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ine Years' War (1688–1697), often called the War of the Grand Alliance or the War of the League of Augsburg,[3] was a conflict between France and a European coalition which mainly included the Holy Roman Empire (led by the Habsburg Monarchy), the Dutch Republic, England, Spain, Savoy and Portugal.  

 

9년 전쟁이 중심이야. 여기에서 파생되는게 1688명예혁명이고, 재코바이트 반란, 아일랜드에서의 윌리엄전쟁, 더하여 북미에서는 킹윌리엄의 전쟁이 동시에 터져. 

 

King William's War (1688–1697, also known as the Second Indian War,[a] Father Baudoin's War,[3] Castin's War,[4] or the First Intercolonial War in French[5]) was the North American theater of the Nine Years' War (1688–1697), also known as the War of the Grand Alliance or the War of the League of Augsburg.

 

킹 윌리엄의 전쟁 1688-98. 9년전쟁의 북미에서의 전쟁이야. 이건 북미에서 프랑스 와 윌리엄의잉글랜드 가 붙는겨. 2차 인디언 전쟁. 1차 가 비버 전쟁이야. 1609-1701. 이의 연장선이야. 이미 여기선 잉글랜드가 정착하면서 부터 전쟁을 한겨 백년동안. 이때 인디언이 이로코이 Iroquois 연맹으로 맞서는거고, 이 인디언들의 배후는 프랑스였고. 오대호 에 세인트로렌스 강을 경계로 뉴프랑스 와 잉글랜드 식민지 가 다투다가, 허드슨베이로 잉글랜드가 뉴프랑스 위쪽 에서 식민지로 쳐내려오거든. 북미에서 프랑스 와 잉글랜드가 전혀 다른 전선이 위에서 생긴거야. 1차 식민지간 전쟁. 

 

9년전쟁 에 반프랑스 연대가 신성로마제국 에 네덜란드 잉글랜드 스페인 사보이 포르투갈 이거든. 저 신성로마안에, 바바리아 브란덴부르크 작센 로렌 이 다 들어간겨 저게. 브란덴부르크 도 프랑스와 친구먹었다가 반대진영으로 들어간겨. 

 

웃긴건 말이야. 프랑스 의 루이14세가 저 모~든 유럽 애들과의 전쟁을 버틴겨. 

 

이건 인류 전쟁사에 전무후무 한거야. 하나의 킹덤급 네이션이 문명화된 모~든 네이션들에 맞서서 전쟁해서 진게 아냐. 

 

어마어마한 힘이야 프랑스 태양왕 루이.의. 태양왕 이란게 허세가 아녀 이게. 

 

9년 전쟁에서, 유일한 프랑스의 동맹자는 잉글랜드에서 쫓겨난 제임스2세 의 재코바이트 들이야. 아일랜드의 카톨릭애들이고. 쟤들이 잉글랜드의 시선을 좀 돌려줄 뿐이여. 

 

바로 뒤의 스페인후계자전쟁은, 그래도 말이지, 바바리아 와 사보이 가 프랑스 편을 초반에 들어. 외젠의 사촌 바바리아 선제후가 오스트리아에 충성충 했건만 자기지분을 빼앗기걸랑. 이 바바리아 선제후의 부인이 레오폴트와 필립4세 의딸 사이의 딸 이야. 레오폴트 의 자식들이 이어 황제를 하지만 얘들은 레오폴트가 재혼해서 낳은 애들이거든. 바바리아 가 자기껄 빼앗겨서 프랑스로 돌아서는겨. 여기에 헝가리 라코치 가 독립운동하잖니 얘가 갓 성인이 되어서. 이 스페인후계자 전쟁은 그나마 프랑스 편이 덩치가 돼. 그런데 9년 전쟁은 완전히 혼자 저 모~든 주위 유럽애들을 상대한겨. 

 

저걸 태양왕 루이가 버틴겨. 저 당시 프랑스의 어마어마한 힘이야. 

 

저걸 제대로 봐 주는 애들이 웨스턴에도 없을텐데 말이야 저 현장을. 

 

이전 봤듯이, 투렌 과 그랑콩데 가 어릴때 부터 전장에 참여하면서 저걸 배운 애들이 프랑스 지휘관자리들을 들어서는겨. 여기에 그랑콩데의 카피본 뤽상부흐 가 여전히 있는거고. 저당시 프랑스 인간들이 최고야 최고. 

 

Louis XIV surrounded himself with a variety of significant political, military, and cultural figures, such as Mazarin, Colbert, Louvois, the Grand Condé, Turenne, Vauban, Boulle, Molière, Racine, Boileau, La Fontaine, Lully, Charpentier, Marais, Le Brun, Rigaud, Bossuet, Le Vau, Mansart, Charles, Claude Perrault, and Le Nôtre.  

