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어던 워. 이걸 일본이 북방전쟁. 해서 아시아는 북방전쟁 으로 표현하는거고. 이와 관련된 전쟁이 7개야. 스위든 구스타브 바싸 가 1523년 에 칼마르 유니온 에서 나오고 독립해서. 러시아-스위든 전쟁, 다음 리보니안 전쟁 초기에 죽어. 러시아 이반4세 가 아들뻘이고. 스위든 러시아 는 이 둘 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전쟁하는거고. 리보니아 십자군 국가들 해체 되면서 이걸 스위든 이 갖고 오고 러시아가 다시 갖고 오려는거고 결국 러시아 가 다 갖고 온거고 폴란드도 지우면서. 

 

7개의 북의 전쟁들 중에, 직전에 본 러시아-폴란드 전쟁을 여기 에 러시아 사가들 일부가 표현하는건데. 의미없고. 나머지 6개가 북의 전쟁이고, 북의 전쟁이란 스위든 이란 나라의 전쟁이야. 

 

북의 7년 전쟁은 구스타브 바싸의 두아들 에릭 14세 와 요한3세 인거고, 에릭이 정신병 걸려서 감금하고 동생 요한이 잇는거고. 덴마크 가 스위든을 계속 갖고 오려는거고. 

 

그리고 러시아-폴란드 1654-67. 은 러시아 몇몇 애들이 북의 전쟁 하는거고 빼야지 이건.

 

2차 북의 전쟁 이 동시에 터진건데 1655-60. 더하여 다음 스카니안 전쟁 1674-79. 2차 북의 전쟁으로 스위든이 스카니아 해변을 덴마크로 부터 갖고 오면서 발트해가 전부 열린겨. 덴마크 가 이걸 갖고 오려는게 스카니아 전쟁이고. 이어 1700-21 대북방전쟁. 스위든 과 러시아 가 대격돌하는겨. 러시아 표트르 대제 가 이 전쟁으로 이반4세의 한을 푼거야. 잉그리아 와 리보니아 를 전부 갖고 오는겨 그러면서 러시아 가 유럽의 스타로 등장하고 스위든 이 지는거야. 

 

II wojna północna toczyła się w latach 1655–1660 폴란드 는, 보이나 푸노츠나. 북쪽 전쟁 2차. 

Северная война 1655—1660 러시아 는 여긴 상관없고 얘들 서술은, 세베르나 보이나. 북쪽 전쟁 하고 기간쓰고.

 

스위든 은 일차이차 이딴 표기 안하고, 앞에 그시대 킹을 쓰고. 카를 10세 쿠스타브 의 폴란드 전쟁. 러시아 전쟁 을 따로 따로 보는겨. 

 

구스타브 로 썼지만 이건 구스타프. 야. 스위든 도 독일 도 . Geats 기츠들 예츠들 하는 것의 스타프. 스태프. 중심 짝대기란겨. 이게 모두 일본애들 발음에서 살짝 비튼거고 아  이제 이런얘기 그만하고. 이 조선들의 나라. 

 

이땅에 인문학자 가 없어. 참 비참한거야. 별 것들이  대단한척 잘난척. 소설가 가 없어 이땅에. 시인 이 없어 ㅋㅋㅋ. 별 개거지 글들을 추앙해대는거야. 비참한 땅이다 여기가. 세계 모든 리터러쳐 중에 가장~ 후져. 

.

독일도 2차. 영어도 2차. 정작 당사자 는 그런 분류를 안해. 

 

저건, 스위든 의 상대가, 폴란드 였다가 덴마크 로 가는거거든. 들어가서 스위든이 러시아 랑 리보니아 에서 전쟁하는건 따로 스위든-러시아 전쟁 으로 분류하는거고. 폴란드 는 이전 지기스문트 3세 바싸가 삼촌 카를9세랑 싸우면서 계속 스위든이랑 전쟁이었고. 폴란드 입장에서 2차 전쟁의 이전 1차 를 무엇으로 내세울 수가 없어 이게. 

 

1차 북의 전쟁 은 저 입장에서는, 스위든-덴마크 의 7년 전쟁 이후 의 2차 로 보는게 적당한거지.

.

