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SOCRATES (469-399 B.C.)[18] Socrates was the son of Sophroniscus, a sculptor, and of Phaenarete, a midwife, as we read in the Theaetetus of Plato; he was a citizen of Athens and belonged to the deme Alopece. It was thought that he helped Euripides to make his plays; hence Mnesimachus1 writes:
This new play of Euripides is The Phrygians; and Socrates provides the wood for frying.2
And again he calls Euripides "an engine riveted by Socrates." And Callias in The Captives3:
a. Pray why so solemn, why this lofty air?
b. I've every right; I'm helped by Socrates.
Aristophanes4 in The Clouds:
'Tis he composes for Euripides
Those clever plays, much sound and little sense.
라에르티오스.의 소크라테스 편이야. 에우리피데스 의 연극에 많이 참여한겨. 므네시마코스 가 쓴다. 이번 에우리피데스 의 새 연극은 프뤼기안들 이다. 소크라테스 가 연극의 땔감을 제공한다. 에우리피데스 는, 소크라테스가 리벳한, 튼튼히 조인 엔진 이다. 캡티브 포로 에서 칼리아스 는, 기도가 왜이리 엄숙하냐, 고귀한 공기냐? 나는 항상 옳아, 나는 소크라테스 에서 도움받지. 아리스토파네스 라는 소크라테스 혐오자 는 구름들 에서, 그것은 소크라테스가 에우리피데스 를 위해 만든거지, 그것들 분명한 연극들은, 아주 시끄러운데, 느낄건 없어.
[19] According to some authors he was a pupil of Anaxagoras, and also of Damon, as Alexander states in his Successions of Philosophers. When Anaxagoras was condemned, he became a pupil of Archelaus the physicist; Aristoxenus asserts that Archelaus was very fond of him. Duris makes him out to have been a slave and to have been employed on stonework, and the draped figures of the Graces on the Acropolis have by some been attributed to him. Hence the passage in Timon's Silli5:
From these diverged the sculptor, a prater about laws, the enchanter of Greece, inventor of subtle arguments, the sneerer who mocked at fine speeches, half-Attic in his mock humility.
몇 작가들에 의하면, 그는 아낙사고라스 의 학생이었고, 다몬의 학생이고, 알렉산더 가 철학자들의족보들 에서도 쓴다. 아낙사고라스 가 망명갔을때 그는 아르켈라오스 자연과학자 의 제자가 되었다. 아리스토크세노스 는 주장한다 아르켈라오스가 그를 매우 좋아했다고. 두리스 는 그 소크라테스가 노예였었고 석공일에 고용되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아크로폴리스 의 신상들의 옷자락 석상들 몇몇은 소크라테스 가 지었다고. 티몬의 실리 에서는:
이런 의견들로부터보면, 그는 조각가, 법들에 대한 프레이터 중얼대던사람, 그리스를 찬양한 자, 미묘한 논법을 만든자, 좋은 연설을 흉내냈던 냉소자, 그의 초라한외모안에 아티케 캐릭이 반은 있는 자.
He was formidable in public speaking, according to Idomeneus; [20] moreover, as Xenophon tells us, the Thirty forbade him to teach the art of words. And Aristophanes attacks him in his plays for making the worse appear the better reason. For Favorinus in his Miscellaneous History says Socrates and his pupil Aeschines were the first to teach rhetoric; and this is confirmed by Idomeneus in his work on the Socratic circle.6 Again, he was the first who discoursed on the conduct of life, and the first philosopher who was tried and put to death. Aristoxenus, the son of Spintharus, says of him that he made money; he would at all events invest sums, collect the interest accruing, and then, when this was expended, put out the principal again. Demetrius of Byzantium relates that Crito removed him from his workshop and educated him, being struck by his beauty of soul;
그는 대중 연설에 강렬했다, 이도메네우스 에 따르면, 더하여, 크세노폰이 우리에게 말하듯이, 30인 참주들이 그를 금지했다 말하는기법가르치는것을. 아리스토파네스 는 그를 그의 연극에서 공격한다, 더 초라한 외모가 더 좋은 논리 를 만들어준다고. 파보리누스는 그의 잡다한 역사 에서 말한다, 소크라테스 와 그의 학생 아이스키네스 는 레토릭 연설을 처음 가르쳤다고, 이것은 이도메네우스 가 확인해준다 그의 책에서 소크라테스 그룹에 대한.