 

어릴때 리슐리외에 이어 마자랭에, 성인이 되서 콜베르 가 참모를 하고, 투렌에서 배운 전쟁장관 루브와의 프랑스와 미셸. 그랑콩데 와 투렌 아 엄청난 두 인간들. 전쟁 전략에 도시설계의 최고 보방. 그랑콩데 와 투렌 에서 배운 현장지휘관들이 전장에서 책임을 지지만, 이들 바닥엔 이미 지성이 유럽에서 최고인겨. 이 현장 지휘관 칼잡이들이. 이 지성 인문학 신학을 다져준 이들이 코트에 넘쳐나는겨. 앙드레 샤를 불레 가 캐비넷메이커 여. 프랑스풍 바로크 캐비넷 우리가 익숙한게 이 인간 작품이야. 드라마 작가 몰리에르, 라신. 시인 니콜라 브왈로, 동화작가 장 드라 퐁텐. 음악가 장 밥티스트 륄리. 샤르팡티에, 마레, 화가 르브륑, 야생트 리고, 루이의 왕권신수설 토대를 준 신학자 보쉬에, 건축가 르보, 망사르, 머더구스 창시자 샤를페로, 설계사에 학자 클로드 페로. 베르사이유 정원 설계한 르 노트르. 

 

저들이 지금 각 분야에 최고 인물들이야 각 히스토리에서. 

 

Louis XIV (Louis Dieudonné; 5 September 1638 – 1 September 1715),  

 

루이가 1638-1715 인데. 데카르트 가 1596-1650 이야. 데카르트 는 루이 태어날때는 네덜란드에서 살았던거고. 

 

Marin MersenneMarin Mersennus or le Père Mersenne (French: [mɛʀsɛn]; 8 September 1588 – 1 September 1648)

Pierre de Fermat (French: [pjɛːʁ də fɛʁma]) (between 31 October and 6 December 1607[1] – 12 January 1665)

Blaise Pascal (19 June 1623 – 19 August 1662)

 

마렌 메르센. 이 수학의 마르센 소수. 를 만들어낸 사람이고, 페르마의 정리 페르마 가 모두 데카르트 당대에, 파스칼 이 루이 보다 15년 먼저고 데카르트 보다는 27년 어리고. 이 파스칼이 데카르트 를 증오해. 

 

수학 이란게 이탈리아 르네상스 이후, 알프스를 넘어서 케플러 티코브라허 에 라이프니츠 가 있고 아래에 갈릴레오 가 나오거든. 이때 프랑스 는 데카르트 가 엑스와이 좌표를 만들어, 메르센 이 나오고 페르마 가 나오고 파스칼이 나와. 당대에 네덜란드 에 시몬스테이빈 에 이삭 베이크만. 이고. 

 

프랑스 는 태양왕 루이 전에 이미 데카르트 메르센 페르마 가 수학을 잡아줘. 코트에는 당대 최고의 인간들이 넘쳐나는거고 모든 분야에서, 이게 그랑콩데 와 투렌 에 뤽상부르 에 다음 지휘관들로 넘어가는게 루이 14세가 성인이 된 직후여. 

 

이게 어마어마한겨 이게. 

 

저건, 전 유럽이 다 덤벼도 못이기는겨. 이게 차원이 다른겨. 

 

저건 말이야, 리슐리외 와 마자랭 의 힘이야. 이 두 인간은 위대한 인간이야. 프랑스 사가들은 사탄 취급하고 리터러쳐에서도 악마 취급하지만, 이 실패한 나라애들의 가장 큰 문제는 역사해석이야. 

 

마자랭 까지의 어린 루이 와, 마자랭 죽고서의 성인 루이 는 전혀 다른겨. 

 

얘가 마자랭 죽고나서, 1681년에 드라고나드. 를 한겨. 위그노 쫓아내기. 동시에 같은해에 보쉬에 아이들의 이론으로, 프랑스 성직 선언 1681 을 하고 왕권을 완벽하게 교회위에 두는 이론을 정립 발표하고, 1685년 에 낭트칙령을 취소 하는겨. 

 

이 1685년 낭트칙령 취소.가 아주 결정적이야. 리유니온즈 전쟁으로 이미 변경 땅을 갖고 오고 저건 걍 최종 도장을 찍은겨. 이전에 위그노들 20만을 대부분 내쫓고나서야 저건. 

 

프랑스 가 저때부터 자기만의 프랑스. 완벽하게 자폐적으로 돌아간겨. 리슐리외 와 마자랭 은 오직 국가이익. 레종데타 를 위해서 프로테스탄트 도 적극적으로 코트에 들였거든. 위그노를 인정했어. 데카르트 는 말이야 카톨릭 이야. 카톨릭이 어릴때 세상경험한다고 네덜란드 용병 지원한겨 ㅋㅋㅋ. 얘들이 이런 분위기 의 땅이야 이게. 

 

루이 가 머리 컸다고, 이제 자기 정치한다고, 완벽하게 꺼꾸로 가는거야. 그러면서 관세를 왕창 올려 수입 하지마 수출만 해. 이게 콜베르 주의야 개멍청한. tariff 태리프 라는건 아랍어야. 유럽애들은 이딴 관세 라는게 없었어. 아랍애들한테 저걸 배워서 저 단어를 갖고 온거야. 머컨틸리즘 은 중상주의 가 아녀. 일본애들이 완벽하게 오역 한거야. 저건 장벽주의야. 이때 얘들이 참 무식한 짓만 한거야. 저러고서 콜베르 를 또 그레이트 콜베르 이리 가르치는겨 지금 역사에서. 

