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정권 이 1170-1270, 일백년간, 의종에서 인종.

 

이땅의 역사 는 고려 숙종 때 끝난겨. 

 

숙종(肅宗, 1054년 9월 2일 (음력 7월 28일) ~ 1105년 11월 10일 (음력 10월 2일)은 고려 제15대 국왕(재위: 1095년 ~ 1105년)이다. 

 

이전 썰했듯. 이 숙종 때 상업을 일으키거든, 돈을 돌게 하고. 윤관의 여진 정벌 시기이고. 이 숙종 이 죽고 끝난겨 이 땅의 역사는. 이때까지 일본과 이땅의 역사는 비슷했고, 이 때부터 일본은 날라간겨 이게. 

 

고려시대 때 여진 에 대해선 정벌 이고. 거란 은 고려 거란 전쟁 이야. 요 나라가 먼저 선거고, 숙종 다음 예종 때 동북9성 반납하면서 여진애들에겐 신하의 예를 갖추고 금나라 서면서 여진과는 다툼이 없어.

 

저 이전 거란 과의 전쟁 때 초조대장경 을 만든거고, 다음 몽골 전쟁 때 고려대장경 을 만들어. 나무판떼기 깎으면 귀신의 힘으로 물리친다며. 미개한겨 이런게. 전쟁해서 이길 생각을 안하고 귀신한테 비는겨 이게. 불교 자체를 미개하게 믿는겨. 그것도 국가 단위가. 저따위껄 위대한 민족정신. 아무런 현실감각이 없어 얘들이. 국토는 피바다인데 한가하게 짓을 해대는겨. 

 

일본과의 차이짐은, 내전 자체가 이게 질쩍 측면에서 차원이 다른겨. 일본애들은 그야말로 전체 가 전쟁에 참여하며 정체성이 섞이걸랑. 고려 는 너무나 후져. 조선은 그야말로 내전 자체가 없는 나라고. 왜? 유교 자체가 인간들 마음을 죽이거든. 아무런 힘매가리가 없어 이 유교란게. 사람들 마음을 쳐죽이는게 유교야. 감히 상서 의 하나님 을 건드릴 마음 조차 못 품는겨. 이 유교 라는건, 치자 가 법이야. 이 치자 들은 법 위에서 노는 애들이야. 법 이란건 민, 려민, 눈깔애꾸의허섭민들 이삭일 뿐인 민들 위의 법이야. 

 

법 이란게 얘들은 치자 따로 민들 따로야. 이게 그대로 조선 민국 의 현실이고. 

 

오인이상 모이지 말라, 단 예외, 누구? 지들은 모여도 돼. 지들끼리 모여서 선거 운동 해도 돼. 공공 의 이익 이라며. 지들끼리는 상관이 없어. 법 이란건 허섭한 대민용이야. 지들의 교주 가 자살해서 뒈지면 그 교주 자식은 14일 금지 를 어겨도 돼. 왜? 민족 리더 층이야. 상관이 없는겨 지들은. 더하여 민들에겐 역시나 저런게 당연 한거야. 리더님들은 법의 예외고, 허섭한 민들은 당연히 따라야 하는거고. 

 

숙종 다음에 아들 예종 부터 끝의 시작을 가는겨. 이때 등장하는게 이자겸 이야. 이자겸의 난 이 1126년. 이자겸이 자기 딸을 예종에게 들여. 여기 의 아들이 인종 이야. 인종에게도 이자겸이 자기 두 딸을 들여. 즉 인종은 엄마도 이자겸의 딸, 마누라 두명도 이모들인겨. 이자겸의 세상이야. 견제를 느껴서 난 을 일으키고 척준경이랑. 그러다 척준경이 돌아서서 이자겸이 죽는겨.  묘청의 난도 인종 때야. 이 인종 때 김부식 의 삼국사기 고

 

무신정권 의 시작이 김돈중의 정중부 수염 태우는겨고 이 김돈중 이란 애도 김부식의 아들이고, 유교 야 이게. 

 

이의방 이 암살되고, 다음 정중부도 경대승에 죽고, 경대승이 돌연사로 죽고,  두경승 과 이의민 이 권력을 장악하고, 이의민의 자식인 이지영 의 하인이 최충헌의 동생 최충수의 비둘기 빼앗은걸 시작으로 최충헌이 이의민과 세아들을 죽이고 최씨정권 이야. 

 

저중에 멀쩡한 인간은 두경승 일 뿐이고. 이의민 과 이의방 은 전혀 족보 로 상관이 없어 본관 자체가 달라. 

 

최씨정권(崔氏政權)은 명종 26년인 1196년에 최씨정변으로 생긴 정권이다. 집권자는 우봉 최씨(牛峰崔氏) 최충헌최우최항최의로서 62년간 지속되었다. 1196년 ~ 1258년 

 

최충헌 등장이 서기 1196년 이야. 1170년 부터 26년 간의 짓들이었고. 저 이의민 애들조차 부녀자들 겁탈에, 이 들은 근본 자체가 이런겨 이게. 26년간 다음의 최씨들의 62년 이고, 다음 12년 후에 무신들 벗어나서 강화도 에서 나온겨. 서기 1270년. 이때가 쿠빌라이칸 이 있을 때야. 마르코폴로 가 17세에 출발하는 서기 1271년 직전 해야. 

 

고려-몽골 전쟁 또는 여몽 전쟁(麗蒙戰爭) 1231년 음력 8월 ~ 1257년 음력 10월

 

몽골은 끈질기게 고려왕의 입조·출륙을 요구했다. 고려는 몽골의 철수를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등 교섭이 잘 진행되지 않다가, 1258년(고종 45년) 최씨 정권의 마지막 집권자인 최의가 김준(金俊)에게 피살되자 정세는 돌변하여 몽골에 대한 강화의 기운이 생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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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고여 살해사건이 1225년 이야. 칭기스칸 이 1227년 에 죽어. 살리타 의 몽고 가 쳐들어오는게 1231년 이야. 오구데이 일때여. 이게 오구데이, 구유크, 몽케 까지 온거고, 쿠빌라이 즉위하고, 쿠빌라이의 원군으로 반원세력 진압하고, 1270년 에 원종 부터 쿠빌라이 의 몽고 의 고려 가 되는겨. 그리고 나얀 이 쿠빌라이 에 반란 하는게 1287년 이야. 고려 의 반원세력이 나얀 을 지원 하는거고. 

