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ld Duck (original Norwegian title: Vildanden) is an 1884 play by the Norwegian playwright Henrik Ibsen. It is considered the first modern masterpiece in the genre of tragicomedy.[1] The Wild Duck and Rosmersholm are "often to be observed in the critics' estimates vying with each other as rivals for the top place among Ibsen's works.
빌란은, 들오리 라는 연극인데, 1884년. 민중의 적이 1882년 이고, 2년 후, 54세 에 쓴건데, 비희극 장르에서 마던한 것으로 최초 로 간주되는 작품. 들오리 와 로스머쉬집 은 입슨 작품의 최고 두 작품으로 겨룬다.
Rosmersholm (pronounced [ˈrɔ̀sməʂˌhɔɫm]) is a play written by Norwegian playwright Henrik Ibsen and published in 1886 by the Danish publisher Gyldendal. Rosmersholm has been described as one of Ibsen's most complex, subtle, multilayered and ambiguous plays
발음이, 로쓰머쉬홀음. 이야 발음기호로. 홀음 이 집 이고, 최고의 연극대본 중 하나인데 말야, 웃기게도 이런 것 하나 한글로 번역이 된게 없어요.
이 입슨 의 작품들은 정말 최고야 이게. 하나하나, 야 난 이런게 전혀 듣보잡 취급 받는게 어이가 없는데, 이 입슨 의 글들. 어찌 이럴수가 있냐 말이지. 머 이나라 지쩍 수준 영혼 수준으로 이해가 된다마는.
들오리, 가 트래직코미디, 이것도 코메디거든 ㅋㅋㅋ. 그런데 참 슬픈 코메디야 이게. 민중의 적 도 그거 코메디야, 저 토마스 의 짓들은 코메디야. 집에 돌 날라오고 다 망해가는데, 정의여! 민주여! ㅋㅋㅋㅋ. 입슨 은 정확하게 이 관점으로 풀은거야. 이걸 하나 제대로 설명하는 애들이 없을텐데 특히나 이 조선 빠닥에선.
들오리,는 민중의적 의 애매모호 를 아주 적나라하게 입슨이 들추는거야. 니덜이 말하는 정의 니덜이 말하는 이상 니덜이 목메는 추상들이 과연 어떤 거니?
- Håkon Werle, a wholesale merchant
- Gregers Werle, his son
- Old Ekdal, the former business partner of Håkon Werle
- Hjalmar Ekdal, Old Ekdal's son, a photographer
- Gina Ekdal, his wife
- Hedvig, their daughter, aged fourteen
호콘 베를레, 그레게쉬 베를레, 부자 야. 잘 살아. 아들 그레게쉬 가 일명 정의의 사도야. 이상 이데아의 실현을 추구해.
엑달 부자, 얄마르 엑달 이 아들이고, 아빠 엑달 이 호콘 베를레 와 과거 동업했다가, 잘못해서 감옥살이하고 죄인 딱지로 호콘 집의 필사 를 하면서 용돈벌이해. 얄마르 도 호콘 베를레 의 돈으로 사진일을 하고 먹고 살아.
얄마르 엑달의 부인이 지나. 얄마르 와 지나 가 아빠 엑달 을 모시면서, 14세 된 딸 헤드빅 과 살아. 이 가족의 생계는 전적으로 호콘 베를레 라는 늙은이 재벌상인이 뒷배를 봐주는거야.
호콘의 아들 그레게쉬 가 아빠를 혐오해. 죽 보면 자기 엄마 가 죽은건 아빠 호콘 탓이고 얘한텐, 아빠는 부정한 인간이고, 얄마르 의 아빠 엑달도 아빠탓에 죄인이 된거고, 얄마르 는 친구인데 학교다닐땐 그레게쉬 가 존경하다시피 한 친구야 가난해져버렸지만. 얄마르 는 내적으론 허세가 심하고, 호콘 때문에 먹고사는걸 무지 감사하게 생각을 해.
