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stein-Gottorp or Schleswig-Holstein-Gottorp is the historiographical name, as well as contemporary shorthand name, for the parts of the duchies of Schleswig and Holstein, also known as Ducal Holstein, that were ruled by the dukes of Schleswig-Holstein-Gottorp. Other parts of the duchies were ruled by the kings of Denmark.

홀슈타인-고토르프.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고토르프. 여기가, 골때리.

1700–1721 Great Northern War

대북방전쟁 1700-21 에서, 덴마크 폴란드 러시아 세나라가 동시에 쳐들어가는거거든. 폴란드 는 리보니아 의 리가 Riga, 러시아는 잉그리아 의 나르바 Narva, 웃긴게 덴마크 가 홀슈타인-고토르프 로 쳐들어가는거거든.

Frederik IV of Denmark–Norway directed his first attack against Sweden's ally Holstein-Gottorp. In March 1700, a Danish army laid siege to Tönning.[18] Simultaneously, Augustus II's forces advanced through Swedish Livonia, captured Dünamünde and laid siege to Riga.[19] ... an army of Russian tsar Peter I was already on its way to invade Swedish Ingria,[20] where it laid siege to Narva in October. In November, the Russian and Swedish armies met at the First Battle of Narva where the Russians suffered a crushing defeat

웃긴겨 저게, 홀슈타인 슐레스비히 란 곳은, 원래 덴마크 킹 꺼걸랑. 여기 공작은 덴마크 킹이 준거고 여기 핏줄이야.

지금 덴마크 아래 모가지, 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스테이트.여. 1.5만 제곱키로고. 여기 수도 는 Kiel 킬 이야. 킬 에서 왼쪽으로 직선 평행하게 거서 Heide 하이데 위에 칼날 들어간 곳이, Tönning 퇴닝 이야.

The Eider (German: Die Eider; Danish: Ejderen; Latin: Egdor or Eidora[1]) is the longest river in the German state of Schleswig-Holstein. The river starts near Bordesholm and reaches the southwestern outskirts of Kiel on the shores of the Baltic Sea, but flows to the west, ending in the North Sea.

킬, Rendsburg 렌즈부르크. Tönning 퇴닝을 가로지르는 강 이 있어. 오른쪽 발트해 와 왼쪽 북해 가 만나는겨. 요기가 위 슐레스비히, 아래 홀슈타인 의 경계선 이야.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각각이 지역명 더치 공작령 이었고, 슐레스비히 는 도시로도 남은거고,

슐레스비히 는, 지금 분단 지역이야, 덴마크 접하는 북슐레스비히 와 나뉜겨. 분단 인데 통일 왜 안하냐 여긴, 여긴  일천년 이 한 몸이었어 슐레스비히 는, 5천년 단일민족 개소리 하고 자빠진거지. 끽해야 조선 시대 5백년 같이 산 것 같고 분단의 아픔 짓 하는 쇼 하는거 보면, 참 너무나 기가막힌 곳이야 이 더러운 조선 이란 땅은.

조선민족 이란 끽해야 6백년 이야.

고려 와 전혀 달라. 삼국시대와 전혀 달라. 삼국 고려 조선 은 절대 하나의 블러드 가 아냐. 조선족 이란건 거대한 똥떵어리 들이야 이건 전혀 다른. 얘들은 고려 를 악랄하게 쳐죽인 그야말로 후짐들이야. 조선 초기 고려 대학살 이삼십년 은 세계사 에서 그야말로 독특한 인종청소 사건이거든 저건.

이 조선 들 역사 조작질 하는것 보면 참 싄기한겨 저게.

The Duchy of Schleswig (Danish: Hertugdømmet Slesvig; German: Herzogtum Schleswig; Low German: Hartogdom Sleswig; North Frisian: Härtochduum Slaswik) was a duchy in Southern Jutland (Sønderjylland) covering the area between about 60 km (35 miles) north and 70 km (45 miles) south of the current border between Germany and Denmark. The territory has been divided between the two countries since 1920, with Northern Schleswig in Denmark and Southern Schleswig in Germany. The region is also called Sleswick in English. 1058–1866

슐레스비히 공작령 이, 덴마크 킹덤 시작하고 여긴 덴마크 킹 한테 하미지 하는겨. 지금 저 독일땅 슐레스비히 와 덴마크 지경의 슐레스비히 의 합 이야. 이게 8백년 갔다가 나뉜겨 지금. 두 나라로.

