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nglo–Spanish War was a war fought by Spain against the Kingdom of England and the United Provinces from 1625 to 1630. The conflict formed part of the Eighty Years' War and the Thirty Years' War.

앵글로-스페인 전쟁. 스페인에 대해서, 잉글랜드 킹덤과 유나이티드 프라빈시즈 가 연합해서 벌인 전쟁. 80년 전쟁과 30년 전쟁의 부분이다.

앵글로 하거든. 영국 이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잉글랜드 하기도 애매한겨. 제임스1세 로 1603에 잉글랜드 킹하면서 스콧이랑 유니온 하고 1707년 퀸 앤 때에야 유니온 법 이 통과해서 스콧의 의회가 지워지고 그레이트 브리튼 이되거든. 이걸 브리티쉬 라고 줄이거든. 저때는 브리티쉬 가 아녀. 이 브리티쉬 를 대게 역사학계에서 걍 앵글로 로 퉁쳐. 앵글로 란건 포르투갈이 잉글랜드를 칭하던 말이야. 집단의 이름은 다른 애들이 부르는거야. 포르투갈이 먼저 잉글리쉬 인간들을 앵글리쉬 한거거든. 잉글랜드는 포르투갈이랑 친한겨 콘트의 존 때문에. 포르투갈이 옆동네 카스티야 랑 내전하면서 잉글랜드 곤트의 존 이 끼걸랑 랭카스터 공작이.

하튼 그냥 영국-스페인 해. 헌데 엄격히는 이러면 안돼. 쟤들 발음으로 앵글로-스페니쉬 해주는게 맞아. 왜냐면, 일본님들이 영서전쟁 하시거든. 일본님들이 중국사 도 다 이름 지어주시거든 이전 중국사 썰했지만 중국사 이름들도 그게 일본님들 의 작명을 한글로 둔갑시켜 쓰는겨 이나라 사학계 꼬라지가. 

Anglo-Spanish War (1585–1604)

얘들 시작은 1565년 이여. 엘리자벳1세 때의 존 호킨스 와 프란시스 드레이크. 삼각 노예무역 하다가 멕시코만에서 배 고장나서 스페인 관할에서 수리하다가 뜬굼없이 스페인 총독이 갈리는 시기에 마침 가서 취임하는 애가 지나가다가 보고 공격해대면서 우리 드레이크 형님 겨우 살아남아서리 뼛속깊이 스페인에 이가 갈리거든. 십년 준비한겨 그래서. 존 호킨스 와 프란시스 드레이크 가 영국을 만든겨 저게. 영국 역사에서 가장 저평가 된 두 사람이야. 죽을 때도 바다에서 죽어 수장되고. 아 저 두사람 짠해 진짜. 흑인 문제로 취급 못받아 노예장사 했다고 ㅋㅋㅋ. 웨스턴이 저렇게 착한 척 하는 애들로 인해 결국 나중에 당하게 되어 있어 저게.

흑인애가 죽었어. 걔들 그 체포 프로토콜이 얼굴 가리냐 똑같은거지. 마약에 찌든. 전과 구범인가 그렇다미. 야 임산부 배 나온 여자를 총 을 그 배에 대고서 강도질 하던 애야. 마약에 쩔고 쩐.

오매 우리 흑인 죽었어 인종차별 ㅋㅋㅋ. 갑자기 영웅이야 ㅋㅋㅋ.

감옥의 흑인들 다 석방하라. 배심원들 흑인들로 채워라 ㅋㅋㅋ.

세계대전에 가장 실수는 내셔널리즘 을 만들어서 그냥 그대로 준 웨스턴애들 책임이야. 그이후 아프리카 대학살 지들 끼리  죽여. 저 이후 아프리카 애들끼리 학살 하는건 정말 저건 지옥이야 지옥. 아 참 그럼 또 저건 웨스턴 애들 탓. 이러고 말겠지.

쟤들은 원래 저렇게 살아온 애들이야 15세기 웨스턴 애들이 헨리 네비게이터 가 들어가기 전에도. 서로 서로 전쟁하면서 인육 처먹던 식인종 애들이고. 이건 팩트여 팩트. 허먼 멜빌 의 모비딕 을 소위 레프트 가 가장 빠는 위대한 문호 여. 미국 이란 배 가 침몰해서 쟤는 위대한겨 문학계에서 ㅋㅋㅋ. 백인 주인공이 이스마엘 이야. 오메 이름 신선해 이스마엘 무슬림 짱. 퀴퀘그 오메 남태평양 원주민. 우왕 위대한 문학. 이짓 하는겨 그래서. 저 퀴퀘그 가 누구여? 식인종 이야 식인종.

