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기 이야기는, 인류 문명사 칠팔천년 동안의 가장 압도적인 이야기야. 내가 이점 에 관한 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에게 절대 양보 못해. 당연한거야 저들은 지금 나 만큼 걍 컴 하나로 전체 세상을 못봐 이전까지의. 저런 자료들이 내가 보듯이 널렸지만, 이렇게 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이 조선땅 이  최악의 땅 의 인간 만이 볼수 있고 그게 나야.

 

웨스턴인간들 조차도 나만큼 이런 역사를 본 인간이 없었고 지금 도  없어. 에코 할배도 못봤어 이렇게. 우리 귀에 익숙한 문명사 의 웨스턴 애들 수준이 그게 허섭한거야. 사상사 는 콰인 이 제일 잘봤어, 서기 2000년에 안녕하신, 지금 졸타 가 제일 잘봐. 졸타의 스탠포드 철학백과사전이 최고야. 내가 이전 아리스토텔레스 이야기의 카테고리 MECE 미시적 관점 때 제너럴하게 익스클루시브 한 관점으로 카테고리를 서술했다며 인용한 구절 이 스탠포드 사이트였어 내가 지금 보니. 저들 그라츠 학파가 지금 최고야. 그러나 내가 저들 보다 더 넓고 깊어 이 글들에서. 

 

그래서, 이 반도 애들이  무지해서, 포탈은 처 막아서 못들어오게 하고, 디다보는 애들도 머리가 썪어서 이 쉽게 풀어주는 것도 골치아픈거고, 해서 혹시나 관심있는 몇몇이나 보던가, 유입수 보믄 머 안보는것과 마찬가지라 한편으론 씁쓸하지만, 별 생각 없는 벌레 수준 의 지능 애들이 이걸 봐서 뭔 의미가 있겠니, 타이핑질 하면서 내 생각 정리 하면 되는거고, 내가 이걸 찐하게 애브스트랙트 오브젝트 로 가져 갈꺼야, 절대 안 잃어져 이건. 내 마음 안에 Objecitivity 오브젝트적인 것들로 고스란히 남아있을거야. 내가 이걸 써오면서, 그러다 다나흐 글 보면서, 아, 난 솔직히 이걸 정리하는걸 별 기대감 없이 한거걸랑 나 자신에 대해서. 먼가 엉키거나 문제될 것을 정리하고자 이걸 내가 한거지 가장 우선적으로, 슈퍼내추럴 한 것이 보일까 라는 거의 기대도 되지 않을 기대감 을 없는 듯이 찾는 막연한 기대감의 호프 가 두번째 였는데. 

 

그래서, 니덜 몇몇 혹 땡기며 보다 말다 하는 니덜 몇몇은 분명히 먼가 트일껴 내 글들로. 먼가 새로운 힘이 생길거야 혹 젊은 애가 본다면.  자양분이 될거다 니 니덜한테, 나와 뭔 상관이겠냐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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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너무나 너무나 기대치 않은 것을 확신하게 되어서, 이 단계에선 좀 기뻐. 

 

일단, 확신은, 윤회 라는 끊임없는 삼사라 는 있어. 환생 있어. 헌데 이건 머 있을껴 하다가 그래 있어 라는 확신 이 든다지만 그렇다고 이게 찐하게 나의 오브젝트 의 의미로는 닥아오진 않아. 선업선과 악인악과, 거짓말이야. 의미 없는 잣대야. 윤회 가 있다고 솔루션 은 희미해 그렇다고 그 상황에서 싯달타 의 12연기 에 고집멸도 의 프로포지션 에 8정도 라는 맨니피스테이션 이란 선언 문이 안닥아와. 왜? 난, 싯달타 가 본 저 화면을 못봤어, 논리적 으로는 그럴싸 하도, 내가 저걸 강력하게 믿을 수 없어. 내가 저 화면을 못봤어. 싯달타 는 봤어. 자기의 인코드 로 사람들에게 별 주장질을 하지만, 그걸 믿는건 그건 오컬트 야. 저걸 믿기 위해서 나무아미타불 만 하던지 진언만 주구장창 하던지 하면서 믿음을 돌덩이로 만들려는 애들이 숱해온 거고. 

 

싯달타의 짓은 인간 의 문명 에 절대 답이 될 수 없어. 저건 인간 문명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아무런 도움도 안돼. 걍 산속 처박혀 서 나무아미타불만 해대면 되는겨. 뭔 의미가 있어 저게. 저런 식으로 어떤 개 사이비종교질이 성행하는거야. 싯달타가 옳다 그르다 를 떠나서. 

 

영혼은 있어. 이것도 확신이 생겼어 내가. 

 

싸이키, 있어. 프로이트가 맞아. 세계사 를 정리 안해왔으면 프로이트 가 와 닿지 않았어.

 

무의식은 싸이키적 인거야. 프로이트의 명제야. 맞아.

 

집단무의식 이 개인 무의식 의 아래서 인간을 더 조정해. 칼융의 명제야. 맞아 이게. 

 

아들러 는 단지 프로이트 와 칼융 의 프레임에서 자기의 단어로만 주장질 하는겨. 어릴대 인식한 인식세계 가 인간 심리를 결정하는겨. 그 인식된 세계관 이 결국 프로이트 와 칼융 의 개인 무의식 과 집단 무의식 의 다른 파편의 말일 뿐이야. 

 

저런게, 있어. 확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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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업선과 악인악과 환생으로 보답. 없어 그딴거. 오직 하나의 기회는 영혼의 진화 승화, 영혼의 확장된 자 만은 다른 환생을 취해. 

 

지능과 영혼의 진화. 는 유전자 정보 와 전혀 상관이 없어. 종의 기원 의 진화 는 진화 가 아냐. 그냥 외형의 변화 들의 나열일 뿐이야 종 이란건. 지금까지 파악된 유전자 기술 그림으로는 인간이란 종과 침팬지 고릴라 종 과의 유전자 정보 차이는  미미해. 그 일이퍼센트 의 차이 가 지능과 영혼의 차이 를 말하지 않아.

