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Anglo-Dutch War, or, simply, the First Dutch War, (Dutch: Eerste Engelse (zee-)oorlog, "First English (Sea) War") (1652–1654) was a conflict fought entirely at sea between the navies of the Commonwealth of England and the United Provinces of the Netherlands.

1차 앵글로-더치 전쟁. 1652-54. 초기에 끝난거고. 대게 전쟁이 초기에 끝나고 저리 기간 잡는 것은, 항상 얘들은 pact 펙트. treaty 트리티. 조약 을 맺는 게 공식 종결일이야. 이런게 전혀 아시아 랑 다른겨 얘들이. 아시아 는 병란 때 도 삼전도 서 조선 킹이 머리 디립다 박고 지는 도성에 들어가고 주위에서 민들이 오왕오왕 이 왕 놈아 우리 두고 어딜 가냐 하면서 노예로 잡혀가는거고.

이 조선 들은 참 그야말로 후진 집단이거든 이게. 이런 조선 을 위대하다 해대는 게 지금 사학계에 민족 주의 애들이고. 저들은 정말. 대개의 지금 시민 국민들은 오백년 간 처참한 지옥생활을 한거거든. 저 조선은 그야말로 머같은 들이야 저 몇몇만의 조선. 저런 조선 두글자 를 지금 하나님 떠받들게 하는 저 학계  정치권 

이 조선 들이란건 이건 삼국시대 고려시대 민족 입장에선 그야말로 반민족주의자들이야. 저 조선들 만큼 반민족주의자 들이 없어. 모~든 사람들을 그야말로 개돼지 노예로 만들면서 지들 몇몇만 누린 그야말로 개 똥떵어리 들이거든. 

동양은 끝까지 그냥 쳐 죽여야 끝나는겨 전쟁사가. 저런 웨스턴 애들의 팩트. 트리티 라는게 없어. 중세 천년이란건 엄청난겨 이 웨스턴 애들은.

팩트 라는건 팍툼 pactum 이고 트리티 는 트락타투스 tractatus 트락토 tracto 야. 팩트 팍툼 이란건. 어그리. 동의하는겨. 이건 자발적인거고. 트리티 의 트락토 는 터그 에 드래그 면 이건 억지로 질질 끌어가는겨 그래서 매니지 핸들 하는거면 졸 어려운 조약을 맺어서 끝내는거야 이게 어감이 다른거야.

1652년-54년. 에 처음으로 앵글로 브리튼 이 네덜란드 와 전쟁이야. 네덜란드 가 공식으로 1648년에 인정이 된거고. 네덜란드는 완벽하게 잉글랜드 가 1588 아르마다 이후 만들어준거야 이건. 헌데 이따위 네덜란드 들이 은혜도 모르고 브리튼에 뎀비는겨.

네덜란드 는 찰스2세의 한살아래 여동생 마리.의 신랑 오렌지 윌리엄2세.가 1650년 24세에 홍역으로 죽어. 더하여 권력도 소위 레겐텐 애들, 홀란드 주 애들이 장악을 하고. 아들 윌리엄3세 가 아빠 2세 죽고 다다음날에 태어난겨. 마리 는 코트에서 애기 가 킹인상태에서 홀란드 애들이랑 권력 다툼 해야하고. 이때 찰스2세 는 헤이그 에서 스콧 가서 던바 전투로 패하고 다음해 우스터 전투로 잉글랜드 쳐들어가서 대패하고 다시 여동생 있는 네덜란드 온거거든.

저때 네덜란드는 갓 80년 전쟁 끝나서 독립 인정받은 직후야. 바다 무역 매진하면서 신대륙 막 가서 팔아 댈때고, 브리튼은 저때 찰스1세 목아지 짜르는 내전이 막 끝날때야 1649년 1월. 요틈에 네덜란드는 전쟁 막바지 부터 신대륙 쑤시고 다니면서 무역을 한거거든 그러다 80년전쟁 30년전쟁 이 동시 조약으로 끝난거고. 브리튼 은 따로 세킹덤의 전쟁 내전하기 바쁜거고. 저 와중에 상권을 다 뺏기다 시피 한거야 크롬웰이 권력 잡고.

