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써브젝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이다, 아이 띵크 데어포 아이엠. 여기서의 나, 라는건 이성의 나, 이고, 이성 이란건 영혼 이야. 인간의 스피릿의 동격이 리즌 이야. 데카르트 는 이성 과 영혼 을 구분하지 않아. 데카르트 의 말이야 구분을 안한다 며. 

 

결국 모든 건 말이야. 이 영혼 이란 것으로 귀결되는건데. 말이지. 

 

내가 역사 를 기본으로 모두 훑는 이유기도 해.

 

모든 역사 의 이야기들이, 나 라는 영혼의 이야기야. 나만의 센턴스야. 내가 이 글들을 쓰기 시작했던 이유고. 언제 끝날지 모르겠는데, 아 너무 지쳐서리 이제는. 

 

데카르트 의 방법서설을 봤거든. 이게 전문이 칠십여페이지여. 졸 짧아. 명문이야 이게. 어려울것도 없어. 이글 참 좋은데 말이야. 데카르트 참 졸 웃긴데 이거 보믄.

 

나 라는 영혼 을 본격적으로 끄집어낸게 이 데카르트 여.

 

방법서설.이 저게  웃긴겨. 대체 왜 저책이 당시 쎈세이션 을 불러 일으켰냐는거지. 이전에 썼지만, 신으로부터의 해방 이라며, 오컬트 하지말라 는 관점으로 내가 풀었지만 말이야. 이 그리스도의 신이 악랄하기까지 인간을 노예적으로 다루고 인간사에 개입하는 세상을 데카르트 가 거부를 한거거덩. 나만의 해석이고. 맞고 이게. 

 

심신이원론 이라는, 몸과 영혼이 분리 되어있다, 이건 결코 새로운 말이 아냐. 뻔한겨. 중세 유럽 천년의 사고방식이고 고대로부터의 사고방식이여 이건. 몸 영혼 분리는. 포름 과 매터 의 아리스토텔레스 고 이데아 에이도스 의 플라톤이고. 이건 별다른게 아녀. 영혼은 따로 있어. 이게 머가 대단하니. 

 

성오거스틴 이 나 나 나라는 영혼을 이야기해. 달러 이게. 나를 되돌아보라. 얜 그리스도 의 나라는 영혼 과 별다를게 없어. 얘가 창조한 개념이 원죄고, 원죄 가 덕지덕지 묻은 나 를 바라봐서리 원죄 털어서리 구원되란거거든. 

 

불교 의 고집멸도 의 도제 에 팔정도 도 이게 별다를게 없어. 사맛디 하민서리 부처 로 회복해서리 서방정토 가는 정토교 도 결국 원죄묻은 떼 털어버리라는거거든. 그러면 아미타불이 되서리 도피안 하는겨. 

 

데카르트 는 달라. 

 

그리스도 니 부처 니 그따위 세상 굴레 속의 나 라는 영혼 이야기 하는게 아냐. 

 

독립적인 나 야. 물론 이 독립적인 나 의 터, 근거, 바닥은, 역시나 신 이야. 신 의 완전성으로, 이성을 갖은 나, 가 있는겨. 그런데 데카르트의 나 라는 영혼은, 보다 개인적인 나, 에 방점을 둔겨 이건. 그냥 나 나 나 나 나라는게 있다 는겨. 무신론자 로 오해를 받을까봐, 계속 쓰는겨, 이런 나 의 근거는 신의 완전성에 바탕을 둔거구요, 신의 빛으로 이런 이성의 나 가 있는거예요, 이런 말을 계속 해, 부디 나를 이단 딱지 붙이지 마세요 하는겨 이 데카르트는. 데카르트는 1596년 생이야. 저때 여전히 종교전쟁이고, 마녀재판 살벌할때야. 데카르트 는 세상을 바꿀꺼야 라는 의지는 단 일톨도 없어.  의미없음 을 알아. 이걸 자기가 써. 나는요 전혀 명예 니 이름 날리는거  관심없어요. 내가 세상을 바꾼다는 건 완벽한 거짓명제 임을 나는 알아요. 나는 세상을 내 뜻대로 바뀌었으면 해대는 생각 미세먼지 조차 없어요. 그냥 일상을 편안하게 사는게 내 삶의 제일목표요 ㅋㅋㅋ. 진짜야 이런 말을 해 방법서설에서. 

