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5년 폴란트-리투아니아 카먼웰쓰.인데. 잉글랜드의 카먼과 여기 카먼은 다른겨. 카먼 이란건 우리가 하나 란건데, 잉글랜드의 카먼은 시민권자들의 카먼이고, 여긴, 폴란트-리투아니아 이 둘이 같다. 리투아니아를 차별 않겠다, 차별말라 라는 카먼이야.
Lesser Poland 레써 폴란드, 란 지역 이름은, 작은 폴란드야. 여긴 폴란드 안에서, 크라크푸 krakow. 가 있는 남쪽에 루블린 Lublin 정도 걸친 지역이야. 바르샤바 Warsaw의 아래여 레써 볼란드는. 폴란드 시작은 전설로는 왼쪽의 Gniezno 그녜즈노 이고, 여기에 폴란드 교회가 가장 높은 자리고, 코트 는 그녜즈노 에서 크라쿠프 로 옮겨 여기를 주로 쓰다가, 바르샤바 로 간거야.
광의로는 17세기에 레써 폴란드 하면, 저 전체 카먼웰쓰.의 남부여. 과거 개념이고. 뻘건 영역인데. 저게 모두 폴리쉬 인데. Lwow 르부프. 가 Lviv 우크라이나 리비우. 야. 우크라이나 가 동쪽에 키예프 면, 서쪽엔 리비우.(르부프)야. 여기가 류릭 루쓰들이 키예프에서 왼쪽으로 확장할때 할리치-볼리니아 의 중간이고 지금 대표자리야. 루떼니아 하면 여기여. 여기를 Red Ruthenia 레드 루떼니아 라고 해. 우크라이나 서부와 폴란드의 경계지역.이야 루떼니아 에 레드 가 달라다녀. 그래서 우크라이나 는 상징 이 레드.야. 키예르 루쓰도 레드 였고, 왼쪽 상징 리비우 지역도 레드 루떼니아 레드.여
얘들 국기 가 위에가 파랑. 아래가 골든옐로우 걸랑. 파랑이 하늘이고, 옐로우가 밀 이란건데. 이게 1992년에 채택이 된 국기야. 한심한겨 이게. 얘들 상징은 빨강 이어야 해 무조건.
포들라키아 Podlachia 라는곳은 루블린 위에 삐쭉 티나온 빨강지역이고.
포돌리아 Podolia 가 리비우.의 루떼니아 오른쪽 이야. 서던북 이란 남쪽 bug 부그강.까지야 주로. 이 서던북 강이, 오른쪽 드네프르강(니퍼), 왼쪽 몰도바 경계강인 드네스트르강(니스터) 사이의 강이야. 이 포돌리아 오른쪽 이 키예프 지역이야. 원래는 저기 모두가 레써 폴란드 라고 했지만, 지금은 오직 크라크푸 지역의 폴란드 남부야.
크라크푸. 는 비스와 강 상류의 레써 폴란드.야. 크라크푸 왼쪽에, Oppeln Breslau Glogau 오펠른. 브레슬라우 글로가우. 라고 써있는 지역은, 오데르강. 이 흘러서 죽 가서 중하류에선 독일과 가르는 경계선인데. 저게 폴란드 도시인 Opole Wrocław Głogów 오폴레, 브로츠와프 그워그프 야. 여긴 폴란드 가 체코랑 경계인 수디티즈 Sudetes 산맥줄기 따라 오데르강 줄기고, 이 산맥 정상경계가 지금 국경이지만, 이때는 저 산맥너머 저땅까지 저건 폴란드께 아녀.