Holstein once existed as the German County of Holstein (German: Grafschaft Holstein; 811–1474), the later Duchy of Holstein (German: Herzogtum Holstein; 1474–1866), and was the northernmost territory of the Holy Roman Empire. The history of Holstein is closely intertwined with the history of the Danish Duchy of Schleswig (Danish: Slesvig). The capital of Holstein is Kiel.

아래 홀슈타인 은, 샤를마뉴 가 먹고서, 여러 카운트 들로 쪼개는겨. 이건 신성로마 땅이야, 상위법이. 여길 14세기 에 또 덴마크 저 슐레스비히 공작이 갖고 가. 그런데 여기땅의 주인은 신성로마꺼여 이건. 15세기에 여기도 공작령이 돼. 이건 신성로마 가 주는거야. 여기 대리인은 덴마크 가 갖는거고.

슐레스비히 공작에 홀슈타인 공작 은, 덴마크 킹 이 자식에게 준겨. 올덴부르크 가문이 이걸 갖고 가.

The House of Oldenburg is a European dynasty of North German origin and with strong links to Denmark since the 15th century.

올덴부르크 가 브레멘 왼쪽에 있고, 덴마크 마가렛이 크누트 의 여동생 에스트리드 가문으로 이어서 스위든 노르웨이 합한 칼마르 유니온 하다가, 끊기고, 이 자리를 최종 쥐는 가문이, 15세기 의 올덴부르크 가문이야. 덴마크 크리스티안 1세 여. 다음이 요한 에 요한 아들 크리스티안2세 가 경제 살린답시고 재벌 죽이고 영세업자 살린다며 경제 아작을 내고, 피의욕조 사건으로 스위든 바싸 독립하고, 보다 못해서 요한 의 동생 이 쫓아내. 이사람이 프레데릭1세 여. 이사람의 자식들이 슐레스비히 와 홀슈타인 고토르프 를 방계 가문으로 이어 가는겨.

고토르프 라는건, 슐레스비히 의 캐슬, 성 이여. 슐레스비히 공작령의 수도 가 저 지도 의 독일땅 슐레스비히 고 여기에 고토르프 성 이 있어.

Gottorf Castle (German: Schloss Gottorf, Danish: Gottorp Slot, Low German: Gottorp) is a castle and estate in the city of Schleswig, Schleswig-Holstein, Germany. It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secular buildings in Schleswig-Holstein,

지금 덴마크 킹 은

The House of Glücksburg (also spelled Glücksborg), shortened from House of Schleswig-Holstein-Sonderburg-Glücksburg, is a collateral branch of the House of Oldenburg,

글뤽스부르크 가문이야. 정식이름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손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 이 글뤽스부르크 란 도시도 지금 저 국경선 의 독일땅오른쪽 해안이야. 얘들의 가문 이름 고향은 정작 모두 독일땅이여 ㅋㅋㅋ 지금. 홀슈타인 의 진짜 주인도 얘들이고, 저 브레멘 도 덴마크 꺼였고, 이게 모두 독일한테 빼앗긴겨 얘들이.

Glückstadt 아래 엘베강 접하는 홀슈타인 쪽 도시가 글뤽슈타트. 덴마크킹 이 만든 도시여. 이 아래엔 모두 홀슈타인 을 앞에 붙여, 도시에 공작령 주면서. 자잘하게 후반에 공작들이 많이 생겨. 홀슈타인-고토르프 하면, 홀슈타인 지역의 고토르프 공작령 인겨. 홀슈타인ㅡ글뤽슈타트 공작도 있는거고. 저긴 모두 덴마크 꺼였어. 함부르크는 자유도시 이고 지금 베를린 다음으로 큰 거고. 이것도 고토르프 관할이었어

슐레스비히 공작 홀슈타인 공작 은 덴마크킹의 일명 세자 가 받는 자리가 돼.

Frederick III of Holstein-Gottorp (22 December 1597 – 10 August 1659) was a Duke of Holstein-Gottorp.
He was the elder son of Duke Johann Adolf of Holstein-Gottorp and Princess Augusta of Denmark. His mother was a daughter of King Frederick II of Denmark.


홀슈타인-고토르프 의 프레데릭3세. 덴마크 킹 가문인거고, 1616년, 30년 전쟁 전에 공작에 올라, 19세 에. 꿈이 많은겨 이사람이.