 

내 말에 귀길울일 사람 없어도 상관이 없고요, 내 말에 동감하는 이도 별로 없을 거예요. 나는 진리, 알레떼이아 마테마따 라는 가려진 참, 진짜 리앨리티 를 찾고싶은 것 이상 없고요, 개인적으로 이거 탐색하기도 바빠요, 사람들과 논쟁하고 싶지 않아요, 혹자는 사람들과의 토론으로 진리에 더 다가갈 팁을 얻는거 아니냐 라고 말을 하지만요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해서 그런짓도 해봤지만요, 밸류 없습디다, 참 의미 없는게 애들이랑 토론하는겁디다, 걔들 반론이라는게 이미 제가 다 넣어본 변수들이었고요, 오히려 감정소비만 됩디다. 의미없는 미개한 생체육신들과 대화 하기도 싫고요 이름도 알리고 싶지 않아요 채권투자 한거 이자 받으면서 걍 고요하고 편안한 즐거움 의 행복을 누리면서 살고 싶을 뿐입니다요. 

 

그런데, 실험의 한계가 있더라고요. 나는 의학 을 파고 싶어요. 개인적인 인프라도 부족하고 시대의 한계도 있고, 그래서 제가 한 진리탐구 를 팁으로 다른 사람이 실험도 하고, 시대를 넘어 내 이야기에 관심있는 이들이 더 헤쳐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출판을 합니다. 단지 이뿐이예요. 

 

채권투자 는 내가 보탠거고, 저 모두가 데카르트 의 방법서설 의 진짜 글들이야 저게.

 

데카르트 가 채권투자 로 여유있게 사는겨. 아빠는 브르타뉴 파를레망 의 사법직 이었고 엄마쪽도 살걸랑 낳자마자 죽었지만. 집이 여유가 있고 유산 받은거로 채권투자 에 그 이자 받아먹으면서 산겨. 

 

이걸 국부론 을 보면 제대로 이해가 되는데, 

 

In France, a much greater proportion of the public debts consists in annuities for lives than in England. According to a memoir presented by the parliament of Bourdeaux to the king, in 1764, the whole public debt of France is estimated at twenty-four hundred millions of livres; of which the capital, for which annuities for lives had been granted, is supposed to amount to three hundred millions, the eighth part of the whole public debt. The annuities themselves are computed to amount to thirty millions a-year, the fourth part of one hundred and twenty millions, the supposed interest of that whole debt. These estimations, I know very well, are not exact; but having been presented by so very respectable a body as approximations to the truth, they may, I apprehend, be considered as such. It is not the different degrees of anxiety in the two governments of France and England for the liberation of the public revenue, which occasions this difference in their respective modes of borrowing; it arises altogether from the different views and interests of the lenders.    

 

국부론 마지막 이 국가부채이고 여기 나오는 말인데, sinking fund 씽킹펀드 가 자주 나와. 잠기는 펀드 라는게, 17세기부터 유럽이 채권을 발행해 전쟁자금 충당을 위해. 하다하다가, 채권 이자 지급을 못하는겨 재정이. 채권 상환도 못하고, 기존 부채 를 갚기 위해서 발행하는 채권이 씽킹 펀드 여. 상환 대신에 사람과 회사가, 대신 이자 받는걸로 전환을 해. 이게 애뉴어티 포 라이프. annuity for life. 죽을때까지 받는 연금 이야. 이게 특히나 프랑스 가 많다는겨. 프랑스 부채 의 1/8 이 애뉴어티 포 라이프 야. 연금 자체로는 전체 부체의 1/4 이고. 이게 잉글랜드 보다 몇배가 큰겨 프랑스가. 스미스 가 추정컨데, 저 뒤에 나오는 문장인데, 잉글랜드 사람들은, 저런 돈 잠기는 걸 싫어해. 잉글랜드 인간들은 상공업 인간들이고 돈을 계속 돌려야 해. 그래야 가치가 커져. 그런데 프랑스 는 사농공상 이여 얘들이. 일순위가 기사 에 군인 되는겨. 또한 이게 카톨릭 과 프로테스탄트 의 차이야. 이 차이를 언급한게 막스베버 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어쩌고고. 카톨릭 애들은 기사 군인 을 하려하고 프로테스탄트 는 장사 를 하려해. 이게 또한 프랑스 경제 가 근본적으로 망가진 이유고. 프랑스 인간들은 걍 일생을 편안히 집에만 있어서 연금 타먹는게 속편한겨. 결혼 도 안해. 이제 근대여. 돈번 인간들은 귀족여자가 눈에 들어와. 여자 란 말이야, 배운 여자 더하기 꾸민 여자 가 뷰티풀한거야. 귀족 여자 들과 평민 여자들은 천지차이여 이게. 귀족이 아닌 돈번 남자들은, 평민여자가 눈에 안차, 그런데 귀족여자와는 결혼을 못해. 차라리 혼자 사는겨. 데카르트 가 이 두 조건의 인간이야. 데카르트 가 자기 서번트 여자 사이에서 딸 낳은 이유여 이게. 므쓔 라는 건 나중에 붙여주는 말일 뿐이야. 