압살롬 압살롬 의 오크너 에서 서트펜 이 아이티 에서 원주민 반란 진압하고 미시시피로 오는거야. 저때 아이티 가 프랑스 에서 나오는 거야 독립해서. 우왕~ 위대한 아이티 드디어 독닙!!!

서로들 조오오온나 게 죽이는겨 저게 아이티 역사야 독립 하고서리.

부두교. 오컬트만  하는거고.

부두교 가 동양의 유교여 ㅋㅋㅋ. 저게 이나라가 부두교 의 나라야. 무당이  수십만이야. 테레비 드라마 캐릭터 에 항상 나오는게 무당이야. 굿 하고 부적 하고 오메 인생 풀려 액운이 사라져 할배 할매님 감사. 저게 부두교 와 다를 게 없는겨.

부두교 세상이 된겨 이제 이 나라가 다시. 다시유교가 등장하면서 민족과 함께.

골때리는거다 저게. 유교 란건 사람죽이는 종교여.

阮籍痛斥禮教毒害人民,鮑敬言認為禮教「救禍而禍彌深」
魯迅小說《狂人日記》總結兩千多年的封建禮教:
“ 我翻開歷史一查,這歷史沒有年代,歪歪斜斜的每頁上都寫著『仁義道德』幾個字,我橫豎睡不著,仔細看了半夜,纔從字縫裡看出字來,滿本都寫著兩個字『吃人』。

흘인. 사람잡아먹어라 라는 네글자 인의도덕. 중국들은 저런 각성 까지는 왔는데 워낙 중국몽 을 꿈꾸는 조선애들이라서 저 3세기 애들에 노신 애들 의 수준이 안되는겨 이게.


저런 애들이 선생님으로 추앙 받는 나라의 지금 수준이 어련하겠냐. 아 이젠 도덕성 검증도 공개 불가 법이야. 자기들을 웨스턴 수준의 도덕성 검증 을 하면 안된다는거야. 그건 차별이야 인종차별. 자기들은 도덕쩍으로 구데기 수준인걸 알아. 웨스턴 의 그 높디 높은 잣대를 들이대면 안돼. 우리는 허섭들입니다.  어차피 우리 도덕 수준은 말장난이거든요 웨스턴 애들 잣대를 따라하면 안됩니다. 조선 시대때 로 돌아갑시다 조선에서 대신 대간 뽑는데 그런거 공개합디까? 웨스턴 양키 애들을 벗어납시다요 대체 우리가 웨스턴 애들을 왜 따라하는 겁니까? 중국님들이 저런거 합디까? 북조선 님들이 저런거 합디까? 양놈들 문화에서 벗어나세요! 독립 적으로 삽시다요 ㅋㅋㅋ.


조선이란 정체성 은 지쩍 장애 와 도덕쩍 장애. 야. 항진명제다 이건.

다행이야. 아시아가 지워져서. 이백년 기다리면 다 지워진대.

존호킨스가 1595년 11월에 죽고 프란시스 드레이크 가 다음해 1월에 죽어. 그리고 후예들이 계속 해전하고 그러다가 제임스1세 가 취임하면서, 1차 앵글로-스페니쉬 전쟁이 끝나. 이 제임스 는 졸 평화주의자야. 엘도라도 에 찾으러 다닌 월터 롤리.도 저기 가서 문제일으켰다고 제임스 가 사형을 시키잖아.

그러다 30년 전쟁이 터진겨. 80년 전쟁 의 후반전이. 80년 전쟁 도 엘리자벳1세 는 절대 금지였어 개입. 그러다가 이게 어찌할수 없이 존 호킨스 에 드레이크 의 해적질로 스페인 배들 약탈하면서 돈 맛을 들인겨 엘리자벳 이. 그러면서 이게 1588 스페인 아르마다 로 가고 이걸 이기면서 본격적으로 대륙 80년 전쟁에 개입 한거걸랑. 이 영국 이란 나라는 이 엘리자벳 1세 에 저 두사람이 만든거야 저걸. 딴 나라 들은 욕을 할 지언정 영국 애들은 욕하면 안돼 저 세사람을. 떠받들어야 해. 엘리자벳을 가장 증오하는 애들이 아일랜드여. 더하여 퀸 앤.도. 스콧이랑 합친 브리튼 만든 여자여. 이후 백년 지나서 아일랜드 의회 지워지고 완전히 들어간건 저놈의 퀸 앤 이야. 제임스 조이스 의 율리시스 서사 내용이야. 아 정말  찌질한. 나중에 저 아일랜드를 해부해줘야 하는데. 아 골때리 이 아일랜드. 진짜.