It was largely caused by disputes over trade, and English historians also emphasise political issues.[1] The war began with English attacks on Dutch merchant shipping, but expanded to vast fleet actions. Although the English Navy won most of these battles, they only controlled the seas around England, and after the tactical English victory at Scheveningen, the Dutch used smaller warships and privateers to capture numerous English merchant ships so, by November 1653 Cromwell was willing to make peace, provided the House of Orange was excluded from the office of Stadtholder.[2] Cromwell also attempted to protect English trade against Dutch competition by creating a monopoly on trade between England and her colonies.[3] I

이걸 쟤들도 마치 경제전쟁 으로 서사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찰스2세 와 끈끈한 저 네덜란드의 권력이여. 네덜란드 를 만들어준건 잉글랜드 코트여 엘리자벳1세 의. 제임스 도 헨리 인 튜더 애들인거고 저기 간 마리 도 튜더여. 네덜란드는 이 튜더들이 고마울 수 밖에 없고. 뜬굼포 크롬웰이 자기들 의 은인 튜더 를 쫓아낸거걸랑. 크롬웰은 네덜란드 가 제일 부담스러운거야 어차피 프랑스 스페인은 잉글랜드의 적이었고 종교로도 역사로도. 헌데 네덜란드 까지 적으로 두면 문제인거야 저 네덜란드 신생국이. 저걸 길들여야 해. 더군다나 찰스2세가 여전히 살아서 저길 간겨 자기 여동생 나라에. 이게 크롬웰 애들이 가장 큰거야 이 1차 앵글로-네덜란드 전쟁은. 그래서 얘들이 처들어가는겨. 스헤베닝에(엔) 전투 가 헤이그 도시 그 자체여. 우리식의 서울시 청와대 가 있으믄 그 아래 광화문을 쳐들어간겨 저게. 크롬웰이 걍 겁만 주는겨 저건 브리튼이 이긴거야. 조약 맺고 끝나는거고.

이때 당연히 브리튼의 해군 제독 넘버원 은 로버트 블레이크.야. 그리고

Sir George Ayscue (c. 1616 – 5 April 1672) was an English naval officer who served in the English Civil War and the Anglo-Dutch Wars who rose to the rank of Admiral of the White. He also served as Governor of Scilly Isles (1647) and Governor of Barbados (1650–1652).

조지 에이스큐. 40정도 된겨. 이사람이 더화이트 의 애드머럴. 이야. 당시 로얄 네이비.가 블레이크 는 플리트 fleet 의 애드머럴. 즉 플리트 란건 전체 함대 인겨. 그리고, 2위 가. 더 레드. 3위가 더 화이트. 4위가 더 블루.야. 레드 화이트 블루 는 스퀘드론 squadron 전 함대 플리트 를 세개 의 스퀘드론 으로 나눈겨. 재들이 레드 화이트 블루 순위인거야. 이게 저 이후 백년 지나서, 화이트 레드 블루 로 바뀌어. 즉 아일랜드 갖고 와서, 유니온 잭 을 만들고 레드 라는 잉글랜드 성게오르기오스 성조지 를 내세우지 않고 뒤로 가고 화이트 를 맨 앞으로 갖고 간거지. 국기 란건 곧 해군 깃발이고.

조지 에이스큐 는, 링컨셔 사람이야. 이사람이 이전 335년 전쟁 명명된, 기억날리 없겠지만. 여기가 실리 제도 거든, 내전때 왕정파 들이 먹을거 없어 해적질해대던. 여길 진압하고 직접 거버너 가 된 사람이 이, 조지 에이스큐 야. 나이 30에. 그리고 바베이더스 의 거버너 였어. 이 바베이더스 가, 이전 흑인 노벨상 과학부문 최초 인 경제분야 윌리엄 루이스 와 문학상 흑인 데릭월킷.이 세인트 루시아. 라 했잖니. 여기가 소안틸리스 제도 아래이고, 이 동쪽 짝은 섬이 바베이도스.야. 최고의 관광지여 지금. 저 세인트루시아 나 이 바베이도스.는 지금 영국 꺼야. 저 두 흑인도 영국인이여.

바베이도스 는 제임스 때 갖고온 영국 최초의 서인도제도 식민지여. 이후 크롬웰이 스페인 전쟁하면서 자메이카 를 갖고온거고. 세인트루시아는 1백년 지나서 프랑스 한테서 갖고오는겨. 둘다 각각 제주도 크기 삼분의 일.이야. 독립하면 머하냐 저리 살면 되지. 홍콩을 중국에 왜넘기냐. 민족주의 라는 허상 민족주의 라는 아무런 오브젝트 가 없는 완전 허상의 개념에 지옥으로 가는겨 저런 짓들이.

저 두섬은 각각 제주도 삼분의 일 크기여.

늦는거야. 깨닫고 난 후론. 너무나 미개해서.

우리도 늦게 될 거야. 저 정말 그야말로 개 쓰레기 구데기 잡벌레 들의 민족주의 어쩌고 니덜 그 살인 집단의 정체성을 유지 해줄께요 우리 동일합시다래. 아무런 현실감도 없는 말장난이야 저건. 저런 들이 이땅의 권력 중심이고 저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 가슴떨리는 애들이 이땅의 반 이야.