The Second Northern War (1655–60, also First or Little Northern War) was fought between Sweden and its adversaries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1655–60), the Moscow Tsardom (1656–58), Brandenburg-Prussia (1657–60), the Habsburg Monarchy (1657–60) and Denmark–Norway (1657–58 and 1658–60). The Dutch Republic often intervened against Sweden in an informal trade war but was not a recognized part of the Polish–Danish alliance. 

 

서기 1700년에 표트르 의 러시아 와의 그레이트 의 전초전으로, 1차 또는 소북방 전쟁.이라고도 하는겨. 스위든이 러시아 의 폴란드 침입으로 놀래서 폴란드 쳐들어가고, 이어 러시아 랑 전쟁하고, 합스부르크 가 올라오는 거고, 덴마크 도 들어갈 수 밖에 없고, 여기에 네덜란드 가 끼는겨 주제도 모르고 드비트 가. 

 

저게 모두 말이지, 코사크 반란인겨 이 시작이. ㅋㅋㅋ. 폴란드 가 코사크 를 제대로 관리못하다가 결정적으로 보흐단 흐멜니츠키 가 1648년에 등장하면서, 러시아 가 쳐들어 오면서 저런 엄청난 사단이 일어난거야. 

 

카를10세 도 예상을 못했을겨 저딴 일이 벌어질지. 얜 덴마크 를 갈 생각을 애초 에 마스터 플랜으로 잡은게 아녀 이게. 어 어 어 어 하다 보니 덴마크 로 방향 틀은거고 얼음바다 건넌거고 그러면서 스카니아 갖고 와서 발트해가 열린겨. 이때 스위든이 순간순간의 의사결정력 판단력이 좋았던거지 사후 평가를 해보면. 

 

유럽에서 전쟁이란건, 저게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겨. 한곳 에서 시작하면, 주변국 에서 어떻게 나올지 알 수 가없어. 저런걸 모두 마스터플랜을 잡고서 저런 전쟁이 벌어지는게 아냐. 이탈리안 전쟁 1494-1559 가 저렇게 전개 될 지 누가 알어. 잉글랜드 가 끼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스위든 에 네덜란드 가 저기의 변수로 등장하고, 러시아 가 등장하는겨 이 유럽쪽에. 러시아 란 건 비잔틴 애들과 전쟁하던 애들에 끽해야 폴란드 리투아니아 의 상대였을 뿐이야. 폴란드 가 무너지면서 러시아 가 서쪽과 부딪히고, 반면에 저 섬의 잉글랜드가 동쪽으로 깊숙히 들어가는겨. 스위든은 30년 전쟁부터 대륙에 간섭을 해대고. 

 

얘들이 전쟁하면서, 시나리오 플래닝을  짜야해. 즉각즉각 대응 해야 하고. 저 얽히고 섥힌 관계. 저걸 조선사 에 익숙한 애들은, 절대 이해할 수가 없는겨 저런 이야길. 이 조선 애들이 하물며 지들이 신주단지 떠받드는 중국 정사 24사도 번역이 된게 없어요 이게. 삼국지란 소설은 읽어도, 야 대체 저따위 삼국지 가 머라고 역사팔이 하는 들은 저걸 팔아대는겨 또옥 같은 얘기를, 돈벌이 할려고. 이들이 한자 도 모르는 들이 수두룩 한대다가, 번역 자체 를 할 힘도 없거든, 똑같은 거 한글로 된거 보고 ㅋㅋㅋ 참 세상에 이렇게 한심하고 저지능의 미개한 나라가 없어. 저 진수 의 삼국지 정사도 저게 아마 일이십년 전에야 번역이 된걸거야. 반고 한서 도 언제 번역이 되었냐. 지들이 하나님 떠받드는 중국사 도 몰라 이들은. 중국사 는  단순한겨 저게. 쉬워 중국사는. 반면에 웃기게도, 어려운게 ㅋㅋㅋ 일본사야 ㅋㅋㅋ. 어려운건 제쳐두고,  쉬운거만 계속 주구장창 돈벌이 하며 거 볼거 없는거 그게 대단한양. 이땅 애들이 미개해질 수 밖에 없어. 삼국지 란건, 유럽애들 이야기 의 은하계 크기 에서 니 똥 옆에 붙은 미세먼지 크기란다 그게.