제임스가 1603년에 취임하고, 네덜란드 독립전쟁 후반전 에 지지부진 개입하면서 국경선 정리하는 와중에 12년 휴전이 시작이 된거야 1609년 에. 제임스 가 이전에 스페인과 바다 에서 니덜 개입 안하겠다 약속 해주고, 대륙 은 그냥 그상태로 두다가 휴전하면서 제임스가 완전히 발을 빼. 그러다가 1618년에 30년 전쟁이 다시 터진거야. 이때도 자기 딸 엘리자벳 스튜어트 가 팔라틴에 시집 갔지만, 개입 안해. 아직 때가 아니야 브리튼 은. 엘리자벳 이 잘 본겨. 거지여 거지 얘들은. 1588 아르마다 이긴건 그야말로 존 호킨스 의 십년 철저한 준비 에 프란시스 드레이크 의 그동한 해전 경험 에 의함이여 이건. 저건 잉글랜드 라는 나라 차원에서 이긴게 아녀 저건. 스페인 에 마침 바다 전문가 가 없었으며, 원래 스페인애들은 바다를 몰랐으며, 스페인 애들의 오컬트 로 잉글랜드 는 이긴거야. 하나님이 카톨릭 이 정의 이니까 하나님이 자기들을 보호 해 줄것이고 저놈의 앵글리칸 은 사탄이니까 당연히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줄거야 물론 물자도 더 넉넉하고 그래서 하나님이 당연히 우리를 이기게 해주는거야. 스페인은 이 오컬트 로 대패한거걸랑. 잉글랜드는 완전히 저런 오컬트의 미개한 마음 의 애들을 재수좋게 이긴겨 1588 아르마다 라는건. 이걸로 네덜란드 라는 나라가 만들어진거야 잉글랜드가 저 이후 적극적 개입해주면서.

그래도 아직은 잉글랜드 는 약해. 거지여 거지. 제임스1세가 취임했어. 거지여 거지. 스페인 무서워. 당연히 무서워 해야 해. 쟤들은 당시 중남미의 금은 으로 용병들 사들이면서 플랑드르 군대 를 유지하면서 군병원 에 군 막사를 짓던 애들이야 최고의 장비와 함께. 저걸 어떻게 이기냐고. 제임스 는 잘 본거야. 저기 괜히 개입하다가 자기 나라 지워져 저건. 현실 적 인간이여. 의기 와 패기 도 어느정도 갖춘 게 있는 상태여야 통하는거야 그건. 대부분은 객기 일 뿐이야. 그래서 조선 이란 애들도 지워진거고. 아니 얘들은 객기 도 없지 참. 걍 도망 가는게 전문이니까.

잉글랜드는 30년 전쟁에 공식적으로 불참 이야. 개인적으로 갈 애들만 간겨. 제임스는 눈치 못채게 은근히 지원해주는 거고. Horace Vere 틸버리 의 배런, 호러스 비어. 아르마다 이후 네덜란드 들어갔다가 휴전해서 나오고 다시 30년 전쟁 터져서 브레다 포위 현장에 있던 사람. William Craven 크레이븐 백작 윌리엄 크레이븐. 팔라틴 부인 엘리자벳 사모하던, 갑자기 결혼으로 돈 번 사람. 머 이런 정도여. 딸 엘리자벳 스튜어트 는 망명하면서 떠돌아 모리스 코트 헤이그에 가있어도, 제임스 는 저기 개입 안하는겨. 그래서 영국사 에선  용기없는 놈, 바보 제임스 하거든. 천만에. 아직은 저때는 잉글랜드는 힘이 없어 저게.

George Villiers, 1st Duke of Buckingham, accompanied the Prince of Wales on a trip to Madrid to arrange the details of the proposed wedding between Charles and Maria Anna of Spain, however these negotiations proved unsuccessful.

오히려, 스페인과 잘해볼라고, 펠리페3세 의 딸 마리아 안나.와 찰스 뒤에 1세.를 결혼 시키려는겨. 버킹엄 공작 조지 빌러즈. 가 협상으로 가는데. 실패해. 될리가 없거든. 펠리페 애들이 워낙 카톨릭 꼴통이어야지.

