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레반트 십자군 에 대해, 몰라 이걸. 우리넨 유럽사 에 대해, 제대로 말해 주는 인간이 단 하나 없어. 하물며 저 하이미들 이라는 서기 1000년 - 1250년 이야긴, 전혀 몰라. 하물며 이전은 더 모르고, 더 하물며  증말 아무것도 모르고. 이 가운데 이놈의 십자군이 핵심중 핵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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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o-called Gesta Francorum ("Deeds of the Franks"), or in full Gesta Francorum et aliorum Hierosolimitanorum ("Deeds of the Franks and the other pilgrims to Jerusalem"), is a Latin chronicle of the First Crusade written in 1100–01 by an anonymous author connected with Bohemond of Taranto.  

 

십자군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자료는. 게스타 프랑코룸 이라는 라틴연대기.야. 서기 1000-01 년에 쓰여진 거고, 작자 불명이야. 1차 십자군에 참전한 하급 기사 로 봐. 이사람이 매일매일 일기식으로 쓴거야 이건. 인간의 역사책들 중에 가장 귀한 자료중 하나야. 이 십자군 이란 이벤트 가 인류사에서  중요한겨 이게. 가장 해석이 다양하고 보는 관점들마다 선악 이 철저한 시선에 시대별로도 그렇고, 이게 역사적 사건 으로도 가장 큰 이슈지만, 시대별로 해석하는 것도 시대별 지역별 전혀 다른거야. 우리네는 저중에 제국주의에 치인 열등한 애들 시선으로 만 보는거야. 즉 어떤 시선이겄어? 이슬람 애들 시선으로 저걸 해석하는거고, 더하여, 저건 로마 카톨릭이 한 짓이잖니? 당연히 프로테스탄트애들에겐 저건 사악한 짓이여. 이 아시아 후진 애들은 요따위 시선으로만 저게 익숙한거고, 저 기에 스민 그야말로 광대무변한 복잡한 이야긴 전혀 모르는겨. 왜냐면, 자기들 영어 실력 언어 실력, 대갈빡 지능 으로는 저걸 이해를 할 수가 없걸랑. 

 

쟤들을 이해하려면, 어찌할 수 없이, 신학을 봐야하고, 족보 를 파야하고, 어찌할 수 없이 고대사부터 디비 봐야 하고, 어찌할수 없이 저짝 동쪽애들 투르크 와 그 이전을 봐야하고 그러다보면 그리스 페르시아 까지도 가야 하는겨 저게. 

 

 

 

저게 원제가, 풀로, 뒤에, 그리고, aliorum Hierosolimitanorum 알리오룸 히에로솔리미타노룸.이야. 알리오룸.이 알리우스 라는, 어더, 다른, 이라는 어드젝티브 이고, 예루살렘 이 라틴어로, Hierosolyma 히에로솔뤼마 여. 이것의 소유격이 hierosolymitanus 히에로솔뤼미타누스 이고, 이거의 어드젝티브여. 다른, 예루살렘의 것들 이야. 프랑크들의 일들과 예루살렘과 관련된 다른 이야기들. 이 원제야. 

 

저게 1095년 클레르몽 공회의 직전 분위기 부터 

 

The Battle of Ascalon took place on 12 August 1099 shortly after the capture of Jerusalem, and is often considered the last action of the First Crusade.[4] The crusader army led by Godfrey of Bouillon defeated and drove off a Fatimid army, securing the safety of Jerusalem.  

 

서기 1099년 아스칼론 전투. 까지 쓴거야. 이 아스칼론 전투.가 1차 십자군 의 마지막 전투고, 이전에 예루살렘은 이미 갖고 온거고, 아스칼론은 텔아비브 밑에 있는, 가자 지구 위에 있는, 해변이야. 파티마 로부터 갖고 오려는거고 이건 이때 못갖고와. 그러면서 1차 십자군은 끝난거야.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작자미상인, 참전 하급 기사.가 쓴 1차 십자군 이야기 게스타 프랑코룸 이야. 십자군 레반트 2백년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은 이 1차 여. 이 이야기만 보면, 다 끝난겨 이게. 이거 하나 제대로 썰을 못하는겨. 

 

저게 너무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야. 

