 공포 여, 너무나 생생하고, 주위가 혀를 낼름거리는 화염에 휩쌓여 아주 생생하게. 완전히 미치는겨 이게. 조선 같으면 당집가서 신내림 받을텐데. 무서워 잠을 못자 애가. 이런걸 자기가 쫓아내는겨 그러면서 야 이 과정이 이 인간을 만든건데 이게.
초능력자여 병적인, 칠팔백키로 의 번개 가 들려. 청각이 졸 발달해. 에디슨 은 반대로 청력 한쪽을 잃으면서 더 애썼거든. 청각이 너무나 발달해서 오히려 가까운 개미의 움직임 소리 조차 거슬려 ㅋㅋㅋ. 인간이 민감할 수 밖에 없고, 강박증 수준이고, 이 인간은 여자 와 살 수 가 없어 보니까. 혼자 살아야 하고, 그래서 호텔에서 혼자 산거고 죽을때까지.
오직 일 일. 만들어내야 해 획기적인 것을. 타임머신 도 시도했어 보이.
The only thing we do know is that reports state that in 1895, a witness found Tesla at a small coffee shop looking shaken and disturbed. His assistant claimed that Tesla was almost electrocuted by a machine as Tesla was trying to solve the time travel riddle.
After nearly dying, Tesla claimed he had found himself in an entirely different time and space window, where he could see the past, present, and future at the same time while staying within the artificially created ‘magnetic field.’
Regrettably, there are no documents –which we were able to find– to back up these claims. However, if Tesla tried to achieve time travel, he surely wasn’t the only scientist to try.
1895년에, 목격자가 말했다 테슬라를 봤다고 작은 코피숍에서 흔들리고 혼란스럽게 보이는. 그의 조수는 주장했다 테슬라 는 거의 감전사당할 뻔 기계때문에, 테슬라 가 시간여행 을 해결하려다가. 죽을 무렵에 테슬라는 주장했다 자기 자신이 완전히 다른 시공간 창에 있는걸 봤다고, 거기서 그는 과거 현재 미래 를 동시에 봤다고, 인공적으로 만든 자기장 안에서. 유감스럽게도 아무런 서류들이 없다 이런 주장들을 증명할. 그러나, 테슬라 가 시간여행을 시도하려했다면, 그가 유일한 과학자 는 아니지만.
이 자서전 에는 저런 이야긴 없고.
확실히, 리얼한 인간들이, 자연과학하는 인간들이, 말이 깊어 이게. 정말 인문학자란건 똥이야. 이 조선 빠닥에 저 학자연 하는 들은 정말 똥이야 저게. 신학자? 종교? ㅋㅋㅋ. 이 조선빠닥 만큼 신학 종교 가 후진 땅이 없어 신앙이 너무나 후져.
번역을 하고 싶더라고.
I. My Early Life
The progressive development of man is vitally dependent on invention. It is the most important product of his creative brain. Its ultimate purpose is the complete mastery of mind over the material world, the harnessing of the forces of nature to human needs. This is the difficult task of the inventor who is often misunderstood and unrewarded. But he finds ample compensation in the pleasing exercises of his powers and in the knowledge of being one of that exceptionally privileged class without whom the race would have long ago perished in the bitter struggle against pitiless elements.
6회 연재 라 여섯파트여. 1 나의 초기 삶
인간의 진보적 발전은 생생확실하게 의존한다 인벤션 발견발명에. 만들어낸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산물이다 인간의 창조적인 대뇌의. 발명의 궁극적 목적은, 물질적인 세상에 대해 지성이 완벽히 지배하는 것이다, 네이쳐의 힘들을 꿰어서 인간의 필요에 맞게끔 하는것이다. 이것은 인벤터 발명가의 어려운 과제다, 인벤터 는 종종 오해되고 보상을 못받지만. 그러나 그는 찾게된다 많은 댓가를, 그의 힘들을 즐겁게 활용하는 과정에서, 예외적으로 특별한 계층의 하나임을 알면서. 발명가 없이는 인류는 오래전에 사라졌을 테니까, 감정없는 것들인 세상에 대해 쓰디쓴 투쟁 중에.
인벤터. 가 인 베니오, 베니 왔노라 베니 비디 비키. 왔다 보았다 이겼다! 온거고 쎄게 온겨. 드러낸겨 강하게. 발견 발명으로 굳이 번역하는거고.
머티리얼 세상 은 피틸리스 감정이 없어. 저걸 마스터 하는게 인벤터 의 목적이래. 그러나 뒤에 가면, 인간은, 임머티리얼 한 것에 보편성 을 갖아야 한다고 말해 이 머티리얼한 세상에서. 이 인간은 무신론자 가 아냐. 교회가는 인간도 아니지만. 이 인간은 완벽하게 오소독시 가 키운인간이야. 부모가 오소독시 사제여 아빠에, 엄마부모가. 미신 을 경멸해 저당시 역시나 미국에 흔한게 페이건놀이 귀신놀이걸랑. 테슬라 가 너무나 탁월한 개발을 해서, 오히려 심령학회에서 제발 좀 오라고 해. 개소리 말고 꺼져 해대는거고 ㅋㅋㅋ.
Speaking for myself, I have already had more than my full measure of this exquisite enjoyment, so much that for many years my life was little short of continuous rapture. I am credited with being one of the hardest workers and perhaps I am, if thought is the equivalent of labor, for I have devoted to it almost all of my waking hours. But if work is interpreted to be a definite performance in a specified time according to a rigid rule, then I may be the worst of idlers. Every effort under compulsion demands a sacrifice of life-energy. I never paid such a price. On the contrary, I have thrived on my thoughts.
나로 말할거 같으면, 나는 이미 이러한 특별난 즐거움의 모든 것 이상을 누렸고, 그만큼 오랜 시절 나의 삶은 부족함 없이 계속 즐거웠다. 나는 가장 고된 근로자들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고 아마 그게 맞을거다, 비록 같은 작업이더라도, 나는 내가 깨어있는 시간동안 거의 일에 매진해왔으니까. 그러나 노동 이란것이 정해진 시간에 엄격한 규칙에 따라서 규정된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정의되어버린다면, 나는 아마 최악의 무용한 인간일게다. 강압 하에서 의 모든 노력은 생의 에너지를 갉아먹는걸 요구한다. 나는 결코 그런 댓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반대로, 나는 나아가고 번창했다 나의 생각들로.
In 1898, Tesla demonstrated a boat that used a coherer-based radio control—which he dubbed "telautomaton"—to the public during an electrical exhibition at Madison Square Garden.
테슬라 가 1898년, 42세 에, 자기 작명 왈 텔오토매톤, 오토매톤 이 스스로움직임. 텔레 텔, 멀리. 무선으로 조종되는 자동기계 여. 메디슨 스퀘어 가든 에서, 철판 보트 를 소리질러 조종을 해. 몰래 라디오 주파수 무선으로 움직이면서 쇼를 해대는겨. 이미 뉴욕에선 테슬라 모르면 간첩이여 저때.
그래서, 나를 크레딧 붙이다 해서 알려져있다 라고 쓰는겨 테슬라 가. 이 인간은 잠자는 시간 외엔 오직 일만 해. 잠도 많이 안 자. 인터뷰 에 신문 잡지에. 걍 대스타여 테슬라는. 연예인 저리 가라여 저게.
저 자서전이, 나이 들어서, 전기 월간지 에 내는거고, 저게 젊은 애들이 보는거걸랑. 교육용 더하기 자기 얘기 정리 하는겨. 미국에 무일푼 으로 온 세르비안 이야. 자기는 어메리칸 인간임을 아주 귀하게 여겨. 시민권자여 미국. 자랑도 해야 해.
세르비안 혐오마유 똥양인 혐오 마유 블랙라이프매터유 ㅋㅋㅋ.
꺼져라 꺼져.
애들은 말이야. 나이 처먹어서, 저런 짓에 끼지 말라우. 남탓이유! 인정해줘유!! 싸울꺼유!! 생체 중에서 가장 불쌍한, 가장 미개한 생체여 저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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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이란건 인간생체중에 가장 드러운겨. 정치 시사 놀이하는 언론인들. 정말 쓰레기 인생들. 나이 처먹고 말이야, 정치 시사에 별짓 하는것들, 정말 불쌍한겨 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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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attempting to give a connected and faithful account of my activities in this series of articles which will be presented with the assistance of the Editors of the ELECTRICAL EXPERIMENTER and are chiefly addrest to our young men readers, I must dwell, however reluctantly, on the impressions of my youth and the circumstances and events which have been instrumental in determining my career.
이번 연재 기사들에서 나의 일등에 대한 연관된 믿을만한 설명들을 하려는데 있어서, 이런건 일렉트리컬 엑스페리멘터 의 편집자들의 도움으로 제공될텐데, 더하여 주로 우리 젊은 독자들에게 전해지는 것이어서, 나는, 아무리 싫더라도, 내 젊은 시절의 인상들 과 환경들 그리고 사건들 에 대해 말할 수 밖에 없겠어, 왜냐면 그 것들이 내 커리어 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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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을 보는 건, 가장 기본은 빠져선 안될 것은, 고향 이고, 어릴 때고 부모여. 어디 태생 이란게 이게 참 중요해. 이것 없이는 그 인간이 설명이 안돼 이게. 근본적으로.
죽음의 땅에서 태어나서, 죽음을 자랑스러워 하는 정체성으로 사는건, 끔찍한거지, 피해 이런 인간은. 지역은. 완벽하게 정신병자들이야 저건. 아 이 조선땅은 진짜 정신병동 그 자체야. 역사 후진 땅이 대게 그렇다지만, 특히나 심해 진짜루.
Our first endeavors are purely instinctive, promptings of an imagination vivid and undisciplined. As we grow older reason asserts itself and we become more and more systematic and designing. But those early impulses, tho not immediately productive, are of the greatest moment and may shape our very destinies. Indeed, I feel now that had I understood and cultivated instead of suppressing them, I would have added substantial value to my bequest to the world. But not until I had attained manhood did I realize that I was an inventor.
우리 인벤터 들의 초기의 (어린시절) 열정들이란건 순전히 본능적인 표출들이야 어떤 생생하고 훈련안된 상상력의. 우리가 나이 들면서, 이성이 그제서야 존재감을 드러내고 점점 체계적이고 윤곽이 잡혀지는거지. 그러나 그러한 초기의 충동적 힘들은, 바로바로 결과물은 없지만, 굉장한 순간이면서 우리들의 진짜 목표점들을 형성하는 걸거야. 정말, 나는 지금 느껴, 내가 그런 충동들을 억누르는 대신 이해하고 키웠으면, 내가 세상에 남기는 유산에 실질적인 가치를 보탰을거라고. 어쨌거나, 나는 어른이 되기 전에, 나는 알았어 나는 발명가 임을.
This was due to a number of causes. In the first place I had a brother who was gifted to an extraordinary degree--one of those rare phenomena of mentality which biological investigation has failed to explain. His premature death left my parents disconsolate. We owned a horse which had been presented to us by a dear friend. It was a magnificent animal of Arabian breed, possest of almost human intelligence, and was cared for and petted by the whole family, having on one occasion saved my father's life under remarkable circumstances. My father had been called one winter night to perform an urgent duty and while crossing the mountains, infested by wolves, the horse became frightened and ran away, throwing him violently to the ground. It arrived home bleeding and exhausted, but after the alarm was sounded immediately dashed off again, returning to the spot, and before the searching party were far on the way they were met by my father, who had recovered consciousness and remounted, not realizing that he had been lying in the snow for several hours. This horse was responsible for my brother's injuries from which he died. I witnest the tragic scene and altho fifty-six years have elapsed since, my visual impression of it has lost none of its force. The recollection of his attainments made every effort of mine seem dull in comparison.
왜 진작 알았냐하면, 많은 이유들이 있어. 우선 나는 형이 한명 있었는데 특이한 정도의 재능이 있었어. 정신적으로 드문 현상들 중 하나 를 지녔는데, 생물학적 연구에서는 설명 불가였어. 그의 때이른 죽음은 나의 부모를 우울하게 맹글었지. 우리는 말 한마리 를 소유했는데 귀한 친구가 우리에게 선물했던거야. 그건 굉장한 아라비아 혈통의 동물이었어, 거의 인간지능을 갖아서 모든 가족이 보살피고 귀여워해줬거든, 왜냐면 한번은 나의 아빠의 생명을 구해줬어 그게, 아주 위급한 상황에서. 내 아빠는 어느 겨울 밤에 급박한 일로 호출을 당했어, 산들을 건너가다가 늑대들의 습격을 당해서, 그 말이 기겁을 하고 도망가버린거지 아빠를 땅에 내다 던지고는. 말이 집에 도착했는데 피를 흘리고 탈진한 채, 그러다 놀란게 진정이 되었는지 다시 즉각 뛰어 나가더라고, 다시 그 장소로 돌아간거지, 그리고 수색하는 무리가 그길로 멀리 가기 전에 곧 내 아빠를 만난거야, 그는 의식을 회복하고 말에 탔는데, 자신이 몇시간동안 눈에 누워있던걸 모르더라고. 이런 말 이 내 형을 다치게 했어, 그걸로 형은 죽었지. 나는 그 비참한 장면을 목격을 했어 그리고 56년이 흘렀지 그 이후로, 그렇지만, 그 순간의 화면은 힘을 조금도 잃지 않더라구. 형이 했던 것들이 내 모든 노력을 무디게 만드는 듯해 비교를 하게 되면.
형이 말타다가 죽어, 낙마사고로 죽는게 비일비재해 유럽사를 보면. 형이 탁월해 어릴땐 데. 부모가 그래서인지 테슬라 는 무조건 사제 를 시키려 한거고 어릴때부터. 테슬라 는 엔지니어 가 꿈인거고. 우리식 고딩 때 콜레라 로 죽어갈 지경에, 아빠 나 살아남을테니 공대 보내줘, 하니 아빠가 최고의 공대 보내주께, 진짜 살아남아서 공대를 간겨. 아빠가 항상 죽은 형 과 비교하는지 얘가 멀 해도 별로야. 대학가서도 아빠가 그런겨 니까짓게. 대학있을때 아빠가 죽어. 아빠한테 서운해 했걸랑 원래. 그런데 교수가 아빠한테 보낸 편지들을 봐. 테슬라 가 이런식으로 공부하다간 일찍 죽을겁니다 라고 교수가 아빠한테 쓴겨. 아빠가 일부러 테슬라 너 별거 없어 멀 해봤자, 일부러 그런거지 적당히 좀 하라고.
Smiljan (pronounced [smîʎan]) is a village in the mountainous region of Western Lika in Croatia. It is located 6 km (3.7 mi) northwest of Gospić, and fifteen kilometers from the Zagreb-Split highway; its population is 418 (2011).[1] Smiljan is the birthplace of inventor and engineer Nikola Tesla.