 

원종 의 아빠 고종 이 46년간이고 최충헌의 최씨 가 고종말에 끝나고 류경 김준 이야. 이미 항복하고 아들 원종 을 원나라로 보내고 항복한겨. 이때 몽케 가 협상대상자 고, 몽케가 1259년 에 죽어. 쿠빌라이 와 동생 아리크보케 의 다툼에 다행히도 쿠빌라이 편을 들어. 그리고 고종 이 죽고 원종이 복귀하고, 쿠빌라이 의 원군의 힘으로 무신세력 진압하고 개성 환도 를 하는겨. 

 

그리고 다음 아들부터, 렬선숙혜목정공 이야. 

 

쿠빌라이 가 

 

in the 13th century, Marco Polo recorded that Kublai had four wives and a great number of concubines

 

마르코폴로 에 의하면, 네 부인에 무수한 첩들 이 있다지만, 네명의 황후 가 아냐. 네 부락 의 황후 들이고, 황후가 7명 으로 보고, 제국대장공주 가 저 무수한 첩들 중의 딸인겨. 

 

Asujin Khatun — probably from Asud tribe 제국대장공주 의 엄마 는 아수진 카툰. 이란 여자 인데, 아수드 부락, 이 알란 족이야. 이 알란 이 북코카서스 의 흑해 와 카스피해 의 스텝 이야. 

 

충렬왕 의 부인으로 오고, 저때 딸들을 대장공주 라고 호칭을 주고, 고대 중국나라들을 앞에 붙여. 저 여자는 제나라 의 대장공주 인겨. 충렬왕 의 아들인 충선왕 이 그래서 쿠빌라이 피인거고, 충선왕의 부인이 계국대장공주 여. 계국 이라는 계 나라 의 대장공주여. 쿠빌라이 다음이 장남 친킴 인데 일찍죽어서 친킴 의 자식들이 받는겨. 이 친킴 의 장남 핏줄이 계국대장공주 야. 세력이 쎄 이 여자도. 

 

심양왕(瀋陽王, 1307 또는 1308~1310) 및 심왕(瀋王, 1310~1375)은 고려의 왕이 원나라 황제로부터 받은 봉작(封爵)의 하나이다. 충선왕은 원나라 체류 중 1307년(충렬왕 33년)에 원 무종을 도와서 그가 즉위하는 데 공을 세웠다. 그 대가로 1307년 원 무종은 충선왕에게 심양을 포함한 요동요양압록강 지방에 사는 고려인과 여진족들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통치권을 주고 심양왕에 봉했다. 심양왕의 영향력이 미치는 심왕부는 랴오둥 반도랴오양헤이룽장성단둥두만강 일대였다  

 

충선왕 때 아빠가 충렬왕 으로 있고 아들은 대도 에 있으면서 쿠빌라이 다음 손자 테무르칸 다음 쿨룩 칸으로 줄을 잘 서서, 받은게 심양왕 이야. 이 삼양왕 심왕 이란 지역이. 심양이 지금 심양시 고 봉천 이었고 만주땅 핵심이야. 송화강 에서 눈강 만나는 동북평원의 왼쪽 전부여 이게 요동반도 까지. 어마어마한 땅이야. 솔직히 스텝 애들이 중국 본토를 먹으면 이 만주 땅에 관심이 없어요 이게. 저게 1375년 까지 고려가 왕이었는데, 고려 가 내분으로 갈리걸랑 세력이. 개경에서 쫓겨서 이 심양으로 오는거고, 원나라 애들이 만주 가 통제가 안되는걸 이 심양왕 을 갖고 이용하는겨. 고려 가 무시무시한 세력인걸 알아. 고구려 부터. 얘들은 중국 을 먹을 생각을 못해 시안하게. 침략 당한 것만 기억이 되서 그런지. 그래서 철저하게 이성계 위화도 회군 부터는 아주 철저하게 중국의 노예 로 자처를 해. 참 시안 한 애들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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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 이란게 없어. 이자겸의 난  에 묘청의 난 어쩌고, 이의방 정중부 이의민 최충헌, 걍 지들끼리 몇몇 쳐들어가거나 암살하는게 전부여 ㅋㅋㅋ. 더 가서 조선, 중종반정에 인조반정, 연산군 광해군 엎는 꼬라지들. 걍 전부 모여서 궁궐 삥 둘러싸, 광해군은 담넘어 토끼고 술처먹다가. 

 

이괄의 난 이나 한양 한번 와서 칼질 할까. 얘들도 임란때 남은 일본 칼잡이들 델꼬 오는거고. 

 

너무 쉬운 땅이지 이게. 

 

일본 들 내전 하는거 봐라. 

 

治承・寿永の乱(じしょう・じゅえいのらん)は、平安時代末期の治承4年(1180年)から元暦2年(1185年)にかけての6年間にわたる大規模な内乱である

一般的には「源平合戦(げんぺいかっせん、げんぺいがっせん)」  

 

겐페이 전쟁. 1180-85. 전 국토 에서 바다에서 땅에서 걍 거국적으로. 저때가 경대승 에 이어 막 두경승 이의민 이 권력잡을 때, 야 쟤들은 전 국토 의 바다 와 육지에서 거국적으로 백기 홍기 깃발 들고 붙걸랑. 

 

南北朝時代(なんぼくちょう じだい)は、日本の歴史区分の一つ。鎌倉時代と(狭義の)室町時代に挟まれる時代で、広義の室町時代に含まれる[1]。始期は、建武の新政の崩壊を受けて足利尊氏京都で新たに光明天皇北朝持明院統)を擁立したのに対抗して、京都を脱出した後醍醐天皇南朝大覚寺統)が吉野行宮に遷ったユリウス暦1337年1月23日延元元年/建武3年12月21日[2][注釈 1]、終期は、南朝第4代の後亀山天皇が北朝第6代の後小松天皇譲位する形で両朝が合一したユリウス暦1392年11月19日元中9年/明徳3年閏10月5日)である[2]。始期を建武の新政の始まりである1333年とする場合もある  

 

가마쿠라 막부 다음 무로마치 로 시작하는 남북조 시대. 이때도 거국적으로 한판씩 붙걸랑. 그리고 바로 전국시대. 도쿠가와 히데요시 이에야스 나오는, 그야말로 거국적인 전쟁의 시대. 그 마무리 세키가하라 전투. 지긋지긋 전쟁을 마무리 하고 철저한 평화라며 이에야스 가 판을 짜고, 삼백년 후의 처절한 내전 으로 막부를 종결짓고 메이지 정부를 만드는 그야말로 처절한 전쟁을 겪은 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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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이 다른겨 이게. 