저런 고려연방제란 가제 나 이념 은 , 뜯어보면 아무런 내용도 현실감도 없는거야 저건. 저건 곧, 남조선 을 북조선 화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야. 조선 이란게 너무나 쪽팔린걸 알아 쟤들이. 안다니까!!! 조선은 그야말로 똥 이란걸 알아!! 그러니까 저들이 차마 조선 연방제 란 말은 못쓰는거야 ㅋㅋㅋ.

저 들은 알아. 알아. 조선이 얼마나 드럽고 역겨운 두 글자 란걸.

그러면서도 사람들 속이는거야. 선동하는거고. 그게 되는겨 이 땅은. 이 인민들은 개돼지 라는 지능 수준인걸 알아 ㅋㅋㅋ. 저 개돼지 도 못한 지렁이 지능 애들조차.

참 한심한 땅이야. 세상에서 가장~~~ 한심 한 지능 의 인간들이 이 조선 반도 의 모~~든 인간들이야. 저 바닥의 인간들이 얼마나 덜떨어졌으면 저런 애들이 마음껏 정체 를 국가 단위를 갖고 노냐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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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와~~안벽하게 철~~저 하게 망할거야 여긴. 베네수엘라 이상의 지옥이 될꺼야 여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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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이 링컨셔 출생인데. 아 여길 좀 걸고 넘어가야 되서리.

링건셔.가 이스트미들랜즈 주.에 저 허연지점이고. 이 위 가 요크셔의 요크 가 있고. 아래에 케임브리지.가 있어. 케임브리지 바로 위가 헌팅돈 Huntingdon 이야. 올리버크롬웰의 고향. 크롬웰이 헌팅돈 의원에 다음 케임브리지 의원할때 내전한거고. 저기 각진 큼지막한 만 gulf 이 The Wash 더 와시.야. 저 와시 주변의 해안이 저지대고 해수면보다 낮고 잠기는겨 저기가.

The Wash is a rectangular bay and estuary at the north-west corner of East Anglia on the East coast of England, where Norfolk meets Lincolnshire, and both border the North Sea.

링컨셔 위의 험버강. 헐 Hull 보이는 곳의 저 상류 바다접하는 곳도 저지대야. 저곳이 모두 에스추어리. 습지여.

The Fens, also known as the Fenlands, is a coastal plain in eastern England. This natural marshy region supported a rich ecology and numerous species, as well as absorbing storms. Most of the fens were drained several centuries ago, resulting in a flat, dry, low-lying agricultural region supported by a system of drainage channels and man-made rivers (dykes and drains) and automated pumping stations

동쪽 잉글랜드 의 저 두 지역. 마쉬 리전. 습지 지대를 더 펜즈. 펜 렌즈.라고 해. 펜 이란게 지리시간에 배운 그 펜 이야. 물이 들어오는 습지 지역이야. 와시 주위로 사방에 강들이 모이걸랑. 저 험버 강 지류들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풍부한 생태계 라 하지만, 살기에는 문제가 있는겨 저기가. 홍수지대여. 저기가 완벽한 밀림이야. 데인족들도 쳐들어오는 것이고 온갖 안좋은 일들도 벌어지는 곳이었고.

네덜란드 의 아프슬라우다이크 에 델타 프로젝트 처럼. 저기를 개간작업을 해야 하는거야. 로마 때도 저기를 길을 낸거야. 이 로마 란 인간들은 엄청난겨 진짜. 킹덤 차원에서 저기를 개간해야 해. 사람사는 땅을 만들어야 하는겨. 물빼기 작업을. 즉 네덜란드 애들처럼 강물길을 막거나 틀어내고 물을 빼서 다이크 댐을 쌓아서 땅으로 만드는건데. 저걸 두고 보다가 하필 찰스1세 가 하는거야. 즉 얘때 되서 먼가 인구 변화가 온거고, 그만큼 땅이 더 필요해진거야. 잉글랜드 가 이때부터 먼가 부 가 쌓여서 인구가 많아진거거든 이게. 더하여 얘가 갓 즉위하고 팔팔한 20대야. 먼가 하고 싶은 애들이 취임하고 의욕 불끈 이거든.

Though some signs of Roman hydraulics survive, and there were also some medieval drainage works, land drainage was begun in earnest during the 1630s by the various investors who had contracts with King Charles I to do so.[22] The leader of one of these syndicates was the Earl of Bedford, who employed Cornelius Vermuyden as engineer. Contrary to popular belief, Vermuyden was not involved with the draining of the Great Fen in Cambridgeshire and Norfolk in the 1630s, but only became involved with the second phase of construction in the 1650s.[23] The scheme was imposed despite huge opposition from locals who were losing their livelihoods based on fishing and wildfowling. Fenmen known as the Fen Tigers tried to sabotage the drainage efforts.