 

콜베르 때문에 망한겨 프랑스가. 콜베르를 참모로 둔 루이 가 저때 망상든거고 그래서 망한거고 프랑스가. 

 

저 어마어마한 싸이키 가 프랑스에서 확 죽어버린겨 루이14세 이후로. 저때 얘가 비전과 전략을 제대로 만 짰으면 전혀 다른 프랑스 역사와 유럽 역사가 되었을거야. 1789라는 프랑스 대학살 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몰라. 저걸 대혁명 포장  하지만. 이 프랑스는 저걸로 망한거야. 이후 2백년 이상 저 1789 프랑스 대학살 의 후유증으로 얘들이 이상한 애들이 된겨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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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라는 나라가 다시 보면 이게 참 시안한겨. 

 

신성로마제국 과 프랑스. 이게 웃긴겨 이게. 

 

샤를마뉴 의 자식 경건루이의 삼형제 가 서유럽을 세 등분으로 나눠가졌는데, 큰형 로타르 가 졌어. 그런데도 황제관을 썼어. 이것부터가 웃긴겨. 그러면서 가운데 땅 을 갖았어 짝은. 이것도 웃긴겨. 그러면서 알프스 아래에서 황제 를 해.  웃긴겨 ㅋㅋㅋ. 프랑크법으로 장자 승계 원칙으로 그냥 준겨. 게르만 루이 와 대머리 샤를 이 저건 명분상 준거거니와, 저 알프스 아래에서 사는 황제관 은 전혀 전혀 관심이 없는거야. 이전 메로빈지언 은 알프스 아래에 관심 일 도 없어, 저긴 전혀 다른 롱고바르디 애들의 땅이었어. 자기들 기후 와 전혀 안맞아. 샤를 마뉴 가 교황령 아빠 약속 지켜주고 황제관 쓰면서 뿌듯해 했지만, 손자 애들은 저 자리가 관심이 없는겨. 이탈리아 를 몰라 전혀. 그래 저 자리 큰형 가져.  구찮아  저 알프스 산맥 넘어서 황제관 쓰러 대체 왜가 저길. 왜 저기서 살고. 전혀 자기들 살던 곳이 아냐 저긴. 

 

그런데 저 황제관 이란게 엄청난 가치 란걸 느끼는거야. 더하여 저 이탈리아 라는게 문명의 중심 이란 것도 깨닫는겨 이게. 오히려 자기들이 촌놈 이란걸 알게돼. 저 자리가 핵심임을 자각 하게 돼. 저게 로타르 죽고 그 자식들 죽으면서 대머리 샤를 과 경건 루이 의 자식들에 더하여, 스폴레토 의 가이(기), 프로방스의 보소. 막 달려드는겨. 프로방스 와 사보이는 아를킹덤 에 들어가. 저 혼느강 동쪽과 주변은 저게 로타링기아 황제 땅이야 시작이. 저것도 프랑스가 아냐 원래. 저 거대한 프랑스 남부땅이. 그리고 이 황제관을 작센의 오토 가 꿰차는겨. 

 

황제 라는 자리는 로타르의 땅 로타링기아 가운데 여. 이걸 게르만루이 의 땅 오토 가 먹은겨. 

 

저 가운데 땅은 말이야. 그래서 이게 동쪽 땅이어야만 해. 신성로마제국 이라는 말은 1254년 에나 나오는 말이야

 

Before 1157, the realm was merely referred to as the Roman Empire.[23] The term sacrum ("holy", in the sense of "consecrated") in connection with the medieval Roman Empire was used beginning in 1157 under Frederick I Barbarossa ("Holy Empire"): the term was added to reflect Frederick's ambition to dominate Italy and the Papacy.[24] The form "Holy Roman Empire" is attested from 1254 onward  

 

이전에는 로만 엠파이어. 로마 제국 이야. 홀리 라는 신성은 서기 1157년 붉은수염 바바로싸 부터 시작을 해. 이때는 홀리 엠파이어. 신성제국 이야. 1254년 프리드리히2세 황제 죽고 서 처음 신성로마제국 이야. 

 

1157년 전에 로마제국 이란건 프랑스 가 포함이 안된겨? 이건 프랑스가 포함이 된겨 이게. 대머리 샤를 도 혼자 남아서 전체 황제를 해 잠시. 뚱때이 샤를 동쪽 에서도 프랑스 를 지배하는 전체 황제를 해. 프랑스 는 로마제국 의 하나의 킹덤 일 뿐이야. 필립4세 도 황제 가 되고 싶었어. 프랑수아 1세 도 저 황제 선거전에 뛰어들어. 쟤들은 모~두 신성로마제국 이야 저게. 

 

그런데 언젠가 부터, 프랑스 는 저기서 떨어져 나간겨. 1254년 전의 프리드리히2세 의 스테이트 는 프랑스 를 포함하지 않아. 프랑스 는 신성로마제국의 상위법 을 적용 받지 않아. 저게 정확히 언제부터 구분이 되는건지는 확실치 않아. 어쨌거나 프리드리히2세 때는 프랑스 가 저기 들어가지 않아. 

