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venanters were a Scottish Presbyterian movement that played an important part in the history of Scotland (and to a lesser extent that of Ireland as well) during the 17th century. Presbyterian denominations tracing their history to the Covenanters and often incorporating the name continue the ideas and traditions in Scotland and internationally.
They derived their name from the word covenant, which referred to a bond, legal document or agreement, with particular reference to the Covenant between God and the Israelites in the Old Testament.

세킹덤의 전쟁 에서 스콧이 커버넌터스 고 아일랜드 가 콘페더레이트 로 언급을 한건데. 이 스콧의 커버넌터 들은 프레스비테리언 이라는 장로교 이고 프로테스탄트야. 이들 입장이 애매한거야. 앵글리칸 이라는 프로테스탄트 와의 관계가, 내전때 킹 파와 팔리어먼트 파 로 나뉘고. 크롬웰때 완전히 들어왔지만 얘들은 퓨리튼이야. 팔리어먼트 애들이 앵글리칸 인데 말이지, 권력은 퓨리튼 들이 쥔거야. 프로테스탄트 지만 이또한 달라 얘들입장이. 결국 크롬웰의 카먼웰스가 오래 갈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야.

커버넌터 들이 잉글랜드 내전의 시작이야. 주교들의 전쟁 이란 이름으로 찰스가 시작하고 스콧에 처들어가다가 안풀리고 팔리어먼트 애들이 목줄쥔 예산에 고개숙이다가 찰스와 팔리어먼트 의 싸움으로 번진거거든. 이때 스콧 커버넌트들이 애매해진거야. 찰스 도 팔리어먼트 도 앵글리칸 이야. 딱히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겨? 찰스가 먼저 쳐들어왔어, 반사적으로 팔리어먼트와 손을 잡아. 그런데 팔리어먼트 가 커버넌트들을 인정해줄까? 이 와중에 커버넌트들이 둘로 갈려 찰스파와 팔리어먼트파로. 찰스 를 맨 처음 수중에 넣은 애들이 스콧 애들이야. 이때 찰스와 협상을 했는데 찰스가 커버넌트들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팔리어먼트 로 넘어간겨. 찰스 가 넘어간 상태에서야 스콧 커버넌트애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스콧애들이 찰스 로 일부 돌아서는겨. 그러다가 찰스 가 목짤리면서, 놀래 커버넌트들이, 왜? 찰스 는 스콧의 자식이거든. 저렇게까지 죽여버릴 줄은 몰랐던겨. 전부 찰스의 자식 에게 돌아가는겨. 팔리어먼트 입장에선 커버넌터들이 같은 편에서 적이 된겨. 크롬웰이 찰스2세 를 던바 전투와 우스터 전투로 몰아내면서 스콧은 아무런 협상능력없이 커버넌터 들이 죽은겨. 그러다가 찰스2세 가 복귀를 했어. 당연히 커버넌터 들을 인정해줄 줄 알았어.

그런데 찰스2세의 1662년에 잉글랜드 팔리어먼트에서 유니포미티 액트 를 통과시키고 공포하는겨. 종교일치야 앵글리칸 으로. 예배식의 절차 에 언어까지 일치 시키는거야. 오히려 더 강력해진겨. 스콧의 커버넌터들을 인정 안하는거야 이건. 찰스2세 는 바닥이 카톨릭이야 얜. 팔리어먼트 는 같은 편이지만 퓨리튼 에 데인 애들이야. 내전도 시작은 저놈의 종교 때문이거든. 찰스1세가 하이처치 를 내세우면서 카톨릭 냄새 더해서 앵글리칸이랑 섞어서 스콧과 아일랜드 의 정신세계를 합치려는거고, 이게 일치되어야 하나의 정체성을 갖을 거란 생각 이거든 이게. 팔리어먼트 도 왕정복위하고도 같은 생각이야. 이걸 잉글랜드 뿐 아니라 스콧 아일랜드 까지 다 일치 시키는겨. 팔리어먼트 는 결국 내전에 찰스2세 데려오면서 찰스1세 의 계획 을 내전 끝나고 퓨리튼 경험하고 아들 을 킹으로 올리고, 실현한겨 찰스1세 의 유지를 ㅋㅋㅋ. 역사란게 웃긴겨 이런면이.

결국 스콧 입장에선,  죽 쑤고 개준겨 이게. 내전때  찰스2세 편들어서 적극적으로 참전해줘서 대패 해서 결국 크롬웰에 먹혔구만. 쟤가 저럴 줄은 몰랐던거야 스콧이. 스콧 애들 입장에선 이런 배신감이 없어.