 

아이 띵크 데어포어 아이 엠. 

 

아이 엠. 이야. 아이엠 후아이엠. 이여 저건. 데카르트 는 계속 나라는영혼은 불완전해요 나 신 인정해요 이단아니예요 해대지만, 자기만의 독보적인 명제 라며 꺼낸 단어를 보면, 나 는 신 이란겨 저건. ㅋㅋㅋ. 

 

나 는 영혼 이고, 나 는 생각하는 나 이고, 나는 리즌 이고 스피릿 이야. 그 근거는 생각하다 여. 

 

저게 데카르트 만의 제1 원칙 이고, 근본원칙이고, 우주에서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센턴스야. 확실하다 증명가능하다, 영어로 certain, evident. clear 이 말을 계속 써. 더 가서, 나는 앞으로 확실하고 증명가능한것 만 나만의 센턴스로 나만의 명제로 취할테요, 

 

문체가 말이야, 몽테뉴 의 에쎄 여. 걍 자기 생각을 말하듯이 써. 데카르트 의 글 뿐이 아니라, 유럽애들 모든 글들이 다 저래. 철학책 들 이 저렇고 정치학책들이 저렇고, 국부론 도 저런 문체야. 우주에서 문어체 구어체 구분하는건 오직 조선에만 있는겨 이건.

 

아, 글들이 아주 분명하고 명쾌해. 

 

천상, 아이 , 원문을 봐야해. 번역본 만으론  당췌 제대로 이해가 안되요 ㅋㅋㅋ. 야 좀 번역문에, 그 원래의 워드들 이라도 좀 써라. 귀찮게 원문 뒤져보게 하지 말고. 

 

 

Concluding Unscientific Postscript to the Philosophical Fragments (DanishAfsluttende uvidenskabelig Efterskrift til de philosophiske Smuler) is a major work by Søren Kierkegaard. The work is a poignant attack against Hegelianism, the philosophy of Hegel, especially Hegel's Science of Logic. The work is also famous for its dictum, Subjectivity is Truth.  

 

키에케코 의, 철학적 파편들에 대한 싸이언티픽하지 않은 후기 를 포함하며, 라는 책 에서 나오는 말이, 써브젝티비티 이즈 트루뜨. 서브젝트적인것 이 참이다. 라는 센턴스 가 있는데.

 

세상의 진리 라는건, 써브젝트적 인 것이야. 

 

이건 아리스토텔레스 문법 이고, 플라톤 의 이데아 여 또한. 키에케고 는 더 가서, 아리스토텔레스 의 우시아 에쎈스 서브스턴스 라는 서브젝트 의 자리 의 것만이 진짜다 라고 하는거야. 플라톤 의 이데아 가 참이지 에이도스 라는 세상 이라는 그림자 는 참이 아냐. 리앨리티 가 아냐. 

 

그런데, 저 써브젝티비티 라는 서브젝트인 것, 은, 저게 진짜 리앨리티 고 참 이지만, 찾아내기가 어려운겨. 

 

Subjective truth is essential or ethico-religious truth. It is not composed of propositions or perceptions of the external world, but of introspection, experiences, and especially one's relationship with God. 

 

서브젝티브 트루뜨. 라는건, 이쎈셜, 엣센스적 본질적인거고, 에띠코-릴리져스 여. 에띡스 라는건 모랄이고 이 모랄 인건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능력이야. 이건 신앙적인겨,  애매한겨. 이 써브젝티브 트루뜨 는, 외부 세상의 명제들 인식들 에 있지 않아. 오직 말이지, 인트로스펙션, 내부관찰, 경험들, 그리고 신과의 독특한 관계에서 만으로 드러나. 

