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edes were disastrously defeated in this well-known engagement known as the Battle of Fehrbellin, but succeeded under cover of night in crossing of the restored bridge. But their losses increased significantly during the retreat through the Prignitz and Mecklenburg. During the battle and subsequent rout 2,400 Swedish troops were killed, and 300 to 400 captured, whilst Brandenburg lost 500 men kille or wounded.[22] Not until they reached Wittstock did Brandenburg call off the pursuit.  

 

페르벨린 전투. 1675년 6월 28일. 로 스위든이 참혹하게 패하고 퇴각해. 야밤에 다리 건너서. 선제후는 계속 쫓아가고, 브란덴부르크 서북쪽끝 프리크니츠. 넘어서 메클렌부르크 까지가는데 손실은 더 커져. 계속되는 전투에 2400명 스위든 부대가 죽고 삼사백명이 포로가 되고, 브란덴부르크 는 500명 이 죽거나 부상. 끝에 비트스토크 에서 추격을 멈추다.

 

So an army that had now grown to 20,000 men and 64 cannon entered the Uckermark, passing through Stettin.  

 

스위든의 브랑겔 이 브란덴부르크 를 쳐들어올때 부대가 2만명 이고 64개 포야. 이들이 이때 이만여명 씩의 전투야. 프리드리히 선제후 가 갖고 올라온 부대도 이만이 안돼. 근본적으로 유럽 전쟁이 동양 과 달라. 오스만 애들은 점령당한 애들 앞세워서 수십만의 병력을 움직이는 약탈이야. 아시아 와 유럽의 전쟁은 전혀 달라 이게. 

 

17세기 가 오면서 저리 이삼만 의 전투가 벌어져. 이건 대규모의 전투야. 총 이 등장하면서, 더하여 상비군 이 등장하고. 더하여 쉽게 총만 잡으면 전투원이 되는겨. 

 

아시아 와 유럽이 이 근본부터가 전혀 달라. 전쟁 이 또한 전혀 달라 이게. 

 

아시아 들은 전쟁을 하면, 적의 몸가죽을 벗겨서 지푸라기를 넣고 공차고 노는 들이야. 민간인들만 보면 불지르고 약탈하고 강간을 해. 이건 아시아 전쟁의 걍 기본 줄기야. 점령만 하면 내땅이야.

 

유럽사 전쟁은 그럴 수가 없어. 전쟁은 명분이 있어. 중세 천년의 전쟁은 대부분 후계자 승계권 전쟁이야. 저쪽 핏줄 끊겼어. 머 이거 딱히 답이 없어 첫째사위 둘째사위 아니면 건너서 손자. 야 니덜끼리 정리해. 그게 서로 인정이 되어야지 이기고도 저땅 은 내땅 이 되는거야. 

 

무작정 이겼다고 저땅이 내땅이 되는게 아냐. 

 

내땅 이 되었다고 모든 게 내 말이 법이 아냐. 내가 킹 행세를 못해. 퓨덜 시스템이야. 자기는 어쨌거나 그 땅의 임차인이야. 바쌀이야. 테넌트여. 그 영지의 상위자에게 하미지 해야해. 작위 를 확실히 인정 받아야 해. 

 

밀라노 를 스페인 애들이 쥐었다고 이게 스페인 킹덤 께 아냐. 이건 오스트리아 신성로마황제 의 법으로 다스리는겨.

브루고뉴 백작령을 스페인이 갖고 있다고 역시나 스페인께 아냐 신성로마야 여긴. 저걸 프랑스가 전쟁해서 자기네꺼라고 못해. 인정을 못받아 루이가. 다시 스페인한테 줘야 했어 저길 데볼루션 전쟁으로 다 점령을 했어도. 

 

전쟁해서 이겼다고 저게 자기께 되지 않아. 

 

전쟁해도 수천 이야 끽해야. 이게 총이 등장하면서 수만 이 되는겨 대전이. 큰전쟁이. 

 

몽골들 쳐들어올때도 기본단위가 몇십만이야. 오스만이 그렇고. 점령지 애들 을 앞세워서 방패로 내세우는겨. 유럽전쟁은 이런 식의 징병은 있을 수 가 없어. 

 

포로 를 저렇게 가죽벗겨 죽일 수가 없어. 

 

이건 그리스도 이전에, 고대 그리스 비극 기원전 5세기 의 이야기고 당시 역사야. 우리 아테네는 포로로 잡으면 못죽여요. 재판을 받던가 랜섬으로 돈받아 돌려줘야 해요. 

 

전혀 전혀 달라 이게. 

