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usso-Polish War of 1654–1667, also called the Thirteen Years' War,[1] First Northern War,[1] War for Ukraine or Russian Deluge (Polish: Potop rosyjski, Russian: Российский потоп, Lithuanian: Rusų tvanas), was a major conflict between the Tsardom of Russia and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Between 1655 and 1660, the Swedish invasion was also fought in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and so the period became known in Poland as "The Deluge" or Swedish Deluge. Because of this, it is sometimes referred as Russo–Swedish Deluge (Polish: Potop szwedzko-rosyjski)  

 

러시아 폴란드 전쟁. 13년 전쟁. 1차 북쪽 전쟁, 우크라이나 를 위한 전쟁. 러시안 델류지. 스위디시 델류지. 러시아 스위디쉬 델류지. Henryk Sienkiewicz in his novel The Deluge (1886).  델류지 란 말은 사학계 용어가 아니고, 폴란드 소설가 쿼바디스 쓴 헨리크 센키에비치 의 소설 델류지 로 유행한 단어 인데. 델류지 가 diluo 라틴어 딜루오, 디스 라보. 라보 lavo 가 씻다 여. 디스 버리다. 완전히 씻어 버린겨. 스위든 과 러시아 가 폴란드를 완전히 쓸어버린 시기야. 저기간 10여년이. 

 

러시아 가 폴란드 를 쳐들어가고 1654년. 이 다음해에 스위든이 폴란드 를 쳐들어가고. 이 주범은 Bohdan Khmelnytsky 보흐단 흐멜니츠키.야. Chyhyryn 치히린 태생이고, 드녜프르 강변 우크라이나 가운데여. 여기가 흐멜니츠키 코트야. 아빠가 조키예프스키 의 코트에 있었어. 조키예프스키 는 자모이스키의 참모고. 폴란드 의 정통을 배운겨 흐멜니츠키의 아빠가. 이사람은 코사크 가 아냐. 저기에 하미지 하는 저지역 지방 귀족이야. 

 

체초라 전투 1620년 에 조키예프스키 가 사령하고 여기에 흐멜니츠키 부자 가 같이가. 이 전투에서 조키예프스키 도 죽고, 흐멜니츠키 의 아빠도 죽어. 흐멜니츠키 는 포로가 되고, 오스만의 오스만2세 는 여기서 이기고 다음해 코틴 전투에서 패하고 예니체리애들이 암살하는거고. 흐멜니츠키 가 오스만에 포로가 되서 2년을 있는데 탈출했다 또는 돈받고 풀려났다. 그리고는 돌아와서 가산 정리하고 코사크 로 들어간거야. 

 

이 흐멜니츠키 는 폴란드 코트에서 제수이트 학교를 다니고, He completed his schooling by 1617, acquiring a broad knowledge of world history and learning Polish and Latin. Later he learned Turkish, Tatar, and French. Unlike many of the other Jesuit students, he did not embrace Roman Catholicism but remained Orthodox.  1595년생 이니까 22세에 졸업하면서, 세계사 지식. 폴란드어 라틴어, 투르크어 타타르어 프랑스어. 이사람은 완벽한 지식인이여. 그렇지만 로마 카톨릭 을 안따르고 오소독시 로 남은겨. 정체성이 여긴 루스 들의 러시아 거든. 그러다 코사크 를 가서, 20여년 생활하면서 마침내 저기 최고 가 된거고, 1648년, 나이 53세에 봉기를 한거야. 이 사람이 인생이 파란만장한겨 이게. 

 

코사크 봉기가, 즈마일로 1625. 표도로비치 1630 파블뤼크 1637 오스트리아닌 1638년 에서 1648년, 30년 전쟁 끝나는 해에 흐멜니츠키 봉기거든. 폴란드는 이 코사크 를 활용못하고 어떻게 하면 죽이까 를 고민하다가 흐멜니츠키 까지 온거고. 결국 이걸로, 델류지 라는 대홍수 군단인 러시아 스위든 이 쳐들어와서, 이후 지워진거야 폴란드가. 