 

저 삼국지 조차 내 맘에 드는 번역 설명 애 단 하나 못봤다. 이전 삼국지 몇개 풀려다가 도저히 구찮아서 더하여 의미없어서 말았다.

 

The Torstenson warHannibal controversy or Hannibal War (NorwegianHannibalsfeiden) was a short period of conflict between Sweden and Denmark–Norway from 1643 to 1645 towards the end of the Thirty Years' War. The names refer to Swedish general Lennart Torstenson and Norwegian governor-general Hannibal Sehested.  

 

30년 전쟁 때, 덴마크 가 개입했다가 빠지고, 바로 스위든이 다음해에 대륙에 들어가. 그러면서 스위든 입장에선 전쟁 막판에 이 분위기에서 덴마크 를 손보는겨. 칼마르에서 독립할때 스톡홀롬 피의 욕조 라는 블러드배쓰.에서 당하고 전쟁하고 나오고 바싸의 두아들도 전쟁에 잠시 쉬었걸랑. 일백년 간의 이게 해결이 안되었어. 더하여 여전히 발트해에 갇혔어. 스위든은 발트해에서 나오는게 가장 급선무야. 저 분위기에서 스위든 이, 어차피 30년 전쟁은 이미 끝물타고 조약 협상중이야. 이 부대를 북쪽으로 트는겨. 

 

Swedish Field Marshal Lennart Torstensson was ordered to march against Denmark. Proceeding from Moravia, his forces entered Danish territory in Holstein on 12 December and by the end of January 1644 the Jutland peninsula was in his possession. In February 1644, the Swedish General Gustav Horn with an army of 11,000 men occupied much of the Danish provinces of Halland and Scania, except for the fortress town of Malmø

 

이때는 아돌푸스 가 죽고, 크리스티아나 가 퀸 할때고, 이때 권력은 크리스티아나 를 어릴때 부터 캐어했던 Axel Oxenstierna 악셀 옥센티아나(옥센흐아나) 할배여. 모라비아 에 있던 스위든 군대를 북쪽으로 트는겨 덴마크로. 홀슈타인 에 들어가. 이 위가 슐레스비히 여. 저트랜드, 윌란 반도 를 갖고와. 할란드 와 스카니아 를 점령해. 이게 1643-45 의 토르스텐손 전쟁. 한나발 전쟁이야. 스위든 의 레나르트 토르스텐손 과 덴마크 의 노르웨이 거버너 한니발 세헤스테(드). 

 

 

Jämtland, Härjedalen, Idre, Särna, Gotland, Saaremaa and Halland 

 

얨란드, 하리예달렌. 이드레. 사르나. 여긴 스위든 왼쪽 노르웨이 중간 지역 접경이야 내륙의. 여길 스위든이 갖고와. 

 

곳란드. 라는 고트족 시작 섬 그 아래 붙은 저 섬조차 덴마크 섬인겨 저때까지. 바로 칼마르 가 접한. 이걸 1645 년 에야 갖고 온겨. 사레마 는 에스토니아 왼쪽 제법 큰섬이야. 할란드 를 갖고 온겨. 여기가 사운드 해협 이야. 유일하게 이때 해변을 이 왼쪽을 뚫은겨 저 전쟁으로. 그러면서 사운드 해협 관세 를 면세 받은거야 스위든이. 사실상으로. 저때 이미 스위든 은 발트해협이 뚫린겨. 크리스티나 때에. 

 

덴마크 는 부들부들 할테고, 스위든 은 독립하고 일백년 만에 야 발트해가 서남쪽이 열린겨. 이 30년 전쟁 에 끼들어가서.

 

덴마크 가 저게 가장 큰거여. 얘들은 특히나 스위든 상대로 저 사운드 관세 로 계속 처먹고 산겨 얘들이. 이 덴마크 란 나라가 참 후져 이게. 편하게 저기서 통행세 만 걷은겨. 이게 중세 때 쟤들 가장 큰 수입이었어. 스위든 이 여기서 뚝 떨어진거고 덴마크 는 이때부터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서 저거 갖고 와야해. 그러다가 스위든이 폴란드를 쳐들어간거야.

 

아주 골때리는 전쟁이 이 전쟁이야. 1655-60 북방전쟁. 

