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ranco-Dutch War, often simply called the Dutch War (FrenchGuerre de HollandeDutchHollandse Oorlog), fought from 1672 to 1678, was a major conflict which pitted France against the Dutch Republic. It also involved many other European states, including the Holy Roman EmpireSpainEnglandSwedenBrandenburg-Prussia and Denmark-Norway. It was the first of the major European wars that marked the reign of Louis XIV of France.  

 

프랑스-네덜란드 전쟁 1672-78 에. 동시에 벌어지는게

3차 앵글로-네덜란드 전쟁 1672-74 이고. 동시에

 

 

제노바-사보이 2차 전쟁.이 아래서 시작하고. 이어 러시아-터키 전쟁 이 중간에 드네프르강을 두고 벌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러시아와 터키 가 겨루기 시작하고, 여기서 자리잡은 터키 오스만이 대투르크 전쟁 1683 의 비엔나 를 쳐들어가는거고, 러시아는 20년 후에 대북방전쟁 1700년 을 시작하는거고, 스페인 후계자전쟁으로 서쪽에서 1701년 시작하는겨. 바빠 얘들이. 

 

프랑스-네덜란드 전쟁 1672 로, 이 와중에 이것 때문에 시작하는게 스카니아 전쟁이야. 1675-79. 프랑스 가 스위든을 부추겨서 전선을 분산시키려다가 스위든이 짱돌 을 맞는거고 스카니아 전쟁이란건. 

 

제노바-사보이 2차 전쟁 이 1672년 인데, 1차 가 1625년 30년 전쟁 할때야 네덜란드 독립전쟁에. 리슐리외 가 스페니쉬 로드 막으려고 이탈리아 북부땅을 세력에 넣으려고 하는거고, 스페인이 스페니쉬 로드 로 보낼 해양로 확보하는데 제노바 는 스페인반도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중요한 항구고. 제노바 는 맹목적인 스페인 동맹이고, 여길 프랑스 가 사보이랑 손잡고 가져온거걸랑. 이걸 스페인이 다시 뺏는게 1차 고. 그러다 1672년에 프랑스-네덜란드 전쟁할 때 사보이가 여길 갖고 오려는겨. 사보이 는 바로 아래 해변의 제노바 를 먹어야 해. 사보이 는 이미 수도를 토리노 로 옮기면서 프랑스 벗어나고 독자적으로 멀 하려는 애들이고, 앞으로 얘들이 이탈리아 를 통일할 애들이거든. 이런 발심 이 이때부터 시작이 된겨. 그런데 사보이 가 착각한게, 초반에는 프랑스 의 상대는 네덜란드 지 스페인이 아니거든. 착각을 한겨. 스페인도 저기 바로 엮이고 제노바 는 신경 못 쓸줄 안거지. 스페인이 바로 지원군 보내서 제노바 는 버티는거고.

 

제노바 는 정말 일편단심 스페인이야. 눈물겨운겨 얘들은. 밀라노 도 스페인이야 카를 죽고는. 이탈리아는 스페인 꺼야 오스트리아 께 아니고. 프랑스 와 스페인이 전쟁할때 루이의, 제노바 가 스페인의 병참 핵심이고, 밀라노 병력이 여길 통해 바다 가고 여길 통해 들락거리면서 알프스 넘어가는거거든. 프랑스 가 가장 걸리적 거리던게 뜬굼없이 이 제노바야. 뒤의 리유니온 전쟁 때 아예 프랑스 가 제노바를 갖고 오는겨. 이후 백년 동안 제노바 는 프랑스꺼야. 스페인 금고 가 제노바로 간겨 이게. 나폴레옹 지나고서야 제노바가 사보이 께 되는겨. 이 사보이 가 프랑스 와 스페인 과 오스트리아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게 참 대단한거야 오백년 동안. 제노바는 일편단심 스페인이었던거고. 

 

 

프랑스 네덜란드 전쟁에서, 투렌 이 죽는겨. 1611년생. 1672년 이 61세였고, 열살 아래인 그랑콩데 도 투렌 잇다가 병 때문에 은퇴하는거고. 네덜란드 에서는 드라우트 할배가 1607년 생이야. 65세여 저 전쟁 시작할때. 죽어 이 할배도. 

