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2세가 대체 왜 저런 지경의 짓을 했느냐 인건데. 지금 역사 에서, 웨스턴 사가들 조차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없어.  빈약해 이게. 끽해야 마누라 가 카톨릭으로 바꿨다 마누라의 영향이다 거기에 아빠죽음에 의회권력을 갖고 오려는 시도다 등으로 몇줄 적는게 다야. 

 

이 1688년 명예혁명에 저때까지의 유럽사가 응축이 된거야. 이 거대한 덩어리를 제임스2세 는 잘못 건드린거야. 유럽사 전반의 거대한 줄기를 전혀 파악을 못한겨. 이건 지금도 웨스턴 애들이 파악을 못해. 오직 나만 하는건데. 

 

얘가 착각한게 프랑스 역사를 너무나 쉽게 단편적으로 본겨. 프랑스 코트 의 카톨릭 의 겉면만 취하고 저런 카톨릭을 취하면 자기땅이 파리 가 되고 왕권이 루이처럼 강하게 될 줄 안거야 의회를 내치면서. 

 

이사람은 죽어서도 대체 왜 자기 의도대로 안되었는지 모를거야. 

 

만약 저게 조선 땅이었으면 쉽게 돼. 제임스2세의 의도대로. 지금 이 조선 민국 처럼 한놈 한 권력이 잡으면 그냥 쉽게 민들이 쟤들 모르모토 가 되서 빠질을 하면서 지들 맘대로의 땅이 되는것처럼. 

 

그런데 저런 짓은, 유럽에, 안통하는겨 이게. 쟤들은 수틀리면 킹 모가지를 짜르는 애들이야. 그게 잉글랜드여. 그리고 네덜란드여 저때까지. 중세 천년을 종지부 찍는건 찰스1세 모가지 짜르는거고 드비트 형제 꺼꾸로 매달아서 간 꺼내 구워먹는 장면이야. 로마 황제 목아지 짜르는걸 중세천년 지나서 할 수 있었던겨 게르만 애들이. 

 

지금도 어느 땅에선 지들 킹 욕질 한다고 체포 하는 땅이 있는데 말이야 예의가 없담시롱. 

 

아  머리에 잡것들이 많아서 이걸 어드래 시작하고 정리하냐 제목은 써버렸는디. 

 

쉼. 

 

The Edict of Fontainebleau (22 October 1685) was an edict issued by Louis XIV of France, also known as the Revocation of the Edict of Nantes. The Edict of Nantes (1598) had granted the Huguenots the right to practice their religion without persecution from the state.  

 

루이 가 1685년 10월 22일 에 퐁텐블루 칙령 을 공포해. 1685년 이 중요한겨. 2월에 잉글랜드 찰스2세가 죽고 제임스2세가 오르고, 5월에 라인팔츠그라프 의 카를2세가 죽고 끊겨서 이걸 고모핏줄인 자기 제수씨 오를레앙 공작녀 의 프랑스가 갖아야 한다는겨. 이해에 리유니온즈 전쟁으로 알자스 에 룩셈부르크 를 조약으로 갖고 왔어. 오스만이 비엔나에서 패해서 쫓기는 중이야. 루이가 3년 후에 9년전쟁에 스페인후계자전쟁을 하려는 준비기간이야. 아주 본격적으로 전 유럽을 먹으려는 발판을 마련하는겨. 이 시작이 자기 할아버지 앙리4세 가 종교의 자유 를 선언했던 낭트칙령 1598 을 백년만에 취소 하는겨. 위그노 는 나가라는겨. 

 

The Dragonnades were a French government policy instituted by King Louis XIV in 1681 to intimidate Huguenot (Protestant) families into converting to Catholicism. This involved the billeting of ill-disciplined dragoons in Protestant households with implied permission to abuse the inhabitants and destroy or steal their possessions. The soldiers employed in this role were satirized as "missionary dragoons".  

 

이때 얘가 시행령으로 저걸 실현하기 위해서 한 정책이 드라고나드. 라는거야. 이건 이미 4년전에 만든거고 바닥에서는 이미 시작한겨 돌려까기로 치사하게. 이건 불법이야. 낭트칙령을 이미 거부를 한겨 얜. 이 드라고나드 를 4년 걸쳐 하고서, 마무리로 저걸 한겨. 