 

사상 의 차이, 그 힘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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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아는 것도 없고

 

너무나 겪은 것도 없고.

 

조선 오백년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아무 생각 도 못했던 시절. 

 

그런데 저때 이팔 이든 삼일 이든 독립선언서 보믄 

 

자유 의 조선 오백년 이, 반만년 역사 의 민족이 갑자기 자유를 뺏겼다는겨. 

 

세상에 지들 독립 독립 을 남들에게 호소 하는건, 저런건 웨스턴 역사 든 어떤 다른 나라 역사든 말이야. 없어 저런 징징 대는건. 미국 독립선언서 야 지들이 전쟁 터지고, 우리 독립할껴 당당 히 해대고 계속 전쟁 한거걸랑. 

 

국제사회여 우리 독립 시켜주세영!!!

 

대체 어떤 나라가, 저런 징징 소리를 내냐고? ㅋㅋㅋ. 독립하려면 지들 힘으로 독립을 하든 말든. 말도 안되는겨 저런건. 

 

아무런 힘도 없어. 아무런 생각도 없고. 

 

할수 있는게, 그래서, 사과하라 사과하라. 

오백년 성접대당한 중국한테는, 우한 짜요 우한 짜요 ㅋㅋㅋ 독극물 미세먼지는 중국님과 상관없슈 ㅋ ㅋ 중국님은 하나님이지. 세상 내셔널리즘 중 역시나 특이한 내셔널리즘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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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라는건 주역 음양 이라는 페이건 오컬트 이성도 개념도 없는 공리 놀이 점치기 짝대기 그림. 걍 국기 자체가 주술사 점놀이 무당놀이

나라이름은 조선 코트에서 일본애들이 정조론 안돼 정한론 삼한 꺼낸 그 한 이란 이름. 일본들이 꺼내준 단어가 지들 새 나라이름. 그 조차도 선비 모용부와 탁발부 에서 나온 토욕혼 과 유연 이 쓰던 칸 카간의 한을 한나라 한으로 오기한 단어

끔찍하다 끔찍해. 저따위 단어에 대한 자부심.

아무런 반성도

아무런 지성도 없는

개 무식한 역사

 
인류역사에서 가장 끔직한 역사 자살 외엔 탈출구가 없던 조선.

짐승사 보다 못한 조선 오백년.



역사 강의 자체가 모두 거짓말

걍 그래서 모든게 사기질 쇼 그래서 협박질.


똥 똥 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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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은 먼 자살 주술사들 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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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먹먹하고 벅차오릅니다. ㅋㅋㅋ. 역사 조작질 을 들으면 저렇대. 모든게 사기. 한심한 집단. 모든게 개사기

아무생각없는 생각할 줄 모르는 민들 을 개돼지로 여기는 거지 저것들이. 물론 개돼지들 답게 가슴 먹먹하고 벅차오르는거지. 지들을 죽여온 것들을 찬양해대는 개돼지들. 비참한거지. 그야말로. 아무런 동정심도 생기지 않다.

자기들을 잔혹하게 죽인 연쇄살인마집단을, 감사하고 고맙고 위대한 님들 이라며 흑흑흑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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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 한 역사. 추악한 역사. 아무것도 해본게 없는 역사. 아무런 힘도 없는 역사. 할 줄 아는건 징징징징. 

 

모든건 남탓. 조선은 위대해. 갑자기 뜬굼없이 반만년 역사래. 골때리는겨. 조선 애들이 이전 역사 를 모두 태우걸랑. 참서 래 딴 책들 갖고 있으면 목짤라 죽여. 역사 가 완벽하게 사라졌어 이전 역사가. 조선 건국하곤 고려 왕씨들 쳐죽이는거봐 이삼십년을 대학살을 해. 오죽하면 태종실록, 어이 조선 대신 대간 들아 중국사도 우리 조선들 처럼 우리처럼 이전왕조를 요렇게 잔혹하게 죽인적 있나? 찾아봐라. 음 없었슈 하은주이래론. 오호 의 난때 좀 그래쓰까? ㅋㅋㅋ 그러믄 그만 좀 쳐죽이까? ㅋㅋㅋ 그러면서 갑자기, 반만년 자랑스런 역사래 ㅋㅋㅋ. 

그 끔찍했던 같은 조선. 는 말의 어원 조선.


다시, 역사 주작질에 사기질 거짓으로 위대한 조선 민족 으로 복귀. 죽음으로 가기 시작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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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식민지 였어 오백년은. 숙신인들에겐. 

 

거짓말 좀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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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y have the following rule about debts. If a debtor shall have been several times asked by his creditor for payment, and shall have put him off from day to day with promises, then if the creditor can once meet the debtor and succeed in drawing a circle round him, the latter must not pass out of this circle until he shall have satisfied the claim, or given security for its discharge. If he in any other case presume to pass the circle he is punished with death as a transgressor against right and justice. And the said Messer Marco, when in this kingdom on his return home, did himself witness a case of this. It was the King, who owed a foreign merchant a certain sum of money, and though the claim had often been presented, he always put it off with promises. Now, one day when the King was riding through the city, the merchant found his opportunity, and drew a circle round both King and horse. The King, on seeing this, halted, and would ride no further; nor did he stir from the spot until the merchant was satisfied. And when the bystanders saw this they marvelled greatly, saying that the King was a most just King indeed, having thus submitted to justice.  

 

마르코폴로 가, 그 마바르 지역의 , 인도 그 아래쪽 의 오른쪽 지역이야 여전히. 거기 104번 파카우카 어쩌고 염불해대던 킹. 마르코폴로 가 시안하게 본게, 저기 법이래. 채권자가 돈받을게 있는데 못받으면, 채무자 를 만날때 갑자기 그 사람 있는 곳의 주위로 원을 그린대. 그때 채무자 는 그 원 밖을 나갈 수 없대 돈을 안주면. 이게 그나라 법이래. 

 

그런데 그 킹덤 의 킹 이, 돈을 안주더래. 쌩까는겨 킹 이. 외국상인 이 채권자 인데, 킹 이 길가는걸 보고 바로 가서 원을 바닥에 그렸대. 아 근데, 킹 이 꼼짝도 못하는겨. 법은 킹 의 위에 있걸랑. 할수 없이 돈을 주고 그 원을 벗어난거지. 