He had ambitious plans concerning the development of sea trade. With this purpose he established Friedrichstadt in 1621, in sympathy with city of Glückstadt established in 1617 by Christian IV of Denmark. Furthermore, he attempted to find a commercial way to Russia and Persia that would not pass around Africa.[citation needed] For this reason he sent on 6 November 1633 the expedition from Hamburg to Moscow under the management of a commercial agent of Otto Brüggemann and a ducal adviser, Philipp Crusius, and with Adam Olearius as secretary.[1] On 14 August 1634 the delegation arrived at Moscow. Although it was not successful in concluding a commercial agreement with Tsar Michael I of Russia, nevertheless, immediately after the return of the delegation to Gottorp on 6 April 1635, Frederick began the preparation of the following expedition.[citation needed] In 1636, he sent his delegation to Persia, and in 1639 Safi of Persia sent a return delegation with presents for the Duke.[1]

크리스티안4세 킹 이, 이사람의 삼촌 이고, 60년 킹 하면서 태평성대여 덴마크는, 덴마크 에선 르네상스 군주 칭해주지만, 아무것도 안한겨. 얘 아들때 코펜하겐 포위당하고 스카니아 해변을 다 뺏긴거고 스위든에게.

고토르프 공작 프레데릭 3세 가. 꿈이 커. 바다무역 을 하고 싶어. 아래 덴마크 킹이 글뤽슈타트 를 만들었어, 얘도 그걸 본따서 그 왼쪽 위 아이더 강변에 프리트리히슈타트 를 만들어. 더치인들보고 들어오라 하고 투자하라는 자유도시여 세금도 줄여주겠다는거고. 얘가 좌우 로 영지가 트인걸 이용해서, 전세계를 누리고 싶은거지. 러시아 와 페르시아 의 상로 를 열려고 하다. 그런데 30년 전쟁 터지면서 어려워 진겨 이게. 그래도 그 와중에 한겨. 1633에는 함뷰르크 에서 모스크바 로 상인들을 보내. 잉글랜드가 모스크바 컴퍼니 세운걸 알아. 자기도 하는겨.

이사람이, 러시아 와 접촉을 한거야, 러시아는 이반4세 때 잉글랜드 애들이 들어와서 모스크바 컴퍼니 를 시작한거고. 러시아 쪽은 스위든 이 바닷길을 막았어. 유일한 서유럽 컨넥션 이 잉글랜드였고. 다음에 온게 이 덴마크 땅 의 프레데릭 3세 인거야. 로마노프 시작 미하일 때에.

웃기게도, 이 인연으로, 이 고토르프 의 어린공작 이, 대북방전쟁 1700-21 때 아빠 죽고, 여기저기서 쫓겨나서, 갈곳없어 간 곳이, 러시아고, , 러시아 표트르 한테 망명해서, 표트르의 큰딸과 결혼해서, 이 핏줄이 표트르3세 짜르 가 되고, 이후 짜르 핏줄들이 여기핏줄이고, 웃기게도, 저 홀슈타인-고트로프 의 공작인겨 ㅋㅋㅋ. 그래서 올덴부르크 가문에 고토르프 이야기 보면 러시아 짜르 가 된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가, 이런 이유인데.

이 프레데릭 3세 가 페르시아 사파비 에게도 에이전트 를 파견하는겨. 돈 버는 것 은 기본인거고, 교류 하는거야. 여러 문화 의 여러 인간들의 코트 의 것들을 나누고 싶은겨 이게. 위대한 인간이야 정말. 킹도 아니고 공작 이.

The difficult task of leading the country through the Thirty Years' War confronted Frederick. He tried a policy of neutrality, which meant in practice the refusal of the union with Denmark and inclinations toward Sweden.[citation needed] In 1654 he hosted the recently abdicated Christina, Queen of Sweden. She wrote to her successor to recommend two of his daughters as potential brides. Thus, he married his daughter Hedvig Eleonora to King Charles X of Sweden.[1] Since the Swedish attempt at being the Great Power ultimately failed, Frederick's pro-Swedish policy led to the weakening of the house of Holstein-Gottorp.

30년 전쟁 으로 어려워졌어 자기 꿈이. 중립을 시도해. 덴마크 킹은 삼촌임에도, 덴마크 와 하나됨 을 거절해. 이 덴마크 도 괜히 30년 전쟁 끼들어갔다가 돌아왔걸랑. 스위든은 대신 이름 날리는거고, 킹 아돌푸스 는 죽으면서 포메라니아를 챙기지만. 스위든 의 크리스티아나 가 30년 전쟁 을 마무리하는데 적극적이었고, 이 둘이 마음이 맞는거지. 아 크리스티아나 정말 짱이야. 과거로 돌아가면 한번 보고싶은 사람인데.

