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 가, 나 라는게 있다, 라는 명제를 찾는 가장 큰 힌트 는 꿈 이야 꿈. 장자 의 호접지몽 과 똑같은 내용이여. 그런데 장자 애는 , 하늘과 사람은 하나여, 모양만 다를 뿐이야. 계우 이거 여 이거. 그렇다고 이스턴 들이 저걸 더 이어서, 눈 밖의 모든 동물과 식물이 바로 자기여 라는 센턴스 도 갖고 오는것도 아니고, 철저하게 인간을 차별 하던 허섭들이 인간들에게 인류애를 갖자란 것도 아니고. 말로만 뻔지르르 인의예지 라며 사람 죽이는 단어들 만들어서 지들 배떼기만 부르다 거리엔 똥만 그득한 결과만 낳은거거든. 

 

I am in doubt as to the propriety of making my first meditations in the place above mentioned matter of discourse; for these are so metaphysical, and so uncommon, as not, perhaps, to be acceptable to every one.  

 

방법서설, 의 파트 4. 시작이야. 메디테이션 이란건, 뒤에 성찰 이란 제목으로 쓰는 단어거든, 이건, meditatio 생각하는 행동. 이야. medeor 메데오르 라는 치료하다 에서 파생된 단어고, 치료하려면 곰곰히 생각해야 해. 찐한 생각 이야. 위에서 제기만 것 이란게 의심할바없는 보편적인 확실한 자기만의 센턴스 를 찾겠다는 생각인겨. 이러한 것들은, 아주 메타피지칼 하고, 아주 흔치않아서, 모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란 거지. 이게,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여.

 

이 말이 얼마나 자기딴엔 전율 이었다는 거라며, 성 오거스틴 식의, 머 쩝 실수하니까 사람이지, 사람이란 나는 실수 하는 인간일 뿐이지 원죄적 동물이지, 피론주의자들이 나라는 존재자체를 의심하는 것이 데카르트는 이해가 되는겨 이게. 성오거스틴은, 피론주의자들은 산다는 것 자체에 대한 확신도 없고 존재 자체도 의심한다는 애들이고,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오류를 배제한다는 피론주의자들인데, 존재 자체가 오류를범하는생체 므로 존재할수 밖에 없다. 라고 오거스틴은 말하고, 그따위 원죄적 존재 의 나 를 말하는게 아니라는겨 데카르트는. 이런 존재는 원죄의 존재고,  피동적이로 노예적 존재고, 짐승 과 다를 게 없어. 

 

데카르트 는, 짐승 과 다른 인간으로서의 나 야 나. 

 

이건, 지금까지 어느누구도 몰랐던거야. 데카르트 자기는, 전율을 느낀겨. 

 

 I, convinced that I was as open to error as any other, rejected as false all the reasonings I had hitherto taken for demonstrations; and finally, when I considered that the very same thoughts (presentations) which we experience when awake may also be experienced when we are asleep, while there is at that time not one of them true, I supposed that all the objects (presentations) that had ever entered into my mind when awake, had in them no more truth than the illusions of my dreams. But immediately upon this I observed that, whilst I thus wished to think that all was false, it was absolutely necessary that I, who thus thought, should be somewhat; and as I observed that this truth, I think, therefore I am (COGITO ERGO SUM), was so certain and of such evidence that no ground of doubt, however extravagant, could be alleged by the sceptics capable of shaking it, I concluded that I might, without scruple, accept it as the first principle of the philosophy of which I was in search.  

 

그러면서, 죽 쓰다가, 나는 다른 어떤 누구와 같이 오류를 범하기  쉬움을 확신했어, 그리고 거부를 했어 이때부터 내가 취한 모든 이성의기능들을, 거짓 이라고. 남들이 어떤 말을 하든, 세상 에 어떤 작동이든, 저건 거짓이야. 이건 극단적으로 가정 을 했다는겨. 없음 무 에서 시작해서, 의심없이 보편적인 절대적인 참이 무얼까. 

 

깨어있을 때나 잠들었을 때나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참이 아냐 저건. 이렇게 간주한겨. 극단적 가정. 자기만의 답을 찾기 위해. 

 

내 마인드, 멘쓰 생각하는마음 으로 들어오는 모든 오브젝트들, 프리젠테이션들 도 더 진짜가 아냐, 내 꿈들의 환영들 보다. 