 

위대한 세명이 은퇴하는게 저 전쟁이고. 

 

Johan de Witt (24 September 1625 – 20 August 1672)  

 

요한 드 비트. 가 홀란드 그랜드팬션어리로 권력잡은게 20년 이야. 이 사람은 크롬웰 이랑의 1차 전쟁때 협상하고 오렌지들 슈타트하울더 안시킨다 동의하고, 홀란드 세상이 된겨. 홀란드 책임자로 1653년에 취임해서 이사람이 네덜란드 를 대표 하는거고 20년을. 이때 네덜란드 아미 가 유명무실에 완전히 홀란드 주 판이 된겨 네덜란드는. 세수 2/3 을 책임진다고 지들이 다 하는겨. 

 

The First Stadtholderless Period or Era (1650–72; DutchEerste Stadhouderloze Tijdperk

 

이때를 1차 슈타트하울더 부재 시기. 라고 해. 명예혁명으로 나중 잉글랜드 킹 이 되는 빌헬름3세 인 오렌지 윌리엄.이 1650년 생이고, 아빠 죽고 다음날 태어나거든. 엄마 가 섭정하려다 밀려나는거고, 드비트 가 나이 28세 에 홀란드 그랜드펜션어리 가 되어서 크롬웰과 협상하고 1차 전쟁 끝내면서 얘가 20년을 책임져. 네덜란드 가 1648년 공식 승인받고 실제적으로 시작은 드비트 가 한겨. 홀란드 주 주도로. 잉글랜드 와 전쟁 끝나고 이 20년 간이 그야말로 네덜란드 황금시기야. 전쟁 상대가 사라진겨 네덜란드가. 그러면서 이전에 80년 전쟁부터 바닥에서 깐 시스템을 얘 시기에 이걸 빨아들이는겨. 데카르트 가 저 네덜란드 바닥 시스템으로 영차영차 활발할때 인, 30년 전쟁 끝나고 나서 죽은거고, 데카르트 는 완벽하게 네덜란드 가 만든 인물이야. 그리고 나서 저 최고의 시기에 드비트 와 함께 한 인물이 바로 스피노자 인거야. 드비트 가 죽고서 스피노자 가 쫓겨다니다 가 죽은겨 또한. 

 

드비트 일때가 네덜란드 시기적으로 최고인겨. 슈타트하울더 인 애기는 꼬마라 완전히 배제되고 공부나 하는거고 얜. 만약 동양 빠닥이었으면, 빌헬름 3세 같은 아이는 바로 죽이거나 도망다녀야 하거든. 

 

이런게 웨스턴 애들이랑 전혀 다른겨. 저 레겐텐 들인 부르즈와 들로 지배되는 네덜란드는, 슈타트하울더 란 자리를 없애려 한겨 얘들은. 저건 다이너스티 와 다를바가 없는거야. 그야말로 착각하는거야 이런 관점이. 이런 시선으로 폴란드 가 지워지는겨. 마치 민주적으로 서로 뭉쳐서 의견 교환하고 어쩌고 하면 잘 될 줄. 결국 네덜란드 도 이후 져무는건 폴란드 세임 짓 과 똑같은 짓 하다가 리퍼블릭 좋아 하다가 얘들도 지기 시작한거야 슈타트하울더 가 또 사라지면서. 

 

빌헬름3세 는 걍 교육 만 받는겨. 레겐텐 애들 의 의도야. 넌 시민교육을 받아라. 왕조 다이너스티 비슷한 교육을 받지말고. 그러면서 라이덴 대학에서 7년 을 교육받은겨. 공부만 한겨 얜. 라이덴 대학이 유럽 최고의 대학이야 이게. 침묵 오렌지 가 독립선언 하고 처음 한 짓이 대학 만든겨 라이덴 대학. 얘가 9세 때부터 16세 까지 공부를 해. 