소크라테스는 삶의 행위들에 대해 논한 첫번째 인간이고, 재판받아서 죽은 첫번째 철학자다.
아리스토크세노스, 스피따로스 의 아들 은 그에대해 말한다, 그는 돈을 벌었는데, 갖은 돈을 모두 모아서 투자를 하고, 그 이자를 걷었다 그리고나서 이 이자를 다 쓰면, 다시 원금을 투자했다. 비잔티움의 데메트리우스 는 말하길, 크리톤 이 소크라테스 를 직장에서 나오게 해주고 가르쳤다고, 소크라테스 의 영혼의뷰티 에 충격을 먹어서.
소크라테스 가, 최초여, 삶의행위 를 논한자로. 또한 최초여, 재판받아서 죽은 철학자 로는.
소크라테스 에서, 인간의 에띡스 가 본격적 시작이 되는겨 이게. 이전에도 에띡스가 있어. 일곱현인들 의 말들이 탈레스 빼고는 대부분 에띡스여 델포이 신전 기둥들 에 써진 글들이. 그런데 저걸 로직스 로 디비 파댄건 소크라테스가 시작이야. 이걸 받은 플라톤이 웨스턴의 에띡스 의 시작 이라고 하는겨
소크라테스 가 모든 인류 에서 최고 의 인간 일 수 밖에 없어.
지저스 가 필라투스 에 의해 재판받을 때는, 필라투스 에게 관심사는, 지저스 가 킹덤의 킹 이라고 했냐 안했냐, 단지 이거여. 이건 정치적인 이슈고 세속적인 이슈여. 필라투스 는 지저스 를 정치범 으로 다룬것이고, 정치범이 아니라고 판단이 되서 풀어주란걸, 유대인들이 그럴 수 없다며 발광을 해서 어찌할수 없이 죽은겨. 필라투스 는 지저스 의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어. 인민재판에 의해 죽었을 뿐이야. 그래서, 이후 2천년 그리스도 세상이 된거야.
소크라테스 는 달라 또한. 지저스 는 세속법에선 무죄여 저건, 그러나 유대인 애들에겐 사상범이고 유대인들의 교회법 으로 죽은겨 지저스 는.
소크라테스 는 세속법으로, 데모크라시 의 인민재판 으로 데마고그애들에 휘둘린 아테나이 시민들에 의해서 공개적으로 정식으로 죽은겨. 정치외 사상범으로 죽은, 최초 이고 최후의 인간이야. 철학자 여 이사람은 정치인 이 아냐. 자기가 데마고그 짓 하면서 시민들 선동해서 권력을 잡으려는 인간이 전혀 아니야. 단지 철학자 야 철학자.
지저스 는 유대인들이 교회법으로 죽인거고, 소크라테스 는 세속법 으로 정확하게 죽은겨. 생각이 다르다며.
중세 마녀사냥은 교회법 으로 죽이는겨. 교회와 세속이 일치했다고 세속법으로 죽였다고 볼 수 없어.
세속에서 말이야, 생각이 다르다고, 세속법으로 죽은 경우는, 소크라테스 가 유일한겨 이게.
그렇다니까? ㅋㅋㅋㅋ.
현대에서, 정치범이 사상범으로 재판받는건, 이건 정치적인 이유여. 자기나라의 정치체제 와 반 하는 애들을 재판하는거야. 정치사상범 이야 굳이 풀면.
소크라테스 는 저것도 아녀. 소크라테스가 적을이롭게하는, 아테나이의정치체제를 반대하는 정치사상범 으로 죽은게 아니라니까?
소크라테스 의 죽음의 장면은, 정말 이상한거야 저건.
[21] that he discussed moral questions in the workshops and the market-place, being convinced that the study of nature is no concern of ours; and that he claimed that his inquiries embraced
Whatso'er is good or evil in an house Hom. Od. iv. 392.;
that frequently, owing to his vehemence in argument, men set upon him with their fists or tore his hair out; and that for the most part he was despised and laughed at, yet bore all this ill-usage patiently. So much so that, when he had been kicked, and some one expressed surprise at his taking it so quietly, Socrates rejoined, "Should I have taken the law of a donkey, supposing that he had kicked me?" Thus far Demetrius.
