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o Polo (/ˈmɑːrkoʊ ˈpoʊloʊ/ Venetian: [ˈmaɾko ˈpolo]; Italian: [ˈmarko ˈpɔːlo]; September 15, 1254 – January 8, 1324)[1] was a Venetian merchant,[2][3] explorer, and writer who travelled through Asia along the Silk Road between 1271 and 1295. His travels are recorded in The Travels of Marco Polo (also known as Book of the Marvels of the World and Il Milione, c. 1300), a book that described to Europeans the then mysterious culture and inner workings of the Eastern world, including the wealth and great size of the Mongol Empire and China in the Yuan Dynasty, giving their first comprehensive look into China, Persia, India, Japan and other Asian cities and countries
마르코 폴로, 가 서기 1254-1324. 70세 에 죽는데, 원제목이, Livres des Merveilles du Monde 세상의놀람움들 의 책. 이야. 이건 프랑스 어여.
마르코폴로 의 여행이 1271-95. 요걸 일단 외워. 24년 이야. 나이 17세 에서 41세 여.
Rustichello da Pisa, also known as Rusticiano (fl. late 13th century), was an Italian romance writer in Franco-Italian language. He is best known for co-writing Marco Polo's autobiography, The Travels of Marco Polo, while they were in prison together in Genoa. Earlier, he wrote the Roman de Roi Artus (Romance of King Arthur), also known as the Compilation, the earliest known Arthurian romance by an Italian author.
작가 가, 루스티켈로 다 피사(피자) 피사 의 루스티켈로 야. 이사람은 원래 작가 였어. 프랑코-이탈리안 언어. 이탈리안 이 프랑스 화 된겨 여긴. 이미 먼저 썼던게 불어 로 아서왕의 로망스.야. 이 책이 에드워드1세 가 갖고있던걸, 이 에드워드1세 가 킹 되기 전에 성루이 따라서 8차십자군 을 따라 가고 이어 9차 십자군을 자기이름으로 가거든. 이때 흘리고 간걸 루스티켈로 가 구해서 편집한거로 봐.
Rustichello may have been captured by the Genoese at the Battle of Meloria in 1284, amid a conflict between the Republic of Genoa and the Republic of Pisa. When Polo was imprisoned around 1298, possibly after a clash between Genoa and Venice (according to tradition the Battle of Curzola[3]), he told his tales of travel to Rustichello. Together they created the book known as The Travels of Marco Polo.[1]
루스티켈로 가, 그리고는 서기 1284년 의 멜로리아 전투 때에 제노바 에 의해 포로가 된겨. 피사 가 이때 제노바 에 패하고 쇠해서 나중 피렌체 에 들어가는겨. 마르코 폴로 가 서기 1298년 에 역시나 포로가 되서 제노바 에 수감이 돼. 즉 루스티켈로 가 14년 을 이미 수감중인거고, 이때 만난거야 마르코폴로 를. 이때 마르코 폴로 는 17세 에서 41세, 1271-95 년 마치고, 온 지 3년 만에, 나이 44세 에 잡혀온겨. 루스티켈로 의 생몰은 몰라.
1271-95. 아주 중요해 저 숫자. 외워 뒤 이야기 보려면.
First War (1256–1270)
Second War (1294–1299)
Third War (1350–1355)
Fourth War (1377–1381)
베네치아 와 제노바 전쟁이, 서기 1256-1381 까지 4차 에 걸쳐 해. 십자군 성루이가 7차 에 포로가 되고 맘룩에게. 이걸로 완전히 분위기 끝난거고, 아코함락 이 1291년 이야. 완벽하게 끝난겨 십자군 국가는. 마르코폴로 가 출발하는 1271년 직전해가 1270년 성루이 8차 십자군이고 튀니지 가서 죽은겨. 바로 다음 해 에 9차 로 굳이 나눠서, 8차 따라 갔던 에드워드1세 가 레반트 갔다가, 실패하고, 아빠 헨리3세 가 죽어서 바로 킹에 오르는겨.