그런데 찰스2세 도 자기힘으로 오른게 아냐. 조지 몽크 의 힘으로 팔리어먼트 가 올려준겨. 아빠 복수란것도 죽은 시체 몇개 꺼내서 목 짜른 쇼 가 전부야. 얜 힘이 없어. 모든건 팔리어먼트야. 얜 팔리어먼트 뒤집어서 카톨릭 세상 만드는게 바닥 마음이야. 스콧애들이 자길 도와줬었지만 결론은  대륙으로 도망간거고, 스콧애들한테 고마울거 없어 전혀 얘 마음은. 저것들이 얼마나 약하면 나를 전쟁패하게 하고 도망다니게 해. 얜 요런 마음이야. 팔리어먼트 가 유니폼 한거고 어쨌거나 아빠 첫 계획이 앵글리칸으로 하나 되는겨. 다를게 없어. 더하여 아빠 뜻으로 니덜 커버넌터 들도 앵글리칸 을 따라야 해.

스콧 애들은 이래 저래, 결과적으로 아무런 이익도 없는 저 아래 내전에 끼어든거야. 누가 이기든간에 자기들은 지워질 대상인거거든.

커버넌터스 라는게, 저당시는 스콧 팔리어먼트 조직자체야. 정치조직을 이 커버넌터스 가 대행을 한겨 내전때 그리고 그 후로도. 이들이 잉글랜드 내전 초기 시작부터 이후 본격내전때도 가장 큰 변수였다가, 찰스2세를 앉히고 잉글랜드랑 전쟁하면서 대패하면서 내전이 끝난겨. 그리고 크롬웰 세상인거고. 즉 커버넌터 들의 스콧 의회 및 조직은 거의 완벽하게 몰살이 된거야. 대부분은 저 크롬웰의 카먼웰스 에 하나가 된거고, 나머지들은 아무런 힘 없이 흩어진거야.

저 당시까지의 스콧 인물들을 보면, 걍 답이 없는거지만.

Archibald Campbell, 1st Marquess of Argyll, 8th Earl of Argyll, Chief of Clan Campbell (March 1607 – 27 May 1661)

아치볼드 캠벨. 아가일 후작. 갬벨 클랜의 장. 이 사람이 커버넌터스 의 리더고 비숍들의 전쟁 에서 찰스1세에 맞선거고. 잉글랜드 팔리어먼트 와 적극적으로 손을 잡고, 크롬웰 에게도 충성하는거야. 그런데 커버넌터스 는 찰스1세 목아지 짤리면서 대부분 찰스파로 돌아서. 저 킹 목짜르는건 커버넌터스 에게도 쇼킹한거였어. 이때부터의 아가일 의 캠벨 은 스콧 에선 쪽팔린 권력이 된거야. 크롬웰 이 얘들 의 힘 일 뿐이야. 이 아치볼드 캠벨.은 찰스2세 복위되고 메이든. 이라는 기요틴 보다 먼저 나온 스콧의 칼날 로 목짤려 죽여. 크롬웰 때 스콧 반란을 얘가 진압한게 서류상 죄야.

Alexander Leslie, 1st Earl of Leven (1582 – 4 April 1661)


알렉산더 레슬리. 레벤 백작. 커버넌터스 에서 스콧부대의 리더야. 군사지휘는 이사람이 하는거고, 내전때도 탁월했고, 팔리어먼트 편들었다가, 찰스1세 목아지 짤리는 거 보고 이사람은 등돌려. 스콧 다수파인 찰스2세 파가 되는겨. 즉 이사람은 찰스2세 복위되고 명예회복하지만 나이 80이야 이미.

James Hamilton, 1st Duke of Hamilton KG PC (19 June 1606 – 9 March 1649)

George Gordon, 2nd Marquess of Huntly (1592 – March 1649)

James Graham, 1st Marquess of Montrose (1612 – 21 May 1650)


스콧 비숍들의 전쟁 때, 찰스1세 파야 스콧의. 해밀톤 공작, 헌틀리 후작. 모두 찰스1세 목짤리고 죽은겨. 위대한 몬트로스 제임스 그램. 이사람은 커버넌터스 였다가 저 아가일의 캠벨 때문에 돌아선거야 찰스1세쪽으로. 능력은 탁월한데 족보로 해밀톤에 밀렸고, 저들 죽고 일년 뒤 잡혀서 목 걸리는거고.