 

드비트 는 그냥 저 시대의 흐름을 탄 것 뿐이야. 얘 때문에 네덜란드 가 잘나간게 아니라. 얜 수학자 야. 수학관련 논문도 쓰고 케플러와 서신교환도 하고. 한가 한겨 얜 저시대에. 그러다 폴란드 밟히는데 껴들어가고 덴마크 가 해전하는데 도 끼어서 스위든 을 제어한다미. 그러다가 잉글랜드랑 2차 하면서 잉글랜드도 이겨. 얘가 주도를 해서 3자동맹으로 프랑스 스페인 의 데볼루션 전쟁을 중재해. 

 

오매 갑자기 유럽에서 최고 인사가 된겨 네덜란드 에 드비트 가. 

 

저때 이 사람은, 더치 아미 라는 오렌지 가 만든 군조직을 무시하고, 홀란드 만 챙기는겨. 

 

바닥민심은 부글 부글 한겨 이게. 오렌지 애들을 중심으로. 홀란드 외 나머지 주 들은 부글부글 떠는겨 이게. 소외된 애들이. 민주 어쩌고 지만, 모든건 홀란드 주 가 독점하는거거든. 

 

오렌지 가 슈타트하울더 할때는 여러주 의 참여 여지나 있지. 

 

저 홀란드 들은, 말만 슈타트하울더 라는 모나크 인 군주 혼자 는 나빠요 민주제 좋아요 지만 결국 드비트 가 군주 고 주위 애들은 모두 홀란드야. 

 

그래, 머 그래도 니덜이 알아서 해처먹어봐라. 

 

하다가, 1672년 이 온겨 이게. 

 

그랑콩데 와 투렌 이 5월 4일 5일 각각 출격해. 

 

France declared war on 6 April, followed by England on 7 April. 

 

프랑스 와 잉글랜드 는 각각 전달에 전쟁 선포를 했어. 한달 후 출격하는겨. 

 

The naval Battle of Solebay took place on 28 May Old Style, 7 June New Style[1][2] 1672 and was the first naval battle of the Third Anglo-Dutch War. The battle ended inconclusively, with both sides claiming victory.  

 

해전이 먼저 벌어져. 솔베이, 잉글랜드 동쪽 서퍽 해변이야. 여기서 프랑스 와 쪼인 해서 출발하려는걸 드라우터 가 와서 기습을 하는겨. 이게 5월 28일 이야. 

 

During 1672, which the Dutch refer to as the disaster year, France and England attacked the Republic in the Franco-Dutch War. De Witt was severely wounded by a knife-wielding assassin on 21 June. He resigned as Grand Pensionary on 4 August, but this was not enough for his enemies. 

 

프랑스 가 라인강 하류를 건너는게 6월 초거든. 그리고 6월 중순에 이미 우트레흐트 까지 점령한거야. 이때는 워터라인 이 우트레흐트 왼쪽 이야. 바알 강에서 우트레흐트 왼쪽을 지나 바다로 빠져. 프랑스가 출격 한달만에 그냥 다 차지한겨 이게. 조온나 빨라. 그만큼 네덜란드가 전혀 아무런 준비 가 안된겨. 아무것도 안한겨 이들은. 홀란드 만 집중적으로 노난거고 네덜란드 전체 스테이트 차원에서 멀 한게 없는거야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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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비트 가 6월 21일 에 칼질 하는 테러에 심각하게 부상을 당해. 그랜드 펜션어리 자리에서 물러난게 8월 4일 이야. 이미 살벌한겨 민심이. 

 

 

 In view of the threat, the States of Gelderland wanted William to be appointed Captain-General of the Dutch States Army as soon as possible, despite his youth and inexperience.[34] On 15 December 1671, the States of Utrecht made this their official policy.[35] On 19 January 1672, the States of Holland made a counterproposal: to appoint William for just a single campaign.[36] The prince refused this and on 25 February a compromise was reached: an appointment by the States General for one summer, followed by a permanent appointment on his 22nd birthday.  