스밀랸, 크로아티아 의 리카 서쪽 의 산악지역 의 마을. 고스피치 에서 북서쪽 6키로. 지금 인구 418명. 니콜라 테슬라 의 태어난 곳. 지금 크로아티 아 의 행정구역 시작이 주파니아, 영어 카운티 여. 리카-세니 카운티 의 수도 가 고스피치 여. 테슬라 가 초등학교 갈때 고스피치 로 이사를 해. 리카-세니 카운티 를 리카 지역 이라고 해. 세니 는 해변 이야. 리카 지역 이란게 2천키로미터 안쪽의 거대한 산악분지고 리카 강 이 골짜기로 흘러. 저기가 주욱 달마티아 해서 거대한 디나르 알프스여. 이 인간은 산골짜기에서 자란겨.
https://en.m.wikipedia.org/wiki/Talk:Nikola_Tesla/Nationality_and_ethnicity#Is_Nikola_Tesla_Serbian_or_Croatian%3F
Was Tesla Serb or Croat? The Ridiculous and Very Balkan Diplomatic Row
테슬라 는 세르비안 이냐 크로아트 냐? 얘들은 둘이 이걸로 싸워 ㅋㅋㅋ. 커뮤니티 에서 두 국적 들이 ㅋㅋㅋ. 아 졸 웃기 이런거 보믄.
외교적으론 세르비아 가 갖고 간거지.
자서전 주욱 보면, 테슬라 는 모든걸 걍 똥떵어리 비슷 취급하는데, 미국 명예시민권자 라며 준걸 귀하게 간직한다고 써.
미국에 처음 올땐, 아름답고 목가적이고 좋은 땅을 떠나서, 아주 낯설고 험악한 곳에 왔다 고 쓰걸랑. 대륙 보다 백년 이 뒤졌다고 써. 바로 수정해 느낌을. 문명이 백년이 빠르다고. 자랑스러운 아메리칸!
테슬라 가 태어난 곳이, 나중에 졸 비참해지는겨 이게. 유고 슬라비아 라는 개미친 시도.
정말, 내셔널리즘 이란건, 그야말로 쓰레기야. 아 내가 이걸 아주 완벽하게 스스로 찾아낸건데 이거.
내셔널리즘 은 말야. 인간을 인간들을 대 학살을 해 이건.
내셔널리즘 이란것 자체가 개인의 진보를 막아. 개인의 생각을 막아. 내셔널리스트 뭔 스트, 모두 멀리해. 인간이 좁고 편협하며 스스로를 죽이는 건 상관없으나 옆사람 사람들을 죽여. 피해 똥이니까
세계대전 은 내셔널리즘 때문에 두번 발생한거고.
지금 세번째 세계대전 을 향해 가는겨. 이것도 내셔널리즘 이야 결국 쌓이고 쌓여서. 이 절정이 지금 중국 과 북조선 이야. 여기에 지금 끼들어가는게, 한국 이야. 심각한겨 이거.
왜냐면, 후진 나라일수록, 내셔널리즘 으로 선동되기가 너무 쉬운거고, 정치인이라는 들이 생존하기 쉬훈 도구가 이 내셔널리즘 이야. 언론팔이 학자팔이 하면서 지성인 놀이 하기 쉬운게 역시나 내셔널리즘 이고.
어찌할 수 없는데 말이지. 세계대전 두번 끝나고, 20세기말에 터진 유고내전 이란것도 이놈의 내셔널리즘 이야.
이걸 또한, 눈치챈게, 테슬라 여, 저 자서전을 보면. 그런데, 자기 고향이 저리될 줄 알았을까?
테슬라 유골을 저들이 내셔널리즘 놀이하면서 갖고 간건 너무한거야 저거. 그러면서 테슬라 를 지들 내셔널리티로 활용하면서 공항 이름 짓고 박물관 짓고 지폐에 도안으로 모시고, 너무한거야 저거 저거.
내셔널리즘 으로 정치인 들이 갖고 놀기가 가장 좋은거고, 이거 외엔 정치인 들이 생존의 이유가 없걸랑.
정치면 으로 하세월 보내는 생체들은, , 멀리해. 왜냐면 솔직히 그런 짓 아니면 사는 재미가 없걸랑. 당췌 무슨 짓을 해야만 시간을 떼울까, 없는겨 할짓이 ㅋㅋㅋ. 걍 선동놀이 하는데나 끼자.
걍 다들 어여 뒈져라 뒈져.
The Republic of Serbian Krajina or Serb Republic of Krajina (Serbo-Croatian: Република Српска Крајина / Republika Srpska Krajina or РСК / RSK, pronounced [rɛpǔblika sr̩̂pskaː krâjina]), known as the Serbian Krajina[a] (Српска Крајина / Srpska Krajina) or simply Krajina, was a self-proclaimed Serb proto-state,[5][6] a territory within the newly independent Republic of Croatia (formerly part of SFR Yugoslavia), which it defied, and which was active during the Croatian War of Independence (1991–95).
크라이나 의 세르비아 공화국. 세르비아어, 레푸블리카 쓰르프스카 크라이나. 세르비안 크라이나, 간단히 크라이나. 보스니아 변경의 크로아티아 지역 이야. 세르비아 변경과 함께. 이게 서기 1991-95.
테슬라 의 고향 스밀랸 에 고스피치 가 저 변경선 근처여 여기에 속해. 이 공화국 의 수도 가 Knin 크닌 이야. 여긴 저지대야.
The Yugoslav Wars were a series of separate but related[12][13][14] ethnic conflicts, wars of independence, and insurgencies fought in the former Yugoslavia[note 1] from 1991 to 2001, which led to the breakup of the Yugoslav federation in 1992.
유고슬라브 전쟁 이 서기 1991-2001 이야 십년. 이 시작이, 크로아티아 여. 크로아티아 독립전쟁이 1991 에 시작하는겨 나오려고. 이때 동시에 크로아티아 지역에서 공화국 을 선언한겨 크라이나 가. 크라이나 라는게 Frontier 변경 경계선 이야. 군사 경계지역 이야 저기가. 오스트리아 가 대투르크 전쟁 하면서 베오그라드 다시 주고 경계선 그을때 슬라보니아 킹덤 새로 만들면서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킹덤 의 경계지역 을 따로 설정해. 그리고 다시 프린스 외젠 이 Austro-Turkish War (1716–1718) 투르크 전쟁으로 테메스바르 에 베오그라드 도 갖고 오면서, 베오그라드 아래에 세르비아 킹덤 이 서. 1718-1739. 20여년. 러시아-투르크 전쟁때 오스트리아가 러시아편들면서 패하고 베오그라드 를 다시 줄때 세르비아인들이 대 이동 하는겨.
이들이 저 크라이나. 밀리터리 프론티어 경계선으로 가는겨. 이전에도 세르비안들이 이리들 오고 저때 대이동 하면서 또 오고. 이 세르비안 들이 크라이나 에서 오스만을 막은겨 이게. 여긴 행정구역 자체가 프론티어 이고 법이 달라. 거주 이전 이 제한적이여. 세금과 병역 이 달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에서.
테슬라 가 이 크라이나 지역 태생에 거주인겨. 세르비아에서 이리 온, 에뜨닉 이 세르비안 이야 그래서. 이주민 이야.
자서전 을 죽 보면, 뒤에 나오는데, 할아버지 가 나폴레옹 군대 에 있었다고 하걸랑.
저런 구절 하나가 웃긴건데
이 세르비안 들이 정체성이 졸라게 웃긴겨. 더하여 헝가리안 들이 또한 웃겨 이게. 웃기다는건, 한편으론 비참하단겨.
헝가리안 들이, 이들이 웃긴게, 백오십여년을 오스만 치하에 있었걸랑. 트랜실베니아 는 자치권 이라지만 오스만꺼고. 그러다 대투르크 전쟁으로 헝가리는 오스만을 벗어나. 이때 이 들은 말이야, 쿠루츠 라는 이름으로 오스만 편이야 ㅋㅋㅋ. 헝가리 귀족들이 합스부르크 에게 당했다며, 이전 썰, 자기들 오스만 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약속 안지킨다고 항의하다가 되레 당하고 이걸로 복수심에 오스만과 손잡아. 얘들은 대투르크전쟁 으로 오스트리아 로 들어와 오스만이 져서. 백오십년 지나서 1848 내셔널리즘 운동 할때 대들다가 짜지는겨. 헝가리 라는게 웃긴겨 이게. 그러다가 이들이, 내셔널리즘! 해대고 소셜리즘 코뮤니즘 해대다가 저리 거지 나라가 된겨.
세르비안, 졸라 웃겨, 더 웃겨. 이 남슬라브 의 세르비안 만큼 그야말로 강력한 저항의 역사는 없어. 야 조선 애들 역사 를 갖고 일본 대항 저항의 역사 흑흑 해대는거 정말 못봐줘. 저거 거짓말이야 저거. 어드래 저리 거짓말을 하냐고 ㅋㅋㅋ. 이게 상대가 안돼 세계사를 보다 보면.
세르비아는 베오그라드 위 판노니아 지역 보이보디나 는 오스트리아-헝가리여. 아래는 오스트리아 와 손잡고 킹덤도 섰다가 짜지고 다시 백년지나서 베오그라드 일부에 크냐즈 자치지역 세우다가 킹덤 만들어 다시. 북부 지역은 오스트리아 꺼고 남부 는 오스만꺼고. 북부 도 오스트리아 치하여. 얘들은 국토가 쪼개진겨 이게. 주인이 달라. 북부 세르비안 은 오스트리아 를 싫어해. 오스트리아 는 로마 카톨릭 이야. 세르비아 는 강력한 오소독시여. 90퍼 가까이 가 오소독시여. 크로아티아 는 90퍼 가 로마 카톨릭이야. 이 두 슬라브가 전혀 달라.
같은 슬라브 라도 정체성이 전혀 다른겨. 이걸 유고슬라비아 라미 슬라브여! 해대니, 말이 안되는겨 저게.
오스트리아 를 도와서 북부를 갖고왔으나, 안 맞아. 니콜라 테슬라 의 할아버지 가 여기 사람이야. 오스트리아 를 혐오하는 세르비안 이여. 그래서 나폴레옹 군대의 군인인겨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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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tion Storm (Serbo-Croatian: Operacija Oluja / Операција Олуја) was the last major battle of the Croatian War of Independence and a major factor in the outcome of the Bosnian War. It was a decisive victory for the Croatian Army (HV), which attacked across a 630-kilometre (390 mi) front against the self-declared proto-state Republic of Serbian Krajina (RSK), and a strategic victory for the Army of the Republic of Bosnia and Herzegovina (ARBiH).
유고슬라브 전쟁 이 크로아티아 독립 선언으로 시작하고, 변경의 세르비안들이 크라이나 공화국 선언하고, 이어 보스니아 도 독립선언하는겨 나올라고.
오퍼레이션 스톰. 작전명 폭풍. 4–7 August 1995.
크로아티아 군대가 일방적으로 쳐들어가는겨 세르비안 크라이나 를. 덤으로 보스니아 를.
Serb civilian deaths:
214 (Croatian claim) – 1,192 (Serb claim)
Croat civilian deaths: 42
Refugees:
150,000–200,000 Serbs from the former RSK
21,000 Bosniaks from the former APWB
22,000 Bosniaks and Croats from the Republika Srpska
서로 군인은 몇백명씩 주고, 크라이나 의 세르비안 들 20만명은 피난민들이 되고.
저때 크라이나 는 크로아티아 로 들어와.
Eastern Slavonia, Baranja and Western Syrmia (Serbian: Источна Славонија, Барања и Западни Срем / Istočna Slavonija, Baranja i Zapadni Srem; Croatian: Istočna Slavonija, Baranja i Zapadni Srijem) was a short-lived Serb parallel entity in the territory of Croatia.
크라이나 의 저 북동쪽 다뉴브강의 세르비아 변경은, 동부 슬라보니아 바라냐 그리고 서 시르미아, 라는 이름으로 삼년 더 가다가 이것도 크로아티아 로 들어온겨. 그리고 얘들은 세르비아 랑 빠이빠이 하는기고.
할때, 테슬라 는 크라이나 지역 출신이지만, 아인슈타인 의 첫번째 마누라 마리치 는, 티텔 은 크라이나 가 전혀 아녀. 이여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셔널리티 인 세르비안 이야 에뜨닉이. 크라이나 세르비안 이라며 테슬라 와 마리치 를 같이 다루던데 어디보니, 무식해서 그래. 니덜말고 웨스턴애들. 니덜이야 크라이나 가 먼지 우크라이나여? 해대면 지능이 있는편이겄지. 에휴 니덜델꼬 내가 먼 개솔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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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는 저런 에뜨닉 구분 은 전혀 전혀 관심이 없어.
민족주의 라고 일본애들이 번역해서 쓰는건, 에뜨닉 이지 저게 유럽애들의 내셔널리즘이 아녀. 전혀 다른겨 이 단어 와 개념이.
민족주의, 일본말이야.
민주주의, 역시나 일본말이고,
민족주의 라는 블러드 중심 은 에뜨닉 주의 고 레이시즘 이여 인종주의 고. 내셔널리즘 이 아녀. 내셔널리즘 은 국가 주의여. 극동은 내셔널리즘 이 에뜨닉과 결합된 내셔널리즘 이고, 조선땅은, 머라해야 해 이걸, 얘들은 국가 가 관심이 없잖니. 국가 는 적폐가 만든거고, 에뜨닉 으로 하나 되자 는 거걸랑. 조선 정체성은 국가 주의 라는 내셔널리즘 이 아녀 이게. 에뜨닉주의 인 언어족주의여. 민족 이란건 언어족인거고. 얘들한테 내셔널리즘 을 붙이면 안되지. 전혀 달라 이 미개한 정도 조차. 이런걸 웨스턴 애들이 몰라요 이런걸.
중국의 한족 이란 에뜨닉 주의는 그야말로 기가막힌 코메디고 저건.
기가막힌 미개한 애들 둘이서, 정말 그야말로 기가막힌 지들만의 에뜨니컬-내셔널리즘 을 하면서, 얘들이 전쟁의 축이 될거야 미래에.
테슬라, 는 저런 내셔널 에고이즘 에 프라이드 에 대한 광적인 헌신 이 전쟁의 원인 이라고 말해. 자서전 에서. 아주 잘 본거지. 극동식으론 에뜨니컬-내셔널 프라이드 ㅋㅋㅋ. 중국 애들과 조선 애들 의 이 에뜨니컬-네셔널 프라이드 는 그야말로 엄청나, 인도 와 슬람이들도 엄청나지만. 쟤들은 나름 역사가 있어서 머 저렇다고 쳐. 야 당췌, 아무런 역사, 부끄러움 자체 인 조선역사 똥 자체 를 자랑스레 여기는건, 정말 저건 정신병의 극치여. 이성이 완벽히 결여된 거야. 이런애들이 남의 강렬한 노예, 생각없는 로봇 이 되서, 전쟁을 일으키는거지. 답이 없어 이 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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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thing I did that was creditable merely caused my parents to feel their loss more keenly. So I grew up with little confidence in myself. But I was far from being considered a stupid boy, if I am to judge from an incident of which I have still a strong remembrance. One day the Aldermen were passing thru a street where I was at play with other boys. The oldest of these venerable gentlemen--a wealthy citizen--paused to give a silver piece to each of us. Coming to me he suddenly stopt and commanded, "Look in my eyes." I met his gaze, my hand outstretched to receive the much valued coin, when, to my dismay, he said, "No, not much, you can get nothing from me, you are too smart." They used to tell a funny story about me. I had two old aunts with wrinkled faces, one of them having two teeth protruding like the tusks of an elephant which she buried in my cheek every time she kist me. Nothing would scare me more than the prospect of being hugged by these as affectionate as unattractive relatives. It happened that while being carried in my mother's arms they asked me who was the prettier of the two. After examining their faces intently, I answered thoughtfully, pointing to one of them, "This here is not as ugly as the other."
