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anian War (Danish: Skånske Krig, Norwegian: Den skånske krig, Swedish: Skånska kriget, German: Schonischer Krieg) was a part of the Northern Wars involving the union of Denmark–Norway, Brandenburg and Sweden. It was fought from 1675 to 1679 mainly on Scanian soil, in the former Danish and Norway provinces along the border with Sweden, and in Northern Germany.
스카니안 워. 스콘스케 크리겟. 스코네의 전쟁 인데. 스카니아 의 전쟁. 스코네, 영어 스카니아, 라는게 지금 스위든 의 주 이름이야. 저 전쟁은, 스카니아 지역의 땅인데, 저때는 스카니아랜드. 라는 주변 주 들을 모두 포함한거로 봐야해.
Skåneland (Swedish and Danish) or Skånelandene (Danish) is a region on the southern Scandinavian peninsula. It includes the Swedish provinces of Blekinge, Halland and Scania. The Danish island of Bornholm is sometimes also included.
스위든의 남부 를 예타란드, 라고 하고, 예타란드 안에 해변 지역을 따로 스코네란드. 라고 해. 이 스코네란드 는, 지금 스위든의 총 25개 주들 중에 세개 주 인 블리에킹예, 할란드, 스카니아, 를 칭해. 아래 섬 보른홀름 도 때론 포함해.
레터 a 에이 에 위 오버링 의 스위디쉬 는 오 라고 소리내
말뫼. 에 헬싱보리 의 밝은 뭉툭이 스코네. 라는 스카니아 주. 이고, 오른쪽 남부 주 가 블리에킹예, 이고 왼쪽 윗 해변이 할란드. 이고, gothenburg 고뗀부르크 가 스위디쉬 로 예테보리 야. 여긴 Bohuslän 부후슬랜 주. 이고 이게 위 노르웨이 경계까지의 해변 이야. 부후슬렌 은 스코네란드 에 들어가지 않아.
부후슬랜. 할란드, 스코네. 블리에킹예. 이 네 주 의 해변은 모두 카를10세 가 폴란드 쳐들어갔다가 다 차지하곤 갑자기 상황반전되서 몰려서 어찌할줄 모르다가, 덴마크로 가서 얼음바다 건너서 뜬굼없이 저걸 갖고 온겨. 이전 30년 전쟁 때 스위든이 막판에 덴마크 를 갑자기 쳐들어가서 고트족 섬 저기 고트란드 에, 예테보리 아래 할란드 를 갖고 왔어. 그러다 폴란드에서 저리 괜히 가서 할란드 위의 부후슬랜 이랑, 스코네(스카니아) 와 블리에킹예 까지 갖고 온겨. 저 아래 보른홀름 섬. 구글써있는 저것도 갖고 온거고. 제주도 삼분의 일크기고. 이 보른홀름은 바로 반란해서 자기들이 덴마크로 들어가. 이섬은 지금 덴마크 야.
덴마크 얘들이 얼마나 멍청해졌냐면 이제, 30년전쟁 막판에 스위든한테 할란드 와 고트란드 에 에스토니아옆의 섬도 뺏기고. 스위든-폴란드 전쟁때 괜히 브레멘 베르덴 먹으러 갔다가 저 해변땅을 다 뺏긴겨.
크리스티안4세 가 덴마크 가장 오랜 킹이고 이사람이 30년전쟁 과 함께 죽는거고. 덴마크 애들은 르네상스 킹 이라 하고. 아들이 아예 해변까지 다 뺏기고. 이 덴마크 역사는 이후 볼게 없어 이게. 여긴 우연히 마가렛 이 신랑죽어서 노르웨이 퀸. 도련님 죽어서 스위든 킹. 그리고 덴마크 킹 하면서 칼마르 유니온 을 엉겁결에 한거고. 이전에 크누트 있던거 외엔, 의외로 이 덴마크 는 역사적 으로 이게 의외로 볼게 없어. 오히려 스위든 이 강렬한거야. 덴마크 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스톡홀롬 블러드베쓰 라는 피의 욕조 거든. 특히나 이때부터 강렬해지면서 여기 이야기가 쎄고 여기 인물들이 강렬하고 역사적 인물에 리터러쳐 에 내추럴 싸이언티스트들도 여기 스위든 에서 나오는겨 수두룩.