 

저런 법지키는건 웨스턴 애들에겐 기본이야 기본. 저런 법 지키는 게 이야기가 안돼. 러시아 애들에게 이야기가 돼. 그게 이전 내 언급한 전쟁과 평화 야. 걔 이름 머냐, 법을 어겨서 자기 근위대장에게 부탁을 하고, 근위대장이 황제에게 특혜를 달라고 부탁하걸랑. 황제 왈, 법 은 내 위에 있다, 황제인 나도 어쩔 수 없다. 

 

저런게 러시아 애들에겐 신선한거지. 웨스턴 애들에겐 저런게 이야기 가 될 수 없어. 당연한겨 저게. 

 

조선 민국에선, 말도 안되는겨 ㅋㅋㅋ. 조선 의 오백년은 법치 라는게 없어. 사법 체계 라는게 없어 저 게. 걍  지들 눈밖에 벗어나면 적폐 로 소문이 증거고 고문으로 쳐 죽이는게 전부걸랑. 변호사 가 있고 법정이 있는것도 아니고. 법이란게 없어, 법을 몰라. 법이 먼지 법사상이 먼지. 지금 법이란것도 일본애들의 법률용어 를 백퍼 한글 소리로 둔갑시킨거고. 다 일본한자여 저 법 책들이. 

 

나 대통령이여. 용지를  내가 어드래 쓰던 말던, 야  어찌 대통령인 나한테 법 을 지키라 하니 그따위 용지 변경 이 어쩌고 가 머라고 ㅋㅋㅋ. 쟤가 하도 어이없어 트윗인지 먼지 하는 이유야. 너무나 너무나 어이없는거야. 대체 나에게, 위대한 상서 의 그 도심 을 가진 미묘한 군주 인 나에게 그따위 허섭한 법 을 지키라는거냐? ㅋㅋㅋㅋ. 

 

대체 먼 놈의 용지법 인지 당췌 난 관심도 없다만. 쟤들 모든 청문회 니 머 자식들 병역 이야기니 입학 이야기 니 우리가 조구기여 해대는게 그거 아냐? 왜 대체 우리네 민족 치자 님들께 법 을 지켜라 라고 말하는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한거 아닙니까? 쟤들 빠질 들의 속 내 아니겠어? 법 은 지켜야 하는 이들은 적폐들이나 잘 지키란겨 ㅋㅋㅋ. 

 

비참 하기 그지 없는 땅이야 여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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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들의 사람죽이기 역사. 이 중심에 저 기독교 죽이는거. 저런 것에 역시나 아무런 역사적 책임 이 없어. 정조 가 저 민족애들에겐 정체성 의 중심이래 ㅋㅋㅋ. 죽은 조상 만 지들 신이야. 세상에 저따위 제사 지내는 것 만큼 미개한게 없는겨 저게. 신이 없는 땅이야 오백년이. 이 신앙이 얼마나 미개한지 말이지. 

 

무지하게 죽여. 대원군 때 병인박해 는 칠천명이냐 팔천명이냐.  테레비에서, 우리 흥선대원군의 글씨 보소, 캬~~~ ㅋㅋㅋ. 

 

삼일운동 때 칠팔천명이 죽었다는겨. 근거 몰라 니덜이 찾아봐.  사악한 일본들이 죽이는건 일본들이 사악한건데, 조선 시절 사람들 쳐죽인건, 당연한겨. ㅋㅋㅋㅋ. 위대한겨 우리네 민족은. 걍 쳐 죽일 쳐 죽을 개돼지 민들 이 죽었을 뿐이여. 오직 오직 일본이여. 중국은 위대해. 몽골 들 한테도 수십만이 노예로 잡혀가. 똑같은 피 인 청나라 들도 수십만을 노예로 잡아가서 여자들은 강간 당하는겨 저게. 

 

아무런 책임을 안물어 이 조선들은. 임란 때 숱하게 당했대. 저 임란 때 얘들이 또한 위대한 선비 들이여 지폐 로 모시는. 저 들이 아무런 준비도 안하거든. 저 들의 후배 들 역시나 적폐 놀이 외엔 할 줄 아는게 없거든. 

 

 

그리곤, 위대한 유교 위대한 조선. 자기들이  찢어죽인 숫자 는 당연해. 위대해. 중국이 한 짓들도 위대해. 아 그런데 말입니다 일본은 용서못해 ㅋㅋㅋ. 참 싀안한 뇌구조여 저게. 

 

그리고는 민족 민주 놀이 존버 해서 권력 잡고는,  헤쳐먹어 지들끼리 ㅋㅋㅋ. 지들 이라는 권력 을 감시하는 검찰은 적폐여. 감히 권력에 대드는게 정의라고 생각하니 이 적폐 검찰? ㅋㅋㅋ. 검찰이란게 권력의 개 가 되지 못할망정 우리 민족민주 님들을 멀로 보고. 이미 다들 개돼지 선동 되서 모든 개돼지 들이 우리편이여 이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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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선의 역사는, 아무런 책임이 없어. 역사 에서도 죄를 안물어. 조선 들의 역사는  위대해 ㅋㅋㅋ. 저 들 이 얘들에겐 위인 이여. 사람 을 누가 더 마이 죽였으까잉. 오매  위인 이셔. 지들 정체성의 중심이야. 아무런 역사적 책임도 없어. 걍  모든건 일본 탓이야. 저것도 시작이 지들 적폐 놀이 하면서 시작하걸랑. 

 

오백년이 자유 였다는겨. 자유 의 조선 을 일본들한테 침탈 당했다는겨. 

 

자유롭게 마음 껏 적폐놀이하면서 사람들 죽여대던 얼마나 아름다운 조선 시절이었던가. 어굴하이 어굴하이 우리네 위대한 조선 이염!! 

 

웃통 벗어대고 주역 짝대기 태극기 감싸서 달리믄서, 아~~!! 우리 민족 이여 민 주 여. 일본 들이 만든 개념 민족 민주여! ㅋㅋㅋ. 

 

이 조선 오백년 의 악행 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책임을 안져. 역사적으로 이 역사에서도 저들은 아무 죄도 안물어. 정조 가 위대하다는겨 이것들이. 모든건 또 노론탓이고, 노론은 일본에 빌붙고 그래서 또 일본 탓이야. 