그레게쉬 가 간만에 아빠만나러 산속 공장에서 내려와. 그리고 친구 얄마르 를 만나고, 얄마르 가 지나 와 결혼하게 된 과정을 들어. 지나 라는 여자는 예전 자기집에서 일하던 여자였어. 얄마르 집에 자기 아빠 호콘이 돈 대주고 머해주고 하는 이유를 자기만 짐작하고 아빠한테 따지는겨. 저 지나 라는 여자를 아빠가 수작부릴때 엄마가 홧병으로 죽었다고 생각하거든. 지나 가 집 그만둘때 얄마르 와 만나서 결혼한거고, 얘 짐작으론 저 헤드빅 이란 딸은 얄마르 딸이 아니라 아빠 호콘의 딸이란거지.
장치를 하나 더 만들어. 헤드빅 은 실명할 수도 있어 의사의 진단이야.
호콘 베를레 는 지금 시력이 안좋아, 실명할 거 같아.
얄마르 와 지나 의 집에 호콘 이 와, 자기 아들이랑 대화하려고. 이때 관객이 볼 수 있는건 지나 가 호콘 을 보면 당황을 해. 그레게쉬 가 자기집 하숙들어온다고 할때도 탐탁치 않아해.
Summons of the Ideal
써몬즈 오브 아이디얼, 영어로 번역한건데, 그레게쉬 는 아이디얼 을 추구하는 인생이야. 써몬즈 라는건, 저걸 이상의 요구. 이렇게 번역하던데, 써몬즈 는 써브 에 모네오, 모네오 라는건 경고 하고 쎄게 말하는겨, 바닥에. 아주 쎈 주장의 말이야. 아이디얼 을 강력히 주장하는거야. 아이디얼 이 삶의 목표라고 강하게 설교하는겨. 얘의 모토야, 이상의 실현! 인간은 이걸 위해 살아야 한다는겨 얜.
그레게쉬 가 얄마르 에게 자기가 짐작한 걸 다 까발기는겨. 니 마누라 지나 가 우리집에서 일했고, 그때 우리 애비가 추군댔고, 지나가 그만두고, 너가 지나랑 그때 결혼한거고, 그리곤 갑자기 우리애비가 너 사진일하게 돈 대주고 집도 대주고, 수상하지 않니? 저 헤드빅 은 누구딸일까?
얄마르 가 완벽하게 돌아버리는거야.
그레게쉬 는 이상의실현 이야. 얘 입장에선, 서로 비밀을 모두 털어놓고, 서로 용서를 하고, 다시 시작하는게 얼마나 아이디얼하냐 이거야. 그런데 얘가 와서 보니 난장판이 된거야. 아니 얄마르! 이제 서로 알게되었으니까 용서하고 다시 더 새롭게 시작하면 행복하게 살수 있어! ㅋㅋㅋ. 그레게쉬 의 대사가 완벽하게 코메디야 이게. 그래서 트래직 코메디 하는건데.
들오리 라는것도 호콘 이 사냥하다 날개만 맞춘걸 저 집에 준거거든. 얄마르 입장에선 기분이 나쁜겨 저 들오리도 결국 호콘이 지 딸 헤드빅 좋으라고 준거거든. 가장 아끼는 들오리야 헤드빅이.
그레게쉬 가 헤드빅 한테, 너의 아빠 가 돌아오게 하려면, 들오리를 죽이면 아빠가 돌아오는겨 할아버지한테 부탁해서 죽여달라고 해. 그러겠다고 하지만 아침에 마음이 바뀌어.
얄마르 는 딸 헤드빅 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망상에 휩쌓여. 아 저러다가 쟨 호콘 에게 갈꺼야! 그때 탕 하는 총소리에, 그레게쉬 는 기뻐해 아냐 헤드빅이 널 사랑하는 증거로 할아버지한테 부탁해서 들오리를 죽였어.
헤드빅이 자기 심장에 대고 쏘고 죽으면서 끝나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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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는 강하게 부정해, 호콘 이 자기한테 추근댄게 맞다. 난 그게 싫어서 나왔고 그때 당신을 만나서 좋아서 결혼했고 내가 대체 그얘길 왜 하겠냐. 헤드빅은 당신딸이 맞다 확실하다.
저 대본에서는, 정황증거 만 유추 할 뿐, 헤드빅 이 호콘 의 딸이다. 라고 절대 입슨 이 쓰지 않아.
