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derick William (German: Friedrich Wilhelm; 16 February 1620 – 29 April 1688) was Elector of Brandenburg and Duke of Prussia, thus ruler of Brandenburg-Prussia, from 1640 until his death in 1688. A member of the House of Hohenzollern, he is popularly known as "the Great Elector"[1] (der Große Kurfürst) because of his military and political achievements. 

 

프리드리히 빌헬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에 프러시아(프로이센) 듀크. 20세 에 올라서 1688년 48년 재임에 68세 로 죽었는데. 결국 프로이센 의 독일 을 만든 사람은 이사람이야. 그것도 북쪽전쟁 1655-60년 에. 그리고 이후 네덜란드 에 프랑스 영국이 쳐들어올때, 이사람이 세상읽는 판단력이 탁월한거고, 정치적 성과 에 더하여 군제 개편에 전술 도 기반을 잡고, 국내적으로는 종교의 자유에 쫓겨난 이방인들을 다 흡수하고 상업 을 육성하고 이게 국력이 된겨. 데어 그로쎄 쿠르퀴르스트. 위대한 선제후 로 알려지다. 

 

브란덴부르크 가 곰알베르트 가 만든 땅이고, 겔피 의 사자공 하인리히 와 작센 듀크 자리로 의도치않게 싸우게 되고, 구찮아 피하다 시피하면서 만든게 브란덴부르크 야. 이후 작센 자리는 분가되었다가 끊긴거 비텐 가문 애들이 갖고 간거고, 그러다 여기는 비텔스바흐 가문에 룩셈부르크 가문이 황제 하면서 핏줄끊기고 갖고 갔다가, 룩셈부르크 의 카를4세가 보헤미아킹이 첫 황제 가 되면서 이 브란덴부르크 를 자기 장남 벤첼(바츨라프, 웬시슬라우스) 에게 주고 이 자리를 선제후 로 만든겨, 벤첼이 띨한거고 이때 얀후스 고, 동생이 지기스문트 황제 되는거고. 그리고 지기스문트 로 룩셈부르크 핏줄 끊기고 이때 이걸 호헨촐레른 이 갖고 오거든. 이게 1415년 이고, 2백년 이 지난겨. 

 

Albert of Prussia (German: Albrecht von Preussen; 17 May 1490 – 20 March 1568)  

브란덴부르크 의 호헨촐레른 의 알베르트 가, 튜튼 기사단장 에 올라서 1510년 20세. 1525년 35세에 폴란드 킹에 정식 하미지를 하고 듀크 가 돼. 마르틴 루터 를 만나서 루터파가 된겨.  반대하는 카톨릭 튜튼들이 왼쪽에 따로 있는겨 단치히 주변에 오른쪽에. 이들 카톨릭은 로얄 프러시아. 라고해. 저긴 교회령들에 주변지역들이고 딱히 대표가 없어. 튜튼의 카톨릭 떨거지들 지역 이야 그냥. 이 알베르트 가 듀크 가 되고, 다음 아들이 50년을 듀크 하고 핏줄끊긴겨 이게 1618년 이고 마침 30년전쟁 터진거야. 이걸 브란덴부르크 의 호헨촐레른 이 엉겁결에 받는겨 같은 가문이라. 그리고 이사람은 다음해 바로 죽어. 이걸 받는게 아들 게오르크 빌헬름 이고, 여동생이 마리아고 스위든의 구스타부스 아돌프랑 몰래 결혼해서 스위든으로 튀어서 대단한 로망스 인듯 하다가 오히려 남편애정 목마르고 아돌프는 돌아버리고 그러다 30년전쟁에 죽고 정신병 걸려 감금당하고 이때 태어난 여자가 위대한 여왕 크리스티나 이고

 

할때, 게오르크 빌헬름 다음 3대 가 프리드리히 빌헬름.이야. 독일을 만든 사람이야 이사람이. 재위 1640-88

 

지금 브란덴부르크 스테이트. 주 이고. 저때는 경계선 넘어 오른족 인거고. Wrocław 브로츨라프 는 오대르강 상류 이고 실레시아 중심이고 여긴 보헤미아 꺼여 저 체코 경계면 지역은 원래부터. 이아래 크라크푸 부터 폴란드야. 지금 폴란드가 저쪽은 거저 먹은겨 지금. 독일과 폴란드의 경계를 Lusatia 루사티아 지역이라고 해. 아래고 고지대 위가 저지대. 저기도 모두 저게 독일꺼여야해. 저걸 오데르 강으로 오른쪽을 걍 폴란드에 준겨 저게. 브란덴부르크 가 훨 저 경계 넘어야. 이 위가 포메라니아 지역이야. 칼리닌그라드 지역이 지금 러시아 땅이고. 프로이센(프러시아)의 시작이야. 짝아진겨 저것도. 이 왼쪽 그다니스크(단치히) 에 오른쪽이 로얄 프러시아.이고. 