 

 In 1654, when Charles X Gustav succeeded his cousin Christina on the Swedish throne, Russian forces were advancing into the unprotected Commonwealth, and by focusing on the northeast these drew close to the Swedish sphere of interest at the Baltic coast 

 

크리스티나 가 스스로 내려와서 킹자리를 사촌에게 주고. 서기 1654년. 이 해에 러시아 가 폴란드를 쳐들어간겨. 카를10세가 오르자 마자 이미 분위기가 긴장타는거고. 러시아 는 분명히 리보니아 에 잉그리아 를 갖아 가려 할거야. 

 

Sweden, at that time an expansionist empire with an army designed to be maintained by the revenues of occupied territory, was conscious that a direct attack on her main adversary Russia could well result in a Dano-Polish–Russian alliance. Also, Sweden was prevented from forming a Swedish–Polish alliance by the refusal of John II Casimir to drop his claims to the Swedish crown and the unwillingness of the Polish–Lithuanian nobility to make the territorial and political concessions an alliance with Sweden would eventually cost,[11][12] final negotiations in Lübeck during February 1655 ended without a result.[12] Thus, Sweden opted for a preemptive attack on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to occupy its yet available territories before the Russians  

 

스위든은 카를10세 가 정복된 영토의 수입 으로 부늘리기 를 계획한겨 여전히. 기존 리보니아 잉그리아 에 더하여 30년전쟁 때 받은 브레멘, 서포메라니아. 에 덴마크 로 부터 받은 땅들을 유지 해야해. 아직 영토늘리기 는 아닌겨 이전에 확보한 땅 유지하는게 가장 급해. 그런데 러시아 가 폴란드로 들어오고, 일년만에 동쪽을 다 먹은겨 러시아가. 

 

스위든이 러시아를 침략하면, 덴마크-폴란드-러시아 가 연합 하는 결과 가 되는걸 이미 파악해. 그래서 폴란드 를 꼬시려 했던거야. 얀2세 카시미르 랑 협상을 하는데, 지기스문트 3세 바싸 아들 아니랄까봐, 웃기는 소리 하지말고 스위든 킹 자리 내놓으라는겨 ㅋㅋㅋ. 폴란드 귀족애들도 똑같이 주장하는거고. 뤼벡의 마지막 협상 1655년 이 결별되다. 하튼 이 폴란드 가 망쪼가 들어도 단단히 든거야. 저때 이미 러시아 가 동쪽 변경에 반 가까이 다 먹을때여. 오히려 스위든이, 러시아 가 더 먹기전에 폴란드-리투아니아 땅을 먹을 수 있는 한 먹기로 결정하다 ㅋㅋㅋ.

 

George II Rákóczi (30 January 1621 – 7 June 1660), was a Hungarian nobleman, Prince of Transylvania (1648-1660), the eldest son of George I and Zsuzsanna Lorántffy.[1]  

 

이때 스위든 이 꺼낸 패 가, 야 기가막혀, 트랜실베니아 야. 조지2세 라코치. 아빠 가 조지1세 라코치.이고 30년 전쟁에 보헤미아 프로테스탄트에 가장 먼저 지원한 이십대 인간이고 이때 프린스가 베뜰렌 이고 이 베뜰렌 은 오스만이 지원해서 바토리 내몬거고. 바토리 이전이 조지1세 라코치 의 아빠 지기스문트 라코치 이고 이사람때 헝가리어 카롤리 성경 번역했고 이전이 보츠카이 이고. 이 트랜실베니아 가 인물이 짱짱한겨. 조지2세 손자가 프란시스2세 라코치 야. 합스부르크 에 대규모 봉기 한 헝가리 영웅 이고. 헝가리 의 이전 국가 라코치 행진곡 의 라코치 가 이 조지2세 의 손자여. 

 

폴란드의 코스트카 나피에르스키 봉기. 1651년의 이 트랜실베니아 바로 북쪽 기슭에는 손 잡았지만 저때는 참전을 안해. 너무 미미한 농민봉기 란걸 안겨. 오른쪽 코사크 흐멜니츠키 는 너무 멀고. 저기 가다간 자기가 독박쓰는겨. 더하여 얘들은 오스만 이 배후야. 오스만의 관심은 왼쪽 합스부르크 지 저 북쪽이 아냐. 