흐멜니츠키 가 코사크 씨츠 Sich 를 가서 20년 이상 바닥에서 시작해서 총 사령관 헤트만 이 된거야. 엄청난 인간이야. 이사람은 코사크 가 아냐. 코사크 입장에선 폴란트에 빌붙은 웬수놈이야. 그리고 봉기를 해. 처음엔 잘 나가다가 밀리는겨. 오른쪽 러시아 에 러브콜을 하는거야. 

 

Michael I (Russian: Михаи́л Фёдорович Рома́нов, Mikhail Fyodorovich Romanov) (22 July [O.S. 12 July] 1596 – 23 July [O.S. 13 July] 1645) became the first Russian Tsar of the House of Romanov after the zemskiy sobor of 1613  

 

러시아 가 고난의 시기. Smuta 스무타 라는 15년 을 보내고. 1613년에 새로 차르 로 선출된 사람이 미하일1세 야. 

 

The Zemsky Sobor represented Russia's feudal classes in three categories: Nobility and the high bureaucracy, the Holy Sobor of the Orthodox clergy, and representatives of "commoners" including merchants and townspeople.[1] Assemblies could be summoned either by the Tsar, the Patriarch, or the Boyar Duma, to decide controversial issues or enact major pieces of legislation. 

 

1606년에. 가짜 드미드리 가 차르 하다가 일년만에 도망가다 떨어져서 매맞아 죽고 슈이스키 가문의 바실리4세 가 차르 선언했는데 인정을 못받아. 힘이 없는 차르야. 이 상황에서 스위든 드라가르디 원정오고 폴란드도 또 들어오고 가짜 드미트리 도 또 생기고, 바실리4세를 내 치고. 러시아 보야르들이 이 바실리4세를 폴란드에 떠 넘기는겨 조키예프스키 가 직접 데려와서 이사람은 바르샤바에 죽어. 그리고 러시아 는 보야르 들이 공동체제로 지배를 해. 

 

이반4세 가 처음 만든게 Zemsky Sobor 젬스키 소볼. 이야. nation assembly 전 영토의 모임 이야. 1549년 에 첫 주최를 한겨. 이 러시아 가 이게 유럽 애들 껄 그대로 한거야 늦게나마. 팔리어먼트 삼부회 세임 을 따라하는겨. 귀족 과 상류 관료들. 그리고 홀리 소볼. 소볼 이 모임 이고. 교회로 가면 시노드 여. 처치 가 시노드 에 미팅 이잖아. 슬라브 들 공회의 가 홀리 소볼.이야. 상인들 과 마을 주민들 의 카머너들 도 들어오고. 이게 젬스키 보솔. 이고. 여기서 최고 일곱 의 보야르 들이 지배하다가. 3년 후인 1613년 만에 다시 여기서 차르를 선거를 해서 로마노프 의 미하일1세 가 된거야. 

 

두마 Duma 라는건 보야르 두마. 라고 해. 보야르 들의 모임체 고 이건 원래부터 있던 거고. 이걸 표트르 대제.가 세나투스 세너트 라는 국회라는 정식 두마 로 만든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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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1세의 할아버지가 이반4세 첫 부인 아나스타시아 이 오빠.야. 이반4세의 코트 자문이고. 이 여자 죽으면서 이반4세가 마음 잃은거고. 그러다 고두노프 가 실세가 되면서 로마노프 들이 도망을 가는거야. 그리고 암흑기 지나서 돌아온거거든. 여기 핏줄을 차르 로 올린겨. 그러면서 러시아 가 기운을 회복을 해. 이 모든 것은, 폴란드여 저놈의 폴란드. 러시아 의 최고의 주적은 저 폴란드 애들이거든. 화산 폭발로 뜬굼포 여기에 기아가 오고 더하여 이반도 죽고 고두노프 가 실세짓에 차르하다 죽어서 부인에 자식까지 죽고 가짜 이반 자식 놀이하기 바쁜데 이 와중에 폴란드가 쳐들어와서 완전히 피폐해진 거거든. 이게 15년이야. 저것들이 모스크바 코트 까지 군대 들어오고 가짜 드미트리도 앉히고.