 

브란덴부르크 가 1618년에 프로이센 더치 를 받았는데, 저 칼리닌그라드 라는 쾨니히스부르크 가 더치 코트야. 저게  애매한겨. 왼쪽은 로얄 프러시아 인 카톨릭 이고, 저당시 폴란드 코트는 카톨릭에 쩔은 애가 된거고. 저 뚝떨어져 있는걸 관리하기 애매하고, 자기 영지인들이 같이 씨너지 로 활용하기도 애매한거야. 저때는 루사티아 에 오데르강 동쪽을 넘은 땅이지만. 

 

더하여, 프로이센 더치 는 폴란드 킹 에 하미지 하는 땅이야. 상위법도 폴란드야. 폴란드 는 신성로마 의 스테이트 가 아냐. 걍 인사만 하고 대우만 하는 별개의 애들이고. 브란덴부르크 는 신성로마 땅이야. 더치 가 하미지 하는건 인사만 하는게 아니고, 싸버린도 가장 상급자는 킹 이야. 세금도 듀크 가 바쳐야 해. 군대 발령 나면 가야 해. 

 

상위의 신성로마 와 폴란드킹 의 전혀 다른 두개의 스테이트 를 갖고 있는겨 브란덴부르크-프러시아 라는게 3대 로 내려오면서. 그냥 이름 만 유니온 을 취해서 운영되어 온거야. 답이 없는겨 저게. 그러다가 북쪽전쟁이 터진거야. 

 

이사람이 저때부터 죽을때까지 판단력 은 최고야. 세상 돌아가는거 읽는건. 그리고 준비하는건. 자기 영지들을 부국으로 만드는 것도 알아. 독일은 이사람이 만든겨 이게. 

 

In the north, the Royal Prussian nobles concluded a defensive alliance with the Electorate of Brandenburg on 12 November in the Treaty of Rinsk, permitting Brandenburgian garrisons. Danzig (Gdansk), Thorn (Torun) and Elbing (Elblag) had not participated in the treaty,[6][18] with Thorn and Elbing surrendering to Sweden. In the Treaty of Königsberg on 17 January 1656, Frederick William, Elector of Brandenburg and Duke of Prussia, took the Duchy of Prussia, formerly a Polish fief, as a fief from Charles X Gustav. The Brandenburgian garrisons in Royal Prussia were withdrawn, and when Marienburg (Malbork) surrendered in March, Danzig remained the only town not under Swedish control  

 

스위든이 서포메라니아에 1655년 7월말에 상륙해서 10월에 바르샤바 점령하고 루블린까지 내려가고 크라크푸 도 점령해. 폴란드 킹 얀2세 는 실레시아 로 피하고 여긴 합스부르크 땅이라 스위든이 감히 못들어오고. 그리고 위로 올라가는거야. 위에 로얄프러시아 는 카톨릭 이고 프러시아 더치 는 프로테스탄트 고 이전 같은 튜튼 이지만 웬수 여 웬수. 그런데 둘이 손을 잡아. 로얄프러시아 는 전체 를 대표하는 애가 없어. 각 도시에 주교령들이 모이는겨. 단치히 토룬 엘빙 은 기분나빠서 안가, 프로테스탄트 의 튜튼 배신한놈들이랑 왜 손잡아 그렇지만 오직 단치히 만 항복안하고 버티고 다들 항복해. 

 

저때. 1656년 1월 17일,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 이, 카를 10세 에 고개 숙이는거야. 자기 유니온 프로이센 더치 땅은 스위든 킹에 하미지 하는겨. 별거 없어, 어차피 폴란드 킹에서 스위든 킹으로 바뀐거거든. 그게 먼 대수야. 대체 전쟁을 왜 해 ㅋㅋㅋ. 가만생각해보니 그렇걸랑. 자기 부대를 로얄프러시아 에 주둔한걸 철수해. 저때 이미 북쪽도 다 들어온거야 스위든에. 스위든이 반년만에 폴란드 전부 를 먹은겨 이게. 단치히 만 빼고. 저짝 리비우 도 빼고. 