소크라테스 는 직장들과 시장에서 모랄의 질문들을 토론했다, 네이쳐, 자연과학에 대한 공부는 인간의 학문대상이 아님을 확신한 상태에서, 그리고 그는 주장했다 그의 탐구들은 품는다고,
무엇이 진짜 언제나 선 이냐 악이냐, 한 집안에서, 호메로스 의 오뒷세이아 4. 392
종종, 논쟁에서 그의 열정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를 주먹으로 치거나 그의 헤어를 뜯었다. 대부분의 경우 그는 경멸당했고 비웃음 당했다, 그러나 이 사악한 짓들을 그는 참았다. 이런 짓들이 많았는데, 그가 폭행당했을 때, 누군가 놀라와 했다 소크라테스가 그런걸 아주 조용하게 넘기는걸 보고, 소크라테스 가 말하길, "내가 당나귀 법을 따라야 했었나? 당나귀 가 나를 쳤다고 내가 당나귀를 때려야 하는가?" 이런건 데메트리우스 도 전한다.
아 소크라테스 정말 눙물나는 인간이야 이 사람은.
[22] Unlike most philosophers, he had no need to travel, except when required to go on an expedition. The rest of his life he stayed at home and engaged all the more keenly in argument with anyone who would converse with him, his aim being not to alter his opinion but to get at the truth. They relate that Euripides gave him the treatise of Heraclitus and asked his opinion upon it, and that his reply was, "The part I understand is excellent, and so too is, I dare say, the part I do not understand; but it needs a Delian diver to get to the bottom of it.
대부분 철학자들과 다르게, 소크라테스는 여행의 욕구를 안갖았다, 전쟁으로 떠나야 할 때를 제외하곤. 그의 삶의 나머지는 집에서 머물러서 모든걸 누구던가간에 대화의 논쟁에 치밀이 참여하는것에 매진했다, 그의 목적은 자기 의견을 수정하는게 아니라, 진짜 진리 에 닿는 거였다. 에우리피데스 가 소크라테스 에게 헤라클리토스 의 논문을 주었다, 그의 의견을 물었다, 소크라테스의 대답은 이랬다 "내가 이해한 파트 는 훌륭해, 내가 이해하지 못한 파트 도 또한 훌륭해, 그러나 그 이해못한 부분은, 델로스 섬의 다이버가 그 이해못함의 바닥으로 잠수해서 닿아야 얻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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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리피데스 가 십여년 연상이고, 소크라테스 가 불레 의 의원 일때 아르기누사이 해전의 생존자 미구출 사건 재판 하는 해에, 에우리피데스 는 죽어. 소포클레스 도 바로 이어 죽고.
He took care to exercise his body and kept in good condition. At all events he served on the expedition to Amphipolis; and when in the battle of Delium Xenophon had fallen from his horse, he stepped in and saved his life.
소크라테스 는 그의 몸을 단련하는데 신경썼고 좋은 상태를 유지했다. 모든 사건들에서, 그는 의무를 다 했다 암피폴리스 원정 등, 델리온 전투에서 크세노폰 이 말에서 떨어졌을때 소크라테스 가 뛰어들어가 그의 생명을 구했다.
[23] For in the general flight of the Athenians he personally retired at his ease, quietly turning round from time to time and ready to defend himself in case he were attacked. Again, he served at Potidaea, whither he had gone by sea, as land communications were interrupted by the war8; and while there he is said to have remained a whole night without changing his position, and to have won the prize of valour. But he resigned it to Alcibiades, for whom he cherished the tenderest affection, according to Aristippus in the fourth book of his treatise On the Luxury of the Ancients. Ion of Chios relates that in his youth he visited Samos in the company of Archelaus; and Aristotle that he went to Delphi; he went also to the Isthmus, according to Favorinus in the first book of his Memorabilia.
아테나이인들이 일반적으로 후퇴할 땐, 그는 개인적으로 자기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조심히 시시각각 뒤돌아보고 공격당할때 를 대비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가 포티다이아 전투에 있을때, 바다로 원정해서 도착한 곳인데, 전쟁으로 육지와 소통이 끊겼고, 그는 자기 자리에서 밤을 세워서 지켰고, 용감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걸 아들뻘 알키비아데스 에게 양보했다, 왜냐면 소크라테스 가 알키비아테스에 대해 보드라운 애정이 있었으니, 아리스티포스 가 책에서 전한다. 키오스 의 이온 은, 소크라테스 가 젊을때 사모스를 방문했다고 한다 아르켈라오스 의 무리와. 아리스토틀 은 그가 델포이 로 갔다고 한다. 또한 이스트모스 지협에도 갔다고.