몰라 ㅋㅋㅋ. 전혀 알수 없어. 저 대본을 본 저 연극을 본 대부분은 지나 말은 거짓이야 라고 아마 생각할 텐데, 글들 을 유심히 보면, 지나 말이 거짓이다 라고 말할 수 없어. 참이다 라고도 말할 수 없어. 몰라 몰라 저 대본으론. 절대 입슨이 밝히지 않아. 지나 입장에선 옛날 집주인 추근대는 애가 오니까 불편할 수 있는거고, 자식이랑 의절하고 유산을 헤드빅에 엑달 할배에게 주는 유언장도 옛날 동업자에 자기가 한때 좋아했던 짝사랑 여자라서 준 것일 수도 있어. 몰라 전혀.
"Deprive the average human being of his life-lie, and you rob him of his happiness."
의사 렐링 의 유명한 대사야, 일반적으로 인간의 삶에서 라이프-라이, 삶-거짓. 을 제거하면, 너 그레게쉬 는 그에게서 그의 행복을 강탈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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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얼의 써몬즈. 이상을 실현하자는 삶.
이상, 정의, 이런게 참 멋져 보이는 거지만 말이야.
입슨 은 확실히 키에케고 와 뗄레야 뗄 수가 없어. 키에케고 를 보면 입슨 의 작품이 보여.
내 사유 에 가장 근접한 인간이 키에케고 인데 보니까, 난 예전엔 이 키에케고 를 전혀 보지 않았어, 입슨 때문에 대체 먼 이야길 했나 하고 보게되었는데 걍 밤에 누워서 한시간 보면 대갈 아프고.
아, 물론 키에케고 가 내 생각의 테두리 안에 있는거고, 내가 만든 사유 는 키에케고 에서 더 가는 거지만, 나의 사유에 가장 잘 따라온게 이 키에케고야. 아 이 인간 문법이 졸 까다롭던데 그렇다고 내가 얘 껄 디비 파긴 졸 구찮고, 어차피 내 생각 안에서 놀아나는 애들이 웨스턴 모든 애들일 뿐이니 내가 쟤들을 따로 연구할 시간이 있겄니 봐봤자 걍 확인하는 수준이고 그 시간이 아까울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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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케고 의 내용이 위키영어로 아주 구석구석에 방대한데 다른 이들과 달리.
Søren Aabye Kierkegaard (/ˈsɒrən ˈkɪərkəɡɑːrd/ SORR-ən KEER-kə-gard, also US: /-ɡɔːr/ -gor; Danish: [ˈsœːɐn ˈkʰiɐ̯kəˌkɒˀ] 5 May 1813 – 11 November 1855[8]) was a Danish philosopher, theologian, poet, social critic, and religious author who is widely considered to be the first existentialist philosopher.
싸런 키에케고. 키에르케고르 는 오직 일본발음이고. 1813-55, 42세에 죽었는데, 실존주의 라는 일본말 의 첫번째 철학자로 간주된다.
Albert Barthod began translating Kierkegaard's works into German as early as 1873.[216] Hermann Gottsche published Kierkegaard's Journals in 1905. It had taken academics 50 years to arrange his journals.[217] Kierkegaard's main works were translated into German by Christoph Schrempf from 1909 onwards
키에케고 는 덴마크어로 쓴 덴마크 사람이야. 어찌보면 유럽에서 듣보잡이야. 아 이 노르웨이 스위든 덴마크 가 이게 골때리는 나라여. 얘들이 영어 를 아주 유창하게 쓰는게 90퍼여. 핀란드도 마찬가지고. 게르만본토 애들에 핀란드 우랄어가 영어 와 어찌보면 전혀 달라, 프랜치 스페니쉬 의 영어 관계랑은.
노르웨이는 덴마크어로 오육백년을 살았지만, 입슨 을 낳았어. 입슨이 덴마크어로 썼다고 해서 적폐냐? ㅋㅋㅋ.
일본어를 정치인이 써대면 뉴스 메인꼭지에 나오는 나라가 이 조선땅이야. 모~든 말글이 일본어 인 이 나라가 웃기게도 일본 소리를 낸다고 적폐 소릴 들어. 유럽애들이 이런걸 보면 참 어이없을텐데. 아 내가 이런걸 영어 싸이트를 만들어서 제대로 알려주까 ㅋㅋㅋ. 귀찮다. 정말 이 조선 애들의 후짐은 우주 최강이야.