 

The "deluge"[19] and religious differences between the primarily Protestant Swedes and the primarily Catholic Poles,[15][19] resulting in cases of maltreatment and murder of Catholic clergy and monks as well as cases of looting of Catholic churches and monasteries, gave rise to some partisan movements in the Swedish-occupied territory. A guerilla force attacked a small Swedish garrison at Koscian in October 1655 and killed Frederick of Hesse, brother-in-law of the Swedish king. The Pauline monastery Jasna Góra in Częstochowa successfully resisted a Swedish siege throughout November 1655 to January 1656.[15] On 20 November a manifesto was issued in Opole (Oppeln) calling for public resistance and the return of John II Casimir,[18] and in December a peasant force took Nowy Sącz.[15]  

 

스위든 은 프로테스탄트고 당시 폴란드는 지기스문트3세 바싸 이후로 두자식에 완전 카톨릭 꼴통이 되고 합스부르크 와 끈끈하고 이게 카톨릭이 찐해진겨. 반발 이 심해지는겨. 게릴라 를 이뤄서 공격을 해 점령한 스위든을. 코쉬찬. 이 포즈나이 부근이야. 바로 와서 점령한. 여기서 카를의 사위를 죽여 게릴라가. 첸스토코바 가 크라크푸 아래야. 여기 수도원에서 막아서 쫓아내 스위든 군대를. 얀2세 가 실레시아 로 가서 오폴레. 가 브로츨라프 아래 오데르강 상류 인 보헤미아 땅이야. 여기서 폴란드인들 상대로 뭉치자 킹선언문을 발표하는겨. 노비 산치. 에서도 농민부대가 스위든을 내쫓았어 여긴 프로테스탄트고 스위든 애들이 약탈 무지 한 곳이야. 

 

이 스위든 애들이, 30년 전쟁 하면서 얘들이 약탈을 졸 해대는겨. 여기 와서도 저게 졸 심한거고. 왜? 독립하고 얘들이 갓 대륙 넘어와서 신난거야. 얘들은 대륙에 비해선  미개한 애들이야 정서적으로. 그냥 신난겨 저게. 17세기 에 얘들은 자기들 이름으로 처음 전쟁을 하는겨. 대륙이 예전에 전쟁하던 스타일을 저리 하는겨. 상대를 다룰 줄 몰라 점령지를, 바로 사람들이 반발을 하는거야. 저게 거의 동시적인겨 1655년 7월 말에 들어와서 그해 말에 거의 점령하고, 그와 동시에 게릴라 로 빨치산 으로 반기를 드는겨 폴란드가. 

 

Charles X Gustav, with a force of 11,000 horse, reacted by pursuing Czarniecki's force of 2,400 men, confronting and defeating him in the Battle of Gołąb in February 1656.[17] Charles X Gustav then intended to take Lwow, but his advance was halted in the Battle of Zamość, when he was nearly encircled by the growing Polish–Lithuanian armies under Sapieha and Czarniecki, and barely escaped on 5 and 6 April breaking through Sapieha's lines during the Battle of Sandomierz at the cost of his artillery and baggage. A Swedish relief force under Frederick of Baden was destroyed by Czarniecki on 7 April in the Battle of Warka.[23] In the same month, John II Casimir with the Lwów Oath proclaimed Virgin Mary queen of Poland, and promised to lift the burdens inflicted on the peasantry if he regained control.[18]  

 

폴란드 가 엉겁결에 당하고 1655년 후반기에. 바로 다 먹히고, 1656년 초에 진짜 시작하는겨. 이때 등장하는 사람이 차르니에츠키.야. 고옴프 전투. 2월. 루블린 쪽이야. 차르니에츠키 가 이건 져. 자모시치 전투. 여기가 루불린 에서 리비우 가는길이야. 여기부터 폴란드가 승기를 잡아. 산도미에르츠 전투. 다 폴란드 동남쪽이야. 카를이 포로 될 뻔도 했어. 바르카 전투 4월2일. 완벽히 스위든 이 패배해. 이 스위든이 바로 다 먹자 마자 바로 수세에 몰리는겨. 

 

이때 얀2세 카시미르 가 리비우 에 가서 하는게 리비우 서약. 맹세.야 . ㅋㅋㅋ 저때 웃긴게, 성모 마리아 를 폴란드 의 퀸 으로 선언한겨. 제발 우리 도와달라며. 그래서 폴란드 는 성모마리아 가 저때부터 퀸인겨 ㅋㅋㅋ. 프로테스탄트 로 부터 카톨릭을 수호하겠다. 그리고, 농민들이여, 세금 줄여주께, 그리고 더 착하게 니덜 대해께. 

 

 

갑자기 판이 바뀐겨 이게. 저건 무엇보다, 스위든 애들이 다스릴줄 모르는거야. 얘들이 리보니아 십자군 국가 지역만 다스려봤거든. 지기스문트 3세 바싸가 폴란드 킹하면서 스위든 킹 겸했지만 스위든은 깡촌이야 저길 왜가. 스위든 이 촌놈들이 저때 걍 신난겨. 당시 폴란드 민심도 친폴란드 스러울 리는 없거든. 

 

On 25 June 1656, Charles X Gustav signed an alliance with Brandenburg: the Treaty of Marienburg granted Greater Poland to Frederick William in return for military aid. While the Brandenburgian elector was free of Swedish vassalage in Greater Poland, he remained a Swedish vassal for the Duchy of Prussia.  