 

유럽 하이미들 이란건, 정말 중요한겨 이건. 똑같은 말 하는거지만, 하이미들 은 인류사 에서 처음 겪는 시기야. 유럽 중세가 이전 문명과 전혀 다른 분기점은 이 하이미들 이야. 가장 중요한게 머라 그랬어? 신권과 세속권의 분리. 이 문구 하나여. 아무도 얘기 안하는. 엄청난 식견인데 나만의. 신권과 세속권의 분리. 가 지금 문명을 만든거야. 아시아 벌레들은 이걸 그대로 혜택으로 받아 쓰는거고, 물론 조선 반도는 여전히 신권 세속권 일치 의 나라고. 북조선 은 돼지찬양 안하면 죽어. 돼지가 신이야. 그 아래 남조선이 저걸 따라가는겨. 지들 대갈을 찬양안하면 적폐가 되는겨 이제. 철저한 유교 사회여 이 둘 다. 돼지를 만나고 한다는 첫 인상의 말이 예의가바르네요.여. 니덜 니덜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는겨. 공자 유교의 단 하나 의 글자 가 머여? 예의 예의 예 야 예. 철저하게 윗대갈 벌레들한테 충성충에 군사부일체에 애비 를 남편을 철저히 충 하라. 이게 예 여 예. 어멋 예의가 바르네요.

 

이 조선 드른 완저니 조폭 국가야 이건. 조폭 이념을 지들 종교로 여전히 숭상질해대고. 완저니 조폭나라지 이게. 

 

중요한겨 저 하이미들이. 신권 세속권의 분리.가 벌어지는 시기이고. 여기의 중심 핵심 사건이 레반트 십자군 이야. 이 레반트 십자군 을 프랑크 들이 다녀오면서, 쟤들이 오컬트 의 미신 종교를 벗어나는겨 이게. 

 

게르만들이 얼마나 미개한 것들이냐고 저것들이 멀 아니. 지난 오백년 동안 로마를 배우기 시작했을 뿐이야. 게르만 시작할때 극동 애들과는 비교가 안되는겨. 게르만 시작할때 극동은 초진보적 문명이야. 극동이 문명이면 게르만을 허섭쓰레기 야만이야. 저당시 오른쪽 투르크 아랍 페르시아 애들에게 프랑크 애들은 야만의 극치여 저게. 서쪽애들은 동쪽애들을 사라센 이라 하고 동쪽애들은 서쪽애들을 프랑크 라 한겨. 어떻게 프랑크 가 사라센 을 따라오냐고 저때. 프랑크 라는 게르만은 야만 도 야만도 저따위 야만이 없는겨. 쟤들은 정말 저게 신앙에 미쳐서 저리 간거야. 세상에 저따위 믿음을 저 시대 어찌 할 수 있냐고. 저게 말도 안될 정도의 미개함이걸랑. 

 

저런 애들이 2백년 저기 다녀오면서, 눈의 뜨이고, 오컬트에서 벗어나서, 그때서야 인간이 된거야 저 개무식한 게르만들이.

 

 

 

 

 

The name of the author is unknown, but he was a member of the crusading party, either Norman or Italian, recruited by Bohemond of Taranto in 1096 from the duchy of Apulia. His narrative of the trip to Jerusalem, initially under the leadership of Bohemond and then Raymond of Toulouse, was composed and written during the journey. He had the help of a scribe who made occasional edits of his own, and thus the chronicle provides invaluable viewpoints of a knight who was not a high level leader or cleric.

The most important historical contribution is the day-to-day events of the journey: tactical operations, provisioning, changing moods of the crusaders, the anti-Greek prejudice, and progress of each day.  

 

게스타 프랑코룸. 이란게 그래서 그야말로  귀한 책이야. 이름은 몰라, 자기 소개하길, 타란토 의 보헤몬드.가 리쿠르트해서 참여한 기사여. 그래서 노르만 혹은 이탈리안 이야. 이 보헤몬드 가 탄크레드 와 같이 가서 안티오키아 를 차지하는거고. 보헤몬드 가 레이몬드와 싸우면서 안티오키아 를 차지하고 눌러 앉아. 남은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가는겨. 탄크레드 도 가. 이때 저 작가 가 레이몬드 부대로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가는겨. 이사람도 라틴어 하는 기사이고, 나이가 사오십대 일거야. 툴루즈 레이몬드는 저기서 가장 나이지긋에 가장 돈 많은 인간이 이상하게 꼬여서 나중에 아스칼론 포위 후에 트리폴리 겨우 가서리 차지해서 체면치레 한거지만. 저 레이몬드 이야기까지 그래서 이 사람이 쓸수가 있던겨 이 부대로 갈아타면서. 