 

Dragoons originally were a class of mounted infantry, who used horses for mobility, but dismounted to fight on foot. From the early 17th century onward, dragoons were increasingly also employed as conventional cavalry, trained for combat with swords from horseback.  

 

나폴레옹의 용기병 으로 우리에겐 알려졌지만, 드래군즈 라는 용기병은 30년전쟁 때 활발했어 이미. 

 

이 드래군즈 라는 용기병이  애매한겨 이게. 저걸 제대로 설명하는 인간이 없을텐데 내가 한글을 안봐서. 헌데 저게 웨스턴 애들도 제대로 설명을 못해 ㅋㅋㅋ.

 

왜냐면, 대체 말이지, 기병 은 머고 용기병 이라는 뜬굼포 저 드래군즈 는 머냐는겨. 

 

왜냐면, 기병 이란게, 이게 총이 등장하면서 말이야. 카바예로 라는 기사 가 완벽하게 필요없는 시대가 된겨 16세기가 지나면서.

 

기사 라는게 긴 창들고 말타고 달리면서 기세를 잡아 몰아치는 애들이야. 기사 하나가 일당 백이고 천이야. 기사 하나의 무게가 엄청난거야 중세 천년의 전쟁에서. 보병이란건 의미가 없어 이게. 보병 백명 이 없어도 기사 하나 가 중요한겨. 기사 하나 옆에 시종들이 십여명이 들러붙어. 여분의 말들 두세마리 에 저 기사 의 무기 들을 들고 따라다니는겨 짐들과 함께. 고대 로마 기사병이고 이를 이은게 중세야. 이게 변한게 없어. 또한 이런 그대로의 폼 이 일본 애들 헤이케 전쟁이야. 하인들이 자기 사무라이 주인 뒤에서 따라다니면서 자기 주인 목짤리면 챙겨가야해. 

 

저 기사 의 몸 치장이 그래서 사치스러운거고,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아이네이스 도 전쟁하면 저 기사 의 무구 를 챙기는게 낙이야. 

 

그런데 총이 등장해버렸어. 갑자기 말야. 기사 라는게 완벽하게 무용지물이 된거야. 

 

저 기사가 타는 말들이 가장 고급진 말이야. 기사 는 훈련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냐. 어릴때부터 말타고 놀아야 해. 말 위에서 등자 없이도 두손 놓고 달려도 안 떨어질 지경이어야 해. 그게 율리우스 카이사르 였어. 집안이 돈 있는 귀족집안이어야 해. 평민은 일단 하고 싶어도 못해. 말타고 전쟁하는 기술력은 어릴때부터 습득이 되는겨 이건. 절대 운전면허 처럼 며칠 배워서 하는게 아녀.

 

16세기 지나면서 저런 기마병 들이 쓸모가 없어지는겨. 오직 저건 지휘자 전용 승용차 야. 지휘용의 말이여 이제 저게. 전쟁용이 아냐 이게. 말타고 달리면서 막막 총을 쏴 ? ㅋㅋㅋ. 페르시아 나 투르크 애들의 전용기술이야 말타면서 화살질은. 그런데 이때 상대는 보병이야. 화살 을 쏴도 바로 바로 도망오면 돼. 창 잡은 애들이 멀 어쩔꺼야. 그런데 총의 시대에는 저 짓이 무의미한겨. 오히려 타겟 만 되는겨 떼 지어서 총 들고 말타고 쳐들어오는건. 말 만 쏘면 끝이야 저건. 

 

그래서 군사용 기병 이란게, 바로 사라지는겨 이게. 그리고 그나마 군사용으로 쓰는건 머겠어? 작전지시용이야. 

 

Early dragoons were not organized in squadrons or troops as were cavalry, but in companies like the infantry: their officers and non-commissioned officers bore infantry ranks. Dragoon regiments used drummers, not buglers, to communicate orders on the battlefield. The flexibility of mounted infantry made dragoons a useful arm, especially when employed for what would now be termed "internal security" against smugglers or civil unrest, and on line of communication security duties.  