 

스위든 카를이, 브란덴부르크 와 협상을 해서 그레이터 폴란드 를 줄테니 군사지원 해달라. 이때 프리드리히 는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자격이고, 카를 이 말하는게 저걸 자기한테 하미지 도 머도 없이 공짜로 갖고 가라는겨. 바쌀이 아니고 너 저거 그냥 가져. 저기가 포젠(포즈나이) 인 왼쪽 땅이고, 브란덴부르크 바로 오른쪽이야. 이 위가 동포메라니아고. 오 땡큐야. 저거 주면 오른쪽 프러시아 더치 하고 가까와지는거거든. 이 브란덴부르크 는 말이지, 어떻게 하면 저 프러시아 더치 와의 이 물리적 거리 를 연결하느냐 가 얘들 향후 미션이야 이게. 이걸 이룬거고, 이걸로 독일을 만든겨. 

 

저때 바로 얀2세 가 바르샤바를 다시 갖고와. 

 

Already in May 1656, Alexis of Russia had declared war on Sweden, taking advantage of Charles being tied up in Poland, and Livonia, Estonia and Ingria secured only by a Livonian army of 2,200 infantry and 400 dragoons, Magnus de la Gardie's 7,000 men in Prussia, and 6,933 men dispersed in garrisons along the Eastern Baltic coast. Alexis invaded Livonia in July with 35,000 men and took Dünaburg.[25]  

 

러시아 는 이해에, 스위든 과 전쟁선언하면서, 1656년 5월. 얘들이 위로 가는거고. 위 는 드라가르디 의 아들이 산재해서 지키는겨 일만여명. 러시아는 삼만오천이야. 카를이 폴란드 다시 반기들고 러시아 전쟁선포 하고, 부랴부랴 브란덴부르크 에 포즈나이 지역인 그레이터 폴란드 주께 하면서 끌어들인겨.

 

그러면서 전쟁이 대등해져. 바르샤바 를 다시 스위든이 갖고도 와. 폴란드 가 러시아 랑 협상하면서 편해진겨 이때. 더하여 참 웃긴게, 이 폴란드 가 끌어들인 애들이 저 짝 아래 크림타타르 야. 코사크 는 러시아로 돌아섰고. 크림타타르 는 오스만에 하미지 하는겨. 이때 오스만은 술탄이 메메드4세 인데 6세 에 올라서 1642년 생이니 저때 14세야. 미친 무스타파 에 예니체리 암살당하는 오스만2세 에, 무라드4세 이브라힘 에 얘 걸랑. 얘 때 비엔나 공격 하는겨 말년에. 저긴 크림 타타르, 트랜실베니아, 왈라키아 얘들이 지들 맘대로 의사결정해서 저기 에 끼는겨 저때. 저걸 다 큰 메메드4세 가 응징하는겨 북의 전쟁 끝나고 얘들을.

 

In the Treaty of Labiau on 20 November, Charles X Gustav of Sweden granted Frederick William of Brandenburg full sovereignty in the Duchy of Prussia in return for a more active participation in the war.[28][30] In the Treaty of Radnot on 6 December, Charles X Gustav promised to accept George II Rákóczi of Transylvania as king of Poland and Grand Duke of Lithuania in return for his entrance into the war.[28] Rákóczi entered the war in January 1657  

 

조급해지는게 스위든이야. 1656년 11월. 걍 일년만에 땡친겨 얜. 프리드리히 한테, 프러시아 더치 의 사버린 전권을 줘. 이건 상위법도 세금도 독자적 이란거야. 그냥 인사 만 하면 되는겨 사버린 전권을 다 준다는건. 그러면서 군사력 더 주고 적극적으로 지원해달라. 그리고 바로 12월 초에, 트랜실베니아 의 라코치 와 협상한겨. 이 라코치 한테는, 야 너 폴란드 리투아니아 카먼웰스 킹. 을 주마. ㅋㅋㅋ. 

 

저놈 대체 왜 폴란드 간겨 저거. 라코치 가 음청나 저때, 오른쪽 왈라키아 몰도비아 애들이랑 같이 쳐 올라간겨. 이게 1657년 1월 이야. 코사크 가 완전히 바보가 된겨 저러면서. 이때 코사크는 폴란드를 못 쳐들어가, 러시아 가 폴란드 와 손잡았어. 이게 1656년 11월 이거든 이 둘은. 그러면서 코사크 는 폴란드 못들어가, 러시아 가 갑자기 폴란드와 손잡은겨. 얀2세 죽으면 폴란트 킹 러시아 가 하는걸 약속해줘.  1657년에 흐멜니츠키 가 죽은겨. 그러면서 코사크 는 친폴란드 친러시아로 내분나면서 끝난거야. 