키에케고는 듣보잡이야. 독어로 사후에 번역이 되어서도 끽해야 20세기 초에야 좀 번역이 된겨. 프랑스 사르트르 가 1908년생이야. 얘가 젊을때 키에케고 가 번역이 된거고 이걸 본겨 사르트르는. 실존주의 하면 키에케고, 독일땅 니체 가 1844년생이고 독일어로 먼저 번역이 되어서 얜 접하고, 프랑스는 사르트르에 러시아는 도톱이거덩. 키에케고 를 보고서 저들이 연타로 느낀게 아니라, 저런 생각이 동시다발적으로 스민거야 저 시대 웨스턴에.
그런데 말이지, 키에케고 는 저들과 달라. 결정적으로 다른건, 종교 야 종교.
실존주의 애들은, 그리스도 를 버렸어. 지들은 말로는 안버렸다 라고 할 지언정. 도톱이도 뒈질때 성서를 무심코 편 구문이 요한복음의 밀알 이라며 자기는 밀알을 뿌렸네 해대고 죽었다지만, 실존주의 애들이 가장 문제가 이 신앙관이야.
키에케고 는 달라. 이 키에케고 의 신앙관이 나에게 근접한데, 물론 따라올려면 멀었지만 나에겐.
얜, 당시까지의 신앙관을 강하게 거부하는겨. 데카르트 스피노자 가 오컬트 짓 하지 맙시다! 라고 했지만, 여전히 오컬트인겨 그래도. 깨였다고 하는 애들의 신앙 조차도 19세기 초에.
더하여, 저놈의 아이디어, 아이디얼, 이따위 추상명사, 앱스트랙트 오브젝트 들, 1789 프랑스 대학살 부터 유럽전체가 흔들려. 인민들의 시대여 바람이 부는겨 이게. 이때 또한 다시 해석되서 등장하는게 역시나 플라톤 이야. 플라톤의 이데아 가 그리스도 로 둔갑한게 중세유럽천년 인데, 이 이데아 를 그리스도 에서 벗기고, 사회 로 갖고 오는겨, 져스티스 라는 아이디얼 로. 이게 인민애들의 사상의 툴로 쓰이는겨. 이게 1848년 유럽 혁명의 바람이야. 요때 키에케고 가 딱 35세여.
져스티스 나 그리스도 나, 저게 모두 공리 놀이야. 악시오마 라는.
써몬즈 오브 아이디얼! 삶의 아이디얼 을 추구해야 해! 세상은 남들을 위해서 사는거야! 희생이고 사랑이고 군중들을 위해야 해!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해! 정의로와야 해!
멋진 말같잖아. 저게 공리 라며.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를 왜 배우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아 이런 역사에서 이런 문제로 정의로운 인간 정의로운 나라가 안되었구나, 역사를 보니 저런 시행착오가 있었네 우리는 저렇게 하면 안되는군 이래야 정의가 실현이 되지. 정의로운 나라라는 정답에서 정의로운 인간이란 정답에서 쟤는 저게 이게 문제였군.
모두 개소리야 저게.
Notably, he wrote: "Science[19] and scholarship want to teach that becoming objective is the way. Christianity teaches that the way is to become subjective, to become a subject."[20] While scientists can learn about the world by observation, Kierkegaard emphatically denied that observation alone could reveal the inner workings of the world of the spirit.[21]
과학과 스칼러쉽, 강단의학문 은 오브젝트적이 되는 것이 정도 라고 가르치길 원한다. 그리스도는 가르친다 정도 라는건 서브젝트적이 되는것 이라고, 서브젝트 가 되는 것 이라고. 과학자들은 세상에 대해 관찰로써 배울수 있지만, 오브젝트적으로, 그러나, 관찰이라는 오브젝트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영혼의 세상의 내부작업들을 드러낼 수 있다 는 것은 거부했다.
스칼러쉽 이란게, 스콜라 에서 온거고 스콜라 마인드고 이게 소위 신학외의 철학에 인문학으로 보면 돼 학계에서 스콜라 들 마냥. 철학이란걸 마치 과학처럼 오브젝트 라는 동떨어진 대상 으로 다루는데, 철학에 사회니 역사 니 이따위는 말이지, 오브젝티브적 으로, 과학자 가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방식으로 볼 수 없다는겨. 서브젝트적 이란겨 신앙처럼.