 

여기에 그리스도 가 얹어져. 저 유럽 들이니까 그리스도가 저렇게 자리를 잡은거야. 저게 아시아 부터 시작했으면 그리스도 는 걍 똑같은 페이간으로 전락을 해버렸을거야. 지금 이 조선 빠닥의 그리스도를 봐. 저게  무당들 교회고 지들만의 교회고 오컬트 집단이지 저게 먼놈의 기독교야 저게. 오직 지들만의 콩그리게이셔널 처치 이고 지들만의 자기만의 킹덤이고 자기만의 성령놀이지 저게 먼놈의 교회여 저게. 

 

유럽사 와 아시아 사 비유럽사 는, 이게 근본적으로 달라. 

 

전혀 전혀 달라.

 

비유럽사 이놈의 비유럽은, 그야말로 야만 그자체야 이게. 

 

전혀 모랄 이 없어. 지금도 현재도. 

 

강간이 당연한 들이고, 사람들 찢어죽이는 게 정의야 이 들은.

 

자기들 편 아니면 적폐야. 이건 아주 또옥 같아 이게 과거나 지금이나. 

 

대갈빡엔 든것도 전혀 없고. 

 

강간 에 추행 은 정의야. 외교관도 저게  저런게 지들은 정의야. 아니 대체 우리 조선 님께서 양키나라 년들의 궁뎅이를 주물렀던 말던 감지덕지 할것이지 먼놈의 주권침해여 저게. 우리 주체성을 멀로 보고. 우리 위대한 조선이 여전히 지들나라의 식민지 인줄 아나부지?

 

저것도 고향이 어딜까 저거. 

 

지들 고향 이면  모든게 정의야. 

 

강간 성추행 하는 애가 영웅이야 ㅋㅋㅋ. 저따위가 스스로 쪽팔려서 죽으면 영웅 대접을 받아. 

 

여자들이 더 나서서, 우리 조선 위대한 님한테 추행당했다는 비서 누군지 꼭 추적하겄어요 해대는 것도 여자야 ㅋㅋㅋ. 골때리는겨. 

 

이들은, 정말 그야말로, 윤리 와 도덕 이 전무 야 전무. 에띠카 라는게 없어. 

 

이게 전혀 진도가 안나갔어. 

 

지능이 없어.,

 

저런 집단 무지랭이 들을 빠질하면서 몰려 다녀. 저게 조선이고. 저게 또한 북조선이야 지금. 저게 또한 중국 들이고. 저런 것들의 민들의 지지 로 저런 것들이 권력을 유지를 하고 있는거야. 

 

유럽사를 보면, 민들이 나서서, 저런것들은 바로 목짤라. 

 

상상을 못하는거야 비유럽에선. 

 

역사에 대해  무지한거야 이 비유럽애들. 특히나 아시아 특히나 이 조선 애들.  곧 북조선이랑 한몸될 애들.

 

전혀 달라 이게. 

 

사람 자체 가 달라 그래서. 웨스턴 애들 보면, 걍 자연스러 몸과 표정이, 연설할때도 말할때도. 점점 미개한 웨스턴 애들이 늘어나는 속에서도. 

 

이 조선들 도 봐. 온 갖 인상 쓰면서. 다리 짝다리 잡고 껄떡 껄떡, 저게 지가 자신감 이 있다면서. 엥? 엥? 엥? 거리면서 저짓 하는거거든. 얼마나 열등감 컴플렉스 에 쪄들었으면 테레비 에서도 저런 모습과 저런 목소리를, 마치 자신감 이라며 저리 표현하는가, 헌데 저런걸 위대한 조선의 자신감 으로 사람들이 존경을 해. 골때리는겨 저게. 

 

얼마나 열폭질 의 속에서 자랐으면, 저런 표정과 어투 를 공중파에서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저런 걸 또 위대한 선생이라며 대놓고 방송을 하고 저런걸 또 감동질 하면서 듣보는겨 ㅋㅋㅋ. 

 

얼마나 미개한 땅빠닥이냐고 여기가, 

 

저건 진짜 저지능의 돌대가리에 아는게 하나 없는 애걸랑. 저거 완벽하게 사기야 저건. 아는게 없으니 온갖 똥폼이라도 잡고 개소리 시전하면서 분노의 표정 짓고. 

 

웨스턴 들에 저런 연설에 저런 강의가 어딨어. 자연스러움 내추럴을 봐 쟤들 말하는걸. 

 

사람 자체가 달라 이게. 

 

저게 모랄 이야 모랄

 

저게 역사 고 역사. 