저기를 실레시아 Silesia 라고 해. Opole 오폴레 오플린 쪽 상류를 어퍼. 고지대 실레시아. 왼쪽아래를 저지대 실레시아. 저 실레시아 왼쪽끝과 지금 독일땅 경계를 루사티아 라고 한겨. 저기가 모두 말이지, 폴란드 께 아녀 저게. 저건 미에스코 가 시작하면서 잠시 폴란드것인 듯 하지만, 바로 프리드리히1세 바바로싸에 보헤미아에 프러시아 합스부르크 등 저건 지금 독일땅 이어야 해. 저 실레시아 는 전혀 저게 폴란드 것이 될 수가 없어 역사적으로. 저건 지금 독일 아니면 체코 애들꺼야 저건. 이 폴란드가 세계대전 끝나고 완전히 권력이 개판 된 상태에서 국민들 죽이고, 폴란드 국민은 결국 폴란드 정권이 지기스문트 바싸 이후, 3백년 동안 쳐죽인겨. 결국 지들이 저따위 정권을 3백년 만든거고, 저런 폴란드는 지구상에서 사라져야지. 헌데 웃긴건, 저런 폴란드 를 만든 저따위 바싸 를 쟤들은 영웅으로 지금 떠받들어.
비스와강 Vistula 이 크라크푸 를 지나 그다니스크 로 흐르고, 우크라이나의 리비우 Lviv 레드 루떼니아에서 발원한 강이 부그강 Bug 강이야. 이게 죽 올라가서 우크라이나 폴란드 경계만들고 바르샤바 위로 가서 비스와강이랑 만나. 이걸 아래 서던부그 강과 구분하려고 웨스턴부그 라고도 불러.
저기서, 우크라이나 와 벨라루스 의 경계를 이루는, 강이, 말이지.
The Pripyat or Prypiat River 프리피야트 강.이야. 이게 부그강 오른쪽에서 벨라루스 쪽에서 우크라이나 경계로 오른쪽으로 평행하게 흐르다가, 드네프르강(니퍼) 이랑 만나면서 이강이 뚝떨어져서 키예프로 가걸랑. 이 프리피얏 강이 드네프르강 만나기 직전 서쪽에 있는 마을이
Pripyat. 저강 이름따서 프리피야트.야. 이건 우크라이나 땅이고, 완전히 벨라루스(벨로루시)와 접점이야. 여기가 체르노빌 사고 가 난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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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ssack Hetmanate[nb 1] (Ukrainian: Гетьманщина, Hetmanščyna), officially known as the Zaporizhian Host (Військо Запорозьке, Vijśko Zaporoźke, Latin: Exercitus Zaporoviensis),[4] was a Cossack state[5][6][7] in the region of Central Ukraine between 1648 and 1764 (or until 1782 according to some sources).[5]
보흐단 흐멜니츠키. 가 자포리지안 호스트.라는 군대.체제 라는 코사크 헤트만에이트 로 우크라이나 를 시작해 1648-1764. 120년 가까이 있다가 러시아에 지워지는데. 러시아 의 우산아래있다가 완전히 편입된건데.
그래서, 우크라이나 에선, 흐멜니츠키 가 영웅이고, 얘를 화폐 도안으로 모시는겨, 사람들 죽이고, 학살을 해도, 어쨌거나 인물이 없는겨 우크라이나는. 대체 조선엔 얼마나 인물이 없냐는거지 이게.
흐멜니츠키.는 코사크 도 아니고, 폴란드체제의 귀족이었다가, 땅 다 뺏기곤 저 코사크로 들어가서 얘들 우두머리가 된거걸랑. 이전에 코사크 들의 자치체제 비슷한게 있었어. 코사크는, 폴란드 애들이 바싸가 러시아 혼란기에 모스크바 점령도 하면서 이 기간 전후에 코사크들을 해체하려고 허가제로 바꿔. 코사크들이 밥줄끊겨, 즈마일로, 표도로비치, 파블뤼크, 오스트리아닌, 1625년 부터 15년동안 대규모 코사크 반란이 네번 연속 일어나고, 이들이 거의 자치화 되고, 폴란드는 버린겨 여길. 드네프르강 하류 오른쪽을.
The Zaporozhian Sich (Ukrainian: Запорозька Січ, Zaporoz'ka Sich; Polish: Sicz Zaporoska; Russian: Запорожская Сечь, also Ukrainian: Вольностi Вiйська Запорозького Низового, Volnosti Viyska Zaporozkoho Nyzovoho; Free lands of the Zaporizhian Host the Lower)[1] was a semi-autonomous polity and proto-state[2] of Cossacks in the 16th to 18th centuries, centred in the region around today's Kakhovka Reservoir and spanning the lower Dnieper river in Ukraine. In different periods the area came under the sovereignty of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the Ottoman Empire, the Tsardom of Russia, and the Russian Empire.