커버넌터스 들이 정치적으로 애매한거야 찰스1세 때에도. 분란 생기고, 찰스 목짤리곤 대부분 왕정파 로 돌아선거야. 결국 저기서 끝까지 버티던 애는 아가일 의 캠벨 부락 아치볼드야. 크롬웰때도 스콧의 대리인이야 얘가. 그러다가 찰스2세 올라와서 목짤린건데.

이 아가일 땅의 캠벨 애들이 웃긴겨 이게. 여긴 스콧의 서쪽해변이야. 프레스비테리언 이란 장로교 에서도 초극단애들이야. 몬트로스 가 저거에 치가 떨려서 커버넌터스 를 나와서 찰스로 간거거든.

이 캠벨들이 아치볼드 목짤리고서는, 적극적으로 잉글랜드 킹 편에 서는겨. 이때부터 얘들은, 커버넌터스 라는게 아냐 이게. 오히려 스콧의 진짜 커버넌터스 를 얘들이 쥐잡듯 조지는겨. 특히나 얘들은 카톨릭 을 증오해. 뒤에 찰스2세의 동생 제임스2세 가 팽당해서 얘들의 재코바이트 반란 할때 이 스콧에서 이들 진압한다며 선두에 선게 아가일의 이 캠벨 애들이야.

The Massacre of Glencoe (Scottish Gaelic: Murt Ghlinne Comhann) took place in Glen Coe in the Highlands of Scotland on 13 February 1692. An estimated 30 members and associates of Clan MacDonald of Glencoe were killed by government forces,

글렌코 학살. 30여명을 죽인건데. 글렌 코.의 맥도날드 클랜 을 이 캠벨 애들이 학살하는겨. 재코바이트 지원한다는 트집으로. 이건 괜히 가서 죽인거거든. 이 캠벨 애들이 스콧 역사에서  애매한겨. 스콧 은 장로교의 나라고, 이 시작은 커버넌터스 인데, 이때의 시작은 아가일 의 저 캠벨 의 아치볼드 야. 스콧 의 독립성 정체성이 어찌보면 얘 거든. 그런데 또 크롬웰 때는 소수파로 권력이 된거고 목짤린거고, 저때부턴 잉글랜드와 손잡고 맥도날드 부락을 학살하고. 얘들이 1688명예혁명 이후의 오렌지에 충성해서 출세하는겨. 이 스콧 이란 나라가 웃겨 이게. 하튼 이 캠벨 을 제대로 쳐줄 수가 없어 이건.



여하튼 그리고 나서, 찰스2세 가 복귀했어. 기대해. 더 무너져. 우스터 전투 가 1651년 이야. 이게 마지막 발악이었어. 이후 다 지워진겨. 십년이 지난겨 그이후로. 이들이 다시 부활하는겨 찰스2세 의 유니포미티 액트 에 대한 반발로.

커버넌터스. 라는게 커버넌트 하는 자.들. 이야.

From Middle English, borrowed from Old French covenant (“agreement”), from Latin conveniēns, convenientem (“agreeing, agreeable, suitable, convenient”), present participle of conveniō (“to agree”). Cognate with convenient and convene.

콘 베니오.의 프레즌트 파티시플.에서 나온 명사야. 베니오 가 내가오다. 야. 베니 가 퍼펙트야 완료. 베니 비디 비키. 왔다 보았다 이겼다. 콘 이 함께 온거고. 동의하다 같이 모여 온겨 동의한거야. 이것의 명사 로 불어로 가서 영어로 커버넌트 가 되고. 컨비니언트 가 편리함이 역시나 모두 같이 하는거야. 모두 같이 가 적당한거고 이게 편한거고. 편의점이되고.

약속의 궤. 라는 아크 오브 더 커버넌트. 아크 가 아르케오 라는 밀봉하다 고 아르카 가 밀봉상자 에 이걸 별 시안한 한자 궤 라 번역한건데 일본애들이. 저기서 커버넌트 라는 동의 어그리먼트 는, 신과 인간과의 동의 이고 약속인겨.

커버넌터스 는 그래서, 신과 함께 약속한 자들.이야.  쎈 말이야 이게. 그냥 지들 인간끼리 약속 동의한게 아냐. 신 이 맨 위에 끼는겨.

A conventicle originally signified no more than an assembly, and was frequently used by ancient writers for a church. At a semantic level conventicle is only a good Latinized synonym of the Greek word church, and points to Jesus' promise in Matthew 18:20, "Where two or three are met together in my name."[1] It came to be applied specifically to meetings of religious associations, particularly private and secret gatherings for worship.

스콧 커버넌터스들의 조직체가 1662년 부터 새로 등장하는 게 콘벤티클 이라는겨.