 

아직까진 영혼과 마인드 와 관련된 메저, 측정 은 불가 야. 없어. 없는 것과 마찬가지야. 이쪽의 애브스트랙트 오브젝트 는 그 콸리티 들을 측정할 수 있는 안테나 가 인간에게 없어. 이건 수천년 후로도 극히 찾기 힘들어. 오직 다이렉트 로 접할 뿐이야. 싯달타 나 지저스 가 혹시나 이런 류 였을 수도 있어. 

 

싯달타와 지저스는 문명과 상관이 없는 듯 보여도, 이들은 애브스트랙트 오브젝트 만의 대명사야. 

 

아리스토텔레스 는 콘크리트 오브젝트 의 배후 인 애브스트랙트 오브젝트 의 대명사야. 이 아리스토 의 관점으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저 애브스트랙트 오브젝트 의 세상을 로지칼 하게 "모두 같이" 볼 수 있게 하는 길을 가자는거야. 이게 인간 문명을 만든거야. 

 

싯달타 와 지저스 의 오브젝트 는 콘크리트 가 없어. 

 

아리스토텔레스 의 오브젝트는 콘크리트 를 갖고 콘크리트 를 디비 파는겨. 

 

아리스토텔레스 만이 인간문명을 만들지 못해. 지저스 와 싯달타 의 오브젝트 가 진짜 배후야. 이 추상의 오브젝트 를 써야만 해 에너지로. 이게 문학이고 아트이고 신학이었어 인간에겐. 인간 문명은 추상의 오브젝트 를 디코딩 인코딩 하면서 만든 인간들인 유럽애들이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 를 제대로 써 먹을 수가 있었던거야. 

 

애브스트랙트 만으로는 콘크리트의 애브스트랙트 를 제대로 추출 못해.

 

콘크리트의 애브스트랙트 만으로는 절대 이 자체로 앞으로 못나갔어 이렇게 못왔어.

 

두 길의 합이 지금 유럽문명을 만든거야. 비유럽은 완벽하게 유럽문명을 카피하며 쓰는거고. 

 

콘크리트 없는 애브스트랙트 는 오컬트야 이건. 콘크리트 없는 애브스트랙트만의 세상은 로지칼 할 수도 없고 모랄 도 없어 이건 그냥 짐승 세계야. 짐승도 자기들 나름의 본능적인 신앙이 있어. 

 

유럽과 비유럽을 가른건, 그래서 이 아리스토텔레스 야. 

 

어차피 콘크리트가 안보이는, 애브스트랙트 오브젝트 만의 세상이 호모사피엔스 30만년의 인간사 였어. 이걸 유럽이 탈피할 수 있었던건, 로마까지의 학습을 바탕으로 아리스토텔레스 를 써먹은 게 가장 큰 분기점이야. 아주 결정적이야 이게. 이게 애브스트랙트 오브젝트 에 강력한 에너지를 제공하면서, 오컬트에서 벗어난겨 유럽이. 유럽 문명은 오컬트 에서 벗어나면서 산업혁명을 만들었던거야. 그러면서 애브스트랙트 오브젝트 가 오히려 잊혀지면서, 잊지말자는 쪽의 세력이 힘을 잃으면서 세상이 팍팍해져가는 것이거든. 딱이 이 애브스트랙트 오브젝트 에 힘을 줄만한 방법, 꺼리가 없어 이게. 그렇다고 지저스 싯달타 방식으로 할 수는 없어. 나는 봤으니 니들은 내말대로 믿어라. 안통해 이게 이젠. 

 

니가 봤으면,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보여줘. 인간사는 이때 업그레이드 하는거야. 

 

봤다 느꼈다 로써만으로 애브스트랙트 오브젝트 가 힘을 얻는다는게 씁쓸한거야. 그래서, 봤다 느꼈다 의 그 느낌을 모두에게 "로지칼하게" 주는 게 이후 메타피직스 의 사람들이 할 일이야. 지식인들이 해야 할 일이고. 요원한 작업이야 이게. 

 

지금, 사람들에게 영적 마인드적으로 닥아오는 말들을 던지는건, 소위 자연과학자들의 말이야. 

 

아인슈타인의 말들이 더 찐하게 다가와.

 

카를로 로벨리 의 저 짧은 문구들의 책은, 저게 과학책이 아녀, 완벽한 종교서적에 저게 웬만한 철학서적 문구 저리 가라여 저게. 요즘 오히려 찐한 아포리즘 은 과학책에 있어. 신학과 인문학은 이 과학자들의 서술에 비하면 아무런 힘매가리가 없어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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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의 부활이 아주 핵심이야. 유럽에 아리스토텔레스 가 부활된게 지금 유럽을 만든거야. 12세기에. 십자군 레반트 때에. 

 

동시대에 이슬람 은 말이야. 12세기 에 아리스토텔레스 를 죽이는거야 거대한 정치세력이 되어서. 레반트 십자군 에 대한 정비 의 흐름으로 이 반격으로 얘들이 취한 게 아리스토텔레스 죽이기야.

 

이슬람이 만약 저때 아리스토를 건드리지 않았으면, 지금은 이슬람 이 유럽 이상의 문명을 만들었을 수도 있어. 게르만애들은 갓 태어나서 오백년 로마 익히고 이슬람 을 배우기 시작한거야. 여기 이슬람이 아리스토를 2백년 먼저 독자적으로 익힌거야. 여긴 수메르 이후 첫 리터러쳐 슈룹팍의 가르침 이 기원전 2600년 이야, 이놈저놈 거쳐갔지만 여기땅 인간들은 게르만 애들과는 이게 차원이 달라. 게르만 애들은 카이사르 때나 로마 변경 찝적 되던 애들이야. 2600년 먼저 의 땅에 이후 팔백여년 만에 아리스토텔레스 를 독자적으로 재 해석한 애들이야 이슬람의 원래 땅 애들이. 이슬람은 이 터에서 나온 애들이고. 12세기 라틴번역의 스콜라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와 그리스 로마를 이삼백년전에 이슬람애들이 "해석" 한 것을 갖고 공부를 하기 시작한거야. 차원이 달라 이건. 