 

중국에 대해서도 책임을 안물어. 참 웃겨 얘들. 오직 일본이여 

 

Maria Teresa Goretti (Italian pronunciation: [maˈriːa teˈrɛːza ɡoˈretti]; October 16, 1890 – July 6, 1902) is an Italian virgin-martyr of the Catholic Church, and one of the youngest saints to be canonized.[1] She was born to a farming family. Her father died when she was nine, and they had to share a house with another family, the Serenellis. Maria took over household duties while her mother, brothers, and sister worked in the fields.  

 

마리아 테레자 고레티. 1890-1902. 11년 하고 8개월 만에 죽었는데. 마르케 에레지오니 의 안코나 프로빈치아 의 코리날도 출생이고. Nettuno 네투노, 로마 아래 해변 마을 에서 죽었는데. 

 

Maria Goretti was born on October 16, 1890 in Corinaldo, in the Province of Ancona, then in the Kingdom of Italy, to Luigi Goretti and Assunta Carlini, the third of seven children: Antonio (who died in infancy), Angelo, Maria, Mariano (Marino), Alessandro (Sandrino), Ersilia, and Teresa  

 

당시 이탈리아 킹덤 이고. 엄마가 아순타, 7형제 의 셋째. 큰애 안토니오 는 일찍 죽고, 막내 가 테레사 야 어린애기. 

 

By the time Maria was five, her family had become so poor that they were forced to give up their farm, move, and work for other farmers. In 1896, they moved to Colle Gianturco, near Paliano and Frosinone, about fifty miles outside Rome; and then in 1899 to Le Ferriere, near modern Latina and Nettuno in Lazio, where they lived in a building, "La Cascina Antica," they shared with another family which included Giovanni Serenelli and his son, Alessandro.[3]:1[6][7]:20[8][9] Soon, her father became very sick with malaria, and died when she was just nine.[7]:21 While her mother and siblings worked in the fields, she would cook, sew, watch Teresa, and keep the house clean.  

 

마리아 가 다섯살일때, 가족이 지극히 가난했어. 자기들 땅을 포기하고 이사했어 다른 농부들과. 마르케 안코나 해변에서 완전히 반대편 아래 로마 쪽으로 온겨. 그리고 1899년 아홉살 때 네투노 쪽으로 와서 산거야. 여기에 건물 빌딩 에 여러 가구들이 같이 있는데, 이중 지오반니 세레넬리 와 그의 아들, 알레산드로 도 살았던거야. 이 세레넬리 의 알레산드로 가 강간 을 하려했던거야. 

 

저기오고 나서 아빠가 말라리아 로 죽고. 마리아 는 아홉살이고, 엄마 와 다른 아이들은 들판에서 일하고, 마리아 는 막내 테레사 를 보면서 요리하고 바느질 하고 청소 를 하다. 

 

On July 5, 1902, eleven-year-old Maria was sitting on the outside steps of her home, sewing one of Alessandro's shirts and watching Teresa, while Alessandro was threshing beans in the barnyard.[4]:87–89 Knowing she would be alone, he returned to the house and threatened to stab her with an awl if she did not do what he said; he was intending to rape her. She would not submit, however, protesting that what he wanted to do was a mortal sin and warning him that he would go to Hell.[7]:46 She fought desperately and kept screaming, "No! It is a sin! God does not want it!" He first choked her, but when she insisted she would rather die than submit to him, he stabbed her eleven times.[4]:90,101 She tried to reach the door, but he stopped her by stabbing her three more times before running away  

 

1902년 7월 5일. 11세 의 마리아 가 집 밖에 앉아서 남동생 알레산드로 의 셔츠 를 바느질 하면서 막내 테레사 를 보고 있었고, 알레산드로 라는 남동생 도 있고, 살인자 가 되는 애도 이름이 알레산드로 야. 얘가 건물마당에서 콩껍질 까고 있었다는거지. 마리아 가 혼자 인걸 알고, 집으로 들어와서 송곳 으로 위협하면서 강간 하려는겨. 마리아는 반항하다, 너가 하려는 짓은 용서못받을 대죄 야. 너 지옥 갈거야. 필사적으로 싸웠고 계속 소리질렀다. "하지마! 그것은 죄야! 신은 그것을 원하지 않아!" 그는 처음엔 목을 조르고, 그녀는 차라리 죽겠다고 했다 그에게 굴종하느니, 그러자 그는 11번 그녀를 찔렀다. 그녀는 문으로 가려고 했다. 그는 그녀를 막고는 세번  더 찔렀다 도망가기 전에. 

 

Teresa awoke with the noise and started crying, and when Assunta and Giovanni came to check on her, they found Maria on the floor bleeding and took her to the nearest hospital in Nettuno. She underwent surgery without anesthesia, but her injuries were beyond the doctors' help. Halfway through the surgery, she woke up. The pharmacist said to her, "Maria, think of me in Paradise." She looked at him and said, "Well, who knows, which of us is going to be there first?" "You, Maria," he replied. "Then I will gladly think of you," she said. She also expressed concern for her mother's welfare.[7]:54 The following day, 24 hours after the attack, having expressed forgiveness for Alessandro and stating that she wanted to have him in Heaven with her, she died of her injuries  

 

막내 테레사 가 소란에 깼고 울기 시작했다. 엄마 아순타 와 저 살인범의 애비 지오반니 가 와서 보니 마리아 가 바닥에서 피 흘리고 있고, 네투노 의 가까운 병원으로 데려갔다. 마리아를 마취없이 수술하다. 그러나 상처는 의사의 힘 밖. 수술 중에 마리아 는 깨어나다. 거기 제약사 가 그녀에게 말했다 "마리아, 천국 에서 내 생각해" 그녀는 그를 보고는 말했다 "글쎄, 누가 알겠어, 우리 둘중 누가 거기 먼저 갈지?" "마리아, 너" 그는 답했다. "그러면 나는 기쁘게 너에대해 생각할거야(천국에서)" 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또한 그녀 엄마의 처지에 대해 걱정했다. 다음 날, 그 공격 후 24시간 후에, 알레산드로 에 대해 용서 를 말하고, 하늘에서 그 살인자 알레산드로 와 함께 하길 원한다고 말하면서, 그녀는 죽었다. 

 

당시 기사에 의하면, 저때 송곳이 10인치 였대. 30센치 안되는 졸 긴 거지. 

