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네. 가 스칸디나비아 라는 말의 어원이야. 앞으로 인류문명사는 이천년이 이 스위든의 역사가 될거야.
스코네 주. 에 왼쪽 할란드 와 오른쪽 블리에킹예 를 스코네란드 라고 해. 예타란드 의 해변 지역이야.
여기지역을 따서 스코네 전쟁 이라고 하는데.
The Danish - Norway recapture of Scania (which had been captured by Sweden in 1658) started with the seizure of Helsingborg on June 29, 1676. Danish king Christian V brought 15,000 troops against a defending Swedish army of 5,000 men, who spread out over the province.
Initially the operation was a great success. Large parts of the local peasantry sided with Denmark and the outnumbered Swedish troops were in bad shape.
Town after town fell into the hands of the Danes- Norwegian and the Swedes had to retreat north to Sweden proper. In a month's time only the fortified town of Malmö remained under Swedish control.
시작이 헬싱보리 를 점령하는겨. 이게 1676년 6월 29일 이야. 즉 브란덴부르크 가 스위든을 내모는 시작인 페르벨린 전투 하고 1년 만에 덴마크 가 바다를 건너는겨. 이전에 브레멘-페르덴 을 갖고 오고, 스위든포메라니아 도 전투를 시작하는거고. 덴마크 가 신성로마와 함께 브레멘-페르덴을 쳐들어가는 것 부터 스코네 전쟁 이라고 해. 이게 모두 프랑스-네덜란드 전쟁 1672-78 판 에서 벌어지는겨. 시작 두달만에 홀란드 워터 라인 에서 진도가 안나가고 뜬굼없이 다시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프랑스-네덜란드 이름만 남고 전쟁은 벨기에땅 브란덴부르크땅 브레멘땅 알자스땅 부르고뉴백작령땅 스위든땅 에서 벌어진게 저때 전쟁이야.
덴마크 가 15000명 의 병력을 끌고가. 스위든 은 이미 병력이 분산이 된겨 대륙으로도. 겨우 5천명이 수비를 하는거고. 저 지역은 덴마크 땅이었어 칼10세가 갖고 간지 1658년 이야 로스킬레 조약으로. 20년 도 안지났어. 저지역의 정체성은 덴마크야. 민들이 덴마크 편을 드는거고. 한달만에 스위든에 남은건 말뫼 야.
With the declaration of war against Sweden on 2 September 1675, Denmark saw a chance to regain its recently lost eastern provinces.
덴마크 가 스위든을 상대로 전쟁선포한게 1675년 9월 2일. 브란덴부르크 가 선제후가 와서 쫓아낸 거 보고, 한거야. 그리고 브레멘-페르덴 을 쳐들어간거고. 동시에 바다건너에선 노르웨이 의 배다른 형이 스위든 해변으로 쳐내려오는겨.
Ulrik Frederik Gyldenløve, Count of Laurvig (20 July 1638 – 17 April 1704) was Governor-general of Norway ( Stattholdere i Norge) from 1664–1699. He was the leading general in Norway during the Scanian War, whose Norwegian leg is conventionally named the Gyldenløve War after him
울렉 프레더렉 규운루. 라르비크 백작. Ø 슬래쉬 드 오. 스트로크 오. 라고 읽고. 외. 발음이고 뒤에 브 와 붙어서 규운루. 라고 읽으면 되고. 덴마크어인데 이쪽 소리가, d 이 디 티 발음이 소리가 약하고 안나. 제소리를 갖는게 대륙이고 이게 그소리 그대로 잉글랜드로 갔다가 미국에 가서 다시 소리가 묵음화 가 되는게 게르만어 소리의 과정이고.
라르비크 가 헬싱보리 있는 부후슬랜 주 의 접경 노르웨이 지역이고. 규운루 가문이, 덴마크 킹 의 배스타드, 일리짓메잇 비합법자식에게 주는 성이야. 조선에 서자 는 쓰레기잖냐. 유럽은 이 서자 들이 또한 만든거고. 노르웨이 전체 대리 이고. 이 사람이 스코네 전쟁에서 덴마크 를 지원하면서 쳐 내려가는겨. 이사람이름을 따서 규운루 전쟁 이라고도 하다.
규운루 는 지금 크리스티안5세 킹의 8세 연상 형이야. 아빠 프레데릭3세 가 브레멘대주교 였을때 낳은 배스타드야.