 

저때 트랜실베니아 의 라코치 가 스위든과 함께 다시 바르샤바를 재점령한겨. 

 

Like Sweden, John II Casimir was also looking for allies to break the deadlock of the war. On 1 December 1656, he signed an alliance with Ferdinand III of Habsburg in Vienna,[19][32] essentially a declaration of Ferdinand III's intend to mediate a peace rather than provide military aid, which did not come into effect until Ferdinand's death on 2 April 1657. The treaty was however renewed and amended on 27 May by Ferdinand's successor Leopold I of Habsburg,[30][32] who agreed in Vienna to provide John II Casimir with 12,000 troops maintained at Polish expense; in return, Leopold received Kraków and Posen in pawn. Receiving the news, Frederick III of Denmark promptly declared war on Sweden, and by June the Austrian army entered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from the south,[32] immediately stabilizing the situation in southern Poland,[30] while Denmark attacked Swedish Bremen-Verden and turned to Jämtland and Västergötland in July.[32]  

 

이제 외교전이야. 서로서로 동맹맺을때, 1656년 12월에 얀2세 가 합스부르크 를 불러. 페르디난트3세 황제. 이사람은 1637년 삼십즈음에 황제가 된겨 아빠 이어서. 30년 전쟁 겪었어 후반부를. 지긋지긋한겨. 야 되도록이면 좀 말로 풀지. 그러다 죽었어 바로. 이 아들 레오폴트1세 가 젊걸랑. 바로 뛰어들어. 그러면서 크라크푸 와 포젠 을 받기로 한거야. 이 소식에 덴마크 의 프레데릭3세 가 스위든을 대상으로 전쟁선언해. 오스트리아 와 덴마크 가 동시에 바로 등장하는겨. 이게 1657년 초 야. 1655년 7월 말에 상륙해서 일년 반 지난겨 이게. 

 

덴마크 가 쳐들어가는게 브레멘-페르덴 이고, 7월에 옘틀란드 와 배스터요틀란드. 

 

얘들이 가만 보믄, 오스트리아 참전 하는것과 상관이 없어 이게. 브레멘-페르덴 이 30년전쟁으로 스위든이 갖고 온건데, 저 베저강 하류가 저기가 알짜여. 프로테스탄트 가 지배적이고, 여기가 30년전쟁 때 크리스티안4세 덴마크 킹 이 눈독들인데고 이 왼쪽이 얘들 고향 올덴부르크 야. 브레멘 과 베르덴 은 아치비숍 에 주교령 이야. 프로테스탄트 가 지배하고 여기 사제들이 이걸 덴마크 에게 준겨 자기들 프로테스탄트 보호해달라고. 로마 카톨릭이 반발하고 니덜 나가라는거고. 여긴 크리스티안4세가 들어온겨 30년전쟁 때 덴마크 의 본부여 여기가. 그리고 브레멘 도 원래 자기꺼라 하는거고, 오른쪽 페르덴 주교 를 자기 아들 프레데릭 을 앉힌겨. 그런데 이게 고대로 스위든 으로 넘어간거야. 

 

덴마크 가 저 브레멘-페르덴 이 가장 아까운겨. 더하여 30년 전쟁 후반에 빼앗긴 스칸디나비아 땅들에. 얘들이 오스트리아 핑게로 저곳들을 처들어 간거야. 엠틀란드 는 빼앗긴 노르웨이 접경 배스터요틀란드 도 스위든 본토 할란드. 

 

 

덴마크 가 들어오면서, 스위든 카를 이 이 게 골때리는거야. 

 

생각해봐, 저거 폴란드 이겨서 머해? 브란덴부르크 한테 포젠 지역 그냥주기로 하고, 영주 들은 그대로고 걍 인사만 받는거고, 라코치 한테는 폴란트 카먼웰스 킹 주기로 했고. 

 

얘가 여기서 전쟁할 이유가 없었던겨 ㅋㅋㅋ. 

 

헌데, 저 와중에 덴마크 가 들이대준거야. 얜 전혀 탈출구가 없었거든. 완전 바보짓한거야 얜. 

 

When Charles X Gustav left the Commonwealth and headed westwards for an anti-Danish counterstrike, the Swedish–Brandenburgian–Transylvanian alliance broke apart. Rákóczi of Transylvania was unable to withstand the combined Austrian and Polish–Lithuanian forces without Swedish support, and after a pursuit into Ukraine he was encircled and forced to capitulate, with the rest of the Transylvanian army defeated by the Tartars  

 

핑게가 생기면서, 갑자가 세상이 환해진겨. 맞아! 덴마크 먹어서 저 발트해변을 확 여는거야. 사운드 관세 만 면제지 아래는 꽈악 막힌겨. 스카니아 해변은 여전히 덴마크 땅이야. 1백년전에 우리사람들 욕조 피바다로 죽였던 놈들에, 백년이 웬수야 쟤들은.