이들 중심지역이, 자포로지안(자포리지안) 씨츠. 라고 해. 러시안은 쎄츠 쎄체. 저걸 영어로 씨치.라고 읽어야 해. 지히 니 시크 니로 읽으면 안돼. 요새 라는 슬라브어야. 반 자치적 체제가 이미 있었어 코사크들의. 16세기 부터로 봐.
저 지역의 조직을, 흐멜니츠키.가 취해서 반란하고 독립국 행세를 한거야.
서기 1751년 인데. 예카테리나 가 러시아 행정구역으로 편입하기 직전이야. 저기서 잘 봐야하는게. 코사크 헤트만체에.와 자포리지아 시체.가 같이 있는거야. 둘이 달러 이게. 흐멜니츠키. 가 코사크를 따로 움직여서 만든게 헤트만체제.이고 이전 코사크 는 아래 있는겨 같이.
드네프르강.이 벨라구스 경계 프리피야트.를 지나서 키예프를 지나 죽 오른쪽으로 흘러. 이 강 오른쪽 위를 코사크 헤트만에이트.라고 해. 그리고 니퍼 강이 내려가 왼쪽으로 꺾여 흑해로 빠질때 저 꺾이는 중간 지점 좌우 가, 자포리지아 시체. 라는 또다른 코사크 자치지역이야. Volnosti Viyska . 이 자치지역은 볼노치 비스카.라고 해. 코사크 헤트만체제.도 비스카 비스케 라는 군대 아미.여. 이 아래는 볼노치 가 붙어. 이건 리버티.여. 자유 군대여.
볼노치 시스카 아래, 크림반도 지역은 오스만에 하미지 하는 타타르 들 땅이여. 여긴 코사크가 아니고 달라 이게. 코사크 는 슬라브화 된 투르크여. 타타르는 몽골때의 투르크고. 원래 비슷한 애들끼리 더 웬수여.
흐멜니츠치.가 1648년에 반란하고, 키예프 오른쪽과 왼쪽까지 양날개 의 코사크 헤트만체제 땅이었어. 저기서 후에 왼쪽인 라이트-뱅크 우크라이나.를 폴란드가 다시 갖고 와, 키예프 오른쪽이 찌인한 회색같은 그린다크색 이 레프트-뱅크 인 코사크 헷멘체제 땅이야.
보흐단 흐멜니츠키.가 봉기 하는게 1648년 이야. 1657년 까지.고 이 해에 흐멜니츠키.가 죽는겨. 폴란드 카먼웰쓰가 이걸 진압을 못할정도로 이미 저때는 이게 나라가 아닌겨. 어차피 곧 지워질 나라였지만. 그래도 폴란드여, 코사크 가 어드래 저걸 이겨. 걍 약탈에 학살짓들 하는겨 얘들은. 그리고 부랴 부랴, 러시아 를 불러야 하는거고.
흐멜니츠키.가 코사크들과 함께, 저때 손잡은 애들이 아래의 크림타타르.야. 얘들도 오스만에 하미지 를 하지만 거의 자치적으로 움직이던 애들이고, 헌데 시간이 지나면서, 흐멜니츠키.가 러시아를 부르는겨. 코사크 는 슬라브된 애들이고, 러시아와 손잡으면, 타타르애들한테 위협이 돼. 이때 타타르가 돌아서 적군이 되는겨 반대로.