 

헌데 저런 어마어마한 차이의 두 진영이, 완벽하게 역전이 된거야. 레반트 십자군 이후로. 

 

이슬람은 철저하게 아리스토텔레스 를 죽인겨.

 

유럽은 아리스토텔레스 를 철저하게 익히고 퍼뜨린거야. 

 

이게 아주 결정적인 장면이야. 레반트 십자군 인간들이 레반트 십자군 국가들을 세웠니, 2백년 후에 쫓겨났니, 레반트 오가면서 저기서 전쟁하면서 벼라별 이야기 들 이 있었니, 레반트 가서 보물들을 훔쳤니, 이딴게 중요한게 아냐. 이런것들이 그후의 유럽을 만든게 절대 아냐. 

 

아리스토텔레스야. 

 

이슬람은 저때 만난, 지들이 부르는 프랑크 들에 맞서는 정신무장 을 위해, 아리스토텔레스 를 이단취급하면서 확실히 죽여버린거야. 이게 중동 을 죽인거고, 아랍과 페르시아 역사 를 죽인거고, 투르크를 죽인겨. 이게, 단지 저때 만 죽이고 그 후유증으로 지금까지도 영향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미래 까지도 죽은거야. 저게 엄청난거야. 팔백년 동안의 아리스토텔레스 의 압살 로 이성을 죽이면서, 남는거 하나 열등감 콤플렉스, 여기서 이성의 재 작동이란 거의 불가능해. 이슬람 진영은, 미래에도 답이 없어. 저 이슬람 종족 은 앞으로 지구에서 사라질거야. 

 

이 길을 그대로 가는게, 이 조선 땅이야. 중국 에 대해선, 컴플렉스 가 없어. 열등감 만 있어. 열등감 자체는 나쁜게 아냐. 이게 콤플렉스 가 되면 나쁜거야. 

 

헌데 조선 땅애들이, 일본 에 대한 콤플렉스 가 백년 인거야. 이게 지금 적폐놀이 의 휘발유를 제공하는거고. 이, 백년 의 기간은, 백년동안 쌓인 컴프렉스 가 어마무시한겨. 하물며 저 슬람이들의 팔백년 컴플렉스 는 이건 불가능해 깨기가 치료하기가. 헌데 이 백년쌓이 콤플렉스 조차 엄청난거야. 이걸 깨 부수지 못하면, 여긴 희망이란 없는거야. 아마 불가능 할듯해. 왜냐면 조선 오백년 동안 쌓인 지능 이 없어. 마인드 자체가 짐승 수준 만을 육성한거걸랑. 영혼 자체가 짐승 수준을 못벗어난게 조선 오백년 이야. 이 짐승 구데기 수준의 지능들에게 백년동안 주입시킨 일본에대한열등콤플렉스 는 슬람이들의 어마어마수메르부터의지능에서 덧댄 팔백년콤플렉스 무게 와 비슷한거걸랑 이게. 

 

이 현실이, 지금 이 조선 땅에서, 구데기 수준의 인간들을 찬양하고, 리더로 만들어주고, 적폐놀이 하면서, 정의감에 도취되는 ㅋㅋㅋ 참 기가 막힌건데, 지가 조구기여 지가 미향이여 지가 거돈이여 저 정신적 지주 애들이 조때가리 덜렁덜렁 을 용기로 자랑하고 극단 애들을 주물럭 거리고 쟤들은 일개인의 일탈의 문제가 아니라, 쟤들은, 정신적 지주 교주 야. 지주 교주 애들 수준이 저런거야. 노벨상 후보 랍시며. 저게 저것들 수준이야. 조선 의 수준이야 지쩍 수준에 영쩍 수준. 저런 애들한테 백년간 쌓인 저 콤플렉스 무게는, 슬람이들 팔백년 무게와 맞먹는거야. 

 

역사가 개 후지고 지능이 구데기 지렁이 수준 애들의 집단 정신병이 국뽕이야. 베트남 인도 중국의 국뽕은 대단하고, 이 국뽕이 현재 이 조선땅이야 ㅋㅋㅋ. 갑자기 헬조선이 국뽕으로 둔갑이 되는 조선민족애들의 정신병적 변덕이란.

 

희망이 없어 여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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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의 이슬람 진영, 이 동쪽 진영을 보자고. 아리스토텔레스 를 버릴 수 밖에 없었던거야, 이 역사 의 상황, 이 정치 상황이. 십자군 을 이런면으로 설명 하는 인간 단 하나 없다 웨스턴 에도. 아 기가막히지 진짜. 

 

웨스턴인 프랑크 애들도 저때 갖고온 아리스토텔레스 를 금서 로 지정해. 그런데 얘들은 바로 이걸 해제해. 토마스 아퀴나스 의 업적이야 이게. 토마스 아퀴나스 는 웨스턴 뿐 아니라, 현대 문명 의 모든 인간들이 가장 존경 해 줘야 함이 마땅해. 토마스 아퀴나스 는 교계에서는 완벽한 이단이야 이건. 쟤들이 감히 말을 못해 이걸 어차피 토마스를 세인트에 올려놔서리. 토마스 이야긴 교회에서 가장 불편한 인간이야. 이 토마스 가 아리스토텔레스 를 살리고 유럽을 살리고 현대 문명을 살린겨 이 인간이. 이건 절대 과장이 아냐. 

 

이슬람엔 저런 숨통의 여지의 인간이 없었어. 왜? 레반트 십자군에 일단 패했걸랑. 전쟁이란 항상 패하기도 하고 이기기도 해. 전쟁 의 결과 가 인간 역사 를 결정짓지 않아 절대. 유럽은 수많은 전쟁의 패배 에서도 최고의 문명을 만든 애들이야. 전쟁탓으로 돌릴 거 없어 인간사는. 

 

이슬람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죽이면서 정치적으로 힘을 얻으려 했고

 

유럽은 아리스토텔레스 를 살리면서 르네상스 를 이룬건데.

 

12세기 상황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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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al Arabic (Arabic: اَلعَرَبِيَّةُ ٱلْفُصْحَىٰ‎, al-ʿarabiyyah al-fuṣḥā) is the form of the Arabic language used in Umayyad and Abbasid literary texts from the 7th to the 9th century AD.  