 

전장에서, 주어진 암호 로 송수신하는겨. 무전병이야 이게 시작이 ㅋㅋㅋ. 벌저 라는게 뿔피리야 일종의. 나무로 된. 벌저 를 사용한게 아니라 드럼을 사용했다는겨. 막막 달리면서 드럼으로 작전들을 펼치는겨. 전진 후진 좌로 우로 사격 사격중지. 이걸 지시 받아서 얘가 말타면서 보병들에게 전달하는겨 드럼 비트 리듬 으로. 

 

그러다가, 때로는 치안용으로 쓰이는겨. 도둑 잡을때, 말타고 달리는 순경이야. 

 

In 1640, a tercio of a thousand dragoons armed with the arquebus was created in Spain. By the end of the 17th century, the Spanish Army had three tercios of dragoons in Spain, plus three in the Netherlands and three more in Milan. In 1704, the Spanish dragoons were reorganised into regiments by Philip V, as were the rest of the tercios.  

 

그러다가, 다시 총기병 으로서의 기병을 군대에 활용한게, 테르띠오 의 한 줄로 활용한 스페인이야. 그래서 테르띠오 가 막강했던거고. 전쟁술이 이걸로 업그레이드 가 되는겨. 대포 와 보병 과 기병 에 뒤에 척탄병 이 등장하는겨. 

 

그런데 저기서 확실히 구분해야 할껀 말이지. 갑자기 사라진 기병이, 테르띠오 에 더하여 저때 동시에 잉글랜드 스위든에 신성로마에도 재등장하는게 이 용기병인데. 

 

이건, 기사 가 아냐. 중세천년의 기사 와 전혀 다른 기병이야 이건. 이들을 기사 라고 부르지 않아. 그렇잖겠어?

 

전혀 다른겨 중세천년의 기사와. 저들은 귀족이 아냐 총 갖은 기병은. 

 

기사 의 말 과, 용기병 의 말 은 이게 품질 자체가 다른겨. 

 

저때 갑자기 이 말 horse 을 어떻게 해야하지? 전쟁에서 써먹고는 싶은데 당췌  애매해진겨 이 말이란게. 단지 저 부대 소대 중대 대대의 작전 지시용들로 써먹기엔 먼가 아까운겨 이게. 물론 지휘관은 중세 기사 의 고급말을 타고 다니는거지만. 

 

이 말 들을, 보병들이 타고 다니는겨 ㅋㅋㅋ. 완전군장 하고 움직이면 느리잖니. 자기 짐을 말에 실는겨 이게. 기사 따라다니는 서번트 들이 일자리가 없어진겨 이게. 기사가 사라지면서. 일단 기사가 사라졌어. 그러다가 보병들이 자기 짐 을 당나귀 노새 수준의 말에 싣고 다니는겨. 저 버려진 말들도 이렇게 쓰는거고. 이게 마운티드 인펀트리 라는 말단보병 들이 되는겨. 그러다가 이들이 짐꾼용 말 에 타는게 이게 용기병이야. 

 

저게 기사 가 사라지고 용기병이 등장하는, 저 전환기에 벌어지는 일이야. 용기병의 말은 그래서, 시작할때 일단  후진겨 이건. 얘들은 거창하게 치장해서 멋지게 달리면서 적군을 휘저어 창으로 기세잡는 애들이 아냐. 걍 걸음보다 빠른 말 타고 걍 총 한방 빵쏘고 토껴야해. 말 에 총맞으면 바로 낙마해서 뒈지는겨. 마던 의 시기에 이 용기병 이란건 전력에 도움이 안되요 이게. 약탈 할때나 좋은겨 여전히. 코사크 들이 파리 시내 들어가서 상대 없는 진영에 총질하면서 불던지고 약탈을 해댔어 나폴레옹 러시아 원정 실패하고 쫓길때. 

 

The name possibly derives from an early weapon, a short wheellock called a dragon, because the first dragoons raised in France had their carbine's muzzle decorated with a dragon's head.  