 

그런데 분명한건, 황제 라는 시작은 가운데 땅이야. 이걸 동쪽 게르만이 오토 부터 정확하게 취한겨 이건. 경건루이 의 세 자식 때는 정확하게 프랑스도 저 황제관 아래의 땅이야. 

 

오토가 황제관 쓰면서 당연히 저 가운데도 신성로마제국 의 땅이어야만 해. 이 명분이 훨씬 강한겨 이게. 저 가운데 땅의 영주들과 영지인들도 자기들은 신성로마제국의 소속이야. 

 

저걸 천년에 걸쳐서 프랑스 가 갖고 오는겨 가운데 로타링기아 를. 아래 프로방스 는 발루아앙주때 결혼에 더해서 뒤에는 나폴리 조안나 로 부터 받은거고. 그러면서도 찝찝한거야 이건. 사보이 는 13세기 에 샹베리 가 수도야. 프로방스 위에 사브와 라는건 저건 토리노 로 건너간 사보이 땅이야 원래 저건. 사보이가 저것도 빼앗긴겨 지금. 

 

이 위 부르고뉴 백작령. 이것도 완벽하게 동쪽땅이야. 이 위 알자스 에 이 위 로렌 이 옆 샹파뉴(샴페인) 이게 모두 동쪽땅이야 이건. 이 샹파뉴 도 블롸 를 쥐었던, 잉글랜드 마틸다 와 전쟁했던 스티븐 의 땅인걸 꾸역꾸역 갖고온겨. 저기가 이탈리안 전쟁의 핵심이고 앙리2세가 베르됭 투렌 낭시 를 갖고 오고싶어 미치는거고. 그리고도 여전히 해결이 안된게 저놈의 알자스 에 로렌 지역이야 이 루이 14세 때 조차도. 하물며 룩셈부르크. 

 

저건 말야 프랑스의 어거지 여 저게. 천년 동안. 이게 세계대전 끝나고서 영미의 덕으로 프랑스 가 쥔겨. 룩셈부르크 와 벨기에 는 차마 못 갖고 지들끼리 독립 한거고. 

 

프랑스 가 저건 시안한 욕심이야 저게. 프랑스는 가운데 땅을 갖아야 하는 명분이 없어. 대머리 샤를과 게르만 루이 가 조카 가 이슬람 쫓아내려 자리 비울때 둘이 조약했다고 저 가운데를 서로 나눈 메르센 을 핑게로 더 갖고 오려한 거고. 이 조약 자체도 명분이 될 수는 없어. 더 갖으려는거거든 여기에서도. 

 

프랑스 서쪽 브르타뉴 도 프랑수아 때에나 들어오는거고, 아키텐도 필립2세가 잔머리 굴려서 실지왕 존에게 빼앗은거고. 이건 프랑스애들이 노력해서 확장한거야. 동쪽도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 니 이 아래는 원래 아무것도 없었어. 이건 마크  초소만 세워서 아바르 슬라브 애들을 막고자 한 것일 뿐이고 이게 알프스 넘어가서 커진겨. 보헤미아 도 게르만루이와 아이들이 속지화 한거고. 저걸로 넓어 보일 뿐이지만 쟤들 스스로 넓힌겨. 저 동쪽 땅이 넓어 보여서 가운데 는 마치 프랑스 땅이어야만 해 보이거든. 아니야 그게. 

 

저걸 억지로 갖고 오는겨 이 태양왕 루이 때에도. 이게 데볼루션 전쟁. 프랑스-네덜란드 전쟁. 리유니온즈 전쟁 이었어. 이게 모두 태양왕 루이 가 성인이 되고 시작한거야. 마자랭 이 죽고. 그리고 네덜란드 전쟁 끝내고 나서, 1681년 에 왕권신수설 이론 정립하는 프랑스 성직선언. 그리고 드라고나드 를 뒤에서 몰래 시작한겨. 그리고나서 리유니온즈 전쟁 해서 로타링기아 나머지를 갖고 온겨 얘가. 스페인네덜란드 지역 아래까지를. 오히려 더 가서 라인강 넘어서도 갖고오고. 

 

그리고 나서 1685년 에 낭트칙령 취소 를 공식 발표한거야. 

 

Louis XIV, along with his chief advisor, Louvois; his foreign minister, Colbert de Croissy; and his technical expert, Vauban, developed France's defensive strategy.[5] Vauban had advocated a system of impregnable fortresses along the frontier to keep France's enemies out. To construct a proper system, however, the King needed to acquire more land from his neighbours to form a solid forward line. That rationalisation of the frontier would make it far more defensible and define it more clearly in a political sense, but it also created the paradox that Louis's ultimate goals were defensive, but he pursued them by hostile means.[5] He grabbed the necessary territory in the Reunions, a strategy that combined legalism, arrogance and aggression  

 

루이가. 경제는 콜베르 에 맡긴거고, 전쟁 장관은 루브와 야. 얘가 르 텔리에 의 프랑스와 미셸. 이고 아빠부터 루이 실세로 위그노 쫓아내는 정책수립한사람이고 이 아들이 받아서 드라고나드 를 한겨 이 루브와 가 실행자야. 외교관은 크롸시 의 콜베르 야. 경제 콜베르 의 형이야. 보방 이 최고의 도시 설계자야. 전쟁도 참여하고, 리유니온즈 까지 갖고 온 변경의 마을 도시들을 애가 재설계 하는겨 요새 로. 그래서 한번 갖고 오면 빼앗기 힘들어지는거야 이 보방 의 설계 때문에. 특히나 이 리유니온즈 는 법적으로 드리밀면서 주위 마을 외곽지역들을 갖고오고, 안통하면 겁박을 줘. 마을에 불을 질러. 이 루이는 이때 완전히 깡패야 조폭두목이고. 