성루이가 7차 실패한게 가장 커. 이때 레반트 지역이 분위기가 싱숭해지면서, 바로 베네치아-제노바 가 저기 아코 의 상권을 두고 다투는겨. 레반트 지역들도 파가 갈리고. 제노바 가 들이 대는겨 베네치아 한테.
The Latin Empire, also referred to as the Latin Empire of Constantinople, was a feudal Crusader state founded by the leaders of the Fourth Crusade on lands captured from the Byzantine Empire. The Latin Empire was intended to replace the Byzantine Empire as the Western-recognized Roman Empire in the east, with a Catholic emperor enthroned in place of the Eastern Orthodox Roman emperors. 1204–1261
4차 십자군 때 베네치아 가 십자군 무리를 이끌고 비잔틴 의 콘스탄티노플 을 점령을 한겨. 비잔틴 땅을 나눠먹고, 베네치아 는 해변과 섬들을 독차지하고, 완벽히 지중해 상권을 쥔겨 이게. 라틴 제국 이란 이름으로 이게 서기 1204-61 . 57년 간이야. 베네치아 의 시대 가 개막이 된겨. 십자군 을 실어나르면서 베네치아 가 바다 를 지배하게 되는겨 이게. 그러다가 성루이 7차 가 패하면서 이 틈을 쳐들어오는게 제노바 야. 이걸 성루이 가 중재 해서 마무리 하고 바로 8차 로 튀니지 땅에 갔다가 병으로 죽은겨 성루이는.
자, 마르코 폴로 가 1271-95 의 여행이야. 이때가 세상이 판이 바뀌는 시대야. 유럽도 중국도.
1250년 이 머랬냐, 호헨슈타우펜 의 프리드리히 2세 가 죽는 해고, 하이미디벌 과 레이트미디벌 을 가르는 시대여. 아코함락 1291. 중요해 이 숫자가. 저때 이탈리아 가 내분에 휩싸이고, 겔피 기벨리니 의 절정이야. 호헨슈타우펜 의 만프레드 와 콘라드 고, 교황이 프랑스 의 샤를 앙주 를 불러들이는겨. 샤를 앙주 는 성루이 의 막내 동생이야. 샤를 앙주 가 호헨슈타우펜 을 잡고, 시칠리아 킹 의 이름으로 이탈리아 남부를 다 먹고, 바로 시칠리아의 만종 으로 바르셀로나 에 쫓겨나서 나폴리의 킹 이름으로만 남는겨. 그리고 터키땅으로 쫓겨난 비잔틴 의 팔라이올로고스 조 가 1261년 에 콘스탄티노플 로 들어오는거고. 이 팔라이올로고스 의 등장 은, 이들의 웬수 는 베네치아 여. 파트너 를 제노바 로 갈아타면서 제노바 가 베네치아 의 맞수 로 등장하는겨. 이게 2차 베네치아-제노바 전쟁 1294-99 여. 마르코폴로 가 1295에 돌아와서 이 전쟁에 휩싸이면서 바로 3년 만에 포로로 수감 이 된겨 이게.
Pope Gregory X (Latin: Gregorius X; c. 1210 – 10 January 1276), born Teobaldo Visconti, was Bishop of Rome and hence head of the Catholic Church and ruler of the Papal States from 1 September 1271 to his death and was a member of the Secular Franciscan Order. He was elected at the conclusion of a papal election that ran from 1268 to 1271, the longest papal election in the history of the Catholic Church.
마르코폴로 가 1271년 17세 에 여행을 시작할때 교황이 그레고리우스 10세 여. 이전 교황이 클레멘스4세 고, 이 클레멘스 4세 가 스폰한게 토마스 아퀴나스 에 로저 베이콘 이야. 이사람이 샤를의 앙주 를 부른거고, 호헨슈타우펜 의 만프레드 와 콘라드 가 죽으면서 이탈리아 에 프랑스 시대가 오는겨. 그러면서 이 앙주의 나폴리 킹덤 이 아라곤으로 넘어가면서 이탈리아 전쟁 65년 으로 중세 가 끝나고 근대 가 시작하는겨.