 

드래군즈. 가 드래곤 이잖아. 휠락 일때 프랑스 에서 처음 나온 말인데, 카빈 의 머즐 에 장식된 그림 이야. 카빈, 라이플, 이런것도 총 이 등장하는 15세기 말 에 동시에 나온겨. 둘다 장총 이야. 라이플 이란게 총구 안의 나선 이야 멀리 쏘는. 이 라이플 이란건 대포 에서 이미 나온거고 총 나올때 라이플 이 동시에 시작한겨. 아키버스 머스킷 은 다 이 라이플 이야. 카빈 이란것도 저때 프랑스 어야. 아키버스 를 들고 있는 기사 여. 캐벌리 카바예로 의 총이 카빈 이야. 갑자기 기사 가 총을 들어. 걍 지휘자 의 총이야 그래서. 이걸 조선민국이 20세기 말에 칼빈총으로 쓰는겨 16세기 유럽애들이 쓰던걸 ㅋㅋㅋ. 

 

머즐 이란게 총구 이고. 방패 에 어마무시 한 장식 하는 헤럴드리를, 어디에 하겠니? ㅋㅋㅋ. 총구 에 하는겨. 블런더버스 라는 나팔총 이 산탄이거든 입이 좌악 벌어져 보여. 무시무시한 그림을 총구 주위에 그리는겨 이렇게라도. 저런게 웃긴겨. 저기에 용 그림을 그린겨 저때 사람들이. 이게 용기병 의 시작이야. 

 

드래군즈 라는건 그래서 기사가 아닌겨. 이건 걍 허섭한 병사들이야. 말이 고급진게 아냐. 사람보다 빠르면 돼. 아무나 걍 쉽게 타는겨 저런 식의 승마는. 그러다 이 용기병의 승마술도 업그레이드가 되는겨. 말도 다시 고급져지는거고. 그런데 출신들은 전혀 달라 이게. 마던 이라는 근대 는 허섭한 민들이 말을 타는 용기병 이 등장하는겨. 

 

Louis XIV combined legal persecution with a policy of terrorizing recalcitrant Huguenots who refused to convert to Catholicism by billeting both dragoons and ordinary infantrymen in their homes. The soldiers were instructed to harass and intimidate the occupants, in order to persuade them to either convert to the state religion or emigrate. As mobile mounted infantry, the 14 regiments of dragoons in the French Army of the period were sometimes used for what would now be called internal security duties, and were an effective instrument for persecuting the Huguenots.  

 

이 루이가 1681년 에, 이 허섭한 용기병들을, 위그노들 탄압용으로 쓰는거야. 낭트칙령 때문에 못쫓아내. 이전에 위그노 반란 하면서 잉글랜드가 꼈지만 조약으로 마무리해. 리슐리외 와 마자랭 도 위그노 를 안건드려. 할배 의 낭트칙령도 있고, 얘들이 우리가 지금 생각하듯이 카톨릭 프로테스탄트 이딴거에 목매는 애들이 아냐 이 프랑스는. 

 

프랑스 는 오스만 이랑 친구인 애들이야. 스위든 네덜란드 에 돈 대면서 30년 전쟁 초반에 배후 짓 하던 애들이고, 네덜란드 에서 온 투렌 어린애가 칼뱅 임에도 얘한테 부대를 맡겨서 스페인과 전쟁하라던 애들이 프랑스야. 

 

프랑스 는 이념에 쩌든 애들이 절대 아냐 이게. 

 

그런데, 이 루이 가, 나이 처먹고, 저짓을 하는겨. 마자랭도 죽고 완전히 자기세상이야. 몰래 위그노 들을 없애는겨. 저건 불법이야. 드래군즈 를 14개 부대로 편성된걸, 할일이 없을때, 이들한테 치안을 맡기면서, 얘들 집을 위그노 들 영역에 거주지를 주고, 못살게 구는겨. 꼬투리 잡아서 약탈시키고.  교묘하게. 얘들은 뒤의 킹 의 빽으로 맘대로 노나는거고. 

 

The application of selective and coercive troop quartering had been initiated by the intendant René de Marillac in Poitou, in 1681. With the permission of the Secretary of State for War François-Michel le Tellier, Marquis de Louvois, Marillac systematically lodged troops with Protestants, in the expectation that existing laws exempting households newly converted to Catholicism from this practice would spur conversions. Billeted troops got so far out of hand that, after a series of reprimands in letters, the Marquis de Louvois was forced to recall Marillac from Poitou  

 

프와투 지역이 위그노 중심이었고 여기서 1681년에 시작을 해. 르부와 후작, 프랑수와 미셸 르 텔리에. 얘가 전쟁부장관 이야. 얘가 뒤를 봐주고, 아주 조직적으로 탄압을 해. 카톨릭으로 전향해라 안그러면 쫓아낸다. 빌렛티드 트룹스 라는게 아예 거주지를 저기에 둔 군인들이야. 얘들이 드래군즈 들한테 집도 제공한겨 위그노 지역에. 