The Russo-Polish War of 1654–1667, also called the Thirteen Years' War,
흐멜니츠키의 코사크들이, 러시아 차르한테 요청하고, 러시아는 이제 저놈의 폴란드 한테 웬수를 갚아야 해. 그 어둠의 시기, 와이나푸티나 화산터지고, 차르 끊기고, 가짜 차르들 등장하고, 이걸 폴란드 바싸 가 완전히 모스크바를 갖고 논거걸랑. 저때 잉그리아 까지 스위든에 뺏기고. 폴란드 애들은 모스크바 코트에서 점령군 행세하고. 저 폴란드 처 없애야 하는겨 러시아는. 코사크 가 요청안해도 처들어 가야만 해 언젠간. 결국 러시아가 폴란드를 쳐 먹은거지만 나중에.
흐멜니츠키 가 부른겨 러시아를. 러시아는 당연히 쳐 가는거고.
The Second Northern War (1655–60, also First or Little Northern War) was fought between Sweden and its adversaries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1655–60), the Moscow Tsardom (1656–58), Brandenburg-Prussia (1657–60), the Habsburg Monarchy (1657–60) and Denmark–Norway (1657–58 and 1658–60). The Dutch Republic often intervened against Sweden in an informal trade war but was not a recognized part of the Polish–Danish alliance.
폴란드 가 오른쪽 아래에선 코사크 에 러시아 가 처올라오는거고, 더 끔찍한건 다음해 1655년 이야. 스위든 크리스티나 퀸이 사촌 카를씹세 에게 왕권주고 자유인 행세하면서 이야기 만들때, 이 카를이 마스터플랜 세운게, 땅 넓히자, 영지 확보하고 그걸로 세금 더 걷자. 저 폴란드 저거 저 우리 핏줄 바싸 자식이 지들이 우리의 주인행세 하며 연일 전쟁, 저놈의 폴란드를 아예 처먹자우. 이게 1655년 부터 시작한 5년간 북의 전쟁이야. 이때 걍 폴란드 전역을 쑥대밭 만들고, 크라크푸 점령을 해 시작하자 마자, 바르샤바 도 쳐들어가. 저때 킹 요한2세 카시미르.가 형 다음 킹에 올랐었는데, 둘다 지기스문트 3세 바싸 의 아들이고. 얘가 도망을 가는겨 킹이. 프랑스로. 셰임에서 얘를 짜르고, 새 킹을 올린거고. 폴란드는 셰임 이라는 민주제가 완전히 나라를 더 망치기로 작정한거고. 저 바싸 의 후유증이 이게 4백년째인겨. 저런 바싸 를 위대하다며 떠받들고 얀자모이스키 는 역적이라며 지들상징그림 으로 욕질하고. 싀안한 애들인데 역사가 후져진 이들의 공통인데 이건.
폴란드 는 걍 저기서 개떡이 된겨. 양쪽 스위든 과 러시아.가 저건 우연치 않게도 동시에 쳐들어 온거야.
스위든 과 러시아 는 얘들은 노브고로드 부터 따지면 12세기 부터 전쟁하던 사이여. 최근엔 폴란드 애들 코트점령할때 잉그리아 땅 까지 뺏겼어.
폴란드는 절대 스위든 을 적으로 만들어선 안되었걸랑. 이 지기스문트 3세 바싸 가 폴란드의 가장 큰 역적이고, 이걸 데리고 온 세임 애들도 후짐들 인거고.
러시아 가 당황을 하는겨 이게. 저 스위든이 오히려 폴란드를 먹어. 러시아 가 폴란드 힘내라고, 얘들은 뒤로 빠져야 해. 그리고 폴란드 한테는 스몰렌스크 아래 지역 지금 벨라루스 땅들을 갖고 가면서 조약 맺으면서 마무리 하려는거고, 이걸 흐멜니츠키.가 눈치를 까는겨, 러시아 가 자기를 버려, 흐멜니츠키 가 구애하는 게 스위든 이고, 아래 오스만밑에 있는 트랜실베니아 야. 그리고 흐멜니츠키 는 죽어.