 

얜 저때 정말 세상 무서운게 없어 ㅋㅋㅋ. 그런데 그럴만 한겨. 네덜란드도 저 짝은 애들이 프랑스와 전쟁할때 지워질뻔했어. 신성로마 어디서도 얘한테 못 대들어. 각각들은 쪼개진거고. 오스트리아 하나만 있어보이지만 이 오스트리아 대공작령 자체도 볼게 없어 이게. 저때 투르크 전쟁 비엔나 는 로렌 의 병력 2만에 폴란드 병력으로 이긴겨 이게. 나머지들 스크랩 으로 모아서 이긴거고. 저때 참 별볼일 없는 애들이 프랑스 외의 유럽애들인거야. 

 

리슐리외 와 마자랭 이 제도적으로 가꾼걸 이 다 큰 루이 가두는겨. 세금제도 세팅에 징수 체제 도 다 저 추기경애들이 만든거야 언제부턴가 프랑스에 돈이 많아지는겨. 코트에는 인간들이 넘쳐나고. 인재를 안가렸어 리슐리외가. 칼뱅인 투렌 도 리슐리외 가 어린 애 온걸 부대를 맡겨서 네덜란드로 보내. 

 

루이는 주변 애들 보고 자기가 최고 인줄 알아. 너무나 우스운겨 주변 애들이. 

 

That imprecision often led to differing interpretations of the text and resulting in long disputes over the frontier zones since one gained a town or area and its "dependencies", but it was often unclear what the dependencies were.[5] The machinery needed to determine the territorial ambiguities was already in place through the medium of the Parlements at Metz (technically, the only Chamber of Reunion), Besançon and a superior court at Breisach, dealing respectively with Lorraine, Franche-Comté and Alsace.[7] Unsurprisingly, the courts usually found in Louis XIV's favour.[8] By 1680, the disputed County of Montbéliard, lying between Franche-Comté and Alsace, had been separated from the Duchy of Württemberg, and by August, Louis XIV had secured the whole of Alsace with the exception of Strasbourg. The Chamber of Reunion of Metz soon laid claims to land around the Three Bishoprics of Metz, Toul and Verdun and most of the Spanish Duchy of Luxembourg. The fortress of Luxembourg itself was then blockaded with the intention of it becoming part of his defensible frontier.  

 

이때 오른쪽 신성로마 의 신경을 건드리는게 리유니온즈 여 프랑스애들이. 리유니온 들 이야. 이전까지의 전쟁으로 프랑스애들이 경계선을 정리하는건데, 조약을 맺을때 얘들이 지도를 두고 경계선을 긋는게 아녀. 큰 타운 단위로 이 타운들 은 니덜이 갖어 하는거거든. 문제는 이 타운들 주변 외곽마을들이야. 루럴 rural 지역이야. 이게 애매한거야. 이것들을 리유니온 하는겨. 유니온에 리. 재결합시키는겨. 각각 티에프티가 타운 단위로 리유니온 별로 움직여서 이 작업들을 해. 이걸 그 해당 외곽 마을의 큰 영주 와 상대를 하는거야. 그리고 얘들이 이때는 이걸 대게 킹덤 직속으로 갖고 오고 공무원을 파견을 해. 프랑스가 땅 갖은 귀족들을 줄이고 직속으로 갖고 오면서 완전히 중앙집중적 권력이 되면서 힘을 갖는겨 이게. 프랑스가 이게 달라 다른 유럽의 영지 들과. 나폴레옹이 신성로마 를 재편할때 자잘한 공작 백작령 규모의 땅들이 이삼백개야. 그래서 쟤들은 힘이 없었던겨. 저걸 쉽게 나폴레옹이 먹은거였고. 

 

저걸 메스, 브장송, 브라이자흐, 몽벨리아르. 세 주교령 지역들을, 상대 영주와 각각 상대하면서 편입을 시키는겨. 세 주교령인 메스 투렌 베르됭 은 로렌 땅이야. 여긴 앙리2세가 이탈리안전쟁으로 갖고온게 30년 전쟁 끝나고서야 프랑스꺼로 공식 인정이 돼. 여기 주변 지역이 넓어. 이것도 여전히 정리가 안된겨. 이걸 얘들이 이때 다 갖고와 리유니온즈 하면서. 그러다가 스트라스부르 는 군대 로 포위해서 항복받아 갖고 오고 룩셈부르크 는 대포질 해서 갖고 온게 리유니온즈 전쟁이야. 