 

그리고나서, 4년 후인 1685년 10월에, 낭트칙령 취소, 오직 카톨릭만. 위그노 금지. 를 정식으로 공포를 한겨. 

 

On January 17, 1686, Louis XIV claimed that his policies had caused the Protestant population of France to decline from 800,000-900,000 to 1,000–1,500. Though he greatly exaggerated, their numbers did decline significantly.  

 

다음해 루이가 자랑스레 말해. 위그노 가 팔구십만 있었는데 일이천명으로 줄었다고. 저때 위그노 들이 20만이 프랑스를 떠난 거로 봐. 이들이 특히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에 네덜란드 로 간겨. 

 

제임스2세 가 루이의 저 짓을 본거야. 이미 루이 의 카톨릭의 파리 를 경험했던거고. 이 짓을 얘가 그대로 하고싶은겨 이게. 저거대로는 못하겠지만. 

 

제임스2세 가 프랑스 란 나라를 전혀 모르고, 종교전쟁 이란걸 전혀 이해를 못한겨 이전에 썰했던 영주 군주들의 이유 를.

 

프랑스 스페인 신성로마 는 저 로마카톨릭 과의 관계가 전혀 달라. 저 사이가 또한 이탈리아 북부야. 전혀 달라 이게. 

 

이탈리아 북부 는 황제 와 교황 의 권력 전쟁에서 이 사이에서 피터진게 겔피 기벨리니 였거든. 북부 영주들마다 황제편 교황편이 있어. 이탈리아 북부 가 가장 혼란스러웠던거고 여전히. 

 

스페인 은 로마교황에게, 참잘했어요 도장받는 애들이야. 얘들은 아주 착한 애들이야 로마 입장에선. 갓 레콩퀴스타 끝내고 이슬람 유대교 를 적극적으로 내모는걸 자랑하는 애들이고 어머 얘들아 그건 좀 심하잖니 그래도 잘했어요 라고 로마 교황이 쓰다듬어주면 기쁨의 올가를 느끼는 애들이야. 

 

신성로마 는 영주들이 로마교회로부터 자기 권력 갖고 오려는 애들이 프로테스탄트 가 스스로 되어서 전쟁한 애들이야. 황제는 중앙권력집중 을 위해 로마와 손잡고 맞선 이들이고. 체제가 부정이 되면 자기에게 불리한거라고 느끼던거고. 영주들은 자기들 땅에서 보다 자기들 자기민들을 위해서 돈과 권력을 사용하고 픈거야. 이걸 갓 시작해서 30년 전쟁 끝나고서야 1백년 이 지나서야 인정을 받게 된겨 이게. 

 

프랑스 는 말이야. 전혀 전혀 달라. 

 

얘들은 카톨릭 이지만, 로마 애들 위의 세속이야. ㅋㅋㅋ. 로마 교황이 황제 잡느라고 프랑스 에는 아부 떨어야 했던거고, 로마 교황 싸다구 때려서 죽인 애들이 프랑스여. 무서워서 아비뇽 미리 들어가 깨갱대야만 해 교황들이. 

 

신성로마 는 로마교황으로 부터 자기권력챙기기 위해서, 다른 간판 달고 전쟁하고 프로테스탄트 간판 을 달고 온전히 자기땅이 되고 로마의 권력은 확 죽은겨. 

 

프랑스 는 애초부터 교황 싸다구 때려서 죽였어 ㅋㅋㅋ. 서임권?  그건 이미 프랑크 킹꺼여 ㅋㅋㅋ. 교황이 잉글랜드 는 헨리2세 의 런던협약 1107. 신성로마 하인리히5세 와의 보름스협약 1122. 로 저기땅들 서임권을 빼앗았어 십자군 발기의 힘으로. 그러면서 갖고 논겨. 

 

저런 짓을 어찌 감히 프랑스 에게 할 수 있니. 저짓을 프랑스 에게 했다가 늙은 교황이 싸다구 맞고 뒈졌어 ㅋㅋㅋ. 