 

On ascending the throne (October 1648), his first thought was to realize his father's ambitions in Poland.[1] With this object in view, he allied himself, in the beginning of 1649, with the Cossack hetman Bohdan Khmelnytsky, and the hospodars of Moldavia and Wallachia, (Vasile Lupu and Matei Basarab),[1] but took no action for several years.  

 

조지2세 가 1648년 에 올랐는데, 아빠 조지1세 가 베뜰렌 다음에 여기 프린스로 앉았지만 30년 전쟁 막판에 아무 힘이 없어. 저때 또 하필 지기스문트 3세 바싸 가 트랜실베니아 내전에 껴서 코사크 를 저기다 풀었걸랑. 돈도 안주고, 니덜 월급은 저가서 약탈하라고. 폴란드 에 적개심이  강해진겨 저때. 그리곤 죽었어 조지1세가. 아들이 저 폴란드 에 앙심을 이어 간거야. 이때 흐멜니츠키 와 손 잡아. 더하여 몰도바 와 왈라키아 의 호스포다르. 들과 도 동맹해. 호스포다르 는 저때 생긴 쟤들 짱들 타이틀 이고. 보이보드 보야르 이런거고. 몰도바 왈라키아 는 오스만에 하미지 하다가 들이대던 애들이고 이게 만만치 않은이들이야. 그렇지만 이삼년간 액션은 없었다. 흐멜니츠키 하나 만 보고 먼가 하기엔 꺼림직 한겨. 더하여 위에 나피에르스키 가 반란해도 너무 저게 세력이 안돼. 

 

On 6 December 1656, by the Treaty of Radnot, he also allied with King Charles X Gustav of Sweden against King John II Casimir of Poland. Rákóczi was to seize the provinces of Lesser Poland and Mazovia, together with rich salt deposits in Wieliczka and Bochnia. In 1657, he invaded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in the third part of the Second Northern War (1655–1660), also known as The Deluge.  

 

스위든 이 여기랑 접촉을 하는겨. 1656년 12월에 라드노트 조약. 여기가 지금 로마니아 땅이고 카르파티안 산맥 골뱅이 안쪽 깊숙한 곳이고  여까지 스위든이 가서 맺은겨. 그제서야 트랜실베니아 가 움직여. 이 사람은 바로 위 레써폴란드 에, 마조비아 란 곳이 바르샤바 에 다음 우치. 여기가 지금 제일 제이 도시야. 저기가 거대한 평원이거든. 저길 먹으려는겨, 아주 작정을 한거야 조지2세 라코치.가. 즉 저때 폴란드 델류지 때에, 바로 아래 의 이 트랜실베니아 가 거대한 삼분의 일 이야. 얘들도 또한 스위든 다음으로 재차 바르샤바 까지 쳐올라간겨. 스위든 의 가장 큰 지원군이야. 

 

Swedish forces entered Poland–Lithuania from Swedish Pomerania in the west, and Livonia in the north.[12][14] The division on the western flank consisted of 13,650 men and 72 artillery pieces commanded by Arvid Wittenberg who entered Poland on 21 July 1655 and another 12,700[14] to 15,000[12] commanded by Charles X Gustav who followed in August, while the division on the northern flank consisted of 7,200 men commanded by Magnus De la Gardie who had already seized Dünaburg with them on 12 July.

 

스위든 이, 폴란드 애들과 협상 결렬 되고, 아 그럼 러시아 가 더 쳐먹기전에 우리가 가서 먹자우. 폴란드 애들이 대체 멀 믿고 저러냐고. 합스부르크 를 믿는겨 얘들이. 자기들 스스로 해결 할 생각을 안하는겨. 합스부르크 도 30년 전쟁하고 피곤해. 스위든이 두 쪽으로 가는거야. 한쪽은 30년 전쟁때 먹은 서포메라니아. 다른 한쪽은 리보니아. 

 

포메라니아 에 비텐베르크 가 72대포 랑 1만4천명. 1655년 7월. 이 때 가 딱 러시아 가 출정해서 만 1년 된 거거든. 지금 폴란드 동쪽 국경은 다 먹은겨 이미. 또다른 부대 로 다음달에 카를10세가 직접 뒤이어 가고. 리보니아 는 드라가르디.가 저기 영주여. 폴란드 지기스문트 3세 바싸가 러시아 들어갈때 이걸 막고 스위든의 저 드라가르디 가 원정해서 러시아 를 도와주듯 하며 영토 확장하걸랑. 드라가르디 원정 은 야콥 이고, 저 마그누스 는 야콥 의 아들 이야. 이쪽으로 러시아 가 급히 트는거야, 러시아 는 폴란드 랑 협정 맺고. 스위든 이 이미 예견한거고. 