크리스티아나 가 퀸 자리를 내 던지고 자기 사촌 칼10세 에게 자리를 줘. 그러면서, 프레데릭3세 공작에게, 당신 두 딸 중에서 칼 10세에게 들여라. 스위든의 칼10세 가 이 공작의 딸과 결혼을 한겨 크리스티아나 의 중매로. 이 공작은 앞으로 스위든 의 시대임을 눈치챈거고, 당연히 이때부터 덴마크 킹 코트 는 기분이 나쁜거야. 덴마크 와 스위든 은 철천지 웬수여. 덴마크 는 스위든의 귀족들을 욕조 피바다 로 몰살 시킨거고 이걸 이유로 독립 한거고, 이후 계속 덴마크 와 전쟁 만 한겨. 그러다 쉴때 30년전쟁에서 스위든 만 스타가 된거고. 덴마크는 이 다음에 저러다가 칼10세 가 얼음바다 건너서 코펜하겐 쳐들어가고 스칸디나비아 해변 땅 을 갖고가고, 브레멘 베르덴. 비스마르, 양옆 도시들도 뺏겨 덴마크가 스위든 에게.

저 스위든 킹의 마누라가 덴마크 킹 핏줄 고토르프 공작집안이여. 이 아들, 아들 이 죽죽 칼11세 칼12세 인겨 스위든 의. 스위든 의 최고 동맹은, 웃기게도, 덴마크 반도 모가지 의 홀슈타인-고토르프 인거고.

덴마크 입장에서, 스위든 보다도 천만배 기분나쁜게 바로 아래 저 고토르프 인거야 ㅋㅋㅋ.

Christian Albert (13 February [O.S. 3 February] 1641, Gottorp – 6 January 1695 [O.S. 27 December 1694], Gottorp) was a duke of Holstein-Gottorp and bishop of Lübeck.

프레데릭3세 의 퇴닝 에 덴마크 킹 크리스티안5세 가 포위하고, 이때 죽어 이사람이. 아들 알베르트 가 억지로 덴마크 킹 핏줄 딸에게 결혼 당해. 그런데 마음은 스위든 에 있어. 덴마크 는  아빠 죽인 웬수 야.

이사람의 누나 가 스위든 칼10세의 부인 이고. 여기서 낳은 아들이 칼11세 이고, 칼 11세 는 덴마크 공주랑 결혼해서 딸 헤드위그 와 칼12세를 낳고, 헤드위그 는 또 고토르프 로 시집을 가.

Frederick IV (18 October 1671 – 19 July 1702) was the reigning Duke of Holstein-Gottorp.

프레데릭4세. 3세 의 손자 이고 알베르트 아들. 고토르프 는 3대에 걸쳐 친 스위든 이야. 덴마크 킹 프레데릭4 세 가 고토르프 에 쳐들어오는게, 대북방전쟁 1700의 시작이야. 할아버지 킹 크리스티안 5세 가 역시나 프레데릭4세 공작 의 할배 3세 를 쳐들어가는 퇴닝 때처럼 3대 만에 다시 온겨 대북방전쟁 의 이름으로.

고토르프 의 프레데릭4세 는, 스위든 편이야. 마누라도 칼12세의 누나에 자기완 사촌이야.

He took part in the Great Northern War and was killed by artillery fire in the Battle of Kliszów in Poland.

이사람이, 1702년 에 폴란드 땅 남부의 클리스조 전투에서 대포에 맞아 죽어. 스위든이 폴란드 쳐들어가서 폴란드를 초반에 갖고 오걸랑. 하튼 초반에 저 가서 죽은겨.

Charles Frederick, Duke of Schleswig-Holstein-Gottorp (German: Karl Friedrich, Herzog von Schleswig-Holstein-Gottorp) (30 April 1700 – 18 June 1739) was a Prince of Sweden and Duke of Schleswig-Holstein-Gottorp and an important member of European royalty.