저때 잉글랜드 애들이 킹 이랑 코트 와 팔리어먼트 에서, 결국 어느 한 쪽을 취할 수 밖에 없어 이게. 헨리 8세 부터 얘들은 이탈리아 전쟁에 개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대륙에 개입을 하거든. 이전엔 진짜 이건 듣보잡이야. 백년 전쟁 하면서 어머 저기 잉글랜드 가 프랑스 에서 나와서 따로 생겼나 봐? 할 정도여 저건. 리차드 가 레반트 원정 십자군 가는것도, 여보세요 여기 우리 잉글랜드 란 나라도 있당께! 하는 마케팅이여.

결혼협상이 실패했어. 펠리페3세에 대한 느낌이 싸 한겨. 스페인은 아일랜드 독립한다며 엘리자벳 때 대들때 지원하기 시작한거거든. 아일랜드 애들한텐 지금도 스페인 은 은인이여. 제임스 조이스 한테 펠리페 애들은 성인군자여. ㅋㅋㅋ.

The 1624 Parliament voted three subsidies and three fifteenths, around £300,000 for the prosecution of the war, with the conditions that it be spent on a naval war. James, ever the pacifist, refused to declare war, and in fact never did. His successor, Charles I, was the one to declare war in 1625.[3]

팔리어먼트 에서, 전쟁 준비를 하는거야. 제임스 는 평화주의자야. 아 그래도 전쟁은 안돼. 더하여. 돈이 없어 얘들은 아직은.

팔리어먼트 에서 보팅 을 하는게 세개 서브시디. 세개 피프틴뜨. 해서 프로서큐션 한다는건, 자기들이 상대 나라를 범죄자 취급해서 법적으로 처리하겠다는 개념이야. 30만 파운드 를 전쟁 자금으로 예산 확보하는데, 대부분 해전 용인거지. 1624년 때 제임스는 60세여. 다음해 죽어. 찰스1세가 24세여. 찰스 는 찬성이고. 제임스 가 명분이 약한겨 이제. 곧 스페인은 네덜란드 정리하면 잉글랜드도 분명히 쳐들어오게 되어있거든.

서브시디. 라는게. 씨도. 나는 앉다. 씨데레 명사여. 바닥에 앉아있는 것. 이 이게 토지세야. 토지 에 관련된 세목 에서 세 개를 갖고 오는겨 자기들 나름 예산 비중에서. 피프틴뜨 란게 15분의 1 이잖아. 이게 상품에 매기는 세금이야. 이때 얘들 의 상품에 매기는 세율이 15분의 1 이란거야. 텐뜨 십분의 일.이 교회에서 걷는 십일조 고. 토지세 와 상품세 에서 세개 세개 씩 갖고와서 전쟁자금 마련 위한 투표를 한거야.

저해 1624년 에 브레다 가 포위되고, 다음해 모리스 가 죽어. 그래서 포위된 브레다 의 네덜란드애들이 협상해서 나가는겨. 브레다는 스페인에 주고

By October 1625, approximately 100 ships and a total of 15,000 seamen and soldiers were readied for the Cádiz Expedition. An alliance with the Dutch had also been forged, and the new allies agreed to dispatch an additional 15 warships commanded by William of Nassau, to assist in guarding the English Channel in the absence of the English main fleet. Sir Edward Cecil, a battle-hardened veteran of combat in service with the Dutch, was appointed commander of the expedition by the Duke of Buckingham, a choice that proved to be ill-considered. Cecil was a good soldier, but he had little knowledge of nautical matters

브레다 를 스페인 에 주고. 잉글랜드 는 1625년 에 찰스1세 가 취임한거야. 3월에 제임스 가 죽고. 나싸우 모리스가 4월에 죽은거야. 찰스 는 구혼 거절당해서 기분 나쁜거고 얜 하이처치 하이앵글리칸 이야 목표가. 카톨릭 을 섞어서 아일랜드 스콧을 묶는겨 얘 미션은. 이걸로 목 짤린거고. 제임스 가 그래도 반대해서 미진한걸, 모리스 도 죽고 브레다 도 스페인에 주고, 잉글랜드 애들이 찰스 복위 하면서 스페인을 쳐 들어가는겨. 100개 배와 1만5천의 병력과 선원들. 카디스 원정. 헌데 이때, 제임스 때 스타 가 되서 심복이 된 조지 빌러즈. 가 제임스 때에 버킹엄 백작에 마퀴스 후작에 바로 공작 이 돼 이사람이. 이사람이 해군 애드머럴. 이야. 총 책임자야. 헌데 저 카디스 원정 의 사령관에 에드워드 세실 을 앉힌겨. 이 사람이 육군용 이지 해전은 잼병인거야. 저때 네덜란드는 나싸우의 윌리엄 이 모리스의 배스타드고 15개 전함 으로 가서 여기 메인 은 잉글랜드 인겨. 이걸 대패 하는겨. 스페인 아르마다 때 바다 모르던 인간이 사령관 해서 대패 한 꼴을 그대로 한겨 얘들이.