그래서, 앙주 샤를이 다 시칠리아 킹 으로 남부를 지배할때, 이 남부 섬과 해변을 또한 침략하는게 또한 북아프리카 무슬림들 이거든. 이 무슬림 들의 해적질 때문에 서기 1100년 에 또한 프랑스 의 노르망디 들이 와서 지배하고 이게 결혼으로 호헨슈타우펜에 넘어간거지만 이걸 프랑스 가 다시 갖고 와서, 저 해적질 본거지 를 쳐들어가는게 또한 성루이 의 8차 십자군이야 그래서, 자기 막내동생 땅이거든. 이후 에 시칠리아 만종 으로 저게 스페인 바르셀로나 로 넘어간거고.
할때, 클레멘스 4세 가 1268년 11월 에 죽어. 다음 교황이 그레고리우스 10세 여. 이사람은 서기 1271년 9월 부터여. 콘클라베 선거 가 2년 9개월 이 걸렸어. 지금까지도 교황 뽑는데 최장 기록이야. 왜냐면 이때부터 샤를 앙주 의 프랑스 쪽이 교황선거 에 개입을 하는겨. 이탈리아 는 지들이 프랑스 를 부른겨 두번 이나. 오직 저 무슬림 해적질 때문에. 두번째 다시 차지 하곤, 교황 을 자기 편으로 확고히 만들려는 겨 프랑스가. 왜냐면 십자군 때문에 듣보잡 교황 애들이 권력을 쥔거고, 저 로마 교황이란건 십자군 아래 만들어진겨 저게. 십자군 이란건 주인공은 프랑스여. 교황 선거에 적극 개입하는겨 이 프랑스 가. 성루이 가 바로 죽고, 여기 있던 에드워드1세 가 아직 아빠 헨리3세 살아있을때 9차 레반트 십자군 을 갔는데 이때 그레고리우스 10세 가 따라갔걸랑. 레반트 에서 자기 교황 선출된걸 들은겨 이사람이.
저때가 1271년 이야.
이때가, 마르코폴로 가 출발하는 해 인데. 마르코폴로 는 아빠 랑 삼촌 따라 가는거고, 이미 아빠 와 삼촌 은 쿠빌라이칸 을 만나고 온거야. 쿠빌라이칸 이 저 둘을 보내면서 교황에게 편지를 써주면서 당신들 사제들을 데려와서 제대로 된 그리스도 를 자기들 에 심어달라는 거거든.
Marco learned the mercantile trade from his father and his uncle, Niccolò and Maffeo, who travelled through Asia and met Kublai Khan. In 1269, they returned to Venice to meet Marco for the first time. The three of them embarked on an epic journey to Asia, exploring many places along the Silk Road until they reached Cathay (China).
아빠가 니콜로 에 삼촌이 마페오 여. 이 두사람이 처음 출발한게 서기 1261년 이야. 콘스탄티노플 에서 출발한겨. 가다가 가다가 쿠빌라이칸 까지 만나게 된건데. 1261년 이 팔라이올로고스 조 가 콘스탄티노플 을 다시 점령할때야. 이 직전까지 있다가 떠난겨 이 둘이. 그리고 돌아온겨 8년 만에. 서기 1269년 에. 이때 마르코 폴로 가 1254년생 이니까, 15세 여.
니콜로 와 마페오 는 교황을 만나야 해. 쿠빌라이칸 의 편지 를 전해줘야 하고, 예루살렘 의 그리스도 묘 의 성수 를 갖고 가기로 했걸랑. 아 그런데 마침 교황 클레멘스4세 가 죽고, 새교황이 선출이 안되는겨. 교황이 없어. 교황 뽑힐 때 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는겨 이 두 사람이. 2년 을 기다린겨.