 

On the western front, Wittenberg was opposed by a Polish levy of 13,000 and an additional 1,400 peasant infantry. Aware of the military superiority of the well-trained Swedish army, the nobles of Greater Poland surrendered to Wittenberg on 25 July in Ujście after the Battle of Ujście, and then pledged loyalty to the Swedish king. Wittenberg established a garrison in Poznań (Posen).[14]

On the northern front, Prince Janusz Radziwiłł signed the Treaty of Kėdainiai with Sweden on 17 August 1655, placing the Grand Duchy of Lithuania under Swedish protection.  

 

7월 21일에 서포메라니아 내려서, 4일 만에 우시체 에서 폴란드 귀족들이 항복해. 폴란드 서쪽이고, 이 아래가 포젠 Posen. 포즈나이 야. 이 포즈나이 가 나중 포젠 공국 이고 바르샤바 공국 일때 폴란드 땅 삼분의 일 의 더치여. 

 

야누스 라지비우. 가 리투아니아 그랜드 더치 의 프린스여. 즉 카먼웰쓰 에서 리투아니아 의 대표인겨. 이사람이 8월 17일 에 스위든 으로 들어가는 싸인을 한거야. 즉 이때 리투아니아 는 스위든 것이 된겨. 헌데 이미 저땐 러시아 한테 모~든 땅을 뺏긴 상황이야 리투아니아 그랜드 더치는. 스위든이 찾아줄테니 니덜 앞으론 스위든에 들어와. 

 

On 24 August, Charles X Gustav joined Wittenberg's forces. The Polish king John II Casimir left Warsaw the same month to confront the Swedish army in the west, but after some skirmishes with the Swedish vanguard retreated southwards to Kraków.[14] On 8 September Charles X Gustav occupied Warsaw, then turned south to confront the retreating Polish king. The kings met at the Battle of Żarnów on 16 September, which like the next encounter at the Battle of Wojnicz on 3 October was a victory for Sweden. John II Casimir was exiled to Silesia while Kraków surrendered to Charles X Gustav on 19 October  

 

카를10세 와 비텐베르크 가 8월24일에 합세해서, 얀2세 폴란드킹은 바르샤바를 떠나고, 죽죽 내려오는겨 스위든은. 바르샤바 를 점령하고. 자르노프. 보이니츠. 가 바르샤바 아래에 바로 지금 슬로베키아 접경이야. 보이니츠 아래가 나피에르스키 가 농민봉기 했던 곳이고. 이게 9월 10월 이야. 얀2세 는 실레시아 로 간거고. 여긴 지금 폴란드 지만, 오데르강 상류의 이 지역은 보헤미아 땅이고 합스부르크 지역인겨. 스위든 이 저긴 못가. 합스부르크 와 부딪히면 안되니까. 

 

On 20 October, a second treaty was ratified at Kėdainiai in the north. The Union of Kėdainiai unified Lithuania with Sweden, with Radziwiłł recognizing Charles X Gustav as Grand Duke of Lithuania.[14] Over the following days, most of the Polish army surrendered to Sweden: on 26 October Koniecpolski surrendered with 5,385 men near Kraków, on 28 October Field Crown Hetman Stanisław Lanckoroński and Great Crown Hetman Stanisław "Rewera" Potocki surrendered with 10,000 men, and on 31 October the levy of Mazovia surrendered after the Battle of Nowy Dwór.[16]  

 

10월 20일 에 케다니에 유이온. 폴란드 가운데이고. 리투아니아 그랜드 듀크 로 인정 받는겨. 라지비우 가 정식으로 인정한거고. 스위든 은 이전 폴란드 카먼웰쓰 랑 리가만 을 사이로 다투었걸랑. 리보니아 에서 내려오면서 여길 다 갖고 온겨. 요 사이에 왼쪽엔 따로 프로이센(프러시아) 더치 가 있는거고.  저 라지비우 도 프로테스탄트여. 10월 28일 에는 폴란드의 필드 크라운 헤트만, 그레이트 크라운 헤트만. 군수 최고들이 다 항복을 한거야. 마조비아 가 스위든 에 들어왔어. 마조비아 가 바르샤바 우치 걸친 거대한 평원이고 핵심이야. 이게 10월 31일. 걍 시작하자마자 세달 되서 끝난겨 이게. 