 

너무너무너무 고마운겨 저게. 마침 화풀이 할때도 없었는데. 폴란드 땅 있어봤자 머해 저거. 어차피 남들 주는거. 

 

얘가 바로, 서쪽으로 확 틀어버린겨 방향을. 

 

벙찐게, 라코치 여 ㅋㅋㅋ. 저들 믿고 왔거든. 폴란드 킹에 리투아니아 대공작, 오잉 꿈같은 자리. 브란덴부르크 도 어이없어 하는거야.  저거 공수표만 날리고 튄겨. 결국 자기 혼자 감당해서 포젠 먹으란겨 머여. 

 

저게 디다보면, 저 북의 전쟁은 완벽한 코메디야 저게.

 

Brandenburg changed sides in return for Polish withdrawal of claims to Ducal Prussia, declaring Frederick William the sole sovereign in the Duchy with the treaties of Wehlau on 19 September and Bromberg on 6 November.[30][32] In addition, the aforementioned treaties secured Brandenburg the Lands of Lauenburg and Bütow at the border of Brandenburgian Pomerania, while the Bishopric of Ermeland was returned to Poland  

 

브란덴부르크 가 바로 상대를 바꿔. 폴란드 편 하겠다면서, 대신, 프러시아 더치 에 대한 모든 사버린을 요구하는겨. 인사만 하겠다는거야 독립인겨 이건. 라우엔부르크 와 뷔투프 는 포메라니아 오른쪽 땅이야, 로얄 프러시아 왼쪽이야. 여기도 브란덴부르크 야. 여기 안전보장. 대신 로얄프러시아 의 에르멜란드 주교령 은 폴란드 에 주고. 이건 이전의 영역 정리한거야. 

 

덴마크 는 이기회에 30년전쟁때 스위든에 뺏긴땅 갖고 오겠다는겨. 애들이 개념이 없는겨 이게. 아무런 준비도 안하고. 저때 스위든 애들은 2년 동안 저기서 닳고 닳은 애들이야. 다 자기들 꺼였다가 다 날린 거거든. 이 기분으로 열받아서 서쪽으로 가는겨. 카를 은 그야말로 개그지 되서 저기 간겨. 얘가 얼음바다 건넌게, 그래서, 절박한 심정으로 저걸 건넌거야 ㅋㅋㅋ. 그런데 저게 로또가 터진거고. 반면 덴마크 애들은 상상도 못한거고 저길 올거란건. 

 

The attack of Frederick III of Denmark in June 1657, aimed at regaining the territories lost in 1645, provided an opportunity for Charles X Gustav to abandon the unfortunate Polish–Lithuanian battlefields. With 9,950 horse and 2,800 foot, he marched through Pomerania and Mecklenburg. In Holstein, the Swedish force was split with Carl Gustaf Wrangel heading west to clear Bremen-Verden and Charles X Gustav heading north to clear Jutland.[32] When these aims were achieved, Charles X Gustav in September moved to the Swedish port of Wismar and ordered his navy into the inconclusive Battle of Møn.[33]

Meanwhile, Polish forces led by general Stefan Czarniecki ravaged southern Swedish Pomerania, and destroyed and plundered Pasewalk, Gartz (Oder) and Penkun.[34] The Habsburg and Brandenburg allies however were reluctant to join Czarniecki, and against John II Casimir's wish decided against taking the war to the Holy Roman Empire fearing the start of a new Thirty Years' War.[33]  

 

1657년 6월에 덴마크 가 브레멘-페르덴 을 쳐들어가. 북의 전쟁 시작 2년 만에. 카를이 서향하고, 얘들이 전혀 전쟁 생각이 다른겨 이게. 덴마크 애들은 어? 어? 쟤들이 왜 저짝으로 안가고 딴데 가냐? 전쟁도 상대 가 있어야 하는거거든. 

 

전쟁이란게 웃긴건 말이야. 서로 전쟁 하겠다는 의지 가 맞아서 그 장소 에서 하는겨 이게 전쟁이고 전투야. 

 

나폴레옹 의 멋진 말이 머냐면, 나폴레옹이 잘 나갈때는, 자기가 전투의 장소 를 정했다고 하거든. 아 난 저말이 찐하던데. 자기가 정하는 곳에 상대가 알고서 오는거야. 헌데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때부터 꼬인게, 아, 내가 전투장소 를 못정하고 상대의 장소 에서 전투할 수 밖에 없군. 이게 나폴레옹 몰락의 시작이야. 