알프레도 노벨 이 스위든 이고, 스위든 노벨상이 30명이 넘고 덴마크 가 10여명이야. 역사 의 이야기들이 걍 칼잡이 인물이야기 하는게 아니라, 리터러쳐 고 콘셉트 에 아이디어 라는 지능 의 문제야 이게.
무지능 의 허섭한 나라 에 이야기들이 없고 오직 하렘 과 환관 과 약자에강하고강자에약한이야기 만 있는 애들이 이야기들이 없는거고. 이게 조선 조선 이란 이 더러운 조선 에 중국 이야. 얘들이 언어 가 가장 후지고 그래서 글이 후져. 지능이 가장 떨어진 애들이고, 곧 지워질 애들이야.
저런 애들이, 시안한게, 자기들이 위대하고, 자기들이 잘난줄 알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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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가 크누트 의 아빠가 잉글랜드 를 먹고, 크누투 여동생 에스트리드 이름으로 덴마크 를 잇고, 마가렛 까지 오고, 끊기고 올덴부르크 의 크리스티안1세 가 시작하고, 한스 에 아들 크리스티안2세 하다가 얘가 재벌죽이고 영세업자 키운다며 경제죽이면서 한스의 동생 프레데릭1세 가 조카를 쫓아내고 킹에 올라. 이 프레데릭 1세 가 만든 방계가 Holstein-Gottorp 홀슈타인-고토르프. 야. 고토르프 가 슐레스비히 의 아래 성 이야. 고토르프 라는게 슐레스비히 . 홀슈타인-고토르프-슐레스비히. 가 되기도 하고.
슐레스비히 가 지금 북이 덴마크 고, 남이 독일이야. 고토르프 는 성 이름이고 이게 남슐레스비히 에 있어. 고토르프 가 저 공작령 수도였거든. 올덴부르크 의 핵심 방계여 저 덴마크 반도의 목 부분이. 여기가 지금 독일땅인겨. 덴마크 는 저걸 거에 올덴부르크 에 자기들 고향땅을 다 뺏기고, 브레멘도 원래 쟤들꺼야. 얘들은 자기들 땅을 다 뺏기고 목아지 뺏기고 있는겨 지금. 저 덩그라니 그린란드 가 지들 땅이라미 저리 있는거고. 참 바보 나라가 된거야 이 덴마크는.
홀슈타인-고토르프. 가 핵심가문이야 덴마크 의.
Hedwig Eleonora of Holstein-Gottorp (23 October 1636 – 24 November 1715) was Queen of Sweden from 1654 until 1660 as the wife of King Charles X Gustav.
이 가문의 헤드윅(헤드빅) 엘레오노라 가 카를10세 에 시집을 가. 카를 칼 10세 가 저 스카니아 주변땅 다 먹고 병으로 죽은겨 1660년에. 크롬웰 죽고 카를10세 죽고, 마자렝 죽고 하면서 좀 조용해지는겨 저때. 이때 카를11세 가 5세 고, 엄마가 섭정을 하고, 다음 카를12세 일때 대북방전쟁 할때 할머니 된 헤드윅 이 코트를 다시 맡고, 카를12세 가 죽고 여동생 울리카 가 퀸 하고, 이때서야 바싸 핏줄이 끊겨서, 이때 스위든 킹이 되는 핏줄이 또한 홀슈타인-고토르프 야.
저 칼10세 한테 시집온 헤드윅 이 섭정 에 대행 에 졸 잘했거든. 덴마크 홀슈타인-고토르프 가 스위든을 키운겨 저때. 이후 저 인연으로 스위든 킹도 하고,
Carl XVI Gustaf (Carl Gustaf Folke Hubertus; born 30 April 1946) is the King of Sweden. He ascended the throne on the death of his grandfather, King Gustaf VI Adolf, on 15 September 1973.
지금 스위든 킹.이 칼 16세 구스타프.야. 이사람은 Bernadotte 베르나도테 가문이야. 베르나도테 는 나폴레옹 때 측근인데 나폴레옹보다 나이가 많고 둘이 싸워. 그럼에도 나폴레옹이 신임해. 이 인연으로 스위든이 핏줄 끊겨서 프랑스 인간을 데려온겨 저때. 이 핏줄이 지금 스위든 킹이야 ㅋㅋㅋ.
저런게 절대 동양 의 조선 중국 역사 관 으론 절대적으로 이해를 못해. 완전 외세 의 적폐 들이 자기들 킹을 하는거거든.