[24] His strength of will and attachment to the democracy are evident from his refusal to yield to Critias and his colleagues when they ordered him to bring the wealthy Leon of Salamis before them for execution, and further from the fact that he alone voted for the acquittal of the ten generals; and again from the facts that when he had the opportunity to escape from the prison he declined to do so, and that he rebuked his friends for weeping over his fate, and addressed to them his most memorable discourses in the prison.
아테나이 데모크라시 민주정에 대한 그의 의지와 애착의 힘은 분명하다, 30인 참주제 시절 크리티아스 와 그 참주들의 요구를 거절한 것을 보면. 그때 그들은 소크라테스에게 살라미스 의 부자 레온 을 처형시켜야 하니 잡아오라고 했다. 소크라테스 는 혼자서 10명의 장수들 의 무죄에 투표했다 유독 혼자. 그는 감옥에서 탈출할 기회가 있음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죽음에 슬퍼하는 친구들을 꾸짖었다, 그리고 그 감옥에서 그의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토론을 그들에게 했다. 이런 사실만 봐도, 그는 아테나이 의 데모크라시 에 철저히 따랐다.
소크라테스 는 , 정치범 이 될 수가 없어. 정치적 사상범 이 될 수가 없다고.
너무나 희귀한 사건이야 소크라테스 가 죽은건. 이건 정말 시안한겨. 그런데 너무나 황당한건, 이런 너무나 이상한 재판과 처형 에 대해, 아무런 탐색 이 안되고 있다는게, 너무 웃긴거야 . 나는. ㅋㅋㅋ.
He was a man of great independence and dignity of character. Pamphila in the seventh book of her Commentaries tells how Alcibiades once offered him a large site on which to build a house; but he replied, "Suppose, then, I wanted shoes and you offered me a whole hide to make a pair with, would it not be ridiculous in me to take it?" [25] Often when he looked at the multitude of wares exposed for sale, he would say to himself, "How many things I can do without!" And he would continually recite the lines:
The purple robe and silver's shine
More fits an actor's need than mine.9
He showed his contempt for Archelaus of Macedon and Scopas of Cranon and Eurylochus of Larissa by refusing to accept their presents or to go to their court. He was so orderly in his way of life that on several occasions when pestilence broke out in Athens he was the only man who escaped infection.
소크라테스는 남에신세짐을벗어나 굉장히 독립적임과 귀한캐릭 의 사람이었다. 팜필라 는 그의 책에서 전한다, 알키비아데스 가 소크라테스에게 한번은 집지어 사시라고 큰 땅을 주겠다며, 소크라테스 가 답했다 "생각해봐, 내가 신발을 원했어, 너가 나에게 산발 만들라며 큰 가죽을 줘, 내가 그걸 받으면 웃기지 않겠어?" 그가 팔 물건들을 보면서 자기에게 말하곤 했다 "얼마나 많은 물건들이, 없이도 살수 있을까"
퍼플 외투 와 은 샤인. 나보다 배우에게 더 필요하지.
그는 누구누구들에게 경멸을 표했다 그래서 그들의 선물을 거절했고 그들의 코트에도 가지 않았다. 그는 삶에서 아주 질서정연했고 아테나이 에서 전염병들이 두세번 돌때도 유일하게 병 안걸린 사람이었다.
라에르티오스 의 글에서 소크라테스 시작부터 저기까지 모두 갖고 온건데, 주욱 가다가, 제대로 된 진짜 소송 내용이 나와.
[40] The affidavit in the case, which is still preserved, says Favorinus, in the Metron, ran as follows: "This indictment and affidavit is sworn by Meletus, the son of Meletus of Pitthos, against Socrates, the son of Sophroniscus of Alopece: Socrates is guilty of refusing to recognize the gods recognized by the state, and of introducing other new divinities. He is also guilty of corrupting the youth. The penalty demanded is death." The philosopher then, after Lysias had written a defence for him, read it through and said: "A fine speech, Lysias; it is not, however, suitable to me." For it was plainly more forensic than philosophical. [41] Lysias said, "If it is a fine speech, how can it fail to suit you?" "Well," he replied, "would not fine raiment and fine shoes be just as unsuitable to me?"