아들이, 칼 프리트리히. 두살때 아빠가 죽은겨. 엄마가 스위든 칼12세 누나여. 얜 칼 11세의 외손자고 스위든 킹 계승권이 있는겨. 스톡홀롬 에 있다가, 엄마가 1708년 에 죽어. 칼10세 에게 시집온 고토르프의 프레데릭3세의 딸, 즉 얘의 고모할머니냐, 아직도 살아있어. 이여잔 1715년 90세 에 죽어. 칼 프리트리히 가 15세. 엄마 는 엄하게 키웠는데, 고토르프 할머니가 남은 7년 간 애를 다 베린겨 넘 귀여울꺼 잖아 자기 고향 손자놈이니까.

Charles XII, sometimes Carl XII (Swedish: Karl XII) or Carolus Rex (17 June 1682 – 30 November 1718 O.S.[1]), was the King of Sweden from 1697 to 1718. He belonged to the House of Palatinate-Zweibrücken, a branch line of the House of Wittelsbach. Charles was the only surviving son of Charles XI and Ulrika Eleonora the Elder. He assumed power, after a seven-month caretaker government, at the age of fifteen.[2]

칼12세 가 1697년 15세 에 올라. 얘 어리다고, 대북방전쟁 을 시작한겨 덴마크 러시아 폴란드 가. 세 나라 모두가 스위든 하면 이가 벅벅 갈리는겨. 어디 하나 더 덜 이 없어. 그러나 폴란드 는 정말 너무나 개멍청한게, 이 폴란드 머저리 들은, 러시아 가 자기들 먹을걸 전혀 모르는겨. 폄하 를 했거나. 정말 이 폴란드 민족 리더 들은, 너무나 너무나 무지한 족속인겨. 쟤들이 그래서 뒤에 사라지는거고, 저런 폴란드 민족 을 문학으로 쳐빨고 민족주의  하는거고, 그게 너무나 역겨워서, 프루스 가 인형 랄카 를 쓴거고, 세상에 이따위 민족 이라니. 이런 책을 폴란드인간들은 좋아하는거고. 조선 에서 저런, 조선 민족 후짐어쩌고들 하면 반민족주의자로 적폐가 되는데 말이지.

아 저 랄카, 진짜 명작이야.

칼12세 는, 아빠가 절대군주 를 선언해. 유럽의 절대군주는 단 둘이야. 태양왕 루이와 칼11세의 스워든. 절대군주 란건, 의회 릭스닥 을 거부하는거야. 우리는 아직 그런게 맞지 않아! 해대는겨. 아주 잘한거야 이거. 그러다가 폴란드 꼴 나는거거든 나중에. 이사람이 40대에 죽고 이 절대군주 체제 에서 아들이 받은겨. 그래서 저걸 초반에 다 버티고 이긴겨 칼12세 가 시작은.

이사람이 대북방전쟁 이 시작이자 이게 21년간이고 이 와중에 죽은거걸랑 1718년, 36세에. 결혼을 안했어. 자식이 없어.

후계자 가, 오잉  대북방전쟁 시작하자 마자 나온, 꼬마 칼 프리트리히. 가 18세 가 된겨. 칼12세 의 누나 는 얘 엄마고 죽었고, 엄마의 여동생 이 하나 있어.

Ulrika Eleonora or Ulrica Eleanor (23 January 1688 – 24 November 1741), known as Ulrika Eleonora the Younger, was Queen of Sweden, reigning in her own right from 5 December 1718 until her abdication on 29 February 1720 in favour of her husband King Frederick, and then as his consort until her death.

울리카 엘레오노라. 이여자 가 결혼하고, 자기 권리가 우선이라며 의회를 설득하고, 의회에게, 절대군주 포기 하고 니덜 권리 챙겨주께 하민서, 이 여자가 권력 퀸 이 되는겨. 고토르프 의 꼬마는 18세 가 되었지만, 아무런 세력이 없는겨 스위든 에서. 유어하이니스 란 호칭 도 거부당해. 이런데 있으면 죽어 결국. 떠날 수 밖에 없어. 대북방전쟁 도 스위든이 지고, 덴마크 킹이 고토르프 공작 타이틀을 박탈해.

표트르 대제 가 얘를 받아줘. 스위든 킹 에 고토르프 공작 타이틀 은 얘꺼야. 얘를 미끼로 스위든 을 갖고 올 수가 있어 또한. 러시아 에겐, 폴란드 가 일차적으로 쳐 죽여야할 상대고, 다음이 저놈의 스위든 이거든. 스위든 은 아주 천년 된 적이여 저건. 노브고로드 부터 따지면. 천년은 많고 8백년..도 많냐.