 

아라빅 언어족.은 기원전 1천년 부터여. 아랍 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건 기원전 9세기 에 앗시리아 글자로 등장해. 이때 아랍은 홍해 부근이야 지금 예맨 오만 지역에서 헤자즈 지역으로 올라오는겨. 얘들은 이스라엘 땅과 전혀 상관이 없어. 유대 역사 때에 아래 나바티안 이 아랍애들일 뿐이고. 나바티안 글자가 기원전 2세기 에 티나오고, 그러다 이걸 엄마로 해서 아랍 글자는 서기 4세기 에나 나오는겨. 이걸 발판으로 무함마드 570-632 가 6세기에 등장해. 무함마드가 아라비아반도 를 통일하고 죽어. 다음 아부-바크르 가 2년 칼리프 하면서 양동 공격을 하는겨 북쪽으로 왼쪽 레반트 지중해 동부해변에 오른쪽으로는 유프라테스 하류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라시둔 2대 칼리프 우마르 가 마무리를 해. 저때 사산 이 비잔틴 을 치면서 아나톨리아 땅을 거의 다 먹다가 부랴부랴 크세티폰 으로 복귀하다가 망하는거야 비잔틴은 다시 재수 좋게 레반트 까지 복구하지만 바로 뺏기는거고 우마르 의 슬람이들 한테. 

 

이때가 서기 638년 이야. 라시둔 칼리프 체제 30년 중 2대 우마르 때에 아르메니아 킹덤을 복속하고 아나톨리아 동쪽을 길게 사선으로 비잔틴 과 이슬람이 맞서며 경계선 그은게. 이때 비잔틴은 이라클리오스 조 이고 이때부터 얘들은 테마타 로 행정구역 정비하면서 재수습하는거고

 

아랍애들이 예루살렘 을 점령한건 서기 637년 이야. 우마르 때. 얘들은 이때부터 여기 주인이여. 얘들은 이 전에는 듣보잡이야. 얘들은 아라비아 반도 가 원래 지들 땅이야. 레반트 는 전혀 아랍애들과 상관이 없어 이게.

 

쟤들이 예루살렘 중심 레반트 주인 자처할 수 있었던건, 끽해야 2백년 이야. 서기 637년 부터 8백년대 초까지. 

 

이들은 이게 다여. 저 2백년. 이것 갖고, 쌩 난리 하는거야, 2차대전 끝나고 영국 애들이 그냥 땅 줄때, 저거 우리 아랍 땅이여! 왜 유대인한테 반 띵 하는겨!!

 

그야말로 골때리는 장면이야 저게. 감성팔이 약자팔이 하는 거에 쟤들 논리 는 디다보면 저 때 4백년 이 다야. 

 

The Abbasid Caliphate 750–1258 / 1261–1517

Despite this initial cooperation, the Abbasids of the late 8th century had alienated both non-Arab mawali (clients)[4] and Iranian bureaucrats.[5] They were forced to cede authority over al-Andalus (Spain) to the Umayyads in 756, Morocco to the Idrisids in 788, Ifriqiya and Southern Italy to the Aghlabids in 800, Khorasan and Transoxiana to the Samanids and Persia to the Saffarids in the 870s, and Egypt to the Isma'ili-Shia caliphate of the Fatimids in 969.  

 

저 이후, 우마이야 가 백년 안되서 스페인땅으로 가고, 압바스 가 서. 서기 750-1258년. 칭기스칸 훌라구 오면서 5백년 만에 칼리프 가 이집트로 가서 명맥유지를 250년 더 하다가 오스만 위대한 술레이만 의 아빠 셀림1세 에게 칼리프 넘기면서 끝난거지만, 1258년 바그다드 점령되면서 끝난건데. 저때도 5백년 으로 보이지만, 초기 1백년 하고 정치권력은 넘어가고 교회권력만 행사하는겨 아랍의 압바스는. 

 

그래서, 라시둔 우마이야 1백년에, 압바스 1백년, 초기 2백년은 우마이야 와 압바스 이름이고 이 다음 2백년은 함단 Hamdanid 이란 아랍 애들. 이 4백년이 다여. 아랍 이름으론. 

 

팔레스타인 의 에뜨닉 그룹 이란 민족 은, 아랍애들이야. 

 

아라빅 언어족이 기원전 1천년 시작으로 봐서, 무함마드 출현해서 죽고 라시둔 서기 까지를 올드 아라빅. 하는겨. 

 

그리고, 라시둔 이 서고, 무함마드 의 이야길 쿠란 하디스 를 만들면서, 이때부터 클래시컬 아라빅. 이라고 해. 그리고 19세기 말부터 마던 아라빅 이야. 얘들도 언어가 거의 진화가 안된거야. 웨스턴 애들과 비교를 하면. 

 

압바스 가 우마이야 를 내쫓을때, 코라산 에서 시작한거걸랑 옥수스강(아무강) 변. 여기서 먼저 압바스 레볼루션 이 서기 719년 에 세력을 얻어서 코라선 넘어 이란고원 지나서 우마이야를 내몰고 압바스를 세워. 그리고 The Battle of Talas or Battle of Artlakh (Chinese: 怛羅斯戰役) 달라사 전투 라는 탈라스, 아틀라크 전투여 이 압바스 애들이랑 당현종의 당나라랑 아무강 위의 시르강 에서 둘이 전쟁하는겨. 

 

압바스 는 저 코라산 에서 시작한건데, 저긴 이란어족 애들이고 투르크 애들이여. 

 

이 투르크 라는 돌궐 애들이, 서기 552년에 부민카간 에 동생 이스타미 는 서돌궐 세우고, 당고조 와 당태종에 망해서 서돌궐이 서기 682년 에 지워져. 그리고 2차 돌궐이 몽골고원에서 있다가 이게 위구르 가 이어가는거야. 

 

저 코라산 너머 아무강 시르강 에 당나라 애들이 여기까지 온거여 동돌궐 서돌궐 지우면서. 서기 682년에. 이걸 40년 지나서 압바스 애들이 여기서 시작해서 우마이야 내쫓고 당나라도 내쫓은겨 얘들이. 