 

All of the Reunion claims and annexations were important strategic points of entry and exit between France and its neighbours and were immediately fortified by Vauban and incorporated into his fortress system  

 

모든 리유니온즈 들은 프랑스 와 이웃사이에서 드나드는 데 중요한 전략적 위치들이었다. 얘들도 전략적 요충지들을 특히 나 찍어서 갖고온겨. 머리좋은 놈들만 넘쳐난겨 이 프랑스가. 이건 즉시 보방에 의해 요새화를 시켜. 

 

모든 생각이 이 프랑스가 저때 앞선거야. 이미 이 프랑스는 중앙집중화가 된겨. 이건 말이야 필립2세 부터 꾸준히 프랑스 땅을 킹덤 직속으로 갖고온 과정의 매듭이야. 프랑스 가 원래 땅이 형편없이 적었어 이게. 대머리 샤를 이후로 강력한 영주들이 찢어 가져간거거든. 이걸 갖고 오면서 귀족들에게 안준거야. 얘들은 봉건체제를 이미 벗어나기 시작한겨. 쟤가 서기 1200년 지나는 킹이야. 오를레앙이 큰거고 이건 킹 집안이거든. 부르고뉴 가 저때 덩치가 큰거였고 이 부르고뉴 를 꾸역꾸역 갖고 온겨 백년전쟁 이후에. 프랑스 와 신성로마 가 이게 전혀 다른겨. 신성로마 는 나폴레옹 때 조차도 중세 봉건을 벗어나지 못했어. 그래서 중세봉건 유럽을 구분해서 봐야해 이것도. 가장 먼저 탈피한 프랑스가 루이14세 때 최고 의 힘이 된거야. 다른 나라는 전혀 저런걸 신경을 안쓴거야. 스페인은 금은으로 전쟁하기 바쁜거였고. 

 

반면에 잉글랜드 란 곳은, 팔리어먼트 애들의 나라야 이게. 이게 또한 전혀 다른겨 프랑스와. 팔리어먼트 소속의 배런들이 만든땅이 잉글랜드야 1215 마그나카르타 부터. 팔리어먼트 와 킹 간의 끊임없는 긴장감이 영국을 만든겨 이게. 이 팔리어먼트 의 소속애들이 강력하게 하나로 뭉친겨 이 잉글랜드는. 이게 또한 폴란드 세임 애들과 전혀 다른겨. 

 

유럽사를 하나의 잣대로 절대 볼 수가 없어 그래서. 그래서 유럽을 전혀 설명을 못하는겨.

 

저렇게 서로 너무나 다른 애들이, 너무나 쉽게 하나의 나라처럼 섞여 살은게 또한 천년 유럽 중세에 이후 오백년의 근대야. 

 

전혀 다른 세상이야 저게. 

 

저게 너무나 복잡해 보여서 너무나 피상적으로 보는거야 저들 역사를. 

 

절대로 저 유럽 이야기를 아시아 애들 역사 보듯이 볼 수가 없는겨 이게. 

 

너무나 너무나 간단한겨 조선사 에 중국사 가 쟤들 이야기 보다가 다시 보면. 

 

완전히 죽은 역사야 이 아시아 역사가 그래서. 

 

죽었어 죽었어. 저 아시아 중국 조선 에 인도 에 동남아는 저게 역사가 아녀 저게. 

 

너무나 너무나 쉬워. 

 

노래 가 형편없어. 음악이 형편없어. 문학이 형편없어. 쟤들 걸 듣보다가 다시 아시아를 보면. 

 

아시아에 뭔놈의 내추럴 싸이언티스트 가 있니. 먼놈의  건물이 있니. 저 모든 건물은 모두 유럽 애들 카피한겨 겨우. 

 

먼놈의 과학이 있고. 

 

아 짱나 진짜. 

 

저런 유럽사 에 대해 설명하는 게 전혀 없는겨. 세상 모든 애들은 다 사기꾼들 저런거 썰하는 인간들 보면. 

 

 

 Both wanted to act, but effective opposition in 1681–1682 was out of the question since Amsterdam's burghers wanted no further conflict with France, and both were fully aware of the current weaknesses of Spain and the Empire, whose important German princes from Mainz, Trier, Cologne, Saxony, Bavaria and (significantly) Frederick William I of Brandenburg remained in the pay of France 

 

리유니온즈 전이야. 네덜란드 가 파가 갈려. 이전엔 친잉글랜드 반잉글랜드였다가, 다시 프랑스와 전쟁을 하냐 마냐로 갈려. 이전에 프랑스가 쳐들어왔어. 언제 또 당할지도 몰라. 복수도 해야해. 그런데 장사꾼들이야 얘들은. 지치거니와 돈도 없고 먹고 살자는 파가 우세해. 마인츠 트리어 쾰른. 주교령에 선제후들이야. 여긴 프랑스랑 친했어 네덜란드 쳐들어갈때 터를 제공해준 애들이야. 작센 바바리아 도 프랑스 가 구워삶았어. 브란덴부르크 도 프랑스 친구가 되었어. 

 

리유니온즈 전 이야 저 상황이. 낭트칙령취소 1685 이전이야. 