신앙은 서브젝트적이야. 서브젝트는 서브젝트 를 볼 수 없어. 나 는 나 를 제대로 못봐. 이건 먼말이냐면, 신 이란건 오브젝트 가 아녀, 서브젝트 란겨 저게. 내가 나를 몰라 제대로, 더하여, 나는 인간은 신을 볼 수 없어!
저게 더가서, 영혼의 세상 이란게 사회 에 역사 야, 인간사 라는게 영혼들의 이야기야. 저놈의 인간사 를 오브젝트 로 바라보면서 참이 머고 정의가 머고 드러낼 수도 없고 그따위 짓은 의미가 없는겨.
Johannes Climacus, in Concluding Unscientific Postscript to Philosophical Fragments, writes the following cryptic line: "Subjectivity is Truth". To understand Climacus's concept of the individual, it is important to look at what he says regarding subjectivity. What is subjectivity? In very rough terms, subjectivity refers to what is personal to the individual—what makes the individual who he is in distinction from others. Another way to interpret subjectivity is the unique relationship between the subject and object.
키에케고 가 가명들로 글을 많이 써 일부러 여러 관점으로 보려고. 웨스턴 애들의 디스코스 대화법 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익히는 툴이, 입장바꿔서 토론하는겨. 나는 리퍼블리칸 너는 데모크랫 이야, 그 입장으로 싸우는 게 아냐, 나는 데모크랫 으로 너는 리퍼블리칸으로 그럼 싸워봐. 리퍼블리칸 애가 데모크랫으로 가면쓰고 자기를 직접 까는겨. 이겨야 해 무조껀. 지금 대깨문한테 너 백만원 줄테니까 니가 적폐라고 생각하고 대깨문을 비판해봐, 라고 하면, 막 주장하면서 자기 알을 깨는겨 이게. 이 웨스턴 애들의 사유방법은 최고야. 개무식한 미개한 애들이나 허섭하게 이념 놀이를 하는거거든.
서브젝티비티 이즈 트루뜨. 키에케고는 서브젝트 는 진짜고 리얼하다는거고 알 수 있다는거야 이 말은. 저게 모두 아리스토텔레스 문법을 쓰는거고 기본적으로 플라톤 아리스토를 모르면 안돼. 이 조선 철학바닥에서 어느 누가 대체 플라톤 전집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을 제대로 본 애가 있겄냐고. 개무식한 이들이 저딴것들이 교수 랍시고 아 참 골때리는 땅빠닥인데 조선 이란게. 번역 조차 안하고 말이야 뭔놈의 철학이 어떻고 저떻고 학위를 쳐 받고. 양아치 들이야 이 조선 땅빠닥은.
조선인 은 말이야, 교회 목사 하는게 아냐.
조선 말 하는 인간은 말이야, 절에 가서 스님 하는거 아냐.
그리스도 에 대한 모독이야, 싯달타에 대한 모독이야.
오마이갓! Korean was the pastor in this church? ㅋㅋㅋ.
어떻게 니덜 지쩍 수준에 영혼 수준으로 중동에 가서 선교 를 해대니, 아프리카 로 가서 선교를 해대든 말든 ㅋㅋㅋ.
얘는 역사 라는 것 자체를 오브젝트 로 바라봐선 안된다는겨. 왜? 역사라는것도 서브젝티브적인거거든. 그런데 내 수준에서는 역사를 사회를 오브젝트 로 볼 수가 있어. 가장 위대한 역사가 가 오브젝트 로 제대로 역사를 보는겨. 웨스턴에 가장 위대한 역사가는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야.
그렇지만 대개는 역사를 서브젝트 적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어. 자기만의 인식론 자기만의 입장에서 보이는 것이고 이건 어려운겨. 서브젝트적인것은 참인데 정작 서브젝트 그 자체를 판단하는것은 매우 어려워. 이 이야긴 다음으로 넘기고 이 서브젝트 오브젝트는.
환장하는건 말이지, 역사 인간사 를 자기만의 정의 라는 잣대, 자기만의 공리를 절대공리 로 해서 완벽하게 오브젝트 로 바라보면서 사는 인간, 아 끔찍한겨 이게.