스위든 은, 시안하게, 독립하고 나서 프랑스 랑 친밀해진겨. 특히나 30년 전쟁 때 리슐리외 가 스위든과 손잡으면서. 스위든이 포메라니아 를 지배할 명분이 약했어. 저건 브란덴부르크꺼여야 해. 이걸 외교적으로 지원해준게 또한 프랑스야 그래서 서포메라니아 를 확실히 갖고온겨 브란덴부르크 는 부들부들 떨고. 이 브란덴부르크 는 스위든의 구스타프 아돌푸스 에게 선제후 딸이 아빠 반대 불구하고 짐싸서 간겨 저기서 퀸하고. 그리곤 크리스티나 를 낳고. 헌데 너무나 신랑에 대한 애착이 심하고 이게 병이 되서 정신병으로 감금되면서, 크리스티나 는 또 퀸자리를 내던지고, 브란덴부르크 는 저 아돌푸스 때문에 괜히 30년전쟁 스위든편했다가 이래저래 초토화되고, 포메라니아 땅도 뺏기고, 완전히 척이 진겨 이 둘은.
저 스위든 과 프랑스 가 30년전쟁 때부터 완전히 손잡고, 이게 프랑스 가 네덜란드 전쟁할때도, 돈주면서 이용하는게 역시 스위든 이고. 이게 뒤에 나폴레옹때도, 스위든이 킹을 프랑스 인간 베르나도테 를 데려오는 인연이야. 그런데 이 베르나도테 는 여기 킹 으로 와서, 바로 스위든 정체성을 갖고, 러시아 원정 으로 끝의 시작을 가는 나폴레옹 의 프랑스 를 이 베르나도테 가 유럽동맹맺어서 치러가고 나폴레옹을 내리는겨.
이 스위든 이란 나라는, 중요해 지금 이후도. 스위든 어 를 배우도록 해.
덴마크 는, 자기 방계 가문인 홀슈타인-고토르프 가 오히려 스위든 에서 힘실어줄때, 여긴 지금 킹 도 올덴부르크 가문의 방계야. 이 덴마크 는 역사에서 참 은근히 조용하게 서서히 작아지면서 저렇게 지금 있는겨 그래도. 참 싀안한 나라야 여기.
이 덴마크 가, 저 스코네 지역 과 주변 뺏긴 땅을, 15년 지나서 갖고 오려는겨. 마침 프랑스-네덜란드 전쟁 와중에, 시작하자 마자 프랑스가 홀란드 워터라인 에서 더이상 진도가 안나가고, 전선을 벨기에땅에 라인강 상류로 가면서, 스페인과 오스트리아 가 다시 막아야 하는거고, 오스트리아 는 신성로마영지들에 소집발령 및 지원 요청하는거고, 이게 이제 힘이 없어요. 반은 프로테스탄트에 머 영주들은 병력 착출해서 빨랑 보내고 특별세금 걷겠소, 해봐도, 안먹혀 이게. 영지들은 자잘자잘하게 쪼개진거고, 그런데 이때 브란덴부르크 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이 가장 큰 지원군이야. 제일 독보적으로 이삼만명의 상비군 을 둔 땅이야. 칼뱅 인데도 레오폴트 황제 를 돕는거야. 오 신기한겨 이게. 왜냐면, 브란덴부르크 가 프랑스 하면 이가갈리는겨 이거. 30년 전쟁때 참혹했어 저기가. 더하여 저 마스트리히트 도 길목이라며 쳐들어가고 점령해. 저것들이 스위든 지원해서 서포메라니아도 빼앗겨. 네덜란드 는 프리드리히 의 제2의 고향이여. 마누라 는 오렌지 낫사우 의 프레데릭 헨리.의 딸이여 침묵오렌지 아들이고 모리스 동생. 아말리아 에 구애한. 이 아들이 프리드리히1세 인 프러시아 킹 이고, 손자가 프리츠 영감 이라는 프리드리히 대제 야. 독일 인간들이 낫사우 야 네덜란드고, 절반이. 걍 가야만 하는겨 오스트리아 가 카톨릭 꼴통일지언정.