 

저게 에띡스 에띠카 야. 

 

전쟁사 의 전투 의 모든 각각이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가 전혀 달라 아시아랑. 

 

저런 이야길 모두 모르는겨. 가르쳐줄수도 없고. 말하는 애 단 하나 없고. 

 

내가 지금까지 유럽사 전쟁사 를 써내려가면서 느낀거야. 중국사 를 써내려오면서 완벽하게 느낀거고. 

 

아주 진짜 전혀 달라 이 인간의 역사들이. 웨스턴 과 비웨스턴이. 

 

아시아 는 전혀 전혀 이게 진화가 안되었어. 

 

모랄에서 언어 가 나와서 여기서 영혼이 진화가 돼. 영혼의 진화는 유전자로 드러나지 않아. 

 

여긴, 가장 후진 애들 땅이 된겨. 일본들이 그나마 인정하고 악착같이 배워서 쫓아가려는, 비유럽권에서 그야말로 유일한 애들이고, 이 조선애들은 일본 머 하나 이상하면 , 오메 일본 곧 망해요, 조선 의 대 운이 옵니다요 이들은 일본 망하면 자기가 흥하는겨. 이들은 사촌이 망하면 자기집안이 흥하는겨 ㅋㅋㅋ. 이 조선 애들은 전혀 자기를 볼 수가 없어. 남이 망하면 그걸로 너무 행복해 ㅋㅋㅋ. 헌데 그 남은 꼭 일본이어야해 . 중국은 위대한 주인님이셔 ㅋㅋㅋ. 참 세상에 이런 애들도 없어.

 

위안부에 징용에 대해 배상보상에 사과를 하라우.

 

왜 징용에 위안부만? 전쟁때 저 오스만들 몽골들이 점령질해서 앞세운 징병된 나라는 왜 사과 하라우 배상하라우 안할까? 저 역사가 저게 몇년이야 저게. 일본은 사오십년이지 저들은 칠팔백년이야 저 투르크 돌궐들의 잔학질은. 저기서의 수많은 참혹한 짓에 대해 머 쟤들은 지능이 없어서 사과하라 보상하라 안하겠니? 독일여자들이 적군들한테 강간당한게 수백만이야. 독일여자들은 뇌가 없어서 가만히 있겠니? 

 

왜? 우리 조선은  위대한 민족이걸랑. ㅋㅋㅋ.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이걸랑. 

 

우리 조선여자들은 조선 오백년동안 하렘의 천국에 오직 조선 벌레 수컷 애들의 전용 하렘에 기생청의 기생수집에 노류장화 일 뿐이지 일본용은 아니란건지. 전인류사에서 다이너스티 차원에서 저짓한 역사는 유일 하단 걸 전혀 몰라. 전쟁만 나면 수도를 버리고 도망을 가는건 전무후무 한거야 저건. 

 

생각하게 하지 마세요! 가만히 있어요! 저런 이야긴 모두 적폐 들의 적폐짓이예욧! 생각말고 우리 조선 님들 도포자락 님들의 이야기만 들어욧! 

 

ㅋㅋㅋ

 

참 개미개한 땅이야 여기가.

 

모랄 과 지능은 리니얼 하게 정비례 하단다. 북조선이 모랄이 없으니 저지능에 저런 사회주의 사상으로 저렇게 행복하게 사는거고. 곧 남조선이 저렇게 되는 건 그야말로 당연한거야 그래서. 

.

.

 

웨스턴 애들의 역사는 너무나 달라 이게 전혀 아주 달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혀 달라 그래서. 

 

The Battle of Turckheim was a battle during the Franco-Dutch War that occurred on 5 January 1675 at a site between the towns of Colmar and Turckheim in Alsace. The French army, commanded by the Viscount of Turenne, defeated the armies of Austria and Brandenburg, led by Alexander von Bournonville and Frederick William, Elector of Brandenburg.  

 

1675년 1월 5일 에 벌어진 투르크하임 전투. 여긴 알자스 야. 지금도 마을 이름이 투르크하임이고 저건 게르만어고 게르만땅이야 여긴 원래. 불어 발음도 투르크하임이야. 이 알자스 는 독일땅이어야 해 원래. 프리드리히 선제후가 자기 병력 2만가까이에 지원하러 간거야. 여기 필드마샬은 신성로마의 플레미쉬 사람이야. 프랑스 는 투렌이야. 질수밖에 없어. 투렌은 천하무적이야. 프리드리히 가 싸이드에서 꼈다가 저기서 지고, 자기땅 브란덴부르크 로 간겨. 결국 이 프리드리히 도 투렌 한테서 지면서 배운겨 이게. 