 

이건, 저때 고위급 지도부 시선도 아니고, 성직자도 아니고, 거의 민들과 섞인 시점의 낮은 기사층 관점으로 본거걸랑. 그래서 전혀 다른 시선으로 저걸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최고의 자료야. 

 

To his literary contemporaries, the anonymous author was a "rustic". Guibert of Nogent wrote his Dei gesta per Francos (1108) based on it, saying the original "frequently left the reader stunned with its insipid vacuity". Robert the Monk of Rheims was later commissioned to re-write the entire work for literary and historical improvements while Baudri of Dol also later re-wrote a version of "this rustic little work". However the original has persisted and today it remains one of the most valuable contemporary sources of the First Crusade.  

 

저게, 매일매일의 일기형식의 감상문이야. 사건들 쓴거고. 이게, 러스틱 해, 당대 사람들에게, 이걸 읽히고 픈데, 자기들이 보기에 문체가 거칠고 촌티나고 문법도 안맞아 보이는겨. 이걸 보고, 당대 사람 기베르 드 노장. 이라는 베네딕트 수도원 사람이, 외즈 의 클레르몽 사람인데 자기가 덧대 쓰는겨. 데이 게스타 페르 프랑코스. 데이. 라는 신 이 붙어. 신의 일들 이야. 프랑크 들을 통해서. 저 당시 저들 의 십자군은, 신들의 뜻이 프랑크인들에 스며서 십자군 1차 를 시작한겨. 프랑크들은 몸만 빌려준겨 신들한테. 이게 1108년. 이고. 저때 비슷하게 나온게

 

Historia Hierosolymitana is a chronicle of the First Crusade by one Robert the Monk (Robertus Monachus), written between c. 1107–1120.  

 

몽크 수도사 로베르.가 쓴 히스토리아 히에로솔뤼미타나. 예루살렘의 이야기. 란 책이야. 로베르 나 기베르 나 저때 50넘은 사람들이고. 로베르 가 원본을 바탕으로 추가하면서, 우르바누스 2세의 신이 고따우를 바라신다 라는 연설을 이 인간이 추가를 하는겨. 

 

From Ancient Greek ἱστορία (historía, “learning through research, narration of what is learned”), from ἱστορέω (historéō, “to learn through research, to inquire”), from ἵστωρ (hístōr, “the one who knows, the expert, the judge”).  

 

히스토리아. 라는건, 그리스어 이스토리아. 인데 말야. 이건, 이스토르. 아는 자. 전문가. 사법관 이야. 이스토레오. 리서치 하면서 알기. 탐구하기.여. 히스토리 라는건 저게 뒤져봐서 알아가기.야. 배운 것을 설명 하는거고. 

 

주격 이 히스토리아. 이고. 배움 이고 배운거 설명. 이야.  

 

역사 후진 애들의 공통점은, 히스토리 라는 역사 이야기 하면서, 알지 말기. 거짓으로 배워 갈키기. 주작질 하기. 히스토리가 아닌거지. 

 

이건 조선 민국 만의 문제가 아니라, 슬람이들에 중국에 인도에 중남미 모든 애들의 공통적인 게 역사 조작해서 갈키기. 우리  위대해 제국주의만든애들 사악해. 이건 아주 공통이야. 배움 이 없어 얘들이. 그래서 정신병자들이 득실대고, 공산주의 로 알라 로 지배하기 좋은겨. 자기 교주 자기 민족 욕질 자기 역사 위대함 욕질 하면 적폐 놀이 하는거고. 상대 입 막기. 나만 정의. 상대는 악. 세

 

모~~든 말들은 걍 거짓말. 북조선 위대한 한민족. 연쇄살인마 일지언정 우린 한민족 북조선 욕하지마. 니덜도 적폐 짓 하면 북조선 님들 처럼 다 숙청질해서 뒈질줄 알어. 살인들을 즐겨 숙청은 좋은거야. 조선 핏줄이란다. 적폐는 필요없어. 서로 서로 감시해. 공산주의 쪼앙 쪼앙~~. 

 

 

 

아 분명 저런 애들이 있어 이 남조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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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도 팔던 애가 참 출세한거지. 이땅은 출세 하기 좋은게 적폐 놀이야 ㅋㅋㅋ. 연예인은 거짓말 하면 생매장 되는데, 적폐놀이 앞장서면 무슨 개 그짓말 사기질을 쳐도 영웅이 되셔. 참 싕기한 동네야 여긴 .

 

거짓말을 열심히 잘 해. 