 

The wounds penetrated her throat, with lesions of the pericardium, heart, lungs, and diaphragm. Surgeons at Orsenigo were surprised that she was still alive. In a dying deposition, in the presence of the Chief of Police, she told her mother of Serenelli's sexual harassment, and two previous attempts made to rape her. She was afraid to reveal this earlier since she was threatened with death 

 

기사 에 자세하게 실린게, 14번을 찔렀는데, 목을 꿰뚫고, 심낭 심장 폐 횡경막 등에 상처를 내고. 의사 가 말하길 살아있는 상태 라는게 놀라왔다며. 죽는 상태에서, 경찰의 수장 도 있는 상태에서, 마리아는 엄마에게 세레넬리 의 성폭행 에 대해 말했고, 이전에도 두번 강간하려 했다는거야. 미리 말하려고 했는데 죽인다고 해서 무서워서 말못했다며. 

 

A third account of the assault was presented by Italian historian Giordano Bruno Guerri in 1985. He asserted that, while in prison, Alessandro stated that he did not complete the assault and Maria died a virgin. Guerri identifies the weapon as an awl rather than a dagger  

 

서기 1985년 에 역사학자 말에 의하면, 알레산드로 가 감옥에서 말하길, 마리아 는 버진 인체 죽었다. 칼이 아니라 송곳 이었다는걸 확인했다. 

 

Alessandro Serenelli was captured shortly after the attack: the police taking him to prison overtook the ambulance carrying Maria to the hospital.[3]:54 Originally, he was going to be sentenced to life, but since he was a minor at that time it was commuted to 30 years; judges even considered he was not as mature as he was expected to be for a 20-year-old, and that he grew up in a poor, neglectful family, with several brothers and relatives suffering from madness and an alcoholic father.[4]:36,60,64 It has also been suggested that it was due to her mother's plea for mercy that he was not sentenced to death.[10] He insisted he had attempted to rape her several times and decided to kill her because of her refusal and desperate crying. He remained unrepentant and uncommunicative from the world for three years, until a local bishop, Monsignor Giovanni Blandini, visited him in jail. He wrote a thank you note to the Bishop asking for his prayers and telling him about a dream, "in which Maria gave him lilies, which burned immediately in his hands."  

 

알레산드로 세레넬리 는 바로 체포되었다 사건직후. 경찰은 그를 체포하느라 시간 지체하고 앰뷸런스를 늦게 불러서 마리아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처음엔 그는 사형 선고를 받아야했는데, 그는 당시 미성년이어서 30년 으로 감형되었다. 재판부는 아직 그가 스무살이 되어보이지 않은 걸로 여겼고, 자란 환경이 가난하고 방치된 가족 이었고, 형제들과 친척들은 정신병과 알코올 중독 의 엄마 아빠여서 양형참작이 되다. 또한 그 감형은 마리아 의 엄마 의 탄원 때문이었다 사형선고 주지 말라며 자비를 배풀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녀를 두세번 강간 시도했었다고, 그리고 결심했다고 그녀를 죽이기를, 왜냐면 그녀가 거절에 필사적 울부짖음으로. 그는 회개도 안했고, 3년 동안 세상과 단절되었다, 이후 지역 주교 인 지오반니 블라디니 가 그의 감옥을 방문했다. 알레산드로 는 주교에게 감사 노트를 썼다,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며, 그리고는 그에게 꿈을 이야기 했다 "꿈에서 마리아 가 알레산드로 에게 백합꽃들을 주었는데, 그 꽃들이 자기 손에서 바로 타버렸다" 며. 

 

Alessandro Serenelli (2 June 1882 - 6 May 1970) was an Italian murderer, who in 1902 attempted to seduce an eleven-year-old girl named Maria Goretti.  

 

알레산드로 세레넬리. 같은 건물에서 살았던 애 인데. 1882년 생. 여덟살 많고, 당시 20세 가 지난겨. 헌데 당시 이탈리아 법이 21세 가 성년 이라서, 사형을 안당한겨 얘가. 

 

Serenelli was born into a peasant family. His father, Giovanni, is often portrayed as an alcoholic, although Maria's mother said he rarely drank to the point of drunkenness.[1] His mother died in a psychiatric hospital when he was a few months old, apparently after trying to drown Serenelli when he was a newborn. A brother of the young man committed suicide while studying in the seminary.[1] His father worked as a coachman and a laborer but was unable to keep any job for a long time and moved to Paliano to work as a métayage. Unlike many of his contemporaries, he attended school until the second grade, learning to read and write. Alessandro later worked as a longshoreman.[1] At eighteen, his father called him to work with him in Paliano. Here, he knew the Goretti family with whom he established a relationship of cooperation and neighborliness.  

 

얘도 농부 집안이고, 아빠 는 알코올 중독으로 알려졌지만, 마리아 의 엄마 인 아순타 의 말해 의하면 취할정도 로는 마신 적이 없다는겨. 얘 엄마 가 정신병원에서 죽었어 얘 태어나자 몇달 후에. 태어난 얘 를 엄마가 익사 시키려 했어. 형 은 신학공부하다가 자살을 하고. 아빠는 마부 에 인부 였다가 오래 일 못해서 팔리아노 에서 소작 일을 하고. 그럼에도 학교는 다녀서 읽기 쓰기는 배웠다. 알레산드로는 후에 바닷가 부두에서 선적 노가다 를 했다. 18세에 아빠가 불러서 같이 일하자고, 그래서 이때 고레티 가족을 알게 되고 서로 알던 이웃이고

 

After due process, Serenelli was sentenced to 30 years in prison. He avoided life imprisonment because Italian law at that time set the age of majority at 21 and so he was not yet of age in order to be subject to that penalty. He was released from prison in 1929, after serving 27 years. Of the 30 to which he had been sentenced, one year was remitted by the general pardon to all prisoners after the Italian victory in World War I, and a further two years, both in recognition of good behavior.  

 

당시 21세 가 성년이라 무기징역 을 면하고 30년 형을 받다. 그는 1929년 에 석방 되었다 27년 복역후. 1년 은 당시 이탈리아 가 1차대전 승리로 모든 죄수들에게 1년 감형을 했고, 2년은 복역생활의 좋은 평가 로 감형 해서 3년 줄여 나오다. 

 

On the night of Christmas 1934, Serenelli begged forgiveness on his knees from Assunta Goretti, Maria's mother. She forgave him, saying she could not refuse since Maria had already done so on her death bed.