1630년대 애에 찰스1세가 이걸 밀어부쳐. 와시 아래가 헌팅던 에 케임브리지셔.야. 헌데 이게, 킹덤 로얄 코트 차원에서는 필요한 프로젝트 인데, 저 지역 거주민 들은, 반대 를 하는거야 당연히. 왜? 저기 사람들은 저 밀림의 해변 습지 의 낚시질로 먹고 사는 어부들이야. 저길 다 매운다고 해봐. 생계가 끊기는겨 이게. 자기들 삶의 터전 을 바꾸고 싶지 않은거고. 피슁과 윌드파울링, 고기사냥 새사냥 등 하던 저 주민들이 반대를 하는겨. 재개발 반대 랑 똑같아. 더하여 저게 아직 기술력 으로 미흡해. 일하는 것도 힘들어.

세킹덤의 전쟁 이란 내전 이 시작할때. 모든 지역들이 대부분 중립이여. 킹 과 의회 쪽 어디편에 드는게 좋은지 몰라. 그런데 찰스 가 유독 민심을 잃은게 저 펜즈 지역이야. 와시 부근 에 험버강 상류지역. 이 와시 의 아래 헌팅던 에 케임브리지 에 하필 올리버 크롬웰 이 있던거고. 와시 부근 펜즈 지역민들이 이쪽으로 몰리는겨 적극적으로. 이게 크롬웰의 철기군 이 된겨. 찰스 가 내전해서 목짤린게 가만 보믄 여기여. 저들이 가장 씩씩대면서 용맹스러웠던거고, 저 지역이 저런 걸로 아  저놈의 킹 이 우리를 죽이려는겨 저거. 해대면서 가장 강력해진 크롬웰의 부대가 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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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jor part of the draining of the Fens was effected in the late 18th and early 19th century, again involving fierce local rioting and sabotage of the works. The final success came in the 1820s when windpumps were replaced with powerful coal-powered steam engines, such as Stretham Old Engine, which were themselves replaced with diesel-powered pumps, such as those at Prickwillow Museum and, following World War II, the small electric stations that are still used today.

저 공가를 서기 1820년대에서야 하는겨. 스팀엔진 나와서 양수기 제대로 돌리면서. ㅋㅋㅋ. 찰스 가 너무 시대를 앞선거지.

저런거 하면 사가들이 악군 어쩌고 하거든. 군주가 사악해. 수양제 가 운하 공사를 했기 때문에 그나마 중국 이란 나라가 더 나아간거야. 저런 수양제 를 두고 조선 사가들 말하는거 들어보면, 악마 수양제 민들 피빨아먹으면서 운하공사를 하다니! 저 들이 똑같이 하은주 시작의 당요 우순 의 머 치수 정책 위대해유, 왜냐면 공자 가 빨아주는 애들이거든 ㅋㅋㅋ. 공자 의 유교님께서 하는 치수 는 위대하고, 수양제는 나쁜놈인거지. 참 난 이 동양 쪽 사가 애들 보면 야 저런 똥 구데기 들이 처먹고 사는 거 보면 참. 이게 역사 후진 애들의 아주 공통점이고, 사가 사학자 애들이 공통적으로 쓰레기 가 역사 없는 나라 의 현실이야 이게.

The Great Fen is a habitat restoration project being undertaken on The Fens in the county of Cambridgeshire in the United Kingdom.

그리고나서 서기 2000년대 들어와서, 생태복원을 하는거야. 이게 그레이트 펜.이야.

Woodwalton Fen is a 209 hectare biological Site of Special Scientific Interest in the parish of Woodwalton, west of Ramsey in Huntingdonshire, Cambridgeshire.
Holme Fen is a 269.4 hectare biological Site of Special Scientific Interest near Holme in Cambridgeshire.

우드월튼 펜. 홀름 펜. 램지 에 피터버러 홀름. 다 저 와시 주변이야. 하튼 얘들의 이런건 대단해. 그래서 저기가 지금 가장 최고의 자연공원이야 잉글랜드의.

할때. 조지 에이스큐 가 저런 분위기 속에서, 링컨셔 태생으로 나이 30에 크롬웰 에 들어가서 바다를 맡은겨. 그래서 내전때 왕정파로 부터, 실리 제도 빼앗고, 제임스때 정복한 유일한 서인도제도 의 섬 바베이도스 도 이사람이 왕정파에서 빼앗아서 거버너 가 된겨 이 두 섬에서. 그리고 나서 네덜란드 와 첫 해전을 치루는겨.