 

절대 사과 따위 하지마. 

 

조선에서 사는 처세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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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of Aix(-la-Chapelle) or Albert of AachenLatinAlbericus Aquensisfloruit circa AD 1100), historian of the First Crusade, was born during the later part of the 11th century, and afterwards became canon (priest) and custos (guardian) of the church of Aachen.[1]

Nothing else is known of his life except that he was the author of a Historia Hierosolymitanae expeditionis (“History of the Expedition to Jerusalem”), or Chronicon Hierosolymitanum de bello sacro, a work in Latin in twelve books, written between 1125 and 1150. This history begins at the time of the Council of Clermont, deals with the fortunes of the First Crusade and the earlier history of the Latin Kingdom of Jerusalem, and ends somewhat abruptly in 1121.[1]  

 

무명 기사.의 1차 십자군 참관기 와 다른게. 아헨 의 알베르트.여. 이사람이 예루살렘 엑스퍼디션 히스토리아.를 쓴겨. 엑스퍼디션 이란건. 발을 앞으로 내 딛는거야. 이게 서기 1121년 에 끝나. 4차 십자군이 베네치아 단돌로 할배가 빚쟁이 된 십자군 데리고 뜬굼없이 비잔틴 점령하는거고. 이 다음이 5차 십자군 1121년 이야. 요때 끝난겨 아헨 알베르트 이야긴. 

 

알베르트 는 레반트를 간적이 없고. 인터뷰 를 졸라 하고 자료조사를 열심히 한거야. 이게 또한 최고의 자료야. 1차 이후 이야길 이걸로도 보는거고. 

 

Medieval crusade historiography remained more interested in presenting moralistic lessons than information, extolling the crusades as a moral exemplar and a cultural norm.[176]  

 

당대 의 사가들은, 당대 자기들 이야길 쓰고, 저걸 덧붙이면서 자기 관점을 쓸거잖아? 여기엔, 저들이 땅 이 없어서 땅 빼앗으러 갔어, 물욕 때문이야. 이따위 이야긴 있을 수가 없어. 이런 이야긴 누가 하겠어? 프로테스탄트 와 이슬람 애들이 하는거야. 프로테스탄트 애들은 당연히 이슬람 애들과 친해 얘들은. 로마 카톨릭 의 합스부르크 와 종교전쟁할때도 둘이 친해. 오스만이 동쪽 쳐준거야 프로테스탄트 위해서. 위그도 애들한테 얘들이 도와주는거고. 잉글랜드 엘리자벳과 친해 오스만은. 

 

자기들 자랑 하는겨. 아 저 야만의 애들, 우리 십자군 모랄 적으로다가 칭찬해. 더하여, 신의 뜻이야. 신의 뜻으로 이긴거고 신의 뜻으로 패해서 물러난겨. 

 

이게 중세에 십자군을 당대에 바라보던 시선이야. 

 

Attitudes toward the crusades during the Reformation were shaped by confessional debates and the Ottoman expansion. The Protestant martyrologist John Foxe in his History of the Turks (1566) blamed the sins of the Catholic Church for the failure of the crusades. He also condemned the use of crusades against those he considered had maintained the faith, such as the Albigensians and Waldensians. The Lutheran scholar Matthew Dresser (1536–1607) extended this view; the crusaders were lauded for their faith but Urban II's motivation was seen as part of his conflict with Emperor Henry IV. On this view, the crusade was flawed, and the idea of restoring the physical holy places was "detestable superstition".[177]  

 

16세기 리포메이션 의 시대. 프로테스탄트 가 확장하고, 십자군을 어떻게 바라보겠어? 저건 카톨릭 들의 뻘짓인겨. 모든건 저놈의 카톨릭이야 실패한것도. 더하여, 알비파 발도파 에 대해 십자군 이용해서 처벌한것도 잘못이다 며 여기까지 논쟁을 해. 알비파 는 20만이 죽었어. 이건 레반트 십자군 후반전에 일어난겨. 단지 이전 동쪽 이단의 바람이 천년 지나서 여기에 온 것일 뿐이야. 이 서쪽애들은 이런게 비잔틴 동쪽에 비해 천년이 늦은겨 이 사고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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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애들은 더 가서, 우르바누스 2세 가 저런 건, 하인리히4세 와의 싸움 이란거지. 카놋사 굴욕 당한겨. 이건 신권 세속권 대립의 연장선이고. 이런 관점이 16세기 말에나 나온겨 이게. 