브란덴부르크-프러시아 라는게, 이제, 17세기에, 잉글랜드 네덜란드 스위든 과 함께 등장하는거야 이게. 애들이 모두 17세기에나 등장하는 이름들이야. 완전히 변방 의 촌동네 애들이었어 이 네나라는. 전혀 듣보잡이야. 그리고 곧 등장하는게 러시아 고. 이 시기에 등장하는, 브란덴부르크 와 러시아 가 유럽의 축이 이후 되고, 왼쪽은 영국 이 축이고. 이 세나라 가 전쟁한게 1차2차 세계대전이야. 나머지들은 떨거지고. 독일 을 사이에 영국 과 러시아 가 조지는겨 이게. 머 삼자 동맹이니 연합군이니, 의미없어요. 영국 러시아 독일. 저 세나라의 전쟁이야. 미국이 영국인거고. 이 시작이 17세기야. 이게 이삼백년 쌓이면서 월드워 두번을 하는겨.
할때, 독일의 시작을 알리는게, 이때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이야. 이사람은 스위든이 쳐들어 온걸 쫓아내면서 이걸로 그레이트 선제후 딱지가 붙는겨. 이 이벤트가 독일의 서막을 알리는겨.
The Swedish invasion of Brandenburg (1674–75) (German: Schwedeneinfall 1674/75) involved the occupation of the undefended Margraviate of Brandenburg by a Swedish army launched from Swedish Pomerania during the period 26 December 1674 to the end of June 1675. The Swedish invasion sparked the Swedish-Brandenburg War that, following further declarations of war by European powers allied with Brandenburg, expanded into a North European conflict that did not end until 1679.
브란덴부르크 의 상비군을 데리고,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자기 장남 과 같이가는데 얘가 저해 겨울에 병들어 죽어. 그래서 동생 이 뒤에 프러시아 킹 시작인 프리드리히1세 가 되는거고.
코트를 맡기고 라인상류로 갔는데, 스위든이 쳐들어 올거라는겨 낌새가. 이걸 처음엔 안믿었어. 스위든과 동맹조약을 맺았거든. 그런데 브란덴 도 프랑스랑 조약을 맺았지만 여기 온겨. 허나 조약상 스트라스부르 오는건 조약에 상관없을 수도 있어 우기면. 스위든은 동맹하기로 했는데 설마 했걸랑.
Fältmarskalk Carl Gustaf Wrangel (also Carl Gustav Wrangel; 23 December 1613 – 5 July 1676)[1] was a Swedish statesman and military commander who commanded the Swedish forces in the Thirty Years', Torstenson, Bremen, Second Northern and Scanian Wars.
칼 구스타프 브랑겔. 1613년 생이고. 저때 60이 넘은겨. 투렌이 1611년 생이고, 20세부터 캡틴이고 바로 커널 에 제너럴 이면 탁월한거고 30년전쟁 때 독일땅 누비고, 투렌 과 같이 바라리아 뷔르템베르크 에서 손잡고 싸우고. 토르스텐손 전투 는 막판에 할란드 와 곳란드 를 덴마크에서 갖고 오는거고, 브레멘 전투 에 폴란드 쳐들어가는 2차 북의 전쟁에. 스카니안 스코네 전쟁에서 병들고 죽는건데. 63세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는 1620년 생이고. 저때 54세야. 나이 20에 선제후 되서 물이 오를 대로 오른겨. 브랑겔 이 서포메라니아 에 저때 거버너 야.
On 15/25 December 1674 Swedish troops marched through Pasewalk and invaded the Uckermark without a formal declaration of war. In fact, according to a message from the Swedish field marshal, Carl Gustav Wrangel, to the Brandenburg envoy, Dubislav von Hagen, on 20/30 December 1674, the Swedish Army would leave the Mark of Brandenburg as soon as Brandenburg ended its state of war with France. A complete break of relations between Sweden and Brandenburg was not intended however.[8]
Figures relating the initial strength of this army, almost half of which was to consist of Germans by spring, vary in the sources between 13,700 and 16,000 men[9] and 30 guns.
1674년 12월 중순에 처들어오는겨. 우커마크. 가 저 허연, 서포메라니아 에서 브란덴부르크 코트 있는 베를린 주변으로 들어오는 길목 이야. 네달 전에 상비군 데리고 프랑스에 갔었고, 저때는 병력이 없는겨 브란덴부르크에. 전쟁선포도 없이 바로 들어와 스위든이. 준비하고 병력소집은 했는데 모두 늙은이들인거고 변변한 군대가 안돼 이게. 네덜란드 전쟁 시작하고 1년 반 만에 터진 사건이야. 프랑스 가 돈 주면서 이용한 스위든의 포메라니아 주둔 병력이거든 저게.
Charles XI, also Carl (Swedish: Karl XI) also Charles IV[2] (24 November 1655 – 5 April 1697 OS[3]) was King of Sweden from 1660 until his death, in a period of Swedish history known as the Swedish Empire (1611–1718).