 

이때 압바스 는, 아랍 애들이 여전히 중심이지만, 이 코라산 너머는 당나라에 의해 흩어진, 돌궐족 인간들에 이란어족 인간들이 여기 중심이야. 돌궐 이란 투르크는 원래 아람해 의 이란어족 인간들이 동쪽으로 가서 유연족 에 동화된, 흉노화된 이란어족 애들이 투르크 야. 이 투르크 와 이란 애들이 그래서 이게 비슷한거야. 흉노 와 동이란어족 이 섞인게 투르크여. 압바스 가 여깃 719년 에 반란하면서 손잡은 게, 여기 투르크 와 이란 귀족애들인겨. 비아랍이야. both non-Arab mawali (clients)[4] and Iranian bureaucrats 마왈리. 라고 해 이란애들 아닌 애들을 이때는. 

 

이게 딱 1백년 간거야 우마이야 내쫓고. 이란애들 투르크애들과의 협치가. 

 

Abbasid Golden Age (775–861) 

 

요때를, 이슬람 황금시대 라고 하는겨. 압바스 황금시대 가 이슬람의 절정이야. 압바스 세우고 25년 지나서부터 백년가까이가. 마왈리 와 이란애들 과 함께 할 때야. 

 

아랍애들이 무함마드 때 아라비아반도 통일하고, 우마르 때 예루살램 먹으면서 서기 638년에 아르메니아 까지 지배하면서 이때부터 중원에 등장한거야. 

 

얘들은, 촌놈의 애들이야. 여긴 아케메네스 기원전 6세기 부터, 파르티아 에 사산 까지 천년 동안 페르시안 이란애들 땅이야. 이란의 문명에 비해 얘들은 깡 촌놈의 애들이야. 언어 가 1천6백년 동안 발달 안된 올드 아라빅 쓰는 미개인들이여. 이 상태에서 라시둔 30년에 우마이야 까지 , 1백년을 미개한 아랍애들 세상으로 버틴겨 그래서 4대 알리 때 내전  한거고 이후도. 3대 우스만 은 걍 뚜들겨 패죽인거고. 1천6백년 만에 처음으로 권력을 잡아본겨 이 아랍 미개한 놈들이. 1백년 하고 압바스 아랍애들이 서서, 이때 1백년 전에 권력 넘긴 이란애들이 힘을 실어주는거야. 저 위의 투르크애들도 중국 문명 배운거를 여기에 보태는거고. 

 

그래서 775-861 년 의 압바스 황금시대 는 그야말로 찬란한겨 이게. 저때 서유럽은 샤를마뉴가 통일 하고 죽고 삼형제들 땅나누기 할때고, 비잔틴은 이라클리오스 조 다음 다시 힘빠지고 압바스가 수시로 쳐들어가고 시칠리아에 크레타 섬도 뺏기고. 아무것도 아닌겨 저때 유럽은. 최고여 최고. 

 

 

 Morocco to the Idrisids in 788, Ifriqiya and Southern Italy to the Aghlabids in 800, Khorasan and Transoxiana to the Samanids and Persia to the Saffarids in the 870s, and Egypt to the Isma'ili-Shia caliphate of the Fatimids in 969. 

 

그러다가, 1백년의 협치가 무너지는거야, 마왈리 와 이란어족과. 비아랍애들이 따로 나라를 세우는겨. 모로코 에는 이드리스 788(알리 장남 시아파). 이프리키야(튀니지) 와 시칠리아 는 아글라비드(아랍). 이집트 는 이스마일-샤의 파티마(아랍). 함단 Hamdanid(아랍. 자그로스 북경계) 아라비아반도에 Qarmathians 카르마티안, 자그로스 동쪽에 Buyids 부이드. 코라산 과 아무강 위는 사만이드. 페르시아 는 사파리드. 

 

자그로스 동쪽은 모두 이란애들이야, 부이드 사파리드 사만이드. 아라비아반도 조차 카르마티안 도 이란이야. 모로코 와 이집트 땅은 이드리스 파티마 라는 시아파 고 압바스 수니랑 웬수고, 

 

저리 갈라지면서, 압바스는 교회권력만 취하고, 각 지역에 저런 술탄에 아미르 들이 큰 이름으로 서고, 자잘자잘 쪼개지는겨 저게. 압바스 는 실세는 딱 초기 1백년 이야.  

 

 

Muḥammad ibn Mūsā al-Khwārizmī[note 1] (Persian: Muḥammad Khwārizmī محمد بن موسی خوارزمی‎; c. 780 – c. 850), Arabized as al-Khwarizmi and formerly Latinized as Algorithmi, was a Persian[3][4][5] polymath who produced works in mathematics, astronomy, and geography. Around 820 CE he was appointed as the astronomer and head of the library of the House of Wisdom in Baghdad.[6]:14  

 

이란 투르크 애들과 함께하는 압바스 황금시대 775-861. 8세기 지나는. 이때 인물이, 알-콰리즈미.야. 알지브라 의 선조님에 아라비아 숫자 를 유럽에 전하는 책. 피보나치 가 다시 번역해서 알리는. 

 

유럽애들이 가장 고마와 해야 할 인간이고, 인류 문명사 에서 핵심인겨 그래서 이 알-콰리즈미.는 사인 코사인 탄젠트 도 이 콰리즈미 가 정리했어. 