 

십자군 이야기 를 바라보는 해석이 졸라 다양해. 이게 쉬운 문제가 아녀. 이걸 단지, 땅따먹기. 하는겨. 이건 말야. 일도 없어 일도. 유치 빤스 해석이야 땅따먹기란 건. 이야기를 단지 피상적 으로 만 디다본 애들 수준이야. 왜냐면 깊게 알 지능이 안되걸랑. 

 

The French Catholic lawyer Étienne Pasquier (1529–1615) was one of the first to number the crusades; he suggested there were six. His work highlights the failures of the crusades and the damage that religious conflict had inflicted on France and the church; it lists victims of papal aggression, sale of indulgences, church abuses, corruption, and conflicts at home.[178]  

 

16세기 프랑스 카톨릭 에티엔 파키르. 가, 십자군을 6차 로 정리하고, 이사람이 이게 프랑스 라는 나라 와 교회 교권에 미친 데미지 관점에서 푼거야. 교황의 저 억지 같은 짓의 희생. 면죄부 를 팔 수 밖에 없게되고, 교회가 타락 하고 권력남용질 하게 되고. 신권 세속권이 아주 대놓고 싸우는 건데, 여기서 관전 포인트는 머겠니? 당연히 교회 여. 교회 란게 얼마나 추잡하게 나왔던가 저당시. 왜? 교황 교회 가 말도 안되는 뻣댐, 동쪽 교회 대비 아무것도 없던 애들이 뜬굼없는 교황령이 생기면서 시작한겨 이 로마 교황의 카톨릭 이란건. 교회 라는 신권이 어떻게 세속권력에 대들고, 세속권력을 아래로 두고 자기만의 교회 세상을 만들려 하냐고. 이건 인간문명 호모사피엔스 30만년 동안 말도 안되는겨 이건. 이 교황애들이 세속권력을 갖고 노는 가장 큰 장난이 저 레반트 십자군 이백년이야 역시. 그러면서 아주 노골적으로 칼을 들고 노골적으로 타락하고 노골적으로 짐승 짓을 하는겨 이건. 여기에 아주 치를 떤거야 속세에서. 헌데 이게 웃기게도, 유럽 문명을 만든겨 이게. 신권 세속권을 분리 시키는 시도를 하게 된거고. 세속 입장에선, 치가 떨리는겨 저놈의 교회 신권 이란건. 이게 인간이, 유럽이, 오컬트 를 버리고 이성으로 근대를 만든 이유야 

 

 

 

 

Age of Enlightenment philosopher-historians such as David HumeVoltaire and Edward Gibbon used crusading as a conceptual tool to critique religion, civilisation and cultural mores. For them the positives effects of crusading, such as the increasing liberty that municipalities were able to purchase from feudal lords, were only by-products. This view was then criticised in the 19th century by crusade enthusiasts as being unnecessarily hostile to, and ignorant of, the crusades.[179] Alternatively, Claude Fleury and Gottfried Wilhelm Leibniz proposed that the crusades were one stage in the improvement of European civilisation; that paradigm was further developed by the Rationalists.[180]  

 

가장 후진애들, 계몽주의 랍시고 나오는, 데이빗 흄. 볼테르. 에드워드 기본. 우리가 배운 십자군 해석이 이런 후진 애들 시선이야. 저건 땅따먹기구요. 아주 나쁘구요 아주 후져졌구요, 좋았던건 저때 봉건 세상에서 자유를 살수 있었어요.  무지한 해석이야. 얘들 글은 그래서 모두가 볼게 없는겨. 저따위 로마사.도 저건 쓰레기고. 헌데 욕하면 안되지. 쟤들 때는 저 수준 이상 볼 자료도 없었고, 지능도 안되었으니까, 한편은 경험주의 로 유물론에 공산주의로 가는거고, 볼테르 류들은 1789 대학살로 가는 거일 뿐이야. 

 

클로드 플로리. 라이프 니츠. 정도가, 유럽 문명의 진보에 거대한 일보로 가는 무대였다. 이런 시선이 맞아.