In the First Anglo-Dutch War he was defeated by the Dutch Commodore Michiel de Ruyter at the Battle of Plymouth.

헌데 조지 에이스큐.는 저때 드 라우터 한테 패해. 저때 최고 네덜란드 사령은 마르텐 트롬프.야. 트롬프 가 앵글로 와의 첫 해전에서 죽는겨.

The Battle of Scheveningen (also known as the Battle of Ter Heijde) was the final naval battle of the First Anglo-Dutch War. It took place on 31 July 1653 (10 August Gregorian calendar).

메인 전투가 헤이그 의 스헤베닝엔 전투.야. 조지 몽크 가 사령으로 와서. 마르텐 트롬프 가 이 때 죽어. 윌리엄 펜 은 단지 선장 캡틴이고. 이 배의 총탄에 죽어. 드 라우터 가 이후 트롬프 를 잇는 바다의 짱이고.

이 전해, 시작하자마자, 드 라우터 가 잉글랜드 플리머스 로 가서 치는 전투에서 조지 에이스큐 가 드 라우터.에 패하는겨. 조지 에이스큐 가 훨 배가 많고 병력도 많은데 드 라우터 한테 안된겨 자기 홈라운드에서. 그만큼 이 드라우터 는 최고야.

In 1664 he was appointed Rear-Admiral of the Blue Squadron.[3] In June 1665 he was appointed Vice-Admiral of the Blue.[1] During the Second Anglo-Dutch War he commanded a squadron at the Battle of Lowestoft in 1665.
In February 1666 he was appointed Admiral of the Blue and at the start of the Four Days' Battle in June 1666 he was elevated to the rank of Admiral of the White,[1] his flagship, Prince Royal, ran aground on the Galloper Shoal and he was forced to surrender his ship to Lieutenant-Admiral Cornelis Tromp, earning the unfortunate distinction of being the highest-ranking English naval officer to have been captured by the enemy. He was held prisoner during the war in the Dutch state prison of Loevestein, and almost certainly never again took to sea as admiral.[2]

그리고 찰스2세 가 왕정복귀하고, 적폐 청산 은 죽은 네명 시체 꺼내서 목아지 짜른게 다야. 만약 조선 같았으면 수천명에 수만명이 가족 포함해서 목짜르고 난리가 났을텐데. ㅋㅋㅋㅋ. 세상에 조선 망하고 일본 나간 지가 언젠데  지금도 여전히 적폐 하면서 ㅋㅋㅋ. 야 정말 세상 빠닥에서 저렇게 한심한 인간들의 땅은 없어. 저런걸 유럽사 를 보면 얼마나 후진건지 알게 돼 저런 미개한 짓이. 저건 머 들이나 하는 짓이고, 역사 후진 애들의 공통점이야 항상 상대 혐오 하자 역사 청산 하자. 저게 여전히 아이티 에서 벌어지는거고. 왜 그럴까? 미개함 이란 공통이야 저게. 중국 에 오백년 성접대에 여자팔이 한건 위대한겨 당연한겨. 헌데 일본 한테 당한건 역사 청산이 안되고 사과를 받아야 해. 사과 해. 안했 대. 또 해. 안했 대. 머  어쩌라는겨 ㅋㅋㅋ. 중국 한텐 사과 안받아? 북조선 한텐 사과 안받아? ㅋㅋㅋ. 왜 받아 왜, 중국은 우리 오백년 주인님들이시고 당연히 위안부 성접대 해온걸 자랑스레 생각해야 하고, 북조선 은 내려와서 적폐들을 인민재판 해서 죽이신기고 적폐들을 강간해댄거니까 자랑 스러워 해야 하냐? 사과는 무슨 ? ㅋㅋㅋ. 참 그야말로 한심한 족속들인데 저것들이.

조지 에이스큐 는 1차 때 패했어 드 라우터.한테. 어쨌거나 앵글로는 헤이그 까지 가서 조지고, 올리버 크롬웰 과 홀란드 주 애들이 팩트. 협상 한게, 크롬웰 인정해준다. 네덜란드는 오렌지애들 권력안준다. 이걸로 조약맺은거야. 크롬웰의 속 속뜻은 저거야. 저건 완벽하게 크롬웰이 이긴거야. 더하여 네덜란드 레겐텐 인 홀란드 주 애들은 오렌지 싫어하는 애들이고, 아쉬울게 없어.