 

오브젝트 는 관찰대상의 것들 이야. 프레젠테이션 이란건, 마인드 가 정보를처리해서 다시 비추는겨 투사 여. 

 

꿈속의 영상들이나, 깨어서 눈밖의 형상들이나, 대체 무엇이 더 진짜 냐 는겨. 이건 정확히 장자 의 나비의 꿈 에서 의 질문 이야. 

 

데카르트 는 저기서 전혀 다른 문장을 찾는거야. 

 

이걸 제대로 말하는 이스턴 들이, 단 단 하나 없는겨. 마치 장자몽접 과 데카르트의 꿈 은 같다며. 

 

 무식한건데 저게. 니덜도 말이야, 데카르트 의 전율 을 느껴보라고 내가 쓰는겨. 

 

저 꿈 과 깸 의 세계 두 개 의 오브젝트 들이 어느 세상의 것들이 더 참 이다 라고 말할 수 없다 고 suppose 가정을 한겨. 저 문장을 제대로 봐야해. 데카르트 는 걍 아  꿈이 리얼하네, 그렇지만, 솔직히 깬 세상이 더 리얼한건 당연한거지. 그런데, 꿈 속의 오브젝트 들도 나름 리얼한겨. 그렇지만, 가정 을 한겨 현실이 더 리얼할 수 없다며. 

 

그리고선, 얘가, 바로 코기토에르고쑴 이란 불어 를 쓰거든. 저건 불어 고. 

 

방법서설 에선, 저 문장들의 인과 를 자세히 안풀어. 꿈 이야기론.

 

꿈 이란 단어가 방법서설에 7번이 나와. 그리고 나서, 다음 성찰 에서 꿈 이란 단어로 도배가 되는겨. 이 꿈 이란건 정확하게 세가지 꿈 이고, 데카르트는 이때꿈꿨다 꿈내용이세가지다. 이런 이야길 자기 책에선 전혀 절대 안해. 

 

오직 저당시 의 그 리얼함 에서 느낀 감정으로 쓰는겨. 저 당시 꿈 의 그 리얼리함 그 자체야. 꿈 내용은 데카르트 의 관심 이 아냐.  현실적인 그 느낌. 이 느낌 에서, 코기토에르고쑴 이 떠오른겨. 

 

의심하는 이 나 는 무엇인가? 이건 뒤에 덧대 지는 문장들이야 이건. 애새기  얍삽해 자기 꺼 치장할라고.

 

성찰 이란 제1철학에 대한 메디테이션 을 보면 저 인과 가 풀려. 제1철학 이란건, 이전 썰했듯, 아리스토텔레스 가 칭한 단어이고, 네이쳐 를 알기전에 알아야 할 거라며, 이걸 후대에서 라이브러리 정리하면서 네이쳐 다음 으로 책 분류 해서 메타피직스 가 된거고, 제1철학 은 메타피직스 야. 제1 원칙 원리 라며 코기토에르고쑴 을 썼지만, 그렇다고 제2 제3 원칙 따윈 없어. 가장 최고 의 문장이라며 제일 로 이름지었을 뿐이야. 

 

꿈이란게 말이야. 

 

모든 감각을 작동을 안하거든. 안이비설신 을 다 잠구잖니. 안이비설신 은 죽은 세상이야 꿈 이란건. 

 

그럼에도, 데카르트 가 생각해보니까, 꿈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안이비설신 의 감각작용을 하는겨. 

 

이게 머냐는겨 이게. 

 

내 모든 감각은 다 닫힌채로 자고 있는데, 이 꿈 속에서, 모든 감각이 작동되는 듯이 보여지고 느껴지고, 생각 생각 이 생각 도 하는겨. 

 

대체 이게 머냐는겨 데카르트 의 질문은. 

 

감각 이란건, 잠자는 안이비설신 이란 바디 코르푸스 corpus 에 그냥 들어오는 정보들 이야. 

 

감각들을 통해서, 오브젝트들 이 프리젠트, 프로젝트, 영사기 투사기 로 마인드 아이디어 세상에 영상으로 쏴지는겨 꿈이란게. 

 

더가서 꿈이란게, 꿈이란건 말이야, 스크린의 영상 과, 그 관람자 가 다른겨. 