As soon as he was elected in 1271, Pope Gregory X received a letter from the Mongol Great Khan Kublai, remitted by Niccolò and Matteo Polo following their travels to his court in Mongolia. Kublai was asking for the dispatch of a hundred missionaries, and some oil from the lamp of the Holy Sepulcher. The new Pope could spare only two friars and some lamp oil. The friars turned back soon after the party left for Mongolia. The two Polos (this time accompanied by the young Marco Polo, who was then 17 years old) returned to the Mongol Empire and remitted the oil from the Pope to Kublai in 1275
그러다가 이제서야 새교황 이 뽑힌거야. 그레고리우스 10세 가. 니콜로 와 마페오(마테오) 가 준 편지에는, 쿠빌라이 가 100명의 사제들에 지저스 묘지의 램프 의 성수 를 달라고 했걸랑. 백명은 말이 안되고 두 명의 수도사 를 보낸거야 같이. 그런데 두명의 수도사는 가다가 강도 만나고 더이상 무서워서 못가겠대. 그래서 걍 오일 만 갖고 아빠와 삼촌 과 마르코폴로 만 가는겨 저 길을.
Cathay (/kæˈθeɪ/) is an alternative European historical name for China. During the early modern period, Europeans thought of Cathay as a completely separate and distinct culture from China. As knowledge of East Asia increased, Cathay came to be seen as the same polity as China. The term "Cathay" became a poetic name for China.
저기선, 중국 이름은 카타이 야. 영어 캐떼이. 케세이 퍼시픽 으로 지금 남은거고,
The name Cathay originates from the word Khitan[1] (Chinese: 契丹; pinyin: Qìdān), the name of a nomadic people who founded the Liao dynasty which ruled much of today's Northern China from 916 to 1125, and who later migrated west after they were overthrown by the Jurchens to form the Qara Khitai (also known as the Western Liao)
카타이 라는게, 결단 이라는 거란족 중국소리가 치단 이야. 이걸 몽골애들이 키단 비슷하게 한거고 이게 서양애들에게 카타이 로 들린겨. 이건, 칭기스칸 이 금나라 중도 를 점령할 때 만난 야율초재 가, 금나라 의 신하들이 이전 거란족 요나라 애들이거든. 야율초재 가 거란족 이고, 칭기스칸이 아꼈어 야율초재 를. 그래서 앞으로 중국은 야율초재 의 거란족 땅이었어 라며 카타이 가 된겨 이게. 이전 다 썰한겨 저 위에 유럽 중세사들도 모두 이전 썰. 다 까먹었겄지만.
Around 1291, the Polos also offered to accompany the Mongol princess Kököchin to Persia; they arrived around 1293. After leaving the princess, they travelled overland to Constantinople and then to Venice, returning home after 24 years.
마르코폴로 일행 세명이, 서기 1291년 에 쿠빌라이칸 의 명을 받아서, 코코친 공주 를 페르시아 로 모시는겨. 여기 일칸국 의 칸 의 부인으로 오는겨 이 여자가. 2년 만에 도착을 해 서기 1293년 에.
Kublai (/ˈkuːblaɪ/; Mongolian: Хубилай, romanized: Hubilai; Chinese: 忽必烈; pinyin: Hūbìliè; 23 September 1215 - 18 February 1294), also known as the Emperor Shizu of Yuan, was the fifth khagan-emperor[note 1] of the Mongol Empire (Ikh Mongol Uls), reigning from 1260 to 1294 (although after the division of the empire this was a nominal position). He also founded the Yuan dynasty in China as a conquest dynasty in 1271, and ruled as the first Yuan emperor until his death in 1294.
쿠빌라이 가, 1260년 45세에 칸에 오르고, 1294년 에 죽어. 34년 하고 80세에 죽은겨. 아 최고의 인생 겪은거지. 정말 인간 이 겪는 그야말로 천국 을 지낸겨 34년 을 ㅋㅋㅋ. 땅에서 완벽하게 신행세 하면서 그야말로 최고의 헤도네 플레져 를 겪고 뒈지신겨 쿠빌라이는.
세명이 돌아가는 길에, 쿠빌라이 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겨. 2월에 죽어. 이 해에 바로 돌아온겨 베네치아 로.
Kököchin, also Kökejin, Kūkājīn, Cocacin or Cozotine (Mn: Хөхөхчин, Ch: traditional Chinese: 闊闊真; simplified Chinese: 阔阔真), was a 13th-century princess from the Yuan dynasty of Mongol Empire, belonging to the Mongol tribe of the Bayaut (Ch: 巴牙惕). In 1291, she was betrothed to the Ilkhanate khan Arghun by the Mongol Great Khan Kublai, but married his son Ghazan when Arghun died by the time she had arrived in Persia in 1293. The account of the travel of the princess to Persia was given by Marco Polo.