그리고, 1665-67 의 2차 전은 그야말로 경제전쟁이야. 네덜란드 가 차원이 달라진겨. 크롬웰때 앵글로 가 스페인 이랑 전쟁하면서 로버트 블레이크 가 스페인 앞바다를 막으면서 둘이 싸우고, 프랑스 는 플랑드르 에서 스페인과 싸울때, 네덜란드 애들이 무주공산의 항로를 갖고 가는겨 무역하면서. 전쟁하는 동네애들에게도 팔고. 정신 차린 앵글로 들이 돌아보니까 졸 황당한겨 대체 누구 좋은 짓 한거야 이거. 그야말로 경제전쟁 이 이 2차 앵글로-덧치 전쟁이야.

이때 조지 에이스큐 는, 왕정복고 되서 강등되서리, 또한 드라우터 한테도 졌었고, 블루 의 리어 애드머럴.에서 블루 의 바이스 애드머럴 에서, 블루 의 애드머럴. 로 간겨. 레드 화이트 블루 .에서 가장 낮은 블루 이고. 리어 가 이중 더 낮은겨. 이건 후면 책임자고. 다음이 부. 인 바이스.에서 딱지 떼고 애드머럴이 되었다가, 화이트 의 애드머럴 이 된겨. 즉 이때 잉글랜드는 인물이 없는겨 이게. 블레이크 도 죽고. 2차 앵글로-덧치 는 그야말로 네덜란드 의 초강력이야.

드라우터 가 총사령이고, 죽은 트롬프 의 아들이, 코르넬리스 트롬프.야. 조지 에이스큐 가 이 아들 트롬프 한테 항복해서, 포로 되서리, 이후 완전 은퇴하는겨. 이런거 보면, 저 내전때 바다에서 왕정파 도 인물이 없는겨 이런 조지 에이스큐 한테 당한거 보믄. 아니면 네덜란드 해군이 그만큼 강력한거야 이게.

Witte Corneliszoon de With (28 March 1599 – 8 November 1658) was a Dutch naval officer. He is noted for planning and participating in a number of naval battles during the Eighty Years War and the First Anglo-Dutch war.

비테 코르넬리손 드 위트. 이사람이 1차 앵글로-덧치 전쟁때, 트롬프 가 총사령에, 다음이 드 라우터.와 이 드 위트. 인데. 1672년 람프야르 때 죽는 형제는 드 비트. de Witt 야. With Witt 위트 비트.로 구분해서 읽어. 전혀 다른 씨족이야.

비테 드 위트. 이사람이 참 재밌는데. 트롬프 보다 한살 아래야. Brielle. 둘다 같은 브릴러 태생이야. 트롬프 는 어릴때 아빠 배타고 갔다가 아빠 죽는것도 보고, 웬수 갚으라며 소리지르던 꼬마거든. 저때 영국 해적한테 잡혀서 노예생활 2년을 꼬마때 하고 영국 해적이 불쌍히 여겨 풀어주고 다시 청년때 배타다가 또 잡혀서 노예생활하고 무어인이 착실한 백인에 인상받아 풀어주고, 트롬프 이야긴 이전 썰. 파란만장해 이 사람. 헌데 한살 어린 비테 드 위트 는 걍 사업 하다 망하고 동인도회사 가고 그러다 해군에 들어갔거든. 스페인 배 사략질도 하고. 같은 고향 한살 많은 트롬프 가 짱인겨. 둘이 머 어릴때 부터 친했다 어쩌고 하지만, 아무 증거는 없어. 걍 같은 고향이라 나오는 추론일 뿐.

 열등감 있는겨 이 사람이.

In the Eighty Years' War against the Spanish, De With fought at the Battle of the Downs (1639). De With became very jealous of Tromp's popularity after his destruction of the Spanish fleet in The Downs. In the same battle, he made an enemy of Zealandic Vice-Admiral Johan Evertsen and accused him of cowardice and avarice.

80년 전쟁 후반기 에 네덜란드가 스페인 함대를 격파하는 잉글랜드 앞바다 더 다운즈 전투.에서 트롬프가 이름을 알리는거걸랑. 이때 드 위트 도 같이 참전한겨. 헌데 얘는 이 더 다운즈 전투 에서, 부제독 한테 기소를 당한겨. 겁은 많고 탐욕 만 부린다는 죄로 ㅋㅋㅋ.

In 1640, De With was brought to trial when, his fleet having been dispersed by a storm, he had returned to Hellevoetsluis alone. The court martial was presided by Maarten Tromp and though he was acquitted, De With had the compulsive notion that Tromp had tried to influence witnesses against him.

군사재판을 해. 얘 혼자 왔어. 폭풍때문에 함대는 다 흩어졌대. 이때 재판장이 트롬프.야. 무죄 야. 그런데 이 드 위트.는 자기를 이리 혐의 씌워서 재판하게 하고 불리한 증인 앉힌게 트롬프 란거야.