 

전혀 다른겨 이게. 프랑스 가 교황 싸다구 때린다는건 말야, 프랑스 애들이 교황의 오컬트 에서 벗어났다는겨. 십자군 레반트 라는건 완벽하게 교황의 주술, 쏘서리, 위치 크래프트 에 놀아난거야 프랑스 애들이. 레반트 십자군은 프랑스 가 주인공이고 프랑스가 완벽하게 놀아난겨. 성루이 가 그 절정이고. 

 

이백년 놀아난 것에 대한 분풀이 가 교황 싸다구질이야. 얘들은 이때서야 교황의 주술에서 풀려난겨 이게. ㅋㅋㅋ. 

 

저때까지 프랑스 가 얼마나 피를 봤냐고 교황의 주술로. 그리고 저 사이에서 프랑스가 교황 을 또한 이용해서 신성로마 와 얼마나 숱한 전쟁의 역사가 있냐고 로타링기아 를 사이에 두고. 그 절정이 이탈리안 전쟁이야. 유럽사 는 프랑스 와 신성로마의 천년 전쟁이야 저게. 

 

프랑스 는 저 과정에서 완벽하게 로마 교황은 프랑스 킹 발 아래야. 교황이 잉글랜드 나 신성로마 를 갖고 놀듯이, 절대로 프랑스 를 그리 대할 수가 없어. 잘못 갖고 놀다간 또 뺨맞아 죽어 ㅋㅋㅋ. 

 

제임스2세 가 전혀 저런걸 모르는거야. 어? 파리  화려해. 어? 파리가 카톨릭이네? 어 파리 는 교황이 조또 아니네? 대체 왜 우린 허섭한 영어의 의례로 이따위 앵글리칸? 대체 이런 짓을 왜 하는겨? 우리도 카톨릭 해야징.

 

무식한겨 저게. 

 

저런 전혀 다른 판을, 지금도 제대로 설명하는 애들이 또한 없어. 그래서 머 제임스2세 탓만 으로 돌린다는것도 나쁜거지만.

 

The strict application of secular principle of laïcité (secularity) is used in France,

Gallicanism is the belief that popular civil authority—often represented by the monarch's or the state's authority—over the Catholic Church is comparable to that of the Pope. Gallicanism is a rejection of ultramontanism;  

 

프랑스 는, 라시테, 야 종교의 세속화 야. 이게 지금 정교분리 로 무의미해졌지만, 얘들은 교황 줘패죽이고 세속이 교회 보다 우위야. 다른 애들의 종교전쟁은, 로마카톨릭을 배후로 둔 황제 진영과 전쟁하는거고, 프랑스의 위그노는 교회를 쥔 킹 에 대드는겨 이게. 전혀 다른겨.

 

프랑스 의 종교를 그래서, 갈리칸이즘 이라고 해. 갈리안의 카톨릭 이란겨. 카톨릭 은 세속 킹 의 아래야. 교황은 프랑스 에 아무 힘 없어. 리슐리외 마자랭 모두 프랑스 킹 의 사람이지 교황 과 상관이 없어 이게. 로마 의 이념은 울트라몬탄이즘 이야. 저게 마운틴 을 넘어서. 여. 알프스 를 넘는겨 ㅋㅋㅋ. 알프스 넘어서 도 교황이 지배하는거고. 

 

돈키호테 를 보면, 그리스도 공화국 이란 말이나와. 스페인 과 로마 의 유럽이란건 그리스도 공화국 이란 하나의 나라야. 로마는 이걸 만들고 싶은거야. 그래서 마테오 리치 가 청나라 코트 를 가서 그리스도 를 알리는 이유야. 마테오리치 가 청나라 를 배우러 저기 간게 아냐. 니덜이 너무나 무지해서 저런 오해들을 하고 저런 식으로 퍼뜨리는데, 얘들은 온세상을 그리스도 의 카먼웰쓰 리퍼블릭 으로 만들기 위해서 저런 짓들을 한거야 이게. 가르치려고 간겨. 아시아를 배우러 간게 아니라. 주입하러 간겨 니덜  야만이라고. 맞는 생각이고. 