The Siege of Saint-Martin-de-Ré, also Siege of St. Martin's (French: Siège de Saint-Martin-de-Ré), was an attempt by English forces under George Villiers, the Duke of Buckingham to capture the French fortress-city of Saint-Martin-de-Ré, on the isle of (near La Rochelle), in 1627.

The Siege of La Rochelle (French: Le Siège de La Rochelle, or sometimes Le Grand Siège de La Rochelle) was a result of a war between the French royal forces of Louis XIII of France and the Huguenots of La Rochelle in 1627–28.

생 마르탱 드리 포위. 라로셸 포위. 저기가 보르도 의 가론 강에 그 뾰족 삼각만 지롱드 해변 위 의 항구야. 두개 인접한. 생 마르탱 드리. 는 잉글랜드가 요새를 갖고 오려고 쳐들어가는거고. 라 로셸은 위그노 들이 성을 지키는 것을 리슐리외 가 대포 질 하면서 점령하려는 거거든.

잉글랜드가 카디스 원정을 패해. 헌데 계속 스페인을 못 쳐들어가. 저때 터진게 프랑스 위그노 가 반기를 다시 들걸랑. 스저 라로셸 은 아키탄 해변인데 여기가 끝까지 잉글랜드 정체성을 갖는 지역이여. 잉글랜드는 실지왕 존 이 다 뺏기고, 칼레 도 뺏겨서 피의 마리가 억울해 한거고. 칼레 뺏기고 피의 마리가, 내가 죽어서 나를 해부하면 내 하트엔 신랑 펠리페 와 칼레 가 있을거라 했거든. 헌데 저 라로셸은 그래도 은근히 잉글랜드였던겨 저게. 여기서 위그노 들이 갑자기 들고 일어나고, 스페인 을 치면 리슐리외 돕는거야 위그노 저 라로셸 죽이는거고. 잉글랜드가 바로 방향틀어서 생 마르텡 드리 를 뺏으려다 실패하고 라로셸 로 들어간거야 위그노 지원하러. 이게 다 실패한겨.

여기 총 책임자가 조지 빌러즈.야. 버킹엄 공작. 찰스1세 도 즉위해서 가장 신임 하던 인물인데, 안짤려. 전쟁 패배는 무능력 그자체거든.

버킹엄. 버킹검이 아니고. 우리가 들어본 결론은 버킹엄 은 지금 버킹엄 팰리스 왕실 이고. 버킹엄 공작 이 백년 전에 생긴 자리를 끊긴걸 제임스 가 조지 빌러즈 에게 준거야. 이 버킹엄 은 지금 런던 왼쪽 두른 싸우쓰-이쓰트 주.이의 니은 모양.의 왼쪽 위에가 버킹엄셔. 의 북쪽이야. 이 왼쪽이 옥스포드셔고 아래가 버크셔 여.

조지 빌러즈 버킹엄 공작.이 무능에 펀딩도 못받아. 저때 자기돈으로 전쟁을 한겨. 찰스1세 가 팔리어먼트 를 증오 하잖냐. 아빠 무시했던 거 보고. 이걸 짱돌을 맞은겨 조지 빌러즈.가. 나라 전쟁하는데 자기 돈 쓰는겨 이게. 찰스가 할수 없이 팔리어먼트 를 3년만에 연거야. 즉위하고. 이때 나온게 권리 청원 이라는 퍼티션 오브 라이트.야. 어이 찰스, 의회 무시 말어. 너 만의 세금도 없어 이제 우리 허락 맞고 써. 얘들이 단단히 벼른겨. 그리고 조지 빌러즈 가 암살을 당해 자기 휘하 군인 에게. 얘가 진급 누락이 된걸 앙심을 품고 죽이는겨.

찰스 1세 가 이 조지 빌러즈 가 암살 당하고, Thomas Wentworth, 1st Earl of Strafford 스트랫포드 백작 토마스 웬트워뜨 가 의회에서 사형 압박해서 처형 하면서, 내전이 시작하는건데, 이 두사람의 죽음이 찰스 에겐 결정적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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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가 저 라로셸 전투 1627년 때 31세여. 저때 저기 참전한걸로 봐. 물론 카톨릭이고 리슐리외 편이여. 그리고 다음해 네덜란드 간거야.