이사람이 스위든진영을 쳐내려오고, 덴마크 는 브레멘 정리가 되어서 다음에 바다를 건너와야해. 그럴려면 해전을 해야 하고. 그리고 나서 상륙하는겨. 이전에 노르웨이의 형이 접경해변을 정리해주려 하는거고.
The counties of Sweden (Swedish: Sveriges län) are the top-level geographic subdivisions of Sweden. Sweden is today divided into 21 counties
스위든 은 행정구역이 지금. 주 라는 이름이, 렌. 이야. 이걸 영어로 카운티 로 써. 프로빈스 는 안써. 현재 21개의 주. 카운티. 렌 들로 되어있어.
The provinces of Sweden (Swedish: Sveriges landskap) are historical, geographical and cultural regions. Sweden has 25 provinces and they have no administrative function,
프로빈스 란 이름은. 란스캅. 인데. 이건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지역인거고. 역사책과 리터러쳐 의 이름이야. 이건 25개 였었고. 아무런 행정기구 관계 가 전혀 없어 이건. 이런게 유럽 전역이 또한 이래.
Västra Götaland County (Swedish: Västra Götalands län) is a county or län on the western coast of Sweden.
베스트라 예타란드 카운티. 주. 렌. 이 지금 스위든 의 서쪽 해변 노르웨이의 접경이야. 부후슬랜 프로빈스 가 여기에 속하는겨 행정구역으로. 프로빈스 일때 부후슬랜 은 해변이고 내륙이 베스트라 예타란드 였걸랑. 행정구역 개편하면서 부후슬랜 이란 이름이 지워지고 여기로 다 들어간겨. 규운루 가 쳐내려와서 스위든이랑 주로 여기서 전투하는거고. 이때 규운루의 노르웨이 병력은 4천명 데리고 오는거야. 각 지역에서 게릴라 식의 일이천명이 전투하는 모양새인거고.
이게 덴마크 병력이 넘어오기전에 마주한 지역의 노르웨이 대 스위든 전투들이고.
The Battle of Öland was a naval battle between an allied Danish-Dutch fleet and the Swedish navy in the Baltic Sea, off the east coast of Öland on 1 June 1676.[1] The battle was a part of the Scanian War (1675–79) fought for supremacy over the southern Baltic. Sweden was in urgent need of reinforcements for its north German possessions; Denmark sought to ferry an army to Scania in southern Sweden to open a front on Swedish soil.
욀란드 전투. 1676년 6월 1일. 욀란드 동쪽해변. 이게 시작 해전이고 여기서 덴마크 가 바다를 점령을 하는건데. 이 해전으로 스위든이 결정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겨 스코네 전쟁에서. 바다가 막히면서. 이후 해전들도 전패인거고. 이 전투 다음에 덴마크가 바다를 건너서 헬싱보리 부터 저길 한달만에 다 점령하는겨.
A Danish fleet of 20 ships under Admiral Niels Juel put to sea in March 1676, and on 29 April his forces landed on Gotland, which surrendered.[12] The Swedish fleet was ordered out on 4 May with 23 warships of over 50 guns, 21 of less than 50 and 16 minor supporting vessels manned by about 12,000 men,[13] but encountered adverse winds and was delayed until 19 May. Juel had by then left Visby, the main port on Gotland, to join up with a smaller Danish-Dutch force at Bornholm, between the southern tip of Sweden and the northern coast of Germany.
이전에 보른홀름 전투 가 있었는데. 저때의 해군력을 보면, 덴마크 가 20개의 배 로 곳란드 섬에 상륙해서 점령했어. 스위든 배가, 저런게 분명하게 해석을 해야 하는데 말야, 23개 전함들이 있었다는거고, 이 23 개 전함들은 건, 대포 가 50개 이상이 장착이 된 각각의 배.인거야. 21개 의 전함들이 따로 있어. 이건 대포가 50개 이하 로 장착된 전함들이고, 16개의 전함들은 지원하는 배로 12000명 이 탔다. 한배에 한 8백명이 탄겨 이건.