 

저게 토마스 만 의 마의산 을 보면, 이게 완벽한 철학소설인데 말야. 저기에 제수이트 와의 논쟁이 나오거든. 제수이트 란건 로마교황의 부름을 받고, 전세계를 하나의 유엔 으로 만드는게 쟤들 목표야. 그래야 전쟁이 사라지는겨. 전쟁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전쟁을 하는거야 제수이트 들은. 그리스도 의 하나된 나라를 만들려고. 울트라몬탄이즘 이야 이게. 

 

프랑스 는 필립4세 부터 갈리칸이즘 이야. 

 

This idea appeared as early as the reign of Philip the Fair, in some of the protests of that monarch against the policy of Pope Boniface VIII.  

 

필립4세 가 교황 포니파티우스 8세 를, 애들보내서 패죽여. 레반트 십자군 끝나고, 할아버지 성루이 죽고. 할배가 빚더미로 만들고, 그럼에도 로마들이 자기들을 갖고 놀려고 해. 애들보내서 패죽여. 완벽하게 얘들이 이때 로마의 주술에서 벗어난겨 2백년 당한 분풀이여 저게. 템플기사단장도 화형시키고 해체하고 채무를 강 해결해. 

 

헨리2세 는 캔터베리 대주교를 역시나 애들보내 패죽였어. 헌데 저때는 레반트 십자군 승기분위기야. 헨리2세가 바로 무릎꿇은겨. 

 

필립4세 는 교황 을 패죽여. 레반트 십자군이 대패했어 끝났어. 아무도 못건드려 저런 필립을. 교황이 아비뇽에 쑤셔 들어가 아부하려고. 

 

The Pragmatic Sanction of Bourges, issued by King Charles VII of France, on 7 July 1438, required a General Church Council, with authority superior to that of the papacy, to be held every ten years, required election rather than appointment to ecclesiastical offices, prohibited the pope from bestowing and profiting from benefices, and forbade appeals to the Roman Curia from places further than two days' journey from Rome.  

 

1438년. 부르주 실용적 금지. 아라스 조약 이 1435고 이때 부르고뉴 가 프랑스와 손잡아. 샤를7세 의 프랑스가 백년전쟁에서 승기를 잡고 교황에게 경고 하는겨. 우리 프랑스는 교황정 보다 우위야. 성직자 를 로마에서 임명하는 거 거부, 선거로 임명. 로마 교황이 우리 프랑스 의 것들로 이익취하는 거 거부. 프랑스의 돈이 로마로 가는걸 막는겨. 더하여 말이야, 법 적으로 로마 에 기대는 거 거부. 

 

이놈의 로마 가 교회법으로 세속에 여전히 개입하는거거든. 이것도 금지. 

 

프래그매틱 이란게 민들의 생계 와 관련됨 이야. 자기들 생계 생활 을 걸고 넘어지는 로마 를 막는겨 세속에서. 

 

 

The Concordat of Bologna (1516), marking a stage in the evolution of the Gallican Church, was an agreement[1] between King Francis I of France and Pope Leo X that Francis negotiated in the wake of his victory at Marignano in September 1515. The groundwork was laid in a series of personal meetings of king and pope in Bologna, 11–15 December 1515. The concordat was signed in Rome on 18 August 1516.  

 

볼로냐 협약 1516년. 이탈리안 전쟁때 프랑수아 1세 가 마리냐노 전투 를 이기고, 교황 레오10세 와 맺어. 이전 샤를7세 의 저게 잘 안지켜지고, 선거에도 로마가 개입을 하는겨 여전히. 

 

The Concordat permitted the Pope to collect all the income that the Catholic Church made in France, and the King of France was confirmed in his right to tithe the clerics and to restrict their right of appeal to Rome. The Concordat confirmed the King of France's right to nominate appointments to benefice (archbishops, bishops, abbots and priors), enabling the Crown, by controlling its personnel, to decide who was to lead the Gallican Church.  

 

십일조 도 킹 의 관할이야. 로마 에서 절대 개입못해. 로마 가 끼는거 다시 금지. 프랑스 의 성직자들, 대주교 주교 수도원장 들 지명권은 프랑스 킹의 권리. 