 

Abu Nasr Al-Farabi (/ˌælfəˈrɑːbi/; Persian: ابو نصر محمد بن محمد فارابی Abū Naṣr Muḥammad ibn Muḥammad al Fārābī;[2] known in the West as Alpharabius;[7] c. 872[1] – between 14 December, 950 and 12 January, 951) 

 

Ibn Sina (Persian: ابن سینا‎), also known as Abu Ali Sina (ابوعلی سینا), Pur Sina (پورسینا), and often known in the West as Avicenna (/ˌævɪˈsɛnə, ˌɑːvɪ-/; c. 980 – June 1037)

 

알-파라비, 와 아비세나(이븐시나) 는 압바스 정치권력이 분열되고 나온겨. 알-파라비 는 Otrar 오트라르. 파라브. 에서 낳았어. 여긴 시르강 Syr 이고 지금 카자흐스탄 이야. 이란어족 인지 투르크 인지 몰라. 둘 중 하나고. 압바스 가 분열 초기에 태어난거야. 사만이드 Samanid 여. 알-파라비 는 바그다드 에서 지낸거로 봐 여기 지혜의 도서관이 있던거고 그리스도들과도 지낸거고. 이 알파라비.가 제2의선생 이야. 제1 이 아리스토텔레스 이고. 아리스토텔레스 를 꺼낸 사람이 이 알-파라비.야. 주석 단 사람이. 이걸 배운 이가 알파라비 죽고 30년 지나 태어난 아비세나 야. 980-1037

 

Bukhara. 부카라 지역 출생이여. 우즈베키스탄 지금. 아무강 시르강 사이 야 중류의. 알-파라비 태어난 지역 의 바로 아래 지역이야. 역시나 사만이드. 여. 이 아비세나 는 확실한 페르시안. 이란인이고. 

 

아비세나 가 태어나고 어릴때 사만이드.가 망해. 오른쪽 발하슈 아래 제티수 지역에서 시작한 카라카니드. 가 왼쪽으로 확장하면서. 이 카라카니드 가 이전 썰한 중국사 때 아람해 까지 먹고서 천산산맥 넘어서 카슈가르 수도 정하는 소륵이름 도 쓰는 나라고. 서기 1004년 에 자기 나라 사만이드 가 망한겨 이때가 24세여. 부카라 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저때 40번 전집을 다 읽은겨 알파라비 꺼를. 이 부카라 지역이 제2의 바그다드 였어. 그리고 카라카니드 피해서 아비세나 가 코라산 넘어서 부이드. 로 가는겨. 헌데 이 부이드 도 말년이야. 이 부이드 Buyid 는 1062에 망해. 아비세나 가 여기저기 에서 정치적 오퍼를 많이 받아. 저 압바스 분열될때 세워진 나라들 말년 을 지내면서 이 아비세나는 여기저기 떠돌다가 말면에 하마단 에서 죽은겨 57세. 980-1037.

 

The Seljuk Empire 1037–1194

The Sultanate of Rûm 1077–1308

The Khwarazmian dynasty 1077–1231   

 

아비세나 가 죽을때 등장한게, 셀주크 야. 위에는 40년 후 콰리즘 이 등장하고, 아나톨리아에는 셀주크 사촌이 룸 술탄 만들고. 코라산 아래 까지는 셀주크 가 먹고 왼쪽은 룸 술탄이 먹은겨. 서기 1037. 1077. 

 

The First Crusade (1096–1099)  

 

레반트 십자군 이 1095년 클레르몽 공회의 발기 에서, The Siege of Jerusalem took place from June 7 to July 15, 1099 예루살렘 함락이 1099년 7월 15일 이야. 

 

이때 상대는, 터키땅 룸 술탄.에 이스칸데룬 만 지나면서 모퉁이 돌면 셀주크 여. 룸 술탄이 갓 1077년 에 콰리즘 과 함께 선거야. 

 

저때 비잔틴은 서기 638년에 우마르 와 경계선 긋고 아나톨리아 동쪽 사선으로. 그러다가 이걸 4백년 만에 반 호수 까지 먹걸랑 아르메니아 까지 갖고 와 비잔틴이. 그러다가 셀주크 가 코라산 니샤푸르 에서 등장해서 서진 하면서 1037. 30년 만에 니카이아(이즈니크) 까지 오는겨 비잔틴이 다시 터키지역을 다 뺏기고. 여기서 셀주크 애들에서 반란해서 세운게 룸 술탄 이야. 셀주크 와 룸 은 친척이여. 형식적 중심은 얘들 교황 바그다드 칼리프 이고. 어쨌거나 이 바그다드 칼리프 가 외교적으로 술탄 아미르 를 인정하는거야 이걸로 얘들은 공인되는거고. 칼리프가 그나마 힘은 있어. 교섭도 해주고. 

 

저 상황에서 비잔틴이 니카이아 까지 위협받으면서, 셀주크 든 룸 이든 다 투르크고. 콤네노스의 알렉시오스 가 로마 교황진영에 요청하는거고, 로마 교황진영은, 세속 황제 에 카놋사 굴욕 시켰다가 바로 감금당하고 깨갱한 상황에서 이 레반트 십자군 발기 하면서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거거든. 저 비잔틴 황제의 요청은 꺼리 인거고. 

 

이때 십자군 애들 의 상대가, 룸 과 셀주크 야. 이 사이에 또 있어. 

 

Kingdom of Tashir-Dzoraget 979–1118

Kingdom of Syunik 987–1170

Kingdom of Artsakh 1000–1261

The Saltukids or Saltuqids (Modern Turkish: Saltuklu Beyliği ) were a dynasty ruling one of the Anatolian beyliks founded after the Battle of Manzikert (1071) and centered on Erzurum.  1071 - 1202.  

The Shah-Armens, also called the Kings of Armenia or Rulers of Ahlat (Turkish: Ahlatşahlar Beyliği), were the 11th- and 12th-century Turcoman rulers of an Anatolian beylik founded after the Battle of Manzikert (1071) and centred in Ahlat on the northwestern shore of the Lake Van. This region comprised most of Bitlis and Van provinces and parts of Batman, Muş, Siirt and Diyarbakır.  

 

The Armenian Kingdom of Cilicia 1080–1375 (1424) 

 

서기 638년 우마르 때의 경계선이 아르메니아 지역이야 이때 아르메니아 는 아랍 에 하미지 한상태고. 여기에 지중해 동북 귀퉁이 이스칸데룬 만이 킬리키아(실리시아) 킹덤이고. 저 반 호수에 아르메니아 고원까지 줄줄이 자그로스 위에 아르메니안 킹덤에, 아랍 페르시안 대행 의 나라들이 있어. 여기를 또한 통과해야해. 전쟁 하든가 타협하든가. 얘들을 지나면 셀주크 랑 붙는겨 이게. 