코코친 이란 여자는, 바야드 족이야. 이 바야드 족은 오이라트 족이고, 이 오이라트 는 칭기스칸 이 몽골고원 평정할때 서쪽 부족들이고, 이 부족에 특히나 여자들이 이뻤어. 칸의 남자들이 여기 여자들을 코트로 많이 데려와. 이 오이라트 가 17세기 말에, 쫓겨나는겨 자기 땅에서. 이들이 러시아 북코카서스 로 이동하는거고, 이들이 지금 러시아 의 카스피해 뒷통수 의 칼미키아 공화국 으로 있는겨.
코코친 은 원래, 일칸국 의 아르군 의 부인 으로 갔어, 아르군 의 부인이 죽으면서 재혼 여자를 자기부족여자로 들이라고 하고 이 유언으로 코코친을 보낸겨 쿠빌라이가. 그런데 와보니 아르군 이 죽었어. 법에 따라서 아르군 의 아들 가잔 에게 시집을 간겨. 헤어질때 마르코폴로 일행에 눈물바다였대 마치 아빠 처럼 같이 있어줘서.
Ahmed Tekuder (Mongolian: Tegülder, meaning “perfect”; Persian: تکودر) (c.1246 – 10 August 1284), also known as Sultan Ahmad (reigned 1282–1284), was the sultan of the Persian-based Ilkhanate, son of Hulegu and brother of Abaqa. He was eventually succeeded by his nephew Arghun Khan.
가잔 은 당시 역시 코라산에 수비로 가 있는 상태고, 아빠가 아르군 이었고. 아르군 이전이 아마드 여. 아르군 의 아빠가 아바카 이고 아바카 와 아마드 는 훌라구의 자식들이고. 아바카 가 죽을때 아들 아르군 이 코라산 수비를 하고 있었걸랑. 아바카 의 동생 아마드 가 칸을 쎄빈겨. 아르군 이 삼촌 과 전쟁 을 하고, 졌어. 포로가 되었어. 아마드 가 여색을 밝히걸랑. 포로 로 감금한 채 얜 자기 코트 로 돌아간겨. 아르군 을 감시하는 귀족들이, 이건 아니다 라며 아르군 을 풀어주고 세력을 갖추고 수도 로 쳐들어가고 저 아마드 를 죽이고 아르군 이 칸 으로 오른거고, 저때 아르군 을 풀어준 귀족 이 마르코폴로 와 동행을 하는겨.
아르군 이 죽고, 아들 가잔 은 또 코라산 에 있어. 역시나 동생 이 또 칸 에 올라, 얘가 술자리에서 귀족을 모욕하고 열받은 이 귀족이 죽이고 칸을 하고, 그리고 나서 저 가잔 이 자기병력 데리고 전쟁하고 칸을 해.
나중에 저기에 오스만이 서잖냐. 오스만이 일칸국의 저런 짓을 보고, 얘들이 취한 솔루션 이 형제 살해여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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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판이야 이 스텝 의 인간들은. 이 스텝 의 핏줄이, 조선 이고 또한.
Now these provinces that had been under the Lordship of Nayan were four in
number; to wit, the first called CHORCHA; the second CAULY; the third
BARSCOL; the fourth SIKINTINJU. Of all these four great provinces had
Nayan been Lord; it was a very great dominion
카울리, CAULY. 라고 유일하게 한번 나오는 단어. 고려 여. 나얀 이 반란하는곳이 만추리아 라는 만주 고. 네개 부족이 연합하는데, 초르차 가 여진 일거고, 바르스콜 이 말갈 일거고 시킨틴주 가 거란족일겨 아마.
나얀 이 칭기스칸 의 형제 의 후손이고, 이들이 만주 땅을 받걸랑. 불만 품어서 반란 하는겨.
저게 유일하게 쿠빌라이 가 친정해서 참전한 전투여
In that time he had assembled good 360,000 horsemen, and 100,000 footmen,—but a small force indeed for him, and consisting only of those that were in the vicinity.