 

알수 없다 고 하지 않아. 알수 있어. 그 방법이

 

Indirect communication requires appropriation on the part of the receiver. The receiver must experience or have experienced what is being communicated, not just hear it.  

 

간접적인 커뮤니케이션 소통이야, 이건, 수신자 쪽의 어프로프리에이션 을 필요로 해. 어프로프리에이션 이란건, 아드 프로프리오, 아드 는 적극적인거고, 프로프리오 는 프리오 가 근원 뿌리에 선조아빠야 거기까지 프로 가는거야.  적극적으로 쟁취하는게 appropriate 이 단어여. 수신자 쪽의 적극적 채택 을 필요로해. 수신자가 능동적으로 찾아 헤매야 햐 미친년처럼. 수신자 가 경험을 반드시 해야하고, 경험해왔어야 해, 소통 되어 오는 것을, 단지 들어서 만은 안돼. 커뮤니케이트 야. 적극적으로 대화하는겨 이건. 누구와, 인트로스펙션 에, 신과의 관계 여. 

 

Human self-reflection is the capacity of humans to exercise introspection and to attempt to learn more about their fundamental nature and essence

 

쎌프-리플렉션, 이라는겨 이게, 근본적인 네이쳐 와 에쎈스 에 대해 알고자 하는 시도 이고, 내적 관찰 을 행하는 능력 이야. 

 

 

인트로스펙션.의 어디를 인트로, 안으로 들어가는겨? 나 여 나. 나 라는 스피릿, 영혼 이야. 

 

대체 이 나라는 스피릿 을 어떻게 들여다 보냐는겨 이거. 이거  애매한 말이야 진짜. 말이야 쉽지만. 

 

이, 나 라는게, 데카르트 의 생각하는 나, 고 후아이엠 의 나 여 이게. 그런데 이 나 라는 영혼 그 자체는, 알아내기가 너무나 힘들어. 써브젝트 란 단어의 속성이야. 불가능 하다고 까지 이야기하는거야 써브젝트 를 바라본다는 것은. 

 

이걸 곰곰히 생각하면  재밌고, 신비로운겨 이건. 

 

Hence, human knowledge is reduced to two elements: that of spirits and of ideas (Principles #86). In contrast to ideas, a spirit cannot be perceived. A person's spirit, which perceives ideas, is to be comprehended intuitively by inward feeling or reflection  

 

조지 바클리, 의 말이 계속 돌아서리 말이야. 이게 참 재밌는 건데, 

 

George Berkeley (/ˈbɑːrkli/;[5][6] 12 March 1685 – 14 January 1753)   

 

데카르트 가 1596년생이고, 거의 백년후 태어난 인간이, 조지 바클리 인데, 아 내가 좋아하게 된 아이리쉬 인간인데 이전 몇번 언급한. 버클리 가 아니래 아이리쉬 발음 바클리 로 읽으래.

 

이 바클리가 하는 말이 계속 남아서리, 이미 데카르트를 알어 이인간은. 인간의 지식이란건 두 가지 근본적 인자들로 환원 이 돼. 스피릿 과 아이디어 여. 

 

이 인간의 이 말이 참 신선한데 나는, 스피릿 은 퍼시브, 인식구조에 들어와서 포착 될 수 가 없어. 인간의 스피릿 이란건, 아이디어 를 퍼시브, 포착하고 통로로 들어와서 해석해서 인간의 사유세상에 심는거거든. 

 

스피릿 이 아이디어 를 물어와서 인간이 언더스탠딩 을 하는겨 이게. 

 

아이디어 라는건, 오브젝트적인겨 그래서. 이걸 데카르트 의 성찰 이란 책을 번역한걸 보면, 전혀 이 오브젝트 서브젝트 라는걸 번역하는 애들이 전혀 전혀 개념 을 이해 못하고 번역질을 해대는데, 아 정말 이땅의 철학 수준은 너무나 똥떵어리야. 오브젝트 라는건 서브젝트 가 바라보는 완벽한 전혀다른 구분되어지는 대상이여. 

 

스피릿 은 써브젝트여. 아이디어 는 오브젝트 여. 스피릿 이 아이디어 를 물어와서 대갈빡에 심는겨. 