Having worked sporadically as a farmer and laborer, Serenelli eventually retired to a monastery of the Order of Friars Minor Capuchin, where he served as their gardener and porter, eventually being accepted as a lay brother.  

 

1934년 크리스마스 밤에, 세레넬리 는 마리아의 엄마 아순타 에게 무릎꿇고 용서를 빌다. 그녀는 그를 용서했다. 그녀는 거절할 수 없다면서, 왜냐면, 마리아 가 이미 죽음침상에서 용서 를 했으므로. 

 

세레넬리 는 여기저기서 농부와 인부로 일하다가 마이너 카푸친 수도회 의 수도원 으로 들어가다. 카푸친 이라는게 cauche 카푸쉬, 저 수도회 의 머리 후드 까지 쓰는 외투 입은 작은형제회에서나온 수도회여. 여기서 정원사에 짐꾼으로 일하고 결국 세속인자격 평신도수도사 로 입적되었다. 

 

Maria was beatified on April 27, 1947. In attendance at the ceremony were both Assunta and Pope Pius XII. On the evening of the ceremony in Saint Peter's Basilica, the Pope walked over to and greeted Assunta. She later reported, "When I saw the Pope coming, I prayed, 'Madonna, please help me', and I felt faint. He put his hand on my head and said, "Blessed mother, happy mother, mother of a Blessed!" Afterward, both could be seen with eyes wet with tears  

 

서기 1947년 4월 27일 마리아 는 성녀로 인정 되었다. 그 제식 때에, 엄마 아순타 와 교황 피우스 12세 가 참석했다. 베드로 성당 의 제식 의 저녁에, 교황은 건너가서 아순타 에게 인사했다. 그녀는 나중에 말했다, "내가 그 교황이 오는걸 보았을 때, 나는 기도했다, '마돈나, 부디 나를 도와줘' 그리고 나는 기절했다. 그는 그의 손을 나의 머리에 얹고서 말했다, "축복받은 어머니여, 행복한 어머니여, 성녀의 어머니여!" 그후, 그 둘은 눈들이 눈물로 가득했다. 

 

Three years later, on June 24, 1950, Pius XII canonized Maria as a saint, the "Saint Agnes of the 20th century."[1] Assunta was again present at the ceremony, along with her four remaining sons and daughters. Alessandro was also present  

 

3년후, 피우스 12세 교황은 마리아 를 20세기 의 성인 아그네스 라고 정식으로 선언했다. 아순타 는 다시 그 예식에 참석했고 다른 네명의 아들과 딸들과 함께 했고, 알레산드로 는 참석 했다 는 말도 있고 안했다는 말도 있다. 모른다 이건. 

 

Serenelli died on 6 May 1970 in a convent at Macerata from complications relating to a fracture of his femur following a fall. He was almost 88 years old. Around a decade earlier, he had written the following as part of his will:  

 

알레산드로 세레넬리 는 1970년 5월 6일 죽었다. 마체라타 에서, 마르케 에레지오니 인데 여기가 마리아 태어난 곳의 바로 아래 야. 아마 어디서 떨어졌는데 이때 허벅지 뼈가 골절이 되고 이게 원인 이 되어서 죽은듯. 88세. 이미 10여년 전에 다음과 같은 유언을 써 놓았다. 

 

I'm nearly 80 years old. I'm about to depart.

Looking back at my past, I can see that in my early youth, I chose a bad path which led me to ruin myself.

My behavior was influenced by print, mass-media and bad examples which are followed by the majority of young people without even thinking. And I did the same. I was not worried. 

 

나는 거의 80세다. 나는 곧 떠날 것 같다. 

내 과거를 보건데, 나는 알수 있다 내 어린 시절에, 나는 나쁜 길을 선택했다 그 길은 나를 망치는 길로 안내했다.

나의 행동은 인쇄물과 대중매체와 나쁜 사례들에 영향을 받았다, 그런것들을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따른다 아무 생각없이. 나는 똑같은 짓을 했고, 나는 걱정이란 없었다


There were a lot of generous and devoted people who surrounded me, but I paid no attention to them because a violent force blinded me and pushed me toward a wrong way of life. 

 

많은 관용적이고 헌신적인 사람들이 내 주위에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왜냐면 폭력이 나를 눈감게 했고 더 나쁜 길로 밀어넣었다

When I was 20 years-old, I committed a crime of passion. Now, that memory represents something horrible for me. Maria Goretti, now a Saint, was my good Angel, sent to me by Providence to guide and save me. I still have impressed upon my heart her words of rebuke and of pardon. She prayed for me, she interceded for her murderer. Thirty years of prison followed.  

 

내가 스무살 때, 나는 충독적인 범죄를 저질렀다. 지금 그 기억은 나에게 끔찍한 화면을 던진다. 마리아 고레티, 지금은 성인, 그녀는 나의 선한 천사 였다, 신의 섭리로 나에게 보내진, 나를 인도하고 구하라는. 나는 여전히 내 심장에 새겨왔다 그녀의 당시의격한말들과 용서의 말들을. 그녀는 나를 위해 기도했다, 그녀는 탄원했다 그녀의 살인자를 위해서. 징역 30년이 따랐다

If I had been of age, I would have spent all my life in prison. I accepted to be condemned because it was my own fault. 

 

내가 성년이었다면, 나는 평생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나는 그 판결을 받아들였다 왜냐면 그것은 나의 잘못이었으니까

Little Maria was really my light, my protectress; with her help, I behaved well during the 27 years of prison and tried to live honestly when I was again accepted among the members of society. The Brothers of St. Francis, Capuchins from the Marche, welcomed me with angelic charity into their monastery as a brother, not as a servant. I've been living with their community for 24 years, and now I am serenely waiting to witness the vision of God, to hug my loved ones again, and to be next to my Guardian Angel and her dear mother, Assunta. 

 

작은 마리아 는 진실로 나의 빛이었고, 나의 수호녀 였다, 그녀의 도움으로 나는 27년 감옥에서 잘 행동했고 아니스티 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내가 다시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졌을때. 마르케 의 프란시스칸 카푸친 수도회는 나를 천사같은 사랑으로 그들의 수도원에 하인 이 아닌, 한 형제로써 나를 받아주었다. 나는 24년을 그들의 공동체 에서 살아왔고 지금 나는 고요하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신의 비젼을 목격하길, 나의 사랑스러운 이들을 다시 허그 하기를, 그리고 그 옆에 나의 수호 천사 가 있기를, 그리고 그녀의 고귀한 엄마 아순타 와. 