 

쟤들은 서로 저게 어긋난겨. 야 여기서 하자, 우린 딴데 갈꺼야. 어디 가는데? 갈켜줘! 에이 설마. ㅋㅋㅋ.

 

폴란드의 차르니에츠키 가 오히려 쫓아오는겨. 서포메라니아 를 불지르고 약탈해. 합스부르크 와 브란덴부르크 는 손잡았지만 저런 짓에는 가담하기 싫은거야. 즉 얘들은 문명화가 된겨 이게. 30년 전쟁 을 겪었어 이 가장 미개한 라인강 동쪽애들이. 이때 얘들은 철이든거야. 폴란드는 몰라 스위든 도 몰라. 30년 전쟁 이 비참했던건 보헤미아 스위든 애들이 전쟁해서 그래. 용병도 바바리안들이 온거고. 둘은 알아 이걸. 그만하자 우린. 

 

Frederick III was compelled to surrender and signed the disadvantageous Treaty of Roskilde on 26 February 1658.  

 

카를 은  그러거나 말거나 이 미친애가 저트란드 지나서 저 얼음바다를 건넌겨 ㅋㅋㅋ. 그리고 맺은게 로스킬러 조약 이야. 로크킬러 가 코펜하겐 서쪽이야. 이러면서, 스카니아 해변이 펑 뚫린겨 스위든이. 해변이 다 뚫린겨. 이게 1658년 2월 말이야. 뜬굼없이 2년 반만에 이짓을 하고 본토 땅을 얻은겨. 골때리는 코메디야. 

 

그런데 아진 끝나는 1660년 되려면 2년 남았잖아. 

 

 He was further pressed militarily when an Austro-Polish army laid siege to Thorn in July 1658, and diplomatically when he was urged by France to settle.[33] France was unwilling to intervene militarily, and Sweden could not afford to violate the Peace of Westphalia by attacking the Habsburg and Brandenburgian possessions in the Holy Roman Empire, which would likely have driven several Germans into the anti-Swedish alliance. Thus, Charles X Gustav opted to instead attack Denmark again  

 

The naval Battle of the Sound took place on 8 November 1658 (29 October O.S.)  

 

카를이 폴란드 에서 2년 걸쳐 뺏은 땅도 다 날라가고, 정리를 해야 해 이걸 이 상황을. 프랑스 는 바빠 스페인 상대하느라, 얘들은 30년 전쟁이후 한번도 안쉬었어. 그렇다고 스위든이 저 합스부르크 에 브란덴부르크 땅을 칠 수는 없어. 폴란드 땅 쳐 들어간거지 신성로마 처들어간게 아냐. 카를을 신성로마 땅을 쳐들어 갈 순 없어. 게르만들을 다 이길 생각 이 없는한.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어 먼가. 이런게 애매한겨. 로스킬러 조약 맺은 덴마크 를 다시 쳐들어가는겨 ㅋㅋㅋ. 머 말로는 왜 조약 이행 안하냐 어쩌고 저쩌고 지만 예전 독립전에 당한거에  더 갖고오자 분풀이 하면서 엄한 덴마크 치러 가는겨. 이 상황을 못 봐주겠는게 옆의 네덜란드야. 사운드 전투 를 저해 11월에 하는겨. 

 

야 아무리 그래도 덴마크 애들한테 너무한거 아이가?. ㅋㅋㅋ 드비트 가 강력해졌거든. 스위든이 저기서 깨갱하는겨. 이때 그 성질 깐깐한, 부하들에게 팽당한 드위트 가 죽은거고. 

 

네덜란드 가 저 전쟁에 개입하면서, 스위든 네덜란드 가 북미 에서 싸우는겨 이게. 이제부터 본토에서 전쟁이면, 식민지 에서도 전쟁하는게 명분이 생기는거거든. 

 

크리스티나 때 스위든 은 저 델러웨어 강 따라서 뉴스위든 을 만들고. 네덜란드 는 뉴욕 허드슨 강 따라 길게 뉴네덜란드를 만든겨. 요때 뉴네덜란드 가 뉴스위든 을 먹는거야. 이 전체 뉴네덜란드 가 3차 앵글로-네덜란드 전쟁 으로 이건 브리튼 이 갖고 가는겨. 

 

마무리가 주로 스위든의 포메라니아 지역 에서 공방전이 벌어져. 이 발트해변 지역에서. 그러다가 마무리 하는거고. 카를은 그야말로 뜬굼없이 스카니아를 저래서 갖고 오게 된거야. 

 

폴란드는 그리고 이제 오른쪽 러시아에 뺏긴 땅 다시 복구하는거고, 우크라이나 강 까지는 갖고 오는겨. 스몰렌스크 는 주고. 