이때 쿠빌라이 가 소집한 부대가 36만의 기병에 10만의 보명. 아 이것도 적다는겨 근처에서만 몰래 소집해서 기습 할라고. 얘들은 저때도 전쟁 단위가 기본 삼사십만 명 간의 싸움이야. 차원이 달라 이 전쟁 규모가. 문명 과 야만의.
저때 나얀 의 연합 세력이 카이두 인데, 카이두 가 저때 말로만 동맹 이랍시고, 저길 못간겨 멀어서.
칭기스칸 의 네 아들이 , 조치 차가타이 오구데이 툴루이 .
칭기스칸 이 1227년에 죽어. 칭기스칸 이 탕구트족 다시 치러 갈때 툴루이 를 대리로 앉히고 갔다가 죽은겨. 툴루이 가 대행하고 있다가, 선거 를 해서 2대로 오구데이 가 된겨. 조치 는 친아들이냐 아니냐 로 논쟁이 된거고, 툴루이 가 오구데이 를 밀어. 그리고 오구데이 가 병이 드는데 무당이 가족이 희생하면 낳는다는거에 툴루이 가 기꺼이 독약을 마셔 죽고 오구데이 가 병에서 나아. 통설은 툴루이 가 술독으로 죽은거로 보여.
오구데이 가 칸에 오르고. 오구데이 다음이 아들 구유크 고, 다음 선거 쿠릴타이 에서 툴루이 자식들이 다시 권력을 잡는겨. 이 툴루이 자식들이 몽케 쿠빌라이 홀라구 여. 쟁쟁한겨 이게. 훌라구 는 일칸국 만들고, 쿠빌라이 는 몽케 형 이어 칸 을 하고 원나라를 시작하고. 막내 동생이 아리크 보케.여. 얜 아무 땅이 없어서 반란해대다가 지고.
Kaidu (Mongolian: ᠬᠠᠢᠳᠤ Qaidu, Cyrillic: Хайду; Chinese: 海都; pinyin: Hǎidū) (c. 1230[1] – 1301) was the grandson of Mongol Khagan Ogedei Khan (1185–1241) and thus leader of the House of Ögedei and the de facto khan of the Chagatai Khanate,
쿠빌라이 에 가장 오래고 질긴 상대가 카이두.여. 오구데이 의 손자 야. 이 카이두 가 당시 차가타이 를 지배한겨. 이 차가타이 가 실속이 없어 핏줄이 변변찮아. 카이두 의 차가타이 가 바로 왼쪽아래 의 훌라구 자식들 일칸국 과 부닥치는겨. 이 접경이 코라산 이고, 이때 , 코코친 이 시집가는 아르군 이라는 훌라구칸 아바카의 자식 이 코라산 수비하러 갔다가 삼촌 에게 권력을 뺏기고 포로되었다가 이기고 다시 이 자식 인 가잔 도 코라산 에 간겨 차가타이 막으러.
할때 이 카이두 가 차가타이 땅에서 쿠빌라이 를 괴롭히는거고, 만주 쪽 나얀 과 손잡았지만 나얀 혼자 일어서서 당한거고.
그래서, 카이두 가 이 천산산맥 쪽을 지배해서 전쟁하면서, 코코친 데리러 가는 사신도 이길로 못가고 빠꾸해서 바닷길로 가는겨 쿠빌라이 만나러.
Ahmad Fanākatī or Banākatī (Persian: احمد فناکتی / احمد بناکتی; simplified Chinese: 阿合马; traditional Chinese: 阿合馬; pinyin: Ā hémǎ; before 1242 — 10 April 1282) was a Persian[1] Muslim from the Qara Khitai (Western Liao dynasty) who served as finance minister of the Yuan dynasty during Kublai's reign. He became known as a chief minister under Kublai and is credited with successfully establishing the financial system of the Yuan Empire. He was considered to be a "villainous minister" in dynastic histories because of his perceived corruption
마르코폴로 가 소개하는 사건이, 아마드 파나카티 살인사건 인데, 서요 지역의 페르시안 무슬림 인데, 쿠빌라이 의 원조 에서 재무부인 상서성 에서 돈줄을 쥔겨. 서요 의 시르강 지역 태생이고 여기가 칭기스칸때 들어오고, 쿠발라이 마누라 빽으로 돈줄 을 쥐고, 서기 1276년 에 남송이 들어와서 여기도 돈줄을 쥐어. 마르코폴로 에 의하면 자식들이 25명이고, 하튼 20년 간 실세여.