내가 했던 어떤 것이든, 칭찬받을만한 일은, 단지, 내 부모가 형의 부재를 더 찐하게 느끼게끔 할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라면서 나자신에게 자신감이 없었다. 그렇다고 나를 어리석은 아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전혀, 내가 어떤 사건으로 판단컨데, 나는 여전히 기억력이 아주 좋다. 하루는 알더멘, 지금식 시청 고위직들이 길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거기서 나는 다른 애들과 놀고 있었다. 그 귀한 신사들 중 가장 늙은이 인데, 부자였고, 멈춰선 은화를 우리에게 하나씩 줬다. 나에게 다가오더니 그는 갑자기 멈춰선 명령조로, "내 두눈을 바라봐" 나는 그의 시선을 맛대어 쳐다봤다, 나의 손을 쭉 뻗고 그 졸 값진 동전을 받으려고, 그때, 참담하게도, 그가 말했다, "아니, 안되겠어, 너는 나에게 아무것도 받을 수 없어, 너는 너무 영리한걸." 그들은 나에대해 재미진 이야길 하곤 했다. 나는 나이든 두 이몬지 숙몬지 있었는데 쭈글텡 얼굴들이었다, 그들중 하나는 치아 두개가 툭 튀나와서리 코끼리 송곳니들 같았는데, 그녀는 내 볼에 매번 나에게 키스 하면서 그 이빨들을 쑤시곤 했다. 아무것도 나를 이 이상으로 무섭게 한 건 없었다, 매력없는 친척들이 이쁘다며 끌어안는 짓을 당한다는걸 예견하는 것 보다. 한번은 그들이 내 엄마의 팔을 잡고 와서는, 나에게 물었다 누가 더 이쁘냐고 자기들 둘 중에. 그들의 얼굴을 깊게 관찰하고는, 나는 대답했다 진지하게, 그들 중 하나를 가리키면서, "이쪽이 저쪽만큼은 못생기지 않음"
Then again, I was intended from my very birth for the clerical profession and this thought constantly opprest me. I longed to be an engineer but my father was inflexible. He was the son of an officer who served in the army of the Great Napoleon and, in common with his brother, professor of mathematics in a prominent institution, had received a military education but, singularly enough, later embraced the clergy in which vocation he achieved eminence. He was a very erudite man, a veritable natural philosopher, poet and writer and his sermons were said to be as eloquent as those of Abraham a Sancta-Clara. He had a prodigious memory and frequently recited at length from works in several languages. He often remarked playfully that if some of the classics were lost he could restore them. His style of writing was much admired. He penned sentences short and terse and was full of wit and satire. The humorous remarks he made were always peculiar and characteristic. Just to illustrate, I may mention one or two instances. Among the help there was a cross-eyed man called Mane, employed to do work around the farm. He was chopping wood one day. As he swung the axe my father, who stood nearby and felt very uncomfortable, cautioned him, "For God's sake, Mane, do not strike at what you are looking but at what you intend to hit." On another occasion he was taking out for a drive a friend who carelessly permitted his costly fur coat to rub on the carriage wheel. My father reminded him of it saying, "Pull in your coat, you are ruining my tire." He had the odd habit of talking to himself and would often carry on an animated conversation and indulge in heated argument, changing the tone of his voice. A casual listener might have sworn that several people were in the room.
그럼 다시 돌아가서, 나는 태어날때부터 성직자로 정해졌다 그래서 이런 생각은 계속 나를 거슬렸다. 나는 엔지니어가 되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나의 아빠는 완고했다. 그는 군인의 아들이었는데 그 군인은 위대한 나폴레옹 군대에 복무했었다. 아빠는 자기 형인지 동생인지가 어떤 잘나가는 곳에서 수학 교수였는데, 둘이 같이 군사교육을 받았었지만, 하나면 충분하다고, 아빠는 성직을 품었고 거기서 빼어났나 보다. 그는 매우 에루다이트 학식있는 사람이었고, 타고난 자연 철학자 였고, 시인 에 작가 였고, 그의 설교들은 분명명확했다 아브라함아산크타클라라 의 것처럼. 그는 천재적 기억력을 가져서 자주 암송했다 몇개 언어로 책들의 긴 문장들을. 그는 종종 즐겁게 강조하곤 했다, 몇몇 고전들이 사라져도 자기가 그것들을 복원할 수 있다고. 그의 글쓰기 스타일도 웅변하는것만큼 탁월했다. 그는 문장들을 짧고 간결하게, 위트 와 풍자 로 썼다. 그가 하는 유머러스한 말들은 언제나 독특했고 개성있었다. 그걸 풀어서 설명하자면, 한두개 경우들을 언급할 수 있겠는데. 그런 언급을 도와줄 사건 들을 보자면 하나가 떠오르는데, 메인 이라고 사시斜視 였는데 논밭 주변에서 일하는 직원이었다. 그는 하루는 나무를 쪼개고 있었다. 그가 도끼를 휘두를때, 내 아빠가 근처에 있었는데 매우 불안해하며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신이시여, 어이 메인, 너가 바라보는 곳에 도끼질 하지 말고, 치려고 의도한 곳에 해." 또다른 경우는, 아빠가 친구와 함께 마차를 타러 나왔는데, 그 친구가 부주의해서 입던 비싼 털외투 가 마차 바퀴에 닿았다. 내 아빠는 그에게 그외투에 대해 말하면서, "너 코트 챙겨라, 내 타이어 닳겠어" 그는 자기에게 말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어서 종종 생생한 대화를 혼자 하면서 열띤 토론에 빠진다, 자기 목소리 톤을 바꾸면서.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그 방에 몇사람이 있다고 확신했을게다.
Abraham a Sancta Clara (July 2, 1644 – December 1, 1709), German divine, was born at Kreenheinstetten, near Meßkirch. His lay name was Johann Ulrich Megerle. He has been described as "a very eccentric but popular Augustinian monk"
아브라함 아 산크타 클라라. 속세이름은 요한 울리히 미갈러. 메쓰키르히 근처 크린하인슈테텐 출생. 가장 외도적이면서 인기있던 오커스틴 몽크. 1644-1709. 아주 유명한 사람인데.
In 1662 Abraham a Sancta Clara joined the Catholic religious order of Discalced Augustinians, and assumed the religious name by which he is known. In this order he rose step by step until he became prior provincialis and definitor of his province.[2] Having early gained a great reputation for pulpit eloquence, he was appointed imperial court preacher at Vienna in 1669.[1][2]
The people flocked to hear him, attracted by the force and homeliness of his language, the grotesqueness of his humour, and the impartial severity with which he lashed the follies of all classes of society and of the court in particular. In general he spoke as a man of the people, the predominating quality of his style being an overflowing and often coarse wit. There are, however, many passages in his sermons in which he rises to loftier thought and uses more dignified language
18세 에 수도사 가 돼. 디스칼스트 오거스티니언즈. 맨발의 성오거스틴 수도회 여. 루터 티나올때 카톨릭에서 만든 거고. 디스칼스트 discalced 맨발의 수도사 할때 쓰는 말인데, calceus 칼케우스 가 신발 shoe 는 영어. 칼크스 calx 가 뒷꿈치 힐 이고 calceo 칼케오 가 신싣는거고. 맨발의 수도사 하면 카르멜라이트 가 떠오르는데, 카르멜라이트 수도회 가 십자군 시작할때 만들어진 졸라 오래된거고, 성오거스틴 수도회 도 13세기여. 루터 티나오고 카운터 리포메이션 한다고 자각 운동 이 카톨릭 에서 일어날때 , 수도회 가 또한 등장하잖니 대표적인게 제수이트 고. 기존 수도회에서 가지치는게, 신발벗는겨, 디스칼스트. 이게 대표적인게 성오거스틴 과 카르멜라이트 의 디스칼스트 야.
아브라함 아 산크타 클라라. 이사람은 설교 로 유명해 아주. 목소리가 힘이 있고 매력적이고, 정다워, 유머러스하고, 그러면서도 당시 정치사회의 모든 계급들 상하 모두 에 어리석음을 비판 해대는겨 안편파적으로.
산크타 클라라. 깨끗한 성스러움. 아 라는 라틴어가 뉴라틴이고 프럼 이야. 이사람 삼촌 이름을 그대로 딴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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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ho I must trace to my mother's influence whatever inventiveness I possess, the training he gave me must have been helpful. It comprised all sorts of exercises--as, guessing one another's thoughts, discovering the defects of some form or expression, repeating long sentences or performing mental calculations. These daily lessons were intended to strengthen memory and reason and especially to develop the critical sense, and were undoubtedly very beneficial.
나는 내 발명소질에 대해 내 엄마의 영향을 추적해봐야 하지만, 어쨌거나 그가 나에게 한 훈련은 도움이되었음에 틀림없다. 모든 종류의 훈련이었다, 다른 생각들을 추측하기, 어떤 형태나 표현에서 부족한점들 찾기, 긴 문장들 반복하기, 암산 연습들. 이것들을 매일 했는데 기억과 이성을 강화하려는 의도였고, 특히나 특별한 감각을 발달시키기 위함이었으며, 의심할것없이 아주 유용했다.
My mother descended from one of the oldest families in the country and a line of inventors. Both her father and grandfather originated numerous implements for household, agricultural and other uses. She was a truly great woman, of rare skill, courage and fortitude, who had braved the storms of life and past thru many a trying experience. When she was sixteen a virulent pestilence swept the country. Her father was called away to administer the last sacraments to the dying and during his absence she went alone to the assistance of a neighboring family who were stricken by the dread disease. All of the members, five in number, succumbed in rapid succession. She bathed, clothed and laid out the bodies, decorating them with flowers according to the custom of the country and when her father returned he found everything ready for a Christian burial. My mother was an inventor of the first order and would, I believe, have achieved great things had she not been so remote from modern life and its multifold opportunities. She invented and constructed all kinds of tools and devices and wove the finest designs from thread which was spun by her. She even planted the seeds, raised the plants and separated the fibers herself. She worked indefatigably, from break of day till late at night, and most of the wearing apparel and furnishings of the home was the product of her hands. When she was past sixty, her fingers were still nimble enough to tie three knots in an eyelash.
내 엄마는 그 지역의 오랜 집안들의 하나에서 내려온 족보고, 소위 발명가들 집안이다. 그녀의 아빠와 할아버지는 집안살림을 위한 수많은 도구들을 만들었다, 농업적이거나 다른 용도의. 그녀는 진짜 굉장한 여자였다, 드문 기술에 용기 와 힘 을 가진, 삶의 폭풍들에 용감히 맞서왔고 많은 경험들을 지나오며. 그녀가 16세일때 역병이 그 지역을 휩쓸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불려 나갔다 사제라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성사를 주관하라고, 그의 부재중에 그녀는 혼자 이웃 가족을 도우러 갔는데 모두들 죽음의 질병이 걸렸었다. 그들 모두가, 다섯이, 연속적으로 바로 그냥 죽었다. 그녀는 그들을 씻기고 입히고 수습했다, 그 시체들에 꽃들로 꾸미면서 그 지역의 관례에 따라, 그리곤 그녀의 아빠가 돌아왔을때 그는 모든것이 그리스도 제식대로 준비된걸 알았다. 나의 엄마는 최초의 발명가였다, 그럴게다, 내가 믿건데, 굉장한 것들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녀가 현대 생활과 그 얽힌 기회들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면. 그녀는 새로 만들어내거나 조립했다 모든 종류의 연장들과 도구들을, 그리고 자기가 뽑은 실들로 가장 좋은 디자인들을 만들었다. 그녀는 씨들을 심어서 식물들을 키우고는 혼자서 섬유들을 분리했다. 그녀는 인디피티거블리, 쉼없이 일했다, 해가 뜨고 밤늦게까지, 대부분 입는 옷과 집의 장식품들은 그녀 손으로 만든거였다. 그녀가 60이 넘었을때, 그녀의 손가락은 여전히 날렵했다 한번에 세 매듭을 꿸 만큼.
퍼티그 fatigue 가 피곤인데, 라틴어 파티고 에 데파티고 면 피곤해서 나가 떨어진거고, 인디피티거블, 피곤도 죽여버릴만큼 질리게 일했다 는거고.
그리고, 아주 중요한 내용이 이어서 나오는데, 이게 테슬라 를 만든건데 이게. 아주 독특해.
There was another and still more important reason for my late awakening. In my boyhood I suffered from a peculiar affliction due to the appearance of images, often accompanied by strong flashes of light, which marred the sight of real objects and interfered with my thought and action. They were pictures of things and scenes which I had really seen, never of those I imagined. When a word was spoken to me the image of the object it designated would present itself vividly to my vision and sometimes I was quite unable to distinguish whether what I saw was tangible or not. This caused me great discomfort and anxiety. None of the students of psychology or physiology whom I have consulted could ever explain satisfactorily these phenomena. They seem to have been unique altho I was probably predisposed as I know that my brother experienced a similar trouble. The theory I have formulated is that the images were the result of a reflex action from the brain on the retina under great excitation. They certainly were not hallucinations such as are produced in diseased and anguished minds, for in other respects I was normal and composed. To give an idea of my distress, suppose that I had witnest a funeral or some such nerve-racking spectacle. Then, inevitably, in the stillness of night, a vivid picture of the scene would thrust itself before my eyes and persist despite all my efforts to banish it. Sometimes it would even remain fixt in space tho I pushed my hand thru it. If my explanation is correct, it should be able to project on a screen the image of any object one conceives and make it visible. Such an advance would revolutionize all human relations. I am convinced that this wonder can and will be accomplished in time to come; I may add that I have devoted much thought to the solution of the problem.