즉 덴마크 가 저건 상대가 안되는겨. 스위든의 배가 두배 이상이야. 스위든 은 독립 후에 전쟁만 하던 애들이야. 덴마크 랑 하다가 폴란드 랑 지긋지긋 하게 하고, 러시아 켐페인도 가고, 이때 덴마크 는 걍 놀던 애들이야. 그렇다고 머 국력을 위해서 아무것도 한 것도 없고, 오직 르네상스 킹 이라며 머 크리스티안 4세 가 60년 재위에 자기 누나 앤 이 시집간 제임스1세 잉글랜드 도 놀러가서 술퍼먹고, 코트에 인문예술과학을 들였다지만 티코 브라헤 는 쫓아내서 이사람은 케플러를 프라하 가서 만나는거고. 그러다 땅 다 뺏기고. 이 덴마크 가 전쟁 없을 때 전혀 진도가 안나간겨 이게. 스위든이 전쟁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온갖 머리를 쓸때 얘들은 태평하게 지내다가 아무것도 한게 없어. 오히려 네덜란드 가 와서 사운드 해전 으로 그나마 버틴겨 칼10세 때.
상대가 안되는겨 이 해전규모 자체가. 질수 가 없는 전투가 저 욀란드 전투 야. 이걸 아주 참패를 한겨 스위든이.
Lorentz Creutz (Swedish pronunciation: [ˈlǒːrɛns ˈkrœjts]; 1615 – 1 June 1676) was a Swedish friherre (roughly equivalent to a baron), government administrator, county governor (landshövding) of Kopparberg County (1655–62), member of the Privy Council and supreme commander of the Swedish navy for a few months in 1676.
이때 스위든의 해군 사령이 로렌츠 크뢰츠. 라는 사람인데, 저때 킹 칼11세 는 다섯에 킹에 올라서 21세여. 킹도 어린게 기분만 업되고, 카운슬 애들이 맛이 간겨 이게. 얘가 핵심 카운슬 위원에서 해군 총사령을 맡은건데. 얜 해전 경험이 전혀 없던 애가, 나이 61세 에 저 자리를 맡은거야. 완전한 무능력자가.
Christian V (15 April 1646 – 25 August 1699) was king of Denmark and Norway from 1670 until his death in 1699. [1]
Charles XI, also Carl (Swedish: Karl XI) also Charles IV[2] (24 November 1655 – 5 April 1697 OS[3]) was King of Sweden from 1660 until his death, in a period of Swedish history known as the Swedish Empire (1611–1718).
덴마크 크리스티안 5세 는 저때 30세 고. 칼11세 보다 9년 연상이고. 킹에 24세에 오른거고. 이 둘도 러시아 표트르 의 대북방전쟁 직전에 죽은거고. 이 둘의 스코네 전쟁 이 이게 대북방전쟁 까지 가는거야 이둘이 죽고도.
Several Swedish accounts say that Creutz argued with his officers after Bornholm. Major Taube of the Mars testified that after the battle, the officers had been "scolded like boys"[17] and that Creutz, "without regard for guilt or innocence, accused them almost all alike".[18] The army captain Rosenberg told a later inquiry that Creutz "almost had a paroxysm in the night" over the conduct of Johan Bär (one of his flag officers) at Bornholm, and that he swore "never to go to serve at sea with such rascals".[19] Maritime archaeologist Lars Einarsson has concluded that the relationship between Creutz and his subordinates had hit rock bottom before the battle.
5월 달이지만, 욀란드 전투 의 1주 전에 벌어진게 보른홀름 전투야. 승부가 안났지만 스위든이 진겨. 절대적으로 질 수가 없는 해군이야. 해전이란건 대포 싸움에 배 싸움이걸랑. 저 전투 후에 크뢰츠 가 자기 부하들을 걍 꼬마애들 처럼 꾸짖었다. 해군 캡틴 로젠베르크 가 나중 심문에 말하길, 크뢰츠 가 거의 그 밤에 패럭시즘. 온갖 분노의 쌍욕질 을 기함을 탄 장교 요한 베르 에게 한 것을 보았다 보른헬름에서. 그는 맹세했다 내 다신 앞으론 저런 어린꼬마 같은 놈과는 배를 안타겠다고.
얘들이 패한게 저 크뢰츠 라는 사령관 때문에 패한거야.