세명의 고발자 중 주도자가 멜레토스 이고, 맹세한 애피데이빗 죄가적힌글 이야.
소크라테스 는 유죄야, 아테나이가 인정한 신들을 인정하길 거절해서. 그리고 전혀 다른 디비니티들 신성들을 들여와서.
그는 또한 젊은이들을 타락시켜서 유죄야. 요구된 형벌 은 죽음 이다. 뤼시아스 가 소크라테스 를 변호해서 글을 썼는데, 소크라테스 가 보더니, "좋은 글이야 뤼시아스, 그러나, 나에겐 적당치 않아" 평이하게 너무 법률적 이고 철학적 이지 못하다는겨. 뤼시아스 가 말해 "그게 좋은 글인데, 왜 당신 마음에 드는데 실패한겨?" "음, 좋은 옷과 좋은 신발이 나에게 안어울리지 않을까?"
소크라테스 는, 외모가, 배불뚝이에 왕방울 눈이고, 키도 작어. 심미아스 가 나보다 크고, 심미아스 는 파이돈 보다 작다 고 하거든, 큼 을 말하면서. 키도 작은겨. 허름하게 다녀 이사람은. 돈도 없어. 그야말로 어설픈 이자놀이로 이자만 받아서 살았을 수도 있어. 깔끔해 보이는 깨끗한 말은 자기에게 안 어울린다는 거지. 소크라테스 의 법정진술 글은, 백미야. 소크라테스가 소리소리 지르는 게 느껴져 저게. 최고의 법정 변호 글이야 저건. 글을 보면 말이지, 소리가 들려, 나는.
글맛을 느껴야 해.
Socrates is guilty of refusing to recognize the gods recognized by the state, and of introducing other new divinities
이게 핵심이야 핵심. 웃긴건, 이걸 말이지, 소크라테스 는, 아니 플라톤은 너무나 어설프게 썼어 기억력이 흐릿한건지, 일부러 그랬는지, 아니면 진짜 소크라테스 가 저걸 쉽게 생각한건지. 오직 저것에 대한 항변은, 세상에 내가 아테나이의 신들을 안 믿는다뇨? 나를 아는 이면 어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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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게 웃긴겨. 소크라테스 가, 기존의 신들, 그리스신화의 신들을 무시를 하고, 새로운 신들을 갖고 왔다는거야.
새로운 신들. 웃긴겨 이거.
저런 이야기 의 진짜 사례들을 말이지, 플라톤 이 35개의 대화들 소설 에서, 구석 구석에서 하는겨 한두개의 대사들로. 플라톤 의 35개 의 소설들은, 이건 정말 진짜 재밌는거야. 유일하게 못보겠는건 에우튀데모스 라는 소피스트 말장난 아 이건 정말 끝까지 읽는게 곤혹이었는데. 이것 빼곤, 나는 지금까지 본 소설 들 중에, 정말 진심으로, 단 하나 의 책 을 꼽으라면, 플라톤 35개 대화편 이야.
에우퓌테론 에서, 경건함 어쩌고 말할때, 대체 신에게 제물을 왜 바치는가? 신이 즐거워할테니까. 야, 신이 감정이 있겠니? 즐거움 괴로움 의 신의 감정이니? 그건 내가 플레보스 에서 말했지만, 즐거움 괴로움 은 신적인게 아냐 명백히 논리적 이성으로 풀어보면. 신이 그래 즐거워 한다고 쳐. 카리스 카리스마 의 그 즐거움을 준다고 쳐.
야 야, 신 이랑 상거래 하니? 신이라는 이가, 제물을 주면 복을 주고, 제물을 안주면 화를 내니? 그게 신이란 이가 할 짓이겠니?
신이 카리스 라는 즐거움을 받는다면, 신께서 제물을 받는다고 즐겁겠니? 경건함 이란 호시오스 호시오테스 가, 신에대한 놀라움의 감정이고 신의뜻대로 신의뜻에 따르겠습니다 의 것 일텐데, 그런 신이 제물 받는다고 경건함 으로 승낙해서 즐거워 하시겠니? 신은 인간이 디카이오스 즉 져스티스 하면 즐거워 하시지 않겠니? 디카이오스 와 호시오스 는 그래서 같은 뿌리의 알레떼이아 라는 진짜 진리 의 것들 아니겠니?