How close men, despite all their knowledge, usually live to madness? What is truth but to live for an idea? When all is said and done, everything is based on a postulate; but not until it no longer stands on the outside, not until one lives in it, does it cease to be a postulate. (Dialectic - Dispute)
- Journals of Søren Kierkegaard 1A75, 1835
인간들이란게, 거의 모든 배움에도 불구하고, 대게 살면서 거의 미쳐버리지않는가? 어떤 아이디어 이데아 이상을 위해 사는 것 빼곤 무엇이 진짜인가? 대부분 애들은 어떤 이데아를 위해 산다고 하지 않나? 모두가 말하여지고 행해질때, 모든 것은 어떤 포스튤레이트, 공리, 에 기반하고 있다. 그것이 저 밖에 있을 때, 인간이 그것 속에서 살지 않을때, 그것은 공리 가 되는 것을 멈춘다.
포스튤레이트 가 포스툴로 postulo. 내가 요구하다고, 근본적으로 요구하는겨 아무이유없이. 악시오마 는 그리스어고 라틴어의 영어가 포스튤레이트 고 똑같은 공리 야. 공준 으로 번역을 달리 하지만 걍 공리야 공리. 이놈의 공리 라는건, 못없애는겨 인간사에서. 저놈의 공리를 나와 별개로 밖에다 두고, 공리속에서 살지 말라.
공기가 오브젝트로 눈밖에 완벽히 있고 인간이 공기중에 살면 공기를 공리로 여기지 않아. 걍 당연시 되면서 의미가 사라져. 공기에 목숨걸지 않거든. 공기가 있는건 과학적 공리야. 인간사의 공리는 과학이 아닌겨, 서브젝트 인 내 안에서 깊게 탐색해야 한다는겨. 불확실한 신앙을 인간은 공리화해서 목숨거는 듯 사는거지. 이런짓은 모두를 죽일뿐
삶의 공리를 어줍잖게 오브젝트로 둬선 안된다는겨
모든 인간이 이놈의 공리 의 워드 로 사는겨. 아이디얼을 써몬즈 해대면서. 자기가 정의라며 남들에게도 강요질 하고. 결국 그 당사자는 망해 지옥이 돼 삶이.
공리 를 주창 해대는 애는, 사는게 아냐 자기 인생을. 공리 라는걸 아웃사이드 밖에다 설정하고, 평생을 저 밖에 낚여진 미끼 의 공리 를 좇아다니면서, 내가 정의요 내가 진리요 하면서 뒈질때도 저리 뒈져.
실존 이라는게, 에쎈스 보다 이그지스턴스 가 먼저 라는건, 우시아 에쎈스 라는 서브젝트의 자리 서브젝티브적인 것을, 나 나 나 나 보다 뒤에 두겠다는겨.
저건, 저따위 저마다의 공리 를 좇아가며 사는 인생은, 가짜 인생이야.
공리 놀이 하면서, 오히려 상대를 죽이는거고 상대를 지옥으로 만들어 집단을 지옥으로 만들고. 그러면서 정작 공리놀이 하는애는 여전히 공리 에 취해서 살다 죽어. 이 조선 빠닥에 특히나 정치 면에 저따위 들이 많고 하치리 가 그 스스로 뒈지면서 자기가 정의의 공리 의 오브젝트 인줄 알고 뒈지는 애들이 또한 대부분이야 ㅋㅋㅋ. 트래직코메디야 저게.
이모션 앤드 필링. 필링 은 게르만말이야 이모션 은 라틴어고. 내안의 공리적 인걸 탐색하는게 진짜 삶이라는겨. 이 실존주의는 이 이상 못나가 이게.
플레져 를 못 꺼내 ㅋㅋㅋ. 이건 엄청난거야 내 센턴스는. 니덜은 몰러. 수천년 이후의 신인류는 알아.
그래도 어디여 저때 저런 주장을 키에케고 가 하기 시작하는겨 다시. 그러나 이것 또한 몽테뉴 가 이미 16세기 에 꺼낸거야. 이 몽테뉴 란 분은 아 정말 너무 좋아. 내가 저 사람 이전 전기 간략히 소개하고 내가 저 사람 삶에 감하여 에쎄 를 꼭 봐야겠다 하다가 좀 보다가 아 저 깊이 에 감탄을 했는데 저 16세기 인간 몽테뉴.