The Anglo-Spanish War was a conflict between the English Protectorate under Oliver Cromwell and Spain, between 1654 and 1660. It was caused by commercial rivalry. Each side attacked the other's commercial and colonial interests in various ways such as privateering and naval expeditions. In 1655, an English amphibious expedition invaded Spanish territory in the Caribbean. In 1657, England formed an alliance with France, merging the Anglo–Spanish war with the larger Franco-Spanish War resulting in major land actions that took place in the Spanish Netherlands.

앵글로 가 카디스 원정 을 시작으로 1625-30 이지만, 브리튼은 라로셸 위그노 에 집중하면서 저 기간은 거의 무의미 한거고. 올리버 크롬웰 이 찰스2세 를 Worcester 우스터 전투 1651년 에 이기고 찰스 대륙에서 네덜란드를 가고, 바로 얘 지원하는 네덜란드 랑 전쟁하는게 앵글로-덧치 1차전쟁. 1652–1654 이야. 잉글랜드가 네덜란드 앞바다 가서 초기 조진겨. 그리고 나서 크롬웰 이 프로텍터 가 돼. 이게 1653년 이고. 찰스1세 모가지 짜른 1649년 부터 영국의 공식명칭은 카먼웰쓰.야. 이게 찰스2세 복귀하는 1660년 까지여.

크롬웰.이 자리를 잡았어. 그다음에 얘 외교적 계획이 웃긴거야. 바다 건너 두 거대용이 스페인 프랑스 인데. 프랑스 가 30년전쟁 의 후반전 1635년 에 직접 개입하면서 프랑스는 프롱드 로 30년 전쟁 마무리 하지만, 계속 이어서 스페인과 전쟁이야. 이게 프랑스-스페인 전쟁이야 1635년 부터 별도의. 이미 1648년 30년 전쟁 끝났어. 계속 전쟁을 해 둘은

크롬웰이 저 둘이 지금 전쟁중인 상황에서, 저 둘은 모두 카톨릭 이여. 얜 철저한 퓨리튼 이야. 그렇다고 지가 갑자기 저 둘을 상대할 건 아니잖오 ? ㅋㅋㅋ 미친놈도 아니고. 저 둘중에 누굴 칠까 를 고민을 하는겨.

The Western Design refers to Oliver Cromwell's expedition to the Caribbean which left England at the end of 1654 as part of the Anglo-Spanish War (1654–1660).[1] Preparations for the expedition were organised by a committee headed by Cromwell's brother-in-law, John Desborough, established in August 1654.[2]

얘가 만든게 웨스턴 디자인. 이야. 얘들은 경제적 동물이야. 이 웨스턴 이란 인간들은. 고대 그리스 도 상업 도시들 개척하는거고 로마 도 돈이여 돈. 상업 이 문명의 중심 인걸 뼛속 깊이 아는 애들이야. 로마 평화 의 아우구스투스 도 상인들 추앙에 금화 던지면서 당신들이 우리 문명의 젖줄이요 이 금화로 이집트 물건 사고파쇼 당신들이 우리문명의 핵이요. 카이사르 도 이전에 갈리아 원정 하면서 데리고 다닌게 상인들이야.

이걸 가장 부정하는 애들이. 지쩍 으로 저능한 장애들인 조선 애들인겨. 돈 벌면 적페여. 자본주의여. 이 자본주의 란 것도 일본말이야. 캐피탈리즘 이 왜 대체 자본주의 ㅋㅋㅋ.

쟤들은 저 신앙에 미친 애 조차, 돈 벌 궁리 하는 겨. 일본은 경제적 동물이여 무셔 나뽀 ㅋㅋㅋ. 참 한심한거지.

프랑스 나 스페인 이나 자기들 경제 의 경쟁자들이지만, 스페인 이 더 크다. 스페인의 것을 우리가 갖고 와야 한다 경제적으로. 저 항로 를 우리가 취해야 한다. 의회에서 반대를 해, 불가능하고 돈이 너무 든다. 아직은 아니라는겨. 헌데 이걸 강행해. 자기 여동생의 신랑인 제부 존 데스버러. 를 책임자로 해서 추진을 하는겨. 얜 크롬웰 말년에 재혼하고.

The fleet left Portsmouth in late December 1654 and arrived in the West Indies in January. In May 1655, an English amphibious expedition led by General at Sea William Penn, father of the founder of Pennsylvania, and General Robert Venables invaded Spanish territory in the West Indies with the objective of capturing Hispaniola. It was one of the strongest ever to sail from England, with some 3,000 marines under the command of General Robert Venables, further reinforced in Barbados, Montserrat, St. Kitts and Nevis.