신이랑 장사 거래 하니 니네?
신한테 , 쌀가마 올린다고 신이 좋아한다는거니? 신한테 헌금 낸다고 신이 좋아한대니? 그게 그런게 신적인 거니?
저당시도 오컬트 천국이야. 폴리테이아 라는 국가정체 의 시작이, 케팔로스 라는 노인의 집을 가는 중년의 소크라테스여. 케팔로스 라는 노인이 마침 하던 일이, 정원에서, 난로 의 화신, 제우스의 속성 난로 를 두고 역시나 제사 지내는겨. 저게 당시 아테나이 의 가정집들 모습인겨.
멜레토스 안튀오스 뤼콘, 이 세명의 고발문 이, 이게 간단한게 아냐 진짜. 이 인간들은 소크라테스 의 저런 걸 팩트로 걸고 넘어진겨. 소크라테스 변론 이란 글에선, 저런 장면들을 완벽하게 뺀거야 플라톤이. 의도적으로.
새로운 신들을 들여오다.
이게 더 골때리는겨.
이런 이야기가 완벽하게 사라진겨. 소크라테스 의 신, 신의 속성, 신이란 무엇인가, 이 이야기들은 완벽하게 지워진겨, 전혀 이런 이야길, 아리스토텔레스 조차, 꺼내지 않은거야. 왜? 아리스토텔레스 는 저런 동떨어진 추상도 역겨워하거니와, 저런 이야긴 우리 소크라테스 께서 하신 적이 얘 대갈빡엔 없는겨, 있어서도 안되고. 더하여 그리스도 시대 12세기 라틴번역 때 조차도, 소크라테스 의 이야길 신관련 문제로 꺼낼 수 조차 없는거야. 못본건지 안본건지. 더하여, 근대 철학에선, 이미 이성의 시대야, 소크라테스 의 이야길, 이성적으로만 보는겨, 소크라테스 의 새로운신들을도입하다 라는 관점에서 절대적으로 볼 수 없는겨 칸트 조차도. ㅋㅋㅋ. 이런 관점 의 이야기가 기껏 나온게 20세기 에 모랄 오브젝티비즘 이란거야. ㅋㅋㅋ. 이걸 그야말로 꺼낸게, 그라츠 학파 애들이야. 분석학파 의 아류인 이들이 꺼낸겨 애브스트랙트 오브젝트 로.
그런데 말이야 어쨌거나, 저런 이야긴 나중에 내가 정리해보고,
아 글쎄 말이지, 모~든 이야긴, 이미, 소크라테스 가 다 한거야. 플라톤 은 정확하게 소크라테스 의 카피본 일 뿐이야. 아리스토텔레스 가 또한 자기만의 이론을 따로 만들고 플라톤의 이론이랍시고 지멋대로 정리하면서 그야말로 철학이란게 시작을 한거지만 말이지.
모든건 모든건, 소크라테스 가 시작이고 끝이야. 그런데 정작 소크라테스 의 진짜 이야긴, 완벽하게 사라졌던거야.
소크라테스 는, 모~든 인간 인류 들 중에서, 가장 가장 위대한 인간이야. 지저스 는 소크라테스 한테 명함 절대 못 내밀어. 소크라테스 에 비하면, 지저스 는 오컬트 수준이야 ㅋㅋㅋ. 싯달타 ? 아, 불교란게 유치한거는 말이지, 플라톤 35개 를 보면 불교란게 얼마나 유치하다는걸, 알게 돼.
.
너무나 너무나 이상한거야 소크라테스 의 죽음장면은
새로운 신을 도입했어? 그럼 소크라테스 만의 종교 가 생긴겨? ㅋㅋㅋ. 없어요 이게. 그렇다고 소크라테스 가 완전히 주작질로 당한겨? 아니여 그것도 ㅋㅋㅋ. 저 법정에서 아테나이 인간들이, 정확하게, 소크라테스 는, 자기들 신들을 부정하고 소크라테스만의신들을 들여왔다는거야! 이 이야기를 전혀 전혀 안하는겨 역사에서, 이게 사라진거야 이게.
대체, 소크라테스 가 갖고 온 그 신들이 대체 어디간거냐고? ㅋㅋㅋ
너무나 너무나 웃긴겨 이건.
다음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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