 

이때 빌헬름3세 가 22세야. 헬더란드 에서 빌헬름 을 더치 스테이트스 아미 의 캡틴-제너럴 로 임명하고 싶어해. 최고 사령관 자리야 저 아미 의. 우트레흐트 에서도 이걸 공식화 해. 그런데 얘들은 힘이 없어. 모든건 홀란드 야. 이 홀란드 애들이, 빌헬름은 단지 소규모 부대로 원정 하거라. 머 걍 일개 중대 나 하나 주는거야 이게. 이걸 거절하고 2월 말에 타협해서 여름동안 만 맡기로 하다가 생일날 오래 맡기로 한겨. 생일은 11월 이고 이미 오렌지 세상 다 된 때이고. 이미 이전 겨울부터 전쟁날건 모두 알고 있었던거고, 전쟁 터지기 전에 여름에만 더치 아미 의 최고자리를 맡은건데, 이미 이때는 더치 스테이트스 아미 라는게 힘이 없는겨 이게. 홀란드 가 이 더치 아미를 죽여버렸걸랑. 

 

빌헬름 은 저때 홀란드 워터 라인 쪽으로 가 있는 상태야. 

 

이때 테러가 발생하고 드비트 가 칼에 다치고, 8월에 자리를 내놓아.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로는 만족을 못해

 

His brother Cornelis (De Ruyter's deputy-in-the-field at the Raid on the Medway), particularly hated by the Orangists, was arrested on trumped up charges of treason. He was tortured (as was usual under Roman-Dutch law, which required a confession before a conviction was possible) but refused to confess. Nevertheless, he was sentenced to exile. When his brother went over to the jail (which was only a few steps from his house) to help him get started on his journey, both were attacked by members of The Hague's civic militia in a clearly orchestrated assassination. The brothers were shot and then left to the mob. Their naked, mutilated bodies were strung up on the nearby public gibbet, while the Orangist mob partook of their roasted livers in a cannibalistic frenzy. Throughout it all, a remarkable discipline was maintained by the mob, according to contemporary observers, making one doubt the spontaneity of the event.[20] The same portraitist who had made paintings of the brothers in life, Jan de Baen, also portrayed them in death: The Corpses of the De Witt Brothers.  

 

형 코르넬리스 는 억울해 이사람은. 드라우터 와 함께 해전에 적극적으로 참전한 사람이야. 정치는 동생이 한 거거든. 저때도 잉글랜드와의 해전 하다가 병이 들어서 집에 온겨 하필 저때. 이 코르넬리스 가 날조된 반역죄로 체포가 되고 고문을 당해, 법 상 자백이 필요한데 유죄려면 자백을 안해. 그럼 무죄판결해야해. 유죄라고 추방 판결을 한거야. 형인 코르넬리스 가 감옥에 있는겨. 동생 드비트 는 자리 내려놓고 부상 치료한 채 집에 있는거고 8월4일 은퇴해서. 드비트 가 집 옆이 감옥이야 형 보러 가는겨, 추방 하는거 여정 도와주려고. 이 둘이 완벽히 설계된 시민군에 의해서 총격을 받은거고, 이 상태로 군중에 넘겨져서, 발가 벗기고, 이미 몸은 너덜너덜 해지고, 이걸 지벳, 지벳이란게 시체를 걸어놓는 막대기야. 교수대 와 달라 이건. 꺼꾸로 걸어놓은겨. 그러면서 오렌지 군중들이 카니발리즘 광기에 빠져서 저 두사람의 간을 로스트 란건 불에 구은겨. 시체를 갈라서 구워 먹은겨 오렌지들이. 그런데 저게 일시적인 흥분 상태의 짓들이 아니라, 계획된 듯한 일사분란한 행동으로 보인다는거지. 즉 저건 치밀하게 계획 한 거야 카니발 짓 까지가. 우연적인 행위의 연속으로 보기 힘들다 는 증언 도 있다는거고. 

 

우연히 일어난거다 치밀히 계획되었다 저짓까지 가 두가지 의견이고. 

 

여하튼 간에, 저정도까지 오렌지 들이 20년간 분노가 쌓인겨 이게. 

 

완전히 한순간에 드비트 형제들이 날라간겨. 순식간에 날라간겨 저게 권력이. 아마 가장 반전으로 권력이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게 드비트 형제여. 저기 머 막는 정부군도 없어 저게. 민심이 아주 한 방 한 순간에 반전을 한거야. 