얘들이 처들어 가는겨. 1654년 12월에. 서인도 제도로. 히스파니올라. 아이티 도미니칸 공화국 지금. 콜럼버스가 처음 도착한 곳이고 히스파니올라 이름 만들어서 여기가 중심이야 스페인 신대륙 진출의. 아 졸 대담해. 이때 사령이 윌리엄 펜. 이고. 펜실베니아 시작한 퀘이커 윌리엄 펜 의 아빠고. 이전 네덜란드 1차 해전에서 네덜란드 우리 형 마르텐 트롬프 를 죽인 배의 선장이여. 트롬프 암살 해서 저때 짱 먹은겨 30대에. 내전 때 크롬웰편인 거고.

같은 사령 이 로버트 베너블즈. Robert Venables. 결국 히스파니올라 는 못 가져오고 자메이카 를 갖고와. 그리고 복귀해서리 목표 미달성으로 둘 다 런던탑에 갇혀. 그리고 옷벗는겨. 윌리엄 펜은 아일랜드 땅 까지 몰수 당하고. 살벌한거지. 철저한 능력주의 냐. 쟤들이 오래 못 간 이유야 크롬웰 애들이.

The Experienced Angler, in 1662 . 로버트 베너블즈 가 캐셔링 cashiered. 옷 벗는겨 군대. 그리고 나서 은퇴하고 쓴 책이 경험많은 낚시꾼(앵글러) 책을 내. 낚시꾼들 필독서여. 이사람이 낚시 로 유명했걸랑.

저 둘도 왕정복위되고도 걍 잘 살아.

General at Sea Robert Blake (27 September 1598 – 17 August 1657[1]) was an important naval commander of the Commonwealth of England and one of the most famous English admirals of the 17th century. His successes have been considered to have "never been excelled, not even by Nelson" according to one biographer.[2] Blake is recognised as the chief founder of England's naval supremacy,[3][4][5][6][7] a dominance subsequently inherited by the British Royal Navy[8] into the early 20th century. Despite this, due to deliberate attempts to expunge the Parliamentarians from history following the Restoration, Blake's achievements tend not to receive the full recognition that they deserve.[4][9]

저때 브리튼의 바다의 스타.는 로버트 블레이크.야. 윌리엄 펜 이나 베너블즈 의 아빠뻘이여. 크롬웰 애들이  젊은애들은 저리 보내고 타워 가두고. 로버트 블레이크 가 내전 때 바다를 책임진겨 이때 바다 왕정 상대는 루퍼트 프린스.고 머 상대랄 것도 없지만. 그리고 네덜란드 1차 때 도 사령 이고. 스페인전쟁땐 젊은애들은 서인도로 보내고 스페인 본대 를 상대하는게 로버트 블레이크 야. 외팔이 넬슨 보다 더 쳐줘. 결코 더 우수했던 사람은 없었다. 넬슨조차도 안된다. 어떤 사가 왈. 크롬웰의 핵심인겨 바다의. 따라서 왕정복위 해서, 죽은 애들 시체 꺼내서 크롬웰에 다른 세명 다 목짜르고 한구덩이에 버리걸랑. 그때 이 블레이크 는 목을 안 짤르고 그냥 버려. 어쨌거나 바다에서 브리튼의 이익을 위해서 싸워준거에 대한 공으로. Bridgwater 브리지워터 사람이야.서머싯.의. 바로 브리스톨 해협이고.

로버트 블레이크 가 카디스 등을 쳐들어가면서 완전히 스페인이 맥을 못추고 프랑스와의 전쟁에서도 스페인이 물자가 끊기는겨. 프랑스가 같은 카톨릭 과 전쟁하지만 저때 크롬웰과 손잡아서 스페인을 더 처부수는거고. 그러면서 덩케르크 를 잉글랜드가 갖고 오는겨. 자메이카 도 저 펜 이랑 낚시꾼이 갖고 오고.

저 틈에 살아난게 네덜란드야. 잉글랜드 가 스페인 본토 를 막으면서 프랑스 도 편해지고 네덜란드 는 더 편해지면서 상업을 더 확장해서 북미로 진출을 하는겨 보다 나은 원가경쟁력으로. 그리곤 크롬웰이 죽고 찰스 복권 되면서 앵글로 스페인 전쟁은 일단 1660년에 마무리 되는거고, 프랑스 도 저때 다급해진 펠리페4세 가 딸 마리아 테레사 를 태양왕 루이 와 결혼시키면서 프랑스-스페인전쟁을 마무리 한거야.