Around noon, as a result of poor coordination and signaling, the Swedish line unexpectedly turned toward the allied fleet. When the flagship Kronan came about in the maneuver it suddenly heeled over and began to take in water. According to master gunner Anders Gyllenspak, the sails were not reefed and the ship leaned over so hard that water flooded in through the lower gunports. As the ship was leaning over, a gust of wind pushed the ship on her side, bringing her masts and sails down in line with the surface of the sea. Shortly afterwards, the gunpowder store exploded and ripped the forward section of the starboard side apart. Kronan quickly lost buoyancy and sank, taking most of her 850-man crew with her
정오에, 지시도 애매하고 조율도 안되고, 스위든 함대 자체가 맛이 간겨 이게. 상대 배들로 향해서 갑자기 방향을 틀어. 기함이 저때 갑자기 뒤집어져. 얘들이 바람 도 역풍과 순풍 에 어울리는 지시를 못 받는거야. 배가 걍 뒤집어져 힐드. 저런 바람에선 세일, 돛헝겁을 리프, 내려야 하는데 안내려. 배가 기울더니 불이 쳐들어와서 안에 대포들이 다 젖어. 마스트 들과 세일도 바다면까지 기울어져. 그러다가 화약이 터져 기함이 850명 과 함께 그냥 가라앉아. 이걸 적군인 덴마크 네덜란드 애들이 꺼내줘.
걍 저건 아주 지려고 작정한겨 스위든 애들이 ㅋㅋㅋ
사령 애들이 전혀 바람을 모르고 배를 모르고 해전을 모르는 애를 앉히고, 전혀 조직을 이끌어 본 애도 아니고.
나라 라는게 지도자 하나 잘못 세우면 걍 죽음이야. 모든 인민들은.
The Battle of Møn, also known as the Battle of Lolland, took place 31 May–1 June 1677, as part of the Scanian War.
The Battle of Køge Bay was a naval battle between Denmark-Norway and Sweden that took place in bay off Køge 1–2 July 1677 during the Scanian War. The battle was a major success for admiral Niels Juel and is regarded as the greatest naval victory in Danish naval history.
덴마크 가 곳란드 갖고오고, 욀란드 전투 이겨 갖고 오고. 1년 지나서 해전이 묀 전투, 케에 만 전투. 야. 이것도 규모면에서는 덴마크 가 불리한걸 저걸 다 이긴겨. 묀 에 쾨에 만 은 코펜하겐 있는 셸란 지역이야.
저 모든 세 개의 해전의 덴마크 사람이.
Niels Juel (8 May 1629 – 8 April 1697)[1] was a Danish-Norwegian admiral and a Danish naval hero. He served as supreme command of the Royal Danish Navy during the late 17th century and oversaw development of the Danish Navy
닐스 주을. 이야. 덴마크 의 지금 영웅이고. 저때 47세 인거고. 욀란드 전투 는 마르텐 트롬프 의 아들 코르넬리스 가 같이 한거지만 나머지 두개는 닐스 주을 이 한거거든.
In 1652 Juel entered Dutch naval service. He served his naval apprenticeship under Dutch Admiral Maarten Tromp (1598–1653) and Dutch Admiral Michiel de Ruyter (1607–1676), taking part in all the major engagements of the First Anglo-Dutch War, a conflict between England and the Dutch Republic. From 1654–56, he attended Admiral Michiel de Ruyter on two trips to the Mediterranean during engagements against North African pirates. During an indisposition at Amsterdam in 1655–1656 he acquired a thorough knowledge of shipbuilding. In 1656 he returned to Copenhagen and entered Danish service as a naval officer, and in 1657 he was appointed admiral. He served with distinction during the Dano-Swedish War (1658–60) and took a prominent part in the defence of Copenhagen against the forces of King Charles X of Sweden.
덴마크 귀족이고, 노르웨이 오슬로 에서 태어나서, 23세에 네덜란드 해군으로 들어간겨. 여기서 신병으로 마르텐 트롬프 밑에 있다가, 드라우터 에 있다가, 1차 앵글로-네덜란드 전쟁에 참여하고. 드라우터 랑 함께 지중해 가서 해적들과 전쟁도 하고, 암스테르담 에서 선박제조 를 익히고. 1656년 27세 에 돌아오다. 그리고 28세에 제독으로 임명돼. 그리곤 칼10세가 코펜하겐 먹으러 올때 전쟁하고.
결국 네덜란드 에 가서 배운 인간인겨. 마르텐 트롬프 에 드 라우터 가 유럽의 해군을 만든겨 저게.
The First Anglo-Dutch War (1652–54) saw the development of the line of battle, a tactic where ships formed a continuous line to fire broadsides at an enemy. Previously, decisive action in naval engagements had been achieved through boarding and melee, but after the middle of the 17th century tactical doctrine focused more on disabling or sinking an opponent through superior firepower from a distance. This entailed major changes in military doctrines, shipbuilding, and professionalism in European navies from the 1650s onwards.