 

아이디어 는 그래서 인간이 눈치채고 알수 있어 이건. 퍼시브 의 대상이야. 트랜지티브 건너가서 닿는 다리의 종착지여 목적어여. 아이디어 는 알수 있어.

 

그러나 말이지, 저 아이디어 를 물어오는 새 bird 인 스피릿 , 이놈의 스피릿 은 알 기  어려운겨. 

 

스피릿 이란게, 쎈쓰를 관할하는 총체 여 이게. 이 스피릿 이 날라다니면서 아이디어 를 물고 오는겨. 그런데 이놈의 스피릿 에 대한 정체, 이 스피릿 의 내부구조 를 어떻게 아냐는겨. 

 

이 스피릿 을 조지 바클리 는, 인튜이티블리, 직관으로 알 수 있다는겨. 

 

이 스피릿 이 써브젝트적인 진리 야 참이야. 이걸 키에케고 는 인트로스펙션, 내쩍 성찰 로 알 수 있다는겨. 더하여 경험들, 괄호 하고 머여? 신과의 경험이야. 이걸로 저 참인 진리인 세상을 알수 있다는겨. 

 

이 스피릿 이라는 나 를 알면, 신 이 해결이 되는겨 이게. 

 

키에케고 는 근대 가 만들어낸 최고의 신학자야 최고의 그리스도적인 인간이야. 그래서 실존주의 애들이, 가장 싫어하는게 또한 실존주의 창시자 라는 키에케고 야. 

 

Herbert Read wrote in 1945 "Kierkegaard’s life was in every sense that of a saint. He is perhaps the most real saint of modern times."[308]  

 

허버트 리드, 영국 시인이자 역사학자는 1945년에 썼다, 키에케고의 삶은 모든면에서 성인 쎄인트 의 것이었다. 그는 아마도, 근현대의 가장 리얼한 성인 이다.

 

키에케고 는 위대한 인간이야. 

 

 Individuals need to gain their souls from the world because it actually belongs to God. Kierkegaard has no interest in external battles as Karl Marx does. His concern is about the inner fight for faith.  

 

고립 격리 로 비롯되는 인간에 대한 문제, 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대조적으로 대비되는 두 인간이 키에케고 와 칼 막스여. 칼 막스 는 인간의 문제 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민들이여 대동단결! 세상을 바꾸자! 왜? 인간의 네이쳐 본질은 칼 막스 라는 애는, 노동으로 봤거든, 노동자들이여 연대햐 니덜이 주인잉께 세상과 싸우장께? 

 

이런 애는, 인류에서 가장 해악한 애들이고, 세상을 바꾸자 라는 말 하는 들은, 걍 지져 밟아 죽여야해. 생을 위해서. 왜? 저런 들이 결국 수많은 인간들을 학살하고 굶주리고 자기만의 권력 딸딸이를 쳐대온게, 인간 역사의 수천년간 항진명제 였거든. 

 

키에케고 는, 인간의 본질 은, 써브젝트에 있는겨 ㅋㅋㅋ. 써브젝티브 트루뜨 여. 적극적 인  적극적인 탐색 어프로프리에이션 을 해야 해. 신 과도 대화 해보려 해야 하고. 적극적인 탐색이란건 머여? 조지 바클리 의 저 스피릿 을 인튜이션 으로 바라보는 인트로스펙션 이야. 스피릿 이라는 서브젝트 를 저걸 어떻게든 디다 봐야해. 저 써브젝트 가 돌아다니며 물고온 아이디어 도 디다봐야 하는건 둘째고 이 써브젝트 에 대한 경험을 어떻게든 하려 해야 해. 인간의 문제는 쎌프-리플렉션 으로 해결이 되는겨 이건. 

 

The Enlightenment was driven by a renewed conviction, that, in the words of Immanuel Kant, "Man is distinguished above all animals by his self-consciousness, by which he is a 'rational animal'." In conscious opposition to this tradition during the nineteenth century, Karl Marx defined humans as a "labouring animal" (animal laborans).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Sigmund Freud dealt a serious blow to positivism by postulating that, to a large part, human behaviour is controlled by the unconscious mind.    