Khanbaliq or Dadu (Chinese: 元大都) was the winter capital[1] of the Yuan dynasty founded by Kublai Khan in what is now Beijing, also the capital of China today. It was located at the center of modern Beijing. It is traditionally written as Cambaluc in English
영어판에 캄발루크 로 나오는게, 다두, 라는 원나라 수도 고. 쿠빌라이 가 겨울 에만 머무는 곳이고, 지금 북경 이야. 금나라때 중도 였다가 이건 파괴가 되고 강건너 에 새로 지은 신도시여. 쿠빌라이 가 빈 사이에, 파나타크 에 불만품은 사람들이 쟤를 암살 하는겨. 아주 악마 그 자체 의 캐릭이야. 모든 여자를 다 취하고 돈 갈취하고. 나중에 얘 집을 뒤지니까 온갖 주술 로 쿠빌라이 를 갖고 놀았다는겨. 즉 쿠빌라이 가 쟤의 최면으로 당했다는 서술이야.
쿠빌라이 가 주위 의 저런 주술적 애들 때문에, 그리스도 를 갖다 달라고 니콜로 형제들을 다시 보냈다 고 서술 해.
저 사건이 1282년 이야. 원사에서 찍힌. 아주 리얼한겨 저게.
마르코 폴로 가 있을 때, 일본 정벌 하러 가는겨. 저 천주 에서 출발하는거걸랑. 배 만들고 출발하는 소식.
You must know that in all this Province of Maabar there is never a Tailor to cut a coat or stitch it, ......... wears also hanging in front of his chest from the neck downwards, a fine silk thread strung with 104 large pearls and rubies of great price. The reason why he wears this cord with the 104 great pearls and rubies, is (according to what they tell) that every day, morning and evening, he has to say 104 prayers to his idols. Such is their religion and their custom. And thus did all the Kings his ancestors before him, and they bequeathed the string of pearls to him that he should do the like. [The prayer that they say daily consists of these words, Pacauta! Pacauta! Pacauta! And this they repeat 104 times.[NOTE 3]]
마바르 지역 을 가는데, 여기 킹 이, 허리에 줄만 두르고, 이 줄은 104개의 진주와 루비 로 되어있는데, 104번 의 기도를 해 자기 우상에게. 파카우타 파카우타 파카우타. 이걸 104번 해.
Bhagavān (Sanskrit: भगवान्, Bhagavān) or Bhagwan (translated as "Lord") is an epithet for a deity, particularly for Shiva in Shaivism and for the deities of Rama, Krishna and other avatars of Vishnu in the Vaishnavite tradition of Hinduism.[1][2]
바가반. 에 대한 에피텟 다른 이름이야.
Some Buddhist texts, such as the Pali suttas, use the word Bhagavā for Buddha, meaning "the fortunate one".[32] The term Bhagavā has been used in Pali Anussati[citation needed] or recollections[clarification needed] as one of the terms that describes the "Tathāgata" as one full of good qualities, as arahant, sammā-sambuddho and sugato (Dīgha Nikāya II.93).[33]
불경 텍스트 에서 바가바 가 붓다 로 쓰인다. 행운의 원.
저들은 104번 하는거고, 불교 와서 108번 하는거지. 머 별뜻 이깐.
마르코폴로 이야기 에서 자주 나오는게 지폐 여. 아 이거 묘하더만. 송나라 때 피아트 머니 의 지폐가 있었는데, 이걸 당시 원나라 도 피아트머니 의 지폐를 쓴겨 이게 .
