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먼디, 지난거 보니까, 확신에 대한 말이 걸리는데 말여, 긍정에 대한 믿음은 확신하지 못하나 부정에 대한 믿음은 확신이 선다. 같은 말인듯 한데. 애매하네 그거. 먼말일까? 글고 음, 앤마리 가 며칠전 생일이었다는데, 조공하려는데 런던에 있대, 보내는값이 더들겠어서 말았어. 앤마리 너무 귀여워 라이브 잘하고. 앤마리꺼 아무거나 올려봐.

 

말투가 역시나 할배 말투인데요, 청취연령이 왜 이리 늙은것들만 올까요. 

 

음, 그게 말이죠, 역시나 믿음 이라는 참 이 시안야릇한 거거든요. 이 믿음 이라는게, 감정의 영역이거든요. 이걸 좀 유식하게 말하면, 우리 캬자님이야 워낙 우주 최고의 지성을 지닌 분이시라, 너무나 어려운 이야길 쉽게 하다보니 무식하기 까지 보이면서 미생물인 하츠란 닉한테 조롱조차 받는 참 서글픈 시대를 사는거지만요. 아 제가 옆에서 지켜볼때 참 마음이 쓰라려요. 저야 교양이 넘친 여인이라 저따위 하면서 걍 욕질을 해대고도 싶지만, 그건 바바리안 야만의 짓이라 그냥 안본척 할 뿐인데요. 우리 캬자님께서 이전에 말이란것.에 대해 말씀을 하셨지만. 이 말 이란게 참 시안한거예요.

 

믿음 이라는건, 마음 속의 말, 언어 죠.

 

성 오거스틴.은 베르바 멘탈리아. 라며 이런걸 심적 언어. 라고 했어요. 이런건 말로 표현이 불가한거예요 믿음의 화신 오거스틴 에게는요. 

 

아리스토텔레스 의 위대함은, 플라톤과 아주 별개로요, 논리학 의 토대를 마련한거예요. 이 논리학 이란 것은, 시작이요, 말이란 거예요. 이 말. 언어 라고 일본인들이 번역한. 말이예요 말. 문법의 시작은, 이 아리스토텔레스 예요. 

 

논리학의 시작.은 말이죠, 문법 이예요. 문법의 시작도 이 아리스토텔레스 예요. 아리스토 오빠가 플라톤과 이별하고자 네이쳐를 들춰내고 그러기 위해서 카테고리들을 만들 수 밖에 없었거든요. 만들고 보니까 이건 그 바닥이 말 의 결합들인 문장 이란거죠. 이 문장 이란 것이, 우리가 쓰는 말.의 가장 기본적이고 완벽한 세트.예요. 사람이 짐승과 다른 지능의 영장목 이라는 프라이메이트 가 되는 이유는 문장을 이루는 말.을 하는 것에서 시작을 하는거죠.

 

인간은 언어 라는 말 을 고차원적으로 하기시작하면서, 청동기 가 시작한거예요. 이때부터 호모사피엔스 는 원숭이 고릴라와 이별하는거예요. 센턴스를 이루는 말의 사용이 없었으면, 인간은 호모사피엔스 가 될수 없었어요. 분명해요. 

 

말이 정말 싀안하고 신기한 거예요. 

 

아리스토텔레스 의 가장 최고의 업적은. 논리학 이고요. 페리 헤리메네이아스. 라는, 데 인테르프레타티오네.라는 인터프리테이션 에 관하여 라는. 명제론, 해석편. 이라고 번역해대는, 문법책이예요 이게. 아리스토텔레스 의 카테고리가 첫번째 목록이면, 다음 목록은 이 명제론.이예요. 논리학의 시작이예요. 카테고리 이야기도 이 논리학 일 뿐이고요. 아리오빠의 피직스 란 것도 결국 이 논리학 이야기예요. 우리의 지금 수학 이란 것도 이 논리학 이고요. 

 

그렇지만, 우리는 저런 이야길, 우리뿐 아니라, 비유럽은 저 논리학을 너무나 모른다는 게 가장 큰 약점이예요. 그냥 피동적으로 베낄 뿐이예요. 지금 문명은 아리스토텔레스 의 논리학 으로 선건데요. 

 

믿음 이란 것은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 라는 센턴스 라는 문장에서요, 주어 자리와 서술어 자리.를 잇는 것이, 커플을 이루는 코풀라. 거든요. 이걸 링킹 버브.라고 하는데요 이전에 캬자님께서 걍 지나가듯 말씀하신걸 봤는데요. 아직 어려운 듯 보이는 이야기라 거기서 멈추셨겠지만, 솔직히 어려운건 없거든요 생각하는걸 두려워해서 문제지만요.