키에케고 도 몽테뉴 적으로 자기 이야길 써. 저널 이란게 게르만애들 다이어리 일기 야. 저게 잡지 니 신문 이 아냐. 자기 일기를 쓴거야. 씽글 인디비주얼 이라는 혼자란 개인 을 설정을 하고. 저기서 수신자를 독자적개인 이라고 쓴것 또한 너 너 혼자 만의 삶 이란거야. 혼자 혼자 나 나 나 자체의 인생살기 란게 가장 중요하단겨 저게. 무엇을 알것인가? 지겨워 이놈의 무엇을 아는건가는. 나 나 나 나만의 진짜 인생 을 위해서 어떻게 어드래 진짜루 살것인가. 이게 키에케고 가 꺼낸 센턴스야.
쓰레기 공리 , 거 증명도 되도 않는걸 , 너무나 웃긴게, 너무나 황당한게, 수학처럼 제로가 있다 직선이 있다 머 이따위 공리도 아냐. 천국이 하늘에 있고 갓은 파더 고 타파스 를 하면 천국을 하고, 도덕을 철저히 지키고, 군중들을 사랑하고, 너를 위해 살지 말고 남을 위해 살아서 어드래 저드래 하라
말도 말도 말도 안되는 센턴스를 공리 로 떠받들면서 살아가는 모습들이 황당한거야 키에케고 입장에서는.
하물며 신놀이도, 저 신약의 센턴스 들이 진짜 제대로 된 공리야??
저따위 껄 증명 하는 것 조차도 귀찮아! 증명 되지도 않을 문장들을 하나님 모시듯 살아야 하는 인생이 너무나 너무나 억울하지 않슴메까??????
처절한 울부짖음 이야 이건.
키에케고 의 신 은, 상상 이상의 신이야.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어요!! 그러나 당신들의 센턴스 마냥 이해했다고 하는 그따위 신 이 신 이겄습니까?? 교회 에 신이 있는겨? ? 아! 저 대지에 저 수풀에 저 강에 바다에 새가 날라다니고 공기에 파도에 선선한 바람에, 저 하늘이 교회 천장이야 여기 자체가 교회야!! 새가 기도안한다고 나쁜 스피시즈여?? 당신들의 신앙이 그게 맞아??? 나의 신은 당신들이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야! 나의 신은 당신들만의 교회에는 가두지 않을거야!!
이 키에케고 는 고매한 신앙인이야. 이사람은 절대 에이띠스트 무신론자 가 아냐.
실존주의 애들이 그래서 키에케고 를 안좋아해. 저색끼 저거 머 그리스도 아녀? 니체 엉아 처럼 신은 없당께 뒈졌당께 창녀들 배떼기 위해서 위버멘슈여!! 해댐시 마음껏 마약에 떼씨베 진짜 실존을 해서리 매독걸려서리 십년 침대생활하다 뒈지는게 진짜 생이지! ㅋㅋㅋ.
사회 에 대한 공리 놀이나
저따위 신앙 놀이나, 똑같은겨 저건.
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23&aid=0003581797
쟤들도 저마다의 공리놀이를 하는거야. 자기들이 정의야. 자기들의 정의는 공리야. 증명 불가야. 나의 공리놀이로 생기는 손해는 똥은 컬래터럴 데미지 일 뿐이야. 결국 다 용서가 돼. 나의 공리가 하나님이거든. 나는 위대한 조선의 민족에 신앙인이니까.
끔찍한거야 저게.
무엇보다도, 저런 공리놀이 당사자의 인생은, 가짜 인생이야. 공리의 앱스트랙트 의 미끼 를 평생 좇아가면서, 완벽하게 나 나 나 라는 이그지스턴스 는 없어 생에. 남들 수십 수백 수천만명을 지옥으로 보내는 건 둘째치고.
내 인생 진짜 인생 을 살아야 하는겨. 그럼 이 내 인생 내 생 을 산다는게 머냐는겨 이게. 영혼의 진화 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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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슨 의 작품들은, 키에케고 의 것들을 극화 한거야. 덴마크 노르웨이 의 두 인간 은 위대한겨 그래서.
우리넨 저런 이야길, 일단 몰라, 이해력 이해할 이해한 인간도 없고, 그래서 번역한 책도 없고. 번역해보이 다 암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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