The Mongol administration had issued paper currencies from 1227 on.[64][65] In August 1260, Kublai created the first unified paper currency called Jiaochao; bills were circulated throughout the Yuan domain with no expiration date. To guard against devaluation, the currency was convertible with silver and gold, and the government accepted tax payments in paper currency. In 1273, Kublai issued a new series of state sponsored bills to finance his conquest of the Song, although eventually a lack of fiscal discipline and inflation turned this move into an economic disaster. It was required to pay only in the form of paper money. To ensure its use, Kublai's government confiscated gold and silver from private citizens and foreign merchants, but traders received government-issued notes in exchange. Kublai Khan is considered to be the first fiat money maker. The paper bills made collecting taxes and administering the empire much easier and reduced the cost of transporting coins.[66] In 1287, Kublai's minister Sangha created a new currency, Zhiyuan Chao, to deal with a budget shortfall.[67] It was non-convertible and denominated in copper cash. Later Gaykhatu of the Ilkhanate attempted to adopt the system in Iran and the Middle East, which was a complete failure, and shortly afterwards he was assassinated
서기 1227년 부터 지폐유통을 했다. 송나라 때 일부에서 하던걸 얘들도 계속 한겨 이걸. 쿠빌라이 가 오르고 1260년 에 통일된 지폐 를 방행 해. 이건 원 나라 에서만 유통이 된거고 너머서는 안 쓰인거고.
저건 나중 유럽애들 암스테르담 은행처럼 금은 에 일치된 지폐 를 주는 그런 금은본위제 가 아녀. 금 은 을 유통 금지해. 오직 자기들 종이지폐 만 써야 해. 금은 은 갖고 와야 해 그럼 지폐 로 교환해주던가. 걍 아무런 경제 관념이 없는겨 저게. 물론 이런 경제관념 이 20세기 에야 나온겨 나치 독일애들의 지폐 남발의 위험을 나중에야 절감한겨. 저런 위험을 미리 암스테르담 등은 안거고, 스미스도 정확히 금은본위제 의 화폐여야 하고 이거 안지키면 스콧 은행들 처럼 망한겨.
금은본위제 를 안지키는 피아트 머니 는 끽해야 백년도 안된겨 이게. 그런 세상이 되게끔 성장한겨 세상이.
저걸 쟤들은 저때 막 찍어내는겨 대도 에서. 골때리. 금은을 몰수 했어 외국 상인들 한테서도. 이걸로 세금 도 내는겨. 불리온 화폐 자체가 제조비에 운송비 가 높걸랑. 참 시대가 엄청 빠른거지.
저걸 그대로, 주원장 이가 배운겨. 그리고 명나라 가 완벽하게 망한겨 저게. 피아트 머니 라는건 그 나라의 힘 정체성의 힘 이거든. 원나라 는 저게 유지가 된겨 피아트 배후 의 힘이. 그러나 명 은 그게 안된거야 시작하고 바로.
桑哥(藏语:སེང་གེ་,威利:Seng ge,藏语中意思是“狮子”,13世纪?-1291年),又譯作桑葛,藏族人,元朝宰相。
상가, 쌍거, 장족 티벳인. 원조 재상.
桑哥 Sangha was a Tibetan.[68] A rich merchant from the Madurai Sultanate, Abu Ali (in Chinese, 孛哈里 Bèihālǐ or 布哈爾 Bùhār), was associated closely with its royal family. After falling out with them, he moved to Yuan China and received a Korean woman as his wife and a job from the Mongol Emperor, the woman was formerly Sangha's wife and her father held the title of 채송년 Chaesongnyeon during the reign of Chungnyeol of Goryeo according to the Dongguk Tonggam, Goryeosa and Liu Mengyan's Zhōng'ānjí (中俺集)
티벳말 동물 사자 를 소리발음 상거 한건데 부자 였대. 저 파카우타 파카우타 하는 마바르 지역이 술탄 일때 의 상인이고, 원나라 로 와서 고려 여자를 받아서 부인 으로 맞고, 고려 채송년 이라는 무신 의 딸이야. 상가 는 역시나 재무직에서 돈 만지다가, 민들 괴롭혀서 인지 탄핵당해서 죽어.
아 이거 마무리 이따 밤에 하자
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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