 

저 관람자, 관객 이 새 야 새. 

 

꿈속에서 영상 을 접하면서, 꿈꾸는 사람은, 생각 도 해. 이건, 새 가 생각을 하는겨. 

 

데카르트 가 , 그사람이 엔선생 한테서 받은 걸 준다고 했거든 그 꿈에서. 데카르트 는 그걸 멜론 이라고 생각 생각 한겨. 이 생각 은 누가 한겨? 새 bird 가 한겨. 이 새 는 나만의 문법 워드 야. 

 

존재하는 나, 라는건, 저 새 야 새. 

 

아, 저 새 가 있구나 내 안에. 

 

모~~든 몸의 감각들이 오프상태인데도 작동을 하고 있는 저 새!

 

이건 전혀 다른겨 다른 감각들과는. 

 

저 새 가, 언더스탠딩 으로 퍼셉션 을 하고, 윌 로써 액션 을 하는겨. perception of understanding, action of will.  요 문장은 데카르트 의 문장이고, 이걸 그대로 경험주의라며 존 로크 부터 나중 칸트 해겔 역시나 그대로 쓰고 쇼펜하우어 의 의지 도 걍 그대로 쓰는겨. 새 라는건, 언더스탠딩 과 윌 의 합 이야. 의지의 행동, 이 프랙티컬 리즌 이라는 별 개떡같은 일본한자 실천이성 이야. 정말 개떡같아 이 실천이란 말. 

 

저게 생각하는 나 의 정체여. 이건, 짐승 과 차원이 다른겨. 

 

짐승 에게도, 나는존재한다 라는건 있어. 이 센턴스 는 짐승도 있어. 그런데, 인간이 짐승과 다른건, 나는생각한다 야. 이건 짐승과 차원이 다른, 독보적인 인간만의 센턴스야. 

 

더하여, 나는존재한다, 라는 이 깨달음 자체도 신선한겨. 아 난  신선하더라고 저걸 읽으면서. 

 

그냥 아무생각없이, 내안에 새가 있어, 라고 했걸랑. 헌데 구체적으로 이 새 가 어떻게 작용하고 독보적으로 어떤 기능 으로 여겨져야 하지? 이게 흐릿했걸랑 나는. 

 

저거더라고, 꿈 에서, 그 꿈을 겪는, 경험하는, 그게 내안의 새 야 새. 

 

우리가 꿈 을 연출 하는게 아냐! ㅋㅋㅋ. 

 

우리는 말이야, 꿈 을 단지, 관객의 입장에서, 볼 뿐이야. 양자역학적으로, 이전 꿈과양자역학 썰. 저 영상 의 오브젝트 에 나의새가 써브젝트 로 들어가서 보면서 직접 활동하는게 이게 꿈이야 꿈. 

 

꿈의 영상 이란건, 몸 의 감각들에게 페르켑티오 포착해서 들어온 오브젝트들 이 스크린에 나열이 되는겨 이게. 이게 지들끼리 연출해서 영상에 비추는거고, 내안의 새 가 저걸 보면서 또한 써브젝트 로 참여를 하는겨.

 

먼말인지 알겄냐

 

이 새 가 진짜 나 야

 

이 새 는, 꿈속에서도 활동하는겨. 이 새 는, 절대 쉬지 않아. 언제 쉬어? 죽을때 쉬는 듯 보여 이게. 

 

항상 미래 만 봐. 어디서 나와? 칼융 의 비비시 이너뷰 여. 사람안의 언칸셔스니스 라는 저 새 는, 항상 앞으로만 움직이고, 미래만 보고 영원함만 생각한다. 칼융이 임상환자들을 겪으면서 꺼낸 귀납적인 항진명제 야. 그래서, 과거 를 뒤돌아보는 인생은 일찍 뒈져요. 영원할듯 앞만보고 사세요, 그래야 건강하게 살아요, 하시거든 칼융이. 명문이야 이건. 

 

저 새 가 있는겨. 