 

임마누엘 칸트 는 인간을 이성적 동물 로 보고, 자기-의식 이란걸로 모든 동물보다 우위에 있다, 칼 막스 는 인간은 노동의 동물이므로, 노동자 가 최고 고 노동이 인간본질이고 세상을 때려부셔라 연대해서 여. 얘들은 세상을 바바리안 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환장한 애들이고,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역사 자체를 모르고,  개무식한 애야 이 칼 막스란 애는. 프로이트 는, 무의식적인 마인드 가 인간 행동을 통제한다 로 보다. 

 

키에케고 나 데카르트 의 인다이렉트 커뮤니케이션 에 성찰 이란건, 불교 자이나교 힌두교 의 댠나 사맛디 라는 메디테이션 과 달라. 

 

나는 부처여 나는 지바요 아트만 이요 해대면서 가만히  멍때리고 있으면서 도딲는 랄지란건 아무런 공부 도 없고 이성도 없고 감성도 없어. 오직 지들만의 센턴스 하나가 제1 원리고 원칙이고 저것 저 센턴스 만 주구장창 염불질 하면서 허송세월하는겨 저게. 저걸 제대로 하는 인간은 단 하나 없어. 너무너무너무 심심하걸랑. 몇시간 며칠 하다가  배고파서 헷짓하는겨 그래서 이스턴이 망한거야 저 허섭한 멍때리기로. 

 

데카르트 가 꼳힌게 저 스피릿 이야. 조지 바클리 는 백년후에 태어난 인간이고, 데카르트 의 센턴스를 받아서 더 풀은것 뿐이야. 

 

저 스피릿 이 있다는 확신이 드는겨 데카르트 가. 저 같잖은 센턴스 에 자기는 벌벌 떨린겨. 이걸 느끼게 돼 데카르트 의 감정선을 쟤 책을 읽으면. 

 

For Scotus, the axiom stating that only the individual exists is a dominating principle of the understanding of reality. For the apprehension of individuals, an intuitive cognition is required, which gives us the present existence or the non-existence of an individual, as opposed to abstract cognition. Thus the human soul, in its separated state from the body, will be capable of knowing the spiritual intuitively.   

 

저런건, 스코투스 조차 이야기 한겨. 스코투스 의 말을 5백년 후에 조지 바클리 가 그대로 써먹어, 스피릿 은 직관으로 알수 있다고. 스피릿 과 아이디어 를 나누어서 구분하는건 바클리 의 특허품이고. 아 요고 맘에 든단 말시. 이게 그대로 키에케고 로 가는겨 이게. 저 한가운데 데카르트 가 있는거고. 

 

그런데, 데카르트 는, 다른겨, 스코투스 는 독실한 프란치스코 수도사 고 조지 바클리는 주교 여. 

 

데카르트 는, 아예 신의 족쇄 를 벗어나버린겨 그러면서 살 떨렸던건데. 

 

 


省,甲骨文=(生)+(目,察看),造字本义:静心冥想内视,观照自我本性,戒除非分之想。金文承续甲骨文字形。隶书则将篆文写成"少" 。"目"在"木"上为"相"* ,表示观察瞭望;"目"在"性"(心)下为"省",表示观照本心  

 

察,篆文=(宀,庙宇)+(祭,降神祭祀),造字本义:审视、细究祭祀时显示的神迹。 

 

다음 나오는게 라틴어책 성찰 이야. 이런 번역어 원문은 나중에 보고 말이야. 방법서설 이나 성찰 이나 모두 일본말이고, 그래도 인트로스펙션 리플렉션 해대는 말이 극동에선 성찰 인데, 성 이란건, 갑골보면, 눈목 글자 위에 나무가 자라는 생 글자야. 정심명상내시, 관조자아본성, 고요한 마음이 명상해서 안을 보는겨. 명상 이란게 어둠 이고 눈감은 상황의 이미지고. 자아 본성을 관조 한다는게 성 이야. 찰 이란건, 묘우, 사당안에서 강신제례 제사지내는건데, 심시 세구제사시현시적신적, 자세히 살피는겨, 제사할때 나타나는 신의 자취 를. 내 안을 보면서 신 흔적 찾기 가 성찰 이야. 키에케고 의 어법 과 딱 맞아 이게. 인다이렉트 커뮤니케이션 이야 성찰 이란게. 

 

아 피곤타, 나중에 이어서 계속 쓰겠다. 아 정리하고자 한건 시작도 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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