또다른 그리고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어 나의 때이른 자각에 대한. 내가 아이일때 나는 겪었어 나만의 독특한 고통을, 이건 이미지들이 나타나서 생겼던건데, 종종 동반해 강력한 불빛들이, 이 섬광들이 리얼오브젝트들 즉 현실세상의 시야를 방해하고, 나의 생각과 행동에 간섭을 했어. 그것들은 띵들, 것들의 그림들이고, 내가 진짜로 봤던 화면들 이야, 그런화면들을 나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어. 하나의 워드 가 나에게 들릴때는, 그 워드가 규정하는 그 오브젝트의 이미지 가 스스로 생생하게 나의 시야에 나타나, 그래서 때로는 나는 정말 분간할 수가 없었어, 내가 보는 것이 만질수 있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이건 나를 굉장히 불편하게 불안하게 만들었어. 내가 물어봤었던 심리학 이나 생물학 학생들 아무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가 없었어 이런 현상들을. 그런 현상들은 유니크 했던 거로 보이는데, 그런데 나는 알아 내 죽은 형이 비슷한 문제를 겪은걸, 그래서 내가 듣보의 경우는 아냐. 내가 방정식화한 이론인데, 그 이미지들은 굉장한 흥분상태 일때 뇌에서 반사적 활동이 일어나고 이게 망막에 비치는 결과물이야. 그것들은 확실히, 질병이나불안상태의 정신에의한 환영들은 아니었어, 왜냐면 다른 한편으론 나는 정상이었고 침착했거든. 내가 그런 일을 겪을 때를 가정해보면, 내가 장례식을 봤다고 쳐, 또는 어떤 신경 긁는 광경을. 그러면, 반드시, 조용한 밤에, 그 봤던 화면의 생생한 그림이 그 자체로 내 눈앞에 튀어나오는거야, 그리곤 내가 그 화면을 지우려고 별 짓들을 해도 버티는거야 그게. 때때로 그게 공간에 그대로 고정된 채 있기도 해 내가 내 손으로 그 속을 통과해도. 내 설명이 옳다면, 사람이 생각을 품는 어떤 오브젝트 대상의 이미지를 스크린에 (그대로 영화보듯이) 쏘아서 그것을 눈에 보일수 있어야 한다고 봐. 그런 진보 는 모든 인간 관계들을 변혁할 거야. 나는 확신해 이런 놀라움(생각하는게 그대로 영화보듯 화면에 나타나는 기술)이 곧 실현될 것이란걸; 나도 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이런 생각을 미치도록 해온 노력들을 그 기술개발에 보탤 수도 있어.
To free myself of these tormenting appearances, I tried to concentrate my mind on something else I had seen, and in this way I would of ten obtain temporary relief; but in order to get it I had to conjure continuously new images. It was not long before I found that I had exhausted all of those at my command; my "reel" had run out, as it were, because I had seen little of the world--only objects in my home and the immediate surroundings. As I performed these mental operations for the second or third time, in order to chase the appearances from my vision, the remedy gradually lost all its force. Then I instinctively commenced to make excursions beyond the limits of the small world of which I had knowledge, and I saw new scenes. These were at first very blurred and indistinct, and would flit away when I tried to concentrate my attention upon them, but by and by I succeeded in fixing them; they gained in strength and distinctness and finally assumed the concreteness of real things. I soon discovered that my best comfort was attained if I simply went on in my vision farther and farther, getting new impressions all the time, and so I began to travel--of course, in my mind. Every night (and sometimes during the day), when alone, I would start on my journeys--see new places, cities and countries--live there, meet people and make friendships and acquaintances and, however unbelievable, it is a fact that they were just as dear to me as those in actual life and not a bit less intense in their manifestations.
이런 고문같은 (이미지들의) 나타남들에서 나를 벗어나게 하려고, 내가 봤었던 그 것 외의 다른 것에 내 정신을 집중하려고 시도를 했어, 그래서 이런 방법으로, 나는 아마 열살 즈음에 잠시 안정을 찾았어. 그런데 그런 안정 피난처 를 얻기 위해서 나느 지속적으로 새로운 이미지들을 상상해내야했어. 오래지 않아 나는 알게 되었지 쓸 수 있는 모든 이미지들을 다 소진해버린걸; 내 실들이 바닥이 난거야 말그대로, 왜냐면 나는 (그나이에) 거의 세상을 본 적이 없어 경험이 적어, 단지 내 집에 보이는 오브젝트들(사물들, 이미지들 만들기 위한) 그리고 부닥치는 주변의 것들. 내가 이런 정신적인 활동들을 두세번 시도할때, 내 시야에서 보이는 그 이미지들을 쫓아내기 위해서, 그 치료책은 점점 그 힘들을 잃어버렸어. 그다음엔 그래서, 나는 본능적으로 여행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어, 내가 알고 있던 작은 세상의 한계들을 벗어난 세상으로. 그리고 나는 새로운 화면들을 봤어. 이 화면들은 처음엔 아주 흐릿하고 구분이 안됐고 그래서 바로 사라지곤 했어 내가 그것들에 집중하려고 시도를 하면. 그런데, 점점 나는 그것들을 고정시키는데 성공을 했어; 그 화면들은 힘을 얻었고 구분이 되었고 마침내 리얼한 것들의 구체성을 지녔어. 나는 곧 발견했어, 나의 최고의 편함에 닿는 걸, 내가 간단하게 내가 만든 화면으로 더 더 가다보면 언제나 새로운 인상들을 얻게 되고, 그렇게 나는 여행을 시작했어, 물론, 내 정신 세계 내부 에서. 매일 밤 (그리고 때로는 낮 동안), 혼자 일때, 나는 나의 여행을 시작을 하곤 해, 새로운 장소들, 도시들, 시골들을 보고, 거기서 살고,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들을 만들고, 친숙해지고, 그리고, 믿을수 없겠지만, 사실이야, 그들은 진짜 나에겐 귀했어 현실 세계의 것들 만큼이나, 그리고 그들의 존재성은 (현실과 비교해서) 적지않게 강렬했어.
This I did constantly until I was about seventeen when my thoughts turned seriously to invention. Then I observed to my delight that I could visualize with the greatest facility. I needed no models, drawings or experiments. I could picture them all as real in my mind. Thus I have been led unconsciously to evolve what I consider a new method of materializing inventive concepts and ideas, which is radically opposite to the purely experimental and is in my opinion ever so much more expeditious and efficient. The moment one constructs a device to carry into practise a crude idea he finds himself unavoidably engrost with the details and defects of the apparatus. As he goes on improving and reconstructing, his force of concentration diminishes and he loses sight of the great underlying principle. Results may be obtained but always at the sacrifice of quality.
이걸 꾸준히 한겨 내가 아마 17세 일 때까지, 이때 내 생각들은 진지하게 인벤션, 발명으로 굳혔어. 그때 나는 알게되었는데 아주 기쁘게도, 나는 굉장히 쉽게 비쥬얼라이즈, 시각화 할 수 있다는 거야. 나는 아무런 모델들(보조형상), 그림들 또는 실험들 이 필요하지 않았어. 나는 그것들을 그릴수 있었어 아주 리얼하게, 내 마음 속에서. 그렇게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냥 끌려서 펼쳐지게끔 즉 진화한거야 난, 나는 새로운 방법이라 생각하는데, 새로운것들에 대한 관념들과 아이디어들을 물질화 하는 것의. 그야말로 획기적이지만 정반대거든 아주 실험적인 면에서, 그리고 이건 내 의견 이지만 속도도 아주 빠르고 효율적이야 (이 방법은). (먼 말이냐면) 어떤 장치나 기구 를 만들어낼때 원초적아이디어에서 현실화단계로, 생각에서 물건으로 구현하게 되는 순간, 개발자는 어찌할 수 없이 그 장치 의 그 구체적상세함과 결함들을 알게 돼. 그는 계속 개량하고 재설계 해서 다시 만들면서, 집중력은 떨어지고 원래 갖던 근본 원칙을 까먹게 되고 잃게 돼. 결과물들은 얻어질지라도 언제나 품질은 희생되게 마련이지.
My method is different. I do not rush into actual work. When I get an idea I start at once building it up in my imagination. I change the construction, make improvements and operate the device in my mind. It is absolutely immaterial to me whether I run my turbine in thought or test it in my shop. I even note if it is out of balance. There is no difference whatever, the results are the same. In this way I am able to rapidly develop and perfect a conception without touching anything. When I have gone so far as to embody in the invention every possible improvement I can think of and see no fault anywhere, I put into concrete form this final product of my brain. Invariably my device works as I conceived that it should, and the experiment comes out exactly as I planned it. In twenty years there has not been a single exception. Why should it be otherwise? Engineering, electrical and mechanical, is positive in results. There is scarcely a subject that cannot be mathematically treated and the effects calculated or the results determined beforehand from the available theoretical and practical data. The carrying out into practise of a crude idea as is being generally done is, I hold, nothing but a waste of energy, money and time.
나의 방법은 달라. 나는 실제 작업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아. 나는 아이디어를 얻으면, 즉기 그걸 내 상상속에서 건축을 해. 나는 그 건축을 바꿔, 개선을 하고 그 장치를 작동해봐 내 마음 안에서. 그건 절대적으로 비물질적인거야 정신적인거야 나에겐, 내가 터빈 을 내 생각세상에서 돌려보든 내 가게 안에서 테스트를 하든. 나는 그게 균형이 잡혀있나도 체크를 해. 어쨌거나 아무런 차이가 없어, 결과는 같아. 이런 식으로 나는 빨리 발전시켜서 완성할 수 있어 어떤 인식의 아이디어를, 아무것도 터치하지 않고(모든게 생각세상에서 다 끝나). 내가 그걸 그대로 물체로 구현해서(생각속에서) 발명하면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개선을 하고 어디든 결함이 없음을 볼 때, 나는 (이때서야) 내 뇌의 최종 생산물을 구체적 형태로 내놓는다. 내가 생각한 대로 내 기구는 오차없이 작동하고, 그 실험은 정확하게 내가 계획한 대로 행해진다. 20년 동안 단 한번의 예외도 없었더. 왜 다른 방법을 시도하냐고 대체. 엔지니어링,은 전기적 이든 기계적이든, 결과적으론 긍정적이다 (내 이런 방법이). (물론 나의 방법이 안통하는 것으로) 이용가능한 이론적이고 실재적 구체적 데이타 도 없이는, 수학적으로도 다뤄질수없고 효과도 계산될수없고 즉 결과들도 결정할 수 없는, 극히 드문 주제의 것들이 있긴 하다(이런건 생각만으론 안돼). 원초적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하는데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방식은, 내 가 보기엔, 에너지 돈 시간 낭비 일 뿐이다.
My early affliction had, however, another compensation. The incessant mental exertion developed my powers of observation and enabled me to discover a truth of great importance. I had noted that the appearance of images was always preceded by actual vision of scenes under peculiar and generally very exceptional conditions and I was impelled on each occasion to locate the original impulse. After a while this effort grew to be almost automatic and I gained great facility in connecting cause and effect. Soon I became aware, to my surprise, that every thought I conceived was suggested by an external impression. Not only this but all my actions were prompted in a similar way. In the course of time it became perfectly evident to me that I was merely an automaton endowed with power of movement, responding to the stimuli of the sense organs and thinking and acting accordingly. The practical result of this was the art of telautomatics which has been so far carried out only in an imperfect manner. Its latent possibilities will, however, be eventually shown. I have been since years planning self-controlled automata and believe that mechanisms can be produced which will act as if possest of reason, to a limited degree, and will create a revolution in many commercial and industrial departments.
나의 어릴때 고통은, 그래서 또다른 댓가(좋은것)을 갖았다. (무서운 이미지 내쫓기의) 끊임없는 정신 활동은 나의 관찰 능력을 발달시켰고 내가 굉장히 중요한 진짜를 발견하게 했다. 나는 알아챘다, 이미지들이 나타날때는 언제나 다음에는 (현실의) 진짜 화면들이 뒤따랐다, 그 화면들은, 특이하고 대게아주예외적인 상황들 의 (현실에서봤던) 화면들이었고 그래서 나는 그럴 때마다 그 원래의 그화면을만든힘의 시작지점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가 몇번 지나서, 이런 노력의 힘이 커지다가 거의 자동적이 되고, 나는 원인과 결과를 잇는데 있어 굉장히 쉽게 인과를 찾을 수 있었다.
놀랍게도 곧 나는 깨달았다, 내가 품는 모든 생각이, 외부의 임프레션, 인상, 외부의 누름 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을.
이뿐 아니라(내 생각이 외부의 프레스 에 의함) 모든 나의 행동들도 비슷하게 유발되었다. (라고 나는 깨달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에겐 확실히 분명해졌다, 나는 단지 오토메톤, 자동기계 일 뿐이란걸, 움직임의 힘이 주어진, 감각기관들의 자극에 반응하고, 그것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런 생각의 실재적 결과물이 텔오토매틱스 개발 이었다. 이건 그런 식으로 개발이 되어왔던것이고 아직 불완전하다. 그것의 잠재된 가능성들은 어쨌거나 결국 보여질 것이다. 나는 그 이후 몇년을 계획해 왔다 자동-조절 오토마타 자동기계로봇을, 그리고 믿는다 그런 기계들은 만들어질 것이고, 행동할 것이란 걸, 이성을 소유한 듯이, 제한된 정도 겠지만. 그리고 많은 상업적인 산업적인 부문들에서 혁명을 이룰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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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릴대 이야긴데, 저게 로봇 이야기에 무선 조종 이야기여. 이걸 생각하게 된 이유가 역시나 자기 의 어릴 때 이야기야. 이사람이 이미지 가 나타나걸랑. 너무나 리얼한 화면이 눈앞에 펼쳐져. 손으로 휘저어도 사라지지 않아. 너무나 무서운겨 이게.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안쓰는데 대여섯 같어 아주 꼬마때부터. 그래서 눈앞에 나타난 이미지 를 쫓아내려고 아예 다른 이미지 를 머리속에서 떠올려서 자기가 만든 이미지 에 집중하면서 도피하는겨. 자기가 만든 이미지 가 처음엔 흐릿해 희미해. 그러다가 자기 이미지가 분명해지는거야. 써먹은 이미지 는 효과가 없어. 자기가 현실에서나 책에서 본 다른 이미지 를 만들어내야해. 수시로 외부에서 갑툭튀로 나타나는겨 싫은 이미지 화면들이. 이걸 ㅋㅋㅋ 이사람이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싸우는겨 이미지 전쟁이야 소위 ㅋㅋㅋ. 참 시안한데. 그런데, 이게 정말 위대한 자기 훈련 이야 이거. 걍 그렇게 된겨. 그래서, 저게 어플릭션 고통을 줬지만 콤펀세이션 보상을 한편으로는 준겨. 저게 테슬라 를 만든겨.
그러면서, 세상이란거, 존재란것 에 대해, 자기만의 자각 을 하게 돼.
산다는게, 인간이란게, 오토매톤, 이란겨. 인간이란것 자체가, 스스로움직이는자동기계 생체기계 란겨. 자기의 아이디어 는 외부에서 먼가 자기를 충동질해. 외부에서 자기에게 던지는겨 저놈의 생각 이란게. 이걸 깨달은겨 혼자.
저 이미지 보이는거에, 외부의 임프레션. 이게 테슬라 의 아주 독특한 이야기인데, 계속 아주 저 이야기가 자주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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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특이한 인간이고.