 

오스만이 이후에 트랜실베니아 와 타타르 를 정리하는겨 열받아서. 지들 멋대로 조약을 맺고 동맹맺아서 전쟁한거거든. 저 메메드4세가 다 컸어. 트렌실베니아 는 아예 지워. 이걸 부담느끼는게 오스트리아 야. 이게 오스트리아-투르크 전쟁 1663-64야. 투르크 가 오히려 왼쪽으로 더 들어가. 여길 교두보로 20년 지나서 메메드4세 가 비엔나 쳐들어가면서 대투르크 전쟁이 시작되는겨. 실패해. 사령관이자 총리를 목졸라 죽여. 책임물어서. 

 

Polish–Ottoman War (1672–1676) was a conflict between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and the Ottoman Empire, as a precursor of the Great Turkish War. It ended in 1676 with the Treaty of Żurawno and the Commonwealth ceding control of most of its Ukraine territories to the Empire.  

 

크림타타르 도 딴놈을 앉히는겨. 폴란드 편든놈 내리고. 그리고 유리 흐멜니츠키 내세워서 라이트뱅크 인 강서쪽을 그냥 먹어. 그러면서 오른쪽 러시아 랑 전쟁하고 비기고. 그러다 폴란드 가 정비해서 다시 쳐내려오는겨. 이때 킹이 갈린상태고. 이걸 오스만이 이겨서 걍 눌러앉은겨 이때, 강 서쪽에. 

 

In 1660 John II Casimir was forced to renounce his claim to the Swedish throne and acknowledge Swedish sovereignty over Livonia and the city of Riga in modern-day Latvia.

John Casimir had married his brother's widow, Marie Louise Gonzaga (Polish: Maria Ludwika), who was a major support to the King. Marie Louise suddenly died in 1667 and this may have caused the monarch's early political decline.  

 

얀2세 카시미르 킹.은 이제서야 스위든 킹 자리 포기 선언을 해. 리보니아 와 리가 에 대한 스위든의 권리를 정식 인정해. 지긋지긋한 150년 앙숙의 전쟁이 끝난겨. 그리고 애들은 지워지는거고 곧. 

 

예전 얀 자모이스키 가 하려했던 세임 개혁 을 하려는겨 이사람이. 아부지가 반대했던. 한놈이 거부 하면 만사가 안되는 의회. 킹 살아있을때 후계자 정하는 법을 만들려다 이것도 거부당해. 마누라가 죽어. 킹으로서 할 수 있는게 없는겨. 걍 내려오고 프랑스 가서 죽어. 비스니에비오츠키 가문이 킹하면서 이제 막막 갈리다 작센이 갖다가 망하는거고. 

 

 

In 1672, Frederick William joined the Franco-Dutch War as an ally of the Dutch Republic, led by his nephew William of Orange but made peace with France in the June 1673 Treaty of Vossem. Although he rejoined the anti-French alliance in 1674, this left him diplomatically isolated; despite conquering much of Swedish Pomerania during the Scanian War, he was obliged to return these to Sweden in the 1679 Treaty of Saint-Germain-en-Laye.  

 

프리드리히 빌헬름 이 가장 알짜야. 저때 프러시아 더치 에서 완전한 사버린을 갖은겨. 네덜란드 에 영국 프랑스 처들어 올때는 네덜란드 편을 들어. 마누라가 낫사우 가문여자야. 1672 람프야르 겪지만 네덜란드가 이후 저걸 버티는겨. 스카니아 전쟁으로 스위든 상대의 전쟁에서 덴마크 편들어서 이겨. 스위든 포메라니아 땅의 오른쪽 오데르강 넘어의 것을 갖고 와.

 

이 사람이, 대륙에선 소위 자기 영지에서 상비군을 만든겨. 그리고 미션 타입 전술. 현장의 리더 애들에게, 애매한 목표치 안주고, 시키는 데로 움직이게 안하고, 명확한 임무를 부여해서 전권을 주는겨 중대장 소대장 급 까지. 이게 나중 유럽애들 군전술이 돼. 더하여, 낭트칙령으로 쫓겨난 위그노들을 다 받아. 왈로니아 위그노 는 장인들의 모범이야. 더하여 유대인도 카톨릭도 대 환영. 자기는 칼뱅이지만. 종교의 자유 . 이들이 여 와서 국부 를 만드는겨. 왜 저래야 해? 자기 군대 유지하기 위해선 상공업 을 무조건 키워야해. 세금 걷어야 하는데 바닥에서 돈을 많이 벌어야 세금을 걷거든. 네덜란드 애들을 그대로 배운겨 이사람이. 

 

프러시아 더치 까지 강길 을 만들어. 최대한 단축코스로 강과 길로 저기 오고갈수 있도록. 이걸 나중에 운하로 뚫는겨 이백년 지나서. 

 

독일을 이사람이 만든겨. 이후 다들 그레이트 여 이 프로이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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