커버넌트 와 같은 어원이고. 콘베니오 에 이건 모이는겨. 마테 에, 지저스 의 말로, 두세명이 모여만나는 곳 나의이름으로. 두세명의 모임.에 가장 적당한 라틴어가 콘벤티쿨룸 이고 이게 콘벤티클 이란겨.

원래 유대교 의 교회 는 시나고그 이고. 시나고그 란 말은 히브리어 의 전혀다른 소리 를 그리스어로 뜻에 맞게 새로 번역한 거야 시나고그 라고. 기도하는자의 집 이야.

시노드 라는건 길을 함께 하는겨. 시노드 는 그리스어고 라틴어가 이게 카운슬 이야. 이건 지도자들 모임인겨. 시나고그 콘벤티클 은 전체 민들의 모임 이란 교회 인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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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의 저 콘벤티클 이 멋진 말이잖아 두세명이 모여라 나의 이름으로. 거기에 나도 그들중에 하나다. 지저스가 거기 있는겨. 이만한 교회가 어딨는겨.

다들 초기교회때 저 콘벤티클 이름으로 만나는겨. 그러다가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부터 이 콘벤티클 은 나쁜거야. 저건 이단이돼. 교회조직을 거부하는 이들이 이단으로 따로 모이는겨 은밀하게.

이게 처음 중세에 등장하는게, 잉글랜드여. 존 위클리프 의 롤라드 야. 리차드3세 때야. 잉글랜드는 교황이랑 불편할때 위클리프 는 기존교회가 싫은거고 리차드는 이런 위클리프 를 좋아하는거고 뒤에서. 이 위클리프 를 따르는 이들이 모이는게 콘벤티클 이 되고, 튜더 때 등장하는겨 앵글리칸 을 거부하는 이들이 콘벤티클 이란 이름으로 모이는거고. 요게 스콧에 저때 부터 등장하는겨 커버넌터스 가 콘벤티클 로. 라임이 좋잖아 또한.

이들이 십년전에 사악 죽었어. 흩어져서 두세명씩모임 이라는 콘벤티클 이 된겨. 이들이 모여서 전쟁을 해.

가장 큰건, 교회 조직을 바꾸는것에 대한거야.

Following the restoration of Episcopacy, rebel ministers began to preach at secret open-air meetings in the countryside known as "conventicles".

에피스코파시. 주교체제. 프레스비테리안 이라는 스콧 칼뱅 들은, 가장 기존교회를 거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저놈의 주교체제의 피라미드 조직이야. 엘더 라는 원로들이 모인 합의체 가 정답이라는거야 이들은. 세속권력은 주교 라는 대장 을 앞세워서 인사권과 조직을 쥐어야 하는거고.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세속권력이 커버넌터들을 인정 못하는건 저지점이야. 세속이 프레스비테리언 들이라는 원로들 전체를 통제 하기 보다는 주교 한명 통제하기가 훨 쉽거든.

The Rescissory Act, 1661 or Act rescinding and annulling the pretended parliaments in the years 1640, 1641 etc.[1] was added to the Scottish Parliamentary register on the 28 March 1661.[2] At one stroke, it annulled the legislation of 1640–1648 (and in effect the legislation of all parliaments since 1633), covering the time of the Wars of the Three Kingdoms and the Commonwealth.[3][4] This parliament was sometimes known disparagingly as the "Drunken Parliament"

찰스2세 가 1660년 5월에 복위해서 다음해 대관식하고, 1662년 에 유니폼이티 액트. 거든. 스콧은 1661년 에 먼저 리씨서리 액트. 리씬드 라는게 뒤로 가서 짜르는겨. 과거일 무효. 커버넌트스 가 스콧 의회를 장악한거거든. 저들의 커크 교회 의 의회를 다 취소시키는거야.

George Mackenzie, 1st Earl of Cromartie FRS (1630–1714), known as Sir George Mackenzie, 2nd Baronet from 1654 to 1685 and as The Viscount of Tarbat from 1685 to 1703, was a Scottish statesman.

저건 스콧에서 만든 법령이고. 조지 맥킨지. 카머티 백작 타밧 비스카운트.인데. 어려서 찰스2세 지지하고 복귀되고 얘가 술처먹고 우스개로 만든 이야기 가 진짜 법이 된겨. 이전 의회는 무시되어야 한다며. 그래서 캠벨 의 커버넌터스 가 만든 의회 를 드렁큰 팔리어먼트. 술처먹은 의회. 라고 해 얘가 술처먹고 무효화 시켜서리. 이 법에서 나오는게. 스콧의 교회 를 에피스코퍼시. 주교체제로 가는겨. 스콧 의 교회 지도부는 런던 주교에 의해 인정되어야 해.