테슬라 의 안테나 가 유독 고차원 이어서, 외계신이 수신기 로 쓴겨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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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에 대한 책들이 많아. 생전에 이너뷰도 많이했고, 저 자서전 외에 또 다른 자서전이 있어 작가 와 함께 쓴게, 여하튼 이거저거 인용되서 정리된 거 다른거 에
Tesla read many works, memorizing complete books, and supposedly possessed a photographic memory.[238] He was a polyglot, speaking eight languages: Serbo-Croatian, Czech, English, French, German, Hungarian, Italian, and Latin.[239] Tesla related in his autobiography that he experienced detailed moments of inspiration. During his early life, Tesla was repeatedly stricken with illness. He suffered a peculiar affliction in which blinding flashes of light appeared before his eyes, often accompanied by visions.[238] Often, the visions were linked to a word or idea he might have come across; at other times they provided the solution to a particular problem he had encountered. Just by hearing the name of an item, he could envision it in realistic detail.[238] Tesla visualized an invention in his mind with extreme precision, including all dimensions, before moving to the construction stage, a technique sometimes known as picture thinking. He typically did not make drawings by hand but worked from memory. Beginning in his childhood, Tesla had frequent flashbacks to events that had happened previously in his life
테슬라 는 책들을 무진장 읽었고, 기억력이 아주 비상해. 부모한테 받은거에 아빠한테서 저런 훈련을 어릴때 부터 받았거든. 더해서, 포토그래픽 메모리, Eidetic_memory 아이데틱 메모리, 그리스어고, 사진 찰칵 기억력. 머릿속에 걍 사진 보듯이 보는겨. 아직 저 이야긴 안나왔고 뒤에 나올텐데 사진기억력. 폴리글롯 이었다. 여덟게 언어. 세르보-크로아티안. 체크. 영어, 불어, 독어, 헝가리어, 이탈리안, 라틴어.
저게, 불어 영어 독어 스페니쉬 애들이 서로 이걸 하는거랑, 슬라브 인간이, 불어영어독어 하는거랑 이게 달라 또한. 더 힘들어 이게.
글롯.이 글롯토스. 텅 이 혀 고 게르만어야. 글롯토스 글롯타 가 그리스어 혀.야. 테슬라 가 프라하대학을 입학을 못해, 그리스어를 못해서. 아 예전에 봐서리, 맞을껴.
쟤들 저들의 저 중세 와 근대 19세기 지나는 저 인간들 언어하는게, 야 이게 정말 차원이 다른겨 이게. 조선빠닥은 정말 너무나 너무나 미개한겨. 이 조선 들은, 다른 나라 언어 쓰면, 뉴스에 나와, 일본 단어 썼다고 ㅋㅋㅋㅋ 겐세이 란 말을 썼다고 메인뉴스 에 나오는 나라야. 정말 골때리는 나라야 이 조선 이라는 마인드. 저걸 영어 로 만약 웨스턴에 기사를 내면 참 재밌을거야. 이 조선빠닥 벌어지는 일들을 기사를 내면, 정말 그야말로 코메디야 이건.
한글 일들이라서, 검증할 나라도 없어. 지들 끼리 자폐로, 완벽히 지들만의 세상에서, 슨상 놀이 해대는겨. 얼마나 끔찍하냐고 이게. 쟤들은 서로서로 검증 할 애들이나 있지, 조선 처럼 저따위 역사 정리 할 수가 없거니와.
테슬라 가, 이미지 가 나타나던가, 소리 가 들려, 워드, 대게 단어 가 들리는겨. 이미지 를 설명하는 단어 인 경우가 있고.
도망다니는 이미지 만들다가, 현실에 없는 이미지를 상상하는 환상 여행을 해대는겨 이 인간이 어릴때. 오직 무서워서 도망가려고. 그러다가 자기가 만든 이미지, 가 졸라게 구체적 이고 생생한겨. 골때리 이게. 현실과 자기가 만든 이미지 의 구분이 안갈 정도로.
이게 훈련이 그냥 되어서, 시각화 가 발달한겨.
우리는 무엇이든, 쓰고 그리고 소리내어야 하잖아. 보통 인간이라면. 생각을 표현 해야 하거든.
테슬라 는, 모든게, 생각 에서 다 끝나는겨. 시행착오 란건 없어. 생각에서 상세설계까지 다 해버리는겨 이게. 생각세상에서 오차 없이 설계끝나면, 손으로 만들면 돼. 생각과 현실의 작품이 똑같다는겨.
오히려 학교 를 가서, 저게 안맞는거야 ㅋㅋㅋ. 선생이, 쓰라는겨. 오히려 쓰니까 , 안돼 테슬라는. 지진아 취급 받을정도여 ㅋㅋㅋ. 뒤에 나오는 이야기. 익숙해지지 가 않아서 쓰고 그리는게.
야 저걸 돈벌이 번역한 거 보면. 그림그리는 미술 을 못했다 ㅋㅋㅋ. 이런 번역을 하더만 자서전 책 번역이 ㅋㅋㅋ.
왜냐면, 저게 무슨 말인지, 이미지 가 뭐고 오브젝트 가 머고, 이런 말이 먼말인지, 몰라 저거 번역하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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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about twelve years old when I first succeeded in banishing an image from my vision by wilful effort, but I never had any control over the flashes of light to which I have referred. They were, perhaps, my strangest experience and inexplicable. They usually occurred when I found myself in a dangerous or distressing situation, or when I was greatly exhilarated. In some instances I have seen all the air around me filled with tongues of living flame. Their intensity, instead of diminishing, increased with time and seemingly attained a maximum when I was about twenty-five years old. While in Paris, in 1883, a prominent French manufacturer sent me an invitation to a shooting expedition which I accepted. I had been long confined to the factory and the fresh air had a wonderfully invigorating effect on me. On my return to the city that night I felt a positive sensation that my brain had caught fire. I saw a light as tho a small sun was located in it and I past the whole night applying cold compressions to my tortured head. Finally the flashes diminished in frequency and force but it took more than three weeks before they wholly subsided. When a second invitation was extended to me my answer was an emphatic NO!
12세 즈음이었지 내가 처음으로 성공한게 내 눈앞에 이미지를 지우는걸, 의지에 찬 노력으로, 그런데 나는 내가 언급해왔던 그 빛의 번쩍임들을 통제할 수 없었어. 그 섬광들은 아마 나의 가장 이상한 경험이면서 설명불가였어. 그것들은 통상 일어났지 내가 위험하거나 불안정한 상황일때, 또는 내가 굉장히 즐거웠을 때. 어떤 때에는 나는 내 주위의 모든 허공들이 살아있는 화염의 혀들로 가득한 것을 본 적들도 있어. 그것들의 정도가, 감소하기는 커녕 시간이 지날 수록 더 강렬해졌고, 아마도 내가 25세 즈음에 최고조 였던듯 해. 파리에 있을 때, 1883년 27세 때인데, 실력있던 프랑스인 공장주가 나를 사냥여행에 초대를 했고 나는 그걸 수락했걸랑. 나는 그 공장에 오래 갇힌듯 일만 해왔고 신선한 공기가 원더풀하게 나에게 활력을 불어넣었지. 도시로 돌아오는 길 그날 밤에, 나는 느꼈어 나의 뇌가 불이 났다는 진짜 느낌을. 나는 빛을 봤는데, 작은 태양이 그 빛안에 있더라고, 나는 완전히 그날밤을 홀딱 세면서 내 고통스런 머리에 차가운 것들을 대고 눌렀지. 마침내 그 불빛들이 빈도 와 힘이 줄어들었지만, 3주 이상이 지나서야 완벽히 사라지더라고. 두번째 사냥 초대장이 왔을때, 나의 대답은, 강력한 노우!
테슬라 말을 정리하면, 어릴때 몇살인지 말안하고, 이미지들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해, 가끔 동반해 강력한 플래쉬즈 오브 라이트, 불빛들이. 즉 갑자기 이미지 만 나타나던지, 강력불빛이 나타나면서 이미지가 등장하기도 해.
가끔은, 워드, 단어가 소리로 들리면서, 그 단어에 해당하는 이미지 가 보여.
자기가 이매진, 생각한 적이 없던 이미지들이고, 나중에 나름 법칙이 보니까, 자기가 좀 특별난 상황의 현실의 것을 봤을 때에,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 확인해. 현실의 그 특이한 것들와 자기만의 비젼의 인과, 그게 대체 어디서부터의 힘 에서 시작하는가, 그 현실의 화면이 바로 이미지로 눈앞에 보이는지 여하튼 그 이미지 들의 인과, 그 이미지들의 구조 자체도 생각하게 될게고, 이러면서 오히려, 어떤 인과적인 사고방식을 훈련하게 된겨 이사람이. 진짜 찾기 에 탁월하게 되는거고.
그 이미지가 너무 생생해서, 손을 뻗어, 만져지는건가, 구분이 안돼 현실의 것과 환영속이미지가.
심리적으로도 무섭거니와, 몸 자체도 아픈겨. 그러다가, 나이 10세 에, 해결책을 나름 찾아. 다른 이미지를 생각해내서, 쫓아내는겨 눈앞의 이미지를. 자기가 책이든 집에서든 길에서든 본 것들을 막막 상상으로 만들어내, 아주 구체적으로. 처음에는 잘 안되다가, 나중에는 이게 잘 돼. 머리속에서 잘 그려지고 잘 만들어져 아주 리얼하게. 그러면 외부에서 눈앞에 등장한 저 이미지 들이 사라지는겨. 이전에 만든 이미지 는 안돼, 계속 전혀 다른 생각들을 해내야해. 그런데 열살이고, 세상경험이 없고, 그만큼 생각해낼수 있는 이야기 가 없고, 이미지 가 부족한겨. 그래서 만들어낸 방법이, 완전히 다른 세상을 자기가 창조 하는거야. 이걸 익스커젼, 여행 이라는 단어를 쓰고, 전혀다른 세상을 상상해서 자기가 도시를 짓고 사람들을 만들고 거길 자기가 여행을 하고 친구가 되는겨. 그런데 그런 자기의 상상의 세상은 너무나 리얼했다는거야.
웃겨 이사람 진짜. 테슬라 는 어릴때 ㅋㅋㅋ 저런 훈련? 으로 고차원의 인간이 된겨 이게. 저게 일종의, 요즘 심리학의, 칼융 애들 의 분파 가 만들어낸, 인너 워크, 라는 내쩍 탐색 이야 저게. 테슬라 가 쟤들의 훨 스승이여 저 수준이. 골때리 저거.
10세 때 나름 저런 걸 시도하기 시작해 당하기만 하다가. 걍 무서워서 한겨 먼놈의 내적탐색이든 아니든.
12세 때에 성공했대, 이미지들이 나타나면 지우는걸. 이제 이미지 만 나타나면, 저걸 하면 돼. 이걸 17세 때까지 했대. 분명히 표현을 안하는데 유추하면, 그래도 계속 이미지들이 나타나는거고, 저런 개인 상상놀이를 하면 지워지는거고, 그러다가 그냥, 혼자 저런 생각 놀이가 완전히 버릇이 된거야 저게.
그러면서, 비주얼라이제이션, 머리속에서 시각화, 이미지로 그리는 것에, 졸라게 탁월해진겨 저게. 7년 동안 저런 짓을 한거야 무서워서, 살려고, 그러다가 저 시각화 로 만들어내는게, 테슬라 를 만든거야. 모든게 머리속 생각 상상으로 끝나. 쓰거나 그리거나 손으로 만들어보거나, 전혀 필요없어. 상세설계까지 다 해버리는겨 머리안에서. 수학 자체도 걍 머리속에서 푸는겨 저건. 자기가 머리속에서, 스크린 만들고 손으로 쓰면서 보는겨 저게. 완전히, 에이아이 가 된겨 자연스럽게 ㅋㅋㅋ
그런데, 여전히, 괴롭히는건, 강력한 불빛, the flashes of light, 처음엔 스트롱 을 붙이고, 다음엔 걍 섬광인데, 번쩍 하면서 나타나는 불빛들은, 이건 답이 없는겨 ㅋㅋㅋ. 이건, 다른 상상 이미지 만들어내는것도 안통해. 걍 꼼짝없이, 사라질때 까지 어쩔수 없어. 그러다가 27세 때에는, 공장에만 있다가 간만에 신선한 공기 쐰 핑게로 이게 등장하더니, 머리에 불이 난 듯 강렬한 통증에, 하룻밤 꼴딱 세고, 3주동안 들락날락 하더니 사라지셨다는겨. 작은 태양 의 빛 이 이미지로 등장하면서 뇌를 달구는겨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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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다음 구문은, 아 아름답던데, 참 묘하고, 테슬라 가 후년에 이르러서 보는 익숙한 화면인듯한데.
These luminous phenomena still manifest themselves from time to time, as when a new idea opening up possibilities strikes me, but they are no longer exciting, being of relatively small intensity. When I close my eyes I invariably observe first, a background of very dark and uniform blue, not unlike the sky on a clear but starless night. In a few seconds this field becomes animated with innumerable scintillating flakes of green, arranged in several layers and advancing towards me. Then there appears, to the right, a beautiful pattern of two systems of parallel and closely spaced lines, at right angles to one another, in all sorts of colors with yellow-green and gold predominating. Immediately thereafter the lines grow brighter and the whole is thickly sprinkled with dots of twinkling light. This picture moves slowly across the field of vision and in about ten seconds vanishes to the left, leaving behind a ground of rather unpleasant and inert grey which quickly gives way to a billowy sea of clouds, seemingly trying to mould themselves in living shapes. It is curious that I cannot project a form into this grey until the second phase is reached. Every time, before falling asleep, images of persons or objects flit before my view. When I see them I know that I am about to lose consciousness. If they are absent and refuse to come it means a sleepless night.
이런 빛의 현상들은 여전히 (지금도) 자기들의 존재감을 드러내 가끔씩, 언제냐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막 떠오를 확률이 높으면서 생각날때 불빛들이 나타나. 그런데, (이제는) 그 불빛들은 더이상 감정유발을 시키지 않고, 상대적으로 작은 강도야. 내가 눈을 감으면, 나는 변함없이 보게 돼 처음엔, 배경이 아주 어둡고 단일한 파랑인데, 깨끗한데 별없는 밤의 하늘 인듯 아닌듯. 몇초가 지나면 이 화면이 바뀌는데, 무수한 초록의 작은덩어리들이 반짝이면서 움직여, 두세층으로 나란히 나에게로 오는거야. 그때 오른쪽에선, 직선들이 가깝게 붙어서 평행하게 그리고 서로 직각을 이루는 두 체계의 아름다운 패턴으로 나타나, 그 선들은 모든 색들로 되어있는데 노랑-초록 과 황금색이 압도적이야. 그러다가 바로 선들이 점점 밝아져, 그리고 전부 찐하게 흩뿌려져 빛나는 빛들의 점들과 함께. 이 그림은 천천히 움직여 시선 전체 를 지나면서, 그리고 약 10초 후에 왼쪽으로 사라지면서 남는 배경으로는 다소 불쾌하고 정쩍인 회색이 되다가 바로 거대한 구름의 파도 가 되는데, 보기에 구름들이 살아있는 모양들로 주조틀 찍듯 만들려하는듯 해. 그게 흥미롭지만 나는 어떤 모양을 이 회색의 화면에 투영할 수 없어 곧 두번째 단계가 벌어지는데. 매번, 잠이 들기 전에, 내 시선 앞에, 사람들과 오브젝트들의 이미지들이 갑자기 나타나. 내가 그것들을 볼 때가 되면, 나는 알지, 나는 곧 의식을 잃을 거란걸. 그것들이 안보이거나, 나타나길 거부한다면, 그것은 의미해, 잠없는 밤을.