 

Meanwhile, Russian and Cossack forces had occupied the east of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as far as Lublin, with only Lwow (Lviv, Lemberg) remaining under Polish–Lithuanian control.[16] In late October, Charles X Gustav headed northwards and left Wittenberg in Kraków with a mobile force of 3,000 Swedish and 2,000 Polish troops, and an additional number scattered in garrisons, to control the southern part of the Swedish-occupied commonwealth. 

 

러시아 와 코사크 는 루블린 까지 먹었었고. 리비우 만 폴란드 에 남은 상태. 카를이 북쪽으로 틀고, 비텐베르크 는 남쪽 크라크푸 를 소규모 병력으로 보내고.

 

저때 폴란드의 북쪽은, 왼쪽이 단치히(그다니스크) 있는 로얄 프로이센(프러시아) 이고 오른쪽이 쾨니히스베르크(칼리닌그라드) 인 포로이센 더치.야. 카를이 여기 접수 하러 가는겨. 이 오른쪽 위 리보니아 는 드라가르디 가 러시아 와 부딪히고 있는거고. 

 

저때 프로이센 더치.는 뚝떨어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와 유니온 이야. 호헨졸레른 이 끊겨서 저리로 갔고, 이 초대 유니온 요한지기스문트 선제후 이자 듀크 의 딸이 구스타부스 아돌프 와 우여곡절 스파이 결혼한 마리아 엘레오노라 이고 크리스티나 엄마 고. 이여잔 우울증으로 감금되고, 

 

Frederick William (GermanFriedrich Wilhelm; 16 February 1620 – 29 April 1688) was Elector of Brandenburg and Duke of Prussia, thus ruler of Brandenburg-Prussia, from 1640 until his death in 1688. A member of the House of Hohenzollern, he is popularly known as "the Great Elector"[1]  

 

저때 프로이센 듀크 이자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가 프리드리히 빌헬름(드레데릭 윌리엄). 유니온 이후 세번째 이고, 마리아 의 조카뻘인겨. 이사람 아들이 프로이센 킹 을 시작하는거야. 이 아들의 손자 가 프리드리히 대제 이고. 

 

왼쪽의 로얄 프로이센 이란건 밸류 없는 카톨릭 애들이고 튜튼 기사단에서 떨거지인. 핵심이 이 프로이센 더치.이자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야. 

 

In the Treaty of Königsberg on 17 January 1656, Frederick William, Elector of Brandenburg and Duke of Prussia, took the Duchy of Prussia, formerly a Polish fief, as a fief from Charles X Gustav. The Brandenburgian garrisons in Royal Prussia were withdrawn, and when Marienburg (Malbork) surrendered in March, Danzig remained the only town not under Swedish control.[18]  

 

카를이 북으로 틀어서, 저기를 접수를 해. 프로이센 더치 는 스위든 한테 하미지를 하는겨. 브란덴부르크 사람들도 군병력이 왔어. 이때 로얄 프로이센(프러시아)와 손잡아서 이 왼쪽에 있다가 철수를 한거야. 단치히(그다니스크) 만 스위든이 못갖고 오고 로얄프러시아 와 프러시아더치 도 스위든 것이 된겨. 

 

.

일단, 브란덴부르크 가 열받는겨. 자기 반쪽 프로이센 더치 땅으로 고개 숙으렸고. 스위든이 갑자기 커가. 뜬굼포 로 네덜란드 드비트 가 여길 끼는겨. 즉 나라 만들고 먼가 내세우고 싶은겨 이게. 그러면서 곧 람프야르 겪어 죽는거지만. 합스부르크 가 꿈틀대고, 덴마크 도 꿈틀대고, 

 

스위든 카를이 세상이 모두 자기꺼 인듯 보였다가, 사방이 적이 되는거야 갑자기. 이때 손잡는게 1656년 저해 말에 트랜실베니아 의 조지2세 라코치 이고. 

 

다음에 마무리 하자. 


스위든 솔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