장로교 라는게 엘더스 들이고, 집단체제야. 이건 지도부가 많은겨 이게.

One result of the Rescissory Act was that all the ministers who obtained livings from 1649 to 1661 were held not to have been appointed at all, and therefore were at once thrust out of their jobs. They numbered nearly 400, and their expulsion caused great discontent in Scotland. The extinction of this Act brought into operation the old law of 1592, by which the Church Courts were bound to induct any minister presented by the Crown or any lay patron; and thus, after an interregnum of 12 years, patronage came into full vigour, and it so continued till after the Revolution of 1688, when it was modified by the Act of 1690

이 법으로, 교회 성직자 들이 의회일 하면서 처먹고 살은거거든. 400명이야. 얘들이 밥줄이 끊긴겨. 비숍 체제에 비숍 급들이 엘더스 라는 프레스비테리언들인거거든. 다 짤려야 해. 이법으로 이들이 교회로 돌아가서, 결국 이들 밥과 돈을 신도들이나 킹덤에서 줘야해 또한 이전 법으로.

지도부 들은 얘들 대로  저놈의 에피스코퍼시 라는 주교 체제가 싫을 수 밖에 없어.

In 1662, the kirk was restored as the national church, independent sects banned and all office-holders required to renounce the 1638 Covenant; about a third, or around 270 in total, refused to do so and lost their positions as a result.[31] Most occurred in the south-west of Scotland, an area particularly strong in its Covenanting sympathies; some took to preaching in the open fields, or conventicles, which often attracted thousands of worshippers.[32]

저걸로 스콧 교회에서 270명이 자리를 잃어. 거부를 하고 아예 따로 숨어서 지들만의 조직을 만드는겨 이게. 이게 자잘자잘 콘벤티클 이야. 대부분이 남서쪽.이고 이 중심이 글래스고.야. 웃긴게 저 캠벨부락의 아가일은 서북쪽 해변지역이거든. 캠벨과는 상관이 없어. 이 켐벨 도 있는듯 없는듯 하다가 뒤로 가면 저항하고 망명하다가 다시 오렌지 윌리엄에 충성하는겨. 얘들 참 이상한 애들인데.

이게 세력이 되는게 사오년 걸리는겨.

1666, a small force of poorly armed Covenanters was defeated at the Battle of Rullion Green in the Pentland Hills,

A further rebellion broke out in 1679, after the unexpected success of a group of covenanters, armed with pitch forks and the like, against government forces led by John Graham of Claverhouse at the Battle of Drumclog.
only a few weeks after Drumclog the rebels were defeated at the Battle of Bothwell Brig.

1666년에 럴린 그린 전투. 에딘버러 아래쪽이야. 9백명이야. 33명 처형되고 나머지들은 바르바도스 로 가서 여기서 사는겨 안틸리스제도 처음 갖고온 땅끝. 1679년 6월에 드럼클로그 전투. 여긴 2백명이야 커버넌터스 가. 걍 머스킷 에 허섭한 농기구들은겨. 이들이 패하고 도망간 곳이 보뜨웰 브릭(다리). 모두 서남쪽 글래스고 지역이야 저기가. 보뜨웰 브릭 은 5천명의 커버넌트스 인데 걍 허섭하게 농기구 들면서 대든겨.

The numbers of covenanters who were killed varies widely with estimates ranging from 7 - 700 according to the Scottish Battles Gazetteer. Around 1200 were taken prisoner.

1200명이 죄수가 되고, 7명에서 7백명이 죽다. 기록 자체가 애매한거지 이게.

James Scott, 1st Duke of Monmouth, 1st Duke of Buccleuch, KG, PC (9 April 1649 – 15 July 1685) was a Dutch-born English nobleman. Originally called James Crofts or James Fitzroy, he was born in Rotterdam in the Netherlands, the eldest illegitimate son of Charles II of England, Scotland, and Ireland with his mistress Lucy Walter.

보뜨웰 다리 전투 에서 진압군이, 먼머뜨 공작 제임스 스콧. 제임스 크로프츠. 인데. 찰스2세 의 배스타드.야. 앵글로-네덜란드, 프랑스-네덜란드 전쟁에도 참전하고, 저대 나이 30에 커버넌터들 진압했는데. 찰스2세 가 포르투갈 퀸이랑은 자식이 없는데, 배스타드들이 많아. 이 첫째가 제임스 스콧.이야. 아빠 잡혀서 얜 18세에 헤이그 에 피난했을때 같이 있던 웨일즈 귀족여자거든. 찰스2세 가 죽고 동생 제임스2세 가 카톨릭 킹 으로 오르는겨. 여기에 반란 한 게 저 먼머뜨 반란 이야. 1685년. 조카 가 저때 대들어서 죽어.