아 하튼  조선 같은 .

세상 어디든간에 이 조선 같은 애들이 졸 많은겨 이게. 열등감 컴플렉스들.

De With met his end in November 1658 at the Battle of the Sound, during the Northern Wars, commanding the vanguard of the Dutch fleet relieving Copenhagen from the Swedish. His ship; the Brederode, was grounded and surrounded by the enemy at Oresund. He was first shot through the left thigh by a musket ball and hours later through the breast. When Swedish soldiers boarded the ship he refused to surrender his sword, wrestling with two of them on his knees and exclaiming: "I have faithfully wielded this sword so many years for Holland, so I won't give it up now to some common soldiers!" He collapsed, was brought to his cabin to recover, insisted on walking by himself over the gangplank to the Swedish ship, collapsed again and died. His body was embalmed on orders of Charles X of Sweden and displayed as a war trophy in the town hall of Elsinore by the Swedes, who, in January 1659, delivered his body to the Danish court in Copenhagen;

트롬프.가 1차 앵글로-덧치 에서 죽고, 이 자리를 드 위트.가 받아. 헌데 성격이 워낙 문제가 많은겨. 왜냐면 이사람이 융통성이 없는 겨. 메노나이트 여. 아나뱁티스트 의 일파인. 졸 평화주의자야. 강렬한. 현실감이 없어. 자기 생각과 현실에서 적응이 안되면서, 한살 많은 트롬프 가 잘나가서 시기하는거고, 그렇다고 총사령을 줬지만 사람들이 안따라. 아예 짤렸어. 혼자 배타는겨. 그러다가 1658년 더 사운드 전투. 스위든 이 북의 전쟁 다시 하면서 폴란드 덴마크 휘저으면서 강대해지는걸 네덜란드가 막는거야. 이때 드 위트.가 출전을 해. 스위든 애들 총에 허벅지 맞고 가슴에 맞아. 스위든 병사들이 배 위로 들어와. 항복 해라. "나는 진심으로 이 칼을 홀란드 를 위해 썼다. 그래서 나는 니덜따위 일개 병사들에게 항복할 수 없다" 쓰러지고 회복된걸 스위든 애들이 자기 배로 실어가고 죽었어. 카를 10세가 전승 기념물로 드 위트 몸을 전시하고 이걸 돌려줘 네덜란드에.

어쨌거나 충심은 있는겨. 성격이 깐깐하고, 트롬프 라는 거인이 있어서 문제였지.

As Dutch naval historian Johan Carel Marinus Warnsinck put it: "He was feared and hated by his inferiors (on several occasions, crews refused to let him on board to use their ship as flagship), shunned by his equals and always full of insubordination against his superiors". De With was also seen as courageous, competent and an excellent sailor. He was embittered by the neglect of the fleet between 1639 and 1650.

그는 두려움을 받았고 미움 받았다 그의 부하들에게. 어떤 경우에는 크루들이 그를 배에 태우는걸 거부했다. 그들의 배를 그의 기함으로 사용하는걸 거부했다. 그의 동료들에 의해 외면당했고, 또한 자기 상급자들에 대해선 불복종했다 언제나.

아  짜증 열라 나네. 드위트 는 또한 용감했고 능력있고 우수한 선원으로 보여진다. 함대에선 무시당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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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nelis de Witt (15 June 1623 – 20 August 1672) was a Dutch politician.

2차 앵글로-덧치 전쟁에서. 드 라우터 가 총 사령일때. 따르던 멤버 가 코르넬리드 드 비트.야. 1672년 드 비트 형제 들 죽일때 의 드비트 가문이야. 이사람이 두살 많은 형이고, 동생 요한 이 그랜드 펜션어리. 인 실세인겨.

드비트 형제 의 아빠 가 목재상 에 시장 급인겨. 정치력을 갖고 있는걸, 이걸 요한 이 갖고 가는겨. 형 은 전장에서 싸우는거고, 동생 요한 이 학자 들 이랑 교류하고, 데카르트 를 가르쳤던 이작 베이크만. 거 데카르트가 표절이라며 고소한 상대함. 이 홀란드 주의 원로들이 요한 의 배후가 되는겨. 이때 코르넬리스 가 트롬프 밑에서 2차 앵글로-덧치 에 참전하는거고. 그래서 홀란드 의 그랜드팬션어리 이자 레겐트 들이 갓 20넘은 오렌지 윌리엄3세 를 넘어서 얘들이 주도하는거야. 그래서 2차 때는 찰스2세 가 오히려 네덜란드 는 적이 된거야 자기 여동생에 조카 는 꼭두각시 신세인거고.