I hope this letter that I have written can teach others the happy lesson of avoiding evil and of always following the right path, like little children. I feel that religion with its precepts is not something we can live without, but rather it is the real comfort, the real strength in life and the only safe way in every circumstance, even the most painful ones of life.

Alessandro Serenelli, May 5, 1961  

 

나는 희망한다 내가 써 내려간 이 편지가 가르칠수 있기를, 남들에게 악을피하고 작은 아이들처럼 언제나 옳바른 길을 따르는 행복한 교훈이 되도록, 나는 느낀다, 가르침있는 신앙 이란 것이 우리가 그것없이 살수 있는 필수적인 어떤것 이라기 보다는, 인생에서의 진짜 위로 이고, 진짜 힘 이라고, 그리고 모든 상황 속에서, 삶의 가장 고통스러운 속에서 조차도, 유일한 안전한 길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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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의 용서 와 화해 와 회개 는 이게 차원이 달라. 저 민 들 조차도. 

 

이 조선 민족 민국 애들은, 참 시안한게 말이지, 저 송곳 으로 수천억번 찌른 저 들이, 위인이야. 이 조선 역사 는 단 한번도 제대로 평가 를 받은 적 이 없어.

 

 

사람들을 저리 박해질 하며 쳐 죽여도, 오메  우리 대원군 필체 보소, 어머  위대한 정조 가 우리네 진짜 민족 의 정체성이요. 남들은 다 적폐였소. 

 

조선 오백년 이란걸 단 한번도 제대로 평가 하지 않아. 오직 띄우기 만 바빠. 저 저 오백년 저 살인자 들의 시대를. 

 

그리곤 당당하게 대중매체 로, 위인이랍시고 위대한 시대 랍시고 자랑스럽다며 갈키는겨. 저딴 개 거짓말 들을 듣보고 오메  가슴이 먹먹하고 벅차오릅니다. 

 

 

회개 라는게 있을 수가 없어. 용서 라는 게 없어. 화해 라는게 머여 대체. 

 

쟤들 웨스턴 역사를 봐. 이전 보인 그 잉글랜드 역사 를 보고. 이게 차원이 다른겨. 아 참 영어 를 못하니 볼 줄 모르겠지. 문맹 집단이야 이 조선어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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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 과 살인 의 역사, 극동의 두 집단. 

 

반성을 모르는 애들. 

 

역사 에서 쟤들 이 자료가 되는겨 미래 아이들에겐. 아 저런 모랄로 끔찍한 인생들을 역사들을 사는거군. 철저하게 가르쳐 미래의 인간들에게. 그래서 저들은 절대 과거로 회귀할 수 가 없는거지. 그런면에서 의미가 있는거지. 

 

뒈질때까지 적폐놀이 나 해대면서 일본탓이나 해대면서, 머 처럼 살다가 머로 수천억년 으로 환생해서 살아라.

 

육백년 쌓인 유전자고 피여 저게. 교육이 안돼. 지능 자체가 완벽히 조선 만 향해있는 애들이야. 불가능 한겨. 저런것들을 지폐와 동전으로 모시는겨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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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애들 빼고, 숙신인들은, 용서 하고 화해 해 보도록 해라. 저리 살아보지 못해서, 더 어렵다. 쟤들에겐 흔한 저런 이야기가, 진화안된 이쪽엔 더 어렵다 저게. 조선 오백년이 신 을 죽이고, 생각 을 죽이고 감정을 죽이고 이성을 죽이고. 어찌할 수 없다 우리 여건이. 어쩌냐 말이지 그래도 이 수준임을 자각 해서 출발 하는게. 

 

쟤들은 계속 적폐놀이 하면서 저리 놀다가, 모두 죽임으로 몰아넣고 지들만 쏙 빠진 듯 행복해 할 거다. 심판 안받는 오브젝트 가 제일 비참한거라는데 소크라테스 형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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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RATES: Should we not offer up a prayer first of all to the local deities?

PHAEDRUS: By all means.

SOCRATES: Beloved Pan, and all ye other gods who haunt this place, give me beauty in the inward soul; and may the outward and inward man be at one. May I reckon the wise to be the wealthy, and may I have such a quantity of gold as a temperate man and he only can bear and carry.—Anything more? The prayer, I think, is enough for me.

PHAEDRUS: Ask the same for me, for friends should have all things in common.

SOCRATES: Let us go. 

 

다른 번역(페르세우스 사이트). O beloved Pan and all ye other gods of this place, grant to me that I be made beautiful in my soul within, and that all external possessions be in harmony with my inner man. 

 

파이드로스 의 마지막. 기도 란 무엇인가. 알키비아데스 2 에서 알키비아데스 가 기도하러 가는 길 에 소크라테스 를 만나거든. 소크라테스 가 묻는겨, 대체 멀 기도한다는거니? 기도 하고 제물 바치면 신 이 들어준다든? 기도 의 내용이 대체 머니? 기도 한다는게 얼마나 위험한지 너는 아니? 

 

그러면서 파이드로스 에서 제대로 된 기도 내용을 말하는겨.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기도문 이야 저게. 파이드로스 는 정말 가장 아름다운 글 모음이야. 

 

저기 연극대본 인듯 한 양식은, 번역하면서 일부러 만든겨 연극 스타일로. 원문은 저렇지 않아. 

 

우리 기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 로컬의 신들에게?

무조껀 해야지

사랑스러운 판신이여, 그리고 모든 다른 신들이여 이 장소 를 기웃대는, 우리에게 뷰티를 주세요 내적인 영혼 안에. 모든 외적인 가짐들과 나의 내적인 영혼이 조화롭게 해주세요(나의 안과 밖이 하나가 되게 해주세요). 진리를찾는사람이 부자rich 라고 내가 여기게끔 해주세요. 절제용기의 사람이 지니고 다닐 수 있는 만큼의 황금의크기 만을 내가 갖게 해주세요. 무소유는 개나 줘버리구요 나도 먹고는 살아야하닝께. 더이상 기도할거 있어? 내 생각엔 이걸로 충분해 나에겐.

 

나도 같아 기도내용은. 왜냐면 친구들이란 모든걸 공유하니까

 

가자, 나보다 무지하게 어린 아들뻘 내 친구 파이드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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