1657-59: Vyhovsky and the Poles: At the time of Khmelnitsy's death his son Yurii was only 16, so the hetmanate was given to Ivan Vyhovsky (regent). He based his power on the richer cossacks ('starshina') and sought a rapprochement with Poland. This led to a rebellion of the more democratic cossacks Martyn Pushkar and Yakiv Barabash, which was defeated in June 1658, a civil war that cost about 50,000 lives. In September 1658 he signed the Treaty of Hadiach with Poland, which would have turned Ukraine into a third member of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but the treaty was never implemented. The treaty led to a massive Russian invasion that was defeated at the Battle of Konotop on 29 June 1659. Faced with a revolt by several pro-Moscow colonels, Vyhovsky resigned and retired to Poland in October 1659.
아들이 16세 야. 섭정을 하고, 다시 폴란드를 처들어가서, 패해. 그리고는 폴란드와 코사크 가 조약을 맺아. 1658년. 이때, 코사크 가, 폴란드-리투아니아 의 카먼웰쓰.에 세번째 나라로 들어가기로 햇다는겨. 즉 폴란드-리투아니아-코사크 카먼웰쓰 가 되는거로. 헌데 이건 전혀 실행되지 않았다. 이건 코사크 문서에 있는거야. 저때 폴란드도 스위든에 완전히 장악된 상태에서 여기라도 서둘러 무마하려는거야. 헌데 이걸 또 러시아 가 용납을 못해. 코사크 에도 친 러시아 가 있걸랑. 얘들끼리 내전하는겨. 러시아가 지원하고. 이걸 반러시아 코사크인 폴란드협상파 코사크 가 이기고.
이러면서, 코사크 헤트만 체제.가 폴란드파 러시아파 로 갈리는거야.
1659-63: Yurii Khmelnitsky: Russia and Poland: The hetmanate passed to Bohdan's son Yurii Khmelnytsky who was now about 18. In 1659 he was forced to sign the Pereiaslav Articles, which were often confused with the treaty itself. They significantly increased Russian power. The next year, fighting resumed between Russia and Poland. Yurii hung back. After a number of Polish victories, Yurii agreed to return Ukraine to the commonwealth. This led the right-bank cossacks under Yakym Somko to depose him. Depressed by this effective partition of Ukraine, in January 1663 Yurii surrendered his hetman's mace and retired to a monastery.
아들 유리.가 성인이 되어서 헤트만 을 하고, 얜 폴란드파야. 폴라드로 다시 들어가서 이전 보다 더 자치적인 체제 만 보장 받으면 되는겨. 계속 폴란드와 의 전투에서 지고, 포기하려는겨 폴란드에 들어가겠소. 여기서 라이트 뱅크. 키예프 코사크 들이 반발해서 얘를 내리고, 수도원에 들어가게 하는건데.
그리고 뒤에, 라이트 뱅크 라는, 키예프 왼쪽지역 은 폴란드 로 들어가고, 레프트-뱅크 라는 키예프 오른쪽만 독립적으로 헤트만 체제로 운영이 되면서 러시아 에 하미지 하는거야.
코사크 헤트만체제의 땅은, 키예프 내려와 꺾이기 전의 강변 거대한 좌우 지역인데. 여기서 왼쪽을 라이트 라고 해. 오른쪽을 레프트 라고 하고. 이걸 아마 북쪽 에서 바라본 왼쪽 오른쪽 표기 인듯해. 키예프 왼쪽 인 라이트뱅크 우크라이나.는 포돌리아 Podolia 지역까지로 보면 돼. 남부그 강 넘어서 루떼니아 가기 전. 할리치-볼리니아 라는 레드 루떼니아 도 흐멜니츠키 가 가져오려했지만 여기 까진 못가고, 포돌리아 정도로만 갖고 오다가, 이 라이트-뱅크 우르라이나 는 폴란드로 간겨 뒤에는.
저 라이트 레프트 뱅크 우크라이나.가 코사크 헤트만체제 의 땅이었다가, 레프트 뱅크 인 키예프 오른쪽만 남은거고, 이 아래 꺾여서 좌우 넓게 있는 지역는, 자포리지안 시체 Sich 라는 전혀 다른 코사크 자치 지역이야. 그리고 이 아래 전혀다른 크림 타타르가 크림반도 와 이 위인 니퍼강 하류에 있었던거고. 저게 모두 18세기 후반에 러시아 로 들어온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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