 

이게 가장 확실한 겨. 가장 보편적인거고. 이 이상의 마당, 굳건하고 움직이지않는 마당 바위 점토 는 없는겨. 그리고 이 마당에서부터, 확실하고 분명하고 증명가능한 프레미스 대전제 를 만들어 내기 시작하고 그것으롤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해. 그 대표적인 서술이 방법서설에서 심장의 대동맥 대정맥 으로 전체 피 순환을 이야기하는 설명과 논리야. 이게 데카르트 의 디덕션 연역법 해대는건데. 그리곤 신나서, 자기만의 논리학 이라며 정신지도규칙 을 쓰는데, 야 요건 진짜  못봐주겄더라. 저건 데카르트 만의 문법을 익혀야 제대로 느껴지는건데, 그렇게 까지는 보고싶지 않고. 

 

그런데, 성찰 에서 철학원리, 그리고 정념론 해서 방법서설 부터 이 네 개는 정말 봐줄만 해. 

 

저 새 는 말야. 스스로 움직여 지는겨. 데카르트 가 머 지나름 분명 확실 어쩌고 지만, 이 주체가 저 새 야 새. 분명하고 확실하게 꺼낸 센턴스 라며 그게 참이야? 그 근거는 머여? 내안의 새 는, 완벽한 신 의 빛이 쪼여주기 때문이야. 신의 완벽성 이 배후에 작동해서, 나라는새 가 생각하는겨. 내가 참인건 신의완전성 때문이고, 내가 오류를 범한건, 내가 불완전해서야. 

 

그래서, 새 의 완전성의 근거 를 위해서 공리 로 퍼펙션 을 꺼내고 여기에 신 의 자리를 올려 놓는겨 데카르트가. 

 

이 새 라는건 말야,

 

자 계속 말하지만, 내가 나를 못본다는, 이말 을 또 하는건데, 

 

나 라는건, 새 야 새. 

 

우리는 말이야, 새 의 모르모트 여. 나 라는건, 정확하게, 새 에 의해서 생각하고 움직이는거야. 나 라는 건, 새 야 새. 

 

새 가 몸으로 들어오는 신경계를통한거든, 감정들 조차, 그걸 느끼는 것 또한, 새 야 새. 

 

나 라는게 새의 완벽한 로봇 이야. 

 

새 가, 새 를 못봐. 먼말인지 알겄니? 당연히? 

 

환장하는겨 이게. 내 가 내 안의 새 를 보고 싶어. 나라는 셀프 자기 가 새 야 새. 이 새를 대체 어떻게 보냐고. 이 새 가 우리의 안이비설신의 모두 를 이 새 가 갖고 있고 통제 하는겨. 새를 보고 싶잖겠어? 이게 자기를 본다는겨. 헌데, 이건  볼 수 가 없는겨. 느낄 수 가 없는겨. 

 

당연하잖냐. 저걸 곰곰이 생각해봐. 지금 저 말이 뭔말인지 알아야 해. 새 라는걸 그릴때 저게 찐하게 와 닿아.

 

내가 나를 못봐! 내가 새를 못봐! 환장하는겨 이게. 내면성찰? 나를 바라보라구? 아잉 내 모든 감각을 저 새 란 애가 다 갖고 있는데, 저걸 느끼기 위해서 다른 새 를 갖고 와서 보라는겨? 모든 텔레파시 조차 저 새가 갖고 있다니까?

 

내면을 바라봐? 이 말이 무책임 한겨. 눈깜고 멍때려. 그속에서 생각하는 주체 는 머여? 새 여 새. 새 가 자 나를 보자우 ㅋㅋㅋ. 머가 보여 ㅋㅋㅋ. 새가 보여주는건, 오직, 우리 마인드 에 쌓여온, 축적된, 기억된, 오브젝트 들 의 프리젠테이션 표상 들일 뿐이야. 명상 이니 내면 이니 성찰 이니, 걍  우리 감각들이 갖고온 것들을 다시 새가 그 마음속 영상들을 바라볼 뿐이야. 이게 끽해야 명상 의 작용이야. 

 

무책임한 말이야. 성찰 이라는 셀프 리플렉션 이란건. 

 

황당한 말이야 저건. 

 

새 가 갖고 온, 물어 온 것들을, 아이디어 니 콘셉 이니 마인드 니 하는 관념세상에 심어져 있는걸, 다시 새 가 꺼내서 프리젠트 프로젝션 해서 또 새가 생각 해서 우리 뇌 에게 전달해서 우리 몸뚱아리가 움직일  뿐이야. 