불빚이 나타날 때의 밤에 겪는 화면인듯 해 문장을 보면. 마지막엔 회색의 구름들이야 파도모양의 넘실대는, 여기서 먼가 살아있는 모양으로 구름에서 찍혀 나올 듯 하다는거지. 그러면서 여기서 갑자기 사람들이나 물체들이 주조되듯 막 만들어질 때, 잠들어 버리는겨. 그래서, 몰라 그 사람들에 오브젝트들의 구체적 모습들은. 구름속에서 저런 형상들이 등장하지 않으면, 걍 구름만 보이는겨 그러다가 밤을 꼬박 세우는거고.
이사람은, 아주 완벽히 꿈속 인간이고, 싸이키적 인간이여.
정말 묘해 이사람.
아 칼융 자서전 정말 저리 가라다 ㅋㅋㅋ. 신비롭게 느껴지던 칼융 이야기 아잉 유치해. 오리엔트 빠는 웨스턴들 짜증나 진짜 잉.
테슬라도 인도인간 빨던데. 로맹롤랑도 그렇고. 아 결국 인류에서 제대로 된 인간은, 나 하나 뿐인겨? 쩝.
저들은 대체 저 인도 들의 신쩍 이야기들에 그리 환상을 품는지. 왜냐면, 자기들에게 답안지가 안보이니 오리엔트에서 찾는거걸랑. 테슬라 는 자기의 경험이 인도애들 썰하는 것과 상통하는 듯 해서 관심 갖은 듯 하고.
인도 에서는 서기 10세기 이후로 나올게 없어. 브라마굽타 의 제로 영 외엔 없어 나올게. 중국도 마찬가지고.
중국이나 인도 는 가장 문제가, 존천리멸인욕 이야. 아무것도 하지 말라 여. 불교 나 유교 나 힌두교 나 마찬가지여 이게.
플라톤 도 저기에 걸쳐. 이 플라톤 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인간의 욕심 에 경계하면서, 욕심을 낼 소지 를 차단하는건 문제여 플라톤 은. 국가 를 세움에, 해변은 안좋다는겨. 외지인 들 들락거린다고. 욕심의 대상을 겪어선 안되는거야.
욕심의 대상을 겪게 하지 말라. 이게 플라톤 전집을 쭈욱 보면, 역시나 플라톤 생각의 바닥 이야, 웨스턴 애들이 말 하지 못하는. 내가 저걸 눈치 챘는데. 플라톤 은 이런면에서는 후져 이게. 웨스턴 애들이 이건 플라톤 과 완벽하게 반대로 가면서 오히려 싸이키를 더 뿜어내면서 모랄은 더 고차원이 된거고 독보적이된겨 이게. 플라톤의 모랄은, 욕심의 동기 자체를 차단시키자 여. 좀 어려운 이야긴데 다음으로 넘기고.
욕심 의 이유들을 차단하라. 그래서 영혼 의 것에 만 집중해라. 이런 인간, 이런 영혼은, 진화 가 안돼. 후져. 경험을 무진장 해서 욕심 이 안생기는 경지 여야 해. 하고싶은거 꾸욱 꾸욱 참는 영혼은, 반드시 타락하게 되어있어.
모든걸 무수하게 하도록 내비둬야 해. 그 속에서 스스로 모랄 을 갖추게끔 해야 해. 이게 게르만 애들이 플라톤 이후 천오백년 을 한거야 이걸.
중국 인도 애들은, 하지 말라우 아무것도 하지 말라우. 하면서, 하지말아라 하는 들은 지들끼리 해쳐먹고 즐기고 타락하고 정작 문명을 위해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남들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고. 이게 동양이 결정적으로 실패한 이유야.
조선 유교 들이, 또한 저거야. 아무것도 하지 말아라, 가만히 있어라, 돈벌지 말아라. 그러면서 지들은 집안에 노비가 수백명에 모든 고을의 땅은 지들 집안 몇몇 꺼야. 그게 지폐 의 상징인 들이야. 실록에 그 김모씨, 이름이 기억이 안나네, 이모씨 아들 모황이가 선조앞에 와, 한양이 일이있어서 온김에, 야 저 이모씨 아들 모황씨 또 겸손질 떨며 자리 사양하며 땅하나 금궤하나 받고 또 가겄네 ㅋㅋㅋ. 실록에 잇어 저런 글이.
아무것도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욕심내지 말라우 멸인욕 어쩌고 떨면서, 지들은 축적하고 즐기고, 늙은애가 어린기생이랑 먼놈의 사랑 이야기 저따위껄 오매 위대한 선비님의 애틋한 사랑. 지금식 칠팔십 애가 이십안된 오피걸 이랑 노는걸 ㅋㅋㅋ. 야 저런걸 저렇게 가르쳐 이 사가들이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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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이야길 한겨.
To what an extent imagination played a part in my early life I may illustrate by another odd experience. Like most children I was fond of jumping and developed an intense desire to support myself in the air. Occasionally a strong wind richly charged with oxygen blew from the mountains rendering my body as light as cork and then I would leap and float in space for a long time. It was a delightful sensation and my disappointment was keen when later I undeceived myself.
내 어린시절 상상이 한 역할이 어느정도 였는지를 또다른 별스런 경험으로 설명할수 있겠다. 대부분 아이들처럼, 나는 점프 를 좋아했고 나 자신을 공중에 뜨게 하려는 강렬한 바램은 커졌다. 때로 강한 바람이 산소를 가득 품고 산에서 불어오면 나는 내 몸이 코르크 처럼 가볍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뛰어 올라 떠다니곤 했다(상상으로). 그것은 즐거운 감각이었지만, 실망도 컸다 후에 내가 내 자신을 속였다는걸 알았을때.
During that period I contracted many strange likes, dislikes and habits, some of which I can trace to external impressions while others are unaccountable. I had a violent aversion against the earrings of women but other ornaments, as bracelets, pleased me more or less according to design. The sight of a pearl would almost give me a fit but I was fascinated with the glitter of crystals or objects with sharp edges and plane surfaces. I would not touch the hair of other people except, perhaps, at the point of a revolver. I would get a fever by looking at a peach and if a piece of camphor was anywhere in the house it caused me the keenest discomfort. Even now I am not insensible to some of these upsetting impulses. When I drop little squares of paper in a dish filled with liquid, I always sense a peculiar and awful taste in my mouth. I counted the steps in my walks and calculated the cubical contents of soup plates, coffee cups and pieces of food--otherwise my meal was unenjoyable. All repeated acts or operations I performed had to be divisible by three and if I mist I felt impelled to do it all over again, even if it took hours.
그 시기에 나는 많은 이상한 좋아함들 싫어함들 버릇들을 정했는데, 그중 몇몇은 외부적 인상들에 의한 원인추적이 되나, 나머지들은 이유를 알수 없다. 나는 정말 싫다, 여자들의 귀걸이들은, 그런데 다른 장식물들, 팔찌같은거는 다소 나를 즐겁게는 한다 디자인에 따라서. 진주를 보는건 너무나 싫었다, 그러나 크리스탈의 반짝임이나 날카로운 테두리와 평면의 것들은 즐거웠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헤어는 건드리고 싶지 않다, 곱슬거리는 부분 이면 모를까. 나는 복숭아를 보면, 열이 오른다. 나무방향제 캠포 조각이 방 어디에 있든 그건 나를 매우 힘들게 한다. 지금도 나는 이런 것들 중 몇몇에 대해 무감각하지 않다. 나는 걸으면서 걸음숫자를 셌고, 수프 접시들, 커피 컵들, 그리고 음식 조각들의 부피 같은걸 계산했다, 그러하지 않으면 내 음식을 즐길수 없었다. 모든 반복되는 행동들 즉 내가 하는 동작들은 3으로 나눠져야 했다, 그래서 까먹었다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몇시간이 걸리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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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모두 과거형 이야. 지금은 아니라는 거지. 몇개는 여전한거고. 오시디, 일종의 강박증적인 건데. 뒤에 또 나오지만 말이지.
Relationships
Tesla was a lifelong bachelor, who had once explained that his chastity was very helpful to his scientific abilities.[238] He once said in earlier years that he felt he could never be worthy enough for a woman, considering women superior in every way. His opinion had started to sway in later years when he felt that women were trying to outdo men and make themselves more dominant. This "new woman" was met with much indignation from Tesla, who felt that women were losing their femininity by trying to be in power. In an interview with the Galveston Daily News on 10 August 1924 he stated, "In place of the soft-voiced, a gentlewoman of my reverent worship, has come the woman who thinks that her chief success in life lies in making herself as much as possible like man—in dress, voice and actions, in sports and achievements of every kind ... The tendency of women to push aside man, supplanting the old spirit of cooperation with him in all the affairs of life, is very disappointing to me."[240] Although he told a reporter in later years that he sometimes felt that by not marrying, he had made too great a sacrifice to his work,[34] Tesla chose to never pursue or engage in any known relationships, instead finding all the stimulation he needed in his work.
릴레이션쉽 애정관계에 사회성인데, 테슬라는 평생 배철러, 총각 이었다. 라틴어 바카 라우레우스. 에서 baccalaureat 바칼로레 가 대입시험에 학사 학위로 가걸랑. Alteration of baccalārius, influenced by Latin bacca ("berry") and laurea ("laurel") baccalaureat. 바카 가 베리, 베리라는게 작은열매들이고, 로레알 하는 로럴 월계수로 번역하는. 그리스 로마 때 우승자 에 전쟁때는 동료 구출하는 군인 에게 주는 화관 이야. 이건 나뭇잎 달린 줄기 여 로럴 나무. 이게, 설명이 없는데, 베리 라는 열매 를 끼워넣는건 게르만 중세 일껴 이게. 뒤져 보긴 구찮고. 그래서 바카 라우레우스 는 이건 중세 라틴어야. 라우레아 로럴 이 로리에이트 laureate 노벨상 수상자 에 명예시인 에 붙어. 귀한 단어여. 바칼로레, 같어, 배철러, 졸 귀한 단어여 이게. 채스티티, 카스티타스, 순수 에서 순결 인데, 이건 cut 짤린겨, 격리 되서 갇혀서 깨끗한거야. 캐스터레이션 거세, 짜르는겨 벳.에서.
테슬라 가 말하길, 자기의 교미안함 은 매우 도움이 되었다 과학적 능력에. 그는 언젠가 말했다 초기에, 자기는 결코 여자에게 충분한 가치가 될 수 없다고, 여자들은 모든면에서 우월하다며. 그의 의견은 후년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느꼈다며,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앞서려고 하면서 더 지배력을 갖으려고 할때. 이런 "신여성" 은 테슬라에겐 매우 불쾌했다, 테슬라 는 느꼈다 여자들은 여성성을 잃고 있었다고, 권력의 존재로 나서면서. 1924년 8월 10일. 68세 에 그는 갈베스톤 데일리뉴스 에서 말했다, "부드러운 목소리 대신에, 경애하는 나의 젠틀우먼 은, 인생의 주요한 성공을 남자처럼 가능한 똑같이, 옷 목소리 행동 스포츠 그리고 모든 것들에서, 그렇게 하는게 성공하는거라 생각하는 여자가 되었다,... 남자를 제쳐 버리려는 여자들의 경향, 즉 과거 생의 모든 것에서 남자와 협업하는 정신을 버린 건데, 나에겐 참 실망스럽다." 그는 노년에 기자에게 말했다지만, 자기는 때때로 느꼈다고, 결혼을 안한 것은, 자기의 일에 굉장한 희생 이었다고, 테슬라 는 결코 어떤 알려진 애정관계들 을 추구하지도 겪지도 않았다, 대신 모든 활력을 자기 일에서 찾았다.
이사람은, 일단 강박증에 결벽증 이 있지만, 이 이유가 아니라, 자서전에서 뒤에 나오지만, 정말, 절제 를 한겨. 수도사 처럼. 세속에서. 더하여, 저런 섬광들 이 나타나는것의 문제들에, 죽을 고비들이 많어. 한 십여번? 전염병에도 두어번 걸리고, 몸이 약한겨. 그래서 섭생에 또한 철저해야해. 결혼 을 하면, 일을 못해 가정에 신경써야해. 이사람 표현이 맞아, 희생을 한거야, 일 하기 위해서.
Tesla could be harsh at times and openly expressed disgust for overweight people, such as when he fired a secretary because of her weight.[255] He was quick to criticize clothing; on several occasions, Tesla directed a subordinate to go home and change her dress.[238] When Thomas Edison died, in 1931, Tesla contributed the only negative opinion to The New York Times, buried in an extensive coverage of Edison's life:
He had no hobby, cared for no sort of amusement of any kind and lived in utter disregard of the most elementary rules of hygiene ... His method was inefficient in the extreme, for an immense ground had to be covered to get anything at all unless blind chance intervened and, at first, I was almost a sorry witness of his doings, knowing that just a little theory and calculation would have saved him 90 percent of the labor. But he had a veritable contempt for book learning and mathematical knowledge, trusting himself entirely to his inventor's instinct and practical American sense
테슬라 는 때로는 냉혹하고, 공개적으로 뚱땡이들을 경멸했다, 그는 비서를 해고했는데, 그녀의 몸무게 때문이었다. 남의 옷에도 민감해서, 직원에게 집에 바로 가서 옷 갈아입고 오라며. 토마스 에디슨이 죽었을때, 테슬라는 유일한 부정적 의견을 뉴욕타임즈에 기고했다.
에디슨 은 취미도 없고, 아무런 즐거움도 없었다 그리고 위생에 대한 기본적 법칙조차 완벽히 무시했다...그의 방법은 극도로 비효율적이었다, 무식하게 전체를 다 커버해서 시도해봐야 했으니까 재수좋게 눈뜬장님처럼 얻어걸릴때까지, 초기에 내가 목격자였다 그의 그런 방법론의 행동을 경험한, 왜냐면, (배운게 없었으니) 만약 에디슨이 조금의 이론과 계산력이 있었다면 노동의 90퍼센트를 절약했을것이다. 그러나 그는 책읽기 와 수학적 지식을 확실히 경시했다, 완벽하게 자기의 감 과 현실감있다는 미국인의 쎈쓰를 믿는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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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eep habits
Tesla claimed never to sleep more than two hours per night.[257] However, he did admit to "dozing" from time to time "to recharge his batteries".[258] During his second year of study at Graz, Tesla developed a passionate proficiency for billiards, chess, and card-playing, sometimes spending more than 48 hours in a stretch at a gaming table.[259] On one occasion at his laboratory, Tesla worked for a period of 84 hours without rest.[260] Kenneth Swezey, a journalist whom Tesla had befriended, confirmed that Tesla rarely slept. Swezey recalled one morning when Tesla called him at 3 a.m.: "I was sleeping in my room like one dead ... Suddenly, the telephone ring awakened me ... [Tesla] spoke animatedly, with pauses, [as he] ... work[ed] out a problem, comparing one theory to another, commenting; and when he felt he had arrived at the solution, he suddenly closed the telephone."