Argyll's Rising or Argyll's Rebellion was a 1685 attempt to overthrow King James II and VII of England and Scotland by a group of Scottish exiles. Led by Archibald Campbell, 9th Earl of Argyll, the rising was intended to tie down Royal forces in Scotland while a simultaneous rebellion under James Scott, 1st Duke of Monmouth began in England.

제임스2세 가 카톨릭 킹으로 행세할때, 하튼 참 시대 분위기 모르고 이랄지를 하는건데 이따위 애도. 잉글랜드 에선 조카 배스타드 먼머뜨 가 반란하고, 스콧에선 드뎌 아가일 이 나서는겨. 이 아가일 이라는 캠벨 애들이 이때 다시 등장하는거고. 이때 망명하고 다시 오렌지 제임스 가 명예혁명 으로 등장할때 철저한 오렌지빠가 되는겨 이 아가일 캠벨들이.

그러면서 , 오렌지 윌리엄이 영국 킹에 오르고, 아가일 등의 커버넌터스. 저때 아가일은 커버넌터스 가 된겨. 스콧의 교회조직을, 프레스비테리언 을 인정하는겨. 그래서 이때부터 다시 스콧 장로교 인 프레스비테리언 이 인정되는겨. 그것도 단지 반반. 즉 스콧 교회가, 절반은 프레스비테리언, 절반 은 에피스코팔. 지금 스콧 에피스코팔 처치.가 있어. 이건 머여? 앵글리칸 이야. 처치오브잉글랜드 는 앵글리칸 이야. 처치오브스콧랜드 는 머여? 이건 프레스비테리언 이야. 지금 스콧 에피스코팔 처치 는 일이만도 안돼.

저러면서 커버넌터스 가 자리를 잡은겨 스콧에.

The Killing Time was a period of conflict in Scottish history between the Presbyterian Covenanter movement, based largely in the south west of the country, and the government forces of Kings Charles II and James VII. The period, roughly from 1680 to the Glorious Revolution of 1688, was subsequently called The Killing Time by Robert Wodrow in his The History of the Sufferings of the Church of Scotland from the Restoration to the Revolution, published in 1721–22. It is an important episode in the martyrology of the Church of Scotland.

커버넌터스 라는 이들의 역사가 참 이게 잉그랜드 내전때도 나뉘고 찰스목아지 딸리고 바뀌고 이게 시안한 역사여. 그러다가 찰스2세 복귀로 완전히 팽당해서 이때부터 특히나 암흑기야. 럴린그린 전투, 드럼클로그, 보뜨웰다리. 에 하이랜드 애들이 또한 잔인하게 진압해. 이 스콧 하이랜드 가 북쪽이고 스콧 게일 이란게 이 하이랜드 에 왼쪽해변 허브리즈야. 졸 무시캐 이들이. 드럼클로크 보뜨웰다리 저 죄수들이 또한 바다로 이송되다가 물에 빠져 수백명이 죽고.

특히나 저시기를, 킬링타임 이라고 해. 로버트 워드로. 가 처치오브스콧. 장로교 순례기 에 서 쓴 책이야. 어디사람이겠어? 글래스고 사람이야. 저 커버넌터스 의 콘벤티클 의 중심이야.

Cameronian was a name given to a radical faction of Scottish Covenanters who followed the teachings of Richard Cameron, and who were composed principally of those who signed the Sanquhar Declaration in 1680.

캐머론이언. 리차드 캐머론. 사람들 이고. 저당시 커버넌터스 야. 찰스2세 의 앵글리칸 을 거부하는겨. 1680년에 전투중 죽은거고. 저 전투들이 캐머론 주의자들인지는 분명치는 않고.

James Renwick (15 February 1662 – 17 February 1688) 제임스 렌윅. 아가일 반란에도 가담안해. 이사람은 렬렬한 신앙론자이고, 커버넌터들의 저 콘벤티클 같은게 좋은겨. 필드 에서 막막 연설해. 이건 불법이야. 재판받고 죽어.