야 세상에 일본 에 부들부들 해대는거 보면, 얼마나 유치한지, 유럽사 보다가. 저런 유럽들도, 만나면 서로 악수하고, 게임하고 서로 포옹하고, 이 조선 극똥은  ㅋㅋㅋㅋ. 미개하고 유치하고 속좁은게 저게. 리더란 애부터, 이데부텬 디디 안케뜸니다 ㅋㅋㅋ 참 한심한 집단이지. 학자란 애도 , 통쾌하무니다 ㅋㅋㅋ.

증오조장으로 밥벌이 하는 


Charles Frederick left for Hamburg, as the Gottorp ducal share in the duchies of German Holstein and Danish Schleswig had been occupied by Denmark since 1713. Having lost the title as duke of Schleswig, succeeded to have the occupation of the ducal share in German Holstein removed by application to his Holstein liege lord, the Holy Roman Emperor. In 1720, Sweden and Denmark-Norway concluded the Treaty of Frederiksborg, in which Sweden pledged to cease its support of the House of [Schleswig-]Holstein-Gottorp. Duke Charles Frederick opposed the treaty, made by a Swedish government which he regarded as rebellious against his own right to the Swedish succession; the treaty also made virtually impossible the regaining of his lost ducal share in the northern duchy of Schleswig. (This was to be a motivation for his son Peter in 1762, upon his Russian accession, to start preparations for the use of Russian troops to reconquer the lost lands from Denmark.)

이 인간은, 스위든 에서도 불편하고, 덴마크에서는 더 싫은 상대고, 함부르크로 처음에 갔어 고토르프 영주 자격으로 . 덴마크령 슐레스비히 공작 타이틀 도 빼앗기고, 독일땅 황제 하의 홀슈타인 공작은 유지가 된겨. 스위든 과 덴마크 는 대북방전쟁 끝내면서, 저 고토르프 가문 지원 중단할것을 선언해. 슐레스비히 공작령 에 대한 재취득도 불가해. 나중에 그의 아들 표트르3세 짜르가 갖고 오려한다 이거지.

그래도, 홀슈타인 공작 이야.

칼 프리트리히, 고토르프 공작 이, 포트르 와 예카테리나 의 장녀 와 결혼하고, 근위대장 이 되는겨. 그리고 표트르 가 죽어. 예카테리나 가 짜르 가 되고, 예카테리나 한테 잘보여서 자기 마누라 가 잇기를 바랬는데, 예카테리나 다음에, 표트르대제 의 형 이반5세 의 딸에게 가고, 다음엔 자매 에 아들애기 가 바로 유배 당하고, 비로소 표트르대제 의 핏줄로 다시 오는겨.


표트르 대제 의 딸 안나 에게 장가 온 인간이 고토르프 공작 칼 인데. 얘가 고모할머니 가 걍 개차반 내다 키워선지 개념이 없어. 창녀들하고 놀아나고, 안나 가 결혼하기 싫었거든. 임신한 상태에서, 쟤 가 공작인 홀슈타인 의 킬 을 부부가 놀러 간거고, 여기서 낳은 애가 표트르3세 야. 이 남편놈은 마누라 버리고 지 고향왔다고 신나게 놀기만하고. 표트르3세 는 킬 에서 태어난겨 그래서. 엄마는 얘 낳다가 죽은겨 타지에서.


이반5세 핏줄 다음 짜르가 안나 의 여동생 엘리자베타 이고. 이 다음이 표트르3세 여. 이사람은 짜르 오르고 여섯달도 안돼 죽어. 고토르프 가 여기 와서 왕이 된겨. 이 표트르 3세 의 부인 이 바로 예카테리나 2세, 대제 그레이트 라고 불리는 여자야. 이 여자도 아빠쪽이 고토르프 여. 이 여자는, 저 칼프리트리히 의 아빠 의 동생 핏줄이야. 다들 저 시작 프레데릭3세 , 최초 로 저기서 러시아 로마노프 시작 미하일과 접촉했던 공작 에서 나온겨.


예카테리나 여제 의 아들이 파벨 에 다음이 알렉산더, 니콜라스 형제 짜르들 이고, 다음이 알렉산더 2세 3세 에 마지막 짜르 니콜라스2세 여. 저 핏줄이 모두, 고토르프 여, 프레데릭3세의 핏줄이자 저 망나니 꼬마 칼 프리트리히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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