테슬라는 주장했다, 밤에 두시간 이상은 자지 않는다고. 그러나 가끔의 선잠 낮잠 은 했다 배터리를 재충전한다며. 그라츠 의 2학년 때 테슬라는 당구 체스 카드 를 선수급으로 했다, 때로 게임판에서 연속으로 48시간 이상을 보내면서. 실험실에선 한번은 84시간을 쉼없이 일했다. 테슬라와 친구가 된 기자 케네뜨 스위지 는 확인해줬다 테슬라는 거의 잠자지 않았다고. 스위지 는 어느 아침을 회상했다, 테슬라가 새벽 세시 에 그에게 전화를 해서, "나는 내방에서 죽은 듯이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화가 울려서 깼지. 테슬라가 생생하게 말했어, 뜨문뜨문, 어떤 문제 로 작업 중인데, 한이론과 다른걸 비교하면서 썰하고는, 지혼자 막 하고는 답을 찾았다고 생각한건지, 갑자기 끊더라고"
Work habits
Tesla worked every day from 9:00 a.m. until 6:00 p.m. or later, with dinner at exactly 8:10 p.m., at Delmonico's restaurant and later the Waldorf-Astoria Hotel. Tesla then telephoned his dinner order to the headwaiter, who also could be the only one to serve him. "The meal was required to be ready at eight o'clock ... He dined alone, except on the rare occasions when he would give a dinner to a group to meet his social obligations. Tesla then resumed his work, often until 3:00 a.m."[261]
For exercise, Tesla walked between 8 and 10 miles (13 and 16 km) per day. He curled his toes one hundred times for each foot every night, saying that it stimulated his brain cells.[258]
In an interview with newspaper editor Arthur Brisbane, Tesla said that he did not believe in telepathy, stating, "Suppose I made up my mind to murder you," he said, "In a second you would know it. Now, isn't that wonderful? By what process does the mind get at all this?" In the same interview, Tesla said that he believed that all fundamental laws could be reduced to one.[235]
Tesla became a vegetarian in his later years, living on only milk, bread, honey, and vegetable juices
테슬라 는 매일 오전 9시 에서 저녁 6시 까지 일하고, 8시 10분에 정확히 저녁을 먹다 뉴욕 최고의 식당 델모니코 에서 나중엔 월도르프아스토리아 호텔에서. 테슬라는 당시 그의 식사주문을 헤드웨이터 에게 전화로 했다, 유일하게 그사람만 테슬라를 서빙할수 있었다. "식사는 8시 정각에 준비되어야 했다...그는 혼자 식사했다, 드물게는 그의 사회적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그룹에게 식사대접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테슬라는 그리곤 일을 다시 했다, 종종 새벽 세시 까지."
운동을 위해, 테슬라는 8에서 10마일을 걸었다 매일. 그는 그의 발가락들을 백번 오므렸다 펴기를 매일 밤 했다, 그게 자기 뇌세포들을 자극한다며.
신문 편집자 아서 브리스밴의 인터뷰에서 테슬라 는 말했다, 텔레파시 를 믿지 않는다고, 이리 말하면서, "가정해봐 내가 너를 죽이기로 결심했다고" 그는 말했다, "일초후에 너는 그것을 알거야. 자, 환상적이겠지? 어떤 과정으로 마음이란게 이걸 하겠어?" 같은 인터뷰에서, 테슬라는 말했다 그는 믿는다고, 모든 근본적 법칙들은 하나로 환원될수 있다고.
테슬라 는 노년에 베지터리언 이 되었다. 오직 우유 빵 꿀 식물주스로 살다.
베지터리언 이 머지 한글로. 아 단어가 이제 생각이 안나.
아 하튼 이사람 글은 재밌어.
저게, 외계인이 송신하는 이미지걸랑 저게.
생각한다는것도, 임프레션, 자극을 외계인이 주는 것일 뿐이고, 인간은 안테나 만 있을 뿐이고, 생각 이란건, 다른 세상에서 하는겨. 뇌 에서 하는게 아녀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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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단락은 길어서 반을 나누면. 테슬라 글 그대로 번역을 하려는건데 내가.
Up to the age of eight years, my character was weak and vacillating. I had neither courage or strength to form a firm resolve. My feelings came in waves and surges and vibrated unceasingly between extremes. My wishes were of consuming force and like the heads of the hydra, they multiplied. I was opprest by thoughts of pain in life and death and religious fear. I was swayed by superstitious belief and lived in constant dread of the spirit of evil, of ghosts and ogres and other unholy monsters of the dark. Then, all at once, there came a tremendous change which altered the course of my whole existence. Of all things I liked books the best. My father had a large library and whenever I could manage I tried to satisfy my passion for reading. He did not permit it and would fly into a rage when he caught me in the act. He hid the candles when he found that I was reading in secret. He did not want me to spoil my eyes. But I obtained tallow, made the wicking and cast the sticks into tin forms, and every night I would bush the keyhole and the cracks and read, often till dawn, when all others slept and my mother started on her arduous daily task.
8세 가 되었을땐, 나의 성격은 약했고 줏대없었다. 나는 용기도 없었고 강하지도 않아서 확고한 결심을 하지도 않았다. 나의 느낌들은 닥아왔다 흔들리거나 파도치면서 그리고는 쉼없이 극단들 사이에서 흔들렸다. 나의 소망들은 온 생각을 다 하면서 만들어냈고, 히드라 의 머리들처럼, 그 소망들은 많았다. 나는 짓눌렸었다 생의고통과 죽음과 종교적 두려움 을 생각하면서. 나는 미신적인 믿음에 의해 흔들렸고, 끊임없는무서운 악마의영혼, 유령들, (아이잡아먹는 괴물) 오거들 그리고 다른 어둠의 사악한 괴물들 속에서 살았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라는 존재의 경로를 바꾼 굉장한 변화가 찾아왔다. 무엇보다도, 나는 책들을 가장 좋아했다. 나의 아빠는 큰 서재를 갖고 있었고 내가 할수 있을 때마다, 나는 독서에 대한 나의 열정을 채우려고 했다. 그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화를 냈었다 나의 독서행위를 포착할 때는. 그는 양초들을 숨겼다 내가 몰래 독서 하는걸 알아냈을땐. 그는 내가 시력을 망가뜨리길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동물기름들을 구해서는 심지를 만들고 기름도 주석틀로 굳혀 만들어서, 매일밤 자물쇠구멍과 틈들을 따고서 읽었다, 종종 새벽까지, 모두는 잠들었는데 새벽이 되면 나의 엄마는 힘든 매일의일들을 시작했다.
On one occasion I came across a novel entitled "Abafi" (the Son of Aba), a Serbian translation of a well known Hungarian writer, Josika. This work somehow awakened my dormant powers of will and I began to practise self-control. At first my resolutions faded like snow in April, but in a little while I conquered my weakness and felt a pleasure I never knew before--that of doing as I willed. In the course of time this vigorous mental exercise became second nature. At the outset my wishes had to be subdued but gradually desire and will grew to be identical. After years of such discipline I gained so complete a mastery over myself that I toyed with passions which have meant destruction to some of the strongest men. At a certain age I contracted a mania for gambling which greatly worried my parents. To sit down to a game of cards was for me the quintessence of pleasure. My father led an exemplary life and could not excuse the senseless waste of time and money in which I indulged. I had a strong resolve but my philosophy was bad. I would say to him, "I can stop whenever I please but is it worth while to give up that which I would purchase with the joys of Paradise?" On frequent occasions he gave vent to his anger and contempt but my mother was different. She understood the character of men and knew that one's salvation could only be brought about thru his own efforts. One afternoon, I remember, when I had lost all my money and was craving for a game, she came to me with a roll of bills and said, "Go and enjoy yourself. The sooner you lose all we possess the better it will be. I know that you will get over it." She was right. I conquered my passion then and there and only regretted that it had not been a hundred times as strong. I not only vanquished but tore it from my heart so as not to leave even a trace of desire. Ever since that time I have been as indifferent to any form of gambling as to picking teeth.
한번은 "아바피" (아바의 아들) 라는 제목의 소설을 봤다, 잘알려진 헝가리 작가 요시카 의 세르비아어 번역본인데, 이 작품은 어떤 식인진 몰라도, 나의 잠자고있는 의지력을 일깨웠고, 나는 자기-통제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 다짐들은 4월의 눈처럼 시들었지만, 조금 지나서 나는 나의 약함을 정복하곤 이전에 몰랐던 - 내가 의지대로 한다는 것에서 나오는 - 즐거움 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넘치는 정신 훈련은 본능적으로 (몸에) 심어졌다. 처음엔 나의 소망들은 죽어지냈었지만 점점 갈망과 의지 가 자라더니 뚜렸해졌다. 몇년간의 그런 단련 후에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완벽한 지배를 하게 되었고, 충동들을 쉽게 다루었다, 그런 충동들이란건 가장강한자들 중 몇몇에겐 파괴를 의미했다지만. 아이도 어른도 아니었던 나이에, 나는 도박에 미쳤었고 그건 나의 부모를 굉장히 걱정시켰다. 카드 게임에 앉아있는것은 나에겐 쾌락의 극치였다. 나의 아빠는 모범적인 삶을 살았고 시간과 돈을 의미없이 낭비하는걸 용서할 수 없었는데, 내가 거기에 빠진거였다. 나는 결단력이 강했지만 철학은 나빴다. 나는 그에게 말하곤 했다, "나는 멈출수 있어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런데 그게 가치가 있어? 내가 천국의 즐거움을 구입할 티켓을 포기할 만한?" 종종 그는(아빠) 화를 내고 경멸을 쏟아부었지만 나의 엄마는 달랐다. 그녀는 남자들의 성질을 이해했고, 알았다 인간의 구원이란건 오직 자기 스스로의 노력으로만 얻어진다는 것을. 어느날 오후, 나는 기억한다, 내가 모든 돈을 잃었고 그래도 께임에 미쳐서 하고플때 그녀는 나에게 왔다 지폐뭉치를 갖고, 그리곤 말했다, "가거라 그리고 너를 즐겨라. 너는 우리가 가진 것을 모두 바로 잃을 것이고, 그게 더 나을거야. 나는 알아 너가 그것을 극복할 거란걸" 그녀는 옳았다. 나는 내 충동을 그때 거기서 정복했다, 그리고 단지 아쉬울뿐이다 그 (도박)중독 이 백배 강하지 못했던 것이. 나는 그것을 이겼을 뿐아니라 내 하트에서 갈갈이 찢어버리고 일말의 아쉬움도 남기지 않았다. 그때 이후로 나는 어떤 도박형태든 무관심해졌다 이쑤시는 것 만큼.
An ogre (feminine: ogress) is a legendary monster usually depicted as a large, hideous, man-like being that eats ordinary human beings, especially infants and children.
오거, 가 샤를페로 의 장화신은 고양이 에 엄지공주 에 나오면서 유행된건데 게르만의, 12세기 성배이야기 퍼시벌 거 크레티엥 기사소설 에서 처음 등장하고, 애들 잡아먹는 괴물 이야.
First attested in the 18th century, borrowed from French ogre, from Latin Orcus (“god of the underworld”), from Ancient Greek Ὄρκος (Órkos), the personified demon of oaths (ὅρκος (hórkos, “oath”)) who inflicts punishment upon perjurers.
라틴어 오르쿠스, 지하세상의 신.이고, 베오울프 에 이걸 따서 orcnēas 오르크네아스 로 영어로 갖고 오고, 이게 애들 잡아먹는 괴물 이 되서 아주 흔한 캐릭이야.
A troll is a being in Scandinavian folklore, including Norse mythology. In Old Norse sources, beings described as trolls dwell in isolated rocks, mountains, or caves, live together in small family units, and are rarely helpful to human beings.
트롤 이란건, 입슨 작품에도 나오는 캐릭인데, 스칸디나비안 노르족 의 괴물 이 트롤 이야. 번개 망치 토르 가 깨부수는. 트롤 이 게르만에 영어 로 가서 오거, 가 되는기고. 이 오거 가 톨킨스 반지제왕 에서 Orc 오크족 오크 가 되능겨.
Miklós Jósika, (28 April 1794 Turda - 27 February 1865 Dresden) was a Hungarian soldier, politician and writer.
밀코스 요시카. 헝가이안 군인 이고. 프랑스 대학살 시작하고 로베스피에르 죽는 해 에 태어난겨. 그래서, 갓 20 되기 전에, 오스트리아 군인으로 나폴레옹 에 맞서 싸우는거고. 이사람이. 작가 에 정치가 거든
In addition to politics, Jósika turned his hand to writing, producing more than 60 romance novels between the early 1830s and 1854. His first work, Abafi, was published in 1836.[4] The book is a morality tale, describing a fictional knight in the service of Transylvanian prince Sigismund Bathory. Over the course of the book, the eponymous hero transforms his life from one of debauchery to public respect and promotion, before sacrificing himself in the battle to protect his prince. It was Josika's best-selling work and was an inspiration to inventor Nikola Tesla, among others, who credited it with setting him on the path to mental self-discipline
60여개 로망스 소설을 썼는데, 첫 작품이 아바피. 1836년 42세 에 쓴겨. 트랜실베니아 지기스문트 바토리 밑의 기사 이야기. 스티븐 바토리 가 폴란드 야기에워 끊겨서 안나 야기에워 에 장가가면서 폴란드 킹을 겸하고, 이사람 죽고, 폴란드 는 스위든의 바싸 가 받아서리 폴란드 망의 시작이 되고 폴란드 사가는 그레이트 하다미 평가해주는 짓 하는기고. 트랜실베니아 는 형의 아들인 지기스문트 바토리 가 보이보드 를 받아서, 왈라키아 용감미하이 에 몰도비아 스티브 라잔 나오는기고, 할때 여기 주인공이, 개인적 방탕의 생에서 모랄 을 갖춰서 존경받으민서 자기 희생하고 바토리 를 보호해주는 이야긴데, 이게 1836년. 12년 후 1848년 이 유럽 레볼루션 이고 대표가 헝가리 걸랑. 이사람이 이 소설로 군불을 땐겨. 혁명 터지고, 진압되고 도망간거고 이사람은.
During another period I smoked excessively, threatening to ruin my health. Then my will asserted itself and I not only stopt but destroyed all inclination. Long ago I suffered from heart trouble until I discovered that it was due to the innocent cup of coffee I consumed every morning. I discontinued at once, tho I confess it was not an easy task. In this way I checked and bridled other habits and passions and have not only preserved my life but derived an immense amount of satisfaction from what most men would consider privation and sacrifice.