 

저때의 정치적 교섭 타협 외교력 이 또한 레반트 십자군 전쟁 이야기야. 배반 배신. 졸 재밌어 저게. 

 

.

알-파라비 와 아비세나 는 872-951, 980-1037. 압바스 황금시대 사람들 이지만, 초창기 그야말로 황금시기 1백년 의 직후 사람들이야. 그리고 아비세나 죽는 해에 셀주크 가 시작하고 50년 지나서 1차 십자군 이 시작한거야. 

 

셀주크 는 니샤푸르 고 코라산 이여. 알콰리즈미 는 콰리즘 의 콰리즈미야. 알-파라비 는 시르강 중류고, 아비세나 는 시르강 바로 아래야. 모~두 이들이 같은 문화권이야. 투르크 냐 이란이냐 의 구분은 이게 의미가 없어. 아랍 애들이 아녀 이사람들이. 이란인들이야, 투르크 도 유연이란 흉노화 된 이란인인거고. 저 코라산 에 시르강 지역 사이가 어마어마한 지역인겨 이게. 아케메네스 의 페르시안 들이 여기에 뭉친겨 이 역사가. 페르시안 이 이오니안 그리스인간들 을 포로로 데리고 온게 여기고. 장건이 온 지역도 여기고. 여기가 어쩌면 과거 그리스 로마 를 이은 핵심인거야, 알 콰리즘, 알 파라비, 아비세나. 이 세사람은 정말 최고로 중요한 사람이야, 저 당시 최고의 인물들이야. 이 세사람이 없었으면,  스콜라 라는 건 없고, 토마스 아퀴나스 없어, 스코투스 오컴 없어. 르네상스 없어. 유럽 문명 없어. 

 

제일 귀한 사람들이 저 세사람이야. 저들이 고대 그리스 수학 을 살리고 인도 수학 공리를 갖고 오고 제로 를 갖고 오고 아라비아를 갖고 와서 이걸 유럽애들이 써서 지금 문명이 선거야. 게르만 애들의 최고 장점은, 배우기 를 주저 않는거야. 게르만 애들의 최고 장점이야 이건. 

 

조선 애들 중국 애들 로서는 상상을 못하는 마음 태도야. 이 들은 아무것도 없는 허섭 지능 주제에 세상 최고 라 는 자, 

 

열등감 컴플렉스 덩어리.

 

The Seljuk Empire 1037–1194

The Sultanate of Rûm 1077–1308 

 

셀주크 가 260년 가서 산산조각 나고, 위에 룸 술탄은 더 오래 버티다가 칭기스칸에 하미지 하다가 오스만이 등장하는거지만. 

 

저때 레반트 십자군 국가 2백년 시절로, 이슬람 진영이 취한 게 아샤리야. 

 

Al-Ghazali (UK: /ælˈɡɑːzɑːli/,[14] US: /ˌælɡəˈzɑːli, -zæl-/;[15][16] full name أَبُو حَامِدٍ مُحَمَّدُ بْنُ مُحَمَّدٍ ٱلطُّوسِيُّ ٱلْغَزَالِيُّ or ٱلْغَزَّالِيُّ, Abū Ḥāmid Muḥammad ibn Muḥammad aṭ-Ṭūsiyy al-Ġaz(z)ālīy; Latinized Algazelus or Algazel; c. 1058 – 19 December 1111) was a Persian[17][18][19] philosopher who was one of the most prominent and influential Muslim philosophers, theologians, jurists, and mystics[20][21], of Sunni Islam.[22]   

 

아샤리. 란 사람은 알-파라비 와 동시대 인간이고. 아샤리 는 저때 시선을 못받아. 왜? 어쨌거나 이슬람 황금시대 의 연장일때야 비록 바그다드 칼리프 중심의 압바스 분열 이지만, 바그다드 중심으로 수니들은 뭉치는 시대고 크리스찬들이 바그다드에 같이 있었어, 그야말로 최고의 시대야 이들이. 가장 열린 애들이고 저당시 바그다드 가 최고여 스페인 코르도바 저리 가라여 못따라와 이 바그다드 압바스는. 저때 아샤리 는 안먹혀. 

 

그러다가 레반트 십자군 이 등장하고 1099년에 예루살렘 까지 뺏긴겨. 

 

이때 이슬람 진영의 사람이 알 가잘리.야 1058-1111. 레반트 십자군국가 1099년 예루살렘 때 41세여. 이후 2년 지나서 죽은겨 이 알가잘리.는 

 

나이 43세에 죽는데, 말년에 게르만 프랑크 애들의 레반트가 등장한거야.

 

이사람이 애초에 주장한게, 저 알파라비 와 아비세나 개개끼.야. 저때 아리스토텔레스 가 이슬람 진영의 최고 잣대야. 이걸 강하게 부정해오던 사람이 이 알가잘리.야. 그러다가 레반트 십자군이 들어선거야. 

 

In July 1091, at the invitation of Nizam al-Mulk, Al-Ghazali became professor of law at the Nizamiyya of Baghdad, one of the most prestigious colleges at that time.  

 

알가잘리.가 바그다드 니자미야. 니자미야 가 이들 중세 대학 이야. 1091년 에 법학 교수 가 된겨 이 니자미야 에서. 이때 가장 권위있는 대학이고. 셀주크 가 속세에서 빵빵하게 잘나갈때고 사촌 룸 술탄은 비잔틴 바다건너 갈 기세고. 

 

 

The Incoherence of the Philosophers (تهافت الفلاسفة Tahāfut al-Falāsifaʰ in Arabic) is the title of a landmark 11th-century work by the Persian theologian Al-Ghazali and a student of the Asharite school of Islamic theology criticizing the Avicennian school of early Islamic philosophy.[1] Muslim philosophers such as Ibn Sina (Avicenna) and Al-Farabi (Alpharabius) are denounced in this book, as they follow Greek philosophy even when it contradicts Islam. The text was dramatically successful, and marked a milestone in the ascendance of the Asharite school within Islamic philosophy and theological discourse.     