Margaret Wilson (c. 1667 – 11 May 1685) was a young Scottish Covenanter, from Wigtown in Scotland executed by drowning for refusing to swear an oath declaring James VII (James II of England) as head of the church. She died along with Margaret McLachlan. The two Margarets were known as the Wigtown Martyrs. Wilson became the more famous of the two because of her youth. As a teenager, her faith unto death became celebrated as part of the martyrology of Presbyterian churches.

킬링 타임. 이라는 저 커버넌터스 순례기 에서, 가장 유명한게, 마가렛 윌슨 이란 여자야. 18세 에 죽어. 커버넌터 야. 위그타운. 스콧 잉글랜드 경계 의 왼쪽 아가리 가 위를 갤러웨이.라 하고 아래턱을 컴브리아 라고 해. 이 갤러웨이 의 해변 마을이야.

Margaret Wilson was born at Glenvernoch, a farm near Newton Stewart in Wigtownshire. Her parents were dutiful Episcopalians, but her older brothers were Covenanters. By 1684 Covenanters were hiding from the authorities in the hills, and increasingly draconian action had ended the large conventicles. There were still small gatherings held indoors, but now failure to take a test of allegiance to the king, which required renouncing the Covenant, met with the death penalty, as did even attending a conventicle or harbouring Covenanters. Despite the risks, Margaret began attending conventicles with her younger brother Thomas, possibly beginning when there was an opportunity at a local conventicle to see the charismatic James Renwick who had newly become leader of the more extreme Covenanters known as the Cameronians. On occasion they also took along their young sister Agnes.[3]

부모는 독실한 에피스코팔리안. 즉 이건 앵글리칸 이란겨 걍 쉽게. 그런데 오빠들은 커버넌터들 이야. 1684년에 커버넌터들 은 숨었어. 얘들이 점점 커버넌터들에게 가혹해지는겨. 콘벤티클 조직들이 다 해체 되는겨. 집안에서 몰래 소수 그룹들이 있었어 찾기 힘든거야. 이때 시험이, 너 킹에 충성 하는가 를 묻는겨. 이러면서 커버넌트 를 부정합니다 란 답도 해야해. 이걸 거부하면 사형 이야. 마가렛이 콘벤티클 에 남동생 토마스 랑 갔다가, 어느날, 저 카리스마 연설가 인 캐머론이언 제임즈 렌윅 을 만난거야. 감동먹은겨. 자기 여동생도 데려와.

In February 1685 the sixteen-year-old Thomas Wilson left to join other Covenanters in the hills. The girls went on a secret visit to Wigtown to visit friends, including an elderly widow Margaret McLachlan (there are various spellings of her second name). The young sisters Margaret and Agnes were taken prisoner, possibly after declining to drink the King's health, and put into the "thieves' hole". They refused to take the Abjuration Oath renouncing the Covenant. On the following Sunday Margaret McLachlan was arrested, and also put into the "thieves' hole" with the Wilson girls, along with a servant woman. They were taken before the "local assizes" of the Government Commissioners for Wigtownshire.

토마스 는 두살어린 남동생이고 16세. 다른 커버넌터들에게 갔고. 누이들이 위그타운 에 친구들 만나러 간거야. 여기에 나이든 과부 인 마가렛 맥라클랜 이 있었어. 마가렛 과 아그네스 가 잡혔어, 킹의 건강을 위한 건배 를 거부 한 이유로, 그리고는 도둑들의 구멍 이라는 감옥에 갇혀. 커버넌트 를 취소하는 맹세 를 거부해. 다음 일요일 에 과부 마가렛 맥클란 도 체포가 돼, 같이 갇혀. 하녀 도 함께 있고.

On 13 April 1685 they were indicted as being guilty of the Rebellion of Bothwell Bridge, Aird's Moss, 20 Field Conventicles and 20 House Conventicles. The Assizes session took place and a guilty verdict was brought.[4] The three main protagonists were found guilty on all charges, and sentenced to be "tied to palisades fixed in the sand, within the floodmark of the sea, and there to stand till the flood o'erflowed them".

저 여자들이 기소가 되었는데 유죄로, 그게 6년전의 보뜨웰 다리 반란에  별 콘벤티클 관련 된 유죄 야. 모든 죄목에 대해 유죄야 저 세명이. 사형이여 저건. 모래에 고정된 막대기 에 묶어서, 바다가 밀물 들어오는 지점에, 그리고 잠길때 까지 묶어있게 하는 형벌로. 아싸이즈 가 지방에서 열리는 법정이고, 이게 대게 판결이 가혹하고 편협한거거든.