그러다가 1672 가 온겨. 1668년에 네덜란드가 잉글랜드와 손잡아서 프랑스 를 눌렀거든 프랑스 커가면 위협되니까. 스페인 너무 죽이면 안돼. 스페인 한테는 포르투갈 놓아주라 협박하고 그래서 포르투갈 독립하는거고. 이때 스위든 네덜란드 앵글로 의 삼자동맹 의 주도자는 네덜란드 인겨 이게. 이전 2차 앵글로-덧치 를 네덜란드 가 이겼거든. 스위든 끼어서 협박 하는겨. 저 뒤에서 브리튼. 앵글로 는 프랑스를 살살 꼬시는거고 찰스2세가 태양왕 루이한테. 야 저 네덜란드 저거 니랑 내랑 만들어준 나라인데 저거 같이 손보자우. 루이 가 이걸 받은겨 루이도 상속전쟁때 네덜란드가 삼자동맹맺으며 뒤통수 친것에 분노가 치밀어 올라 어떻게 니덜이 우리 프랑스 뒤통수를 쳐. 니덜은 잉글랜드가 만들어준게 아니라 프랑스 우리가 만들어준거야.

이게 1672년이야. 앵글로 와 프랑스 가 육지와 바다에서 저길 처들어 가는겨.

The naval Battle of Solebay took place on 28 May Old Style, 7 June New Style[1][2] 1672 and was the first naval battle of the Third Anglo-Dutch War. The battle ended inconclusively, with both sides claiming victory.

3차 앵글로-덧치 전쟁의 시작이 1672년 이야. 5월에 솔베이 전투. 솔베이 가 Southwold 지금 사우쓰월드. 더 와시 라는 뭉툭 만 의 아래 해변이야 서퍽의. 솔베이 회의 의 그 솔베이 는 프랑스 사람 솔베 고.
저 전투에 드 라우터 와 함께 간 인간이 코르넬리스 드 비트.야. 얘가 이때 병이 들어서 홀란드에 그냥 온거야. 그런데 이때 분위기가 민들이 싸 한거지. 1672 람프야르 구겨진해. 대체 니덜한테 오렌지 대신 맡겼더만 결국 프랑스 앵글로 가 쳐들어오는거냐 이거. 얘들 입장에선 저건 지금 미국 독일 이 연합해서 쳐들어오는 느낌이거든.

형 코르넬리스.는 현장에서 전쟁한 사람이고, 정치 는 동생이 한겨. 너 열심히 해 하면서 밀어준거고.

In 1667 he was the deputy chosen by the States of Holland to accompany Lieutenant-Admiral Michiel de Ruyter in his famous raid on the Medway. Cornelis de Witt on this occasion distinguished himself greatly by his coolness and intrepidity. He again accompanied De Ruyter in 1672 and took an honorable part in the great battle of Solebay against the united English and French fleets. Compelled by illness to leave the fleet, he found on his return to Dortrecht that the Orange party were in the ascendant, and he and his brother were the objects of popular suspicion and hatred.

메드웨이 전투 에서는 부사령관으로 드라우터 를 도와서 참전한겨. 쿨니스. 그야말로 쿨 함 과 용맹 으로 드날렸다. 1672년 에 솔베이 전투 에서도 드라우터 를 따라갔다 앵글로 프랑스 함대에 맞서서. 그리고 병들어서 함대를 떠나서 와보니까, 오렌지 들이 드세졌고. 형제들은 인민들의 의심과 증오의 대상들이 되어있었다.

동생 요한 이 정치적으로 문제가 많은겨. 홀란드 주 만 챙기고 자기의 상선들만 인정하고 오렌지의 해군 을  무시했거든. 적폐놀이 를 한겨 얘가. 저 형은 정말 억울한거야. 시민들이  두둘겨 패서 죽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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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나 프랑스 나 시민들에게 반짝 인기 있던 이들은 항상 시민들에게 목짤리거나 저리 갈갈이 찢어죽였걸랑.

게르만 애들이나 저럴 수 있는거야. 저 시민들이 잠시 이용당한걸 눈치 챌 지능이 되는거거든 게르만 애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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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참, ㅋㅋㅋ.

딜도 팔던 애가 놀아나는 말에 선동질 당하면서 인민재판 댓글놀이 하는거 보면.

여긴 망해야 해. 이 민들 자체가 저런 거 하나 해결 할 능력이 안되거든. 정치권 야당 자체가 더 썪은 애들이고.

야 여긴 아무런 미래가 없어.

유럽사를 보면. 걍 그런 느낌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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