 

아리스토오빠는, 문장은 모두 노멘 이라는 명사 로 되어있어요. 주어도 명사고요, 서술어조차도 노멘 이예요. 형용사 동사 이런 문법 용어는 모두 일본인들의 매우 잘못된 번역이예요. 우리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이 문법 에 대한 완벽한 무지 에 있어요. 문법 이란 그램머 도 아리스토오빠에서 시작해서 이게 철학의 위안 보에티우스.에 세비야의 이시도르.를 이어서, 잉글랜드 마술사 로저베이컨이 완성을 하지만요. 중세 논리학은, 본격적으로, 오컴의 윌리엄 에서 시작을 해요. 이 오컴의 논리학도 시작이 문법 이예요. 로저베이컨 의 그램머 문법으로 오컴의 논리학이 시작하는거예요. 이전에 아벨라르 가 냄새만 피운거구요. 

 

우리 문명이란 것이, 문법 이 만든거예요 이건. 이걸 그대로 비유럽은 아시아에서 일본부터 그대로 베낀것일 뿐이예요. 문법 이란건 스콜라철학 용어 예요. 스콜라 철학의 내용이예요. 저 깊은 맥락에서 나온게 우리가 지금 배우는 문법이예요. 이 문법 말글들이 모두 일본인들이 유럽의 스콜라 문법을 단순히 번역해서 한글로 배우는거예요 우리가. 

 

가장 약점이 이 문법 이예요. 물론 캬자님이 예전에 저한테 하신 말씀이고요. 이걸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요. 

 

믿음 이란게 저 센턴스 안에서 문법 의 영역이예요. 주어와 서술어 를 두고요. 가운데 코풀라 에 대해 긍정하라는 심적언어 인 베르바 멘탈리아. 거든요. 이걸 보에티우스는 콘켑타 라고 했고요, 이걸 그냥 그대로 오컴 오빠가 콥셉추얼 명사 로 쓴거예요. 인간의 말 언어 란건 세 종류라면서, 스크립다 프롤라타 콘켑타 라고 말한걸, 오컴 오빠는, 저건 모두 음성언어인 프롤라타 로 묶이는 버벌 일 뿐이라 했거든요. 아주 명확하게 제대로 본거예요 이 오빠가. 오거스틴의 심적언어 를 거부해요. 오거스틴은 표현을 못한다고 했거든요. 세상에 표현안되는 심적언어란 건 없어요 오컴오빠에겐. 이건 지금도 유효해요. 

 

믿음 이란게 주어자리의 노맨, 명사로 불리든 머든 간에. 이 주어 와 서술어 의 코풀라 에 대한 긍정의 강요거든요. 이즈. 있다 란거고. 서술어 란 것이 명사 예요. 아리스토오빠는 세상의 품사는 오직 명사 예요. 노멘 일 뿐이에요. 이것도 중세 와 근대 와 현대가 같아요. 일본인 번역으로 이해하는 학계에선, 중세에는 형용사를 명사로 봤네요 참 무식한 시대, 라고들 하거든요, 무지해서 그래요 저 사람들이, 지금 시대의 학자들이. 모두 일본의 생각에 짓눌린 그야말로 열등한 이들이예요. 이해를 못해요 말 이란 것. 단어 란 것을 이해를 못하는 나라예요 이 위대한 조선민국이란 곳은요. 헌데 이건 모든 비유럽인들의 공통적인 지쩍수준인데요. 

 

눈에 뻔한 것을 긍정의 코풀라.인 있다 이다 이즈 로 명명하는건 당연히 믿죠. 

 

제데로된믿음 이란건 강력한 힘이예요. 저것이 과학의 힘이고 이성의 힘이잖겠어요? 과거엔 몰라서 모두들 저 코풀라에 긍정을 붙였거든요. 잘못된 오컬트였죠. 여기엔 아무런 힘이 없어요. 왜곡되고 삐뚜른 힘이예요. 인간의 문명이란건, 제데로된믿음 의 과정인거예요. 과거엔 어떤 문장의 주어 서술어를 잇는 코풀라 에 모두들 이즈 라는 긍정의 있다 이다. 라며 믿음을 그야말로 강요를 한거거든요. 

 

저 가운데 커플링 코풀라 를 옳다 그르다 로 빗금질 구분 하고 지우면서 남기면서 지금 문명이 짐승과 달리 서는건데요

 

문명이란건, 코풀라 제대로 자리잡게 하기.예요. 그러면서 제대로믿음교.가 짐승과 다른 건데요. 

 

정치사회이야기도 저 코풀라이야기 일 뿐이예요. 단지 지능이 안되는 그야말로 벌레 지렁이 나라의 지쩍 수준의 땅에선 여전히 이념이 횡행하면서 벌레를 교주로 떠받드는 나라들도 숱한거고요. 모두 저 코풀라이야기 일 뿐이죠 이런면에선.