 

During his reign, Russia conquered most of Siberia, largely with the help of the Cossacks and the Stroganov family. Russia had extended to the Pacific Ocean by the end of Michael's reign. 

 

미하일1세 가 1613-45. 32년 을 재임했는데, 이때 스트로가노프 가 주도했던 시베리아 원정을 독려한거야. 이건 이반4세가 시작한거였고. 스트로가노프 가문은 코사크들을 앞세운거고 이 때의 코사크는 볼가강 돈강의 코사크여. 저 문제 많은 폴란드의 우크라이나 지역 드네프르 강의 씨츠 있는 코사크 가 아녀 시베리아 원정 코사크는. 이 러시아는 코사크를 이런식으로 활용했으나, 폴란드는 저 좋은 자원의 코사크를 죽이려다가, 지워진겨. 

 

미하일1세 일때 이미 이때 동쪽 태평양 까지 다 간거여. 미하일때 가장 많은 영토 를 얻은거고. 이게 뒤에 힘이 되는겨 러시아 가 17세기 지나면서 표트르 대제 나오고 스타가 되는 힘은 바로 복귀한 미하일1세 의 시베리아 원정 완성이야. .Alexei Mikhailovich (Russian: Алексе́й Миха́йлович, IPA: [ɐlʲɪˈksʲej mʲɪˈxajləvʲɪtɕ]; 19 March [O.S. 9 March] 1629 – 8 February [O.S. 29 January] 1676) was the Tsar of Russia from 1645 until his death in 1676.[2]  

 

그리고 아들,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가 16세에 올라서, 31년 차르 하는데. 영토를 8백만제곱 을 더 확장해. 오른쪽에 더해서 이사람이 왼쪽을 갖고 오는거야. 아빠는 오른쪽에 치중하고, 얘때부터, 폴란드 에 복수를 하는겨. 

 

이게 러시아-폴란드 전쟁 1654-67 이야. 이전에 이쪽은 코사크들이 즈마일로 부터 시작해서 흐멜니츠키까지 30년을 들쑤셔 놨걸랑. 이 분위기를 러시아 가 갖고 가는거야. 

 

John II Casimir (Polish: Jan II Kazimierz Waza; Lithuanian: Jonas Kazimieras Vaza; 22 March 1609 – 16 December 1672) was King of Poland and Grand Duke of Lithuania from 1648 until his abdication in 1668 as well as titular King of Sweden from 1648 until 1660. He was the second son of Sigismund III Vasa and Constance of Austria. His older brother and predecessor on the throne was Władysław IV Vasa

 

폴란드 의 이때 킹은 얀2세 카시미르. 아빠 지기스문트3세 바싸. 다음 큰아들 브와디스와프 바싸 가 16년 하고. 1632-48. 다음 작은아들이 하는겨 1648-60. 이사람때 델류지.야. 나이도 39세 에 올라서 아빠 와 형이 다진거 이어가면 되지만, 이미 똥은 아빠 3세 바싸가 다 저지레한 상태거든. 폴란드 사가들이 위대하다며 떠 받드는 지기스문트3세 바싸. 정말 한심한건데 이 사학자 들이란. 그래서 결국 욕처먹는건 이 야기에워 외가핏줄 마지막인 저 얀2세 카시미르.야. 폴란드 사학자들과 지식인애들의 가장 비난 대상이지. 참 이 역사 후진 이들의 지식인행세 하는 것들이란, 욕나오는데 이런거 보믄. 아, 이런게 말이지, 모~든 세계사 역사 후진 나라들의 아주 공통점이야. 그중 가장 형편없는 지능 애들이 이 조선민국이고 가장~~ 미개하고 무식한 애들이 이 조선민국 학자 애들이야 역사팔이 애들. 

 

There are 57,000 women in the Ukrainian armed forces, 26,000 of which are on active duty. Above, Ukrainian women soldiers train for a military parade for 2018 Independence Day.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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