 

In 1663 the College of Sorbonne solemnly declared that it admitted no authority of the pope over the king's temporal dominion, nor his superiority to a general council, nor infallibility apart from the Church's consent  

 

소르본느 대학 에서 1663년. 마자랭 죽고나서 루이가 결혼하고 자기정치 시작할때야. 교황의 킹에 대한 우월함 인정 못해. 교황은 공회의 도 킹 위에 있지 않아. 교황 무오류설 거부. 

 

The Declaration of the clergy of France was a four article document of the 1681 Assembly of the French clergy promulgated in 1682 which codified the principles of Gallicanism into a system for the first time in an official and definitive formula.  

 

프랑스 의 성직 선언. 이게 1681년 이야. 드래군즈 의 드라고나드 로 위그노 박해 할 때에, 정치권에서 한거야. 필립4세 부터의 로마와의 이별 을 380년 지나면서 의 과정을 공식화 한겨. 자세하게 이론으로 굳힌겨 이게. 

 

St. Peter and the popes, his successors, and the Church itself have received dominion [puissance] from God only over things spiritual and such as concern salvation and not over things temporal and civil. Hence kings and sovereigns are not by God's command subject to any ecclesiastical dominion in things temporal; they cannot be deposed, whether directly or indirectly, by the authority of the rulers of the Church, their subjects cannot be dispensed from that submission and obedience which they owe, or absolved from the oath of allegiance 

 

첫번째 항목 만 보면. 성베드로 와 그 후계자들인 교황들 그리고 교회 그 자체는 신으로부터 지배권 도미니온. 이건 퓨이슨스, 힘 인데 이걸 받았어, 단지 정신적인 것들 에 대한 지배권일 뿐이야. 구원같은거. 니덜이 받은 권력은 이 세속의 시간적인 문명의 것들에 대한 권력이 아냐. 따라서, 킹들과 그 스테이트들은, 산이 명령한 서브젝트 인, 즉 누구여? 성베드로 에 교황들에 교회들이야. 니덜에게 아무런 지분은 없어 . 니덜이 세속을 파면하는 그딴 권리는 직간접적으로 다 없어. 

 

교황 의 교회 가 세속에 개입하는게 신의 대리인 이라며 세속도 자기꺼 란거거든. 저걸 완벽하게 거부하는겨. 니덜은 구원 이라는 영원에 대한 정신세계의 주주 지, 이 세속의 지분은 전혀 없다는겨. 

 

니덜  세속에 개입하지 말아. 

 

저게 1681년 이야. 루이가 교회 보다 우위야. 저게 4백년 가까운 역사여 저게. 그 이전 레반트 2백년의 뻘짓이 더해진거고. 그이전 5백년 이전에 샤를 부자가 교황령 준 이후부터 7백년 의 주술에서 벗어나서 4백년 세팅하면서 종지부를 찍는겨 저게. 

 

 

프랑스는 저렇게 해서 로마 와 이별하고, 자기들만의 갈리칸 처치.를 만든겨. 

 

헨리8세 는 앤불린 덕택으로 혼자 뒤집어 엎어서 앵글리칸 으로 간거고. 

 

신성로마 진영은 전쟁하면서 얻어낸거고. 

 

전혀 전혀 달라 저 과정이. 

 

그래서 프랑스 가 루이 때 가장 코트가 화려한겨. 

 

제임스2세 가 저런 과정을 전혀 모르는겨. 저기서 지가  앵글리칸 주교들 다 짜르고, 기존 앵글리칸 법들 지우려 하고. 그게 말이 되니 말이. 조선에선 가능해. 지금 조선민국에 저런게 아주 가볍게 일어나거든. 권력 대가리가 자기 맘대로 해도 아무렇지도 않아 ㅋㅋㅋ. 그게 정의랍시고. 야만으로 돌아가는 정의. 기존 조선으로 돌아가는게 가능해 민들 역사가 조선 오백년을 너무나 너무나 사모 하거든. 민족 이란 곧 조선이니까. 

 

유럽사 란건 이건 달라 이게. 저런건 안통해. 저 역사의 두께를 부정할 수 없어. 

 

얜 바로 튕겨 나간겨 그래서. 재코바이트 란건 의미도 없는 발악질이고. 

 

일단 이건 여기서 끊자. 

 

French Huguenots fleeing to Branden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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