펠리페4세 가, 찰스2세 복위하고, 너  크롬웰때 갖고 간 땅 자메이카 랑 덩케르크 줘. 찰스 는 준다고 했거든. 펠리페 가 찰스2세 복위하는데 협조한거고, 외교력으로. 그런데 복귀하고 보니까, 찰스가 옛생각하니 서럽걸랑. 딱히 머 펠리페랑 태양왕루이 랑 잘 해준게 없어 찰스한테. 특히나 펠리페 는 더 서운하게 군거야. 안주고, 덩케르크 를 루이한테 팔어 돈받고. 그리고 오히려 이 찰스는 카톨릭 전향해서 태양왕 루이 랑 손잡아서 자기 의회 장악하려다가 미수에 그치고 죽고나서 공개 되는거고.

그리곤 브리튼이 크롬웰때 스페인을 바다에서 막으면서 네덜란드가 이때 힘이 생겨서, 부딪히는겨 다시 브리튼과 신대륙 시장에서. 브리튼 애들이 네덜란드 선ships 을 약탈해 열받아서. 이게 2차 앵글로-네덜란드 전쟁이야. 1665 – 1667. 헌데 이때는 네덜란드 가 전혀 다른겨 1차 때 크롬웰이 자기들 앞바다 왔을때 보다. 얘들이 오히려 영국 앞바다 메드웨이 까지 쳐들어오는겨. 아 음청나 이 네덜란드.


저 와중에 1662년에 시작한게 포르투갈 독립운동이야. 이게 결국 모두 앵글로-스페니쉬 1654-1660 에서 저 로버트 블레이크 가 스페인을 바다에서 막은 힘이여 이게. 완전히 입구가 막힌겨 대륙으로 가는. 스페인이 프랑스 랑도 부랴부랴 결혼으로 마무리 하고, 크롬웰이 죽어서리 앵글로 들이 돌아가고 하면서 얘들은 힘이 쫘악 빠진겨. 그리고 바로 상속전쟁이야 펠리페 4세 죽고. 바로 앵글로 가 개입을 하는거야. 프랑스애들한테. 앵글로 나 프랑스 나 네덜란드 를 손봐줘야해. 왜냐면 저 네덜란드는 앵글로 와 프랑스 가 만들어준거야 저건. 헌데 저 네덜란드가 프랑스 상속전쟁 한창중에 뒤통수 치고 앵글로 에겐 메드웨이 까지 쳐들어온거거든. 앵글로 와 프랑스 가 네덜란드에 부들부들 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야. 저것들이 나라 만들어줬더만 칼을 우리한테 향해?

어이 루이 태양왕, 스페인꺼 상속 받을게 잇냐 그거 그거 나중에 처먹어. 나 카톨릭 이야 원래. 나 팔리어먼트  싫어. 스페인 까지 너 그리 조지면 니 힘 졸 크는거 부담돼 넌 그냥 멈춰 거기서, 니캉 내캉 손잡고 네덜란드 조지고 너 군대 좀 빌리도 나중에 저 팔리어먼트 좀 조지자 내가 카톨릭 하께. 안그러면 너 내가 쳐들어갈껴. 스페인 한테 가서는 니덜 아무 힘도 없어 이제, 너 스페인  포르투갈 풀어줘. 말안들으면 또 처들어 간다 이전 블레이크 가 간것처럼.

앵글로 가 네덜란드 랑 2차 전쟁 하고 울며 겨자먹기 로 손잡아서 스위든 과 삼자 동맹해서 상속전쟁 때 프랑스 상대하는 와중에 앵글로가 이리 협박을 해댄겨. 프랑스는 저런 네덜란드에 부들부들 댄거고.

이게 1668년 이야. 그리고 나서, 네덜란드 1672년 이 오는겨. Rampjaar 람프야르 라는 구겨진 해. 프랑스 와 앵글로 가 동시에 처들어가는겨.

할때. 앵글로-스페니쉬 의 1654-60 인 크롬웰 때 자메이카 갖고오는건 오히려 조금 갖고 왔다고 런던탑 갇히는거지만, 무엇보다 저 로버트 블레이크 의 스페인 앞바다 막은게 완전히 유럽사 를 다른 판으로 만든거고. 이때 부터 스페인은 끝의 시작을 간거고, 그야말로 영국의 시대를 알리는거야. 저 크롬웰 때의 로버트 블레이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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