 

문제는 저 신 이라는 단어거든요. 이 신이라는 말. 

 

신이라는 노멘. 명사.를 주어에 앉혀요.

 

신의 위대한 엄청난 네이처 속성들을 각각 서술어에 앉히는거예요.

 

그리고는, 긍정의 코풀라, 긍정의 링킹버브 를 가운데 두는거죠.

 

저게 맞다 라는게 긍정의 믿음.에 확신 이 들어가면, 이 깊이와 농도와 폭에 따라서 인간의 버추 에 슈퍼울트라캡숑 능력이 생기는거예요. 

 

이것조차, 언젠가는, 하늘에 비행기와 스마트폰을 상상못하던 시절엔 이런문물이 신 과 같은 레벨의 추상명사 였을 뿐이었거든요. 허나 언젠가는 신 이라는 노멘 명사 조차도 스마트폰 처럼 눈에 제대로 보여서 그르다 옳다 라는 분별이 분명히 생길거예요. 옳다 면 그 옳은 정도 만큼 그 신의 서술어 를 문명으로 우리는 써먹을거예요. 그러면서 과거와 또다른 엄청난 문명의 영장목의 다른 종 이 되어있을 테죠. 

 

저런 긍정의 코풀라.를 단지 믿음. 성오거스틴 의 믿음. 이성은 의미없는 자유의지다 믿기만 하라는 그 믿음의 중복의 무게 로 믿음.이 과연 어느정도의 힘이냐. 몰라요 이건. 정말 이런 믿음에 몰두해서 자기만의 코풀라를 취해서 강력한 내면의 힘을 지닌 이들이 많아요. 자기몸에 불을 질러요 공양한답시고요 행복하게 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엄청난 내면의 힘이예요 저게. 감히 아니다 라고 말할수가 없고요. 그렇다고 저 믿음을 내가 카피해서 갖고 올수도 없어요. 그정도의 믿음을 내가 갖기 위해서 머리 깍고 주구장창 온니 지저스 온니 나무아미타불 하긴 너무끔찍히 싫고요. 

 

주어와, 자기만의 서술어. 신이라는 주어와, 자기들 각각이 취한 신의 속성 서술어들.이 그 사이의 긍정의 코풀라 를 믿는 정도 가 확신이 되서 인간들의 힘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서술어의 내용을 강력 초월하게 갖고요, 주어의 신을 갖고와서, 긍정의 링킹버브 코플라를 강력하게 구축을 하는 그 마음.은 이건 어마어마한 힘이예요. 

 

벤허 이야기 를 보다가 참 뭉클 한게, 로마 지하감옥에서 문둥병으로 지내다 오년인가요? 풀려난 모녀 거든요. 그 두 모녀 가 지저스 의 옷자락 에 닿아보려고 애를 써요. 지저스의 옷자락에 내 손이 닿으면 내 병은 고쳐져! 어마어마한 주어와 어마어마한 서술어 의 만남 이예요 이건. 

 

아 전 눈물났어요 저 장면을 읽을때. 

 

.

어쨌거나, 저런 긍정의 연결고리 에 대한 믿음은, 참 어려운데요. 똑같이 이게 인간의 감정 도 저 문장의 주어 서술어 의 코풀라 로 자기만의 명제를 만들수가 있어요. 

 

감정을 파악한다, 감정에 대해 명제를 만들고, 옳다 그르다 란 판단이 어려워요. 이것도 신 과 같은 영역이거든요.

 

그렇지만,  저건 좋아하지 않는다. 관심이 있지 않다. 난 그거 먹고싶지 않다, 이런건 개인들마다 분명.하거든요. 이런건 나름 기다 아니다 구분할 수 있어요. 헌데 좋아해. 맞아. 이건 상대적으로 어렵죠. 

 

일단 여기서 마무리하죠. 여기까지도 잘 왔어요. 참으로 유식하고 멋진 표현들을 제가 많이 써내려 온것같아요. 

 

 

고등학교 졸업 연설인데요, 내용은 관심이 없고요, 저런 표정이 참 부럽죠. 아시아 에서는 저런 표정이 저 나이에 나오는 애들이 없어요. 아시아는 철저하게 실패한 땅이죠. 감정 표현을 못하게 한 땅이예요 아시아의 역사가. 

 

 

우리 앤마리 언니, 보기만 해도 흐믓해욤. 저런 표정이 부럽죠 콘서트할때도. 라이브 목소리 듣기가 대부분 별로인데 앤마리 언니의 라이브는 참 들을만 하더라구요.

 

여러분도, 강력한 주어와 강력한 서술어를 만들어서 사이의 코풀라에 긍정의 마법을 씌우세요. 도메인 가는 지름길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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