 

The idea that the crusades were an important part of national history and identity continued to evolve. In scholarly literature, the term "holy war" was replaced by the neutral German kreuzzug and French croisade.[181] Gibbon followed Thomas Fuller in dismissing the concept that the crusades were a legitimate defence, as they were disproportionate to the threat presented; Palestine was an objective, not because of reason but because of fanaticism and superstition.[182] William Robertson expanded on Fleury in a new, empirical, objective approach, placing crusading in a narrative of progress towards modernity. The cultural consequences of growth in trade, the rise of the Italian cities and progress are elaborated in his work. In this he influenced his student Walter Scott.[183] Much of the popular understanding of the crusades derives from the 19th century novels of Scott and the French histories by Joseph François Michaud  

 

저 계몽주의 때, 홀리 워. 라는 말 대신 크루세이드 라는 말로 대체 가 된겨. 이때부터 쓰인겨. 토마스 풀러.가 17세기 사람인데 이사람 책 제목도 홀리 워.야. 이게 18세기 지나면서 십자군.이란 개념으로 바뀐거야. 이건 합법적이 아니란거지. 그러면서 판타지 에 미신 에 의한거고. 

 

유념해야 할게 말야, 정복왕 윌리엄 의 아빠도 레반트 가는길에 죽은겨. 이때가 서기 1000년 지날때야. 서기 천년 오면서, 저기가 성지가 되면서 이들이 가는겨. 세속 권력 버리고. 저기가 성지라며, 마음의 안식 받을라고. 그걸 단지, 환타지다 미신이다. 아 이러기에도 잠 먼가 너무 가벼워 이건.

 

윌리엄 로벗슨.이 과학적으로 접근 하면서, 저건 모더니티. 근대로 가는 발걸음 으로 설명한겨. 탁월해. 위대한 작가 월터 스콧. 아이반호. 에 하튼 이 월터 스콧 껀 무조건 다 봐라. 로벗슨 도 스콧 인간에 역사학자고 에딘버러에. 이 월터 스콧이, 저 할배 의 제자야. 월터 스콧이 말야, 아이반호 란 책은 위대한거야 영국 입장에선. 스콧 인간이 아이반호 로 사자심왕 리차드 이야기 에 십자군 이야기에 저때 앵글로 색슨 애들이 노르망디에서 온 애들로 시작한 언어 문제에 여기의 대립에서 하나되는 정체성 이야기가 스콧 인간이 이걸 쓴겨. 선생을 잘 만난거지. 

 

 

 

 

Contemporary

In a 2001 article—"The Historiography of the Crusades"—Giles Constable attempted to categorise what is meant by "Crusade" into four areas of contemporary crusade study. His view was that Traditionalists such as Hans Eberhard Mayer are concerned with where the crusades were aimed, Pluralists such as Jonathan Riley-Smith concentrate on how the crusades were organised, Popularists including Paul Alphandery and Etienne Delaruelle focus on the popular groundswells of religious fervour, and Generalists, such as Ernst-Dieter Hehl focus on the phenomenon of Latin holy wars.[4][5] The historian Thomas F. Madden argues that modern tensions are the result of a constructed view of the crusades created by colonial powers in the 19th century and transmitted into Arab nationalism. For him the crusades are a medieval phenomenon in which the crusaders were engaged in a defensive war on behalf of their co-religionists.  

 

지금 21세기엔 어드래 보냐는거지. 이게 답이 없걸랑. 관점을 네가지 로 나눠서 보는거야. 십자군이 목적한게 머냐는 전통주의자관점. 십자군이 어떻게 조직되었느냐는 플루럴리스트. 민들에 퍼진 신앙적인 끌림 관점인 포퓰리스트. 홀리워 동안의 사건들을 보는 제너럴리스트. 네 가지 영역이 나뉘어서 보는겨. 

 

이전에 나온 주류는, 무슬림 애들 관점, 식민주의 관점 으로 본 것이걸랑. 여기에 민족주의 후진애들 사관이 낀거고. 

 

내 쭉 보면 말야. 식민주의 제국주의 관점 만큼 후진게 없어 이게. 이게 반대로, 자기 정당화 하는 애들이야. 지들 똥은 비단으로 덮고 남의것이 똥이라며 남탓해대는겨. 그야말로 쓰레기 사관이야 이건. 이 조선 애들 종특이고. 얼마나끔찍한조선백년이었던가. 이게 위대하다는겨. 이 바닥은 상대는 적폐 에서 시작하는거고, 당연히 나는 위대한거로 귀결되는거지.  그래서 리터러쳐 도 저따위로만 해석을 하는겨. 조지프 콘패드 의 하트 오브 다크니스 도 식민주의 제국주의로 해설을 도배하고. 무식한 짓이다 저런게. 작품과 아무런 관련이 없단다 

 

 

그럼. 1차 십자군 이야기를 해보자. 이전에 족보 들은 봤고. 

 

나중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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