 

German mercenaries willingly offered their services to the Swedes. Some German states (Bavaria, the Electorate of Saxony, Hanover and the Bishopric of Münster) agreed to join the Swedish-French alliance  

 

저때는 여전히 프랑스-네덜란드 전쟁 기간이고, 스위든 브랑겔 이 내려올때, 독일땅의 작센선제후, 바바리아, 하노버 는  스위든 편인겨. 뮌스터 에 쾰른 이 프랑스편이었고 그래서 스위든과 같이 손잡은 상태고. 

 

George, Duke of Brunswick-Lüneburg (17 February 1582, Celle – 12 April 1641, Hildesheim), ruled as Prince of Calenberg from 1635.  

 

하노버 가문 창립자 가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게오르크.야. 30년 전쟁 때 하노버 로 옮기면서 하노버 가문이 시작한거고 여기서 영국 킹 조지1세 가 나오는겨. 첼레, 히델스하임, 갈렌베르크 가 하노버 근처고. 하노버 가 괴팅엔 대학 이고. 이 괴팅엔 대학이 위대한 수학자 가우스 의 대학이야. 라이프치히 도 이 하노버 가 키운거고. 이놈의 하노버 가 독일과 영국을 만든겨.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의 하노버 는 사자공 헨리 의 겔피가문이야. 하노버 로 가서 이름을 바꾼겨. 겔피 애들이야. 

 

게오르크 의 아들이 네명이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자리가 바로 셋째 아들 한테까지 가는겨. 요한 프리드리히.야. 이사람때 스위든이 브란덴부르크 로 쳐들어가고, 하노버가 스위든을 지원할때 이사람이고, 막내 에른스트 가 형 죽고 이자리를 받는겨. 그리고 하노버 선제후 가 돼. 이사람의 아들이 영국 조지1세 이고, 조지1세 의 부인이, 둘째형 게오르크 빌헬름 의 딸 소피아 도로테아 야. 저 막내 하노버 선제후 의 부인이 엘리자벳 스튜어트 의 딸 소피아 고 이 핏줄로 조지1세 가 영국킹을 하는거고. 

 

프리드리히 선제후 가 투렌한테 알자스 의 투르크하임전투에서 패하고, 5개월 지나서 자기 땅가서 저 하노버 에 스위든 을 몰아내는겨. 스위든은 하노버 와 손잡으면서, 이 하노버 가 베저강 지류 에 위치해서 여기서 왼쪽 지원군을 막으려는 용도에 이들이 같이 서쪽에서 들어오고 스위든은 북동쪽에서 내려오는거걸랑. 이걸 다 쳐올라간겨 프리드리히 선제후가. 

 

The campaign began on 15 September 1675 with an Allied advance into the two Swedish duchies. They rapidly captured one Swedish fortress after another. The Swedes were hampered by the high number of mainly German deserters because, after the imposition of the Imperial Ban it was forbidden to take up arms against member states of the Holy Roman Empire.  

 

브란덴부르크 가 스위든을 위 포메라니아땅으로 쫓아낸게 6월 말이고, 이제 신성로마영지 의 땅들이 다시 오스트리아 황제편에 돌아온겨. 뮌스터 쾰근 주교령도 편을 바꾸고. 하노버 도 돌아선겨 이리로. 그러면서 덴마크 가 개입을 하고, 이들이 같이 아예 스위든을 대륙에서 내몰려 해. 브레멘-페르덴 을 쳐들어가는겨. 저때 저지역에 먹힌 제국법이 제국의 영지 군대에 바쌀은 무기를 들어선 안된다는 건데, 스위든 은 저 법에 안 들어가니까 브란덴을 쳐들어간거고. 알자스 에 프랑스가 쳐들어가는것도 프랑스도 저 법에 안걸리는겨. 헌데 브레멘-페르덴 은 제국의 법 테두리야. 감히 못 대들어. 스위든 에서 온 애들만 싸우는거고, 여길 대부분 다 빼앗아 신성로마 연합군이. 이때 사령은, 네덜란드 를 점령했던 폰 갈렌 뮌스터 주교야. 아 이양반 대단해 보믄. 주교가  짱이야 군사력이. 