 

네덜란드 게르만 애들이니까 저런게 가능한거야. 게르만 애들은 어마무시해 저게. 로마 는 황제 암살을 수시로 해 민들이 기분나쁘면. 쟤들은 황제 암살 킹 암살의 역사야 저게. 아시아 와 이게 차원이 달라. 암살범은 또한 죽여. 그래야 다음 권력이 굴러가. 

 

 

그런데 웃기게도 저때, 빌헬름 이 이제 다시 슈타트하울더가 되고, 저 사건에 대해 입을 다물어. 몰라 그래서 빌헬름이 저기 개입했는지 아니면 침묵의 동의 인지. 

 

Cornelis Maartenszoon Tromp (3 September 1629 – 29 May 1691) was a Dutch naval officer who served as lieutenant-admiral general in the Dutch Navy, and briefly as a general admiral in the Royal Danish Navy. Tromp fought in the Anglo-Dutch Wars and the Scanian War. His father was Lieutenant Admiral Maarten Tromp.  

 

코르넬리스 트롬프.야. 마르텐 트롬프 의 아들이야. 해군의 류터넌트-애드머럴 제너럴. 이면 마르텐 트롬프 도 못받은 자리고, 다음 드라우터 만이 받은 자리야. 이걸 얘가 해군 짱이 되거든. 얘가 드비트 저 살육할때 주모자 인데, 얜 아빠 덕으로 장교질 한거고, 드라우터 가 얘를 짤라 능력이 없어서. 얘가 저 이후 다시 해군 짱이 되고, 얜 능력이 없어. 타이틀은 제너럴 까지 받는데 이 타이틀로 전쟁나간적이 없이 죽어. 빌헬름 이 저 타이틀을 취하고 이후 저 타이틀은 오직 오렌지 와 드 라우터 뿐이야. 

 

그리고는, 프랑스 가 한두달만에 워터라인 에 왔지만, 이걸 못 뚫는겨. 낫사우 모리스 가 설계 해서 메노 가, 프랑스에 보방 이 있으면 네덜란드에 메노 가 있어. 여기 물과 뒤에 얼어 여길 못건너가 프랑스가. 

 

빌헬름3세 가 잉글랜드 찰스2세 의 조카 여. 네덜란드 입장에선 빌헬름 올리면 바로 잉글랜드 랑 손잡아서 전쟁 끝낼줄 안겨. 찰스 도 너무 좋아하고 내 조카 의 오렌지 복귀했다 면서도 이 찰스가 돈 을 요구하고 네덜란드에 자기 잉글랜드 병력 주둔 을 요구하는겨. 

 

이걸 거절해 빌헬름이. 아 이 인간 대단한겨 이게. 저 모리스 가 설계한 워터라인에서 버티고. 오른쪽과 남쪽의 덴마크 브란덴부르크 오스트리아 가 들썩이는겨. 스페인네덜란드 라는 스페인도 다시 들썩이고. 그러면서 전장이 네덜란드 의 워터라인을 못넘고, 갑자기 이게 전 유럽 으로 확산이 되는겨. 하물며  저 이탈리아 의 시칠리아 까지 들썩이고, 시칠리아 의 메세나 에서 스페인에서 독립한다고 프랑스를 부를 지경에, 여기에 드라우터 가 프랑스 랑 해전 하다가 죽는겨 이게. 

 

저러면서, 프랑스 가 스위든을 부추겨서 포메라니아 땅에서 브란덴부르크 를 쳐들어가면 돈 주께 해대서 쳐들어가, 스위든이 돈이 없거든 얘들이. 헌데 얘들이 브란덴부르크 에 패하는겨. 덴마크 가 이걸 보고 놀래, 스위든이 지는거 처음본겨. 바로 스카니아 뺏긴땅 찾아와야 해 저따위 스위든, 스카니아 전쟁이 시작되는겨. 

 

The reconstructed  gallows  at Caxton Gibbet

케임브리지셔 의 캑스톤 마을 의 지벳. 지빗. 지벳 이란게 갤로우 gallow 라는 북게르만말이고 독일북부 프리지아 쪽에서 여기서 넘어간 앵글로 색슨 의 잉글랜드 고, 얘들이 형벌이 졸 쎄, 이게 아래 독일과 프랑스 와 달라. 참혹한 중세 형벌이 특히나 잉글랜드 와 북부 게르만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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