 

이 사람이 저때 쓴 책이. 철학자들의 인코히어런스.야. 영어 번역해서. 코히어런스. 라는게

 

From con- +‎ haereō (“cleave, cling”).  콘 하이레오. 강하게 들러 붙은겨 이건. 강력하게 하나가 된거야. 인코히어런스 하면, 하나가 안되고 안 들러붙은거야. 안맞는거야. 

 

이게 나중에 유럽에서 나오는 인코히어런스 코히어런스 는 이 알가잘리 의 저 책의 용어에서 나온거야. 웃기게도 이 인코히어런스 를 양자역학 의 중첩개념 슈퍼포지션 에서 쓰는겨 ㅋㅋㅋ 아 졸 웃긴데 . 저걸 결안맞음 번역. 야 걍 일본들 처럼 소리발음 인코히어런스 라고 써. 

 

철학자들이, 이슬람과 전혀 안맞는 애들 이 있다는거야. 알파라비 와 아비세나 를 비난하는거야. 여기 우두머리가 누구여? 아리스토텔레스야. 

 

저 아리스토텔레스 이야긴 우리 신앙을 절대적으로 부정하는 것이고, 저 아리스토텔레스 가 더 퍼스트 티져, 알파라비 를 세컨드 티쳐 라면서 지금 우리 이슬람인들이 떠받드는데, 저건 잘못된거다. 저 아비세나 도 나쁜놈이고 이단이다 인코히어런스 다. 이단 의 표현을 저리 쓴거야. 이사람도 페르시안 이야 아랍어족이 아니라. 

 

이사람은 철저한 금욕주의자야.  신앙적인겨. 사람들에게 존경받아 그래서. 그런데, 저게 먹히겠어?. 저 때 바그다드 분위기에?

 

안먹혀 저 이야기는. 먼놈의 고리타분 한. 저당시까지도 이슬람 애들은 알라 를 지금처럼 고리타분 하게 생각 안한거야. 

 

알 가잘리.는 걍 소리소문 없이 죽었어. 그러다가 막 막 레반트가 함락이 되고, 바로 죽은겨 이사람이.

 

슬람이들 어리둥절, 술리둥절 할때.

 

아샤리 를 이은 알가잘리.가 죽고 나서, 아, 우리 슬리둥절한 슬람이들 정신차리자. 정신무장 하자. 저 프랑크 들을 이기려면 우리가 정신차려야해, 그래, 아샤리 와 알가잘리 의 말이 맞아. 우리 의 알라 를 천지창조 알라 로 만들어 모셔서 뭉쳐야 해 우리가. 앞으로 아리스토텔레스 꺼내면서 이성 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거 가짜뉴스야. 적폐야. 다 조질껴. 정말 살벌하게 칼질해 얘들.

 

저때부터 바로 등장하는게 아샤리파 부활에 알가잘리 의 후예들이야. 이 논리를 알가잘리 가 제공을 하고 죽은겨.

 

Ibn Rushd (Arabic: ابن رشد‎; full name in Arabic: أبو الوليد محمد ابن احمد ابن رشد‎, romanizedAbū l-Walīd Muḥammad Ibn ʾAḥmad Ibn Rušd; 14 April 1126 – 11 December 1198), often Latinized as Averroes (English pronunciation: /əˈvɛrz/), 

 

Moses ben Maimon,[note 1] commonly known as Maimonides (/mˈmɒnɪdz/ my-MON-i-deez)[note 2] and also referred to by the acronym Rambam (Hebrew: רמב״ם),[note 3] was a medieval Sephardic Jewish philosopher who became one of the most prolific and influential Torah scholars of the Middle Ages. In his time, he was also a preeminent astronomer and physician.[8][9][10][11] Born in Córdoba, Almoravid empire (present-day Spain) on Passover Eve, 1138,[12][13][14][15][16] he worked as a rabbi, physician, and philosopher in Morocco and Egypt. He died in Egypt on December 12, 1204, whence his body was taken to the lower Galilee and buried in Tiberias.  

 

스페인 무슬림 지역에 등장하는 코르도바 황금시대 잖니, 여긴 자유로운겨 저기보단. 비록 예루살렘 함락 이전에 톨레도를 그냥 주엇지만. 이 톨레도 부터 12세기 라틴 번역이 시작된거고, 그리고 나서 예루살렘 함락이야. 

 

저 분위기를 말리는게, 코르도바 에서, 이븐루시드 라는 아베로이즈. 와 마이모니디즈.야. 알파라비 와 아비세나 의 학풍을 아베로이즈 와 마이모니디즈 가 코르도바에서 이어가고 이걸 유럽애들에게 넘기는겨. 그리고 슬람이들은 완벽하게 아샤리들이.

 

지금까지 장악을 한거야. 아리스토텔레스 를 죽여버리고. 

 

적폐놀이의 끝판왕이야 저게. 저 어마어마한 이슬라미들이 저때부터의 적폐놀이로 저런 개미개한 이들이 된거야. 저 팔백년의 적폐놀이 두께 는 저건 못 깨. 쟤들은 희망이 없어

 

The Siege of Baghdad, which lasted from January 29 until February 10, 1258, entailed the investment, capture, and sack of Baghdad, the capital of the later Abbasid Caliphate, by Ilkhanate Mongol forces and allied troops 

 

저러다가. 1258년 에 훌라구가 바그다드 대학살 하고, 사람들 피부로 공 놀이하고, 지혜의 집 태우면서, 더한 아샤리들이 되는겨 오히려. 더 지독한 오컬트 를 해야 했고. 

 

저 몽고족 이란 건, 정말 인류사 에 저런 집단 역시 드물지. 저런 야만. 

 

마무리를 못하겄다. 길어져서. 뒤로 미루자. 

 

유럽애들도 레반트 십자군 국가 가 서고 후반기에 역시나, 아리스토텔레스를 금서 로 정해. 

 

그런데, 얘들은, 그래도 바로 풀어. 이성과 믿음을 반반으로 써야죠. 금서 지정한 이유를 만들려고 서로 또  디다봐야했어 아리스토텔레스를. 그러면서 인간들이 더 아리스토텔레스 빠가 되는겨 이게 ㅋㅋㅋ. 아 하튼 이 게르만애들 재미져. 

 

다음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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