이때 스위든 칼11세 가 22세 야. 다섯에 올라서 이제 혼자 하는겨. 이사람이 스위든 을 재정비하고, 절대군주 하면 태양왕 루이 에 이 스위든 칼11세 와 12세 야. 유럽의 절대군주 는 이들 두명 에, 덴마크 에 이름뿐인 절대군주 야. 이걸 칼12세 여동생 울리카 가 퀸 되고 절대권력을 의회에 반납해.
스위든이 브란덴부르크 를 처들어오면서 점령을 그냥 하는거야.
저때 막 프리드리히 의 장남이 죽은겨 병으로 프랑스에서.
In early June 1675 the Elector and his 15,000 strong army decamped at Schweinfurt in Franconia, now southern Germany, and reached the city of Magdeburg on 21 [O.S. 1675] 6. In a campaign lasting less than ten days, Elector Frederick William forced the Swedish troops to retreat from the Margraviate of Brandenburg.
다음해 6월 초에, 프리드리히가 상비군들 데리고 프랑코니아 의 슈바인푸르트 에서 떠났어. 마인강 중류고 바바리아 북서여 아직. 여기 까지 온겨 저 부대가 프랑스에서 이때까지. 그리고 6월21일에 저 마크데부르크 에 도착한거고. 여기를 스위든 병력이 온거야 이미 여기까지 다 점령을 한겨 얘들이. 하노버 가 스위든과 손잡은 상태고. 이때부터 십일도 안되서 프리드리히 빌헬름 이 스위든을 다시 몰아대면서 처올라 쫓아내는겨.
The Battle of Fehrbellin was fought on June 18, 1675 (Julian calendar date, June 28th, Gregorian), between Swedish and Brandenburg-Prussian troops. The Swedes, under Count Waldemar von Wrangel (stepbrother of Riksamiral Carl Gustaf Wrangel), had invaded and occupied parts of Brandenburg from their possessions in Pomerania, but were repelled by the forces of Frederick William, the Great Elector, under his Feldmarschall Georg von Derfflinger near the town of Fehrbellin. Along with the Battle of Warsaw (1656), Fehrbellin was crucial in establishing the prestige of Frederick William and Brandenburg-Prussia's army.
저때 전투가 페르벨린 전투야. 6월 18일 그레고리력 28일. 브랑겔 의 스위든을 이긴 전투야. 베를린 옆이고. 1656년 프리드리히 선제후 가 스위든 칼10세와 함께 바르샤바 에서 카시미르 의 두배 병력을 이기는 전투 이후 이름 날리는 전투.
그러면서 스위든이 쫓겨나가는거 보고, 이거 보고 반색을 한게 덴마크야. 어머 저거 별거 없네 스위든 애들? 얘들이 전쟁에서 이리 대패하고 쫓겨난건 이때가 처음이야 30년 전쟁 이후로. 10일도 안되서 저리 다 쫓겨올라간겨.
The victory at Fehrbellin had an enormous psychological impact: the Swedes, long considered unbeatable, had been bested and Brandenburg alone had prevailed against Swedish and French power politics. The victory boosted the Prince-Elector, age 56 at the time, who took an active role in the fighting, apparently having to be cut out of an encirclement by his dragoons.[1] Frederick William henceforth was known as the "Great Elector", and the army that he and Derfflinger had led to victory eventually became the core of the future Prussian Army vital for the country's development as a European great power. Glorified in the course of rising German nationalism under the rule of the House of Hohenzollern in the 19th century, June 18 was a holiday that would be celebrated in Germany up until 1914.
저 전투 가 결정적이고. 저게 위대한선제후 로 알려지고, 이 날이 독일의 기념일에 공휴일이 1914년 까지 되었고. 저게 독일을 만든거였고.
프랑스 의 전략대로 스위든때문에 브란덴부르크 가 병력철수 하면서 라인강 상류가 편해지고, 이 프랑스네덜란드 전쟁으로 프랑스는 프랑슈콩테 를 다시점령해서 이번엔 조약으로 확실히 갖고 오고, 알자스 지역 두개 도시를 갖고 오고. 스위든은 돈 받아서 저기 갔다가 오히려 덴마크 쳐들어오고, 프리드리히 도 열받아서 서포메라니아 다 점령하고 덴마크 를 돕는겨. 이게 스카니아 전쟁. 스코네 전쟁 의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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