 

새 가 감각으로 물어와서 영상보내는게, 언더스탠딩 의 퍼셉션 이야. 경험주의 애들이 고대로 쓰는 말이야 이게. 언더스탠딩 을 뜬굼포 지성 오성 막 이따위 개번역질 하는겨. 말도 안되는 말장난 이야 이 극동  학자들 의. 지 란 단어 성 이란 단어 오 란 단어 각각이 이천년 이상 쌓인 유전자 를 이 언어 문법 보편문법 을 전혀 철학자 들이 모르는겨.

 

언더스탠딩 의 인식 세상 을, 칸트 가 순수이성 이라고 하자는겨. 요걸 비스무레 사변 이성 어쩌고 로 하는거고. 이건 오직 말이지, 새 가 물어오는 경험적 오브젝트 들의 세상이야. 경험의 것 이상 을, 새 가 갖고 올 수 없어. 인간은, 경험 외의 것, 즉 머여? 신 이여 신, 영혼 이란 것이고, 이건, 순수이성 이라는 저 언더스탠딩 의 세상으론 파악할 수 가 없어. 새 가 그걸 물어오고 보여주지 않아. 그럴 수가 없어.

 

새 가 만약에, 경험의 것 이상을 물어오고 영상에 투사 를 하잖아? 그건 머여? 미친놈 미친년 이야. 

 

그러고 싶어해선, 안돼! 요게 칸트 말이야. ㅋㅋㅋ. 

 

경험 이상의 것을 이성에 작동 시키면, 걘 현실을 살 수 없어. 정신병원 가야 해. 

 

신 을 그래서, 새 한테, 신 을 보여줘, 할 수가 없는겨 논리적으로. 칸트 의 형이상학은, 논리학 이야. 논리학은 완벽한거야. 물론 조선 땅은 이 논리학이 먼지 모르고. 오직 프로그램 언어 에 디비 짜는 애들이 하는겨 ㅋㅋㅋ. 이땅 인문학 들은 정말 뒈져야 해. 

 

칸트 는 저 신의 세상을, 실천이성 이라는, 액션오브윌 에 약간 열어놔. 

 

아리스토텔레스 부터, 저 새 여 새. 저 새 라는 존재. 요게 서브젝트 야. 서브젝트 는 서브젝트 를 못보거니와, 오브젝트 도 들어가보면 결국 머여? 서브젝트 인겨. 그게 키에케고 문장에서 내가 이전 갖고온 오브젝티브 트루뜨. 내가 외웠걸랑. 올 오브젝티브 날리지 이즈 서브젝트 투 다웃. 모든 오브젝트 의 앎이란건, 서브젝트 야. 그래서, 의심해야 만 하고. 

 

서브젝트 오브젝트 개념 을 분명 히 알아야 해. 이게 반 이상 먹고 들어가. 헌데 시안하게 참으로, 야 이 조선 철학 하는 애들 말글 보면, 모르더만 저 가장 기본적인 개념을. 저걸 객관 주관 객체 주체 이따위 번역하는 순간, 먼말인지 몰라. 객관적으로 보다, 개소리야. 손님의 관점 그딴게 아녀 저게. 

 

새 가 자기새 를 못봐 . 그런데 이놈의 새 가 스스로움직여. 이 새가 내 몸 모~든걸 관할해. 생각하면서. 

 

이 존재 감 이란건, 데카르트 한테 엄청났던겨. 저게 생생하게 있는겨. 그리고, 완벽해질 수 있어, 속으로 ㅋㅋㅋ. 완벽함을 향해야 해! 데카르트 의 속내야. 인간이 신에게 기대는 단 하나, 저 완벽성 이야. 그러면서 데카르트 가 힘이 생기고, 이 힘을 인간의 이성 에 부여 하고, 인간 그 자체에 활력을 부여해. 

 

이걸 강하게 부정하는게, 파스칼 이야. 그래서 얘의 독보적 문장이, 인간은, 갈대 여 갈대 ㅋㅋㅋ. 생각은 하지만, 갈대 인겨. 파스칼 은 데카르트 를  증오해. 어린 파스칼이 저 문제를 풀었을 수가 없다며 애비가 도와줬겠지 라는 데카르트 의 지적질로 시작해서, 저 무신론자 데카르트 라며, 파스칼은 얀센이즘 이고, 이건 지독한 운명론이고 신의 섭리는 절대적인겨. 얘한텐 데카르트 는 악마 야 악마. 