The father of the girls, Gilbert Wilson, went to Edinburgh and made a plea to the Privy Council of Scotland for clemency for all three, presenting a petition which claimed that Margaret McLachlan had recanted. Agnes was granted freedom on a bond of 100 Pounds Scots, and "reprieves were written out for the two Margarets with a date of 30 April 1685".

두 딸의 아빠는 앵글리칸이고. 에딘버러 를 가서 프리비 카운슬에 청원넣어서, 자기두딸에 과부 마가렛 에 덕을 베풀라, 과부 마가렛 맥클란 도 커버넌트 를 부정했다 라고 청원했어. 아그네스 꼬마는 보석금 내고 풀려났어. 그리고, 나머지 두 마가렛 은 4월 30일 에 리프리브. 구제가 된겨 이건.

Urging that Margaret Wilson and Margaret McLachlan were officially reprieved by the Privy Council of Scotland, Mark Napier insisted that its agents should not have dared flout the Council's decree.[6] Grierson of Lag, brother-in-law of Queensberry, nevertheless chose to do so. G. F. Crosbie writes that "over-zeal was no crime in 1685 - the year when Lag received his baronetcy in the pitiless James's coronation honour's list.

에딘버러 의 최고 위원회가 사면을 한거야. 이 소식을 전하러 가. 카운슬의 명령을 비웃지 말라고. 이때 여기 최고가 라그 의 그리어슨 이란 사람인데, 이걸 무시하고 그래도 하는겨 집행을. 당시 오버-질, 과도한충성열정 은 죄가 아니었다 저 해에. 얘가 이때 배로넷 자리를 받은겨 제임스2세 한테서. 킹 에 충성하고 스콧 의 추밀원 은 무시하는겨 얘가.

On 11 May 1685, 11 days after the signing of the reprieve, Margaret Wilson and Margaret McLachlan were chained to stakes on the Solway Firth. At the last moment, choking on the salt water, Margaret Wilson was allowed to offer a prayer for the King, which she did, but she continued to refuse to abjure the covenant. This was not good enough for her accusers, and she was forcibly thrust beneath the waves. It is said that, as the tide rose, she defiantly quoted from the psalms and the epistles and sang until she drowned. Robert Wodrow later wrote that the killers should have been prosecuted for ignoring the reprieve

5월 11일 에. 저 사면이 싸인 된 후 11일 지나서, 두 마가렛 이 묶였어. 솔웨이 퍼뜨. 에 묶였어. 퍼뜨 가 피요르드 의 스콧 어야. 에딘버러 가 forth 포어뜨 퍼뜨. 갤러웨이 컴브리아 아가리가 솔웨이 퍼뜨. 마지막 순간에 바닷 밀물이 올라와. 마가렛 윌슨 18세 여자가 킹을 위해 기도하는 걸 허락받아. 그렇게 했어. 그러면서 커버넌트 를 부정해야 하는데 이건 안하는겨. 이걸 했으면 풀어줄꺼였는지 아닌지 모르지. 둘 다 거절 하고 죽었어 그냥. 물이 넘쳐오르는데 그녀는 거부하면서 시편들과 서신들을 인용하고 노래했어 잠길때 까지. 로버트 워드로 는 뒤에 썼다 그 살인자들은 기소되었다고 그 사면을 거부해서.

Sir Robert Grierson, 1st Baronet, of Lag (1655/56 – 31 December 1733) was a Scottish baronet.
He is best remembered as a notorious persecutor of the Covenanters, particularly among the people of Galloway, and is still referred to as Cruel Lag. The character of Sir Robert Redgauntlet of Wandering Willie's tale in Sir Walter Scott's Redgauntlet is based on Grierson.

쟤가 라그 의 배로넷 인 로버트 그리어슨. 이거든. 커버넌터들 을 박해한거로 악명이 높다. 할때 대명사 가 저 두 마가렛 이고 18세 마가렛 윌슨 이야. 과부 마가렛은 63세야. 마가렛 윌슨이 18세로 너무 어리니까 이 여자가 더 유명한겨. 얜 제임스2세 한테 충성한 애고, 오렌지 오르고 나서, 얘가 너무나 싫어서 쟤 재코바이트 라고 막막 기소를 하는겨 ㅋㅋㅋ. 그래도 버텨 얘가. 재산도 안 뺏겨. 자식이랑 싸우다가 두 부자가 재산으로 대동단결하고 그대로 유산을 받아 자식은 ㅋㅋㅋ. 하튼 이 인간은 나이 80까지 잘 살고 뒈졌어

Approach to the Martyrs' Stake. 마가렛 윌슨 말뚝 가는길








'The Maiden' on display at the Museum of Scotland, Edinbur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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