 

At this point, the Swedish empire in Germany began to crumble. In 1675, most of Swedish Pomerania and the Duchy of Bremen were taken by the Brandenburgers, Austrians, and Danes. In December 1677, the elector of Brandenburg captured StettinStralsund fell on October 11, 1678Greifswald, Sweden's last possession on the continent, was lost on November 5. A defensive alliance with John III of Poland, concluded on August 4, 1677,[8] was rendered inoperative by the annihilation of Sweden's sea-power, the Battle of Öland, June 17, 1676; Battle of Fehmarn, June 1677, and the difficulties of the Polish king.  

 

브레멘-페르덴 을 덴마크 와 뮌스터 위주로 1675년 9월 에 점령해들어가고 다 점령해 저길. 브란덴부르크 는 6월말에 다 회복해서 쉰다음에, 쳐 올라가는겨. 위 스위든 포메라니아 를. 다음해 1677년 12월에 슈체친 을 점령해. 여기가 수도여 포메라니아의. 슈트랄준트 가 3년 후 인 1678년 에 들어오고. 그라이프스발트 가 마지막으로 11월에 들어와.

 

슈트랄준트 가 가장끝의 내륙해변이고. 이 오른쪽위 섬이 륀 섬이야. 여기가 스위든이 대륙으로 들어가는 전초기지고. 그라이프스발트 는 여기 아래 해변이야. 

 

저때 폴란드 킹이 비슈니오비에츠키의 미하우 가 독살인지로 죽고. 1674년에 얀3세 소비에스키 걸랑. 저 와중에 킹이 된겨. 프랑스 가 당연히 폴란드에도 개입을 해. 저때 유럽 전쟁은 주변 변수들이 많고 이걸 다 꿰고 있어야 해 외교적으로. 

 

프랑스 입장에선 네덜란드를 쳐들어가면서, 오스트리아 에 스페인이 적이 되는걸 감안해야 하고, 저 전선을 흐트리기위해 가장 필요한게 스위든 인거고, 브란덴부르크 가 의외로 상비군을 조직한 강국인걸 알고, 스위든 다음으로 손 잡는게 폴란드여. 폴란드가 안에 프러시아 가 덩치가 커진겨 이게. 스위든이 칼10세가 쳐들어올때 프러시아 더치를 독립을 시켜주다시피한겨. 더하여 왼쪽 땅들도 프러시아에 주고 동포메라니아 도 결국 브란덴부르크 것이 된거고. 갑자기 폴란드 땅안에 거대한 브란덴부르크 가 북쪽 해변에 들어오게 된거야. 얀 소비에스키 의 가장 골치 중 하나가 아래에는 러시아에 오스만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땅에 위로는 이놈의 브란덴부르크여. 루이가 선거전 때 지원한게 소비에스키 고. 그런데, 폴란드 는 이미 힘이 없어. 위대한 민주제 의 셰임 도 그렇고, 이미 얘들은 죽은 나라야. 

 

프리드리히 선제후 가 위로 쳐들어가면서 저 스위든 포메라니아를 3년 에 걸쳐 다 빼앗은겨. 덴마크 오스트리아 와 함께. 스위든이 프랑스 돈 받고 쳐내려갔다가 3년만에 완전히 대륙을 다 뺏기고, 브레멘-페르덴 도 빼앗기고. 더하여 저때 동시에 덴마크 가 바다를 건너서리 스코네 와 할란드 부후슬랜 블리에킹예  다 뺏기는게 또한 저 와중이야. 저게 동시에 벌어진 사건인겨. 

 

저걸 덴마크와 브란덴부르크 가 대륙과 건너서 다 빼앗았어 전쟁으로. 

 

그런데 말이야. 전쟁 끝나고나서, 저걸 또한 다 돌려줘 ㅋㅋㅋ. 저건 30년 전쟁 때 이미 끝나고 정리된 영토여. 전쟁으로 빼앗는다고 저땅 내땅 이 될 수 없어. 저땅이 내땅 이 되려면 그러한 역사적 명분에 승계의 명분이 있어야 해. 그게 전쟁 한번 이겼다고  그게 니덜 땅이 되는게 아니란다 하시는겨. 

 

달라 이게, 유럽사가, 전혀 전혀 달라. 

 

이런 전혀 다른 유럽사를, 유럽애들도 몰라, 자기들만의 이야기라. 헌데 이걸 아시안들은 더 몰라. 왜냐면, 저 얽히고 섥힌 이야길 이해할 지능의 모랄이 안되거든. 양자역학 이야기 보다 더 어려운게 유럽사야 ㅋㅋㅋ . 시중에 유럽사  다 개거짓말들이다. 중국이 푼 대국굴기 유럽사.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미개한 상대나라 보기 가 있을거며. 

 

 

Classical music ,  opera  and  ballet :  Swan lake  pictured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