After finishing the studies at the Polytechnic Institute and University I had a complete nervous breakdown and while the malady lasted I observed many phenomena strange and unbelievable.
또다른 시기, 나는 담배를 졸라게 폈다, 내 건강을 망치게 할 수준으로. 그때 내 의지가 다시 등장하더니 멈추게 하고는 미련조차 없애버렸다. 오래 전에 나는 심장문제 를 겪었는데 내가 보니까 그건 매일 아침 먹던 커피 때문이었다. 나는 한번에 끊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이런 식으로 나는 제동을 걸고 다른 버릇들 충동들을 코꿰어 버려서 내 생을 지켰고 굉장한 즐거움을 누려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먼낙이냐 희생이다 여기겠지만.
(그라츠 의) 폴리테크닉 대학 공부를 마치고, 나는 완벽하게 신경 쇠약에 빠졌다, 그 (정신)병이 지속되는 동안, 나는 이상하고 믿지못할 많은 현상들을 지켜봤다.
II. My First Efforts At Invention
I shall dwell briefly on these extraordinary experiences, on account of their possible interest to students of psychology and physiology and also because this period of agony was of the greatest consequence on my mental development and subsequent labors. But it is indispensable to first relate the circumstances and conditions which preceded them and in which might be found their partial explanation.
2. 발명에 대한 나의 첫 노력들
나는 잠시 이 특이한 경험들에 대해 언급해야겠는데, 심리학 생리학 학생들에겐 아마 흥미로울 거거니와, 또한 이 시기의 불안은 나의 정신적 발전과 이후의 작업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우선은 그런 것들보다 먼저 인 주변일들과 것들이, 관련이 있음은 물론이고, 일부분 설명도 더해질테니.
From childhood I was compelled to concentrate attention upon myself. This caused me much suffering but, to my present view, it was a blessing in disguise for it has taught me to appreciate the inestimable value of introspection in the preservation of life, as well as a means of achievement. The pressure of occupation and the incessant stream of impressions pouring into our consciousness thru all the gateways of knowledge make modern existence hazardous in many ways. Most persons are so absorbed in the contemplation of the outside world that they are wholly oblivious to what is passing on within themselves.
어릴때부터 나는 나 자신에게 집중해야 할 수 밖에 없었다.(이미지지우기작업). 이것은 나를 아주 피곤하게 했지만, 지금보면, 그것은 축복의 가면 이었다, 왜냐면 그 짓이, 생의 보존 과 성취의 수단에 대해 굉장한 가치의 내적탐색을 하게 해준 거였다. (먹고사는) 직업의 압박과 끊임없이 흐르는 인상들은 우리의 의식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모든 지식의 관문들을 통해서. 많은 방식들로 현대의 존재를 위험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밖의 세상의 시선 속으로 흡수가 되어버리고 그만큼 통째로 잊혀진다 그들 자신 에게 거쳐가는 것에 대해선.
The premature death of millions is primarily traceable to this cause. Even among those who exercise care it is a common mistake to avoid imaginary, and ignore the real dangers. And what is true of an individual also applies, more or less, to a people as a whole. Witness, in illustration, the prohibition movement. A drastic, if not unconstitutional, measure is now being put thru in this country to prevent the consumption of alcohol and yet it is a positive fact that coffee, tea, tobacco, chewing gum and other stimulants, which are freely indulged in even at the tender age, are vastly more injurious to the national body, judging from the number of those who succumb. So, for instance, during my student years I gathered from the published necrologues in Vienna, the home of coffee drinkers, that deaths from heart trouble sometimes reached sixty-seven per cent of the total. Similar observations might probably be made in cities where the consumption of tea is excessive. These delicious beverages superexcite and gradually exhaust the fine fibers of the brain. They also interfere seriously with arterial circulation and should be enjoyed all the more sparingly as their deleterious effects are slow and imperceptible. Tobacco, on the other hand, is conducive to easy and pleasant thinking and detracts from the intensity and concentration necessary to all original and vigorous effort of the intellect. Chewing gum is helpful for a short while but soon drains the glandular system and inflicts irreparable damage, not to speak of the revulsion it creates. Alcohol in small quantities is an excellent tonic, but is toxic in its action when absorbed in larger amounts, quite immaterial as to whether it is taken in as whiskey or produced in the stomach from sugar. But it should not be overlooked that all these are great eliminators assisting Nature, as they do, in upholding her stern but just law of the survival of the fittest. Eager reformers should also be mindful of the eternal perversity of mankind which makes the indifferent "laissez-faire" by far preferable to enforced restraint.
수백만명이 제명에 못사는 것은 주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애쓰는 이들에서도, 상상을 회피하거나 진짜 위험들을 모르는것은 공통적인 실수들이다. 개인에게 진실된것은 또한 다소, 전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적용한다. 예를 들자면, 금지 운동 을 증거로 들자. 위헌소지가 없다면, 지금 과감한 정책이 이 나라에 진행되고 있다 알코올 소비를 막으려는. 그리고 아직까지는 의미있는 사실이다, 커피 차, 담배, 껌 그리고 기타 자극제들이, 지금 자유롭게 쓰이고 있는데, 10대들에게 조차, 이것들은 국가 정체에 굉장히 해롭다, 거기 빠져있는 사람들 수를 생각하면. 일례로, 커피 드링커들의 고향 비엔나 에서 출간된 사망기록을 보면, 내가학생시절동안 심장문제로 죽은자들이 전체의 67퍼센트 였다. 비슷한 것들을 아마도 볼 수 있다 차를 과하게 소비하는 도시들에서. 이 달콤한 음료들은 뇌의 섬유들을 과하게 촉진시키고 천천히 소진시킨다. 그것들은 또한 동맥 순환을 심각하게 방해한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최대한 조금 즐겨야 한다, 해로운 효과들이 느리고 스미지않게 할 정도로. 반대로 담배는 편하고즐거운 생각으로 유도하기 좋지만 지능을 원초적으로활력있게쓰는데필요한 강도 와 집중력 에는 벗어나게 한다. 씹는 껌은 잠시는 좋아도 곧 몸의 샘 체계를 매마르게 하면서 회복불가의 손상을 입힌다, 씹을때의 외관상 추함은 말할것도 없고. 소량의 알코올은 훌륭한 약이다, 그러나 그것은 독으로 작동한다 대량으로 흡수되면. 그 흡수(되는 독약)은 비물질적인데, 위스키로 흡수가 되는 것이든 설탕을통해서 위장에서 분출되는 것이든. 그러나 간과되서는 안된다, 이런 모든 것들은 네이쳐 를 돕는 거대한 삭제자들 이란걸, 그 삭제자들은 행동한다, 그녀 네이쳐 의 방향타를 유지하면서 단지 최적자들의 생존을 위한 법칙을 이행할 뿐. 부지런한 개혁가들은 또한 신경써야 한다 인간의 어찌할수 없는 역행하려는본성을, 이 (그림자)본성은 무관심한 "그냥자유롭게두자" 를 강제된제약보다 더욱 선호하게 만들테니.
The truth about this is that we need stimulants to do our best work under present living conditions, and that we must exercise moderation and control our appetites and inclinations in every direction. That is what I have been doing for many years, in this way maintaining myself young in body and mind. Abstinence was not always to my liking but I find ample reward in the agreeable experiences I am now making. Just in the hope of converting some to my precepts and convictions I will recall one or two.
이것에 대한 진실은, 현재 조건들하에서 최선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자극제들이 (어쨌거나)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적당히 사용해야 하고 우리의 욕구들과 경향습성들을 모든 방향을 고려해서 통제 해야한다는 것 이다. 그것이, 내가 많은 연들 years 동안 해왔었던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몸과 마음에서 내 자신을 젊게 유지 했다. 금욕 이란건 언제나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나는 풍부한 보상을 찾는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즐거운 경험들 속에서. 단지 이글 독자 몇몇들을 나의 준칙들과 확신들로 전향한다는 바램으로, 나는 한두개 회상을 해보겠다.
A short time ago I was returning to my hotel. It was a bitter cold night, the ground slippery, and no taxi to be had. Half a block behind me followed another man, evidently as anxious as myself to get under cover. Suddenly my legs went up in the air. In the same instant there was a flash in my brain, the nerves responded, the muscles contracted, I swung thru 180 degrees and landed on my hands. I resumed my walk as tho nothing had happened when the stranger caught up with me. "How old are you?" he asked, surveying me critically. "Oh, about fifty-nine," I replied. "What of it?" "Well," said he, "I have seen a cat do this but never a man." About a month since I wanted to order new eyeglasses and went to an oculist who put me thru the usual tests. He lookt at me incredulously as I read off with ease the smallest print at considerable distance. But when I told him that I was past sixty he gasped in astonishment. Friends of mine often remark that my suits fit me like gloves but they do not know that all my clothing is made to measurements which were taken nearly 35 years ago and never changed. During this same period my weight has not varied one pound.
아주 얼마전, 나는 내 호텔로 돌아오고 있었다. 다소 추운 밤이었다, 땅은 미끄럽고, 택시는 안잡혔고. 반 블록 뒤에 누가 나를 따라왔다, 분명히 나와 같은 신세로 웅크리면서. 갑자기 나의 두 발이 허공으로 치솟았다(아마 미끄러진듯). 같은 순간에 나의 뇌에서 빛이 반짝였고, 신경들은 반응했고, 근육들은 수축했고, 나는 180도를 돌아서 손을 대고 땅에 내렸다. 나는 다시 내 길을 갔다. 마치 아무런 일이 없었던듯. 그 낯선자가 나를 잡더니, "몇살인가 당신?" 물었다, 나를 심각하게 훑으면서. "오, 59세 정도" 나는 답했다. "그럴수가?" 말했다 그가, "나는 고양이가 그런 건 본 적이 있지만, 사람은 한번도" 그후 한달 정도 지나서, 나는 새 안경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안경점에 가서 통상의 테스트를 했다. 그는 내가 아주 작은 글자를 상당한 거리에서 쉽게 읽어내리는 것을 믿지못한다는듯 나를 쳐다봤다. 내가 그에게 60세 가 지났다고 말했을때 그는 숨막히듯 놀라와했다. 내 친구들은 종종 언급한다 내 양복들이 장갑처럼 딱 맞는다고, 그러나 그들은 모른다, 내 모든 옷은 거의 35년 전 잰 그 치수들이란걸 그리고 전혀 바뀌지 않은걸. 이 기간동안 나의 몸무게는 1파운드 도 변하지 않았다.
In this connection I may tell a funny story. One evening, in the winter of 1885, Mr. Edison, Edward H. Johnson, the President of the Edison Illuminating Company, Mr. Batchellor, Manager of the works, and myself entered a little place opposite 65 Fifth Avenue where the offices of the company were located. Someone suggested guessing weights and I was induced to step on a scale. Edison felt me all over and said: "Tesla weighs 152 lbs. to an ounce," and he guest it exactly. Stript I weighed 142 lbs. and that is still my weight. I whispered to Mr. Johnson: "How is it possible that Edison could guess my weight so closely?" "Well," he said, lowering his voice. "I will tell you, confidentially, but you must not say anything. He was employed for a long time in a Chicago slaughter-house where he weighed thousands of hogs every day! That's why." My friend, the Hon. Chauncey M. Depew, tells of an Englishman on whom he sprung one of his original anecdotes and who listened with a puzzled expression but - a year later - laughed out loud. I will frankly confess it took me longer than that to appreciate Johnson's joke.
이와 관련해서, 웃긴 이야기가 떠오르는데, 1885년, 29세, 겨울 어느 저녁, 미스터 에디슨, 에디슨 조명회사(전 GE) 의 사장 에드워드 존슨, 매니저 찰스 배철러 와 나 는 65번가 맞은편의 작은 공간으로 들어갔다, 거기는 그 회사의 사무실들이 위치했었다. 누군가 제안했다 몸무게 맞추기를, 그리고 내가 저울대로 올려졌다. 에디슨은 나를 주욱 느끼곤 말했다: "테슬라는 152파운드 에 1온스" (69키로), 그는 정확했다. 나는 다벗고 오르면 142파운드다. 64키로. 그리고 지금 몸무게다 여전히. 나는 미스터 존슨 에게 속삭였다 "어떻게 가능한가 에디슨이 내 몸무게를 그리 근사치로 추측하다니" 그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당신한테 말할께 비밀인데 절대 말해선안돼. 그는 오랫동안 시카고 도축장에서 직원으로 일했어, 거기서 수천마리 돼지들의 무게를 매일 잰거지, 그게 이유야." 나의 친구, 촌시 데퓨(1834 – 1928, 상원의원) 가 어느 잉글랜드인에게 자기만의 일화 중 하나를 말해줬더니, 그사람이 당황한 표정으로 듣고는, 1년이 지나서야 크게 웃었다 고 하더라. 나도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는 그 사람보다 더 오래 걸렸다 존슨의 농담을 알아채기까지가.
Now, my well being is simply the result of a careful and measured mode of living and perhaps the most astonishing thing is that three times in my youth I was rendered by illness a hopeless physical wreck and given up by physicians. More than this, thru ignorance and lightheartedness, I got into all sorts of difficulties, dangers and scrapes from which I extricated myself as by enchantment. I was almost drowned a dozen times; was nearly boiled alive and just mist being cremated. I was entombed, lost and frozen. I had hair-breadth escapes from mad dogs, hogs, and other wild animals. I past thru dreadful diseases and met with all kinds of odd mishaps and that I am hale and hearty today seems like a miracle. But as I recall these incidents to my mind I feel convinced that my preservation was not altogether accidental.
자, 나의(몸건강의) 훌륭한 처지 는 단지 신경쓰고 관리된 양생법의 결과다, 그리고 아마 가장 놀라운 것은, 나는 젊을때 세번 병으로 가망없는 육체적 파산상태였고 의사들은 포기했었다는게다. 이 이상으로, 무지와 경시에 의해서, 나는 온갖 어려움들과 위험들과 상처들에 빠졌다, 물론 황홀하게 거기서 탈출했지만. 나는 십여번 익사할 뻔 했다. 거의 산 채로 끓여졌고 불에 화장된채 잊혀졌다. 나는 무덤속에 있었다 잊혀진채 얼어버린채. 나는 머리터럭 차이로 미친개들 돼지들 다른 야생동물들 로부터 빠져나왔다. 나는 죽음같은 질병들을 통과했고 온갖 이상한 불운들을 접했다. 내가 지금 강하고 활력있는것은, 기적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런 사건들을 되새길때마다 나는 확신한다, 나의 생존은 모두 우연이 아니었다고.
테슬라 가 에디슨 의 사후 비판 기사에, 에디슨 의 비위생 을 말하는데, 테슬라 는 세균 에 강박적이걸랑. 왜냐면, 살던 스밀랸 이니 그 크로아티아 고향지역에서 수시로 콜레라 니 역병이 돌아서 죽걸랑. 저게 그냥 빈번한겨. 저게 위생의 문제였던걸 몰랐던거야 사람들이. 공기에 이상한 연기 때문에 병이 걸린줄. 무식 이 질병을 키운거걸랑. 무식 이 죽인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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