 

키에케고 는 논리적으로 잘못되었다고 해.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존재햐?  벌써 첫 문장이 나는 생각한다매? 벌써 존재 하는구만 ㅋㅋㅋ. 그래서 그걸 보고, 제대로된 문장이라면, 생각하는 나 가 존재한다 라며 썼어야 라고 다른 이가 말하고. 

 

저런 존재감이 이후 사오백년 지나면서, 이미 서로들에게 스미는겨. 그래서 놀라울 게 없어. 저 느낌을 못받아. 

 

칸트 가 도장을 찍는겨. 

 

XV. That necessary existence is not in the same way comprised in the notions which we have of other things, but merely contingent existence.  

 

철학원리 15번. 우리는, 다른 것들에 대해서, 네시써리 이그지스턴스, 즉 새 여 새 본질 본체 그 다른 것들 인 오브젝트 안에 있는 리앨리티 고 리얼리 앱스트랙트 오브젝트 야. 콘크리트 오브젝트 안의 앱스트랙트 오브젝트 를 우리는 알 수 없어. 그라츠 학파 식 표현이야. 우리가 알 수 있는건, 콘틴전트 존재야. 콘틴전트 라는건, 콘 틴게레, 탄고 라는게 터치하는겨. 찐하게 터치하는 존재 . 감각에 직접 닿는 존재 만을 알 수 있어 피상적으로. 

 

리얼한 앱스트랙트 오브잭트, 리앨리티. 신. 영혼. 자유 . 같은 말이야. 이걸, 알 수가 없어. 내 안 의 새 든, 저 눈밖의 오브젝트 의 안의 새 든. 그 외의 신 이든. 칸트 가 도장을 찍어. 그러면서 실천이성 으로 알수도 있어 라며 여지를 남겨. 

 

칸트 는, 경험외의것들을 알 수 없어, 라고 하는거지, 데이빗흄 의 문장인, 경험외의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하지 않아. 

 

헤겔 은, 다시 돌아가서, 알 수 있어. 무얼 통해서, 새 가 바라보는, 마인드 의 영상들, 그게 머여? 피노미논 이라는 현상 이야. 새 가 갖고 온 모든 영상들 에 결국 저 새 자체 의 내면 이 있다는겨 헤겔의 말은. 절대진리. 절대선. 이야  적극적으로. 헤겔 이 다시 초 강력해지는겨 이게. 이게 더 가서 아들러 로 가면, 세상의 진보 를 막는자 는 사라져라! 

 

이런 관점으로 저들 이야길 보면 재밌는거고, 아주 신선한겨 이게. 

 

키에케고 는 더가서, 저 새 를, 간접적 교신 으로 알수 있다는겨. 저게 신이야. 

 

더하여, 인간의 문제는, 세상을바꾸자 라며 대들던 애들에 의해 풀리는게 절대 아냐. 이건 데카르트 가 확신한겨. 저건 거짓말이야. 세상을바꾸자 는 들이, 인간을 대학살 한게 인간 문명이었고, 이제 지금 북조선 이고, 곧 남조선이 북조선 따라서 대학살 의 땅이 될거야. 여자들은 창녀가 될거고, 남자들은 조선구한말처럼 비굴한 거지들이 될거고 아이들은 거리에서 빛을 잃고 해맬거고. 저게 정의라며 지금 다수를 대표하는 소수의 집단이 방송 에 선동질에 게시판질에 정의놀이하면서 머 떠는거고 저 벌레 보다 못한 조선들이. 

 

새 를 찾아내고, 그 새 인 나를 바라보면, 신으로 닥아갈수 있어. 저 새 란건 말야. 리시버 야. 수신자. 안테나 야.