1차 앵글로-네덜란드 전쟁 으로 라인오브배틀. 이 발달해. 쉽오브더라인. 이전 썰. 대포 가 가장 중요해 이제. 이 대포를 어떻게 배에 장착하고 많이 하는가. 이게 라인오브배틀 이고 쉽오브더라인.이야. 이건 배의 데크 아래 와 위, 두개 층에 모두 장착하는게 라인 이란게 들어가는 배야. 맨오브워. 라는 배 는 기동성이야. 그렇다고 포 가 없으면 안돼. 아래 데크 밑의 대포들을 다 빼는겨. 대포 무게 가 속도를 못내거든. 그리고 마스트를 세개 를 세워. 이게 맨오브워, 프리깃 이라는겨.
파이어쉽. 불타는 배. 배에대가 불질러서 돌진하는겨. 이런게 드레이크 와 호킨스 가 스페인아르마다 올때 개발한 전법이야. 보어딩 배올라타기 전법. 이 배에 관련된건 정말 드레이크 와 호킨스 를 뺄 수 없어. 이 둘이 영국을 만든거야 역사에서 가장 저평가된 인물이 저 두명이야. 저걸 네덜란드 가 갖고가고, 해전 과 선박제조 는 이 둘이 전쟁하면서 급발전하는겨. 절대적으로 이제 저 두나라의 해군은 아무도 상대를 못해. 닐스 주을 이 갓 20대 가서 최고의 마르텐 트롬프 에 드 라우터 에 서 조직 활용 군사 전략을 구경하고 암스테르담 가서 선박제조를 배우고. 얘가 이해력과 해석능력이 탁월한거지.
배운다는건 가르친다고 배우는게 아냐.
미개하고 능력없는 애들이, 아잉 우리 선생이 멘토가 안 갈켜줘요.
그 사람이 하는 걸 옆에서 그냥 쳐다 보고 구경 하는게, 배우는거란다. 그 것 이상 배움의 방법이 어디있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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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 주을.이 저때 의 스타고. 저 스코네 지역을 다 갖고 와 덴마크가 저 전쟁때.
브란덴부르크 의 우리 선제후, 투렌 한테 투르크하임 때 줘터졌지만, 지면서 배운거거든 이런 사람은. 투렌 이 이기면서 갈켜준겨. 프리드리히가 이걸 가서 써먹은겨 스위든 브랑겔 쫓아내면서. 프리드리히 가 알자스 를 안갔으면 독일은 없을거야 아마.
그런데, 저걸, 다 돌려줘야 만 했어.
프랑스 가 네덜란드 쳐들어갔지만 정작 소득은 없고 오히려 부르고뉴 백작령에 알자스 처들어가고, 스위든 애들 조정 잘해서 브란덴부르크 돌아가게 하고 저길 다 갖고와. 알자스 는 두개 도시 갖고 오고.
그러면서, 스코네 전쟁을 일단 막내리면서, 니덜 갖은 땅 다 돌려주라는겨. 브란덴부르크 는 포메라니아 그거 스위든 줘라 다시. 스코네란드 는 스위든에 돌려줘라.
그러면서 루이 가 다시 병력을 출진시키는거야 덴마크 쪽으로. 니덜 그거 이미 전에 전부 모여서 쟤들꺼로 인정한건데, 이번 전쟁에서 니덜이 이겼다고 가져가냐? 내가 그럼 덴마크 처먹겠다 덴마크 그럼 내꺼 되는거냐?
프랑스 루이 가 의리가 있는거지.
브란덴부르크 는 열받걸랑. 스위든이 쳐들어와서 막으러 간거고. 그래서 오데르강 오른족에 있는 스위든 포메라니아 는 브란덴부르크 에 넘기는겨 이때. 저때 오데르강 넘어 해변 지역 조금은 스위든꺼라 경계가 애매했걸랑 오른쪽 브란덴의 포메라니아와. 이걸 오데르강 으로 경계를 하면서 갖고 오는겨 브란덴이.
그리고 다 돌려줘. 프랑스 의 개입으로.
그리곤, 저 상황이 20년 지나서, 표트르 대제가 대북방전쟁으로 서쪽진출하면서, 덴마크 는 당연히 러시아 편을 드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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