 

 

 

1685년 이 분기점이야. 2월에 잉글랜드 찰스2세가 죽어. 5월에 라인팔츠그라프 카를2세 가 죽어. 프랑스는 낭트칙령을 취소해. 라인팔츠그라프 는 카를2세 의 고모인 루이 제수씨 꺼니 프랑스가 갖아야 한다고 요구를 해. 

 

Maximilian Henry of Bavaria (German: Maximilian Heinrich von Bayern: 8 October 1621 – 3 June 1688)  

 

1688년 6월에 쾰른 대주교 가 죽어. 이 쾰른은 칼뱅으로 바꾼 대주교 내쫓고 비텔스바흐 의 바바라이 가 갖았다가 방계들이 이어가는거걸랑. 그런데 얘들이 친프랑스 가 돼. 막시밀리안 하인리히 가 친프랑스야. 얘가 네덜란드 쳐들어가는 터를 제공해준겨. 네덜란드 에서는 졸 신경 쓰이는 애들이 이 쾰른 과 뮌스터 주교여. 

 

The territory of the archbishopric lay along the left bank of the Rhine and included three fortresses of the river-line: Bonn, Rheinberg, and Kaiserswerth, besides Cologne itself. Moreover, the archbishop was also prince-bishop of Liège, the small state astride the strategic highway of the river Meuse.  

 

쾰른이 선제후고, 라인강 따라서 본. 라인베르크, 카이저스베르트. 에 요새들이 있어. 리에주 주교령도 원래 쾰른 관할이야. 이 리에주는 프랑스에 대든 애들이고 그래도. 프랑스는 쾰른이 중요한겨. 즉 얘들은 쾰른 으로 네덜란드를 또 쳐들어가려 했던겨 이게. 친프랑스 인간을 대주교로 앉히려는데 실패해. 레오폴트 가 황제파 의 바라리아 사람을 앉혀. 

 

이게 1688년 6월 이야. 9월에 베오그라드 를 오스트리아가 갖고와. 이게 가장 커 프랑스가 9년 전쟁 시작한 시점이. 

 

낭트칙령취소 1685로 브란덴부르크 의 프리드리히 선제후가 프랑스 에서 돌아서. 포츠담 칙령을 발표해서 프랑스의 위그노들이여 브란덴부르크로 오세요. 이들이 프러시아 의 재료가 되는겨 이 위그노들이 와서. 대부분 해변의 상인들이야. 

 

오렌지 윌리엄은 반프랑스야. 얜 프랑스를 쳐야해. 저때 가장 큰 변수가 제임스2세 의 잉글랜드야. 저해 6월에 제임스2세 의 아들 프랜시스 에드워드 가 태어난겨. 팔리어먼트 가 쟤 태어나자 마자 오렌지 한테 에스오에스 치는겨. 너 와서 잉글랜드 킹해라. 10월에 네덜란드를 떠나 오렌지가. 이게 1688년이야. 

 

이전 9월에 프랑스 가 9년전쟁을 시작해. 오렌지 너 잉글랜드 건드리지 말어 경고하면서. 이게 동시에 벌어지는겨. 그래서 멍청한 제임스2세 는 루이에게 아무런 지원도 안받고 완벽하게 혼자 팽당한겨. 루이는 설마 저지경 까지 갈 줄은 짐작도 못한거고.

 

Marshal Duras, Vauban, and 30,000 men – all under the nominal command of the Dauphin – besieged the Elector of Trier's fortress of Philippsburg on 27 September; after a vigorous defence it fell on 30 October.[47] Louis XIV's army proceeded to take Mannheim, which capitulated on 11 November, shortly followed by Frankenthal. Other towns fell without resistance, including Oppenheim, Worms, Bingen, Kaiserslautern, Heidelberg, Speyer and, above all, the key fortress of Mainz. After Coblenz failed to surrender Boufflers put it under heavy bombardment, but it did not fall to the French  

 

9월 27일에 간 곳이 처음, 필립스부르크 요새야. 트리어의. 마샬 뒤라스 와 보방 이 3만 을 데리고. 뒤라스 는 투렌 과 그랑콩데 에서 전쟁했던 인간이야. 이어서 만하임. 프랑켄타이. 오펜하임. 보름스. 빙엔. 카이저슬라우턴. 하이델베르크. 슈파이어. 마인츠. 코블렌츠 는 못가져 왔어. 

 

하이델베르크 아래 좌표가 필립스부르크.야. 저기부터 시작해서 주욱 위로 가는겨. 3년전 라인팔츠그라프 카를2세 죽은 자리가 자기 꺼라면서 저길 다 갖고 오는겨. 전쟁이 따로 필요없어. 저들 각각이 영주들의 영지들이고, 3만 에 대항을 못해. 저들이 연합해서 군대를 모을 체제도 안되는거고. 그냥 다들 나 가져가쇼 할 수 밖에 없어. 프랑스 의 중앙집권체제의 저 힘을 못 건드려. 저 시스템이 나폴레옹 때까지 똑같은겨 이놈의 독일땅은. 죽 가서 코블렌츠 는 버틴거야. 