 

영혼 에 이성 이 구별된건지. 이성이 영혼의 속성인지, 몰라 . 감정이 따로 구분되는건지. 이성과 감성은 별개 인지. 몰라 몰라. 경험주의 애들은 감성 에 촛점인거고, 이성은 감정에 놀아날 뿐이야 경험주의는. 이것도 단면이야. 조선 들 에겐 이 말이 맞아. 왜? 여긴 이성이 없으니 감정 만 작동하는거거든. 여자 들, 골때리는겨, 오백년을 자기들 노예질에 하렘질 강간질 자살질 시킨 저 민족 애들을 빨아대는 게 조선 여자들이야. 왜? 이성이 없걸랑 ㅋㅋㅋ. 딱 경험주의 의 관점이 딱 맞아. 이성이 감정의 우위에 있어. 데카르트 여. 깨인 애들의 관점이야. 도덕감정론 의 스미스 에서 나오는 버츄어스 한 인간 은, 감정 의 위에 이성 이고, 스미스 는 경험주의 흄 을 모시는 인간이지만. 저게 딱히 쟤가 맞다 틀리다 할게 못돼. 저 철학사조라는게 걍 저 관점들 모두를 취하면 되는거고, 배격할게 못돼. 

 

내 안에 새 가 있어 새 가. 이걸 확 깨달아봐. 그래야, 신 의 메쎄지를 받는거야 제대로 이때부터. 

 

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1/08/20210108901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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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새, 를 봐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가, 남들을 보는거야. 

 

이전에 나의 문장이, 나 라는건 나의 여집합이다. 인데, 내가 만든. 

 

일단, 나머지 것들의 콘틴전트 이그지스턴스 를 모두 봐야 해.

 

조선 들이 그야말로 무지 하고 미개한게, 조선 실록 만 보란거거든. 얘들은 자기만의 이야기 가 전부 라는겨. 세상에서 가장 미개하고 편협하고 고립된 그야말로 후짐들의 역사. 아무것도 몰라 아무것도. 그러면서 민족. 뇌에 든것이 없어. 나만의 눈깔로 쫍따랗게 나를 봤다며, 내 새가 본 세상이란 오직 조선빠닥 이고, 그 새 의 눈깔이란게 조선 몇몇만의 개거지 들만의 관점 사관이거든. 이걸 지금 그대로 따르고 역사팔이 하며 처먹고 살면서 원로에 석학에 지식인 하는 조선들. 

 

왜 남의 나라 이야길 하느냐? ㅋㅋㅋ. 왜 위대한 조선 만 바라보지 않느냐?

 

철학이 없는 애들의 땅빠닥에서 당연히 나올 소리인겨. 

 

참 비참한 땅이고, 미개한 땅이야. 

 

이땅엔 아무런 지식 이 없어. 

 

아이들은, 나이 삼십이상 처먹은 이땅 들 말글에 눈귀를 주지 말라우. 

 

데카르트 는 고대그리스 로마 의 변주야. 저 모든 웨스턴 애들의 근대 이야기 들 조차,  모든 바닥 공리의 센턴스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 의 센턴스 에 구약 신약의 센턴스야. 

 

몽테뉴의 에쎄 에 베이킨 의 에쎄이 에 데카르트 의 글들에 파스칼 팡세 에 리바이어던 등 저때부터의 본격적인 사상사 들의 글들 조차, 그 모든 문장 참조 하는건, 고대그리스 로마 에 구약 신약이야. 

 

고대그리스 로마 이야길 꼭 봐. 이걸 모르면, 에쎄 가 안읽혀. 몽테뉴 의 에쎄 가 웨스턴 이야기들의 본격적인 시작이야. 저 책 좋은 책이야. 저 언급한 모든 책들은 기본적으로 읽어야 해. 어려운 책이 절대 아니야. 너무나 좋은 책이야. 안읽히는겨 저게. 1쇄 하고 안팔려 ㅋㅋㅋ. 시중에 한글러 책들은 다 버려라 버려. 똥이다 똥. 

 

저들이 읽히려면, 기본적으로 고대그리스로마 이야긴 봐야해. 플루타르코스 에 그리스철학자열전 도 꼭 봐. 어마어마한겨 저 그리스 로마 라는건. 우리는 저런게 텅텅 빈겨. 어릴때 꼬마때 저걸 읽게 하도록 해. 저게 초딩때부터  교육과정으로 처 넣어야 하는겨 저게. 

 

저런걸 모르니. 저따위 개거지 들이 정의 라며 이념놀이 판치는 그야말로 머가튼 땅빠닥이 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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