 

프랑스 외의 유럽이란건 정말 프랑스 앞에선 이건 아무 힘이 안돼. 얘들은 데볼루션 전쟁부터 프랑스-네덜란드 전쟁에 리유니온즈 전쟁.이 거의 전승이야 이게. 조약때 손해본 것일 뿐이야. 저 필립스부르크 도 전쟁때 갖고와서 조약에서 준걸 되찾은겨. 

 

못이겨 프랑스를. 투렌과 그랑콩데 가 없어도. 저 두 인간으로 배운 애들이 저 이후 모든 전선에서 탁월한겨 이게. 저때늘 뤽상부흐 도 살아있을때야. 얜 아무도 못이겨 그랑콩데의 카피본. 곱추. 가장 이성적인 인간. 게으른 천재. 훈련도 안해. 평소에  게을러 ㅋㅋㅋ. 

 

The League of Augsburg was not strong enough to meet the threat, but on 22 October the powerful German princes, including the Elector of Brandenburg, John George III, Elector of Saxony, Ernest Augustus of Hanover, and Charles I, Landgrave of Hesse-Kassel, reached an agreement in Magdeburg that mobilised the forces of north Germany. Meanwhile, the Emperor recalled the Bavarian, Swabian, and Franconian troops under the Elector of Bavaria from the Ottoman front to defend south Germany.  

 

부랴부랴 만나는겨. 대투르크 전쟁에서 5년만에 베오그라드 갖고와서 행복했던게 잠시야. 바로 빠꾸해서 이리 와야해. 브란덴부르크. 작센 선제후. 하노버. 그리고 헷세 의 중심 장자 카셀. 바바리아 슈바벤 프랑코니안 다 모여. 오스만이고 머고 없어. 이때 오스만이 한숨돌린겨. 만약 저때 계속 갔으면 오스만이 발칸에서 저때 사라졌을겨. 

 

제임스2세 가 잉글랜드 를 쥐었어. 헌데 여긴 아일랜드 에 재코바이트 가 바로 반란하는겨. 동시여. 북미에서 잉글랜드와 프랑스 가 전쟁 터진거고. 동인도 에서도 터진겨. 본토에서 터지면 이게 세계에서 다 터져 . 이건 세계 대전이야. 

 

프랑스 아래 스페인 카탈로니아 지역에서도 터져. 프랑스는 사방에서 동시에 상대하는겨 이게. 

 

웃긴건, 이게 프랑스 가 이기고 있다는거야. 우세해 프랑스가 ㅋㅋㅋ. 음청난 힘이야. 중앙집중된 구조를 얘가 아주 달콤하게 맛보는게 이 9년전쟁 중반까지야. 이전에 홀란드 워터라인 에서 듣보도 못한 경험으로 못 건너 간 것일 뿐 프랑스는 천하무적이여. 

 

By 1693 the French army had reached an official size of over 400,000 men (on paper), but Louis XIV was facing an economic crisis.[95] France and northern Italy witnessed severe harvest failures resulting in widespread famine which, by the end of 1694, had accounted for the deaths of an estimated two million people.[96] Nevertheless, as a prelude to offering generous peace terms before the Grand Alliance Louis XIV planned to go over to the offensive  

 

5년 되었을때 프랑스 군대는 공식으로 문서상 40만명이야 병력 규모가. 이게 카탈로니아. 라인란트. 스페인네덜란드. 사보이 밀라노의 북이탈리아, 모든 변경에서 벌어지는거고, 아시아 에 케리비안에 북미 까지여. 이때도 프랑스 가 앞서. 

 

그런데, 결국 얘도 돈이 말리는겨. 경제가 휘청 대는거고. 1694년 말에 수확 실패로 대기근 발생한 프랑스가 북이탈리아. 2백만이 기근으로 죽은 걸로 추정. 그럼에도, 루이는 공격해. 아 헌데 그리곤 뤽상부흐 가 죽어 1695년. 뤽상부흐 가 스페인네덜란드 에서 십만 을 지휘해. 그래도 후임들은 짱짱하지만. 

 

결국 서로 돈 다 털리고, 조약으로 끝나는겨 바로 이어서 스페인후계자 전쟁 하는거고.

 

프랑스 힘의 절정이 저 9년 전쟁이야. 저건 전무후무야.

 

저때 잉글랜드 는 오렌지 윌리엄 을 빌려서, 날라가는겨 이게. 네덜란드 의 자원이, 네덜란드의 병력이 잉글랜드 의 시다바리가 되는겨. 네덜란드가 오히려 오렌지 를 빌려주면서 얘들이 저물어. 오렌지 는 잉글랜드의 4백년 이상 내전으로 단련된 팔리어먼트 애들의 지시에 따를 뿐이야. 이 잉글랜드 의 귀족들의 하나됨 정체성이란 세계최강이야 이게. 이건 얘들만의 독보적인 내전으로 단련된거야. 전 세계에서 잉글랜드 처럼 내전을 처절하게 한 나라 가 없어. 그것도 킹 과 귀족들이 적이 되어서. 이게 차원이 다른겨 다른 유럽나라들과는. 그러면서 얘들은 하나가 된겨 초강력한. 이게 미국을 만든거고. 저때 의 인간이 아이작 뉴턴 이야 쟤들이 만들어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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